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북정맥 종주기

제 2차 한북정맥 종주기 1 (수피령-복주산-하오현)

시인마뇽 2007. 9. 24. 13:37
                                 제2차 한북정맥 종주기 1


                 *정맥구간:수피령-복주산-하오현(13.4Km)

                 *산행일자:2007. 9. 16일

                 *소재지  :강원화천/철원

                 *산높이  :복주산1,152m, 복계산1,057m

                 *산행코스:수피령-복계산-1070봉-복주산-하오현

                 *산행시간:9시-16시35분(7시간35분)

                 *동행    :경동OB산악회 6명

                  (29유한준, 24김주홍/김경옥부부, 서중원, 이규성, 우명길)

           

 

  한북천마지맥의 성공적인 종주에 고무된 경동OB산악회의 야심만만한 선의 산행은 한북정맥종주로 이어집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경동OB산악회의 정기산행은 매월 첫 토요일에 오르는 점의 산행과 셋째 주 일요일에 실시하는 선의 산행으로 나누어집니다. 어느 한 산을 정해 주로 계곡을 타고 정상을 오르내리는 점의 산행은 주로 경기도 산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산줄기를 계속해 이어가는 선의 산행은 지난 7월 종주를 마친 한북천마지맥에 이어 이번 달부터 한북정맥 종주로 들어갑니다. 제가 멋대로 명명한 점의 산행과 선의 산행은 이렇게 다릅니다. 고도가 낮은 산 어귀에서 시작하는 점의 산행은 거의 다가 정상까지 오름 새가 계속되어 숨 가쁘게 올라야하지만 계곡의 비경과 사찰 등을 볼 수 있어 명산탐방에 적합한 산행이라면, 고개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다가 고개에서 산행을 마치는 선의 산행은 장대한 산줄기를 계속해 밟아야 해 은근과 끈기가 요구되며 대간이나 정맥 등의 종주산행이 이에 해당됩니다. 각각의 산행방식에 대한 선호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으로 점의 산행과 선의 산행을 거의 반반씩 하고 있는 제 경우는 점의 산행은 다른 분들과 함께하고 선의 산행은 주로 홀로 하는 편입니다.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13개 정맥 중 하나입니다.

북한 땅 강원도 원산의 추가령에서 대간에서 분기되어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다 경기도 파주에서 장명산을 마지막으로 일군 후 곡릉천으로 내려앉은 한북정맥은 남한 땅 9정맥 중 최북단에 자리한 정맥입니다. 아직까지는 북한의 산들을 자유롭게 오를 수 없어 별 수 없이 휴전선과 접하고 있는 대성산 남쪽의 수피령에서 정맥 종주를 시작합니다만, 그래도 수피령에서 장명산까지 도상거리가 160Km가 넘고 또 이 거대한 산줄기에 복주산, 광덕산, 국망봉, 운악산, 불곡산과 도봉산등 고산과 명산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어 백두대간을 오르기 전에 먼저 한북정맥을 종주해 몸과 마음을 다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 역시 지난 2004년에 처음으로 한북정맥을 종주했고 그 여세를 몰아 2006년 봄에 대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아침6시50분 동서울터미널에서 헐레벌떡 뛰어 오는 수지 친구와 함께 사창 행 첫 버스에 몸을 실고 나자 한북정맥 종주산행이 드디어 시작되는가 싶었습니다. 태풍 나리의 상륙으로 큰 비에 천둥번개까지 친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몇 몇 친구들이 예정대로 떠날 것인가를 걱정스럽게 물어왔습니다. 물이 불면 위험한 계곡을 오르는 것이 아니고 보다 안전한 능선 길만 걷는 종주산행이어서 별로 문제될 게 없다며 강행할 뜻을 전하고 나서 혼자서 밤새도록 걱정을 했습니다. 설사 탈 없이 첫 구간 종주를 마친다 해도 냉랭한 가을비를 하루 종일 맞아 감기라도 걸리면 그 또한 문제이다 싶어서였습니다. 다행히도 동서울터미널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마치 태풍의 눈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청명해 일단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9시 정각 해발700m가 넘는 수피령 고개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정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화천의 사창리에 8시 반경에 도착해 대당 만 오천 원에 택시 두 대를 잡아 들머리 수피령으로 옮겼습니다. 대성산과 촛대봉 한 가운데 자리한 깊숙한 안부 수피령은 강원도 화천과 철원을 경계 짓는 높은 고개 마루로 1951년 6월 중공군과 맞서 싸워 대승한 대성산지구 전투를 기념하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어 기나긴 정맥 종주 중 수시로 겪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완주할 수 있는 종주산행의 출발점으로는 최적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주대원 6명이 완주결의를 다지고자 전적비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한 후 풀숲을 헤치고 오른 쪽의 산등성으로 올라섰습니다. 이곳에서 복계산 못 미쳐 헬기장에 오를 때까지는 촛대봉을 에도는 산길이 오름 새가 완만한 고즈넉한 길인데다 파란 투구꽃과 금강초롱이길 안내를 해주어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최전방의 산답게 여기저기 군에서 파 놓은 교통호가 자주 눈에 띄었으나 3년 전 이 길을 지나며 햇빛을 받아 반짝대던 땅 바닥의 운모는 이번에는 구름이 해를 가려서인지 어디엔가 숨어 몸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10시2분 해발1,057m의 복계산을 올랐습니다.

복계산은 마루금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지만 고대산, 금학산과 더불어 휴전선과 인접한 철원의 대표적인 고봉이어서 김화평야는 물론 한북정맥 북쪽 길의 대성산의 전모가 한 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전망지로 이름이 나있어 웬만하면 한북정맥 종주 길에 한번 들러보는 명산입니다. 헬기장 출발 14분 만에 복계산 정상에서 오르자 태풍나리가 척후병으로 먼저 보낸 구름이 산자락을 덮어 기대했던 대성산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36분 만에 헬기장으로 돌아오자 수피령 건너 대성산이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듯 산자락을 덮은 안개를 능선으로 밀어 올려 정상만 빼 놓고 나머지 봉우리들은 다 보여주었습니다. 10시 반경 일행을 기다리는 다른 팀에 앞서 복주산을 향해 헬기장을 떴습니다. 바로 앞 촛대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며 오르내림이 심한 미끄러운 길을 완전히 통과하자 11시가 다 되어 처음으로 배낭을 벗어놓고 능선 길에서 10분을 쉬었습니다.

                                                         

  12시24분 941.9봉 넓은 터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쉼터에서 조금 올라 다다른 칼바위 990봉에서 950봉과 945봉을 차례로 지나 삼각점이 서있는 941.9봉에 이르기까지 길이 잘 나있어 쉴 새 없이 발걸음을 옮겨 놓으면서도 한북정맥에 드리기 시작한 가을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한 주전만 해도  호남정맥을 등지고 가을 속으로 사라지는 여름을 붙잡고 두고자 목청 높여 노래 부르던 매미를 한 마리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매미뿐만 아니라 새들도 목소리를 아끼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길섶의 푸르른 나뭇잎에서 알게 모르게 단풍기가 감지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태풍 나리가 이 땅에 상륙하는 것이 혹시나 아직도 남아 있는 여름의 잔재를 모두 드러내고 대 못질을 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지친구 내외가 준비해온 점심상은 떡 몇 조각으로 때우는 것이 몸에 밴 제게는 더 할 수 없는 성찬이었습니다. 나홀로 산행 시는 점심시간이 다른 때보다 길게 쉴 수 있는 휴식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이렇게 동문들과 함께 산을 오를 때는 은근히 기다려지는 꿈의 시간이어서 노닥거리며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는데 40분이 거의 다 걸렸습니다. 너무 많이 먹었던지 아랫배가 더부룩한 몸을 달래 일으켜 세워 13시2분에 복주산으로 향했습니다. 반시간을 조금 못 걸어 892봉 이정표가 세워진 891.9봉 바로 아래에서 가쁜 숨을 고르느라 잠시 쉬었는데 오른 쪽으로 꺾이는 활엽수 숲길이 더 할 수 없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14시39분 왼쪽 아래 실내고개로 임도가 내려서는 1070봉에 다다랐습니다.

892봉 이정표지점 출발 20분이 훨씬 지나  화생방교육장으로 쓰인다는 950헬기장에 다다르자 1070봉에서 복주산으로 이어지는 횡선의 산줄기가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방공호가 들어선 950헬기장에서 한참을 내려섰다가 폐타이어 길을 올라 1070봉에 올라서자 왼쪽 실내고개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가 나타났습니다. 3년 전에 한북정맥을 처음 올랐을 때 이곳에다 차를 세워 놓고 나물을 캐던 몇 분들을 만난 기억이 나 이 길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길을 따라 설치한 군 통신용삐삐선과 먼저 이 길을 밟은 정맥꾼들의 표지기가 도와주어 길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서인지 예정대로 16시안에 하오고개에 내려설 것 같았습니다. 기상예보대로 태풍이 올라와 악천후가 계속되면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실내고개로 탈출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한라산이 막아주어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1070봉에 올라선 것이 큰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임도는 복주산 방향으로 계속해 이어졌고 저희들도 이 임도를 따라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15시23분 해발 1,152m의 복주산을 올랐습니다.

1070봉에서 헬기장까지 이어지는 가히 환상적인 임도 길을 20분 남짓 걸으며 앞서 걷는 부부 한 쌍을 카메라에 담아보았습니다.  부부로 연을 맺고 반평생을  살아온 저들이 지금 걷고 있는 임도처럼 편안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반목하고 더러는 갈등하면서도 한 길을 걸어왔을 저 부부들이 한 없이 부럽게 느껴진 것은 곁에 있음이 행복임을 가르쳐준 집사람과 같이 이 길을 걷지 못해서였습니다. 새삼 임도 길을 덮은 질경이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 밟히고 또 밟혀도 끝까지 살아남는 질경이가 제게 주는 준엄한 가르침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고귀한 생명의 가치입니다. 우두령-민배기재 구간의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천m가 훨씬 넘는 능선 길에서 만났던 질경이가 이 높은 능선 길에 다시 나타난 것은 인생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을 일러주기 위해서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자 하늘이 오래 붙잡아 두었던 비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15시23분 삼각점이 세워진 해발1,152m의 복주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다시 삼각점에서 10분 여 암릉 길을 오르내려 1,150봉에 다다르자 철원군에서 세운 정상석이 보였습니다. 이 봉우리 또한 정상 봉처럼 비좁은 삼각봉이어서 기념사진만 후딱 찍고 하오현으로 향했습니다. 비옷을 걸치고 암릉길을 내려와 다다른 헬기장에서 잠시 멈춰서 오른 쪽 아래로 보이는 길쭉한 잠곡저수지가 다소곳해 보였습니다.


 

  16시35분 하오현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접었습니다.

헬기장에서 하오현으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제법 급했습니다. 일행 여섯 명 중 4번째로 엉덩방아를 찧은 이규성 동문이 헬기장에서 하오현으로 내려서는 길이 제법 경사가 급한 길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폐타이어를 밟고 내려선 하오현에서 회목봉으로 오르는 길이 꽤 급해 보였습니다. 회목봉을 넘어 회목현에서 종주산행을 마치고 광덕고개로 내려간다는 애당초 계획을 하오현에서 접은 것은 오래 참았던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데다 많이들 지쳐 있어 자칫 늦어지면 19시반경에 광덕고개를 지나는 서울 행 마지막 버스를 놓칠까 염려해서였습니다. 고개마루로 올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왼쪽 옛 길을 따라 광덕농원으로 내려갔습니다.


 

  17시 하오터널 바로 앞의 포장도로에서 하루 산행을 모두 끝내고 만이천원에 택시를 불러 사창리로 옮겼습니다. 인근 음식점을 들러 간단하게 뒤풀이를 한 후 저녁 6시 반에 동서울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차창 밖에 쏟아 붓는 빗줄기를 보고 태풍 나리를 몰고 온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산행 내내 심술부리지 않고 잘도 참아주어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지난 7월 태풍 애미를 동원해 고교동문들과의 방태산 산행을 힘들게 만들었던 포세이돈 신이 이번에는 모처럼 한북정맥 종주를 갓 시작한 저희들을 위해 태풍 나리의 진공을 하루만이라도 늦춰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군말 없이 들어주어 그동안의 구원이 아이스크림 녹듯이 사르르 녹아 없어졌습니다. 몇 번을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하오현까지 무사히 산행을 마친 김주홍/ 김경옥 부부, 산행 내내 온갖 립 서비스로 일행을 즐겁게 한 이규성 동문, 이로 인한 소음을 화음으로 변조해 끝까지 들어준 서중원 동문, 5년 선배들 틈바구니에서 비용관리를 깔끔히 해준 유한준 동문 모두에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하며 저는 뒤틀어진 2차 종주계획을 손보고자 합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