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낭소리”를 보고나서
며칠 전에 제가 살고 있는 산본의 한 영화관을 찾아 요즈음 화제작인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관람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 회자되는 화제작을 찾아 1년에 두서너 편 보는 것이 고작이기에 저는 이제껏 작품성은 뛰어나나 재미가 별로 없다는 독립영화를 우정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대개의 독립영화가 투자자의 도움 없이 만들어져 저예산 영화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제대로 담고 있겠지만 완성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굳이 독립영화를 골라 볼 뜻이 없었습니다. 독립영화로는 백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으기는 “워낭소리”가 처음이라며 매스컴에서 하도 극찬을 해 이번에는 안보고 그냥 넘어가기가 뭔가 찜찜했고 또 그동안 담쌓아왔던 독립영화를 이참에 한번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서 큰맘 먹고 영화관을 찾아갔습니다.
다음 회는 시간 반을 기다려야해 조금 전에 막 시작한 영화를 보러 영화관 안을 들어섰습니다.
화면이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굳이 제 자리를 찾지 않고 아무 자리에나 앉아도 좋을 만큼 빈자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이 밝아지자 그나마 자리를 지켰던 두 사람이 나가버려 저 혼자서 텅 빈 객석들을 지켜보아야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산본의 이 영화관에서는 “워낭소리”를 상영하지 않았는데 매스컴에서 하도 좋게 평해 뒤늦게 올린 것 같습니다. 아무리 평일오후 이른 시간이라지만 어렵게 걸은 이 영화를 저 혼자서 보기가 영 미안했습니다. 이렇게 객석이 텅텅 비었는데 어디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여 100만 관객을 돌파했을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썰렁하기는 스크린 안과 밖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할아버지, 할머니, 늙은 소와 경북 봉화의 산골 논밭만이 그 넓은 스크린을 꽉 채웠습니다. 좀 기다렸다가 편하게 집에서 보아도 좋을 것을 고집 쓰고 영화관을 찾는 것은 대형스크린의 시원함과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보며 때로는 박수치고 또 눈물도 같이 흘리며 위 필링(we-feeling)을 느껴보기 위해서인데 스크린의 안과 밖이 모두 썰렁해 마치 아무도 들지 않은 대중목욕탕에 혼자 들어가서 목욕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지 못했습니다. 독립영화가 여느 다른 영화들과 같지 않으리라 예상은 벌써 했지만 그래도 종합예술이기에 영화 특유의 장대함과 화사함을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그런 것들은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어 일반 극영화와 달라도 크게 다름을 실감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왜 소의 목에다 워낭을 다는지 알지 못합니다.
짐작해보건대 소도둑을 막기 위해서가 첫 번째 이유일 것 같고 다음으로는 덤벼드는 파리 등 귀찮게 구는 날 것들을 쫓기 위해서가 아닌 가 싶습니다만 어려서 소를 내매고 들이 맬 때도 어른들에 한 번도 여쭤보지 않아 그 이유를 정말 모릅니다. 처음에는 “워낭소리”가 “워, 워”하고 소를 모는 소리로 잘못 알았다가 사전을 찾아보고 그 뜻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워낭이 뭔지 모르는 제가 워낭소리를 제대로 기억해낼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선뜻 워낭소리가 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워낭소리보다는 음매하고 우는 소리가 더 친근하게 들립니다.
경북 봉화의 촌로 한분(81세의 최원균 옹)과 이 분과 애환을 같이하는 늙은 소 한 마리, 그리고 할아버지와 늙은 소 모두에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입니다. 배우를 따로 쓰지 않고 실제인물을 등장시켜 현장감이 생생하다는 것 외에도 극영화로 만들지 않고 다큐멘타리 형태(?)로 만들어 참으로 담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소와 더불어 농사를 지며 사는 촌로 한 분이 끔찍이도 소를 위해 당신 논밭에는 농약도 쓰지 않고 고생스럽게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만 소를 내다팔고 여생을 편히 지내시라는 자식들 및 주위의 성화에 못 이겨 우시장으로 소를 끌고 가나 팔릴 수 없는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불러 집으로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결국 천수를 다하고 죽은 소를 땅 속에 묻어주며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스토리의 전부입니다. 주인공인 할아버지가 소를 닮아 워낙 말수가 적고 보니 자칫 단조롭겠다 싶은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한시도 쉬지 않고 중얼대는 할머니와 감독이 몇 년을 지켜보며 카메라로 잡아낸 섬세한 소의 표정, 그리고 생생한 시골 풍경이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어른들이 소를 기르는 것을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소를 부려 써레질을 한다든지 밭을 간다든지 하는 농사일은 못했어도 풀밭에다 소를 내매고 저녁이면 소 양간에 들이 매는 일은 곧잘 했습니다. 들에 나가 꼴을 베어 오기도 했고 여물을 쑤는 일은 의례 제 몫이었습니다. 쇠 빗으로 등을 긁어줄 때 시원해하는 소의 편안한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이 소들을 팔아서 제 학비를 댔으니 제가 소에 해준 이상으로 소의 덕을 단단히 본 셈입니다. 옛날에 시골에서는 소는 더 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긴요한 일꾼인데다 나중에 내다 팔면 큰돈이 되어 영화 속의 노인처럼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소를 기르는 농부들은 모두 다 자기소를 애지중지 돌보았습니다. 때때로 개들은 굶겼어도 쇠죽은 떨어뜨린 기억이 없습니다. 사람도 아껴먹는 콩을 넣어 쇠죽을 끓여주는 농심은 경북봉화뿐만 아니라 제고향인 경기파주에서도 같았습니다. 한 여름 복중에 동리사람들이 모여서 개를 잡아 보신탕을 해먹는 것은 자주 보았어도 소를 잡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소는 그저 그런 동물이 아니고 우공(牛公)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1970년대 즈음에 만들어졌다면 그리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때라면 영화 속의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경북 봉화 말고도 전국 도처에 계셨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 때라면 농사짓기 힘들어서 소를 팔자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라면 소 값이 폭락했다고 더 이상 못 기르겠다며 소를 몰고 올라와 과천종합청사 앞에서 극렬하게 시위를 한 후 몰고 온 소들을 길바닥에 내버리고 돌아가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새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조국근대화로 소가 제 할 일을 잃었습니다. 트랙터가 소가 하는 일을 대신해 사람으로 말하면 실업자가 된 셈입니다. 우리 소들이 그동안 잘 해온 일꾼의 역할을 뺏기지 않았다면 값이 좀 떨어졌다고 그처럼 내버려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일소로서 사용가치는 사라지고 고기와 우유라는 교환가치만 남아 조금이라도 값이 떨어지면 그 난리를 펴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는 소에 더 이상 사람대접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감흥을 일으키는 것은 벌써 사라진 일꾼의 역할을 영화 속의 소가 해내고 있고 그래서 사람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워낭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비육우나 젖소들에는 워낭을 달아주지 않습니다. 3년 전 금북정맥 종주 차 성환목장을 지났을 때 만나 본 한우들은 워낭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시골 형님 댁의 젖소에도 워낭이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워낭은 일소들만이 차고 있는 명찰이었습니다. 논을 썰면서 밭을 갈면서 고개를 둘레둘레 흔들 때 마다 내는 워낭소리는 내가 바로 일소임을 널리 알리는 나팔소리였습니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워낭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트랙터의 굉음이 그 소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땅속에 소를 묻을 때 워낭도 같이 묻은 것은 이 땅에서 일소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와 함께 우공(牛公)은 갔습니다. 이 땅에서 국적불문의 비육우와 젖소들이 교환가치가 극대화되도록 사육되고 있을 뿐입니다. 일꾼인 우공은 가고 놀고먹는 개들이 견공(犬公)으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이제는 더 이상 워낭이 소리 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워낭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땅에 실업대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에서 워낭들을 떼어내야 하나 생각하자 모처럼 수준높은 독립영화를 보고서도 뒷맛이 그리 개운하지 못했습니다.
2009. 3. 15일 산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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