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북정맥 종주기

한북정맥 종주기12(샘내고개-울대고개)

시인마뇽 2007. 1. 3. 12:21
                                한북정맥 종주기12


                            
*정맥구간:샘내고개-작고개-호명산-챌봉-울대고개

                             *산행일자: 2004. 7 .18일 

                             *소재지   :경기양주/의정부

                             *산높이   :호명산420미터/한강봉465미터/챌봉516미터

                             *산행코스:샘내고개-창업굴-오산삼거리-작고개-호명산-작고개

                                             -한강봉-챌봉-항공무선표지소-천주교묘지-울대고개

                             *산행시간:8시25분-19시10분(10시간45분)

                             *동행       :나홀로

 

 

  제가 교직에 몸담고 있었던 1970년대에는 전국의 중 고등학생들이 매년 한번씩 체력장 검사를 치렀는데, 대부분의 여학생들과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남학생들이 “오래달리기”테스트에 가장 고전했습니다. 말이 오래달리기이지 실은 운동장 몇 바퀴를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로 점수를 매겼던 그 때 저는 도중에 포기하거나 걷지 않고 달려 가장 늦게 들어오는 학생에 “네가 1등이다”라고 격려를 해주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학생이 오래달리기 시합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달렸기 때문입니다. 어제 제가 그러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7-9시간사이에 종주를 마치는 샘내고개에서 울대고개까지의 구간을 저는 11시간 가까이 걸어 끝냈습니다. 몇 번이고 마루금을 벗어나 산행을 하다가 다시 이어 가느라 다른 분들보다 훨씬 오래 걸었기에 오래 걷기 시합이 있었다면 단연 제가 1등이었을 것입니다.


  종주산행은 마루금을 제대로 밟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그래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종주를 마쳐 남은 한북정맥의 구간도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함께 한 산행이었습니다.


  샘내고개에서 울대고개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아 아침부터 서둘렀습니다.

아침 8시 25분 샘내고개에서 창업굴 고개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 내내 내린 비로 산마루에 이르는 들머리 길이 물길로 변해 등산화가 금새 젖어 버렸습니다. 어제는 여느 때와 달리 인접한 불국산을 찾는 등산객들을 많이 만나 인사도 나누었고 길도 물었습니다. 이른 시간에 하산하는 두 아낙네 분들로부터 정불사 가는 길을 안내받은 대로 임도에 올라서서 두 번을 좌회전하여 정불사 신축공사장을 지났습니다.


  9시 34분 창업굴 고개에 내려섰습니다.

유격장으로 오르지 말고 부흥사로 돌아 올라가라는 부대장의 경고를 안내판에서 읽고 나니 고민이 됐습니다. 어제는 부대 정문 앞에 철조망도 걷혀 있었고 몇 명의 군인들이 서성대고 있어 선답자 분들처럼 철조망을 넘어 유격장안으로 들어가 불국산으로 오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자 부흥사로 내려갈까 아니면 적당한 때에 유격장안으로 몰래 들어가 오를 것 인가로 십 수분을 고심했습니다. 마침 군인들이 자리를 떠 보이지 않자 잽싸게 유격장 안으로 들어가 울타리에 바짝 붙어 산을 올라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밖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10시 정각 임꺽정바위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지점에서 하강훈련용 로프가 걸려 있는 널찍한 바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긴장을 풀었습니다. 오른 쪽 밑으로 흙탕물을 담고 있는 저수지와 왼쪽 위로  남동쪽으로 뻗어 있는 불국산 줄기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비에 젖은 바위 길을 조심스레 올라 다다른 임꺽정 봉 바로 밑의 지점에서 우측으로 틀어 로프를 붙잡고 암벽 길을 하강했습니다. 손잡이용으로 사이사이 매듭을 만들어 안전했지만 팔에 힘이 많이 가 하강을 끝내자 팔은 물론 어깨까지 뻐근했습니다.


  11시 갈림길에서 369 봉은 군부대에서 출입을 금한다하여 왼쪽으로 난 대교아파트 행 내리막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얼마고 내려가자  물소리가 드세게 들려 저 계곡을 건너게 되면 종주산행을 실패하는 것인데 하고 걱정을 했는데 그 걱정은 바로 현실화되어 오른 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건넜습니다.  군부대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냥  직진하여 369 봉으로 오른 후 왼 쪽으로 뻗은 능선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 데  갈림길에서 바로 대교아파트 길로 들어선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11시 48분 대교아파트 앞의 한 슈퍼에서 맥주 1캔을 사서 마신 후 오산삼거리로 옮겨 마루 금을 찾고자 파밭을 지나 무성한 숲을 헤치고 몇 차례 참호를 뛰어 넘어 산등성으로 올랐습니다. 어렵지 않게  마루 금을 다시 찾아올라 돌을 쌓아 올린 산성 안에 들었고, 그 곳에서 길을 잃어 30분 가까이 오르락내리락 방황을 했습니다. 좌우로, 아래위로 헤매다 간신히 길을 찾아 작고개로 전진하는 중, 13시 5분 송신탑을 조금 지난 곳에서 점심을 들며 길을 잃고 헤매느라 지친 몸을 달랬습니다.


  13시 28분 작고개에 도착하였습니다.

다른 분들은 3시간이면 되는 거리를 저는 창업굴고개와 산성에서 시간을 까먹어 무려 5시간이나 걸려 이곳에 다다랐습니다.  찻길을 건너 호명산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들머리에서 덤빌 듯이 짖어대는 개들에 신경이 쓰였지만  길이 잘 나있고 표지기도 곳곳에  걸려있어 천천히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14시 33분 송전탑을 지나 호명산 정상으로 보여지는 봉우리에서 짐을 풀고 복숭아를 꺼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내보인 태양이  나뭇잎 사이를 파고들어  햇살을 전해주었고, 시원한 산바람이 때 맞춰 불어주어 잠시나마 모처럼 편안한 쉼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정상은 따로 있었습니다. 14시 47분 정성들여 쌓아 올린 2기의 돌무더기가 이곳이 해발 420 미터의 호명산 정상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제 한강봉으로 옮길 차례라, 서둘러 하산하여 헬기장을 지나 복지리 포장도로에 내려섰습니다. 몇 채의 시멘트 폐건물들이 흩어져 있는 풀밭을 지나 한강봉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16시 5분 해발 465미터의 한강봉에 올라서기까지 힘든 산행을 했습니다. 샘내고개를 출발해 7시간 넘게 걷자 과체중이 산 오름을 방해해 영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쉼 쉼이  오름 길 양변의 둥글래 군락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며 가빠진 숨을 골랐는데도 여전히 힘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오를 봉은  챌봉인데, 챌봉까지 이렇다할 깊숙한 안부가 없어 능선을 타기가 좀 편했습니다. 16시 56분 해발 516 미터의 챌봉 정상에서 도봉산의 정경을 카메라에 실은 후 산행기를 정독했습니다. 산행기에는 왼쪽의 동쪽 길로 하산하라 하는데 그쪽으로는 풀숲만 무성할 뿐 전혀 길이 나있지 않아 별 수 없이  새로 난 듯한 큰길을 따라 하산한 것이 또 마루 금을 벗어나게 했습니다.


  17시 7분 챌봉을 지나 15 분여 하산하여  임도인지 군사도로인지 명확치 않은 넓은 길로 내려섰습니다. 주위의 산세들을 둘러보자 챌봉에서 왼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울대고개로 이어지는 정맥임을 직감했습니다.  얼마나 걸어 어디서 끝날 줄 모르는 큰 도로를 따라 부지런히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  쏜살같이 도로를 횡단하여 숲 속으로 들어간 토끼 한 마리의 호들갑에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고마운 길이 짐승들에게는 위험지대였든 가봅니다. 17시 43분 큰 길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안부에  올라서서  표식 기를 찾아내자 안심이 됐습니다만, 흐린 날씨가 다른 날보다 빨리 불러들인 어둠이 숲 속의 길에 그 나래를 펴기 시작하자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어둠으로 인한 공포가 몸 속에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두 다리에 모아 주어 정신없이 내달렸고, 몇 군데의 갈림길에서 제 대로 길을 들어서  알바를 하지 않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18시 8분 넓은 평원에 세워진 항공무선 표지소에  다다랐습니다.

무선표지소의 울타리를 따라 오른 쪽으로 바짝 붙어 풀숲을 헤치며 나아가 큰 규모의 깨끗한 건물을 보자 최악의 경우 어둠 때문에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나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울대고개를 향해 뛰었습니다. 왼쪽다리가 경색되기 시작해 산 오름에 불편했는데 간간이 손에 힘을 주어 주물렀더니 어느 정도 풀려 계속해 걸었습니다.  아주 빠르게 내려앉는  어둠만큼이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18시 48분 천주교 공동묘지에 다다라 묘지 안으로 내려섰습니다.

비록 마루금은 아니지만 숲 속 길로 들어서지 않고 묘지 길로 들어 선 것은 어둠 때문에 길을 잃거나 혹시 다칠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신자인 제가 천주교 묘지를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알지 못해 천주교 신자인 어머님과 그 미의 산소에  예수님과 그 어머니 마리아 상을 올려놓지 못해  부끄러웠습니다.


  19시 10분 울대고개에 도착, 11시간 가까운 어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멋모르고 시작한 한북정맥 종주가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최근 2-3회의 산행으로 정말 실감했습니다. 7월에 들어서자 풀숲이 무성해 종종 마루 금을 벗어나 헤매느라 진이 빠져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포장도로로 마루 금이 끊겨 다시 찾아 잇는 일이 산행보다 더욱 힘들고 신경이 쓰였습니다. 울대고개에서 파주의 장명산까지 남은 구간도 길 찾기가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어제는  한북정맥을 완주한 선답자 분들이 한없이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까지 한북정맥을 종주할 생각입니다. 그 동안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산행기를 올려 저 같은 초심자에 힘을 보태준 분들의 고마움에 답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계획한 일을 완수하여 저 자신이 보다 성숙한 삶을 살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어제 산행은 자괴감과 자신감이 함께 한 산행이었습니다.

아마 사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