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여정”의 첫 단계를 마치며
얼마 전 저는 천주교수원교구에서 실시하는 “여정”성경공부 신약루카복음/사도행전 과정을 잘 마쳤다며 신부님이 주시는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10시에 시작된 “여정”성경공부 신약루카복음/사도행전 과정의 첫 강의가 8월31일에 있었고 그 석 달 후인 11월30일 마지막 강의가 끝났습니다. 평일인 월요일 낮에 실시하는 이 과정에 생업을 제쳐두고 참여하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형제분은 한 명도 없고 20여명의 자매님들만 있어 처음에는 쑥스러웠습니다만 자매님들이 친절히 대해주어 이내 친숙해졌고 그 후 한 번도 빠지지 않아 개근상품까지 받았습니다.
제게는 선생님을 모시고 성경공부를 하기는 이번 과정이 처음이었습니다.
2000년 8월 과천성당에서 세례자요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 바로 성서읽기에 들어가 구약성서 및 신약성서 모두를 세 번 읽었습니다. 그 후 오늘까지 풀톤 J. 쉰이 지은 “그리스도 생애”등 모두 23권의 가톨릭 종교서를 읽었고 그중 몇 권은 가슴에 와 닿기도 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꽤 많았습니다. 혼자서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이 분명 한계가 있음을 통감하고 성당에서 실시하는 성경공부를 함께 하고자 했는데 그동안 기회가 닿지 않아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수료증을 받고나서 여정과정을 참여하기 참 잘했다 생각한 것은 혼자서 책을 보고 공부할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안개처럼 희미하고 답답한 부분들이 선생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시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톨릭에 입교한 것은 2000년 8월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 저는 아무런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무신론자로 자처해왔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기까지 제 주변에 이렇다 할 신자들이 없어 종교문제로 고심해본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한 친구가 가톨릭 입교를 권해 왔고 회사생활을 할 때는 바로 위 상사 한 분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함께 교회에 나가보자고 여러 번 권유했습니다. 당시 제가 종교를 갖지 않은 것은 신을 믿는다는 것이 휴머니즘에 상당 부분 배치된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중학교 선생인 집사람을 대신해 손자 둘을 키우느라 저희 집에 함께 계셨던 어머니를 1983년에 용인성당으로 모시고 간 것은 제가 종교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서가 아니고 나이 드신 어머니를 어느 한 종교의 맹신도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서였기에 당연히 그 때도 저는 어머니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당으로 모시고 간 어머니는 누구보다 다양한 종교를 두루 섭렵한 분이십니다.
31세에 마지막으로 저를 낳으신 어머니는 시집살이가 힘들어 일찍부터 심신의 위로를 받기 위해 종교를 찾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흔한 교회가 동네에 들어서기 전에는 어머니가 의지하신 것은 당연 접근이 용이한 샤머니즘이었습니다. 외지에서 들어온 박수 한 분이 저희 동네에 자리를 잡은 후로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동네 아낙들 거의 다가 집안에 누가 아파 눕게 되면 이 박수를 먼저 찾았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장수를 위해 박수 집에 제 이름의 명다리를 걸어놓아 저를 당혹하게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샤머니즘을 믿으면서도 사월초파일이면 가까운 절을 찾아 부처님께 가내무운과 식구들의 무병장수를 비는 것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가까운 동네에 교회가 들어서고 그 교회의 목사와 권사들로부터 입교권유를 받으신 어머니는 몇 년 후 그동안 믿어왔던 샤머니즘과 불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기 시작하셨습니다. 매사에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어머니가 기독교에 눈을 열고나서는 언제 샤머니즘을 믿었냐는 듯 열심히 기독교만 믿으셨습니다. 학교에 나가는 집사람이 임신을 한 후 어머니는 파주 본가에서 용인의 저희 집으로 옮겨와 집안일을 도맡아 해주셨습니다. 제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아주머니가 일본 불교의 한 지파인 일련법종 맹신자였는데 이분의 강력한 권유로 어머니는 다시 기독교를 버리고 이 종교를 믿기 시작하셨습니다. 조금 염려되기는 했지만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어머니이기에 조만간 집을 사서 이사를 가게 되면 자연 일본불교는 버릴 것이라 생각되어 그다지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 2년 후 이사를 갔고 그래서 어머니는 일련법종과의 인연을 끊으셨습니다. 공백기가 길어지자 이번에는 제가 호감을 갖지 못하는 어느 한 종교의 신자들이 어머니에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군 입대거부 등 그들의 교리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저는 어머니를 그들에 맡길 수가 없어 어머니가 믿을 만한 종교를 찾아 나섰습니다. 무신론자인 제게 가장 믿음이 간 종교가 가톨릭교이었던 것은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결혼을 안 하시고 오로지 사목활동에 전념해서였고 또 주위의 신자 분들의 선교활동도 그다지 집요하지 않아서였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천주교신자 댁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머니가 입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자 이분들은 쾌히 승낙하고 어머니를 천주교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교리공부를 마치시고 1983년 12월 크리스마스 날 모니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1989년 가을 세상을 뜨기까지 어머니는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천주교만을 독실하게 믿으셨습니다. 가족들에도 입교를 권유하셨습니다만 저의 반대로 손자들을 성당으로 데리고 가지 못하셨습니다. 임종을 몇 시간 앞둔 어머니가 저희 둘을 불러 놓고 “너희들이 천주교를 믿어야 이다음에 하늘나라에서 나를 만나볼 수 있으니 꼭 믿어야 한다”는 유언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집사람이 먼저 가톨릭신자가 됐습니다.
1990년 제노베파라는 세례명을 받은 집사람은 어머니 못지 않게 열심히 성당을 나갔습니다. 시어머니의 유언을 바로 따르는 집사람에 엄청 고마워하면서도 제가 같이 하지않고 무신론자로 남은 것은 우선 주말에 온전히 쉬고 싶었으며 또 대학 다닐 때 화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하느님의 천지창조가 믿어지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런데 10년 동안 열심히 성당에 나간 집사람을 주님께서 가까이 하시고자 저보다 먼저 부르셨습니다. 2년 반 동안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2000년 3월 주님 곁으로 떠나기 2주 전에 저는 집사람에 이제 저도 천주교에 나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제게 집사람에 안겨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했고 또 어머니가 일구신 가톨릭 신앙생활을 집사람을 끝으로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저는 52년간 견지해온 무신론을 과감히 버렸습니다. 집사람은 제가 성당에 나가 교리공부를 하는 것을 알고 눈을 감았으니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곁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해 8월 저는 세례자 요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3년 후 견진성사도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은 날 한 친구가 제게 축하의 선물로 준 것이 “가톨릭 주석성서 신약”이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욕심이 생겨 가톨릭주석성서 구약 2권을 마저 사서 읽었습니다만, 무슨 이야기인지 통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을 더 반복해 읽었습니다. 구약의 어떤 내용들은 성경에 실리지 말아야 했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들었으며 여전히 제게는 성경내용이 난해했습니다. 집사람이 남기고 간 가톨릭 서적들을 한 권도 빼트리지 않고 다 읽었어도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아 성경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숙제가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습니다. 산에 같이 다니는 한 친구로부터 사도바울의 사상과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엄청 그 친구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교육과정에 대한 정보부족과 게으름 때문에 그동안 성경공부에 과감하게 뛰어들지 못했습니다.
늦게나마 저는 배움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군포성당에서 매주 월요일 10시에 성경공부가 실시된다는 정보를 접하고 이 번에는 만사 제쳐놓고 신청해 8월30일 첫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번에 공부한 루카복음은 세례를 받을 때 필사를 한 것이어서 우선 친근했습니다. 강사 분은 자매 분으로 꼼꼼하고 열성적이어서 저 또한 꾀를 부릴 수 없었습니다. 강의가 거듭되면서 비로소 제가 혼자 성경을 공부한 것이 얼마나 잘못 됐나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공부를 하는 저의 자세였습니다. 이제껏 제가 성경공부를 한 것은 믿음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고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었다는 잘못을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부해야 할 것을 이 내용은 잘 못 된 것이 아니냐며 따지듯이 공부해왔던 것이 근본적인 잘못이었습니다. 강사분이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이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고 저는 놀랐습니다. 제가 무늬만 교회가 아니고 진실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든 것만으로도 저는 이번 과정을 참여한 보람이 충분한 것입니다. 수료증을 받고 나서 그 사흘 후 수원의 정자동주교좌 성당에서 김건태(루카) 신부님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그대로 되었다(창세기1,9장)”라는 제목의 창세기 특강을 들으면서 믿음이 쌓여감을 느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학교문턱을 한 번도 넘지 못한 분이면서도 혼자서 독학해 한글은 깨우치셨지만 아라비아 숫자는 모르셨습니다. 최근 책 정리를 하다가 어머니가 갖고 다니신 성가 책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어머니는 성가의 번호를 아리바아 숫자 옆에 전부 한글로 써 넣으신 것을 보고 어머니께 미쳐 숫자를 가르쳐드리지 못한 제가 불효자였음을 뒤늦게 느꼈으며 한편 신실하신 어머님의 주님에 대한 크나 큰 믿음도 같이 느꼈습니다. 어머니가 성서공부를 하셨다면 지식을 쌓기 위해 하신 것이 아니고 믿음을 돈독히 하고자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집사람도 그리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집사람이 주님의 뜻을 받들어 저를 성경공부 과정으로 이끄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신약과 구약 전 과정을 마치려면 6년이 걸린다 합니다. 나머지 과정도 같이 이끌어 주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성서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천주교에 귀의케 한 어머니와 집사람에도 고마움을 올립니다. 남은 과정도 열심히 공부할 터이니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정자동 주교좌성당 전경>
* 2010. 7. 6일 촬영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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