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인권문제를 눈감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온 제가 한 가장의 탈북을 주제로 한 영화 "크로싱"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제 스스로에 부끄러운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같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흥행보증수표 설경구가 분한 “강철중:공공의 적 1-1”이나 안젤리나 졸리가 나오는 “원티드(Wanted)”를 마다하고 담담한 배우 차인표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크로싱”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한때 북한의 국가대표축구선수로 활약했던 한 가장이 결핵에 걸린 아내에 먹일 결핵약을 구하고자 중국에 건너갔다가 탈북자들을 기획 입국시키는 사람들의 꾐에 빠져 대한민국으로 들어옵니다. 새터민의 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한시도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잊지 못해 결핵약을 사 모으고 아내와 아들을 북에서 데려오려고 합니다. 아내가 병사해 하나 남은 아들을 북에서 구해내고자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중국에서 몽골로 탈출시켜 서울로 데려오는 기획탈출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주인공은 어린 아들을 맞고자 몽골로 떠납니다. 중국탈출에 성공한 아들은 끝내 몽골 수비대를 만나지 못하고 고원에서 지쳐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됩니다. 아들의 시신을 서울로 옮기는 아버지의 애끊는 아픔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영화는 끝이 납니다.
북한 주민들 생활상을 이 영화처럼 담담하게 묘사한 영화는 이제껏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일체의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이 감독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북한주민들이 가난하게 사는 모습이 저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엉뚱하게도 정감이 가기도 했습니다. 김일성/김정일 두 이름의 붉은 글자만 보이지 않았다면 1960년대 우리사회를 재현 것으로 착각할 뻔 했습니다. 소리 내어 비판하지 않고 주민들의 빈곤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관객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한 감독의 빼어난 솜씨가 이 영화를 지금까지 보아온 반공영화의 아류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주었다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는 반공영화가 아닙니다. 또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도 아닙니다. 다만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늘어난 탈북인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고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는 가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과정에서 오늘 날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입니다. 남한의 극우세력들이 기획입국의 병리적 단면도 같이 보여준 이 영화를 본다면 친북영화의 아류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이 영화는 이제껏 보아온 반공영화와는 한참 거리가 멉니다.
이 영화는 가족의 소중함을 소구하는 한편의 휴먼드라마입니다.
1997년 금융위기사태이후 사회의 양극화가 더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상당수의 중산층이 하류층으로 전락해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상류층과 저소득층의 중간에 위치해 한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어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온 중산층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가족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열심히 일해 가족들과 오순도순 단란하게 살아온 한 가장이 별안간 일자리를 잃고 서울역의 역사 등에서 기거하는 노숙자로 전락하면서 가정은 파탄 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는 안타까운 사례들을 언론보도를 통해 많이 접해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정말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았지만 온 가족이 힘을 합쳐 가정을 잘 지켜냈습니다. 없는 살림에 자식들을 공부시키려 허리가 휠 정도로 일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간혹 언성을 높여 다투시는 일은 있어도 요즘처럼 경제적 이유로 자식들을 고아원에 맡기거나 또 내버려두고 가출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크로싱” 영화를 보면서 어렸을 때 가슴에 품었던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내팽개칠 수 있는 것임이 아님도 보았습니다. 또 주인공인 아버지나 어린 아들이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합쳐 같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임도 알았습니다. 부인의 결핵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밀입국하는 남편의 아내사랑은 눈물겹도록 애절해 보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새터민으로 살면서 북에 사는 부인과 자식을 탈북시키고자 애쓰다가 부인이 병사한 사실을 알고 하느님이 진정 계시다면 왜 가난한 북한 주민을 도와주지 않나, 하느님도 돈 많은 사람들만 구원하는 가하고 절규하는 장면을 보고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중국 국경을 넘어 몽골국경수비대로 넘겨지기를 원하는 어린 아들이 남한의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엄마를 끝까지 지키지 못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모습은 가족이 무엇인가를 새삼 일깨워 준 명장면으로 남을 것입니다.
흥분하기 쉬운 쪽은 감독이 아니고 저처럼 나이든 관객일 듯싶습니다.
인민들을 기아선상에 몰아놓고도 탈북에 실패한 주민들에 혹독하게 대하는 것을 보노라면 저런 정권은 어서 빨리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반대하는 대사는 한 마디도 없었지만, 이들 부자가 북한주민에 끼친 악폐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보였습니다. 병들어 죽은 시체를 한 구석에 모아 덮어두는 비참함은 수 백 만 명이 굶어 죽은 북한 사회를 빼고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생각하자 저 나라를 저 꼴로 만든 이들 부자에 적개심이 일었습니다. 제가 대학4년 때인 1971년까지는 북한의 1인당 GNP가 남한보다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를 이들 두 부자가 60년 넘게 통치하면서 망쳐놓은 것입니다. 두 부자가 대를 이어 통치하는 동안 아사한 북한주민들이 백만 명이 훨씬 넘는다는데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영화의 스토리는 차분하게 전개되지만 자꾸만 눈물이 나고 무고한 백성들을 고통 받게 하는 북한의 두 부자를 철저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분노감이 치밀었습니다.
남한에 가있는 아버지를 만나고자 중국국경을 탈출해 망망대해와도 같은 몽골의 드넓은 모래사막을 크로싱(Crossing)하다 끝내 구출되지 못하고 쓰러져 죽는 어린 아들의 죽음을 외면한다면 한반도의 어른들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문제제기만으로도 영화는 제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는 생각입니다. 더 이상 아무 죄 없는 북한의 어린이들이 몽골고원을 크로싱하다 죽음을 당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발 벗고 나서 북한을 응징해야 합니다. 저들 두 부자가 백성들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정권이라면 그 정권은 하루빨리 무너져야 합니다. 죄 없는 북한 어린이가 크로싱해야 할 곳은 몽골고원이 아니고 바로 남과 북을 통 털은 한반도가 되어야 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자리를 지킨 관객이 저를 포함해 3명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이렇게 스러져서는 안 되는 데 하면서 영화를 만든 분들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008. 7. 1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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