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로드(Heaven Road)
2009. 3. 1일
길이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을 이릅니다.
사람들을 위한 길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당연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길은 짐승들의 길이 아닌 사람들의 길입니다. 수도 서울에 사자로나 호랑이로는 없으면서 을지로나 충무로가 있는 것은 모든 길은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길이 여기저기 많이 나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그들이 발붙이고 사는 땅 위에 육로를 만들었고 이어서 물에다 길을 내어 삶의 지평을 넓힌 후 이에 만족치 않고 하늘에도 길을 내어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인도와 차들이 다니는 차도는 물론 기차들이 다니는 철로 등의 육로는 대부분 땅 위에 나있지만 더러는 지하에다 또는 고가로 만들기도 해 한반도를 종횡하는 길만도 수 백 개가 넘을 것입니다. 물위의 길이야 원래 강 길과 바닷길이 전부였습니다만 사람들의 욕심이 땅을 파고 수로를 내어 운하를 추가했고 잠수함이 다닐 수 있도록 물 속에도 길을 냈습니다. 하늘 길을 날아다니는 것도 비행기만이 아닙니다. 일정 높이로 떠서 지구 상공을 선회하는 인공위성이 있고 아예 지구를 탈출해 다른 별로 날아가는 우주선도 있습니다. 바닷길과 하늘 길을 통틀어 항로라고 부르는데 이 길 또한 등대를 세우고 우주정거장을 설치해야할 만큼 복잡해졌습니다.
무릇 길이란 인류문명을 실어 나르는 역사적 통로입니다.
인류문명사의 대표적인 통로는 아마도 실크로드(Silk Road)일 것입니다. 독일의 지리학자 리이트 호펜이 처음으로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트란스옥시아나 지역과 서부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실크로드로 불렀습니다. 이 교역로를 통해 주로 수출된 물품이 비단이어서 그렇게 불렀는데 그 후 실크로드는 계속 확장되어 이제는 전통적인 오아시스로(Oasis Road)외에 유라시아지역의 북방지대를 지나는 초원로(Step Road)와 지중해에서 홍해, 아라비아해, 인도양을 지나 중국남해에 이르는 남해로(Southern Sea Road)의 3대 통로로 분류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이신 한 분은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까지 이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가 한반도 남단에 자리한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을 통해 드러난 것은 실크로드를 통해 당나라에 전해진 후 다시 통일신라로 넘어왔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길이 실어 나른 것은 문명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도의 정신문화인 종교도 같이 실어 날랐는데 저는 이제껏 이 길을 헤븐 로드(Heaven Road)로 불러왔습니다. 저 나름대로 이 길을 헤븐 로드로 명명한 것은 우선은 신앙을 담고 있는 종교가 전파되는 정신문화의 이 길에 문명의 교역로인 실크로드에 대응할 만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서였고 또 하나는 이 길이 혹시나 천국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헤븐로드도 실크로드만큼 다양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믿는 불교가 먼저 헤븐로드를 냈을지는 몰라도 그 길이 아시아대륙을 벗어난 것은 그리스도교보다 한참 후의 일이고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스람교 또한 아시아와 일부 유럽 및 아프리카까지 그 길을 쉽게 넓혔으나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에는 20세기에 들어서야 어렵게 길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헤븐로드가 실크로드와 견줄만하게 넓어진 데는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교가 기여한 바 가장 클 것입니다.
신앙을 실어 나르는 헤븐로드 또한 순조롭게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작고한 샤뮤엘 헌팅턴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헤븐로드가 퍼져나가는 길에는 바로 문명 간에 충돌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중미의 잉카문명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승자에게는 헤븐로드가 자비의 길이었을지 모르지만 패자에게는 참으로 모질고 혹독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말이 좋아 헤븐로드이지 실상은 피를 불러온 블러드 로드(Blood Road)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헤븐로드는 로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렵사리 중국의 북경까지 이어진 헤븐로드가 한반도로 이어지기까지는 수많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로마에서 파견한 신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길을 내고자 천진암에 모여 천주학을 공부한 많은 분들이 길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조선조 조정에 의해 참형을 당했습니다. 로마에서 시작된 헤븐로드가 서울의 명동까지 이어진 것은 103인의 순교자를 내고나서였습니다.
저는 명동성당에서 땅위의 헤븐로드가 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비로소 보았습니다.
이 땅에 사랑과 고마움을 가르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신 것은 저 같은 카톨릭 신자들만의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주 저는 그 분의 영면을 애도하고자 명동성당을 다녀왔습니다. 월요일에 선종하셨는데 마지막 조문 날인 목요일에 다녀왔으니 좀 늦었습니다. 길바닥에서 세 네 시간을 기다려야 조문이 가능하다는 방송뉴스를 보고 몇 달 전 허리수술을 한 저로서는 장시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집 나서기가 머뭇거려졌습니다. 모니카라는 세례명을 갖고 계신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이를 눈치 채시고 어서 명동으로 가라고 재촉하셨고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천주교를 믿기 시작한 집사람 제노베파도 곁에서 어머니를 거들어 저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 산본 집을 나섰고 명동 전철역을 빠져나와 줄을 선 것은 저녁5시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이미 입관이 끝나서인지 제가 길에서 기다린 시간은 시간 반이 채 못 되었습니다.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선교의 길이 아니고 바로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천주교를 널리 전파하는 선교의 길이 아니었기에 승복을 입고 계신 스님들도 이 길에 서 계신 것입니다. 선종하시기 며칠 전에 꿈에서 추기경을 보셨다는 제 뒤의 한 아주머니도 카톨릭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조문행렬에 서있는 학생들도 노인들도 비를 막 뿌릴 것 같은 찌푸린 하늘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 길은 추기경께서 남기신 사랑과 고마움만이 충만한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사랑과 감사로 충만한 그 분들을 보고 이 길이야 말로 진정 헤븐로드가 틀림없음을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이 헤븐로드는 추기경이 잠시 머무시는 명동성당에서 끝나지 않고 추기경님을 따라 하늘나라로 이어짐도 새삼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헤븐로드는 천국으로 이어지는 하느님의 길입니다. 실크로드가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의 길이라면 헤븐로드는 궁극적으로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이 만드신 하느님의 길입니다. 그래서 실크로드는 살아생전 걷는 길이고 헤븐로드는 죽어서 지나는 길입니다. 실크로드는 사람의 길이기에 필요시 언제든지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헤븐로드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라 해도 하느님의 길이기에 하느님의 부름이 없이는 절대로 밟을 수 없는 길입니다. 순간의 지상에서 영원의 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이 헤븐로드이기에 이 길이 아무에게나 열려있지 않다는 것이 실크로드와 다른 점입니다.
이제껏 지질이도 못난 정치인들이 앞장서 조장해온 갈등과 반목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사랑과 감사로 채워질 것을 믿어도 좋은 것은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후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안구와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나선 분들이 엄청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헤븐로드는 향후 이분들에 열려질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껴가며 실크로드만을 열심히 걸어온 제가 이제 헤븐로드로 향하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닐 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 친구 김주홍 군이 한 카페에 올린 것을 퍼왔습니다.
매서운 추운 날씨, 눈오는 속에서도 이렇게 많은 추모객이 줄을 서고....
명동성당 오르는 길에 전시된 고 김수환추기경의 생전 사진들을 카메라에 담아 놓다......
나부끼는 조기....
명동성당입구에서 질서정연하게 분향순서를 기다리는 추모객들.....
요즈음 새로 단장하고 있는 "명동예술극장"이 개관식을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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