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6.태백산 산행기(1-4)

시인마뇽 2007. 1. 2. 17:36

   

                                                                    태백산(4)

 

 

                                          *산행일자:2015. 2. 28일(토)

                                          *산높이 :태백산1,567m

                                          *소재지 :강원 태백/영월

                                          *산행코스:유일사통제소-고개쉼터-장군봉-반재-당골상가

                                          *산행시간:10시22분-15시45분(5시간23분)

                                          *동행 :경동고24회 명백회원 22명

 

 

 

 

  2월 마지막 날 그다지 춥지 않았던 올 겨울을 전송한 곳은 강원도의 태백산입니다. 고교동창들과 함께 오른 태백산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 100산의 한 산으로 남한에서 7번째로 높은 고산입니다. 눈이 좋기로 전국 최고로 평가되는 태백산은 한 겨울에는 등산로가 인산인해를 이루어 시즌이 끝나는 2월말로 날짜를 잡아 올랐습니다. 여전히 등산로가 붐볐지만 겨울 내내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남아 있어 올 들어 최고의 설산산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날씨도 풀리고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아 모처럼 여유롭게 즐기며 산행을 했습니다.

 

 

  오전 10시22분 유일사통제소를 출발했습니다. 명산100산을 오르는 경동고24회 산모임인 명백회의 집행진이 바뀌고 처음 나선 이번 나들이에 22명이 함께 한 것은 근래 보기 드문  대성황입니다. 아침7시가 조금 지나 서울의 양재를 출발한 버스가 화방재를 넘은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도착한 유일사통제소는 태백산 산행을 채비하는 산객들로 북적댔습니다. 크램폰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회장님의 안내와는 달리 통제소를 출발해 3-4백m를 걸어 오르자 미끄러운 눈길이 시작되어 잠시 멈춰 크램폰을 꺼내 찼습니다. 이어지는 오름 길은 잔설이 쌓여 있는 하얀 눈길이어서 겨울 전송 산행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11시53분 오른쪽 아래로 유일사 길이 갈리는 고개쉼터에 이르러 백두대간 길에 들어섰습니다. 아직은 눈이 다 녹지 않고 상당량 남아 있으리라는 판단이 틀리지 않아 오름 길의 태백산은 하얀 눈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 온산이 환했습니다. 산중턱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의 유일사 길을 버리고 왼쪽 길로 계속 올라 표지목이 세워진 고개쉼터에 이르렀습니다. 화방재 길과 만나는 고개쉼터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백두대간 길이어서 꽤 여러 번 밟은 길이지만 여전히 반갑고 새로웠습니다. 생각보다 푸근한 날씨로 가져간 여벌의 겨울옷을 껴입지 않아도 되어 몸놀림이 한결 자유로웠습니다.

 

 

  12시41분 해발 1,567m의 태백산 정상봉인 장군봉에 올라섰습니다. 고개쉼터에서 대간 길을 따라 반시간 가량 오르자 능선에 자리한 주목나무들이 저희를 반겼습니다. 2008년 1월1일 해돋이를 보고자 이규성교수와 서중원 전회장 등 세 명이 함께 밤을 도와 이 산을 찾아 오른 일이 있습니다. 화방재를 출발해 장군봉에 이르기까지 내내 살을 에는 추위에 엄청 시달리면서도 이 산의 명품인 주목그루들을 카메라에 옮긴 이규성교수는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아 주목나무를 찍은 명품 사진을 나중에 명백회밴드에  올렸습니다. 바람도 잦아들고 기온도 오른 데다 김주홍 전회장의 즉석 오댕국 서비스까지 더해져 천제단 아래에서 함께 점심을 드는 동안 추운 줄 몰랐습니다.

 

 

  지난 4년간 방송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해서인지, 얼마 전부터 정상의 비석이나 비목에 새겨진 시문(詩文)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태백산을 올랐어도  천제단의 비목에 새겨 넣은 안축(安軸)의 “등태백산(登太白山)”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登太白山

                                                                                   謹齋 安軸  作

 

 

                    直過長空入紫煙        긴 허공 곧게 지나 붉은 안개 속 들어가니

                    始知登了最高巓        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네

                    一丸白日低頭上        둥그렇고 밝은 해가 머리 위에 나직하고

                    四面群山落眼前        사면의 뭇 산들이 눈앞에 내려앉았네

                    身逐飛雲疑駕鶴        몸은 날아가는 구름 쫓아 학을 탄듯하고

                    路懸危磴似梯天        높은 층계 달린 길 하늘의 사다리인 듯

                    雨餘萬壑奔流漲        비온 끝에 온 골짜기 세찬 물 불어나니

                    愁度縈廻五十川        굽이도는 오십천을 건널까 근심 되네

 

 

  안축이 이 산을 오른 1331년에는 오늘처럼 길이 잘 나있었을 리 없고 보면, 해발1,500m가 넘는 태백산의 정상에 오른다는 것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시의 함련(頷聯)과 경련(頸聯)에서 보이는 감탄(?) 섞인 묘사는 조선의 현종 때 이상언(李尙彦)이 지은 유산시 ‘등비로봉(登毗盧峰)’과 비교해보아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登毗盧峰

                                                                                            李尙彦 作

 

 

                                曳杖陟崔嵬       지팡이 이끌고 높고 험한 곳 오르니

                               長風四面來       휘몰아치는 바람 사방에서 불어오네

                               靑天頭上帽       푸른 하늘은 머리 위의 모자요

                               碧海掌中杯       푸른 바다는 손바닥 안의 술잔이네

 

 

  칠언율시의 ‘登太白山’을 지은 안축(安軸, 1282-1348년)은 고려 충숙왕 때 강릉도존무사를 지낸 관료이자 유학자입니다. 안축이 우리 문학사에 이름을 올린 것은 그가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 ‘관동별곡’과 ‘죽계별곡’ 덕분일 것입니다. 안축의 두 작품은 한림별곡과 더불어 총 세 작품 밖에 전해지지 않는 고려의 경기체가여서 문학사적 가치가 높다 하겠습니다.

 

 

  경기체가(景幾體歌)란 고려 고종 때의 제유(諸儒)가 지었다는 ‘한림별곡’의 내용 중 되풀이 되는 ‘景긔 엇더하니잇고’와 ‘景幾何如’에서 이름을 따온 문학 갈래입니다.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문학통사’에서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를 기준해 서정, 교술, 서사와 희곡으로 문학을 갈래짓고, 경기체가를 작품외적 개입으로 자아의 세계화가 이루어진다 하여 교술시로 분류했습니다. 조선시대에 성행된 가사(歌辭)도 경기체가와 마찬가지로 교술시로 분류됐는데, 경기체가와 가사 등 교술시가 모두 사라진 것이 현대문학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비문의 내용 중 안축이 “경기체가이며 가사문학인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을 지어 국문학발전에도 기여했으며”라는 부분은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이 경가체가인 것은 맞으나 고려 말에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꽃을 피운 가사(歌辭)와는 무관하므로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13시35분 천제단을 출발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대다수가 문수봉으로 향해 저와 같이 단종비각을 들른 일행은 많지 않았습니다. 천제단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내려가 하얀 눈이 받쳐주어 더욱 고색이 창연해 보이는 단종비각과 망경사를 사진 찍었습니다. 태백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백두대간 길의 소백산 고치령에도 단종을 모시는 비각이 세워졌는데 이 비각은 소백산 아래 순흥에서 단종복위를 꾀한 금성대군도 같이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절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망경사는 그 해발고도가 1,470m대입니다. 바로 위 태백산 정상은 천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토속신앙의 중심지여서 이곳에 사찰이 발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합니다. 조선 효종 8년인 1657년 충암스님이 천제를 지내는 천왕사(天王祀)를 불사르고 그 아래 용정 옆에 암자를 짓고 나서 봉화 문수산의 공벽암에서 문수보살석상을 모셔와 봉안한 것이 망경사라 하는데, 그 당시 천왕사를 불사른 것이 문제되지 않은 것은 천제단에 소를 공물로 바치는 것이 인근 백성들에 엄청난 민폐여서 그랬을 것입니다.  용정을 지나 북동쪽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도 눈이 쌓여 제법 미끄러웠습니다.

 

 

  14시27분 반재를 지났습니다. 왼쪽으로 백단사 통제소로 가는 길이 갈리는 반재가 당골에서 정상에 오르는 길의 반쯤 되는 곳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합니다. 가파른 길을 조심해서 내려오느라 신경을 써서인지 경사 길이 끝나는 반재에 이르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김주홍 전회장과 이기후 현회장의 인수인계가 유별난 것은 전 회장은 내려오는 길에서 사진을 찍다가 미끄러졌고 현 회장은 반재에서 철제 표지봉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문수봉으로 돌아오는 길과 만나는 다리 위를 지나자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와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감지했습니다.

 

 

 

  15시45분 당골상가에 도착해 태백산 산행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하산 길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단군성전입니다. 삼국유사에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고 기록되어 있다하여 여기 태백산을 환웅의 아들인 단군과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은 태백산을 “즉 지금의 묘향산”이라고 주를 달았고, 역사학자 서대석 교수는 태백산을 백두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태백산의 천제단이 단군에 제사지내는 곳이라고 명확히 언급한 지리지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곳에 단군성전을 지은 것을 시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나라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을 모시는 곳이 남의 나라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님을 모시는 곳보다 그 숫자가 적어도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문수봉 팀이 저희보다 먼저 내려와 기대했던 석탄박물관탐방을 다음으로 미룬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당골상가의 한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마친 후 17시경 서울로 출발해 21시경 양재에 도착했습니다. 이기후/강치환 신임회장단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과문한 탓으로 선조들이 남긴 태백산의 유산기(遊山記)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릅니다만, 가까운 소백산보다 훨씬 적은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읽은 태백산 유산기는 조선의 화가 이인상(李麟祥, 1710-1760년)이 지은 ‘遊太白山記(유태백산기)’가 유일합니다. 더 자료를 찾아 확인해보아야겠지만 이인상의 산행코스는 아마도 봉화의 각화사를 출발해 차돌배기로 오른 다음 백두대간을 따라 북상하면서 부쇠봉을 거쳐 태백산 정상에 올라선 후 당골로 하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遊太白山記'는 영조11년인 1735년 이인상이 태백산을 3일동안 유람하고 남긴 산행기입니다.  심경호교수는 그의 저서 “산문기행,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에  각화사를 출발하여 천왕당을 거쳐 소도리점으로 하산하기까지 태백산의 설경을 활동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두 개의 견여(肩輿)와 승려 90인이 동원된 이인상의 유산기를 읽노라니 가마를 메고 눈 덮인 길을 낑낑대며 오르는 것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습니다.

 

 

  6년 전 초여름 이규성교수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던 날 김주홍 전회장 등 몇이서 화방재-태백산정상-부쇠봉-차돌배기-각화사코스로 산행하려다 마지막 차돌배기에서 길을 잘 못 들어 석문동으로 하산한 적이 있습니다. '遊太白山記' 코스와 거의 같은 거리의 코스를 마치는데 8시간 반이 채 안 걸렸는데 이인상 일행이 '遊太白山記' 코스 주행에 사흘이나 걸린 것은 눈이 많이 쌓여서만은 아닙니다. 당대로는 흔한 일이었겠지만 가마를 타고 산에 간다는 것도 그렇고 승려를 90명씩이나 데려가는 것은 오늘날 재벌 총수도 꿈꾸지 못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시대의 유산기는 대략 6백여 편입니다. 조선조 5백여년 동안 사대부들이 쓴 산행기가 제가 혼자 쓴 것보다 적은 것으로 보아 등산은 양반들의 전유물로 백성들에 일반화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다행이다 한 것은 등산이 지금처럼 성행했다면 그 민폐를 조선의 백성들이 무슨 수로 감당했으랴 싶어서입니다.

 

 

 

 

                                                                  <산행사진>

 

 

 

 

 

 

 

 

 

 

 

 

 

 

 

 

 

 

 

  • 범솥말
  • 2015.03.0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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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님 그간 안녕하시고요?
    2월을 마지막 보내며 태백산을 찾으셨군요,   경동고 동문들의 팀인 명백회 22명이나 되는 인원이 움직이셨네요? 글 속으로 보아 회장도 바뀌고 새로운 맘으로 태백을 가셨나 봅니다.
    여러차례 올랐던 태백을 다시찾으시고.............
    전과 다른 시각에서 등태백산의 시를 음미하고, 옛날 고관들의 산행도 소개해 주시고 재미가 있네요.
    점가 찜한 길가 비비꼬며 올라간 주목은 누가 안 집어갔던가요?
    독립군 기질을 발휘하여 밤열차를 타고 태백에서 차돌배기까지 대간길이 눈에 선하네요.
    수고많으셨고 담주 금욜뵙겠습니다.
    그동안 적조했습니다. 별고 없으셨지요? 주로 집 근처 수리산을 오릅니다만, 이번에는 태백산을 올랐습니다. 옛 선현들의 유산기도 읽을 만합니다만, 자료를 구하지 못해 많이 못 읽었습니다. 틈나는대로 구해 읽어볼 생각입니다.
    오늘 혼자서 한양도성을 마저 돌았습니다. 13일날 뵙지요.
    시인마뇽님 건강하지요         우리는 근교산행만 하고 있어요
    옛날에 같이 대간종주하고 호남정맥할때는 겁없이 다녔는데
    지금은 어영부영하면서 잘 다녀요 시인마뇽님 생각나면은 종종 들리곤 한답니다
    시인마뇽님을 알고 지낸다는게 늘 감사합니다 늘 안산 즐산 하셔요
    반갑습니다. 별고없으시지요? 2013년 1대간9정맥 종주를 마친 후 저도 산행이 많이 즐어들었습니다. 주로 집근처 수리산을 다니고 드물게 외지 산행을 해 산행기를 올릴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잊지않고 찾아주셔서 졸고를 읽어주시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부군께 안부말씀 올립니다. 늘 안산, 건산하십시오.

     

     

     

     

     

     

                                             태백산(3)


     

                *산행일자:2009. 5. 23일(토)

                *소재지  :강원태백/경북봉화

                *산높이  :장군봉1,568m, 깃대기봉1,382m

                *산행코스:화방재-유일사-천제단-깃대기봉-차돌배기-석문동

                *산행시간:10시19분-18시40분(8시간21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이규성, 김주홍 및 정병기/김의정

     

      

      오랜 지우 이규성동문의 백두대간 종주산행에 동참했습니다.

    2005년 10월 미시령에서 백두대간에 첫 발을 들인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화방재-태백산-차돌배기 구간의 대간 길을 함께 걷고자 4명의 지인들이 우정산행(友情山行)에 나섰습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천왕봉-진부령의 남한 땅 백두대간 길은 도상거리가 684Km이고 실제거리는 1,240Km라 합니다. 한반도의 등뼈인 길고 긴 백두대간 길을 끝까지 종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바쁜 중에 시간을 내야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지만 무엇보다도 체력이 따라줘야 하고 끈기가 받쳐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대학교의 학장으로 봉직하고 있는 바쁜 이 친구가 한 달 전 회갑을 맞은 적지 않은 나이에 백두대간을 모두 밟는다는 것은 충분히 축하받을 만한 일입니다. 대간완주를 현장에서 축하하고자 우정산행에 나선 3명의 동료들이 마침 태백산을 아직 올라본 적이 없어 이번 산행으로 완주의 기쁨에다 태백산등정의 기쁨도  함께 할 것이기에 산행 후 뒤풀이가 은근히 기대됐습니다.


      오전10시19분 화방재를 출발했습니다.

    아침6시30분 동서울터미널에서 태백 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9시50분이 조금 못되어 도착한 태백시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거산의 고봉을 잘 오른 그분이 5년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안전하게 하산했다 했는데 퇴임18개월 만에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아 그분의 하산 길이 꽤나 길고 험난했던 것 같습니다.  태백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꽃방석의 화방재로 옮겼습니다. 해발900m가 넘는 고개 마루에 다다르자 이 고개를 넘나드는 냉랭한 바람이 가슴팍을 파고들어 자켓을 꺼내 입었습니다. 길 건너 어평주유소 옆 들머리로 올라서서 태백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남진 길에 들어섰습니다. 하늘은 곧 바로라도 비를 뿌릴 듯이 잔뜩 찌푸렸고 나뭇잎들은 방금 전에 비를 맞은 듯 물기를 머금고 있어 이제 여름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싶었습니다. 사길령매표소에 이르기까지 10분 남짓한 산 오름이 조금 버거운 듯 했지만 이내 몸이 풀려 걸을 만 했습니다. 울창한 숲을 뚫고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낙엽송이 기고만장해 보였습니다.


      10시52분 산령각에 도착했습니다.

    사길령매표소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며 임도 따라 20분가량 걸어 올랐습니다. 먼 옛날 사길령에 진을 치고 통행 객들의 재물을 약탈한 산적들과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맹수들로 부터 안전하게 이 고개를 넘고자 고개마루에 세워진 당집이 여기 세워진 산령각입니다. 이곳에서 유일사쉼터까지 본격적인 꽃방석이 현란하게 펼쳐졌습니다. 야생화들의 잎파랑이는 모두 녹색이지만 그 꽃들은 저마다 색깔이 달랐으니 사람들 또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다양한 옷으로 자기를 표현하듯이 이 풀꽃들도 꽃잎의 다양한 색깔을 통해 자기 패션을 완성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저보다 하루 늦게 이 산을 오른 한 분이 “한국의 산하”사이트에 27종의 야생화를 사진 찍어 올리면서 그 이름을 하나하나 밝혀 아직도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못하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하얀 꽃의 미나리냉이(?)들이 스쳐가는 바람에 군무를 추고 있어 산상의 화원이 역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왼쪽으로 유일사매표소가 갈리는 안부삼거리에서 과일을 들은 후 얼마간 걸어 올라선 암릉은 최고의 전망지여서 희뿌연 구름 속에 삐죽이 상체를 내보인 암봉들과 짙은 안개에 파묻힌 골짜기들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가 자못 환상적이었습니다.


      11시59분 왼쪽 아래로 차도가 이어지는 유일사쉼터로 내려섰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앞서 세 번이나 그냥 지나친 유일사를 처음으로 들렀습니다. 쉼터에서 오른쪽으로 100m 떨어진 유일사로 내려가는 돌계단 길이 엄청 가팔랐습니다. 날카로운 바위들을 뒤로한 무량수전과 그 아래 무이선원을 둘러본 후 다시 유일사쉼터로 올라 장군봉으로 향했습니다. 유일사쉼터를 지나자 오름 길이 조금 붐볐습니다. 고도가 높아 공기가 냉랭해서인지 저 아래에서는 만개한 철쭉이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했고 얼레지 꽃도 치마를 들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들도 이 산에 하루를 빼놓지 않고 태고의 음향을 전해주느라 많이 지쳤는지 더러는 사람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정상 가까이에서 몸을 비비 틀고 서있는 사스레나무가 저 아래 낙엽송처럼 곧추서지 못하는 것은 태고의 음향을 실어오는 그 바람 때문일 것입니다.


      13시1분 이 산의 최고봉인 해발1,567m의 장군봉에 올라섰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태백산의 천제단은 장군봉의 천상단과 그 아래 표지석이 서 있는 장군단, 그리고 맨 아래 하단의 3개 제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단군께서 이 나라를 연 개천절 날 이곳 천제단에서 천제를 올린다 합니다.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1547봉을 단군의 아들 부소에서 이름을 따와 부소봉으로 부르는 것도 이 산은 함백산이나 소백산과는 달리 단군을 모셔온 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개가 잔뜩 끼어 시야가 트이지 않았고 바람이 거칠게 불어 사진 몇 장만 후딱 찍고 장군단으로 옮겼습니다. 표지석과 삼각점이 세워진 이곳이 정상이 아닌가 싶어 개념도를 보았는데 정상은 분명 방금 지나온 천상단의 봉우리로 나와 있었습니다. 작년 정월 초하룻날 캄캄한 새벽에 잘 못 내려간 망경사 길은 왼쪽으로 나있었고 백두대간 길은 오른쪽 아래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이제껏 보아온 묘지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하단 바로 아래 묘지는 해발고도가 1500m가 넘었습니다. 이 묘지에서 조금 더 내려가 길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13시55분 마지막 남은 대간 길을 마저 밟고자 자리에서 일어나 깃대기봉으로 향했습니다.

    4-5분 후 다다른 삼거리에서 부소봉으로 직진하지 않고 오른 쪽으로 에돌았습니다. 화방석에서 정상에 오르기까지 꽃 사진을 찍느라  너무 시간을 많이 써, 차돌배기에서 대간종주를 마치고 예정한 각화사로 하산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습니다. 꽃쥐손이, 광대수염, 큰앵초 등 서울근교 산에서는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야생화들이 이 산을 처음 오르는 친구들의 발목을 잡아 생각만큼 빠르지 못했지만, 능선 길이 높낮이가 별로 없는 평탄한 길이어서 다치기 전의 종주속도를 거의 다 되찾았습니다. 산림청에서 표지석을 세운 해발1,368m의 깃대기봉에 다다른 시각은 14시53분이었고, 7-8분을 더 걷자 경북 봉화군에서 세운 “깃대기봉”표지석이 또 나타나 헷갈렸지만 안개가 내려앉아 촉촉이 젖어 있는 목재데크 길은 정감 넘쳐 보였습니다.


      16시5분 마지막 구간의 대간 길 끝 지점인 차돌배기에 도착했습니다.

    깃대기봉에서 차돌배기로 가는 길은 앞서 온 길보다 오르내림이 잦아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으며 일행들도 조금은 지친 듯 했습니다. 중간에 1174봉을 넘어서자 안개가 가시자 산속이 훤해졌고 간간이 해가 나기도 했습니다. 산허리를 에워싼 구름이 걷히자 5월의 신록은 싱그럽다 못해 화사하기까지 해 과연 5월은 산속에서도 계절의 여왕다웠습니다. 이번 종주산행의 주인공인 이규성 산우가 저희들보다 조금 앞서 차돌백기에 도착해 남한 땅 백두대간 길을 모두 밟았습니다. 우정산행을 함께 한 모두가 친구의 대간완주를 축하했습니다.  완주를 기뻐하는 모습들을 카메라에 함께 담은 후 왼쪽 아래로 갈리는 각화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17시2분 석문동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늦어도 18시10분 안에 각화사에 도착해야 18시40분에 춘양을 출발하는 영주 행 기차를 탈 수 있고 그래야 당일로 서울로 돌아갈 수 있는데 2시간 만에 하산하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 원래 계획대로 다음 날 새벽 2시40분에 영주를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모처럼 시간이 넉넉해 천천히 하산하면서 쭉쭉 뻗은 춘양목 소나무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해발고도는 700m대로 떨어지고 묘지를 지나자 엄청 가파른 암릉 길이 나타나 그 길로 가다가는 어둡기 전에 각화사에 다다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고 석문동으로 하산코스를 변경했습니다. 지도에는 각화산으로 이어지는 하산 길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야 석문동 계곡을 만나는 것으로 나와 있었지만, 앞장 선 이규성 산우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갔습니다. 뭔가 아니다 싶어 불안해하면서 따라 내려가자 “석문동5Km"의 표지목과 산악회의 표지기가 눈에 띄어 안심했습니다. 이 친구가 제게 차돌배기에서 내려가지 말고 신선봉으로 돌아 진조동으로 내려가자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만했으니, 작년 여름 집중호우로 여기저기서 산사태가 나 계곡길이 뭉개지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계곡 안으로 들어가 바위들을 건너뛰며 드문드문 걸려있는 표지기를 따라 내려가느라 바위 돌에서 미끄러져 왼쪽 무릎이 많이 까졌습니다.


      18시40분 공사장 관리사무소가 들어선 넓은 찻길로 들어섰습니다.

    산사태로 길이 없어진 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은 단순히 힘이 들거나 어려운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해가 난 하늘을 구름이 다시 덮어 계곡에서 어둠이 감지되기 시작했고 간헐적으로 비가 내리는데다 가지고 있는 지도가 맞지 않아 얼마나 남았는지 종잡을 수 없어 이러다가 계곡에서 밤을 맞는 것이 아닌 가 두려웠습니다. 계곡산행 근 1시간 만에 사라진 길이 다시 나타났고 그 20분 쯤 후 넓은 길로 내려서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넓은 길을 20분  가량 걸어 내려가 첫 집인 공사장 사무소를 만나 이곳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금방 가까워지는 정병기 동문이 사무소에 부탁해 춘양까지 사무소 차로 이동했습니다. 반주가 곁들인 뒤풀이를 마치고 찜질방으로 이동해 남은 시간을 죽였습니다. 새벽에 영주를 출발한 기차는 밤을 가르며 기차는 아침6시9분에 청량리역에 도착해 아침을 함께 든 후 해산했습니다. 백두대간완주축하 우정산행은 이렇게 끝났지만 왜 지도가 맞지 않는지 궁금해 하다가 며칠 후 “한국의 산하”사이트에서 신경수님의 산행기를 읽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각화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차돌배기에서 갈리는 것이 아니고 차돌배기에서 태백산 쪽으로 십 수 미터 떨어진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차돌배기에서 갈리는 길은 각화산 길이 아니고 그 서쪽의 석문동행 길이었습니다. 엄벙덤벙 대다가는 지도를 보고도 다른 길로 들어서기 십상이라는 것을 이번 산행에서 배웟습니다.


     

      어느 산이든 오르기보다 내려가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 합니다.

    저도 이번에 석문동으로 하산하는 계곡 길에서 왼쪽 무릎이 바위에 부딪히어 많이 까졌습니다. 또 한 친구도 바위에서 미끄러져 카메라에도 손상이 갔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하산 길에는 항상 이런 저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접하고 낮은 산도 이러한 데 이 나라 최고위직인 대통령이라는 거산이야 오죽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산을 오르고자 무리하게 승천을 시도했다가 오르지도 못하고 떨어진 잠룡들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산위에서 오래 머무르고자 시도한 전직 대통령 거의다가 내려와서 고산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노-전 두 대통령으로 고산후유증이 끝나기를 정말 염원했던 것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참으로 교육적의미가 큰 자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유야 어찌됐던 불행히도 저희들은 또 한분을 고산후유증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고산후유증이 또 다시 대통령을 불행으로 모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까진 무릎이야 이내 소생되겠지만 그리 가버린 분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더욱 애석해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안한 영면을 빕니다.


      친구의 백두대간 완주를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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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2)


           *산행일자:2008. 1. 1일

           *소재지  :강원태백/경북봉화

           *산높이  :태백산1,567m, 문수봉1,517m

           *산행코스:화방재-장군봉-망경사-문수봉-단군성전-당골주차장

           *산행시간:4시20분-9시36분(5시간16분)

           *동행    :경동고24기 이규성/서중원 동문 및 송백산악회회원

     

     

      60년을 기다려 맞이하는 무자년의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동녘의 태양이 정해년의 마지막 어둠을 밀어내고 바다를 박차고 일어나 서서히 산위로 떠오르면서 시작된 태백산의 새아침은 거대한 산줄기의 제 모습이 드러나자 더할 수 없이 힘차 보였습니다. 밤새 매몰차게 휘몰아친 삭풍도, 호남지방에 폭설을 내리게 한 먹구름도 태백산에서 맞는 무자년의 힘찬 해오름을 막지 못했습니다. 1948년 이 땅에 태어난 후 60년을 기다려 다시 맞는 무자년의 새아침이 의미 있는 것은 지나온 60년의 삶보다 이제 다시 시작할 몇 십 년간의 새 삶이 더욱 소중하기 때문으로 친구들과 함께 밤을 뚫고 태백산을 오른 것도 더 높은 곳에서 이 소중한 새아침을 맞고 싶어서였습니다.     


      새벽4시20분 화방재를 출발했습니다.

    정해년 마지막 밤에 잠실을 출발해 4시간여 만에 화방재에 도착했습니다. 여름날 화사했던 꽃방석의 화방재도 그 꽃들을 가을에 실어 보내고 나자 한 겨울 새벽에 시베리아의 냉기가 그 자리를 차고 앉아 그 옛날 시골의 막 내린 가설극장처럼 썰렁했습니다. 분명 달은 중천에 떠있는데 여우비를 빼닮은 싸락눈이 내려 과연 정상에서 무자년의 첫 해오름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산길을 걸어올라 만난 밭을 가로질러 태백산도립공원 사길령매표소를 지났습니다. 이곳에서 산신각까지는 넓은 임도 길로 이어졌습니다. 같이 오른 한 친구가 사길령의 산도둑과 야수들로부터 과객들을 지켜내기 위해 세웠다는 산신각의 문을 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얀 눈이 내려 앉아 힘들어하는 산죽들에 눈길을 주며 다시 좁은 산길로 들어서 봉우리 하나를 넘었습니다. 또 한 번봉우리를 넘어 유일사로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로 내려서는 동안 흩날리는 눈발은 한 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조선조 말까지는 산도둑들이 사길령을 넘는 과객들에 통행료를 징수했는데 법과 질서가 제대로 잡힌 요즈음에는 태백산맥 도립공원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강제로 징수하는 것은 산적이나 도립공원이나 다를 바 없지만 법절차를 따랐느냐 여부가 강도짓이냐 아니면 적법한 법집행이냐를 가름하기에 오는 4월 총선에서 법을 만드는 의원들을 그냥 막 뽑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여기 사길령을 강점했던 산적들이 향가 “우적가(遇賊歌)”에 나오는 신라의 도둑들만 같았어도 굳이 이 높은 곳에 산신각을 짓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영재 스님이 은둔처를 찾아 대현령에 이르렀을 때 만난 도둑들은 이 스님이 “비단과 구슬로 어찌 마음 다스리랴/ 녹림의 군자들아 그것은 주지말게/ 지옥은 다름아닌 촌금이 근본이어늘.”의 향가 우적가를 부르자 이를 듣고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끝내 도둑질을 접고 이 스님을 따라 나섰던 도둑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포악해져 산신각을 세워야 했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순진하다 싶은 것은 요즈음의 도둑들은 산에서 내려와 한 낮에 도시의 가옥에 들어가 강도질을 할 만큼 대담해졌기 때문입니다.


      5시38분 유일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해지는 안부사거리로 내려섰습니다.

    3년 전에 보았던 도르레 설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안부에 다다르자 별안간 사람들이 많아져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조금 붐볐습니다. 이른 새벽이라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길을 비켜서는 일은 없었지만 바람을 가릴만한 곳에서 해뜨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지나기가 조금 불편했습니다. 철망으로 울타리를 친 주목보호지를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겨울바람이 맹위를 떨쳐 고산의 새벽 추위가 장난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장군봉까지는 거칠 것이 전혀 없는 평원을 지나는 길이어서 쌩쌩 부는 칼바람의 위력에 덜덜 떨어야 했습니다. 시간기록을 위해 간간히 장갑을 벗고 사진을 찍고 나면 그새 손가락이 얼어 장갑을 끼고서도 5-6분이 지나야 풀릴 정도로 추위가 매서웠습니다. 하루 전에 큰 맘 먹고 6만원을 들여 준비한 방한용 장갑이 한 몫 단단히 해내지 못했다면 이 혹한에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엄청 어려웠을 것입니다.


      6시36분 해발 1,567m의 태백산 상봉인 장군봉에 올랐습니다.

    너무 일러 해돋이를 보지 못해 장군단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아마 그들도 저처럼 몇 분을 참지 못하고 하산 길로 들어섰을 것입니다. 10분 후 태백산 정상비가 세워진 천제단에 이르렀어도 바람과 추위의 위세가 조금도 꺾이지 않아  간신히 사진 한방을 찍고 나서 곧바로 넓은 길로 내려섰습니다. 이 길로 오르내리는 사람이 꽤 많았어도 길이 넓어 전혀 붐비지 않았습니다.  경사진 눈길을 조심해 내려가서 단종비각을 보고서야 이 길이 문수봉으로 가는 길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내친 김에 바로 아래 망경사로 내려가 절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른 쪽 산줄기 위로 붉은 띠가 흐릿하게 나타나 무자년의 새아침을 밝히는 해오름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기다려 해오름을 본 후 당골로 바로 하산하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단종비각 쪽으로 몇 걸음 다시 올라가 왼쪽으로 난 문수봉길로 들어섰습니다. 산허리를 가로 질러 난 왼쪽의 우회 길은 반시간 가까이 걷는 동안 4-5명만 만났을 정도로 한적해 길가에 소북이 쌓인 눈이 만든 나지막한 눈 언덕과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하얀 눈들을 완상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 산의 보호수종인 주목나무와 산겨릅나무, 마가목 등과 신년 인사를 나누는 동안 해오름이 얼마간 진행된 듯 문수봉 쪽으로 붉은 띠가 더욱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7시57분 해발1,517m의 문수봉에 올라섰습니다. 

    천제단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안부삼거리에서 산행대장을 만나 이 분과 함께 밋밋한 능선 길을 걸으며 오른편에서 떠오르는 해오름을 지켜보았습니다. 무자년의 새 아침을 여는 해오름이 참으로 장엄해 보였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몇 번이고 해오름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으나 떠오르는 태양이 나뭇가지에 가려 제 미숙한 사진솜씨로는 현장의 감동을 재현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막상 기다렸던 해오름을 보고나자 무엇을 빌어야겠다는, 그리고 무슨 각오를 다져야겠다는 상념들이 모두 사라져버려  저 이글거리는 해오름의 열정 하나 만은 계속 간직하고자  붉은 태양을 가슴 속에 옮겨 담았습니다. 문수봉의 거대한 돌탑을 둘러싸고 있는 너덜겅지대의 흰 눈이 살짝 쌓인 바위덩어리들이 삐죽삐죽 서 있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2005년 가을 백두대간 최고의 너덜지대인  황철봉을 오르내리며 제 생애 처음으로 산 위에서 황홀한 일출을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잠잠했던 바람이 드세게 불고 기온의 급강하를 감지한 카메라가 작동을 거부해 서둘러 문수봉을 떴습니다. 7-8분 후 능선 길 삼거리에서 당골로 내려서는 왼쪽 길로 들어서자 벌써 하루 산행이 끝난 듯싶어 아쉬웠습니다.


      9시7분 단군성전을 들렀습니다.

    처음에는 경사가 완만하다 했는데 그다지 많이 내려가지 않아 경사가 급해졌습니다. 얼마 후 내리막길이 끝나고 목제 데크가 나타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숨을 돌렸습니다. 계곡을 건너고 병풍바위를 지나 낙엽송림을 지났습니다. 노래소리가 들리는 아래로 내려가다 계곡 건너 왼쪽의 단군성전을 들러 성전 안의 단군 상에 인사를 드렸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환웅과 곰 사이에 태어난 단군의 앉아계신 모습을 깔끔하게 그린 단군 상을 보았습니다. 태백산 산마루의 천제단에서는 단군은 어떤 모습을 하고 계셨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산자락 아래에 자리 잡은 단군성전에서 구체적인 그 분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자 참으로 너그러우면서도 근엄한 것 같은데 처음으로 이 땅에 조선나라를 열만큼 용맹무쌍해 보이지 않아 과연 저 분이 우리나라 건국신화의 주인공이 맞는 가 했습니다. 이미지를 제대로 형상화한다는 것이 디자인만 아니고 전설 속의 인물을 그려내는 인물화에서도 이래서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9시36분 제3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단군성전에서 조금 내려가 "2008 무자년 태백산해맞이 축제”라는 플래카드를 걸어 넣은 야외무대를 지났는데 사회자와 또 한 사람이 나누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사람들을 끌지 못해 썰렁했습니다. 그 아래 새마을부인회가 베푸는 “2008 새해 희망떡국나누기”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바로 위 야외무대장과 크게 달랐습니다. 제3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버스에 다다라 산악회에서 준비한 떡국 한 그릇을 다 비우고도 한참 지나서 정상에서 당골로 바로 내려선 두 친구들이 석탄박물관을 들러보고 뒤늦게 도착했습니다.


      석탄박물관은 단군어른 보다 훨씬 늦게 세워졌지만 석탄은 이분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 졌기에 다음에는 반드시 석탄박물관을 들러 볼 생각입니다. 곰이 호랑이처럼 참지를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갔다면 이 땅에 단군신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각변동으로 땅 속에 묻힌 나무들이 아주 오랜 세월을 기다려 전혀 다른 용도의 석탄이 되었듯이 곰 또한 하느님께서 정해진 시간을 다 기다려 전혀 다른 생명체인 사람으로 환생해 단군을 낳았습니다. 단군을 시조로 모시는 한민족의 은근과 끈기가 이렇듯 오랜 기다림 속에 성숙된 것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은 박물관을 들러 석탄의 기다림을 배워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리기로 말한다면 이번에 오른 태백산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고생대의 지층이 습곡작용으로 횡압력을 받아 만들어진 후 오늘을 기다려 저희들을 맞이한 태백산보다 더 오래 기다림에 익숙해진 것은 이번 해오름의 주인공인 태양입니다. 우리은하에다 지구 등 8개의 떠돌이별을 거느리는 태양계를 만들어놓고 그 중심에 자리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 약45억년-50억 년 전의 일입니다. 정말 오랜 세월을 기다려 이번에 해오름을 연출한 태양에 다시 무자년을 맞고자 60년의 기다린 사람들을 비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호랑이처럼 참아내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기다림이든 그 끝은 위대하고 창대함을 이번 태백산 산행에서 배워가기에 귀경길이 뿌듯했습니다.

     

     

                                                               <산행사진>

     

     

    *산행일자:2008. 1. 1일

    *산행코스:화방재-장군봉-문수봉-단군성전-당골주차장

    *동행 :경동24기 이규성/서중원 동문및 송백산악회 회원

     

     

       

     

    • 댓글(
    • joohong
    • 2008.01.03 15:28
    •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장관을 편하게 글로서 사진으로서 보여줌에 감사 감사......

      무자년 새해,   해오름과 같이 희망 찬 한해가 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를....
    • 답글
    • 시인마뇽
    • 2008.01.04 08:57
    날이 추워 사진을 제대로 찍어오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새해에 두 분모두 복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산행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주성기
    • 2008.01.10 15:23
    • 선배님 새해 일출을 태백산에서 맞으셨군요.
      추운날씨속에 고생많이 하셨고 무사히 다녀오셨음을 축원 드립니다.
      올 한해도 작년처럼 가시는 산마다 안산 즐산하시고 늘 건강 하십시요
      산하에 선배님의소식이 오르지 않기에 블로그로 왔습니다.
      잘 쓰여진 선배님의 산행기를 읽으며 눈덮인 태백을 즐감하고 갑니다.
      신년 운수대통하시고 조만간 독립군 합동산행도 계획해봐야지요?
      건강하십시오~~~
    • 시인마뇽
    • 2008.01.13 13:09
    • 우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 맹추위에 고생은 했지만 태백산의 겨울산행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감격적이었습니다. 하시는 일마다 운수대통하시고 건강하시기를

     

     

     

     

                                                 태백산 (1)               

     

                     *산행일자:2005. 6. 19일

                     *소재지  :강원태백/경북봉화

                     *산높이  :태백산1,561미터

                     *산행코스:화방재-태백산-깃대배기봉-차돌배기-신선봉-곰넘이재

                               -참새골-진조동

                     *산행시간:11시2분-18시32분(7시간30분)

     


     

      고생대의 지층이 습곡작용으로 횡압력을 받아 융기해 만들어진 태백산은 그 생성된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이 산하에 뿌리박고 살아온 우리 조상들과 교감하며 이 땅을 지켜왔기에 어느 산 못지않게 수많은 산객들로부터 존경받는 성스러운 산입니다.  강원의 태백과 경북의 봉화를 어우르는 해발 1,568미터의 태백산은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 상에 자리한 하늘아래 명산으로 신라시대부터 하느님께 제사를 올려왔던 유서 깊은 산이기도 합니다. 보다 가까운 곳에서 하느님께 제를 올리기 위해서 산을 찾아 제단을 세웠다면 지리산이나 한라산에 세워야 마땅한 일인데  이곳 태백산에 제단을 차린 것은 이곳이 성지로서 요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에 더하여 태백산은 정상부근이 비좁은 암봉이 아닌 넓고 고른 평원으로 되어 있어 제례를 치르기 용이하고  항상 시원하게 불고 있는 바람이 세속의 풍진을 날려버려 하느님이 그 자락을 드리워도 좋을 만큼 청정하기에 다시 제단을 세워도 손색이 없을 듯싶습니다.


      어제는 9년 만에 송백산악회원들과 함께 민족의 영산 태백산을 올랐습니다.

    1996년 여름 고교동창인 경동OB산악회의 함기영 회장과 처음으로 올라 정상에서 집사람에게 무사안착을 보고하며 휴대폰의 위력에 고마워했던 기억이 새롭게 났습니다. 태백산의 명성이 한차분의 손님을 더 모아 총 4대의 버스가 아침 7시에 잠실을 출발, 그 4시간 후에 이번 산행의 기점인 화방재에 도착했습니다.  산악회에서 대원들이 산행을 끝내고 계곡에서  냉탕을 할 수 있도록 차돌배기-태백산-화방재의 대간 구간을  역순으로 코스를 잡았기에 화방재에서 종주를 시작했는데, 이번 종주로 올 상반기에만 조령산의 이화령에서 소백산을 거쳐 태백산의 이곳 화방재에 이르기까지 멀고 먼 대간 길을 밟게 됩니다.


      오전 11시2분 해발 940미터의 화방재에서 산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버스4대가 실어 나른 대원들이 비좁은 산길로 들어서면 대오가 상당히 길 것 같아 선두대열에 끼어서 출발하고자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화방재 출발 10분 후에 고랭지 채소밭이 끝나는 지점의 사길령 매표소를 통과했습니다. 이곳에서 산령각까지 20분 가까이 산 오름을 계속했는데, 한 두 방울 비를 뿌리다가 이내 거두어들인 하늘이 구름으로 해를 가려주어 그리 더운 줄 모르고 산을 올랐습니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산령각이 세워져 있었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꺾인 등산로가 유일사 쉼터로 이어졌습니다. 이 등산로를 따라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옆 지르고 능선을 타는 중 태백산의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분명하게 한 눈에 잡혀 근처의 석탑과 함께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12시 5분 매표소에서 2.4키로를 걸어 다다른 유일사 쉼터에서 잠시 짐을 풀고 식수로 목을 축였습니다. 삼거리 안부인 쉼터 오른 쪽의 유일사 방향으로 짐을 실어 나르는 곤돌라 비슷한 것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안부에 자리 잡은 이 작은 가게가 제법 장사가 되는 모양입니다. 안부에서 1.7키로 떨어진 천제단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은 여러 곳이 흙이 패여 나가 산객들이 나른 흙으로 복구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화방재에서 쉼터까지는 비교적 길이 제대로 보전되어 있는 편인데 유일사에서 이곳 쉼터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길이 많이 훼손되었는데 다른 산들과는 달리 태백산은 겨울철에도 전국에서 손님들을 불러 모아 치르는 눈꽃 축제로 쉬지를 못해 복원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단 길을 20여분 걸어  주목군락지로 올라섰습니다.

    수령이 600년을 넘었다는 딱 벌어진 주목나무를 배경으로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30분 가까이 능선을 걸으며 이 평원에 자리 잡아 관목들을 제치고 솟아 오른 주목들이 바로 태백을 지켜온 주인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0년생 주목나무 한 그루에서 암 환자 한 명을 치유할 수 있는 항암물질을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끈질긴 생명력 덕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해발 1,410미터의 망경사 갈림길에서 해발1,561미터의 천제단에 이르기 까지 0.7키로 구간의 넓은 평원에 거칠 것이 없어 시공을 넘나들며 불어대는 바람이 태고의 음향을 저희들에 전해주어 반갑고 흐뭇했습니다.


      12시55분 태백산의 최고봉인 해발 1,567미터의 장군봉에 올라서 장군단을 돌아본 후 바로 천제단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곳에 천제단을 설치했다는데 이 제단이 그 높이가 24미터이고 둘레가 27.5미터로 방금 지나온 장군단과 바로 밑의 하단 등 모두 3기의 제단 중 가장 장대해 많은 산객들이 이 천제단에서 절을 올렸습니다. 민족의 성지인 이곳 천제단에서 신장염으로 고생하는 실비아님에 전화를 걸어 산오름의 기쁨을 전하면서 그님의 몸이 좋아지면 제가 나서서 길잡이가 되어 산으로 안내할 뜻을 굳혔습니다. 몰아치는 바람을 피하고자 바로 밑의 하단으로 내려서서 다른 분들이 준비해온 상추쌈과 산나물로 모처럼 점심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13시25분 10분여 짧은 시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대간 종주를 이어갔습니다.

    해발 1,547미터의 부소봉을 바라보며 얼마고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트레파스를 했는데 단군의 아들인 부소왕이 여기 부소봉을 오르내렸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풀숲을 헤치며 나아가다 낯 설은 꽃들과 인사를 나누며 10여분간의 부소봉 옆지르기를 끝내고 만난 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깃대배기봉으로 향했습니다. 정상에서의 번잡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한 낮의 이 시간에도 새들과 바람이 깨지 않는다면 태고의 정적과 고요함이 그대로 지켜졌을 오지의 대간 길로 들어섰습니다.  태백산 정상에는 주목이 이 산의 으뜸가는 주인이라면 이 오지 대간 길의 주인은 단연 야생화 털쥐손이입니다. 막 내린 빗물을 머금고 있는 이 야생화는 이제껏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희귀한 꽃으로 다소곳한 모습이 청아하게 보여 오랜 세월 기억될 것입니다.


      14시24분 해발 1,370미터의 깃대배기봉을 지났습니다.

    부소봉에서 이곳 깃대배기 봉에 이르는 4키로의 능선은 정말 환상적인 길이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야생화 털쥐손이의 청아함에 매료된 저는 고귀한 자태를 어렵사리 내보이는 하얀색의 산목련에도 똑같은 찬사를 보내고자 합니다. 이에 더하여 1시간에 4키로를 뛸 만큼 경사가 완만한 부드러운 흙길도 이 구간을 밟는 대간꾼들에 이 길을 환상적인 길로 각인시켰을 것입니다. 비가 점점 드세져 배낭을 방수가리개로 덮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해 내려서야 했습니다. 이 산의 주인인 양 짖어대던 새들도 비가 내리자 숨소리를 죽여 온 산이 조용했습니다.


      15시31분 차돌배기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대간 구간은 차돌배기에서 끝나는데 산악회에서 지난번에 이곳에서 애당리로 하산했기에 이번에는 신선봉을 올랐다 곰넘이재로 내려서 진조동의 참새골로 하산하기로 코스를 잡아 바로 신선봉으로 향했습니다. 차돌배기에서 북서쪽의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산길은 산죽을 가르고 나 있었습니다. 제 키를 넘는 산죽들이 길을 덮고 있어 마치 경남 백운산의 산죽터널을 지나는 듯싶었습니다. 비가 그치자 숨죽였던 산새들이 다시 나타나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까마귀보다는  홀딱벗고 새의 울음소리가 더욱 애절하게 들렸습니다.


      16시22분 해발 1,305미터의 신선봉에 올랐습니다.

    10여분 간 마지막 깔딱고개를 할딱거리며 올라서자 먼저 오른 대원들이 수박을 건네주며 반겨주어 고마웠습니다. 신선봉 정상에 자리 잡은 “처사경주손공 영호지묘”가 제가 아는 한 한반도 남단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리산 덕평봉 밑의 선비샘은 해발 1,500미터는 실히 되기에 그 위의 묘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단연 최고의 산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터인데 일화만 전해질 뿐 실제 산소가 남아 있지 않으며, 무등산 서석대의 산소나 치악산 옆의 매화산의 산소도 모두 1,100미터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산소란 문자 그대로 산에 있는 묘이기에 높은 산에 있을수록 명당임에는 틀림없겠지만 멧돼지가 휘 집고 다닌 것을 손보아 줄 자손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명당자리이겠는 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시 정각에 곰넘이재에 다다랐습니다.

    차돌배기에서 이 고개까지 걸어 온 6 키로를 다시 걸어 내려가면 참새골에 다다른다 하니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한 듯싶어 쉬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차돌배기-애당리 코스보다는 내리막길의 경사가 완만하고 임도여서 길이 넓어 하산 길이 순조로웠고 동행한 몇 분들과 돌아가는 현 정세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하산하느라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주차장 100미터 전방에서 계곡으로 내려가 15분여 몸을 닦고 나자 온몸이 개운했습니다.


      18시32분 진동리의 주차장에 도착해 7시간 30분의 대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집행진에서 준비한 육개장으로 배를 채운 후 상경해 밤11시에 잠실로 돌아 왔습니다. 아침7시에 출발하여 대략 8시간을 산행에 , 나머지 8시간은 버스에서 보내  16시간 만에 출발지인 잠실로 되돌아 온 셈입니다.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오르내리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거의 같아져 배꼽이 배만큼 커진 격이 된 강원도의 대간 길을 밟는 얼마간은 자정 전에 과천 집에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역시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더 보람 있을 대간 종주를 끝까지 해내겠다고 다짐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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