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산(2)
*산행일자:2015. 9. 13일(일)
*산높이 :계방산1,577m, 호명봉1,561m, 오대산1,563m
*소재지 :강원평창/홍천
*산행코스:운두령-계방산-뾰지개봉-호령봉-비로봉-상원사
*산행시간:5시17분-18시15분(12시간58분)
*동행 :나 홀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자긍심이라 한다면 실로 오랜만에 자긍심을 느꼈습니다. 제가 가슴 뿌듯해 하며 자긍심을 갖게 된 것은 한강기맥의 난코스인 운두령-계방산-비로봉 구간을 깔끔하게 해내서입니다. 이 구간은 재작년 봄 양수리에서 한강기맥종주를 시작할 때부터 내내 어떻게 통과하느냐로 고심해온 코스입니다.
한강기맥의 운두령-계방산-비로봉 구간이 정말 난코스인가는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난코스를 가르는 기준을 위험한 바위길이 있느냐 없느냐로 삼는다면 이 구간은 분명 난코스가 아닙니다. 바위 길이 길지 않고 그나마 있는 바위 길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 곳에도 로프를 매달아놓지 않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1315.2m봉에서 호명봉 사이의 바위 길은 철쭉나무 등이 종종 길을 막아 지나기가 매우 불편하기는 하나 결코 위험한 코스는 아닙니다.
제가 이 구간을 난코스로 생각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간의 길이입니다. 기맥의 길이가 18Km를 조금 넘고 이탈로도 3.5Km나 되어 이 구간을 마치려면 22Km를 걸어야 합니다. 한 시간에 1.5Km 정도 걷는 느린 제 걸음으로 과연 하루에 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중간에 적당한 지점을 정해 두 구간으로 나눠 종주하는 것이 이제껏 제가 해온 방식인데 이 구간은 그 적당한 지점을 찾지 못해 두 구간으로 나눌 수 없어 고심해온 것입니다.
이번 구간 중 계방산에서 조금 내려가 이승복생가 쪽으로 길이 갈리는 분기점에서 오대산의 비로봉까지가 출입이 금지된 비탐방로입니다. 적발되면 벌금을 낼 각오로 이 길을 반드시 지나야하는 산객들은 거의 다가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이어서 그 수가 매우 적습니다. 자연 기맥 길도 분명치 않아 흐릿한 데가 여러 곳 있는데 구간 중간에 보이는 몇 곳의 하산 길이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아래 마을까지 계속 이어지는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도움이 될 만한 산행기를 찾아보았으나 끝내 구하지 못한 것은 중간에 구간을 끊고 아래로 탈출한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였을 것입니다. 이런 길로 탈출했다가 자칫 길을 잘 못 들면 사고로 이어질 것이 분명해 일찌감치 단념했습니다.
한 친구가 동행을 하겠다며 중간에 야영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와 그것이 해결책이다 싶어 좋다고 답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아도 과체중인 제가 야영으로 늘어나는 짐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에 회의가 갔습니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이틀을 연속해 걸으면 무릎이 온전히 견뎌내겠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이 또한 답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구간 쪼개기도 안 되고 야영도 안 된다면 하나 남은 방법은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루에 걸어 통과하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 지구력이 예전만 못하지만 두 해전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13시간을 걸은 적이 있어 이 구간 또한 그 시간이면 될 것 같기도 해 한 번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이 동했습니다.
제가 이 구간을 한 번에 통과하자고 결심한 것은 두 주전 기맥거리가 14.5Km이고 이탈로가 8.5km로 전장이 23Km인 운두령-보래봉-불발현 구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입니다. 기맥구간을 시속 1.8Km의 속도로 걷고 나자 이번 구간도 서둘러 새벽5시에 산행을 시작하면 아무리 늦어도 저녁 5시 안에 비로봉에 도착할 것이고 상원사에도 해지기전까지 도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전날 저녁 진부로 가서 하룻밤을 묵은 후 새벽같이 일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해발1,089m의 운두령으로 이동해 이번 구간을 성공적으로 종주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새벽5시17분 평창군과 홍천군을 경계 짓는 운두령을 출발했습니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냉랭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멧돼지는 불빛을 보면 도망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기사분의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오른 쪽 나무계단 길로 올라섰습니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혔지만 사방이 캄캄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걷기에만 열중해서인지 오름 길인데도 속도가 붙었습니다. 1166m봉을 지나 운두령 높이의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는 등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으면서 고도를 꾸준히 높여갔습니다. 운두령을 출발해 반시간 가량 지나 가시기 시작한 어둠이 완전히 밀려나고 막 해돋이를 끝낸 태양이 그 자리를 차지한 아침 6시경 헤드랜턴을 껐습니다. 10분을 더 걸어올라 “운두령2.2Km/계방산1.9Km"의 표지목이 세워진 무명봉의 쉼터에서 잠시 머물면서 구두끈을 조여 맸습니다.
7시21분 해발 1,577m의 계방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쉼터에서 조금 내려갔다가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150m가량 고도를 높이는 동안 비행기의 굉음이 들려왔습니다. 이 산속의 새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재잘거리지 않는 이른 아침에 상공을 나는 비행기는 매일 이 시간 우리나라 영토를 한 바퀴 돌며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초계기일 것입니다. 헬기장을 지나 해발1492m의 전망대에 오르자 사방이 탁 트여 골짜기를 가득채운 구름을 온전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서에서 동으로 운두령을 넘는 구름들의 가벼운 몸놀림을 지켜보는 한강기맥이 한 눈에 잡혔습니다. 전망대에서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 정상석이 세워진 계방산을 올랐습니다. 조망되는 산봉우리와 산줄기들이 방금 지나온 전망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오대산, 설악산, 태기산, 가리왕산(?) 등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계방산에서 오대산 쪽으로 얼마 내려가지 않았는데 길이 좁아져 바짓가랑이가 길섶 풀들이 머금은 이슬에 금세 젖어버렸습니다. 북동쪽으로 진행해 오른 쪽 아래로 이승복 생가길이 갈리는 안부 삼거리로 내려섰습니다.
9 시52분 1462.3m봉을 지났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직진 길로 이어지는 기맥 길은 오대산비로봉까지 비탐방로여서 출입금지 펜스가 쳐 있었습니다. 펜스를 넘어 얼마간 직진해 왼쪽으로 소계방산 길이 삼거리에 도착해 다소곳한 용담 꽃을 사진 찍고 오른 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산위의 기온이 영상 8도까지 떨어져 가을날씨가 완연하다 했는데 구두 속 양말이 풀잎 에 맺힌 이슬에 푹 젖어 한 여름 질펀한 빗길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길이 희미하게 보이는 안부로 내려갔다가 50m가량 고도를 높여 삼각점이 박혀 있는 1462.3m봉에 도착했습니다. 이 봉우리를 조금 지나 1433m봉을 우회하며 만난 갈림길이 주왕지맥 갈림길이라고 법솥말님 산행기에 적혀 있는데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한참 후 표지기가 걸려 있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11시45분 해발1358m의 뾰지개봉에 도착했습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다 급경사 길을 따라 내려가 150m가량 고도가 낮은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 몇 개를 넘는 동안 산죽 길을 지났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동멱골 길이 갈리는 해발1,150m대의 안부를 지나 올라선 1209m봉(?)에서 때 이른 점심을 들면서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10시53분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몇 번 반복하며 고도를 180m가량 높여 헬기장이 들어선 뾰지개봉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방아다리 약수터 길이 갈리는 뾰지개봉에서 왼쪽으로 얼마간 걸어 오른 쪽으로 길이 갈리는 활산목이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기맥길이 이제까지와 확연하게 다른 것은 이미 수명을 다하고 쓰러져 길을 가로막는 고목들이 즐비하다는 것으로 마치 원시림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12시56분 C-10 비닐판이 보이는 1282.3m봉을 지나 북진을 계속하며 봉우리 몇 개를 오르내렸습니다.
14시 정각 헬기장 흔적이 보이는 1315.2m봉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1282.3m봉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지는 기맥 길은 고도차가 크지 않은 편안한 길이어서 고목들이 길을 가로 막지 않았다면 속도를 조금 더 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 주전 운두령-보래봉-불발현 구간을 종주할 때는 어떤 낌새도 보이지 않던 가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이런 저런 가을꽃들이 꽤 많이 선보였습니다. 고산에서 꽃을 피워 서울근교 산에서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진청색의 용담 꽃도 여러 곳에서 만났습니다. 이름 모르는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새빨간 열매는 여름태양이 정성들여 빚어낸 이 가을의 소중한 결실이어서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C-8 비닐판이 걸려 있는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이 박혀 있는 1315.2m봉의 옛 헬기장에 도착해 짐을 벗어 내려놓았습니다. 17시20분에 상원사를 출발하는 진부 행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나 헤아려본즉 이미 늦었다 싶어 택시를 탈 요량으로 10분 여 푹 쉬었습니다.
15시45분 해발1,561m의 호명봉에 올랐습니다. 1315.2m봉에서 북동쪽으로 한참동안 진행하자 앞쪽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호명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왼쪽 암벽이 준수하고 깔끔해 보이는 암봉을 어떻게 지날까 하는 걱정을 얼마 안가서 접은 것은 키가 작은 철쭉 등 잡목이 길을 덮은 밀림(?) 속으로 다소 미끄러운 길을 지나기가 만만치 않아서였습니다. 전망바위에 이르러 지나온 한강기맥을 조망하며 잠시 숨을 돌린 후 겁먹었던 암봉을 왼쪽 밑으로 에돌아 계속 전진했습니다. 오른 쪽으로 동피골 길이 갈리는 삼거리 지점을 확인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했는데 바닥에 습기가 있어 바위길이 다소 미끄럽기는 하나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밀림 길을 통과하느라 많이 지쳐 중간에 쉬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으나 그러다가는 해떨어지기 전에 상원사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꾹 참고 걸었습니다. 제대로 된 헬기장의 호명봉에 도착하자 젊은 한분이 호명봉이 어디냐고 물어와 바닥에 떨어진 표지물을 가리켜 이 봉우리가 호명봉임을 일러주었습니다. 사방이 탁트여 전망이 빼어난 호명봉에서 바라보는 주위의 산세가 참으로 웅장하고 장엄해 강원도의 힘이 이런 것이다 했습니다.
16시58분 해발1,563m의 오대산 비로봉에 올랐습니다. 비로봉으로 가는 길 중간에 오른 쪽으로 빠져 서대사로 같이 내려갈 속셈으로 호령봉에서 만난 젊은이를 따라가다가 걸음이 느려 이내 포기했습니다. 천천히 1532m봉으로 오르다가 송백산악회의 회원 한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532m봉을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오른 쪽으로 서대사로 가는 희미한 길을 보았지만 그대로 직진해 비로봉으로 향했습니다. 오대산 정상봉인 비로봉에서 삼각점을 확인한 후 출입을 막고자 설치한 펜스를 넘어 정상석이 세워진 비로봉에 다다르자 먼 길을 걸어 드디어 해냈다 싶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정상석을 사진 찍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송백의 살림꾼 김대장님이 도착해 정말 반가웠습니다. 상원사로 내려가 식사를 하고 송백 버스로 같이 올라가자는 김대장님의 제의에 고마워하며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18시15분 상원사에 도착해 15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비로봉에서 상원사로 내려가는 길이 대부분 계단 길이어서 하산 속도가 빨랐습니다. 한 때 백두대간을 같이 했다고 반갑다며 호의를 베푸는 송백에 저녁 자리에 늦게 도착해 폐를 끼칠까보아 서둘러 내려갔는데, 이러다가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다가 송백의 후미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이분들에 제가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그냥 떠나라고 김대장님께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적멸보궁을 지나 중대사로 내려가는 돌계단 길이 너무 깨끗해 놓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였습니다. 중대사를 지나 얼마 후 내려선 상원사 화장실에서 땀 냄새 나는 옷을 전부 갈아입고 그 아래로 내려가 송백이 차려놓은 저녁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저녁 7시를 조금 넘어 송백 버스로 상원사를 출발해 서울의 잠실까지 편하게 이동했습니다. 송백산악회 여러분에 감사말씀 올립니다.
귀경 길 버스 안에서 이번 산행이 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정도로 힘들고 보람 있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그렇다’입니다. 이런 결론은 제 나이를 감안해 내린 것입니다. 두 해 후면 70줄에 접어드는 60대 후반에 13시간을 걸어 전장 22Km 거리의 구간을 해 낼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있으랴 싶기도 합니다. 10년 전인 50대에 이 구간을 했다면 가슴 뿌듯하기는 했어도 자긍심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스스로를 더욱 대견해 하는 것은 구간 종주의 계획과 실행, 그리고 평가를 저 혼자 다해낸 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강기맥 종주가 끝나면 영산기맥을 종주할 뜻입니다. 제가 마음먹은 대로 거의 해낼 수 있는 것은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산행을 해서입니다. 인터넷의 도움이 절대적임은 물론입니다. 종주산행에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거의 다 얻습니다. 제 나름 계획을 잘 세우고도 바로 종주 길에 나서지 못하는 때가 더러 있는 것은 도전의욕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의다가 저로서는 처음 가보는 길인데다 산행 중 거의 사람을 만나 볼 수 없는 오지를 걷는 것이어서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의 비중이 늘어나 도전하기가 겁이 나곤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해낸 산행이어서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것입니다. 설사 제가 늙지도 않았는데 나이를 가불해 주착을 부린다며 비웃음을 사는 한이 있어도 이번만은 눈치 보지 않고 한껏 제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계방산(1)
*산행일자:2006. 1. 22일
*소재지 :강원 평창/홍천
*산높이 :1,577미터
*산행코스:운두령-계방산 정상-이승복생가-아랫 삼거리
*산행시간:9시45분-13시35분(3시간50분)
하늘을 날아 땅위에 내려앉은 눈이 이 땅을 버리고 다시 하늘로 되돌아가는 가역변화가 이 자연에서 일어난다면 어떠할까 상상해보았습니다. 밤새 쌓인 눈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늘로 날아가 버려 산속이 텅텅 비어 있음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공허할까 공상을 해가며 어제는 강원도 홍천군과 평창군을 어우르는 계방산을 올랐습니다. 남한에서 한라-지리-설악-덕유의 뒤를 이어 5번째로 높은 계방산이 겨울 한철 산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것은 한 번 내린 눈이 쉽게 녹지 않아 눈꽃과 상고대의 절경이 오래 유지되어서인데 불원천리 멀다않고 내달려온 산객들이 오는 동안 이 산의 눈들이 모두 하늘로 되돌아가 텅 빈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면 얼마나 실망할까 하는 생각이 들자 자연계에서 한번 생긴 것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가는 가역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어제도 주저 없이 눈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 수 있으랴”는 셀리의 서풍부가 아니더라도 입춘을 열사흘 앞에 둔 이 겨울의 눈꽃 잔치도 얼마 남지 않았겠다싶어 어제도 한 산악회를 따라 덕유산-선자령에 이어 계방산으로 겨울나들이를 나섰습니다. 백두대간 상의 두로봉에서 뻗어 나온 한강기맥이 오대산의 비로봉을 거쳐 운두령에 이르기 바로 전에 기맥 최고봉으로 일구어 놓은 계방산은 그 높이가 남한 5위인 해발1,577미터로 동해의 바닷바람과 내륙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이 만나는 곳이어서 한 번 내린 눈이 잘 녹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설경이 장관을 이루는 눈의 산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 9시45분 해발1,089미터의 운두령에서 하차했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홍천군 내면의 산들을 일별한 후 발 턱이 아주 좁은 나무계단을 올랐습니다. 급경사의 계단 길을 지나 산봉우리로 올라서는 동안 도끼날을 무디게 할 정도로 단단하고 질 긴 물푸레나무를 만났고 능선 길섶에 소북이 쌓인 하얀 눈을 밟으며 재미있어 하는 산객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구름 한점 없는 깨끗한 하늘에 바람이 불지 않아 남동쪽에서 비치는 아침햇살이 따사롭고 평화롭게 느껴졌으며, 봉우리를 내려서는 눈길에서 엉덩방아를 찧지 않았다면 이 평화는 깨지지 않고 상당시간 저와 함께 했을 것입니다.
10시31분 운두령에서 2.1키로를 걸어 계방산 정상을 1.9키로 남겨 놓은 작은 봉우리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운두령 너머로 뻗어 나가는 한강기맥을 조망했습니다. 2003년 월간 산 잡지에 연재된 한강기맥 종주기를 읽고 나서 줄곧 기맥종주를 꿈꾸어왔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기맥종주는 시작도 하지 못했지만, 이번 산행으로 이 기맥의 최고봉을 오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봉우리에서 내려선 안부에서 20여분 동안 300미터 가깝게 고도를 높이며 된비알의 오름길을 헐떡대고 오르느라 등에 땀이 나자 그제 밤 과음으로 몸속에 남아 있던 알콜이 완전분해 된 듯 개운했습니다. 간격을 넓게 하여 설치한 나무계단을 올라선 후 진초록의 산죽들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섰고 그 길을 따라 얼마고 걷자 3단 스틱이 맨 아랫단보다 더 깊게 들어갈 정도로 많이 쌓인 흰눈 밭을 가르는 산길이 나타났습니다.
11시10분 1492봉에 올라섰습니다.
정상0.8키로, 아랫삼거리 5.6키로라는 아주 작은 화강암표지석이 세워진 헬기장이 1496봉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어 꽤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때 이른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평하고 시야를 가릴 것이 없어 전망처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넓은 공터에서 사방을 휘둘러보았습니다. 남쪽 아주 먼발치에 2003년 8월에 온 종일 비를 맞으며 올랐던 태기산이 눈에 들어왔고 오대산을 거쳐 두로봉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의 연봉들이 북쪽으로 이어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1492봉에 올라서자 홍천 쪽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냉랭했습니다. 잠시 내려섰다 평지 길을 조금 더 걸어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11시28분 해발1,577미터의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 10분 가깝게 오르는 동안 여기 저기 철쭉 등의 관목을 누르고 일어서 그 검초록 나뭇잎이 하얀 눈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주목들에 절로 눈이 갔습니다. 정상에 올라서자 북동쪽으로 제가 18년간 몸담았던 그룹의 유일한 레조트 휴양지였다가 다른 회사로 넘어 간 용평스키장의 슬로프가 해체된 그 그룹의 앞날처럼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바람이 드세졌고 공기도 더욱 냉랭해져 서둘러 사진 몇 커트를 찍은 후 자리를 옮겼습니다. 계방산은 이번이 3번째 오르는 것이어서 이번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B코스인 오른쪽 능선 길을 타 볼까 하다가 산악회 회원 어느 누구도 그 길로 하산하지 않아 저 역시 직진하여 봉우리 하나를 더 넘으며 기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11시44분 고개삼거리에 당도해 오른 쪽 계곡 길로 내려섰습니다.
운두령에서 시작하여 2시간가량 걸어 온 한강기맥의 마루금을 비로소 벗어났습니다. 일행 한분이 가져 온 김치 볶음밥과 샐러드로 일행 다섯이 간단히 요기를 하고나서 어른 한사람이 딱 들어 갈만큼 밑 둥의 속이 뚫린 몇 아름드리 주목나무 속으로 쏙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급경사의 눈길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무릎을 보호하고자 아이젠을 차지 않고 엉덩방아를 찧어 계방산의 골짜기 땅을 찜해둔 산객들이 여러분 있었습니다. 돌가닥 길을 지나 만난 계곡에 얼음이 두껍게 얼어 옅푸른 얼음색이 희디 흰 눈색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카메라에 그 정경을 옮겨 담았습니다.
하산 길에 수피가 붉디붉은 거제수나무가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어느 한곳에 이르자 하늘로 곧게 뻗은 굵지 않은 거제수나무 한그루가 길섶에서 한 낮의 따뜻한 햇살을 한껏 받아 자신의 수피를 붉으스레 빛나게 해 그 아름다움이 적송에 비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닐봉지를 갖고 와 눈썰매를 타는 어른 아이님들에게서 어른들을 저토록 순진무구하게 만드는 자연의 힘을 읽었습니다. 계곡을 빠져나와 잘 자란 낙엽송이 양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임도로 들어선 후 15분을 더 걸어 산불감시초소에 다다랐습니다.
13시3분 여러 대의 관광버스들이 주차하고 있는 윗삼거리 산불감시초소를 지났습니다.
산천어와 쏘가리는 18센티, 자라와 송어는 12센티로 자라기까지 불법어로를 금지한다는 경고판이 이 골짜기에 희귀어종 산천어가 자라고 있음을 광고하여 오히려 불법어로를 성하게 하는 것이 아닌 가 염려되었습니다. 물속의 고기는 굴절현상으로 실제보다 더 커 보이기에 잡는 족족 자로 재어 확인해야 18센티 또는 12센티가 넘는지 알 수 있을 터인데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이는 어로꾼들에 어렵게 잡은 고기를 도로 놓아 주기를 기대한 다는 것이 연목구어처럼 들렸습니다.
계방1교를 건너 1968년 공산당이 싫다고 해 무장공비들에 입이 찢겨 죽은 이 승복 어린이의 생가를 둘러보았습니다. 포스터의 색깔을 너무 빨갛게 칠하지 않는다고 안달을 내는 얼마고 왼쪽으로 기울어진 듯한 세력들에는 이 승복 어린이의 절규가 민족통일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거짓말로 단정하고 귀를 막고 싶겠지만 그들이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역사가 그들 마음대로 좌지우지되는 그런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3시35분 아랫삼거리 주차장에 도착해 계방산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운두령에서 2시간 동안 한강기맥을 종주했고 다시 1시간 50분 동안 계곡 길을 걸었습니다. 이번 계방산 산행은 한라산 산행과 일정이 겹쳐 50명이 채 안되는 적은 인원으로 13키로를 넘지 않는 길지 않은 코스를 일찌감치 끝낸 조촐한 산행이었습니다. 덕분에 오후 2시반경 출발하여 저녁 6시전에 잠실에 당도, 귀가 길에 성당에 들러 저녁 7시에 시작된 저녁 미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의 순리덕분에 한번 쌓인 눈이 다시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가역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예정대로 계방산의 눈을 한껏 만끽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사는 그렇지 못한 가 봅니다. 어제 한말을 오늘 바꾸고 오늘 한말을 내일 다시 바꾸어 왔다 갔다 하는 지도자급 인사들의 가역변화를 많이 보아와서입니다. 이들의 말 바꾸기 가역변화가 가져오는 가장 큰 병폐는 우리말과 글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덱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습니다. 집수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시로 집을 허물었다 다시 짓기를 반복한다면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불문가지인데 존재의 집을 마구 흔들고 부수고 해서 존재를 불안케 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주도한다면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사에도 자연의 순리가 제대로 작동되어 언어가 존재의 집의 역할을 다하고, 그래서 이 땅에 우리 고유의 문화가 꽃을 피워 그 속에서 보다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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