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내방 소감
거인이 다녀간다.
누군가는 샘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다는 거인이다. 코가 크고 키가 크고 영어만을 항상 쓰고 있는 미국인이다. 그 거인을 환영하고자 180만여 명의 인파가 서울의 거리를 메웠다고 한다. 그가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돈 많고 힘세고 그래서 남보라는 듯이 사는 나라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왔으면 왔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할 만큼 무관심해질 수만도 없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오는 것부터가 정치의 일환이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정치의 최고의 표현인데 정치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우리 국민이 무슨 수로 거인의 내방에 시큰둥하고 지낼 수 있겠는가? 돌이아범인들 무슨 도리가 잇겠는가? 우리도 잘사는 날 그때 가서 “유아 웰컴”이라는 제의는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잘사는 날을 맞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유아 웰컴”을 가불해야 한다.
말인즉, 그 미국대통령을 만난다손 치더라도 군인나간 돌이녀석이 휴가 온 것만큼 반갑겠냐만 서도 서울인구의 1/3이 그만큼 반갑다는 최대의 성의를 표했다. 그가 오는 것이 현 정권의 지지 표시라는 이유로 한국방문을 만류한 사람도 그의 방문이 우리의 안보를 다진다는데 이의를 달지 않으니 돌이아범인들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움직일 수 없는 비극이다. 늘상 한 핏줄을 자랑하면서도 맞붙어 싸워야하는 숙명의 비극이다. 땅굴까지 파면서 기어 내려와 야욕을 채운들 속 시원한 일이 뭐 있겠다고 그리 극성인지 모르겠다. 그 자들이 극성이니 우리인들 극성을 아니 부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 정부의 형식논리다. 옳은 이야기다. 논리로서는 백번 옳다. 힘은 힘으로 싸워야하고 머리는 머리로써 대결해야 한다. 훌륭한 논리다. 그래서 다른 논리를 용서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특정논리만이 논리로서 군림할 때 모든 것이 경색되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싫다는 것이 요즈음 정부가 귀찮아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경색을 피하고도 극성의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극성의 목적은 반공에 잇다. 반공은 문자 그대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다. 공산주의를 반대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돌이애비도 혀를 찰 기막힌 논리다.
결국 훌륭한 논리와 기막힌 논리의 대립이다. 그 거인이 이 논리들의 대립을 조정할 것을, 변증법적인 발전을 보아 합의 논리로 이끌어 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글쎄, 그가 이런 힘겨운 일을 맡겠다고 나설까하는 의심스러운 눈치도 있다. 샘아저씨는 그럴게다. “나는 너희 조카들에게 논리학을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다. 쵸코렛을 주러왔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샘아저씨라 부를 것을 거부한다.
이제는 쵸코렛만을 빨고 있을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과자가 달콤하고 구미를 당기게 한다는 것도 안다. 대뇌에서 침샘만 분비된다면 나는 몇 년치를 몽땅 가불해서 침을 질질 흘릴게다. 그러나 나의 대뇌는 기특하리만치 참을성이 있다. 난국을 살아온 경험에 힘입어서다.
정리를 하자.
우선 극성을 부리자. 정부의 논리대로 그 무지막지한 자들을 때려눕히기 위해서는 극성을 부리자. 그 극성의 근거를 민주주의의 수호에 두자. 반정부인사의 주장대로 민주주의의 수호에 두자. 기막히리만치 반공이라는 목적에는 국민모두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잇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국민총화는 견고함에 틀림없다. 다만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유의 유보와 자유의 신장이 대립된 방법이다. 나는 후자를 택하고자 한다. 후자를 택한다는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나의 주장이다.
제랄드 포드의, 그 거인의 한국방문이 진정의미가 있게 하려면 자유와 인권의 난치의 병자들에 희망을 주어야 한다. 자유와 인권을 병으로 앓지 않을 때, 그 때 그 거인이 다시 찾아준다면 돌이아범인들 “부화 돋은 날 사돈 온다.”라고 뇌까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라고 어찌 반갑게 아니 맞이할 것인가?
( 1974. 11.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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