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수필습작

영화 "화려한 휴가" 를 보고 나서

시인마뇽 2007. 9. 14. 10:10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나서  


  참극의 현장인 광주에로의 출동이 “화려한 휴가”라니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습니다.

어느 누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자행된 군부의 야만적 작전을 화려한 휴가로 명명했는지 몰라도, 정권탈취에 여념이 없는 당시의 신군부 장성들이 그들의  정치적 야망을 채우고자 짜놓은 작전에 신성한 우리 국군을 동원한 것만으로도 국민들에 결코 씻지 못할 역사적 중죄를 짓는 것인데, 200여명 이상의 양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진압작전을 화려한 휴가로 명명했다는 것은 말장난을 넘어서 국민들을 심각하게 조롱하는 것으로 당시 신군부 실세들의 대국민 인식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1980년 광주시민이 겪었던 단장의 아픔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로는 요즈음 전국의 극장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가 처음인 듯싶습니다. 김상경, 안성기, 이요원등이 열연하는 이 영화는 당시 군부가 저지른 만인이 공노할 광주의 참상을  직접 보고 몸소 겪는 젊은 운전기사가 시민저항에 합류하여 목숨을 잃기까지 일어난 일들을 그린 영화로, 계엄군이 저항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붙잡아 개 패듯이 몽둥이질을 하고 애국가를 부르며 전남도청을 사수하는 시민들에 애국가도 채 마치기 전에 총격을 가해 진압작전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극장안의 많은 관객들이 울분을 참지 못해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왔습니다. 이미 광주참상을 훤히 알고 있는 나이든 분들은 물론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참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한 젊은이들도 더러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칫 관객들을 흥분과 분노로 몰아가는 나머지 광주 혁명의 역사적 교훈을 왜곡시킬 염려가 다분한 휘발성소재를 비교적 차분하게 다룬 감독의 애씀이 돋보였고  국민배우 안성기의 차분한 연기가 이 영화에 무게를 더해주었습니다. 불과 27년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땅에서 어떻게 저런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쉽게 이해되지 않겠지만 21세기에 들어서도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수 백 만 명의 인민들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도록 방치하는 반문명적 집권세력이 한반도에 북단에 지금도 상존하고 있으며 국민들이 항상 깨어 있지 못한다면 광주의 참극은 형태를 달리하며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5.18 광주혁명은 이미 끝난 완료형이 아니고 계속되어야 할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 전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간호원으로 분한 이요원이 존경하는 아버지인 전직 장성 안성기와 사랑하는 아버지회사의 택시기사 김상경을 모두 잃고 차에 올라 시내를 돌며 광주시민들에 오늘의 이 사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다 함께 일어나 저항하라고 혼자서 절규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이 영화의 주 메시지는 “잊지 말자, 5.18 혁명정신”으로 요약됩니다. 5.18혁명 정신은 어떠한 것이든 광주시민들 가슴 속에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되고 우리가 모두 지키고 계승해 나가야 하는 시대정신입니다.


  그렇다면 5.18 광주혁명정신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어떠한 반동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일어서는 저항의 정신과 탄압세력들도 용서하며 같이 살아가는 관용의 정신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가 저항의 정신을 함양하는데 기여하는 바가 크겠지만 관용의 정신을 일깨우는 데는 조금은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광주참상을 지켜본 신부께서 계엄군과 시민군의 협상을 도와주기보다 쉽게 총을 드는 장면은 사실과도 다른 듯하고 화해와 관용을 저버린 비종교적인 행위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알게 모르게 당시 군부에 대한 증오가 계엄군으로 옮겨지고 더나가 국군 전체로 향해진다면 이는 큰일입니다. “화려한 휴가”를 떠난 계엄군 사병들의 고뇌하는 모습이 한 장면도 보이지 않고 마구 패고 죽이는 군인으로만 묘사되어 걱정되는 일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9월 무등산을 오르내리고 나서 저는 아래와 같이 산행기를 남겼습니다.

    

  “바늘로 기은 자국이 전혀 없어 보이는 깔끔한 무등산도 스물여섯 해 전 봄에 아랫마을 빛고을에서 빛을 앗아간 이 고을의 수난사를 지켜보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문명의 20세기가 이 땅에서 겪은 마지막 반문명적인 권력의 폭거로 이 고을의 어머니들 가슴속이 새 까맣게 타들어가 숯덩이로 변했어도 전혀 손을 쓸 수 없었던 무등산이 그동안 심하게 자책해온 것은 빛고을의 진산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속으로는 분노하면서 겉으로 아무 것도 못 보았다는 듯이 빛고을의 고통을 외면해왔기에 아직도 이 고을을 지날 때면 마음 한 구석에 부채 의식이 자리 잡고 있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빛고을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그들의 한을 예술로 승화시켜주는 무등산을 찾았습니다.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해서 서석산으로 불린 이 산을 무등산으로 다시 부른다는 옛 이야기가 하나도 그르지 않아 이 산이  전북의 장수의 영취산과 전남 담양의 백운산을 잇는 길고 긴 정맥의  한 가운데에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이룬데다 그 넓은 오지랖으로 광주와 화순 그리고 담양을 모두 어우르고 있어 이 지역의 모산으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꼬막재에서 장불재까지 거의 같은 높이로 등고선을 그어가며 산허리를 에돌아가기에 등급뿐만 아니라 등고선도 필요 없는 이름 그대로의 무등산이 빛고을의 한을 비엔날레의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없음의 비움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고을에서 빛을 앗아간 당시 군부 실세들의 권력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신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도 아무에게서나 빛을 뺏어갈 권력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권력을 잃었으며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에 화해의 손을 내밀고 관용을 베푼 것은 빛고을 사람들의 몫이었고 이들은 베풀고 해냈습니다. 뼈 속까지 사무치는 한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채 역사의 죄인들을 용서하고 같이하는 빛고을 사람들에 저 같은 보통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빛고을의 한을 비엔날레의 예술로 승화시킨 이들은 위대했고 5.18 혁명정신을 가장 잘 이 시대에 구현한 것입니다. 이들인들 어찌 분함이 없겠습니까? 이들인들 어찌 증오가 없었겠습니까? 이들은 미쳐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뒤이어 정치권력을 잡은 또 한사람의 가해자가 선거로 집권했다는 것만으로 면책을 받은 양 무슨 화해위원회를 만들어 설치는 것을 보고 어찌 배알이 뒤틀리지 않았겠습니까? 영화 “밀양”의 원작인 이청준 선생의 “벌레이야기”가 이러한 빛고을 사람들의 감정을 잘 표현한 소설이라 합니다.


  이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과연 이 영화가 화해와 관용의 정신을 잘 그려냈는지는 쉽게 판단되지 않았습니다. 모처럼 광주참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이 영화가 그런 정신들을 담아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당시의 참혹했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런 영화들이 몇 편 더 만들어져 상영된 다음에는 화해와 관용을 주테마로 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런 종류의 영화는 벌써 만들어져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미 민주세력이 집권했기에 광주참극을 소재로 한 영화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이미 조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상영을 기다렸다는 듯이 영화관으로 달려가는 잠룡들의 행보를 보고 적지 아니 실망했습니다. 이제껏 나서서 한 것이라고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내편 네 편을 갈라놓은 것이 거의 전부인 그네들이 오는 12월 대선에 도움이 될까 해서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고 영화 한 편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저들에 연민의 정이 갔습니다.


  빛고을 광주에서 빛을 되찾은 즈음에는 우리의 장병들이 화려한 휴가를 떠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찾아뵈어도 좋고 떨어져 있던 연인과 사랑나들이를 나서도 좋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곳으로 떠나는 장병들의 휴가는 언제나 화려한 것입니다. 당신들의 선배들이 “화려한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겪어야 했던 갈등은 다시 재현되어서는 안 되고 또 그럴 리도 없을 것입니다. 화려한 휴가가 잘못된 작전의 고유명사가  아니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그대로 우리 장병들의 휴가인 보통명사로 다시 자리매김해야, 대한민국이 살만한 나라이고 왜곡된 우리의 말과 글도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07년 8월 23일


  • 댓글(2)
  • 무심
  • 2007.08.28 03:4
  • 나도 그 영화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당시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느끼지 못 했었지요.   나중에 귀국하여 현장을 겪은 사람들이 쓴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실상을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었읍니다.   이번에 영화로 보니 더 실감이 납니다.   그렇지만, 영화는 현실보다 매우 절제하였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책에서는 분명히 계엄군이 대검을 사용했는데, 영화에서는 대검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오마이뉴스 기자가 물었습니다.   "전두환을 사면한 행위에 대하여 한번이라도 후회하신 적이 있나요?"   전두환은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사면을 해 주었다는 사실을 그 때에 알았습니다.   이러한 난처한 질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사면을 해 주었다는 것을 그가 가진 종교의 힘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광주를 잊지 말자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세대가 흘러가고, 세월이 흘러가면 모든 것이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것은,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 시인마뇽
  • 2007.08.30 15:55
  • 저항과 관용의 정신이 광주혁명의 핵심이라면 언제고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부끄러운 역사나마 다시한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의미있었습니다. 올해는 밀양을 포함해 2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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