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7.오대산 산행기(1-3)

시인마뇽 2007. 1. 2. 17:44

                                           오대산 (3)


          *산행일자:2008. 1. 27일

          *소재지  :강원평창

          *산높이  :비로봉1,563m, 상왕봉1,491m

          *산행코스: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상원사

          *산행시간:10시35분-18시5분(7시간30분)

          *동행    :경동고 24기동문 등 총24명

          (24기 김남진, 김종화, 김주홍, 송찬영, 이문상, 장광종, 장병일 부부와 박용철,  백인목,

            서중원, 이규성, 이기후, 이달헌, 이명재, 우명길 및 29기 정병기 부부) 

 


  작년 7월 고교동기들과 함께 방태산을 올랐을 때 온갖 심술을 다부렸던 구름의 신 제우스가 꼭 반 년 만에 그 남동쪽의 오대산을 찾은 저희들을 극진히 맞아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오대산 정상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14도이고 한낮의 최고기온이 영하7도에 머무를 것이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접하고 나서 이에 골바람까지 가세한다면 체감온도는 더 떨어지기에 해발1,500m가 훨씬 넘는 오대산을 스무 명이 넘는 대식구가 과연 무탈하게 오르내릴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인 일인지 오후 1시 경에 올라선 오대산 정상의 기온은 영상으로 올라섰고 바람은 물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 봄 날씨를 방불할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얼굴에 와 닿은 햇살이 한껏 따사로워 수많은 인파로 비로봉 정상이 북적대지만 않았다면 저는 분명 이 산의 비로자나불께 무릎 꿇고 감사 기도를 올렸을 것입니다. 엄청 눈이 많이 쌓인 상원사-비로봉-상왕봉-상원사의 약12Km에 이르는 긴 코스를 한명도 낙오 없이 무사히 마쳤음은 어제 하루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를 내려주도록 제우스신에 말씀 주신 부처님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대산 산행을 계획하고 진행을 맡은 제가 카톨릭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로봉에 거하시는 비로자나불께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주님께서 저의 속 좁음을 나무라실 것 같아 마음속으로 기꺼이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오대산이 설악산과 대별되는 것은 평안한 산세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입니다.

정상에 올라 눈 부비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설악산의 성깔 사나운 칼바위를 찾아볼 수 없는 온후한 고산이 바로 오대산입니다. 멀리로는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이 산을 찾은 신라의 자장법사에서 가까이는 6.25 전쟁이 발발할 것을 미리알고 도반(桃盤)들을 피신시킨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고승대덕들이 이 산에 머무르셨던 것도 문수, 지장, 관음, 대세지보살과 석가여래의 오류성중(五類聖衆)들께서 이 산에 자리하실 만큼 산세가 각박하지 않고 평안해서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최고의 부처 비로자나불이 거하시는 이 산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석가여래와 오백나한을 모시는 북대미륵암의 주산인 상왕봉까지의 능선 길은 북쪽의 설악산과 방태산이, 남쪽으로 발왕산과 가리왕산이, 동으로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높낮이도 그리 심하지 않은 편안한 흙길이어서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마음의 평화가 절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오대산 최고의 명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입니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대산-두로봉-상왕봉 및 호령봉 등 5대 고봉들이 연꽃처럼 피어오르고, 삼라만상이 다 함께 평화를 누린다는 극락정토에 들고자 수많은 중생들이 찾아와 기도를 올렸을 적멸보궁은 이 연꽃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합니다. 오대 고봉과 오대 사찰, 그리고 적멸보궁이 들어선 오대산은 시간여유만 있다면 하루를 묵으면서 이 모두를 찬찬히 들러볼만한 불교의 성지이기에 카톨릭 신자인 저도 1972년 이 산을 처음 오른 후 네 번을 더 찾아 올랐습니다.


  아침7시반을 조금 지나서 올림픽공원역을 출발했습니다.

일곱 쌍의 부부가 동반한 스무 명이 훨씬 넘는 대인원이 대형버스를 대절해 명산탐방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모처럼 분위기가 들뜨고 활기도 넘쳤습니다. 김남진동문의 사회로 새로 합류한 동문들을 맞이하는 서중원회장의 환영인사와 이규성대장의 오대산 설명이 있었고 저의 산행계획 안내가 뒤따라 마치 전문산악회가 가이드 하는 산행버스에 오른 것 같았습니다. 수지의 김주홍 부부가 준비해 온 백설기로 아침을 들며 담소를 나누는 동안 저희들을 실은 버스는 어느새 영동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오대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동안 길 아래 계곡을 가득 채운 눈을 보자 비로봉 정상에 쌓인 눈이 어느 정도 될 것인가가 가늠되어 벌써부터 가슴이 뛰었습니다.

 

 10시35분 상원사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주차장을 꽉 채운 관광버스들이 실어 나른 수많은 산객들로 중대암을 오르는 계단 길이 꽤 붐볐습니다. 온천지가 새하얀 눈으로 둘러싸인 그늘진 눈길을 걸으면서도 이렇다 할 냉기가 느껴지지 않은 것은 뜻밖의 일로 참으로 천우신조다 싶었습니다. 중수를 끝낸 지 얼마 안 된 중대암의 층층 처마에 내려앉은 햇살로 단아한 단청이 더욱 돋보였고 처마 끝의 고드름이 계속 자라서 아래 지붕에 닿아 있는 모습은 이 절의 독특한 가람배치가 아니면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진풍경이어서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11시43분 적멸보궁에 다다랐습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를 몸소 찾아가신 분이 신라의 고승 혜초스님이셨다면, 인도보다 더 한 불교의 융성기를 맞은 신라에 모셔져 오신 분은 이미 입적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은 비로봉을 오르는 이토의 중생들이 빼놓지 않고 들러 죽어서 극락정토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고 마음이 편해지고, 몸이 맑아지고, 생각이 밝아지며,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며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오대광명(五臺光明)을 얻는다면 그 곳이 바로 극락정토다 싶어 적멸보궁은 오름길에 들를 것이 아니라 땀 흘려 비로봉에 올라 비로자나불에 인사를 드린 후 하산 길에 들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멸보궁에서 비로봉1.1Km 전방의 간이건물에 이르는 길은 무명봉을 오른 쪽으로 에도는 산허리 길이어서 위아래로 가득 쌓인 하얀 눈이 볼만했습니다.


  13시26분 해발1,563m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대피소에서 비로봉에 오르는 길은 가팔랐고 목제계단 길이 눈 속에 파묻혀 걷기에도 조금은 불편했습니다. 고산의 심설을 처음 밟는 부인 몇 분들이 많이 지친데다 오르내리는 산객들로 길이 붐벼 마지막 0.4Km를 오르는데 무려 40분이 걸렸습니다. 비로봉에 오르자 미풍도 불지 않고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쾌청해 북쪽 멀리로 설악산 대청봉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줄기가 남북으로, 서쪽으로는 동서로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한강기맥의 산줄기가 한눈에 보이는 비로봉을 오르는 일이 몇몇 분들에는 쉽지 않은 고행의 길이었겠지만 덕분에 바깥분의 애틋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기에 비로봉등정의 진한 감동이 꽤 오래갈 것 같았습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잡아 놓은 자리에 빙 둘러 앉아 반시간 남짓 점심을 맛있게 들고 있는 저희들을 보았다면 이 봉우리를 지키는 비로자나불은 물론 미리 맞춰놓은 듯이 더 할 수 없이 좋은 날씨를 주선해준 제우스신도 군침을 흘렸을 것입니다.


  14시3분 비로봉 정상을 떠나 하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힘들게 오른 몇 분들도 상원사로 되돌아 내려가는 가까운 길을 마다하고 오른쪽으로 빙 돌아가는 먼 길을 걸어 예정된 코스를 완주하겠다는 뜻을 밝혀 24명 전원이 동쪽으로 2.4Km 떨어진 상왕봉으로 향했습니다. 헬기장 두 곳을 지나 상왕봉에 이르기까지 능선 길이 붐벼 작년 2월에 이 길을 지날 때보다 운행속도가 많이 더뎠습니다. 날씨가 조금만 더 추웠더라면 가지가지에 맺혔을 설화를 보았을 텐데 그리하지 못한 아쉬움은 휘어진 굵은 줄기 위에 쌓여 있는 흰 눈을 보고 달랬습니다. 아름드리 주목과 1,500m가 넘는 다른 고산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활엽수 거목들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이들에 내년도 설산 산행을 약속했습니다. 곳곳이 포토라인이라며 좋아하는 다른 팀들 여인네들에 길을 비켜주느라 후미로 한참 쳐졌습니다.


  15시31분 해발 1,491m의 상왕봉을 올랐습니다.

선두의 이규성대장이 후미를 맡은 서중원 회장에 계속 메시지를 보내 명산탐방에 처음 사용해보는 무전기의 성능을 테스트했습니다. 인파에 밀려 생각만큼 앞서가지 못한 선두보다 십 수분 늦게 상왕봉에 오르자 먹을 것을 찾아 눈 위로 내려앉은 박새가 뭔가를 계속 쪼아대고 있었습니다. 상왕봉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어 가파르게 내려선 안부삼거리에서 두로봉으로 가는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꺾어 북대사 길로 들어서 바로 앞 1460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했습니다. 비로봉 출발 2시간이 지나서야 능선 길에 짐을 내려놓고 제대로 한번 쉬었으니 발뒤꿈치가 까져 발걸음을 옮겨놓기가 여의치 못한 한 분에는 이번 산행이 무척 힘든 산행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뭇가지사이로 펼쳐진 하늘이 질그릇을 깰 정도로 냉랭하고 새파랬지만 날씨만은 맞춤 날씨여서 십분 가까이 쉬었어도 추운 줄 전혀 몰랐습니다.


  16시47분 북대산 갈림길의 임도에 도착했습니다.

10분여 편히 쉰 능선 길에서 큰길로 내려서기까지 20분이 넘게 걸린 하산 길은 이제는 다 내려왔다 싶어서인지 길잡이가 되어준 엄청 큰 참나무에 감사인사를 건넬 정도로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큰 길에서 몇 걸음 걸어 내려가 이제껏 후미를 맡아준 서회장이 오른 쪽 아래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찔러가는 지름길로 들어섰고 회계를 맡은 장광종 부부와 저는 산허리를 빙빙 도는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하얀 수피가 벗겨져 불그스레한 색조를 띄고 있는 거제수나무가 임도 옆에 나란히 서 있어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는 저희들을 격려하는 듯 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서 비로봉을 오를 때 몹시 힘들어했던 또 한분을 만났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 부탁해 얻은 봅슬레이(?)에 부인을 태우고 내달려 눈 깜박할 사이에 저만치 앞서가는 이문상동문내외의 감동어린 사랑의 현장을 사진으로 옮기지 못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18시5분 상원사주차장으로 되돌아와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골짜기에 드리운 땅거미가 임도 길로 내려앉자 기온이 급강하하고 땀이 식어 냉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워질수록 산 속의 흰 눈이 더욱 희게 보이는 것은 햇살에 밀려난 어둠이 산으로 되돌아온 후 흑과 백이 명백하게 대비를 이루는 것은 오직 어둠과 하얀 눈밖에 없어서였을 것입니다. 마중 나온 정병기 후배와 김주홍 동문을 만나 함께 3-4분을 더 내려가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르자 어느새 사방이 칠흑같이 깜깜했습니다. 코스가 길어 더 늦었더라면 체온이 떨어져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이번 산행도 조금은 무리다 싶었습니다. 가리왕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정남시동문의 펜션으로 옮겨 뒤풀이를 가진 후 23시20분경 출발지인 올림픽공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번 산행을 가뿐히 끝내 모처럼 모범을 보인 이기후 동문, 비로봉에서 점심 때 만나고는 산행 내내 만나지 못했던 선두그룹의 백인목, 이달헌, 이명재동문도 이번 산행을 같이 했습니다. 김종화, 장병일, 이문상, 송찬영부부와 박용철 동문이 이번에 처음으로 합류해  반가웠습니다. 넉 달 후 만개한 철쭉꽃을 만나 보고자 다시 나설 명산탐방을 기다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이번 오대산 산행이 오랜 동문들과 정말로 멋진 해후가 되었기를 바라면서 산본 집으로 향했습니다.


  산행을 같이한 친구들에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한 평생”을 노래한 시인 박재삼님의 명시“산에서”를 올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에서”

                                           박재삼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어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연중들어 간장이 저려 오는 아픔이어든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 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도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사랑을 기쁘다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

 

 

 

 

                                                                                  <산행사진>

 

 

 

 

                                              오대산(2)   

 

                *산행일자:2007. 2. 25일

                *소재지  :강원평창/홍천

                *산높이  :비로봉1,563미터/상왕봉1,491미터

                *산행코스:상원사입구-비로봉-상왕봉-북대사-상원사입구

                *산행시간:10시30분-14시54분(4시간24분)

                *동행    :이규성/정병기 고교동문 및 송백산악회원

 


  어제는 강원도 홍천군과 평창군을 어우르는 오대산을 올라 이 겨울을 환송했습니다.

작년 12월부터 올 1월까지 대구의 팔공산을 필두로 주흘산, 소백산, 덕유산에서 눈꽃 산행을 한껏 즐긴 터라 입춘 하루 전에 오른 용문산에서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이 겨울이 마지막으로 내려준 보너스려니 했는데 어제 오대산을 오르내리며 또 다시 눈발을 만나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입춘도 지났고 나흘 후면 춘3월이 시작되기에 겨울의 끝자락을 마냥 붙들고 늘어질 뜻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언감생심 흰눈이 내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래도 해발 1,500미터가 넘는 몇 안 되는 고산중의 하나이기에 주능선에는 겨우 내내 내린 눈이 다 녹지 않고 얼마라도 남아 있으면 고맙겠다 싶었는데 남은 눈도 그 양이 꽤 많았고 하얀 눈까지 내려줘 이제는 진정 이 겨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대산은 불교신자들에는 더 할 수 없이 성스러운 성지입니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대산-두로봉-상왕봉 및 호령봉 등 5대 고봉들이 연꽃처럼 피어오르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이 이 연꽃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합니다. 신라시대의 고찰인 월정사와 상원사, 그리고 중대 사자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및 북대 미륵암등 5개의 암자들이 들어 서있고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는 유적지이기도 해 이 산을 찾는 불교신자들의 대열이 언제나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대산은 물, 불 및 바람 등 3재가 침범하지 못하는 길지여서 이조 선조임금 때 실록각을 지어 왕조실록을 보관해왔던 5대사고지의 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아침 10시30분 상원사 조금 못 미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상원사에 가까워지자 길가에 주차해 놓은 관광버스들이 많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려 4-5분을 걸어올라 상원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명개리로 이어지는 임도는 똑 바로 나 있고 저희들은 왼쪽 길로 들어서 상원사를 그냥 지나친 다음 조금 후  다리를 건너 중대암으로 오르는 계단 길로 들어섰습니다. 5개의 사찰건물을 계단식으로 연이어 지어 밑에서 보면 5층 건물처럼 보이는 중대암은 4개동은 완공되었고 맨 위의 1개동만 증축 중이어서 사찰로서 틀이 잡혀가는 듯 했습니다. 오랜만에 함께 산행을 하는 송백 회원 몇 분들에 사진을 찍어드린 후 계단 길을 더 올라 적멸보궁으로 향했습니다.


  11시23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을 들렀습니다.

오대산이 불교의 성지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여기 적멸보궁에서 석가모니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서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신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일부를 몰래 옮겨놓아 모시는 경기도 안성의 미리내 성당 일대를 천주교에서 성지로 정한 것과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한 채 밖에 없는 조촐한 적멸보궁 앞의 공터에 자리를 깔아 놓고 수많은 신자들이 절을 올리는 모습은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 부처님께 예불하는 모습들과 똑같이 진지해 보였으며, 그 분들의 진지함에 주눅이 들어 사진 찍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12시24분 이 산의 최고봉인 해발1,563미터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날씨가 흐려 전망이 별로였지만 동쪽 건너 남북으로 내닫는 두로봉-동대산의 백두대간 길은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이번 산행의 목적이 35년 전에 한 산형과 함께 오른 오대산 산행을 “Try to remember"하는 것이라고 밝히자 동행한 두 고교동문들이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려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1972년 10월의 오대산 산행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오대산 월정사 앞에 도착하는 데만 하루해가 다 걸렸습니다. 월정사를 막 지나 민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서둘러 비로봉으로 향했습니다. 상원사를 들러보고 적멸보궁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비로봉에 오르자 동쪽 건너 큰 산줄기가 보였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길이 바로 백두대간 길이었습니다.


  13시12분 해발 1,491미터의 상왕봉에 도착해 처음으로 짐을 풀고 쉬었습니다.

비로봉에서 상왕봉까지 능선 길이 이리도 푸근하고 정감 가는 길인 줄을 이번 산행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비로봉에서 눈을 밟으며 조금 내려서자 온갖 몸짓을 해대는 나무들이 평지 길을 안내해주었습니다. 죽어서도 곧바로 서있는 주목나무, 한 뿌리에서 세 네 뼘이 넘는 굵은 줄기가 12개나 뻗어 나간 참나무, 흰색의 다양함을 보여줄 듯 하얀 눈과는 또 다르게 부티 나는 우유 빛 수피를 자랑하는 자작나무, 더 이상 하늘로 치솟기를 거부하고 등을 굽혀 이 땅과 호흡을 같이하고자 몸 전체를 뒤튼 이름모르는 나무들의 몸짓에는 제게 일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야생화 화보집 “꽃의 신비”를 펴낸 김정명 님의 신문기사를 읽고 나무들의 몸짓에서 그들의 언어를 곧 바로 해독하고자 했던 저의 조급함이 부끄러웠습니다. “길을 가다가 새로운 꽃을 보면 그 자리에서 비닐을 덮어 쓰고 며칠 씩 지내며 말을 걸었다. 20일 넘게 한 자리에서 지켜본 적도 있다. 그러다보면 그 꽃이 웃기 시작했고 자신을 열어보였다.”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저도 희망을 가진 것은 이 다음에 이 길에서 며칠이고 죽치고 기다리노라면 나무들의 비밀스런 언어들을 디코딩(decoding)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아서였습니다.  35년 전에 떼거리로 상공을 배회해 동행한 산형을 놀라게 했던 까마귀들이 이 번에는 몇 마리만 까옥까옥 울어댔습니다.


  14시2분 북대사를 들렀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상왕봉을 뜰 즈음에 눈발이 세졌습니다. 이 겨울이 제게 보여주는 마지막 성의인 흰눈을 오대산에서 맞자 성큼 성큼 다가오는 새 봄이 마냥 상서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왕봉에서 15분을 걸어 내려와 북대사 갈림길에 다다랐습니다. 왼 쪽 아래로 산허리를 에도는 명개리가는 임도가 내려다보였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2.7키로를 더 가면 백두대간 상의 두로봉에 이르게 되고 그 곳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내달으면 동대산에 이르게 되는데 이 길이 바로 35년 전에 꿈꾸었던 오대산 종주코스였습니다. 그 때는 이곳에서 북대사로 내려서지 않고 직진해 바로 앞의 1460봉을 넘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이 봉우리를 오른 쪽으로 우회해 북대사로 향했습니다. 갈림길에서 15분을 걸어 내려선 임도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8-9분 간 임도 길을 걸어 올라가 35년 전에 하룻밤을 묵었던 북대사를 들렀습니다. 거제수나무의 붉은 수피가 빛나는 임도 길을 따라 올라 북대사에 이르자 선원으로 바뀐 북대사는 스님들이 참선에 정진 중이어서 출입이 금해졌습니다.


  35년 전 1460봉을 넘어 두로봉으로 전진하는 중 날이 어두워져 명개로 넘어가는 임도 고개 마루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상원사 방향으로 하산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어 내려가면 상원사를 지나는 것이 분명하므로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밤길을 걷던 중 불빛을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다가가 확인해보니 북대사였고 주지스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려 스님과 한 방에서 하룻밤을 묵도록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이튼 날 새벽 4시에 시작되는 스님들의 예불에 저희 둘이도 참가했고 아침식사도 스님들과 똑 같이 들었습니다. 주지스님 앞에서 반가부좌를 틀고 가르침의 말씀을 듣는데 2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습니다. 10시쯤 해 북대사를 출발했고 명개리 고개마루를 거쳐 두로봉에 어렵게 올랐으나 잡목이 우거지고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았습니다. 동대산행을 포기하고 다시 내려와 북대사를 들러 늦게 점심을 해먹은 후 주지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후 4시가 훨씬 넘어 북대사를 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북대사 경내를 들러보지 못하고 바로 상원사로 되돌아갔습니다.

솜꽃을 피운 버들강아지가 전해주는 봄소식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임도 따라 5-6분을 내려선 후 오른 쪽의 산길로 내려섰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흰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지만 눈길이 끝나자 경사가 급한 진흙탕길이 이어졌습니다. 20분 가까이 산길로 내려와 다시 임도를 만났고 임도를 따라 상원사로 내려갔습니다. 산허리를 굽이굽이 도는 임도 길에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 끝까지 아이젠을 풀지 않았습니다.


  14시54분 상원사 입구를 조금 지나 임도 옆에 주차한 관광버스를 찾았습니다.

소백산을 힘들게 올랐던 후배가 먼저 내려와 산악회에서 정해준 시간 안에 간신히 닿은 저를 반겼습니다. 귀경 길에 전나무 길로 이름난 월정사 경내를 들렀습니다. 앞마당에 9층석탑이 서있는 목조건물은 대웅전이 아니고 적광전이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는 대웅전과는 달리 적광전에는 가운데에 석가모니불대신에 비로나자불을 모시는데 여기 월정사 적광전은 좌우의 보살님을 두지 않고 오직 중심에 석불암의 본존불과 똑 같은 크기의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것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전나무 숲길 옆으로 찻길이 새로나 35년 전에 걸었던 전나무 길은 걷지는 못하고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35년 전 북대사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와 월정사 못 미쳐 민가에서 세 번째 밤을 묵었습니다.

상원사를 지나자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이내 어둠이 산자락을 삼켰습니다. 민가에 다다르기까지 알고 있던 캠프송을 모두 동원해 소리 높여 합창했습니다. 캠프송 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던 포크송도 같이 불러 레파토리가 동이 날 즈음해서 이틀 전에 묵었던 민가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을 해들고 땔 감을 조금 얻어 길 아래 논으로 내려가 캠프화이어도 즐겼습니다. 전날 밤 북대사에서 스님들과 한 방에서 같이 자느라 잠을 설친 탓에 이 날 밤은 숙면을 취했습니다. 이튼 날 늦게 아침을 지어먹고 월정사를 들러 경내를 들러본 후  전나무 길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다다랐습니다. 


  저녁 9시가 채 안되어 잠실에 도착해 인근 음식점을 들러 조촐한 술자리를 동문들과 같이 했습니다. 14시간 만에 잠실을 출발해 오대산을 오르내린 후 다시 잠실로 돌아오는 민첩성은 35년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그 때는 아침10시 경에 월정사를 출발해 마장동 터미널에 오후 4시가 다 되어 도착했었습니다. 35년 전에 3박4일의 오대산 여정을 하루로 줄이고 남은 시간이 저희들 시간구좌에 고스란히 저축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 까만은 그렇지 못하고 부지런히 뛰어 만든 시간을 다시 쪼개어 살아야 하는 오늘 날 속세의 시간을 잊고 몰두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등산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쉽게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오로지 참선에 열중하는 북대선원의 스님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잊고 지낼 수 있는 분들이다 싶어지자 35년 전에 한 산형과 제게 반가부좌를 틀게 하고 가르침을 주셨던 노스님이 생생하게 기억됐습니다.   

 

 

 

 

                                                                 <산행사진>

 

 

 

 

 

 

 

 

 

 

 

 

 


 

 

                                                 오대산 (1) 

 

                                    *산행일자:2004.10.10일
                                    *소재지  :강원 평창/ 홍천
                                    *산높이  :오대산 1,563미터/동대산 1,434미터
                                    *산행코스:오대대피소-동대산-두로봉-상왕봉-비로봉-상원사(20키로)
                                    *산행시간:7시45분-16시45분(9시간)

 

 

  오대산의 가을은 깊었습니다.
이 산 특유의 냉랭함이 초록의 나뭇잎을 재촉하여 만든 단풍이 3부 능선까지 내려와 가을의 깊이를 더해주었고, 때 맞춰 내린 빗줄기가 나무가지로 부터 그 잎들을 떨구어 내 가을마무리가 이미 능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눈으로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두 발로 능선 길을  덮기 시작한 낙엽을 밟고, 가슴을 데우고 따뜻하게 살라는 이 가을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바람을 가슴으로 맞이하며 온 몸으로 오대산의 가을을 체감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어제 오대산을 찾은 것은 32년 전에 시도했던 종주를 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1972년 10월 의기투합한 산형과 함께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을 다녀왔습니다. 10월 유신이 선포된 지 나흘 후인 10월 21일  공무원의 무단이석을 금한 포고령을 어기고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교육공무원인 제가, 마침 군 체육대회와 유엔(U.N)의 날 공휴일로 수업은 없었다지만, 학교를 비우고  3박4일로 오대산 종주 길에 나선 것은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짓이고 결코 칭찬 받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당시의 살벌했던 분위기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그 해 봄 첫 발령을 받은 햇병아리 교사였기에 뭘 모르고 저지른 만용이 아니었겠나 생각해봅니다.

 

  32년 전에 오른 오대산 산행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행 첫날은 민박촌에서 출발하여 상원사를 거쳐 비로봉을 오른 후 상왕봉으로 옮겨 두로령으로 내려섰습니다. 여기서 두로봉으로 오르고자 했으나 날이 어두워 다음날로 미루고 임도를 따라 하산하다 북대사를 발견, 스님에 간청하여 선방에서 스님들과 함께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둘째 날은 이른 새벽4시에 기상하여 스님들과 함께 새벽 예불을 올리고 아침 식사를 들었습니다. 아침 늦게 북대사를 출발하여 두로령을 거쳐 두로봉까지 올랐으나 동대산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아 동대산을 거쳐 월정사로 하산하겠다는

꿈을 접고 북대사로 되돌아 왔습니다. 저희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신 주지스님의 열정에 감복하여  2시간 넘게 계속된 강론시간 중 흐트러짐 없이 반가부좌의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3박4일 일정중 산을 오르내리느라 이틀을 보냈고 교통편이 불편하여 오가는데 나머지 이틀을 썼습니다.

 

  어제 새벽 2시를 넘어서 강릉에 도착, 찜질 방에서 2시간 가량 눈을 붙였다 일어나 아침 6시20분에 터미널을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진부로 옮겼습니다.  산행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자 진부에서 2만원에 택시를 잡아타 오대대피소에서 내렸습니다.

 

  7시45분 두 병의 페트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오대대피소를 출발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상원사에서 대규모의 불교행사가 있어 복잡할 것 같다는 택시 기사 분의 얘기대로 아침 이른 시간에 상원사로 올라가는 승용차가 줄을 이었습니다.

 

  7시56분 연화교를 조금 지나 동대산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일기예보대로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 바로라도 큰 비가 내릴 것 같아 계곡산행이 은근히 걱정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바위길이 미끄럽지 않고 경사도 심하지 않아 15분 가까이 계속된 계곡 길을 그리 힘들이지 않고  통과했습니다. 들머리를 출발한지 30분 후 해발 960미터의 고개 마루에 올라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태고의 음향을 재현한 바람이 거칠게 불어댔습니다.  바람에 날릴까 염려되어 모자를 세게 눌러 쓰고 선 채로 잠시 숨을 고르고 능선에 조금 비껴 서있는 나무들을 불사르는 새빨간 단풍들을 감상하고 나자 때맞춰 이곳 오대산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9시13분 해발 1,260미터대의 능선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능선 길을 오르는 동안 언뜻 짐승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려 바짝 긴장을 했는데 확인해 보니 고목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 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난 9월 덕유산 능선에서 으르렁대는 짐승소리에 하도 놀라 이번에도 섬뜩했습니다. 대구에서 오셨다는 부부 두 분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대구에서 몰고 온 승용차를 동피골야영장에 주차시키고 저와 같은 코스로 해서 다시 야영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두 분의 발걸음이 힘찼고 저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9시34분 대피소에서 3.5키로를 걸어올라 해발 1,434미터의 동대산 정상인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정상도착 2분전에 진고개 행 갈림길에서 백두대간에 올라섰습니다.. 내년에는 반드시 종주를 해내겠다는 결심을 굳힌 터라 짧은 코스지만 두로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을 정성스레 밟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깜박하고 카메라를 집에 두고 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덕분에 산행속도를 낼 수 있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안위했습니다. 한 떼의 산악회회원분 들이 출발하자 동대산 정상은 다시 조용해져 잠시 다리를 펴고 숨을 돌렸습니다.

 

  9시45분 동대산을 출발, 7키로의 두로봉행 첫 걸음을 내 딛었습니다.
계곡을 타고 산마루로 오르는 가파른 길에 비하면 대부분의  능선 길은 잘 닦인 페이브멘트인데 대간 길 또한 걷기에 편안해 4 키로를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해발 1,230미터의 고지에 자리잡은 차돌머리의 암반이 능선 길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의 흰 줄기와 백색의 선명도 경쟁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민족의 시원 점인 바이칼호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한반도 최남단인 제주도까지 퍼져 있어 아주 친숙한 나무로 그 줄기가 희어 일명 백화수라고도 불리는데 여기 오대산의 자작나무가 더욱 하얗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회색의 암반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이렇게 큰 차돌바위를 지금껏 본적이 없는데 이 높은 곳에서 맑디맑은 규암의 차돌머리를 볼 수 있다니 신비로웠습니다.

 

  10시59분 해발 1,220미터대의 능선에서 4키로를 계속해 걸어 꺼진 배를 채우고자 김밥을 꺼내 들었습니다. 통이 큰 활엽수들 밑에서 자라고 있는 아주 작은 전나무 몇 그루가 활엽수의 텃세에 밀리지 않고 끝까지 무탈하게 잘 자라기를 기원했습니다.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와 나무줄기를 흔들어대는 바람에 못 견딘 나뭇잎이 계속해 떨어져 서서히 끝나 가는 가을의 깊이를 가늠하게 했습니다. 11시 8분 짐을 챙겨 다시 두로봉을 향해 뛰었습니다.


  이 산중에서 몸놀림이 바쁜 것은 저 만이 아니었습니다. 구름과 바람도 바쁘게 움직여 태양의 길 나섬을 가로막곤 했습니다만, 그 세가 약해져 햇살의 따사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고도를 낮추어 1,100미터대의  안부에 내려서자 널 다란 작은 평원에 떼를 이루어 식생하고 있는 자작나무로  주위가 하얗게 느껴졌습니다. 안부에서 계속되는 오름 길은 동대산-두로봉코스 중에서 가장 가파른 깔딱고개였습니다. 고개를 다 올랐다 싶으면 평지길이 펼쳐지다 바로 또 하나의 비탈길이 나타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습니다.

 

  12시 25분 두로봉에 다다랐습니다.
이곳 두로봉에서 신배령까지 길이 위험하여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었지만 백두대간을 뛰는 산악인들의 열정을 가로막지는 못해 여기에서 종주를 멈췄다는 얘기를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먼저 도착한 많은 분들로 쉴 자리를 찾지 못해 두로령으로 5분을 내려가 주목나무 밑에다 자리를 잡고 떡을 들며 피로를 풀었습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아름드리 주목 7그루가 진면목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는데 카메라에 옮겨 담을 수 없어 못내 아쉬웠습니다.

 

  12시 45분 상왕봉을 향하여 길을 나섰습니다.
제우스신의  힘이 다한 듯 맥없이 밀려난 구름에 뒤이어 하늘을 차지한 태양이 한껏 무르익은 만추의 오대산을 속속들이 비추어 주었습니다. 해발 1,360미터의 두로령에 내려서자  1972년 가을 이 산을 함께 올랐던 산형이 생각났습니다.

 

  14시6분 두로봉에서 3.5키로를 걸어 해발 1,491미터의 상왕봉에 올랐습니다.
32년 전 이곳을 지날 때 짖어대던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이번에도 여전했습니다. 학습을 통해 대를 이어 정확하게 울음소리를 전수받은 까마귀의 기억력은 교육학자들의 테스트결과 13까지 셀 수 있는 것으로 밝혀져 하늘을 나는 새들 중 가장 뛰어나다니 까마귀고기를 구워먹어 머리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근거 없는 낭설이 되겠습니다.  그 간 하도 많은 분들이 이 오대산을 올라 능선길이 많이 훼손되었고  그래서 안내판과 철조망을 설치해 남아있는 주목들을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공원관리사무소에 박수를 보냅니다만 이 바람직하지 못한 변화를 통해 32년이라는 세월의 두께를 실감하게 되어 씁쓰름했습니다.. 상왕봉에서 북서쪽으로  구룡령을 넘어서 나있는 넓은 길이 잘 보였고 두로봉-동대산의 능선 길을 뛰어 넘어 노인봉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 왔습니다. 오전 내내 바람과 싸우며 걸어 온 백두대간도 한 눈에 잡혔습니다.

 

  15시2분 오대산 정상인 해발 1,563미터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중 길가에 죽어 서있는 주목의 고사목이 내보이는 붉은 줄기에서 죽어서도 천년을 더 산다는 주목의 끈질김을 보았습니다. 대피소에서 두로봉까지는 그리 많은 분들을 만나지 않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두로령부터는 단풍맞이 나들이를 온 분들이 많아 등산로가 많이 붐볐습니다. 평지 길은 뛰고 가파른 오름 길도 쉬지 않고 내달렸지만 속도를 낼 수 없어 생각보다 늦게 비로봉에 도착했습니다. 오대산의 마지막 다섯째 봉인 호령봉을 오르고자 잠시 쉬며 지도를 꺼내보았는데 아무래도 해가 지기 전에 상원사에 도착하기에는 힘들 것 같았습니다. 고민 끝에 호룡봉은 한강지맥 종주 시 오르기로 하고 이번에는 상원사로 바로 내려가 17시 20분 발 진부 행 버스를 타기로 하고 모처럼 긴 시간을 쉬었습니다.

 

  15시24분 비로봉을 출발, 상원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에 들어섰습니다.
산행시간이 짧아 그리 지치지는 않았지만 두 다리를 보호하고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덕분에 일상사를 잊고 오대산의 깊은 가을에 빠져들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산 길에 서서히 시작된 어둠이 상원사에 이르러 짙어졌습니다. 산행을 끝낸 터라 걱정할 일이 아니었고 호룡봉 행을 잘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로봉을 출발, 1시간 21분 동안 3.3키로의 길을 내려와 16시 45분 상원사 주차장에 다다라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서울에 올라가면 32년 전에 함께 오른 산형에 그 때 못 이룬 오대산 종주를  9시간 동안 20키로의 산길을 오르내려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보고하고자 합니다. 비록 마지막 봉우리인 호령봉을  오르지 못해 미완의 종주이기는 하지만, 그 때는 애당초 호령봉에 오를 계획이 없었기에 종주에 성공했다고  보고해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시내버스로 진부로 옮겨 바로 우등고속을 타고 과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말 연휴 이틀동안 칼봉산-매봉에 이어서 오대산을 오르느라 진을 빼서인지 머리 속으로 산행기를 요약하고자 눈을 감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 꿈속에 빠져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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