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명소 탐방기1(평화전망대)
*탐방일자:2008. 10. 12일(일)
*탐방지 :인천시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 제적봉 강화평화전망대
*동행 :쌍용제지 옛 직장동료등 8명
(서상원/신영희부부, 손병운/김태항부부, 이성현/정미경부부, 하철수, 우명길)
남북분단으로 관광명소가 된 몇 곳 중의 하나가 강화도 북쪽 끝머리에 자리한 강화평화전망대입니다. 이곳을 찾아 이름 그대로 평화를 조망할 수 있다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가 처한 정치적 현실입니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평화가 보일 때까지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평화전망대이기에 이 전망대에 올라 해야 할 일은 현존하는 평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평화를 진실 되게 염원하는 것입니다. 이 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헐벗은 산하의 북녘 땅을 바라보며 하루 빨리 질곡의 저 땅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고 돌아간다면 강화평화전망대는 제 역할을 다한 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동안 남북의 대치선인 휴전선에 세워진 전망대를 몇 곳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처음 찾은 강화평화전망대는 휴전선 서쪽 끝머리에 자리하고 있어 남한의 한강과 북한의 예성강이 황해로 흘러드는 하구들이 한눈에 조망되는 명소입니다. 여기 전망대보다 16년 먼저 세워진 오두산통일전망대는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교하(交河)가 바로 아래에 있어 드넓은 강이 한 눈에 조망되는 곳으로 고향 땅 파주에 위치해 그동안 몇 번을 들렀습니다. 휴전선 동쪽 끝머리의 세워진 고성통일전망대는 망망대해의 동해바다와 한반도 최고의 명산인 금강산을 같이 조망할 수 있는 명소로, 금강산관광길이 트이기 몇 해 전인 1998년 여름에 집사람과 함께 찾아본 곳이기도 합니다. 이 세 전망대에서 모두 철책 건너 지척의 북한 땅이 육안으로도 분명하게 보입니다만, 어디서도 통일도 평화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0월11일 토요일 오후 쌍용제지 직장동료들과 함께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부인을 대동한 세 친구와 혼자서 참가한 두 명을 포함해 일행이 모두 여덟 명이어서 승용차 두 대로 이동했습니다. 1980-90년대 함께 몸담았던 직장동료들 다섯이서 회사를 그만두고도 정기적인 만남을 10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계약의 장인 직장을 인연의 장으로 바꾸는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이는 손병운 전회장과 이성현 현회장의 각별한 애씀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두 해전 울릉도를 다녀온 후 2년 만에 다시 나선 나들이는 인근의 강화도에서 하루 묵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짜여 있어 모처럼 시간이 넉넉했습니다. 이제껏 몇 번을 건넜던 강화대교 대신 이번에는 남쪽 아래 초지대교로 서해바다를 건넜는데 영종도공항으로 이어지는 대교가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길상리 농협마트에서 시장을 본 후 길정저수지 가에 자리한 황토 집에다 짐을 풀고 준비해간 생선회로 배를 채웠습니다.
이어서 찾은 곳은 강화도 최고의 고찰인 전등사였습니다.
지난 3월 찾았을 때와는 딴 판으로 북새통을 이룬 것은 때 마침 8번째 삼랑성역사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어서였습니다. 요즈음의 문화축제는 거의다가 생태와 체험을 키워드(key word)로 하고 있습니다. 함평의 나비축제가 생태로 성공한 축제라면 보령의 머드축제는 체험프로그램으로 손님들을 불러 모으는데 성공했습니다. 여기 문화축제에도 각종 체험프로그램이 넘쳐났는데 장사 속의 프로그램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어느 누구고 강화도에 발을 들이면 단군신화를 만나게 되어 역사기행을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니산의 참성단과 전등사의 삼랑성이 바로 단군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단군의 세 아들 부소와 부우 그리고 부여가 쌓았다는 삼랑성을 통과해야 전등사와 정족산사고지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성곽을 잠시 돌다 내려선 곳이 성문 안이어서 다시 나갔다가 종해루(宗海樓)의 성문을 통과해 전등사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제가 삼랑성과 참성단을 신화라 이야기하는 것은 강화도에 단군이 거하셨다는 기록이 정사인 삼국사기나 야사인 삼국유사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족산사고지는 문이 닫혀 안에를 들어가 보지 못하고 울타리에 바짝 붙어 사진 몇 방만 찍었습니다. 문이 닫혔다고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저 같은 관광객들이고, 닫힌 문을 부수고 들어간 사람들은 프랑스의 군대였습니다. 나라문도 닫혔고 성문도 닫혔으며 사고지의 대문도 모두 잠겼는데 사고지 안의 역사적 자료들을 약탈당한 것은 자물쇠가 망가저서가 아니고 열쇠가 부실해서였습니다. 성능 좋은 자물쇠로 꼭꼭 잠가두는 것이 아니라 일본처럼 더 일찍 성능 좋은 열쇠로 나라 문을 활짝 열어놓았더라면, 그래서 다른 나라들과 국교를 정상화했었다면 병인양요 때 그래도 문화국가로 자부하는 프랑스의 군대가 감히 우리의 문화재인 외규장각을 약탈해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가을음악회가 열리는 전등사의 대웅전 앞은 저녁 6시에 시작되는 음악회를 기다리는 관중들로 만원이었습니다. 아무리 부처님의 귀가 크기로서니 음악회의 고성을 견뎌내실까 걱정도 됐지만, 성당에서 음악회를 열어도 이제껏 예수님의 고막이 상했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부처님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됐습니다. 문제는 현대의 대중음악이 듣는 사람에 따라 화음으로도 불협화음으로도 들리는데 혹시라도 이번 음악회가 불협화음으로 들린다 해도 중생들 좋으라고 하는 일이니 부처님께서도 많이 참으실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음악회를 포기하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즈음 전등사를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바깥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먹으며 인연을 쌓아간 것만으로는 성이 안차 길상리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화음경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정을 훨씬 넘어 숙소로 돌아가 저수지 수면을 밝히고 있는 별을 헤아렸습니다. 보름을 며칠 앞둔 달빛이 너무 밝아 하늘에서 쏟아지리라 기대했던 별무리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는데 빛은 강력한 달빛이 연약한 별빛을 잡아먹어 북극성을 맴도는 북두칠성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작년3월 금남정맥 종주 길에 진안의 산자락에서 맞았던 별빛세례를 이곳 섬 하늘에서 만나보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
10월12일 일요일 어둠을 밀어낸 여명이 아침을 열었고 이어서 뭇 생물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숙소가 동해바닷가라면 당연 일출을 맞고자 부산을 떨었을 텐데 여기 서해의 섬인 강화도는 일출을 볼 수 없어 아침시간이 조용했습니다. 찰랑대는 수면 위에서 반사되는 아침햇살과 실낱같이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청둥오리를 불러들여 함께 노니는 정경이 참으로 평화롭고 고혹적이었습니다. 이 저수지에 물을 대는 진강산은 딱 부러지는 이등변삼각형을 하고 있어 매우 안정되게 보였습니다. 아침 식사 후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평화전망대로 향하는 바람에 양양의 낙산사 및 남해의 보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도량으로 뽑히는 보문사를 가보지 못해 서운했으나 보문사는 이미 한 번 가본 곳이고 평화전망대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것도 괜찮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강화 읍내를 지나 바다 건너 김포의 문수산을 바라보며 북쪽으로 가다가 민통선의 군 초소에다 신고를 마친 후 제적봉에 세워진 평화전망대로 내달렸습니다.
제적봉에 다다르자 준공된지 석달밖에 안된 하얀 4층 건물의 강화평화전망대가 저희들을 반겼습니다. 지하1층에 지상4층의 평화전망대는 연건평이 약 700평에 조금 빠지는 아담한 규모로 지하층과 지상4층은 군부대가 전용하고 있고 나머지 지상3층이 관광객들에 개방되었습니다. 음식점과 휴게실이 들어선 1층을 지나 2층에 올라서자 각종 남북한 비교자료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3층은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강당에 앉아 안내원 한 분의 설명을 들은 후 북한지형 모형도를 조감했습니다. 고성능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휘 둘러보자 육안으로는 매우 희미하게 보였던 송악산의 산줄기가 확실하게 잡혔습니다. 송악산이야 고향땅 파주의 선산에서 자주 보아온 산이지만 서해로 흘러드는 예성강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야외의 망배단도 더 할 수 없는 전망지여서 맨눈으로 예성강 하구와 그 주위 넓은 들판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동쪽 멀리 보일 법한 한강유역의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전망대를 산봉우리에 세우는 것은 전망 권역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전망대에 올라선 후 앞에 뭐가 보여야 평화도 볼 수 있고 통일도 볼 수 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하늘이 활짝 열려 북녘 땅에 자리하는 평화를 전망할 수 있으리라 기대됐습니다. 이내 이러한 기대가 애당초 잘 못이었다고 생각한 것은 별안간 평화의 참 뜻이 떠올라서였습니다. 平和라는 글자를 잘 뜯어보면 평화의 본뜻이 저절로 잡힙니다. 평화란 벼(禾)가 고르게(平) 입(口)에 들어가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작금의 북한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으며, 최근 십 수 년 간 백만 명 이상의 아사자를 낸 곳이 바로 북한 땅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헐벗은 것은 북한주민만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산들도 나무가 베어져나가 헐벗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불모의 동토에다 평화를 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배를 골리고 있는 북한주민에 식량을 고루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북한정권이야 밉살스럽지만 그 주민들이 불쌍해 인도적 식량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식량이 주민들 입으로 고루 들어가지 않는다면 진정한 평화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강화도와 북한 땅을 흐르는 예성강 하구사이의 바다 한가운데 맨살을 드러낸 갯벌이 보였습니다.
갯벌은 바다와 육지의 공존을 도와주는 완충지대입니다. 북한과 남한의 공존을 보장하는 완충지대는 지금은 불안하나마 휴전선입니다. 이 휴전선이 깨지면 남북한은 맞붙어 싸워야하고 이제껏 지상낙원으로 알고 살아온 모든 생명체들이 재앙을 받게 됩니다. 일단은 휴전선을 지키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토방위가 중요하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국군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불의가 정의를 영원히 이길 수는 없습니다. 백성들을 아사시키는 불의가 자유롭게 배불리 먹고 살아가는 정의를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휴전선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불의가 소멸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입니다. 강화평화전망대에서 폭력을 기저로 한 불의가 북한 땅에서 사라질 날이 그리 멀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뒤이어 찾아올 평화가 바로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평화를 염원하며 전망대에서 내려섰습니다.
이른 시간에 강화도를 빠져나와 귀경길은 순조로웠습니다.
이번 나들이가 평화의 순례길이기를 바램하면서 산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당에 나가 저녁 미사를 올리며 주님께 자비와 평화를 주십사하고 빌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분에 넘치게 입에 풀칠을 잘하고 있으니 주님께서 이번에는 북녘의 죄 없는 백성들이 고루 입에 풀칠할 수 있도록 평화를 주십사하고 빌었습니다.
1)제 1일(10월11일):길정저수지 변 황토방/전등사
2)제2일(10월12일):길정저수지변 황토집/강화평화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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