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5)
*산행일자:2008. 2. 9-10일(토-일)
*산높이 :향적봉1,614m, 남덕유산1,507m, 장수덕유산1,492m, 무룡산1,492m
*소재지 :전남장수/무주 및 경남함양/거창
*산행코스:육십령-남덕유산-삿갓골재대피소-향적봉-삼공리버스정류장
-2월 9일:육십령-합미봉-장수덕유산-남덕유산-월성재-삿갓골재대피소
-2월10일:삿갓골재대피소-무룡산-동엽령-백암봉-향적봉-삼공리버스정류장
*산행시간:총 20시간55분
-2월 9일:8시 2분-18시13분(10시간11분)
-2월10일:6시38분-17시22분(10시간44분)
*동행 :경동고24기김주홍,이규성,우명길, 29기정병기동문 및 박현출님
한 시인에 비쳐진 산은 구원이었습니다.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하고 “산을 보며” 간구한 이해인 수녀님은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생기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에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하고 빌었습니다.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생기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을 들라면 저는 첫 번째로 덕유산을 댈 뜻입니다. 희망의 모양새가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면 설악의 칼바위를 들이댈 수 없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를 받으려면 산세가 후덕해야 하기에 지리산의 천왕봉보다 넓은 평전을 갖고 있으면서 정상봉도 한결 더 너부죽한 덕유산이 구원의 산이라는 생각입니다. 구정연휴를 틈타 고교동문들과 함께 이틀에 걸친 종주산행을 마치고 나서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한 겨울에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산은 역시 덕유산이라는 것입니다. 덕유산을 종주하며 “다시 사랑할 힘”을 얻어 제게도 산은 구원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산을 오르내리며 제게도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올리고자 합니다.
@2월9일(토):육십령-남덕유산-삿갓골재대피소
육십령에서의 하룻밤은 따뜻하고 편안했습니다.
전날 밤 9시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해 2시간 반 만에 육십령아래 서상IC에 도착했습니다. 마중 나온 짚차를 타고 육십령에 다다라 할머니휴게소에서 내준 길 건너 새로 진 넓은 집에서 짐을 풀고 하룻밤을 편히 묵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밖을 나서자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휴게소에서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들고 나서 육십령 고개 마루로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이틀간의 덕유산 종주산행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아침8시2분 육십령고개를 출발했습니다.
큰 눈은 아니지만 산길을 새로 덮을 정도로 새눈이 내려 온산이 깨끗하고 화사했습니다. 해발 750m대의 육십령을 출발해 시간 반이 다 걸려 해발1,000m대의 합미봉에 올라서기까지 오름 새도 완만하고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 다섯 명의 일행 중 어느 누구도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날씨는 흐렸지만 골바람이 불지 않아 산행 중에는 전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눈 덮인 바위 길을 올라 합미봉에 다다르자 멀리 떨어진 산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커다란 조망안내판이 서있었지만 흩뿌리기 시작한 눈발로 시야가 트이지 않아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장수덕유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9시 반이 조금 지나 해발1,013m의 합미봉에서 장수덕유산으로 향했습니다.
2004년 가을과 2006년 여름에 이 산을 종주할 때는 합미봉을 오르내리는 길이 험하니 조심하라는 먼저 오른 분들의 산행기내용에 동의하지 않았던 제가 이번 산행으로 생각을 바꾼 것은 내림 길의 바위길이 눈이 쌓인 급경사 길로 미끄럽고 위험해, 로프 줄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안전하게 안부로 내려설 수 없었음을 경험해서였습니다. 남근석의 대포바위 쪽으로 길을 잘 못 들어섰다가 다시 원위치 해 직진하자 이내 로프 줄을 늘어놓은 급경사의 바위길이 나타났습니다. 세 곳의 난코스를 로프를 잡고 통과해 안부로 내려서자 오른 팔을 들어올리기가 불편할 정도로 어깻죽지가 뻐근했습니다. 첫 번째 경상남도 덕유교육원으로 갈리는 봉우리 삼거리에서 조금 더 걸어 4년 전 초가을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혼자서 청승스레 점심을 들었던 소나무 숲에서 처음으로 짐을 내려놓고 10분 가까이 편하게 쉬었습니다.
11시10분 덕유교육원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앞서 지나간 누군가가 눈 위에 남겨놓은 족적을 따라 세 시간여 걸었어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는데 갈림길에서 교육원에서 올라왔다는 한 가족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싸락눈에서 함박눈으로 바뀐 눈송이가 사뿐히 내려앉는 산죽 길을 지나 장수덕유산으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힘들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오르는 길인데도 가지가지에 꽃을 피운 눈에 홀려서인지 점심을 들 장수덕유산이 얼마나 남았는지 종시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12시가 지나자 원거리 종주 길이 처음이라며 뒤로 쳐지기 시작한 한 친구도 햇살이 살짝 비추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두 주전 오대산을 올랐을 때는 바닥에는 엄청 눈이 깊게 쌓였어도 나뭇가지에 맺힌 설화를 보지 못해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는데 지난밤부터 내리는 눈이 솔가지에 소복이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도 소담스러워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13시23분 해발 1,492m의 일명 서봉으로도 불리는 장수덕유산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아침 일찍 영각사를 출발해 남덕유산을 올랐다가 장수덕유산을 거쳐 육십령으로 내려가는 산객들이 갑작스레 늘어나 조용하던 덕유산 길이 조금은 시끌벅적했습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보다 많은 벌레를 잡아먹듯이 종주 길에 나서는 산 꾼들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어야 제 시간에 목적했던 고봉에 올라 느긋하게 산줄기와 골짜기를 조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후덥지근한 여름보다 산행이 훨씬 빠를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은 눈이 살짝 덮여 길이 미끄러운 데다 곳곳에 펼쳐진 황홀한 설경에 두 눈을 몽땅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표지목과 돌탑이 세워진 암봉의 장수덕유산에 오르자 그동안 숨죽였던 삭풍이 매몰차게 불어 금방 손끝이 아렸습니다. 암봉에서 오른 쪽 아래 북서풍을 가릴만한 넓은 곳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은 후 정병기/박헌출 두 일행이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저는 한참 뒤로 쳐진 친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5-6분을 내려가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쉬지 않고 오르느라 많이 지친 한 친구의 무거운 짐을 바꿔진 이규성 친구로부터 짐을 넘겨받았고 이 친구는 뒤에 쳐진 친구를 기다렸다 짐을 넘겨받았습니다. 이들 모두가 점심자리에 도착한 것은 13시40분경으로 20분 가까이 늦은 셈입니다. 암봉이 막아주어 북서풍을 잘 피했다 했는데 얼마 후 남동풍으로 바뀐 바람이 세게 불어와 휴게소에서 싸준 도시락에 오뎅 국을 끓여 드는 동안에도 언 몸이 녹지 않아 제 맛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14시20분 장수덕유산을 출발해 남덕유산으로 향했습니다.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가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한 후 얼마를 더 걸어 월성재와 남덕유산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지도에 적혀 있는 대로 장수덕유산에서 남덕유산을 거쳐 삿갓골재대피소로 가는데 3시간5분만 걸린다면 늦을까봐 걱정할 일이 전혀 없겠지만, 4시간 걸린다는 육십령-장수덕유산코스가 후미기준 5시간 반이 넘겨 걸렸기에 자칫 날씨라도 더 나빠지면 어두워지기 전에 대피소에 도착하지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덕유산을 들르지 말고 바로 월성재로 갈 것을 제의했으나 어느 누구도 찬성하지 않아 곧바로 남덕유산을 올랐습니다.
15시13분 해발1,507m의 남덕유산을 올랐습니다.
날씨만 좋다면 일망무제로 북으로 향적봉에 이르는 거대한 산줄기와 남동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한 눈에 잡히는 고봉에 올랐어도 흩날리는 눈발로 주위의 거산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관목가지위의 눈꽃들이 잠깐 잠깐 내비치는 햇살을 받아 내놓는 색광이 영롱해 참으로 볼만 했습니다. 남덕유산에서 1.4Km 아래에 위치한 월성재로 내려서는데 1시간이 걸린 것은 자칫 방심했다가는 영락없이 뒤로 자빠지는 미끄러운 눈길 때문이었습니다. 틈틈이 스틱으로 제동을 걸며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내려가느라 많이 지쳐 오른 쪽 아래 황점으로 길이 갈리는 월성재에 생각보다 한참 늦은 16시15분에 다다랐습니다.
18시13분 삿갓골재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재로 내려서면서 휘몰아치는 바람에 눈보라가 심하게 날려 움푹한 눈길이 메워 지는 통에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몇 곳을 힘들게 통과했기에 , 월성재에서 2.9Km 남은 삿갓골재 대피소에 전화를 걸어 저녁 6시가 넘어 도착할 수도 있음을 알렸습니다. 남덕유산 정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삿갓골재로 가는 사람들은 저희들 밖에 없어 눈보라로 덮여진 푹푹 빠지는 눈 속을 걸어 간신히 길을 이어갔습니다. 길가 북쪽으로 칼날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눈 언덕이 없었다면 길 찾기가 엄청 어렵겠다 싶었던 것은 눈 언덕이 없는 평평한 한 봉우리에서 길을 잘 못 들었다가 얼마 후 제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을 훨씬 더 걸어 전망바위에 올라섰어도 단 1분이라도 아껴 어둡기 전에 대피소에 도착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을 즐길 기분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17시 반을 지나 젊은 두 사람이 저희들을 앞질러 길을 내주었고, 얼마 후 삿갓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자 대피소가 얼마 안 남았다 싶어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삿갓봉을 왼쪽으로 우회한 후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면서 삿갓골재대피소로 내려갔습니다. 쉬지 않고 내달린 덕에 어둠보다 더 빨리 대피소에 다다랐고, 어둠이 완전히 나래를 편 것은 전원무사도착을 안도하는 하이파이브를 하고나서도 3-4분이 지나서였습니다.
저녁은 김주홍 친구가 준비한 삼겹살로 포식을 했습니다.
식단을 미리 짜서 음식무게를 팍팍 줄이는데 이골이 난 저로서는 아무리 고기를 좋아한 다 해도 5근이 넘는 엄청난 양의 고기를 싸올 생각도 못 했는데 벌써부터 일행들의 먹거리를 정성들여 준비해왔던 친구는 이번에도 빼놓지 않고 최고의 먹거리를 준비해와 고마웠습니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따끈한 마루에 등을 눕히고 청한 잠은 다음날 새벽까지 단잠으로 이어졌습니다.
@2월10일(일):삿갓골재대피소-향적봉-삼공리버스정류장
무룡산에서 해오름을 맞이하고자 대피소출발을 서둘렀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로 인스탄트 비빕밥을 든 후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자 맑은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 떠 있어 이번에는 온전하게 해오름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침6시38분 대피소를 출발했습니다.
헤드랜턴으로 불을 밝히며 어둠을 뚫고 무룡산으로 향했습니다.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은 해뜨기 직전의 추위가 이 정도라면 신년 초 태백산에서 일출을 맞느라 살을 에는 혹한을 견뎌낸 저로서는 별 어려움 없이 이틀째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월성재에서 삿갓골재대피소까지 여러 곳을 길을 내며 지나느라 생고생을 해 밤새 눈이 그치지 않고 계속해 내린다면 러셀링 하는 일이 큰일이다 싶어 속으로 걱정을 했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늘은 쾌청했고 날씨도 생각보다 훨씬 푹해져 한결 산행이 수월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서 무명봉 하나를 우회하자 좌우로 전망이 탁 트였고 오른 쪽 가까이로 해오름이 감지되었습니다. 무룡산에 오르기 전에 일출이 끝날 것 같아 대피소에서 1Km를 걸어 다다른 능선 길에서 4-5분을 기다려 장엄한 해돋이를 지켜보며 몇 번이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 이처럼 해오름을 맞이해왔을까 새삼 궁금했습니다.
바다를 박차고 힘차게 떠오르는 해오름을 지켜보고자 최근 3년간 강원도의 고산을 찾아올라 새해 첫 아침을 맞이했지만, 날씨가 흐리고 너무 추워 이렇다 할 해오름을 보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태양이 우리은하에 태양계를 만들어 놓고 은하의 중심을 돌기 시작한 것이 45-50억 년 전의 일이고, 지구가 태양계의 일원으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면서 매일 한 번씩 자전을 시작한 것이 45-46억년 가량 되었으니, 해오름이 시작된 것도 대략 45억 년 전의 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토록 오랜 세월 계속된 해오름을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맞이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우리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해 직립보행을 시작한 6백만 년 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6백만 년이란 해맞이의 역사는 해오름의 45억년에는 비할 수 없이 짧은 세월이지만 인류사를 통 털어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것이 해맞이를 빼놓고 달리 다른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저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해오름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제게 다시 사랑할 힘을 달라고 빌었습니다.
8시20분 해발1,492m의 무룡산을 올랐습니다.
나무계단을 걸어 빤히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선 다음 왼쪽으로 꺾어 얼마큼 걸어 무룡산에 오르자 전날 지나온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이 한눈에 잡혔습니다. 경남거창과 전북장수를 대표하는 덕유산의 두 말산들이 1.2Km 떨어져 마주보고 앉아 있기를 억년 넘게 지속해오면서도 이 두 봉우리가 서로 싸우고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이 두산보다 새까맣게 오랜 후에 자리한 산 아래 속세의 인간들은 언제부터 경상도다 전라도네 하면서 응어리를 풀지 못하는지 답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두 해전 이 산을 올랐을 때 안개에 가렸던 주능선과 남동쪽 멀리로 지리산 주능선이 그대로 드러나 보기에 시원했습니다. 무룡산을 먼저 오른 한분에 부탁해 일행 5명이 모두 담긴 사진을 찍고 나서 동엽령으로 향했습니다. 무룡산에서 2Km 떨어진 돌탑봉으로 향하는 주능선에 즐비하게 서있는 관목들을 보자 이 능선을 넘나드는 바람의 세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 언덕이 일품인 능선 길을 50분 가까이 걸어 돌탑봉에 다다르자 뒤돌아 본 무룡산 봉우리가 아주 점잖아 보였습니다.
10시17분 왼쪽 아래로 칠연계곡 길이 갈리는 동엽령에 내려섰습니다.
돌탑봉에서 동엽령 가는 길은 더 할 수 없이 편안했습니다. 앞서 지난 세 번은 모두 동엽령 안부에서 거센 바람을 맞았는데 이번에는 미풍도 불지 않고 날씨도 포근해, 작정하고 저희들의 종주산행을 도와주는 제우스신이 마냥 고마웠습니다. 작년 1월 고교동문들과 함께 안성탐방지원센타를 출발해 여기 동엽령에 오른 12시16분보다 2시간 앞서 다다른 셈이기에 서두르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엽령에서 백암봉 오르기가 이날 종주산행에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작년에는 중간에 점심을 들면서 얼마만큼 쉬고 올라서인지 만만하다 했는데 이번에는 마지막 20분 동안의 산 오름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동엽령을 출발해 암릉을 오른 쪽 밑으로 돌며 웬만큼 올라서자 암봉 오른 쪽으로 비껴선 백암봉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이 암봉을 왼쪽으로 에도는 동안은 길섶의 새하얀 새 눈들이 더 할 수 없이 고결해 보여 힘든 줄 몰랐습니다만 다시 능선에 올라서 백암봉에 다다르기까지는 몇 번을 잠깐씩 쉬며 숨을 골라야 했습니다.
12시45분 향적대피소에 도착해 점심을 들었습니다.
동엽령 출발 1시간 20분 만에 해발 1,490m의 백암봉에 올라섰습니다. 빼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은 오른 쪽인 동쪽으로 나있고,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 가는 길이 북쪽으로 똑바로 나 있는 백암봉 삼거리에서 10분 가까이 쉬면서 누적된 피로를 풀었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백암봉-중봉 사이의 너른 산상의 화원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원추리, 비비추, 구절초, 산오이풀과 동자꽃 등 야생화들이 깊은 눈 속에서 새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영국의 서정시인 셀리의 시 “서풍부(Ode to the West Wind)”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The trumpet of prophecy! O Wind, 예언의 나팔이 되라! 오 바람이여,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
봄의 들머리인 입춘이 지난 지 벌써 엿새나 되었기에 이제 부는 산바람은 봄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의 바람이 아닌 그저 그런 봄바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수자굴로 길이 갈리는 해발1,594m의 중봉에 오르자 새하얀 덕유평전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덕유평전 역시 철쭉꽃과 원추리 꽃이 일품이라는데 겨울 한 철 최고의 볼거리는 죽어 천 년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주목의 고사목이 아닐까 싶은 것은 이때만은 잎을 모두 떨어내고 나목으로 변한 다른 활엽수들보다 훨씬 빼어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14시12분 해발1,614m의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에 올랐습니다.
향적봉대피소에서 150m 아래로 옮긴 약수터로 내려가 길어 온 샘물로 떡라면을 끓여 들면서 1시간 20분 가까이 푹 쉬고 난 후, 100m 남은 계단 길을 마저 걸어 향적봉에 오르자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댔습니다. 주목의 또 다른 이름인 향적목의 군락지라 하여 이름 붙여진 향적봉은 지리산의 천왕봉이나 설악산의 대청봉보다 훨씬 더 너부죽해 스키장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을 몽땅 받아들이고도 남을 만하니 후덕한 덕유산의 정상봉으로는 제 격이다 싶었습니다. 날씨가 쾌청해 조망안내판에 적혀있는 서쪽의 운장산과 대둔산, 동쪽의 가야산이 먼발치로나마 보였을 텐데 어느 산이 그 산인지 분명하게 식별하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어렵사리 향적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일행들의 합동사진을 찍은 후 오른 쪽 아래 백련사로 내려갔습니다.
15시29분 백련사로 내려섰습니다.
향적봉에서 백련사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것은 옛날 그대로이지만 언제부터인가 계단을 많이 설치해 이 길로 향적봉을 오르려면 무릎에 엄청 무리가 갈 것 같았습니다. 1시간 남짓 걸어 내려선 천년 고찰 백련사에서 중생들을 커다란 배에 태우고 극락세계로 향하는 부처님을 그린 반야용선(?) 그림 등 명부전의 벽화 7폭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물소리가 요란한 여름과는 달리 백년사에서 삼공리로 내려가는 계곡 길이 고즈넉했습니다. 숱하게 바위에 부딪히며 내달렸던 계곡 물 소리가 같이 얼어붙은 한 겨울의 구천동 계곡은 참새 크기의 박새가 재잘거리는 작은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고요함이라면 계곡가의 목판에 새겨진 이해인 수녀님의 시 “산에서”의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 한 구절을 읊조려도 좋을 것입니다. 계곡에 내려앉은 하얀 눈의 블랙홀은 바위 돌을 에돌다가 힘들면 쉬어가는 작은 소였습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담고 있는 작은 소는 온 천지가 새 하얗도록 쏟아져 내린 주위의 눈을 녹여가며 자기 물색을 지켰습니다. 여름과는 또 다른 면모를 보이는 구천동 계곡길이 정감 있어 보이는 것은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생기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속에 자리하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17시22분 삼공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이틀간의 덕유산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매표소도 철수한 텅 빈 정류장 건물이 무주구천동을 대표했던 삼공리의 옛 영화가 무주리조트로 옮겨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는 끝났는데 음식점 수는 그대로이니 무슨 수로 옛 맛을 낼 수 있겠는가 생각하자 닭도리탕 맛이 영 아니라고 투덜댈 일도 아니다 했습니다. 19시20분에 대전행 직행버스에 올랐고, 21시10분에 대전 고속터미널에서 강남행 고속버스로 갈아타 자정 직전에 산본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올리며 덕유산 종주기를 맺습니다.
산에서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
기쁠 때나 슬플 때
나의 삶이 매마르고
참을성이 부족할 때
오해받은 일이 억울하며
누구를 용서할 수 없을 때
나는 창을 열고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생기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
그 푸른 침묵 속에
기도로 열리는 오늘입니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산행사진>
< 제1일 산행사진 >
*산행일자:2008. 2. 9일(토)
*산행코스:육십령-합미봉-장수덕유산-남덕유산-삿갓재대피소
*동행 :경동고 24기 김주홍, 이규성, 우명길 29기정병기 및 그의 친구 박현출님
< 제2일 산행사진 >
*산행일자:2008. 2. 10일(일)
*산행코스:삿갓재대피소-무룡산-동엽령-백암봉-향적봉-삼공리탐방지원센타
*동행 :경동고 24기 김주홍, 이규성, 우명길 29기, 정병기 및 그의 친구 박현출님
2008.02.12 16:29
멋진 종주였습니다....
처음인데 잘 이끌어 주신 대장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정말 멋 진 사진이네요...
간직 하겠습니다...
2008.02.15 08:22
연 이틀 종주산행을 산행기로 남기는 것이 만만치 않아 어제야 산행기를 올렸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삼겹살 파티도 고맙구요.
2008.02.13 07:50
시인마뇽님~ 새해 인사드리려 블러그에 들렀습니다.
친구 분들과 덕유산 다녀오셨군요~?
아는 분들이 계셔 그런지 영상이지만 무척 반갑네요~
시인마뇽님과 송백에서 산행일정이 맞지 않아 자주 뵐 수 없는 아쉬움이 남지만 마음 한쪽에 늘 마뇽님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새해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2008.02.15 08:26
이렇게 누옥을 찾아 댓글을 주시니 고맙기 이를데 없습니다.
안녕하시지요? 첫날 덕유산의 눈꽃이 환상적이었고 둘째날 일출이 황홀했습니다. 100산 중 제가 안가본 산이 산행지로 결정되면 꼭 참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joohong
- 2008.02.15 10:49
- 너무나 생생하게 써주신 산행기때문에 그때의 감동이 .....
여하튼 너무 고생하셨고 여러가지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이 간직코자 가져갑니다.....
덕유산(4)
*산행일자:2007. 1. 27일
*소재지 :전북 무주
*산높이 :1,614미터
*산행코스:안성매표소-동엽령-백암봉-향적봉
-백련사-삼공리
*산행시간:10시30분-17시5분(6시간35분)
*동행 :경동동문 6명과 송백산악회원
3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흰눈이 펑펑 내리는 덕유산을 올랐습니다.
어느 때고 이 산에만 들어서면 포근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산 특유의 넉넉함 덕분입니다. 설악산은 칼바위로 그리고 소백산은 칼바람으로 한 겨울 산을 찾아 오르는 산객들에 칼날을 세우고 있지만 이 산만은 언제고 그 넉넉한 모습으로 산객들에 안온함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해발1,300미터대가 넘는 높고도 광활한 평전에 소북이 쌓인 밤새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새하얀 눈꽃을 피워 별천지에 와있는 듯 했고 하산 길에서 공중에서 난무하다가 이 땅에 사뿐히 내려앉는 하얀 눈을 지켜보며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결코 갈등하는 것만이 아님을 보았습니다.
지난 가을 설악산을 오른 고교동기들이 3개월 만에 다시 모여 눈 많기로 이름난 전북 무주의 덕유산을 올랐습니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지고 눈발이 멈춘 후 혹한이 뒤를 잇는다는 일기예보로 3주전에 예약한 산악회 버스가 탈 없이 산 들머리까지 운행할 수 있을 런지 또 눈이 너무 많이 와 공원당국에서 입산을 막는 것은 아닌지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는데, 새벽에 집을 나서자 눈도 뚝 그쳤고 그다지 춥지 않아 적지 아니 안심되었고 이런 정도로 따뜻한 날씨라면 모처럼 보기 힘든 설경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겠다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10시30분 덕유산 서쪽 산자락에 자리 잡은 안성매표소를 출발했습니다.
아침7시에 잠실을 출발한 버스가 남쪽으로 내달려 덕유산에 가까이 다가서자 차창밖에 펼쳐지는 설경이 더욱 더 고혹적으로 변해갔습니다. 매표소에서 아이젠을 차는 동안 안경알이 빠져버려 초반부터 맨눈으로 산행을 하게 되어 당혹스러웠으며 무엇보다도 모처럼의 눈꽃잔치를 선명하게 보지 못하게 되어 못내 아쉬웠습니다. 얼마 안가서 그물망 아이젠의 그물이 끊어져 벗겨지는 바람에 멈춰 서서 다시 신는 동안 모두가 저를 앞질러 이번에도 후미에서 뒤쫓아 가느라 몸과 마음이 바빴습니다. 큰 길을 따라 걷다가 아취형의 나무다리를 건넜고 1키로를 더 걸어 동엽령 2.2키로 전방에서 또 다시 다리를 건넌 후 본격적인 산오름을 시작했습니다.
11시32분 대간 길과 만나는 동엽령 1.6키로 전방의 표지목을 지났습니다.
계곡물이 바위 돌을 에돌다가 힘들면 쉬어가는 작은 소는 골짜기에 내려앉는 눈들에는 블랙홀이었습니다. 한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작은 소는 온 천지가 새 하얗도록 쏟아진 많은 눈을 녹여가며 주변의 흰색으로부터 자기 색을 지켰습니다. 곧게 뻗은 적송들도 줄기만은 붉은 색을 잃지 않아 옆자리의 흰색들과 확연히 대비되었습니다. 맨눈으로 산행을 하느라 새로이 적응될 때 까지 발을 내딛기가 불편해 좀 늦어지겠다고 산행대장에 무선연락을 했더니 앞서가던 한 친구가 걱정이 되었던지 저를 기다려주어 고마웠습니다.
12시16분 동엽령 고개 마루에 올라서 대간 길에 들어섰습니다.
바람이 불고 냉기가 더해져 손끝이 아려왔지만 두 주전에 오른 소백산의 칼바람에는 한참 못 미쳐 충분히 견딜 만 했고, 능선 주위의 키가 작은 나무들도 모두 다 하얀 눈으로 새 옷을 해 입어 춥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동엽령의 넓은 평원을 가득히 덮은 눈들을 카메라에 담은 후 왼쪽으로 꺾어 백암봉으로 향하는 중 점심을 들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떡과 귤로 요기를 했습니다. 선채로 후다닥 점심을 들었는데도 잠시 쉬는 사이 서울 근교의 산들에서 경험하지 못한 고산의 한기가 엄습해와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모처럼 만의 설경을 탐해 이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길이 붐벼 생각만큼 산행속도가 빠르지 못했습니다.
13시29분 해발1,420미터의 백암봉에 올랐습니다.
오른 쪽의 빼재로 이어지는 대간 길은 송계사로 가던 부부 두 분이 되돌아 올 정도로 많은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고 하는데 왼쪽의 중봉으로 가는 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눈이 많이 다져져 걷기에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지난여름 가지각색의 꽃들이 천상의 화원을 이루었던 백암봉-중봉사이의 넓은 평원이 밤새 내린 눈으로 흰색의 모노칼라로 바뀌었지만 결코 초라해 보이지 않은 것은 단순해 보이는 백색이 실은 파랑, 빨강 그리고 초록의 빛의 3원색을 모두 섞어 얻어지는 색이어서 어떤 원색들보다 훨씬 컨텐츠가 다양하고 역동적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의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구촌 어느 곳에서나 신바람 나게 일하는 것도 흰색 속에 숨어있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우리 고유의 원형으로 갖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중봉에 오르는 길섶의 작은 나무들이 흰눈을 덮어 쓰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하얀 털의 복슬강아지 같아 앙증맞아 보였습니다.
14시5분 해발1,614미터의 향적봉에 올라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호했습니다.
죽어서도 천년을 간다는 주목의 또 다른 이름인 향적목이 많이 산다하여 향적봉으로 이름 붙여진 덕유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모처럼 고산을 택해 겨울산행에 나선 친구들에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안성매표소를 출발해 수직으로 1,000미터 가량 고도를 높여야 했고 매 100미터를 오를 때 마다 기온이 0.6도씩 떨어지는데다가 살갗을 파고드는 냉혹한 바람이 가끔씩 불어대는 능선 길을 2시간 가까이 걸어야 했기에 말입니다. 며칠째 죽으로 때운 한 친구가 죽 쑤지 않은 것은 오름길이 편해서가 아니라 정상을 밟겠다는 목표로 죽을힘을 다해 올랐기 때문으로 같이 향적봉을 올랐어도 곤돌라를 타고 오른 사람들보다 더 큰 환희를 느꼈을 것입니다. 덕유산 눈꽃들이 빚어낸 설경의 아름다움에 도취한 홍일점인 한 친구부인이 되 뇌인 것처럼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기에 정상에서의 하이파이브 환호가 너무도 자연스러웠습니다. 바람이 잠시 멈춰 선 틈을 짬 내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주변 산들을 한번 휘둘러보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전부가 흰눈 일색이어서 거산인 덕유산이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넓고 편안하게 보였습니다. 덕유산 특유의 넉넉함에 오랜 지기들의 풋풋한 우정과 흰눈의 평화로움이 더해져 겨울 산이 매몰차지 않고 이토록 평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5시40분 백련사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정상에서 백련사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급했지만 새 눈이 계속 쌓여 막 녹기 시작한 잔설 위를 걷던 1년 전보다 훨씬 덜 미끄러웠습니다. 저희들의 산 오름을 돕고자 오래 참았던 하늘이 하산 길로 들어서자 바로 눈을 쏟아내기 시작해 황홀경을 연출했습니다. 귀경길이 조금은 걱정됐습니다만 그래도 산속에서 만나는 눈은 도시의 눈처럼 질퍽대지 않고 깔끔해 좋았습니다. 왜 덕유산에는 지리산의 화엄사나 가야산의 해인사 또는 설악산의 신흥사에 견줄만한 거산에 걸 맞는 대찰이 없을 까 궁금해 하면서도 70년대만 해도 암자였던 천년 고찰 백련사가 규모면에서 많이 커진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번창해나가리라 기대됐습니다.
서두르지 않고서는 산악회에서 정해준 시간 안에 댈 수 없을 것 같아 백련암에서 삼공리 주차장까지 쉬지 않고 단 숨에 내달렸습니다. 백련사에서 한 친구가 준비해온 주먹밥으로 요기를 해 11Km의 산길을 오르내리느라 많이 지친 몸으로도 남은 6Km를 쉬지 않고 내달릴 수 있었습니다. 삼공리주차장으로 향하는 저희들의 발걸음은 구천동계곡의 물 흐름을 따랐습니다. 구천동 계곡의 바윗돌을 굽이굽이 휘돌며 흐르는 물이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얼음장 밑에서 남모르게 준비하고 있는 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궁금했습니다. 이제껏 8번을 향적봉을 올랐어도 한 봄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기에 구천동 계곡의 봄 얼굴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길은 넓고 눈이 쌓여 부지런히 걸었어도 발바닥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17시5분 삼공리주차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김치찌개를 맛있게 드는 친구들에 정말 고마워하는 것은 17Km의 장거리 산행을 정해준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각자 최선을 다했다는 점입니다. 서울로 돌아와 맥주 한 배를 나누며 오는 5월에 지리산을 종주하기로 쉽게 뜻을 모은 것도 시간이 빡빡하고 거리도 만만찮은 힘든 눈길 산행을 성공리에 마쳤기에 가능했습니다.
황홀한 산상의 눈세계에서 수 시간을 보내고 나자 눈사람을 만들었던 30년 전의 동심이 되살아났고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한 친구들과 산악회의 일행 분들 모두에 감사드리며 덕유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덕유산 (3)
*산행일자:2007. 1. 27일
*산행코스:안성매표소-동엽령-백암봉
-향적봉-백련사-삼공리주차장
*동행 :경동고교 동문 이규성, 이달헌, 서중원,
김남진부부, 장광종 및 송백산악회회원
- 프리게이트 2007.02.02 03:58
- 좋은 내용 스크랩해 갑니다. 갑자기 2월5일 덕유산등정을 할 까해서 스크랩해 갑니다.
- 시인마뇽 2007.02.02 07:53
- 변변치 못한 졸고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보다는 사진이, 사진보다는 현장이 훨씬 리얼하기에 2월5일 덕유산 등정이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자운영 2007.02.02 09:36
- 덕유산의 설경이 초겨울부터 찾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쉴새없이 눈이 내리고 상고대가 피고
장쾌한 주능선에 오르면 바람과 찬 기온으로 산호초 같은 상고대가 항상 있으니
겨울 설경으로 덕유산이 으뜸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습니다
더구나 친구들과의 산행이니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많이 부럽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시인마뇽 2007.02.08 09:50
- 늦게나마 감사인사드립니다. 못찍은 사진이나마 정리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사진을 설명하는 토를 다는 것은 기억이 아물아물해 포기하고 사진만 올렸는데 정리해놓고보니 제게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덕유산 (3)
*산행일자:2006. 8. 8-9일
*소재지 :전북 무주/장수, 경남함양/거창
*산높이 :덕유산1,648미터/무룡산1,492미터
*산행코스
-8월8일:육십령-할미봉-장수덕유산-남덕유산-월성치-삿갓골재
-8월9일:삿갓골재-무룡산-백암봉-덕유산향적봉-백련사-삼공리
*산행시간:총 21시간
-8월8일:6시22분-16시42분(10시간20분)
-8월9일:6시30분-17시10분(10시간40분)
대간시인 이 성부님은 덕유산을 지나면서 읊은 그의 시 “붉은 악마”를 “아름다운 빛깔들 모두 우리나라 산천에서 떠온 것임을 알겠다”고 맺었습니다. 지난 1월에 6시간 넘게 걸려 안성에서 향적봉에 올랐다가 삼공리로 하산하는 동안 우리조상의 삶이 흔적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흰색이 덕유산을 뒤 덮은 하얀 눈에서 떠왔음을 알고 나서부터 한 여름이면 어김없이 이 산을 산상의 화원으로 바꿔놓는 야생화들로부터 떠올 수 있는 색깔들은 과연 어떤 것일까 부쩍 궁금해졌습니다. 또 바쁘게 이것저것을 돌아보느라 힘들어하는 우리의 눈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초록의 짙푸른 나무들에 한 이틀 이 산의 연봉들을 오르내리며 한껏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습니다.
때 마침 대학동창인 수원대의 이 교수가 덕유산 종주를 제의해와 고마웠습니다.
이 교수와의 원거리 산행은 1976년 8월 설악산을 함께 다녀온 이래 30년 만에 처음이어서 이번 산행이 그동안 우리의 몸과 생각이 얼마나 바뀌었나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산봉우리에 올라 지나온 산길을 돌아보면 용케도 저 먼 길을 잘도 걸어왔구나 싶어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지고 남은 길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듯이 이번 기회에 그동안 살아온 한 세대를 뒤돌아봄으로써 남은 삶을 제대로 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름다운 빛깔들의 원천을 찾아 떠나는 이번 종주산행으로 제 삶이 어떤 색의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싶었습니다.
1)8월8일:육십령-합미봉-남덕유산-삿갓골재
하루 전에 내려와 육십령휴게소에서 묵었기에 아침 일찍 종주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70세인 이 집 할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상이 정갈하고 맛이 있어 오랜만에 포식을 했습니다. 준비해준 도시락을 챙겨 넣고 휴게소를 나와 고개 마루 팔각정에 올라서자 장계 쪽으로 산자락을 가득 메운 운해가 꿈틀대는 역동적인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침6시22분 육십령에서 합미봉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절개면을 오르는 사이 이슬로 옷자락을 약간 적셨지만 이내 길이 넓어졌고 날씨가 쾌청해 더 이상 젖지 않은 데다 간간히 산 밑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 선선해 아침 산행이 상쾌했습니다.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다가 헬기장을 지나 합미봉이 가까워지자 암릉 길이 가팔랐습니다. 육십령 출발 48분 만에 올라선 헬기장 바로 앞 무명봉에서 첫 번째 휴식을 취했습니다. 복더위에 지쳐 주저앉는 일이 없도록 최대로 쉬는 횟수와 시간을 늘려 잡고자 아침 일찍 서둘렀기에 재작년 9월에 육십령-삿갓골재 구간을 8시간 남짓 걸려 저 혼자 종주했을 때 보다 시간이 충분해 마음 편히 쉬었습니다.
7시56분 해발1,013미터의 합미봉에 올라섰습니다.
남쪽 먼발치로 3년 전 영업사원들과 함께 올랐던 장안산이 선명하게 보이자 저의 무능으로 다섯 해를 경영해온 회사를 접고 함께 일한 직원들과 헤어져야 했던 작년 여름의 뼈아픈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로프를 붙잡고 급경사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선 다음 오름길이 대체로 편했습니다. 합미봉을 출발해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다다른 무명봉에서 10분을 쉰 후, 다시 15분을 걸어 다다른 덕유교육원 갈림길에서 2.1키로 떨어진 해발1,492미터의 장수덕유산까지 거의 직등길을 걸어 5백미터이상 고도를 높여야 하는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10시 정각 헬기장을 막 지나 25분을 쉬었습니다.
두 예비부부가 한 팀이 되어 설악산을 오르내렸던 30년 전의 단상들이 끊임없이 머리를 스쳐가 자연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8월 한 낮에 용대리를 출발해 백담사를 들러본 다음 영시에서 야영을 한 후 그 다음날 비를 맞으며 봉정암을 오르는 길이 몹시도 가팔랐고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됐습니다. 대청봉에 오른 후 빗속에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기가 겁이나 다시 봉정암으로 되돌아와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아침에 봉정암을 출발하여 가야동 계곡을 따라 오세암으로 내려섰다가 마등령을 넘어 설악동에 도착하기까지 온종일 비를 맞고 나자 예비부부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사랑의 길도 결코 편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25분을 걸어 전망바위에 올라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얼마고 산죽사이로 난 편안한 길을 걸어 표지봉이 세워진 해발1,300미터 지점에서 삿갓재대피소에서 자고 왔다는 한 젊은이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2시24분 해발1,492미터의 장수덕유산을 올랐습니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왼쪽 산 밑으로 100미터 떨어진 샘터를 찾아내려갔으나 부유물이 많고 지저분해 헛걸음을 했습니다. 지도상의 샘터만 믿고 식수준비를 소홀히 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가 쉬운 것은 건기에는 물이 마르는 샘터가 꽤 있고 우기에는 이곳 샘터처럼 지저분해 마실 수 없는 곳도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장수덕유산을 오르는 중 저희들의 등정을 반긴 것은 원추리, 비비추, 물봉선등의 야생화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을이 다가옴을 일러주는 잠자리 떼들이 땅위를 낮게 날며 저희들을 반겨주어 정상을 떠나기가 아쉬웠지만 정남중에 위치한 이글거리는 태양이 부담스러워 바로 정상을 떠나 철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선 다음 고개 마루에서 짐을 풀고 도시락을 들었습니다. 칠십 줄 할머니의 손끝에 어린 정성에다 6시간 동안 걷고 또 걷느라 시장기가 더해져 밥맛이 별미였습니다.
13시45분 해발 1,507미터의 남덕유산에 올라섰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자 후드득 비가 뿌리기 시작했지만 금방 그쳐 꺼내들었던 비옷을 다시 쳐 넣었습니다. 월성치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남덕유산으로 오르는 길이 급했습니다. 정상 바로 아래 전망대를 설치하는 공사 팀들이 야영을 하고 있어 조금은 어수선 했지만 눈에 익은 거망산-황석산의 연봉들이 남동쪽 멀리 자리 잡고 있어 반가웠습니다. 햇살을 식혀주는 시원한 골바람을 맞으며 십 수분을 쉬는 동안 잠자리가 벌레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치가는 길은 멀었지만 편안했습니다. 13시58분에 정상에 내려서 몇 개의 봉우리를 왼쪽으로 옆 지르는 동안 그늘 길이 선선해 걷기에 좋았습니다. 1시간 가까이 걸어 내려선 월성치에서 7-8분을 쉬는 동안 오른쪽 산 아래 황점매표소로 내려서는 분들이 남은 물을 건네줘 고마웠습니다.
15시53분 전망바위에 올라서 장수덕유산에서 남덕유산을 조망했습니다.
해발1,500미터 안 밖의 두 고봉이 1.3키로 떨어져서 서로 마주보며 지내기 시작한 것은 두 봉우리가 자리한 행정구역이 전라도와 경상도라고 정해진 때보다 까마득히 먼 옛날 일이기에 인간사에서 갈등하는 동서 간 지역감정의 잔흔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월성치에서 전망바위로 올라서는 길 중간 중간에 보수공사 차 갖다 놓은 돌 부대주머니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걷기에 불편했습니다. 전망바위를 뜰 즈음 오래 참았던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비가 아닌 것이 분명해 우의를 입고 40분 가까이 걸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해발 1,416미터의 삿갓봉을 오르내리기가 뭣해서 그냥 왼쪽으로 우회했습니다.
16시42분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해 10시간20분 동안의 첫날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텅 빈 대피소에서 저희들이 짐을 푼 지 얼마 되지 않아 포항에 사신다는 부부 한 팀이 도착했고 곧이어 황점으로 하산한다는 한 젊은이가 대피소를 찾았습니다. 땅거미가 막 깃을 펴기 시작한 초저녁어름에 4-50대의 남자 4명이 마지막으로 도착해 총 9명이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문간에 걸터앉아 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한참동안 묵언의 대화를 나누다가 안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습니다.
2)8월9일:삿갓골재-무룡산-백봉암-향적봉-백련사-삼공리
새벽4시경 잠을 깬 후 한참을 뒤척이다가 5시가 다되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라면 2봉에 햇반 1통이 아침메뉴의 전부여서 조리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손수 지은 아침을 들고 나서 모닝커피를 끓여 마신 후 쾌청한 하늘에 밤사이 산 밑으로 밀려났던 구름들이 산자락을 휘돌며 산상복귀를 준비하고 있는 산상의 아침을 탐미했습니다.
아침6시30분 대피소를 출발했습니다.
밤새 맺힌 이슬을 듬뿍 머금은 길섶의 잡목들이 잠깐 동안에 바지가랑이를 다 적셨고 바로 등산화도 흠뻑 적셔버렸습니다. 이제껏 걸은 길은 키가 큰 나무 밑으로 나있는 전형적인 대간 길이어서 옷이 젖지 않았는데 삿갓골재에서 무룡산으로 오르는 길은 싸리 등의 관목과 산죽들이 길을 덮어 이들을 헤쳐 나가느라 위아래 옷들이 흥건히 젖었고 덕분에 부지런히 걸어 올랐어도 더운 줄 몰랐습니다. 무룡산에 오르는 중 떼 지어 피어있는 원추리꽃잎에서 화사한 노랑 빛깔을 떠왔음을 확인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서있는 동안 잠자리 한마리가 손끝에 앉아 쉬고 있다가 산등성에 가지런히 서있는 고사목을 찍느라 손가락을 움직이자 날라 가버리는 것을 보고 저도 이제 덕유산의 한 식구가 된 듯싶어 기뻤습니다. 대피소 출발 50분이 다되어 헬기장을 지났고 암릉 길을 돌아 걸어 무룡산에 다다랐습니다. 무룡산에 오르는 중 이교수에게서 다소곳이 피어있는 붉은 색의 작은 꽃이 물봉선이라고 현장에서 확인받았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꽃들도 이름을 알고 나면 눈길이 더 가고 정이 들기에 현장에서 이름을 확인하고자 도감을 갖고 다니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7시35분 해발1,492미터의 무룡산에 올라섰습니다.
무룡산 정상은 나무가 하나도 없는 암봉이어서 전망이 뛰어난 곳인데도 안개가 짙게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4-5분을 쉰 후 바로 동엽령으로 향했습니다. 산죽 길을 헤치고 나가느라 옷과 구두가 몽땅 젖었지만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발걸음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무룡산에서 한 시간 가까이 걸어 이정표가 서있는 돌탑 봉우리에 도착해 14분을 쉬었습니다. 향적봉을 6.2키로 남겨둔 돌탑봉우리에서 왼쪽 산 밑에서 올라와 오른 쪽 산 아래로 넘어가는 구름사이를 헤집고 나선 햇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새털구름도 흰눈과 마찬가지로 하얀 빛깔의 원천임을 널리 알리고자 구름사진을 남겼습니다.
9시50분 몇 봉우리를 넘어 동엽령으로 내려서자 안성 쪽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아침 일찍 향적봉을 출발했다는 젊은이들 3명은 덕유산 종주를 다음으로 미루고 동엽령에서 안성으로 하산했고 저희들은 대간 길 마루금을 밟으며 향적봉으로 향했습니다. 날 등을 힘들게 올라 한 봉우리를 왼쪽으로 돌며 그늘 길로 들어섰습니다. 현 시국에 관해 입장을 달리하는 이 교수에 보수적인 제 의견을 피력했고 그는 자식걱정을 하는 한 아비의 생각을 제게 토로했습니다. 30년 전에 설악산에서 나눈 대화의 주 소재가 사랑과 민주화, 그리고 직장일이었는데 어느새 자식얘기로 바뀌었나 생각하자 조금은 씁쓰름했습니다. 봉우리를 돌아가는 길에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10분을 쉬면서 찰떡파이로 시장기를 달랜 후 진땀을 흘려가며 백암봉에 올랐습니다.
11시30분 해발1,490미터의 백암봉 삼거리에 올랐습니다.
육십령에서 밟아온 대간 길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틀어 빼재로 이어지고 저희들은 대간 길과 헤어지고 정북방향의 향적봉으로 향했습니다. 백암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길은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가릴 그늘이 전혀 없는 날 등 길입니다만, 원추리, 비비추, 구절초, 산오이풀과 동자꽃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상의 화원 길이어서 걸을 만 했고 구름이 스쳐 지날 때는 시원했습니다.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산상의 화원을 보호하고자 쳐놓은 가드 라인을 따라 걸으며 아름다운 빛깔들은 모두 우리의 산천에서 떠왔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해발 1,594미터의 중봉에 이르러 어느 한분의 도움으로 비로소 이교수와 함께 덕유산 종주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중봉에서 휘돌아본 덕유산은 오지랖이 넓기도 넓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향적봉에 이르는 덕유평전을 걸으면서 덕유산이 이름그대로 넉넉한 산이라는 느낌이 가슴속 깊이 전해졌습니다.
12시26봉 덕유산 최고봉인 해발 1,614미터의 향적봉에 올라섰습니다.
무주레조트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인산인해를 이루어 시끌벅적했던 지난 1월에 비하면 무척 한산했습니다. 향적봉을 배경삼아 덕유산도 지리산보다 못하지 않는 거산이라고 감탄하는 이 교수의 기뻐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후 향적봉대피소로 내려갔습니다. 대피소에서 라면을 사서 끓여 드는 동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래저래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대피소에서 민적거리다가 그칠 낌새가 보여 짐을 챙겨 하산준비를 했습니다.
14시2분 대피소를 출발했습니다.
구천동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다가 큰 맘 먹고 향적봉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지난 큰비로 파여 나간 산길을 다듬는 보수공사가 덕유산 곳곳에서 진행 중에 있어 조금은 어수선했습니다. 부도가 안치된 능선 길을 지나 백련사로 내려서는데 1시간 25분이 걸렸습니다. 백련사에서 조금 더 걷다가 계곡으로 내려서 발을 닦으며 20분 넘게 쉬었습니다.
17시10분 삼공리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백련사에서 삼공리까지는 바람을 가르며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이번에는 구천동 계곡에서 물장난도 하며 제대로 쉬어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향적봉대피소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려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피서객들이 자리 잡은 구천동 계곡에 연신해서 눈길만 주고 쏜살같이 지나쳤습니다. 21시간의 긴 산행을 마치고 삼공리에서 맥주 한 캔으로 자축 세레머니를 가졌습니다.
산행 길에 오르기 전에는 복더위가 염려되었지만 막상 종주 길에 오르고 나서는 그리 더운 줄 몰랐습니다.
종주길이 고도가 높은 능선 길이어서 골바람이 불어와 시원했고 소나기가 한 차례씩 내려 지열을 식혀준 덕분만은 아니었습니다. 짙푸른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더할 수 없이 싱그러웠고 아름다운 빛깔들을 만들고 있는 덕유산의 야생화들과 가까이 해서였습니다. 아름다운 빛깔 모두가 우리의 산천에서 떠왔음을 확인한 21시간의 덕유산종주산행을 탈 없이 함께한 이 교수에 감사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덕유산 (2)
*산행일자:2006. 1. 8일
*소재지 :전북 무주
*산높이 :향적봉1,614미터
*산행코스:안성매표소-칠연계곡-동엽령-향적봉-백련사-삼공리주차장
*산행시간:10시13분-16시35분(6시간22분)
*동행 :송백산악회
어제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명산순례에 나섰습니다.
대간과 정맥 종주에 빠져 능선 길만 타느라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계곡에 내려앉은 한 겨울을 만나고 싶어서 눈 많기로는 설악에 버금갈 전북 무주의 덕유산을 찾았습니다. 고려 말 이 산에 우글거리던 맹수들이 수도하는 맹장 이성계에 전혀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해서 덕이 풍부하다 하여 덕유산으로 이름 붙여졌다는 이 산은 향적봉을 주봉으로 동으로는 황석산과 거망산, 남으로는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 그리고 북으로 적상산을 말산으로 거느리고 있는 오지랖이 넓기로 이름난 산입니다. 그러기에 정감록은 이 산 아래 북쪽 동방 상동을 십승지 중 여덟 번째로 꼽았고, 50년대에 빨치산들이 이산으로 숨어들어와 암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두대간 종주기를 두 권의 시집으로 대신 한 대간 시인 이 성부님이 덕유산 구간을 지나면서 읊은 그의 시 “붉은 악마”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육십년대 말의 어느날 내 친구는
영문도 모르고 낯선 사람과 마주 앉았다
내 친구는 젊은 화가였는데
포스터에 왜 그렇게 빨간색을 많이 칠했냐고
그 사람이 물었다
안티레드(Anti-red)가 한 사회를 풍미했던 질곡의 60년대에 빨간 색을 많이 칠하고서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내 친구”는 팔십년대의 어느 가을 날 “덕유산의 불타는 단풍을 화폭에” 옮겼으며 이를 보고 얼굴이 화끈거린 시인이, “요즘 축구장에서는 붉은 악마가 물결치므로” 덩달아 가슴이 달아오른다는 그 시인이 그의 시 “붉은 안마”를 이렇게 맺습니다.
아름다운 빛깔들 모두
우리나라 산천에서 떠온 것임을 알겠다
반세기 넘게 계속된 레드색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만난 아름다운 빛깔이 덕유산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산천에서 떠온 것임을 일러준 그의 발자취를 따라 어제 저도 덕유산을 올랐습니다.
아침10시13분 덕유산 서쪽자락에 자리 잡은 안성매표소를 지나 동엽령으로 향했습니다.
예상보다 포근한 날씨에 설산등반을 즐기겠다는 산객들로 붐벼 매표소에서 얼마고 기다렸다 출발한 저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계곡 옆에 뿌리내린 고로쇠나무였습니다. 국립공원안에 자라고 있는 수목들은 명찰을 달고 있어 통성명하기가 한결 수월해 좋습니다. 칠연계곡을 지나며 물푸레나무, 느릅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잣나무, 물박달나무 등과 차례로 새해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매표소 출발 5분 후 눈 덮인 얼음 속으로 몸을 숨긴 작은 못 문덕소를 지났는데 문덕소 바로 위의 바위 돌에 자리를 튼 흰 눈들이 웬만한 바람에는 꿈쩍 않을 정도로 잘 다져진 듯 보여 이 겨울 끝 무렵에는 바위의 일부로 굳어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엽령 3.3키로 전방지점에서 아취형의 나무다리를 건너 칠연계곡을 따라 올랐습니다. 매표소 출발 40분이 지나 다다른 동엽령 2.2키로 전방지점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칠연계곡과 헤어지고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 했습니다. 다리란 고개와 마찬가지로 현재 발 딛고 있는 오늘과 새롭게 발 딛어야 할 내일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리를 건너거나 고개를 넘을 때 마다 다리건너 또 고개 넘어 펼쳐질 미래가 궁금해 달려가 보고싶어 합니다.
11시12분 계곡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능선에 오르기 얼마 전 자작나무과의 서어나무를 만났습니다. 식물군집의 마지막 천이단계에 있어 매우 안정된 산림군락인 극상림을 구성하여 산림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서어나무는 근육나무(Muscle tree)라 불릴 만큼 검은 얼룩이 있는 회색의 수피가 울퉁불퉁 했습니다. 능선을 오르자 따사로운 햇빛이 눈꽃들을 녹여 조만간 상고대로 결실할 것 같았습니다. 고도가 높아지자 눈꽃이 모든 나뭇가지에 만개해 이 산을 빛내는 것은 순백의 흰색뿐이었습니다.
12시2분 해발 1,320미터의 동엽령에 올라서자 비로소 바람이 차게 느껴졌습니다.
무룡산과 백암봉의 중간쯤에 자리한 밋밋한 안부인 동엽령은 2004년 9월 대간 종주로 지났던 곳인데 온 산이 하얗게 변했어도 바람만은 여전히 거셌습니다. 부지런히 동엽령 가까이의 눈꽃 단지를 사진 찍고 칠연계곡과 덕산리의 넓은 뜰도 카메라에 옮겨 실은 후 귤2개를 꺼내 먹고 가리개로 얼굴을 가린 다음 북쪽의 백암봉으로 향했습니다. 그새 손끝이 아려와 번갈아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체온으로 덥혀가며 전진하던 중 바람이 비껴가는 길가에서 식사 중인 이 산악회의 회원들을 만나 선채로 인절미를 들어 점심 한 끼를 때웠습니다.
13시11분 해발1,420미터의 송계삼거리의 백암봉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자 남동쪽에 자리 잡은 지리산 주능선이 너무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 기뻤습니다. 지난 번 대간 종주 시는 오가는 구름이 비를 뿌리곤 해 시야가 막혔었는데 쾌청한 겨울날씨로 지리산 연봉들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빼재에서 이곳까지 대간 길을 종주하고자 빼재로 향한 친구 소식이 궁금해 휴대폰을 걸어봤지만 전화가 꺼져 있어 통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중봉에 오르는 중 햇볕이 따사로워 얼굴가리개를 벗었습니다. 지난 주 설악산을 오르내리며 어느 한 순간도 가리개를 벗을 만큼 따뜻함을 느껴보지 못했었는데 덕유산은 달랐습니다. 이름 그대로 날이 서있는 암봉으로 만들어진 악산의 설악산과 보기에도 널찍하고 풍요로운 육산으로 이루어진 덕유산은 달라도 정말 달랐습니다. 중봉에 오르자 바로 눈앞에 펼쳐진 하얀 눈밭의 덕유평전 여기저기에 굿꿋하게 서있는 주목들은 대청봉의 드센 바람에 못 이겨 키를 잔뜩 낮춘 눈잣나무와 분명하게 대비되었습니다.
14시9분 해발 1,614미터의 향적봉에 올랐습니다.
“아니온 듯 다녀 가서소”라는 팻말을 내걸고 담배 불을 꺼달라고 마이크로 방송하는 대피소관리인이 걱정하고도 남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향적봉을 찾은 것은 무주레조트에서 향적봉 바로 밑에까지 리프트가 오가서였을 것입니다. 안성매표소를 출발할 때부터 산객들이 많다 했으나 향적봉에 이르자 웬만한 시장보다 더 붐벼 1970년 2월 백련사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뚫고 향적봉에 혼자 올랐을 때 들었던 태고의 음향이 새삼 그리워졌습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의 또 다른 이름인 향적목의 군락지라 하여 향적봉으로 불리는 덕유산 정상이 더 이상 황폐화되지 않고 이름그대로 온전하게 천년 만년을 더 가게 하는 일은 국립공원과 산을 아끼는 저희들의 몫일 것입니다. 백련사로 하산하는 길은 미끄럽고 경사진데다 향적봉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 생각만큼 빠르지 못했지만 나뭇꾼님과 안개비님이 동행을 해주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15시11분 백련사를 지났습니다.
대패집나무의 고별인사를 뒤로 하고 부지런히 삼공리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굽이굽이 구천동 계곡의 절경에 한눈을 팔아 발걸음이 늦어졌겠지만 한 겨울 얼음장에 가려진 계곡물에 눈이 갈일이 별로 없어 자연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산 이야기가 구천동 계곡의 절경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산하에서 제 산행기를 읽었다는 한 분을 만나 함께 걸어서였습니다. 그 분이 어서 빨리 정회원이 되어서 하이맛 친구의 산행기를 읽어야 수준 높은 산행기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6시35분 삼공리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여니 때와 마찬가지로 꼴찌려니 했는데 제가 25번째라는 대장의 얘기를 듣고 속으로 놀랐습니다. 덕분에 단골 후미인 제가 먼저 출발하는 차에 올라 저녁 8시 반도 안 되어 잠실에 도착하는 이변을 경험했습니다. 당연 하이맛 친구에 전화를 걸어 그의 기도대로 삼겹살 2키로를 감해주신 주님의 고마움에 힘입어 첫 차를 탈 수 있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어제 산행으로 덕유평전을 뒤덮은 순백의 흰눈이 내보여주는 아름다운 빛깔들이 모두 우리의 산천 덕유산에서 떠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레드색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찾은 아름다운 덕유의 빛깔들을 모두 보기 위해서 봄, 여름 , 가을에 이 산을 다시 찾아 들꽃과 나뭇잎, 그리고 붉은 색의 단풍들을 다시 만날 뜻입니다. 포스터에 빨간 색을 너무 적게 칠한다고 떠들어대는 요즈음도 분명한 진리는 아름다운 빛깔들 모두 우리의 머리속이 아닌 우리의 산천에서 떠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산을 찾아 오를 것입니다.
덕유산(1)
*산행일자: 2004년9월16-17일
*소재지 : 전북 무주/장수, 경남 거창/함양
*산높이 : 1,614미터
*산행코스: 육십령-삿갓재피소-향적봉-신풍령(36.3키로)
9월16일:육십령-할미봉-장수덕유-남덕유-삿갓봉-삿갓재대피소
9월17일:삿갓재대피소-백암봉-향적봉-백암봉-지봉-신풍령
*산행시간: 총 19시간47분
9월16일 8시30분-16시47분(8 시간17분)
9월17일 6시 5분-17시35분(11시간30분)
이제야 원 없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봄을 보낼 수 없었던 시인 김 영랑 님처럼 저도 높고 깊은 고산나들이를 다녀오지 않고서는 여름을 그냥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작년 여름에는 키나바루산을, 작년 여름에는 백두산을 다녀왔는데 올해는 회사 일로 여름휴가를 내지 못해 이렇다 할 고산나들이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러다가 앉아서 겨울을 맞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지난주에 휴가를 얻어 한반도 남단에서 네 번째로 높은 덕유산을 이틀간 종주하고 돌아왔습니다.
육십령에서 시작하여 삿갓재에서 하루를 묵은 후 정상인 향적봉을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구천동으로 하산하지 않고 백암봉으로 되돌아 와 백두대간을 따라 신풍령까지 총 36.3키로를 걸어 덕유산 종주를 마쳤습니다. 그 동안 저는 5차례 향적봉에 올랐으나 모두가 구천동 삼공리에서 시작하여 삼공리로 되돌아오는 원점 왕복산행이거나 회귀산행이어서 덕유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에 언제고 한번은 종주를 해보겠다고 별러 왔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산 속에서 하루를 묵어가며 여러 봉우리들을 원 없이 오르내리고 나니 그 동안 종주 한번 못했던 덕유산에 느껴온 미안함을 모두 떨구어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9월15일 밤11시 함양가는 심야버스에 몸을 실고 서울을 빠져나갔습니다.
주로 안내산악회를 따라 지방의 산들을 다녀왔기에 이번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원거리 산행 길에 나서기는 십 수년만에 처음입니다. 9월16일 새벽 2시에 함양에 도착, 찜질방에서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 6시20분에 서상으로 출발하는 첫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7시30분 서상에 도착, 반찬이 무려 11가지나 나오는 5천 원 짜리 백반을 들고나서 택시로 육십령까지 이동했습니다.
2004년 9월 16일 목요일 비온 후 개임
8시 30분 육십령에서 할미봉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백두대간에 올라섰습니다.
육십령휴게소에서 배낭을 챙기다가 오늘 새벽 버스에 모자를 두고 내린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휴게소의 주인 할머니가 내준 모자를 새로 사 써 안경에 들이치는 비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9시 28분 헬기장을 지나 해발 930미터 지점의 능선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서봉 까지는 오름 새가 계속될 것이시간 가량 걷고 쉬는 나름대로의 산행리듬을 지키고자 비를 맞으며 쉬었습니다. 할미봉을 오르는 암릉 길이 위험하다는데 줄기차게 내리는 큰비로 더욱 더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9시 42분 걱정했던 할미봉을 무사히 올랐습니다.
짙게 깔린 운무로 시계가 거의 제로 상태여서 해발 1,026미터에 세워진 안내판에 소개된 지리산 천왕봉은 물론 그 밖의 어느 산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할미봉에 오르기 직전의 7-8분간은 암릉 길이 조심스러웠지만 그 후 한시간 가량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비교적 편안한 산행을 했습니다.
11시 2분 육십령에서 5.2키로를 걸어 오른 덕유교육원 갈림길을 지났는데 아직도 3.6키로가 남은 남덕유까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갈림길에 다다르기 5분전에 소나무밭에서 잠시 짐을 풀고 떡으로 요기를 하여 본격적인 오름 길에 대비했습니다.
11시 57분 해발 1,235미터 지점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추겼습니다.
쉬는 짬짬이 떡 몇 조각을 꺼내 먹는 것이 몸에 뱄는데 따로 긴 식사시간을 낼 필요가 없어 좋아합니다. 빗줄기가 약해지고 비를 피해 숨어 있던 새들이 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의 빨라진 몸놀림을 잡아내고자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는 저의 손놀림도 빨라졌습니다.
12시 45분 일명 장수덕유산으로도 불리는 해발1,492미터의 서봉에 올라섰습니다.
서봉 직전의 돌무더기가 눈을 끌었고 이곳에 떼를 지어 울어대는 산새들이 제 머리 위를 낮게 날아 시위를 하는 듯 했습니다. 꾸륵 꾸륵 울어대는 새소리의 섬찍함 과는 달리 까만 꽁지에 연이은 몸통 뒷부분의 하얀 털과 까치 만한 크기의 몸통의 주황색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새들의 비상하는 모습에 잠시 넋을 뺏겼습니다. 길에서 0.1키로 떨어진 약수터를 찾지 못하고 되돌아와 준비해간 식수로 땀 보충을 하는 동안 태양이 빠끔히 얼굴을 내 보였지만 그도 잠시였습니다.
13시 42분 육십령에서 8.8키로를 걸어 해발 1,507미터의 남덕유산을 올랐습니다.
작년 2월 영각사에서 오를 때도 눈이 쌓인 계단 길을 아주 힘들게 올랐는데 이번에는 그 때보다 코스가 훨씬 길어 힘에 부쳤지만 정상 가까이에 흠뻑 비를 맞고 피어 있는 초가을의 야생화들이 저를 반겨 피로감을 덜었습니다. 이제 제우스의 심술도 막을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태양이 서봉에서 보다 긴 시간을 머물렀기에 막 시작된 먼발치의 단풍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4시 40분 해발 1,240미터의 월성재에 다다랐습니다.
작년 2월에는 이곳에서 횡계매표소로 하산했는데 이번에는 똑바로 삿갓봉으로 향했습니다. 삿갓봉에 이르는 길도 경사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비가 그치어 운무에 가렸던 산자락이 제 모습을 내보여 주었기에 이를 카메라에 옮기느라 짬짬이 쉬어가며 산행을 했습니다.
16시 12분 해발 1,419미터의 삿갓봉에 섰습니다.
표지석밑에 개미들이 득시글대어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오전 내내 극성을 부렸던 비구름이 태양에 자리물림을 확실히 한 모양입니다. 지나온 남덕유와 서봉을 잇는 능선의 실루엣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16시 47분 해발 1,280미터의 삿갓재 대피소로 내려섰습니다.
육십령에서 13.1키로를 8시간 15분간 걸어 다다른 삿갓재대피소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대피소에서 컵 라면 2통을 사먹고 나니 시장기가 가셨습니다. 텅 빈 대피소의 큰 방을 저 혼자 썼는데 남의 눈치를 볼일이 없어 방안에다 비에 젖은 옷가지와 양말을 짜 널어 말렸습니다.
밤이 되자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높은 산 위에서 얼마 만에 쳐다보는 별들인가 헤아리다 자연 먼저간 집사람이 생각났습니다. 1975년 지리산의 제석당에서 야영을 하며 함께 지켜본 그 별들이 오늘도 여전히 빛났습니다. 제게는 그녀의 삶이 별처럼 빛나 보였기에 하늘의 별들에 하늘나라에 먼저간 그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2004년 9월 17일 금요일 맑은 후 비
새벽5시 20분에 단잠을 깼습니다.
짐을 챙긴 후 밖으로 나가 덕유산 자락을 뒤덮은 운해를 내려다보니 잠시 제가 마치 제우스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해 오름이 봉우리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주위의 구름들이 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지켜보며 산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이리도 웅장하고 아름다운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아침 식사로 컵 라면을 사들고 6시 5분 대피소를 출발했습니다.
이슬을 머금고 햇살을 맞는 야생화의 아침인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카메라를 꺼내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자 태양이 구름을 뚫고 완전히 올라서 산 속을 구석구석 내 비췄습니다. 밤새 말린 바지는 이슬로 다 젖어 버렸고 양말도 구두 속으로 스며든 물기로 마찬가지로 젖었습니다. 어제 온종일 물기를 담고 있어야 했던 두 발이 오늘도 젖어 있어야 하니 아무리 두발이 내 몸의 일부라 해도 정말 미안한 노릇입니다.
7시 16분 해발 1,492미터의 무룡산에 올랐습니다.
학습효과인지 아니면 벌써 추억 속에 자리잡아서인지 알 수 없으나 무룡산 정상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연봉들이 앞으로 오를 봉우리들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해발 1,350미터대의 케륜이 쌓여 있는 봉우리를 지나자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지금껏 나 혼자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의 발자국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9시 11분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어 해발 1,320미터의 동엽령에 이르렀습니다.
칠연계곡과 병곡에서 불어 올라오는 두 바람이 만나는 이곳 동엽령에서 10여분간 숨을 돌렸습니다. 축축한 옷 속에 숨겨진 제 살갗이 이 시원한 바람을 용케도 알아내고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내내 산자락을 가리웠던 운해가 이제 서서히 산 위로 올라오고 있어 그나마 조망할 수 있었던 산봉우리가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10시 25분 갈대밭의 능선을 지나 도착한 백암봉의 송계사 삼거리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천봉산악회에서 세운 백암봉 표지석에는 이곳의 높이가 1,503미터로 표기되어 있는데 안내판의 1,420미터가 맞는 것 같습니다. 고생하는 두발을 위해 양말을 벗어 물기를 짜냈습니다.
어제 밤부터 고민해온 것은 향적봉에서 구천동으로 하산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이곳 백암봉으로 돌아와 신풍령으로 내달려 백두대간을 탈것인가였는데 여기서도 결론을 못 내린 채 향적봉으로 향했습니다.
11시 11분 해발 1,594미터의 중봉에 다다르자 넓디넓은 덕유평전이 눈 안에 들어 왔습니다.
아고산대인 덕유평전은 그리 키가 크지 않은 철쭉, 진달래등의 나무들과 풀꽃 원추리가 자라고 있는데 한번 훼손되면 복구가 어렵다는 안내문을 눈 여겨 읽었습니다. 살아있는 주목나무와 고사목이 되 버린 죽어있는 주목나무가 여기 저기 눈에 띄었고 구상나무 역시 잘 자라고 있어 마치 지리산의 세석평전을 옮겨 놓은 듯 했습니다.
11시 39분 덕유산 정상인 해발1,614미터의 향적봉에 올라섰습니다.
중봉을 조금 지나 이번 산행 중 처음으로 향적봉에서 하산하는 4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향적봉에 올라서자 무주리조트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분들로 붐볐습니다. 정상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지리산과 덕유산의 말 산들, 그리고 대둔산, 운장산 모두 조감할 수 있다고 적혀있는데 오늘도 구름에 가려 이 산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향적봉대피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향적봉대피소에서 맥주를 사들어 덕유산등정을 자축했습니다.
대피소의 목판에 새겨진 쓰레기를 갖고 가라는 내용의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는 시적인 문구를 보고 대피소를 지키는 분의 여유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들면서 신풍령까지 종주를 하기로 결심하고 페트병에 물을 갈아 채워 긴 시간의 산행을 준비했습니다.
12시 4분 향적봉을 뒤로하고 대피소를 출발했습니다.
55분 걸리던 길을 35분만에 되돌아가 12시 39분에 도착한 백암봉에서 왼쪽으로 길을 꺾어 횡경재로 내달렸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정말 빨리 달렸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지도에는 횡경재까지만 산행시간이 적혀 있어 신풍령까지 거리가 얼마이고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는 지 알 수 없기에 불안했지만, 지도상의 거리를 목측해 보니 백암봉에서 신풍령까지 12키로 가량 될 것 같아 마음속으로 종주거리를 12키로로 정하고 500미터마다 세워진 표지봉을 세어가며 남은 거리를 헤아렸습니다.
13시 45분 해발1,350미터의 횡경재에 도착했습니다.
향적봉대피소에서 5.2키로 되는 산길을 1시간 41분만에 걸었으니 시속 3키로로 내달린 셈입니다. 여기서 지봉까지는 대체로 오름 길이어서 그리 속력을 내지 못했습니다. 지봉안부에서 본격적으로 오름길이 시작됐습니다.
14시 35분 해발 1,343미터의 지봉에 도착했습니다.
거창군에서 세운 표지석에는 못봉으로 적혀져 있어 지봉의 뜻풀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 표지판에 처음으로 신풍령까지 거리가 6.1키로로 안내되었습니다. 백암봉에서 4.9키로를 걸어 이곳까지 왔으니 백암봉에서 신풍령까지 총거리는 11키로로 제가 추정한 12키로보다 1키로가 적었습니다. 안개가 산자락을 꽉 채운 것으로 보아 암만해도 큰비가 다시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 걷는 초행길이 날씨라도 좋아야 덜 어려울 터인데 뜻대로 아니 될 것 같아 서둘러 지봉을 출발했습니다. 그래도 길섶에 피어있는 노란 야생화에 발목이 잡혀 또 다시 카메라를 꺼내 들어 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15시 14분 월음령을 지났습니다.
오늘의 종착지인 신풍령까지 4.7키로가 남아 있어 잘하면 17시안으로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고 자연 발걸음이 느려졌습니다. 미국의 죤 코터 교수가 그의 저서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기술”에서 변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조직원에 위기감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그 대목에 전적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해발 1,188미터의 대봉에 올라서자 빗줄기가 거세졌습니다. 월음령에서 대봉을 쉬지않고 오르느라 상당히 지쳐 있었으나 때맞춰 쏟아지는 비로 제대로 쉬지를 못하고 바로 일어서 내달렸습니다.
16시 20분 해발 1,057미터의 갈미봉에서 쉬지 않고 내달린 것은 힘이 남아서가 아니고 조금 전에 들은 짐승소리가 겁나서였습니다. 갈미봉 100미터 전방의 능선 길을 지나는 중 짐승소리가 나 신경이 쓰였지만 가던 길을 멈출 수 없어 몇 걸음을 더 옮겼습니다. 그러자 그 짐승은 제 모습을 내보이지 않은 채 저의 접근을 막고자 더 큰소리로 경고음을 보내왔습니다. 겁에 질린 저는 차마 짐승의 위치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습니다. 별 수 없이 그 짐승 앞을 지나기를 포기하고 얼마고 되돌아가 산길 밑으로 한참 내려서 짐승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옮겨가 한참 후에 다시 제 길로 올라섰습니다. 그 2-3분 후 다다른 갈미봉에서 쉴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그래도 제게 바로 덤벼들지 않고 경고음을 보내준 그 짐승이 고마웠습니다. 신풍령을 1키로 남겨둔 지점에서 목을 추기고 숨을 돌렸습니다. 그 동안 높고 낮은 여러 봉우리들을 계속해 오르내리느라 많이 지쳤습니다. 앞으로 30분이면 신풍령에 다다를 수 있겠기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지만 쉬면서 남은 떡을 마저 들어 원기를 회복했습니다.
17시 35분 오늘 하루 11시간 반에 걸쳐 23.2키로의 능선을 걸어 기착지인 신풍령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아침 육십령을 출발, 총 36.3키로를 20시간동안 걸어 오늘 저녁 신풍령에 도착함으로써 이틀간의 덕유산 종주를 마무리졌습니다.
산행을 끝낸 후 마시는 맥주 맛이 일품이었는데 휴게소는 물론 주유소도 폐점상태여서 맥주는 고사하고 당장 교통편이 문제였습니다. 다행히도 휴대폰이 터져 택시를 불러 거창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거제-무주간 신풍령을 지나는 차량이 격감하여 휴게소가 문을 닫았다는 택시 기사 분의 얘기가 변화의 위력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덕유산은 역시 이름그대로 넉넉하고 후덕해 보였습니다.
하루하루를 숨가쁘게 살아온 저를 이틀간이나 넓은 가슴으로 안아준 덕유산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종주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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