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악산(4)
*산행일자:2014. 8. 23일(토)
*산높이 :화악산 1,468m
*소재지 :경기 가평
*산행코스:화악2리 왕소나무 앞-천도교수련원-중봉
-조무락골-38교
*산행시간:9시58분-18시30분(8시간32분)
*동행 :총 11명 (강치환, 김주홍, 김남진/김양미, 김종화, 박태환,
이규성, 우명길, 장광종, 하태현, 황의천)
화악산을 이 달에 오르겠다는 계획이 일찌감치 작년 12월 덕성산을 오를 때 공지된 것은 원래 설경이 빼어난 화악산을 오르려다 때 마침 엄습해온 혹한을 피해 따뜻한 충남지역의 명산으로 바꿔 올라서였습니다. 설경을 놓친 아쉬움을 한 여름 조무락골의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달래볼 뜻으로 8월로 정했는데 오름 길 내내 잠잠했던 비가 하산 길에 기다렸다는 듯이 많이 내려 기대한 만큼 알탕을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제게 이번 산행이 감격스러운 것은 올 들어 처음으로 해발 천m를 넘는 고봉을 올랐다는 것과 장장 8시간을 걸어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척추협착증과 부정맥의 내습으로 달 반 넘게 산행을 쉬다가 5월부터 동네 수리산을 2시간가량 걸어 산행을 재개한 후 조금씩 시간을 늘려온 작전이 주효해 이제 예전처럼 종주산행을 다시 해도 좋을 만큼 자신감도 되찾았습니다.
오전9시58분 왕소나무 앞에서 내를 건너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9시 정각에 가평역에서 버스에 올라 화악2리의 왕소나무 앞에 다다르기까지 1시간 가까이 걸린 것은 이 버스가 몽가북계 능선을 종주하는 손님들이 하차하는 홍적리를 들러 나와서입니다. 왕소나무 앞 산림골 개천은 시멘트를 깔아 만든 다리를 구두를 벗고 건너야 할 만큼 물이 많이 불어 바로 아래 교각을 세운 다리로 건너느라 조금 에돌았습니다. 다리를 건너 대오를 정비한 후 천도교수련원을 향해 꽤 넓은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이 길을 처음 걸은 것은 1998년 겨울입니다. 고교동문 이규성교수가 마침 안식휴가중이어서 주말이면 둘이서 1,000m가 넘는 경기도의 고산을 골라 올랐는데 그때 화악산을 오르고자 이 길을 걸었습니다. 끝내 화악산의 중봉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봉우리에서 찾아 헤매다 오후 2시쯤에 하산해 산행을 마친 기억이 지금도 새로운 것이, 그 후로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목적한 산을 오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일은 다시 없었습니다.
11시12분 천도교 수련원 위 갈림길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왕소나무에서 반시간 쯤 걸어 준비해간 개념도를 나눠주고 산행코스를 설명하느라 잠시 멈춰 섰습니다. 얼마 후 만난 갈림길에서 오림골 계곡과 나란히 난 길을 버리고 그 오른 쪽의 이제껏 걸어온 길로 계속 진행했는데 이규성교수가 스마트폰에 다운 받아 놓은 길과 다르다며 걱정했지만, 수련원이 아니라면 이 정도 넓은 길이 왜 필요하겠나 싶어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두 길이 천도교수련원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나중에 확인했습니다. 중봉등산로가 표시된 삼거리에서 바로 아래 건물이 천도교수련원임을 확인하고 오른 쪽 등산로로 들어섰습니다. 전날 비가 제법 많이 내려 오림골을 흐르는 계류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 옥녀탕 앞 계곡을 건너 1320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로 오르겠다는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물이 적은 상류에서 계곡을 건너는 것이 안전하겠다 싶어 오림골 오른 편에 등산로를 따라 올랐는데 이 판단은 그르지 않아 얼마 후 상류에서 안전하게 계곡을 건넜습니다.
12시 반이 조금 지나 첫 번 째로 올라선 능선에서 김주홍회장과 둘이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오림골 상류에서 계곡을 건너 산등성을 치고 오르는 길이 꽤 가팔랐습니다. 왼쪽 다리가 조금 댕긴다는 느낌이 들자 척추협착증때문이 아닌가 싶어 바짝 긴장됐습니다. 지난 3월 하순 이 증세가 시작된 후 제대로 걷지를 못해 달 반 넘게 산행을 쉬면서 약을 먹었는데 다행히 약이 잘 들어 5월 들어 집근처 수리산을 2시간가량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조금씩 산행시간을 늘려오다가 지난 주 토요일 7시간을 걸어 한남관악지맥의 첫 구간 종주에 성공한 데 힘입어 이번 화악산 산행에 참여했습니다. 두 다리를 편히 쉬게 하고자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김회장이 집에서 준비해온 점심을 같이 들면서 반시간 넘게 쉬었습니다.
14시37분 해발1,450m의 중봉에 올라섰습니다. 식사시간 동안 푹 쉬어서인지 여전히 가파른 능선 길을 오르는데도 다리가 당기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자주색의 금강초롱이 보였고 투구꽃도 눈에 띄었습니다. 올 들어 산행다운 산행을 하지 못해 야생화와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천m가 넘는 고산에서 만나는 야생화들이라서 하나같이 그 자태가 단아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쉬고 있는 일행들을 만나 잠시 숨을 돌린 후 십 수 분을 더 걸어 시멘트 길의 군사도로로 올라섰습니다. 왼쪽으로 시멘트 길을 따라 6-7분을 따라 걷다가 다시 숲속 길로 들어섰습니다. 십 수 분간 계속된 오름길이 힘들었던 것은 경사가 가파른데다 길이 질펀하고 미끄러워서였습니다. 조심해서 올라 중봉에 올라서자 군부대가 들어앉아 오를 수 없는 화악산 정상이 지근거리인데도 안개가 끼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점심식사를 마친 터라 중봉의 정상석을 둘러싸고 합동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하산했습니다.
16시3분 조무락골 계곡에 내려섰습니다. 중봉에서 조무락골로 하산 길은 서쪽으로 이어졌는데 갈림길까지 제가 앞장서서 안내를 했습니다. 10여분을 걸어 다다른 갈림길에서 젊은이들이 조무락골로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됐습니다. 오른 쪽으로 내려가 진행을 하다가 다시 만난 삼거리는 개념도에 나와 있지 않아 의아해하다가 표지목에서 38교(적목리)방향표시를 보고 그 표시대로 오른 쪽으로 내려가는 중 비를 만나 잠시 멈춰 서서 방수카버를 꺼내 배낭을 덮어씌웠습니다. 얼마간은 비가 오락가락해 별 걱정을 안 하다가 굵은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자 겁이 덜컹 났습니다. 조물락골로 내려가는 길은 된비알길인데다 표토가 물을 한껏 머금어 저와 같이 후미로 쳐져 걷는 한 친구가 몇 번을 미끄러졌습니다. 지도에는 길이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실제 길이 북쪽으로 길이 나있어 의아해하다가 물소리가 나는 방향을 확인하고 중간의 이정표를 보고서야 비로소 안심됐습니다. 가파른 비알 길은 “삼팔교 5Km”의 표지목이 세워진 조무락계곡의 상류에서 끝났고 여기서부터 이번 산행의 끝점인 삼팔교까지는 경사가 완만한 계곡길이 서쪽으로 이어졌습니다.
18시30분 삼팔교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새들이 춤추고 즐길 만큼 조무락골 계곡이 깊은 것은 화악산과 석룡산의 한 중간을 흘러서인데 집중호우가 내리면 두 산이 쏟아내는 물이 이 계곡으로 모여 계곡산행이 위험하게 됩니다. 중봉에서 계곡으로 내려오는 동안 제법 줄기차게 비가 내려 조무락골 계곡을 빨리 빠져나가려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계곡물이 너무 불어 건너기 위험하다싶으면 석룡산으로 올라가 도마치고개로 하산하는 방안도 생각해뒀지만 그리되면 야간산행이 불가피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석룡산에서 내려온 여러 명의 산악회 회원들이 조무락골을 하산코스로 잡아 계곡 길이 붐볐습니다. 중간에 비가 멈추고 구두를 벗지 않고 건너도 될 정도로 생각만큼 물이 많이 불지 않아 계곡산행이 순조로웠습니다. 이 계곡의 명품인 복호동 폭포를 먼발치서 사진 찍은 후 조금 더 내려가 웃통을 벗고 등 멱을 했습니다. 38교에서 택시를 타고 가평으로 옮겨 서울 행 전철을 탈 계획이어서 마지막 1Km가량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북위 38도선 상에 자리한 자그마한 다리 삼팔교에서 산행을 마치고나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올 들어 가장 긴 시간을 산행한 두 다리가 걱정됐습니다.
조무락골의 저녁 풍경은 일품이었습니다. 옅은 안개가 살포시 계곡을 감싸 그 은은함이 계곡의 물소리를 잠재우는 듯 했습니다. 비가 온 뒤끝이라서인지 계곡에서 노닐 법한 물새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지만, 60대 중반의 초노들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모습 또한 자연을 이루는 한 풍경이다 싶었습니다. 나이가 들자 차츰 강가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것은 산을 계속 다니기에 힘이 달려서만은 아닙니다. 산이 문화와 접점을 이루는 곳은 고갯마루가 거의 다입니다만, 강에는 어디가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주저리주저리 열려 있어 문화를 냄새 맡을 수 있습니다. 조무락골이 끝나는 삼팔교에서 가평천을 따라 걸으며 가을 정취를 보듬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저녁은 38교 인근 식당에서 들었습니다. 인원이 많지 않아 모처럼 돌아가며 산행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내년에 회장 자리를 내놓겠다는 김회장의 중대발언에 뒤이어 저도 건강이 옛날 같지 못하다며 김회장과 같이 산행대장 직을 그만 둘 뜻임을 강력히 천명했습니다. 이제 우리 명백회도 견고하게 자리를 잡은 만큼 새 인물이 맡아 해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판단입니다. 무슨 자리든 오래 해서 좋은 것은 없습니다. 명산100산 산행을 시작한지 만 8년이 다 되갑니다. 이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때가 온 것이기에 우리 둘의 사퇴천명은 시의 적절했다는 자평입니다.
<산행사진>
화악산(3)
*산행일자:2010. 9. 4일(토)
*소재지 :경기 가평
*산높이 :무명봉1,142m(?)
*산행코스:관청리-애기봉/중봉 능선(애기봉0.3Km/중봉3.3Km)-애기봉/
중봉능선(애기봉2.0Km/중봉1.6Km)-큰골 애기봉 갈림길-관청리
*산행시간:9시40분-17시46분(8시간6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회원9명
(26회임종륜, 27회송기훈회장님 29회김정호, 최우승, 정병기/김의정
윤대일,37회 장민순 및 24회우명길)
올 여름에는 산행다운 산행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허리수술을 받은 지 1년도 채 안 된 작년 7-8월에도 복더위를 무릅쓰고 여섯 번을 출산해 한남앵자지맥 종주를 마쳤는데, 그 때보다 몸이 훨씬 좋아진 올 7-8월에는 겨우 낙남정맥만 네 번 종주했을 뿐입니다. 그나마 낙남정맥 종주도 더위를 핑계대고 6-7시간 산행하고 그날로 돌아왔기에 그다지 치열하게 산행한 것이 아닙니다. 해발602m의 천왕봉이 자리한 돌고지재-배토재 구간을 빼 놓고는 해발100m-200m대의 낮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린 것이 전부여서 정작 힘들었던 것은 산 오름이 아니라 후끈거리는 지열과 잡목 풀숲을 뚫고나가는 일이었습니다. 낙남정맥 종주산행이 아직도 진주 일원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것은 올 여름에는 예년처럼 치열하게 산행하지 않아서입니다. 덥다고 구간을 짧게 자르고 비 온다고 산행을 피해온 결과 저 나름대로 잘 지켜온 도전정신은 형편없이 약해지고 뱃살만 늘어났습니다.
9월 첫 산행부터 한 번 치열하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기운이 다 해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옮겨놓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게 산행을 하지 않고서는 지난 7-8월의 웰빙산행으로 망가진 몸과 정신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이제 한 번 산에 들면 최소한 8시간 넘게 산행하고 웬만하면 천 미터가 넘는 고산을 우선적으로 오르며, 낙남정맥 종주도 당일로 끝낼 것이 아니라 2-3일 연속 진행하겠다고 마음 다져먹었습니다. 북상하는 제9호 태풍 말로의 영향을 받아 일요일 날 진주일원에 비가 온다고 해 토-일 양일간 낙남정맥을 종주하겠다는 뜻을 접고 해발1,450m의 화악산 중봉을 오르는 것으로 산행계획을 바꾸었습니다. 관청리에서 시작해 애기봉-중봉 능선을 거쳐 중봉에 오른 다음 조무락골로 하산하는 산행코스 정도면 제 느린 걸음으로는 8시간 족히 걸릴 것 같았고 최소한 1천m이상 고도를 높여야 중봉에 오를 수 있는데다 한 낮에는 기온이 섭씨30도를 웃돈다 하니 치열하게 산행하고 싶은 제게는 안성맞춤 코스였습니다. 관청리-애기봉/중봉 능선-중봉까지 산행코스는 제가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고 이 길을 고교동문들과 함께 걷는 것이기에 저 혼자서 하는 낙남정맥 종주를 다음 기회로 미루고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오전9시40분 7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관청리마을을 출발했습니다. 7년 전 고교동문 몇이서 화악산의 중봉을 오를 때 출발지였던 이 마을에서 그새 도대리쪽으로 옮긴 보건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동쪽 마을을 지나 큰골로 들어가는 길은 그대로여서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산행시작 10분이 채 못 되어 만난 큰골 계곡에 물이 많이 흘러 건너지 못하고 그 아래로 옮겨 얕은 곳으로 건너면서 하산코스로 잡은 조무락골 계곡을 건너는 일도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수원 보호를 위해 철문을 해놓은 계곡에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오른 쪽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애기봉300m 북쪽 지점의 능선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큰골과 만나는 지점은 철문을 지나 큰골 상류로 더 들어가야 했는데 너무 일찍 계곡 길에서 벗어나 임도로 들어서는 바람에 이번 산행이 더뎌졌습니다. 10분 남짓 걷자 임도는 끝나고 길이 희미해져 앞서 가는 한 산악회에서 남긴 희미한 흔적을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 번갈아 방향을 바꿔가며 진행했습니다.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과연 맞는 길인지 신경이 쓰였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노랑 망태버섯이 다소곳이 인사를 해와 반가웠습니다.
10시46분 능선을 몇 개 넘어 내려선 평평한 곳에서 과일을 꺼내들며 10분여 쉬었습니다. 북쪽으로 올라선 능선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표지기가 걸려 있는 산길이 나타났습니다. 이 길을 따라 동쪽으로 진행하다 잡목과 풀숲이 길을 막아 왼쪽 능선으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앞장 선 토요산울림산악회에서 표지기를 걸어놓아 길 찾기가 수월했는데 가파르고 물젖은 흙길을 오르느라 20분여 산 오름이 고됐습니다. 애기봉300m 북쪽 삼거리로 이어지는 해발 700m대의 제 능선을 만난 것은 11시38분으로 여기서부터 왼쪽으로 오르는 능선 길이 분명하고 경사도 완만해 힘든 길은 끝났다 싶었습니다. 12시경 능선 길 바위에 앉아 뒤따라오는 몇몇 후배들을 기다리며 얼마간 쉬고 나자 등 뒤의 땀이 식었습니다. 올 여름은 유독 길고 무더웠습니다. 이제 가을기운이 완연하고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가 나흘 밖에 안 남았으니 여름이 아무리 버텨봤자 열흘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화악산 중봉에서 극성스런 여름을 날려 보내고 가을을 맞겠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했습니다.
13시27분 해발1천m가 조금 넘는 “아기봉300m/중봉3.2Km”지점의 능선삼거리에 올라섰습니다. 능선 바위에서 10여분 쉰 후 다시 시작한 산행을 20분가량 이어가다 선두가 일행 9명이 둘러앉을 만한 장소를 찾아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이 화제가 되었고, “태백산맥은 없다”고 밝힌 한 동문으로부터 우리나라 산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제국의 35년간 강점으로 잃어버린 우리말과 글을 아직까지도 제대로 찾아 쓰지 않고 일본식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며 방송출연자들부터라도 우리말로 고쳐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 동문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10분 남짓 능선을 따라 올라 “아기봉300m/중봉3.3Km”지점의 능선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감기몸살로 중봉까지는 아무래도 무리인 한 동문과 이 동문을 동행할 회장 등 두 명은 애기봉을 거쳐 화악리로 내려가는 보다 가까운 하산로를 택해 떠났고 나머지 일행 7명만 3.3Km 남은 중봉을 향해 북진했습니다.
14시50분 “아기봉2.0Km/중봉1.6Km"지점의 네 번째 능선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중봉으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 10분 남짓 내려가 “아기봉0.8Km/중봉2.8Km/관청리3Km"의 이정표가 서 있는 두 번째 능선삼거리를 지났습니다. 관청리 마을에 세워진 안내판에 나와 있는 대로 큰 골 따라 더 올라가서 애기봉을 올랐다면 여기 삼거리에서 애기봉-중봉능선을 만났을 것입니다. 아직도 중봉을 오르려면 해발고도를 400m가량 높여야하는 데 오르락내리락하느라 해발고도가 1,000m 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가느다란 밧줄을 잡고 올라선 암봉의 높이가 첫 번째 갈림길의 고도와 거의 같았습니다. 2년 전 화악지맥을 종주할 때 석룡산-화악산 능선에다 화원을 차린 가을 풀꽃 중 둥근이질풀과 진교 꽃은 드물게 눈에 띄었으나 금강초롱, 투구꽃과 모시대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가을의 전령인 쑥부쟁이나 노란 미타리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두를 선 한 동문이 자리 잡은 곳은 거암 바로 아래 골바람이 지나는 통로여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1시간 넘게 걷느라 지친 일행들에는 최고의 쉼터였습니다. 관창리로 내려가는 세 번째 능선삼거리에서 중봉까지 1.9Km가 남아 있어 서둘러 산행해도 중봉에서 예정대로 조무락골로 하산하기는 무리일 것 같고 그 반대방향인 실운현으로 하산해 사창택시를 불러야 할 것 같았습니다. 세 번째 능선삼거리에서 13분 걸려 올라선 1142m봉(?) 바로 앞의 네 번째 능선삼거리에서 산행대장이 숙의 끝에 중봉 행을 포기하고 왼쪽 관청리로 하산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중봉을 1.6Km 남겨놓고 하산하기가 아쉬웠지만 여름산행이 몸이 배지 않은 몇 몇 동문들이 힘들어 해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16시42분 큰골에서 오른쪽으로 1220m봉 길이 갈리는 삼거리로 내려섰습니다. 네번 째 능선삼거리에서 급강하 하는 하산 길이 결코 만만치 않아 적지 아니 시간을 잡아먹을 것 같았지만 17시50분에 용수목을 출발하는 가평 행 버스는 충분히 탈수 있을 것 같아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곤파스 태풍 뒤끝이라 길을 이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은 데 선두를 맡고 있는 한 동문이 눈썰미가 있어 뒤따르는 동행들이 고생을 면했습니다. “아기봉2.0Km/중봉1.6Km"지점의 능선삼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1220m봉 아래에서 시작된 큰골의 지계곡을 만난 것이 16시20분 조금 못되어서였으니까 1시간 이상 가파르고 고르지 못한 길을 걸어 내려온 셈입니다. 잠시 머물러 얼굴을 닦아 낸 후 하산을 계속했습니다. 한참 후 풀들이 우거진 임도 길로 내려서자 연분홍의 물봉선과 여뀌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 1220m봉으로 올라가는 큰 길 쉼터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17시46분 관창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큰 길 쉼터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면서 네 번이나 계곡을 건넜습니다. 첫 번째는 그냥 건넜고 그 다음 두 번은 미끄러질 까 두려워 신발 벗고 맨발로 건너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덕분에 탁족 한 번 제대로 해 피로가 싹 가셨습니다. 큰 비가 내리면 위험할 것 같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 마지막으로 물을 건넌 곳은 아침에 보았던 상수원보호 철문 앞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웃옷을 벗고 등을 씻은 후 관청리 버스정류장으로 옮겼습니다. 십 수분 기다려 가평 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목적했던 화악산의 중봉을 오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목표한 산을 오르지 못하고 중도에 코스를 변경할 사유는 앞으로도 퍽이나 다양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자연조건은 사람들이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연조건이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언제든 목표한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몸 관리 하나만은 철저히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산을 오르는 일은 유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산행해서도 안 되는 것이 하루 이틀 산행하고 말 일이 아니어서입니다. 중봉을 오르지 못한 것보다 더욱 아쉬운 점은 생각보다 치열하게 산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정보다 산행코스가 짧아지고 높은 봉우리를 안 올라 별반 땀을 흘리지 못했습니다. 산행 초반 미끄러운 흙길을 오르느라 얼마간 힘들었을 뿐 그 후부터는 코스가 무난해 땀 흘릴 만한 데가 별로 없었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이기에 이번 산행은 이정도 땀을 뺀 것으로 만족하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지리산이나 덕유산을 다시 한 번 종주해야할까 봅니다.
<산행사진>
화악산 (2) *산행일자:2008. 8. 16일(토) *소재지 :경기가평/강원화천 *산높이 :신선봉1,468m, 중봉1,424m *산행코스:실운현-북봉-중봉-중봉/방림고개갈림길-복호동폭포-조무락골 입구 *산행시간:10시10분-16시16분(6시간6분) *동행 :송백산악회회원 어제 오른 화악산은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고산입니다. 해발고도가 1,468m에 달해 소백산보다 29m, 가야산보다도 38m가 더 높은 경기도 제1의 고산입니다. 이들 산보다 서울에서 훨씬 가까이 있는데도 이 산을 오르는 산객들이 그리 많지 않고 명성 또한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은 군부대가 이 산의 정상을 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아래로 빙 둘러 울타리를 쳐놓아 정상접근을 막고 있기에 진땀을 흘리며 1,400m가 넘는 고봉을 오를 마음이 이는 산꾼들이 많지 않은 것입니다. 휴전선이 그리 멀지 않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군부대가 철수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작년 11월에 정상을 열어 놓은 용문산처럼 가평군과 군부대가 지혜를 짜내어 정상에 오르는 길을 내준다면 더할 수 없이 고맙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국토의 중앙을 지나는 동경127도30분의 국토자오선과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북위38도선과 교차하는 한반도 중앙점이 화악산에 자리하고 있어 더욱 그러했습니다. 모처럼 잠실역이 조용했습니다. 이 여름 마지막 황금연휴를 맞아 원거리산행을 계획했던 많은 산객들이 이틀 연속 내리는 비로 산행을 취소하는 바람에 휴일아침이면 등산객들로 북적대던 잠실역의 롯데호텔 앞이 눈에 띄게 조용했습니다. 관광버스가 한 두 대 밖에 없고 버스를 기다리는 등산객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썰렁함마저 느껴졌지만, 이날 하루만이라도 우리나라 명산들이 모처럼 편히 쉴 수 있겠다 싶어 눈치 없이 뿌려대는 빗방울이 그리 밉지 않았습니다. 아침7시10분경 잠실을 출발했습니다. 여느 산악회라면 성원이 안됐다며 당연히 취소했을 화악산산행을 제가 예약한 산악회에서는 대형버스 대신 승합차 2대를 동원해 예정대로 진행했습니다. 오전에만 잠시 비가 내리고 바로 갠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미덥지 못했던지 아침 일찍 산에 못가겠다는 전화가 많이 와 이미 예약한 대형버스를 부랴부랴 취소하고 승합차를 끌고나왔다는 회장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이 산악회가 산행약속을 잘 지키기로 이름 난 것이 단순한 광고 덕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큰마음 먹고 안내산악회에 주말산행을 예약했다가 금요일 오후 산행이 취소됐다는 전화를 받고 낙담한 일이 꽤 여러 번 있었기에 이번처럼 차를 줄여서 산행약속을 지켜준 이 산악회가 고마웠습니다. 신년 산행으로 정월초하룻날 태백산을 같이 오른 후 이번이 처음이어서 몇 년 전 백두대간을 같이 종주한 반가운 몇 분들을 만나 뵐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집행진의 몇 분들을 빼고는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습니다. 신년 산행을 같이 한 산행대장 한 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승합차에 올라 가평으로 옮기는 중에도 비가 그치지 않아 이번 산행이 참으로 구질 맞겠다했는데 가평을 지나 화악산이 가까워지자 비가 그쳤습니다. 오전10시10분 삼거리안부 실운현에서 화악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용수리 길이 갈리는 목동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화악리로 향했습니다. 대형버스라면 도로공사장 입구에서 돌아가야 했을 좁은 길을 승합차로 조심해서 올라가 화악산정상인 신선봉과 응봉의 한 가운데 자리한 실운현 고개에서 하차했습니다. 해발1,000m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한 실운현에 내려서자 골바람에 한기가 느껴져 자켓을 꺼내 입었습니다. 짐을 챙긴 후 왼쪽 임도를 따라 걷다가 단 2분도 지나지 않아 오른 쪽 능선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 밑 건들내에서 실운현까지 차로 편하게 올라온 것도 이 산에 미안한 일이고 왼쪽 임도를 따라 중봉 아래 부대 앞까지 편히 걸어간다면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싶었는데 산악회에서 한북화악지맥을 따라 밟는 숲속으로 길을 안내해 몸은 좀 힘들더라도 마음은 한결 편안했습니다. 11시18분 북봉에 도착했습니다. 교통호를 건너 능선 길로 올라선 후 오름 길이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고 외길이어서 얼마동안 산 오름이 편안했습니다. 주황색의 동자 꽃, 불그스레한 이질풀꽃과 자주색의 금강초롱 등 이런 저런 야생화들이 인사를 건네 와 잠시 멈춰 서서 그들에 화답의 눈길을 주고 청초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오느라 오름 길 내내 후미로 쳐졌습니다. 5년 전에 오른 화악산을 이번에 다시 찾은 것도 실은 그 때 담아가지 못한 이 산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였기에 한껏 싱그러움을 내뿜으며 반겨 맞는 풀꽃들을 나 몰라라 하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반가운 것은 금강초롱과 닷꽃 등의 풀꽃들만 아니었습니다. 수피가 새 하얀 자작나무가 요 며칠 내리는 비로 온 몸을 말끔히 닦아내고 산객들을 맞았고, 양팔을 활짝 펴든 관중도 저를 반겼습니다. 숲길을 빠져나와 개활지 풀밭 길에 이르자 군부대가 들어선 화악산 정상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상에 조금 못 미쳐 오른 쪽으로 벗어나있는 북봉을 잠시 들러 서둘러 사진을 찍은 후 삼거리로 되돌아와 한북화악지맥과 헤어지고 정상 바로 아래 군부대 울타리 앞으로 올라가 먼저 도착해 쉬고 있는 일행들에 합류했습니다. 12시12분 해발1,424m의 중봉에 올라섰습니다. 이 산의 정상인 신선봉을 지척에 두고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군부대 울타리 밑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근원을 따져보면 남북분단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군부대 울타리를 오른 쪽 밑으로 에돌며 이 길이 정식 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생각한 것은 사람 다닌 흔적만 보일 뿐 길을 안내하는 표지물이 없어서였는데 결국 정상을 오른 쪽으로 다 돌고나서 초병으로부터 이 길로 다녀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받았습니다. 우회 길을 오르내리며 너덜지대도 지나고 풀숲 길도 지나 군부대 왼쪽으로 난 군사도로와 만나기까지 50분 가까이 에돌았습니다. 힘들게 우회한 신선봉과 맞은 편 중봉의 한 가운데 정문 앞에서 또 다른 군부대 울타리를 왼쪽으로 끼고 7-8분간 올라 실질적으로 화악산의 정상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는 중봉에 다다랐습니다. 5년 전에 고교동창들과 함께 이 봉우리에 올랐을 때는 안개가 잔뜩 끼어 코앞의 신선봉도 보이지 않아 엄청 답답했습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산자락을 휘감았던 먹구름이 전부 가시고 일망무제로 막힘이 없어 화악산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정상봉인 신선봉 및 동쪽의 응봉과 더불어 화악삼봉으로 알려진 중봉에서 한북정맥의 연봉들은 물론 이 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화악지맥의 연봉들도 모두 다 볼 수 있다 하는데 지난 겨울에 오른 한북정맥 최고봉인 국망봉이 어느 봉우리인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웅장한 산줄기와 그 사이 깊은 골짜기들이 한 눈에 들어와 역시 경기제1봉이다 했습니다. 14시8분 중봉 갈림길의 합수점에 내려섰습니다. 일행들과 함께 점심을 든 후 12시38분에 하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중봉을 출발해 조무락골의 중봉갈림길에 다다르기까지 내림 길이 군부대울타리를 도는 우회길 이상으로 편치 못했던 것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중봉에서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한참을 가다 오른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데 너무 일찍 오른 쪽으로 꺾어 계곡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제 길을 만날 때까지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중봉에서 얼마가지 않아 애기봉 갈림길을 만났고 2-3분을 더 걸어 만난 또 다른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간 것이 힘든 길로 들어선 시작이었습니다. 꽤 긴 너덜 길을 지나고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 고도를 1,000m가까이로 낮추자 조무락골의 지계곡이 나타났습니다. 이내 물줄기가 굵어져 그동안 어렵게 이어온 길이 저 계곡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적지 아니 걱정됐습니다. 첫 번째 합수점을 지나자 노련한 여성대장이 앞서 가며 남긴 족적을 따라가는 것도 벅찰 정도로 하산 길이 흐릿하고 미끄러웠습니다. 두 번째 합수점을 지나 석룡산에서 방림고개를 거쳐 조무락골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만나자 비로소 안심됐습니다. 23분간 더 걸어 내려가 다다른 세 번째 합수점에서 왼쪽으로 오르는 중봉 길이 보였는데 애당초 계획한 하산 길은 그 길이었으며, 이곳에 세워놓은 표지목에는 이제껏 내려온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15시8분 복호동폭포를 들렀습니다. 합수점 바로 위 무명폭포를 카메라에 담은 후 38교를 향해 조무락골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38교로 내려가는 길에 세 네 곳에서 계곡물을 건너야 했는데 집중호우라도 쏟아지는 날에는 물이 급속하게 불어 계곡을 건너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조무락골을 흐르는 계류가 급물살을 이루어 물소리가 여간 크지 않았습니다. 엿새 전에 다녀온 강원삼척의 응봉산이 숨겨놓은 용소골이 참으로 일품이다 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 계곡의 깊이나 크기로는 화악산의 조무락골에 비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조무락골에 물을 대는 경기 제 1의 고산인 화악산도 요새 며칠 간 내린 비를 다 담아두지 못하고 상당량을 그대로 흘려보내 하산길이 수로로 변해버렸습니다. 계곡을 건너고 숲속 수로를 걸어 내려오느라 구두가 흥건히 젖었습니다. 쌍룡폭포로 보이는 낙차 큰 폭포를 사진 찍은 후 한참 더 내려가 또 하나의 합수점을 만났습니다. 합수점에서 왼쪽으로 3-4분 거리에 있는 복호동폭포는 조무락골의 지계곡에 위치해 있어 수량이 많지 않았고 소도 크지 않았지만 몇 단계를 거쳐 떨어지는 폭포수가 새하얀 포말을 만들어 볼만했습니다. 16시16분 38교를 500-600m가량 앞에 둔 조무락골 입구에서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복호동폭포에서 합수점으로 내려가 부지런히 38교로 내려갔습니다. 38교 1.3Km 전방지점에서 왼쪽 계곡으로 내려가 20분여 일행 분들과 함께 알탕을 마친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하산 길을 이어갔습니다. 수수밭을 지나 38교로 내려가는 중 석룡산 갈림길이 몇 번 나타났습니다. 석룡산안내지도를 사진 찍은 후 몇 분간 더 내려가 38교에서 올라온 산악회의 승합차를 만났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수제비국 맛이 일미여서 두 그릇을 간단히 먹어치웠습니다. 17시12분 귀경길에 올랐습니다. 가평읍내까지 청정하천 가평천을 따라갔습니다. 해발860m지점의 신로령 북동계곡에서 발원한 가평천은 장장 38Km를 흘러 북한강에 닿기까지 화악천 등 6개의 골짜기 물을 받아 한강으로 실어 나릅니다. 가평천 곳곳이 마지막 여름을 물놀이로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로 붐벼 가평-사창을 잇는 75번 도로변도 같이 북적댔습니다. 가평천에 물을 대는 거산들은 한북정맥과 한북화악지맥의 연봉들입니다. 이 연봉들을 대표하는 최고봉이 이번에 오른 화악산입니다. 정상을 점하고 있는 군부대 덕분에 앞으로도 화악산은 경기도 최고의 청정한 산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건들내에서 정상을 오르는 길에 천도교수련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00여 년 전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관군에 쫓겨 이 산으로 도망 온 동학도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아간 곳이 바로 천도교수련원 일대였다 합니다. 몸 동아리를 숨겨둔 은신처가 격동의 세월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수련원으로 바뀐 것으로 보아 여기 화악산은 길지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속에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길지인 화악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가고자 조만간 화악산을 지나는 한북화악지맥을 천천히 걸어볼 뜻입니다. <산행사진>
화악산 (1)
*산행일자: 2003년6월6일
*소재지 : 경기 가평
*산 높이 : 1,465미터
*산행코스: 보건소-중봉-보건소
*산행시간: 10시45분-18시20분(7시간35분)
*동행 :경동고24기 함기영, 이길호, 29기 정병기
화악산은 역시 경기 제1 봉이었습니다.
산 입구까지 다다르기도 힘들었고, 오르기도 벅찼으며, 하산 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어제는 경기도 가평의 화악산을 올랐습니다.
아침 7시10분 성수 역을 출발하여 가평군 북면 관청리의 보건소지소에 도착하기까지 3시간20분이 걸렸습니다. 미사리를 거쳐 청평대교를 건너기까지 금싸라기 같은 아침시간을 1시간 여 잡아먹었으니 좀 느긋하게 오르겠다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서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동OB산악회의 함기영 회장 및 이길호, 정병기 동문과 함께 한 화악산 등정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MK 택시(Myung Kil's Car를 지칭)의 운전대는 부천에서 특별히 초빙한 정병기 동문이 잡았는데, 가끔 두 손을 다 놓고 운전하는 용감함만 절제된다면 특급기사로 손색이 없다할 만큼 편안한 운행이었습니다.
10시 45분 보건소 출발하여 큰골로 들어섰습니다.
1시간 여 계곡을 끼고 걷다 때로는 계곡을 건너뛰며 산행을 했습니다. 다른 팀의 7-8명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계곡을 벗어나 치받이 길을 1시간 10분 동안 걸어 1,059미터의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가히 깔딱고개라 불러도 좋을 만큼 난이도가 높은 이 코스에서 체력과 은근과 끈기를 모두 어우른 산행실력이 다르기에 개인별로 그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역시 함기영 회장의 날렵함이 일품이었고, 이길호 동문의 분투가 돋보였습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밟으며 고도를 높여갔습니다.
13시 30분 능선에서 중식을 들었습니다.
정 병기동문의 김밥을 먹으면서 으뜸가는 내조의 진수를 체감했습니다. 반주로 든 맥주 맛이 일품이었고 오랜만에 나눈 정담으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 짐을 꾸려 출발을 준비했습니다.
14시 목적지인 중봉을 향하여 일어섰습니다.
빗발이 제법 커지는 듯 싶었습니다. 말이 능선이지 치받기는 계곡-능선코스와 별 차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산행 중 손수건을 떨치는 치매증세를 보이는 또 다른 동문의 존함은 이자 길자 호자로 삼악산에서 손수건을 잃은 이 규성 동문과 성이 같은 이씨 일가였습니다.
15시 중봉에 올라섰습니다.
화악산 정상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어 오를 수 없기에 이 중봉이 정상을 가름하고 있는데, 이곳 중봉의 높이가 표지석에 1,420미터로 새겨져 있어 산지의 지도에 표기된 1,446미터와 달라 혼란스러웠습니다. 안개로 시야가 가려 접근이 통제된 화악산 정상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증명사진 몇 방은 필수였고 빗발이 다시 후드득 떨어져 등정주로 남은 맥주를 마시고 하산을 준비했습니다.
15시20분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1400미터대의 높이는 그 높이 값을 단단히 하기에, 우리 몸에서 급격히 열을 빼앗아 가 추위가 느껴졌기에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엉덩방아는 역시 과체중의 우 명길 동문이 도맡아 찧었습니다. 그래도 3번으로 끝 낼 수 있었던 것은 3월 이후 6 키로를 뺀 덕분입니다. 가는 비가 빗줄기로 변하면서 산 속의 조도는 10룩스 이하로 떨어져 어두워졌습니다. 자연 발걸음은 빨라지고 내리받이의 어려움은 미끄러움 때문에 가중되었습니다만, 하산은 그 방향이 중력의 방향과 일치하여 산을 오를 때보다는 힘이 덜 들었습니다.
16시40분계곡으로 내려서자 하늘이 다시 열려 빗줄기가 멈추고 제 밝기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 제서야 여유를 되찾아 계곡에서 마지막 먹거리 사과를 들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여유 있게 담소를 즐기며 MK택시를 세워둔 출발지에 도착한 시각은 18시 조금 못되어서이니 총 산행시간은 7시간 남짓 걸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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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 20분 경 관창리를 출발하여 구리시에 이길호, 정병기 동문을 내려준 시각이 대략 10시경이었으니 귀로 중 해장국으로 저녁을 때운 30분을 제외하면 3시간 여 MK택시 안에서 시간을 죽인 셈입니다.
하산하면서 가볍게 즐긴 오늘의 논쟁은 자연을 사랑하는 함기영 회장과 인간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일군의 휴머니스트와의 변증법적 합의 도출이 가능한 가였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함회장은 과천시내에서 그린벨트지역으로 이사가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기에 분주했으며, 인간을 사랑하는 이규성교수는 새 생명을 잉태할 한 쌍을 만들고자 주례를 서느라 그 동안 별러왔던 화악산 산행을 포기했습니다. 모두가 뜻이 있으려니, 앞으로 같이 산행을 하면서 수려한 산수도 지키고 사랑하며 산에 오르내리는 산 꾼들에 눈인사라도 주고받는다면 그들이 바로 자연과 인간을 모두 아끼고 사랑하는 산악인이 아닐까합니다.
화악산은 역시 화악산이었습니다.
경기 5악 중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남한에서 설악 다음으로 높은 악산으로 알고 있읍니다. 벌써부터 오르고 싶었던 산이었습니다. 2001년11월 이규성동문과 올랐으나 길을 잘 못 들어 중봉에 오르는데 실패했기에 더욱 다시 오르고 싶은 산이었습니다. 전망만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 때문에 다시 찾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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