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이성
미국산 소고기 수입조치에 따른 여러 문제들은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진단과 처방을 유수언론에 수없이 많이 올려놓아 새삼 내가 보탤 일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간 특히 TV 등 전파매체를 뒤덮은 뉴스와 해설 그리고 토론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기에 누가 무슨 이유로든 다시 새로운 의견을 더한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지겹고 또 지겨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광우병발생을 우려해 30개월 이상 나이를 먹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해오다가 한미FTA조약의 성공적 비준을 위해 미국이 강력히 요청해온 수입재개를 들어준 것이 두 달여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을 뜨겁게 달군 미국산소고기수입반대 시위의 주원인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일반국민들이 이러한 판단을 하는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은 MBC TV의 PD수첩이었다. 재야반정부세력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물론 주부들까지 이 반대데모에 참여했다는 것은 정부의 수입조치에 분노한 국민들이 어느 특정 계층이 아니고 아주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기야 PD수첩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가 나서서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엄청 높은 소를 수입한 다는데 반대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내가 이제껏 미국산 소고기반대데모는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고 광기어린 짓이라고 단정해서 이야기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나보다 더 열심히 사회생활을 해왔고 지식과 덕망이 더 높은 친지들도 수입반대를 외쳤기 때문이다. 남들 다하는 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미쳤다고 몰아붙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광화문에 나가 반데데모에 나선 한 친구는 수도권 유수대학의 중견 교수이고 또 한 후배도 국책 연구소의 교수로 일하고 있는 건전한 시민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광우병을 이유로 더 이상 미국산소고기수입을 반대하는 것은 미친 짓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껏 미국에 사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 것이다. 이 명확한 사실을 무시하고 말도 안 되는 사례들을 참인 양 내세워 전 국민을 광우병공포에 몰아넣은 것은 분명 숨겨진 의도가 따로 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일반 시청자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전파매체들이 무슨 이유로 광기어린 반대데모를 주도하다시피 하는 지 그 속뜻을 알 수 없지만 올 들어 바뀐 정치환경에 위협을 느껴 그를 타파하고자 욕심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군중들이 반대데모에 나선 것인가?
단정적으로 말하건대 MBC TV가 PD수첩 프로그램을 통해 잘 못된 정보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또 이 정보가 잘못이라고 이 정부가 나서서 반박하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조치들이 적절하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인사에 실망한 많은 국민들이 현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양비론도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아닌 것은 분명히 아니라 하고, 그럴 자신이 없으면 침묵해야 하는데 반대데모에 나선 이들에는 폭력만 나무라고 정부에는 재협상을 촉구하는 것이 정답인양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거들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사회로부터 대접을 받는 것은 일반 국민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더 많이 알고 있어 그들이 더 올바른 판단을 하리라는 기대 때문인데 광우병이 걸리느냐 아니냐의 사실판단에는 눈감은 채 그동안 정부에서 해온 못마땅한 일들을 들어 나무라기만 하는 그들을 더 이상 지식인이라 부를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이 이토록 명확한데도 왜 수많은 군중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반대시위를 계속해왔는가? 거짓말의 진화 때문이다. PD수첩의 선동적 내용을 보고 분개해 광화문에 모여든 많은 시민들이 나중에 미국교포들의 호소문을 보았을 터인데 왜 반대시위를 멈추지 않았는가? 이미 미국소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생각을 갖고 광화문에 나가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한 목소리로 미친 소 수입반대를 외치는데 무슨 수로 생각이 신념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자기정당화를 통해 인지부조화를 극복해나가면 이 과정에서 애당초 잘못된 생각도 차츰 신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일단 신념으로 진화하면 반대정보가 아무리 과학적이라 해도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조작된 정보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신념을 더욱 강화시키게 된다. 군중들이 모여 집단적 광기에 빠지는 것은 이들의 생각이 신념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화는 자기정당화를 꾀하게 되어 거짓말을 진화시킨다. 나치즘의 광기가 가능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 신념으로 굳어지고 자기정당화과정을 거쳐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말 잘 못한 것은 선량한 시민들이 잘못된 정보에 흥분해 잘못 생각한 것을 그게 아니라고 재빨리 고쳐주어야 했었는데 그리 하지 못해 엄청난 국력낭비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소위 대책위사람들은 거짓말의 진화논리를 잘 알고 있기에 재빨리 신념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이 방면에 전문가여서 속전속결로 몰아가는데 정부 관리들은 대응책을 내놓는데 마냥 굼떠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거짓말이 아무리 진화하더라도 영원히 참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또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링컨 대통령은 “한 사람은 영원히 속일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은 잠시 속일 수 있어도 수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미국산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거짓말이 세계13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의 국민들을 잠시는 속일 수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미국산소고기는 앞으로 싼 가격에 품질이 좋아 더 많이 팔릴 것이다. 이 점은 대책위의 핵심세력들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입소고기의 유통을 극렬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속셈이 소고기수입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어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는 것을 광화문통 사람들이 알아채기 시작한 징조는 여기저기에서 엿보이고 있다. 광기를 거침없이 토해낸 전파매체들이 목소리를 조금은 낮춘 것도 그렇고, 시청 앞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도 급격하게 줄어든 것도 그러한 징조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대책위 사람들은 소고기수입반대만으로 더 이상 반대시위를 끌어갈 수 없다고 판단해 다른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번 사건이 이 사회에 드리운 암영은 무엇인가?
반지성이 광기를 부리는 동안 지성이 전혀 제 기능을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일로 이 사회를 끌고 가는 몇 몇 지도층 그룹에 심히 유감을 갖게 되었다. 우선 정치인들이이다. “국민이 잘 못했다 하면 무조건 잘못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은 정치를 포기한 것이기에 하루 빨리 정치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국리민복을 위해 잘 하는 일이라면 국민이 잘 못했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고 밀고나가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이다. 박대통령이 그리했고 대처수상도 그리했다. 국민들 눈치나 보면서 국민을 위하는 척하는 정치인이라면 일찌감치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 백번 낫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지적한대로 정치는 최고의 선이기 때문이다. 때 만났다고 신이 나서 정부 때리기에 나선 여당도, 광우병과 무관함을 잘 알고 있으면서 광화문을 기웃거리는 야당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수들에 대한 존경심은 이번 사건으로 확실히 접었다. 그들의 시국선언이 유효한 것은 군사정부까지였다. 그리도 자신 있게 수입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 떼 지어 선언할 것이 아니라 혼자 나서도 될 일 아닌가? 일부 변호사와 종교인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미국산 소고기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분명한 과학적사실에 눈감고 정부 때리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 사회의 지도자인척 하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지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내 얘기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일본의 지성을 대표하는 오마에겐이치의 “부의 위기(2006년 간)”를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광우병 관련해 일본이 미국산 쇠고기 일부를 금수조치한데 대해 일본정부를 어떻게 비판했는가를 살펴보기 바란다. 대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광기와 증오가 번득이는 세력들이 벌이는 마당놀이를 그만 멈추라고 막아서지는 못할 지라도 뒤에 앉아서 추임새나 넣어서는 안 된다. 주님을 대신해 어린 양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신부님들이 선거에 의해 선출된 세속의 대통령에 나가라고 세속적인 구호를 외치고 싶다면 먼저 신부복을 벗어던지고 속인으로 돌아와야 한다. 과학과 상식이 광기와 분노에 밀려 표류할 때 반지성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지도층그룹이 건재 하는 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는 정말 요원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광기를 내쫓고 과학과 이성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들끓는 국민감정보다 과학적 사실이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소수 선동세력들이 거짓말의 진화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다수 국민들을 선동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언론이 공평무사하게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국회가 걸러야 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을 오도하고 법질서를 파괴하는 사이비언론과 사이비정치인들을 솎아내는 일도 병행되어야 한다. 소가 미치는 것보다 사람들이 미쳐 날뛸 때 이 사회를 풍미하는 광기가 더욱 무서운 것이기에 하루 빨리 이 사회가 과학과 이성에 의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석유가 급등으로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이때에 미국산소고기 수입 건은 국가아젠다가 될 만한 것도 아니었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6자회담 및 서민생활 안정화 대책 등 이보다 훨씬 중요한 아젠다가 수두룩한데 대통령을 포함하여 온 국민들이 이 문제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넌센스요 심각한 국력낭비이다. 이 모두가 광기가 이성을 내쫓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광기가 지배하는 사회는 누가 뭐라 해도 병든 사회이지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다시금 광기가 이 사회를 난타하는 일이 없도록 이제는 우리 모두 이성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2008. 7. 15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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