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10.소백산 산행기(1-4)

시인마뇽 2007. 1. 2. 17:51

 

 

                                                                    소백산 (4)

 

 

                                           *산행일자:2014. 11. 1일(토)

                                           *산높이 :비로봉 1,440m

                                           *소재지 :경북영주/충북단양

                                           *산행코스:천동리주차장-천동야영장-비로봉

                                                          -달밭골 초암사갈림길

                                           *산행시간:11시5분-16시22분(6시간17분)

                                           *동행 :산서회 회원 6명

                                            (권병화, 안성민, 이규성, 이정표, 조동준, 호경필, 우명길)

 

 

 

영주 분들의 소백산 사랑이 부러운 것은 그 사랑이 책으로 결실되어서입니다. 영주문화유산보존회가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고보조를 받아 함께 펴낸 “소백산”이 바로 그것입니다.‘ 소백산의 역사와 문화를 개괄한 290쪽의 한 권과 ‘장장 600쪽에 걸쳐 소백산의 유산기와 유산시를 실은 또 한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을 훑어보고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 말씀이 만고불변의 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산 높이로 말한다면 제가 낳고 또 살고 있는 경기도의 최고봉인 화악산이 이번에 산서회 회원들과 같이 오른 소백산보다 28m 더 높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런 화악산이 소백산에 비할 만큼 잘 정리되고 연구된 자료나 논문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화악산에도 소백산처럼 꿸 구슬이 과연 세말이나 있을지 의문인 것은 소백산은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에 자리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왔으나 화악산은 백두대간에서 분기된 한북정맥에서도 얼마간 떨어져 있어 그렇지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제대로 꿸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소백산”이 공짜로 배포하는 그저 그런 책이 아니고 앞으로 두고두고 꺼내 읽어야할 소중한 선물이다 싶었습니다.

소백산에 꿸 구슬이 많다는 것은 산세가 유려하고 문화유산이 많아서일 것입니다. 구슬을 제대로 꿸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조선의 이름난 유학자들이 소백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퇴계선생께서 백두산 유산기를 남기지 못한 것이 너무 멀어서라면, 소백산 유산기를 남긴 것은 거처한 안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산이 자리해 가능했을 것입니다. 순흥 쪽의 죽계구곡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일찍이 고려의 문인 안축이 경기체가 ‘죽계별곡’을 지어 노래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계곡으로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또 잉태될 객관적 여건이 충분히 갖춰졌더라도 영주 분들의 소백산 사랑이 절실하지 못했다면 “소백산”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11시5분 천동리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제게는 이번 소백산 산행이 산서회 회원들과 함께하는 첫 나들이여서 얼마간 가슴이 설렜습니다. 사당역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반가량 달려 도착한 천동리 주차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비로봉으로 향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물이 불어 계곡물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습니다

오른 쪽 가로 인도를 붙여 낸 넓은 길을 따라 오르면서 이미 절정을 넘긴 단풍들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낙엽을 재촉하는 늦가을비가 내린 후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산 위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흔한데 이번에는 전날 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생각지 않게 날씨가 푹해 전혀 냉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혼자 뒤쳐질까 염려되어 조금 먼저 주차장을 출발했지만 다리안폭포를 지나 소백산북부사무소를 지날 즈음 준족의 일행들에 따라잡혀 후미로 쳐졌습니다.

12시45분 천동야영장 휴게소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온 몸을 닦아내서인지 여기 소백산의 천동계곡 단풍이 며칠 전에 다녀온 지리산의 피아골보다 더 깔끔하고 고와 보였습니다. 북부사무소를 지난 후 그리 오래 되지 않아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의를 꺼내 입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양이 적었고 바람도 불지 않아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안개가 자욱이 끼고 낙엽이 살짝 덮인 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면서 느껴지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잠시 빠져 있다가 힘차게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에 깜짝 놀라 산오름을 계속 했습니다. 천동야영장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 합류해 함께 식사를 한 곳이 비를 피할 수 있는 휴게소 안이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점심을 들었습니다. 제가 준비해간 점심은 달랑 김밥 두 줄이어서 꺼내 놓기가 민망했는데 다른 분들이 싸온 점심이 풍성해 한껏 배를 불려 오후 산행을 대비했습니다.

15시4분 해발1,440m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넓고 경사가 완만한 길은 천동야영장에서 끝났습니다. 이곳에서 민배기재로 오르는 초반 길은 돌길인데다 비가 내려 조금 지척거렸습니다. 데크 길에 댕그라니 고사목 한 그루가 서 있는 포토사이트에 이르자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 백두대간 길과 합류하는 민배기재에서 일행들이 저를 기다려주어 고마웠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왼쪽으로 꺾어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짙은 안개가 정상 가까이의 퇴색한 황금빛의 억새밭을 덮어 시계가 100m에 못 미칠 것 같은 길을 주변을 돌아보며 산책하듯 걸어오를 수 있었던 것은 소백산 특유의 칼바람이 불지 않아서였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엄청 북적댔을 비로봉 정상이 비교적 한가해 정상석 뒷면에 새겨진 서거정(徐居正)의 유산시(遊山詩)를 일별할 수 있었습니다. 정상석에는 시 제목이 ‘小白山’으로 적혀 있는데, 영주문화유산보존회에서 발간한 “소백산”에는 ‘豊基 小白山’으로 나와 있고 이 시의 출전이 ‘四佳詩集補遺’라고 밝혔습니다.

豊基 小白山

小白山連太白山 소백산은 태백산과 이어져있는데

逶迤百里揷雲間 백리를 굽이쳐서 구름위로 솟았네

分明畵盡東南界 분명하게 동남쪽 경계를 갈라놓고

地設天成鬼破慳 하늘땅이 만든 비밀 귀신이 깨뜨렸나

몇 번이나 읽어보았지만, 서거정이 비로봉을 직접 올라 지은 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목대로 풍기에서 비로봉을 올려다보고 읊은 것이다 싶은 것은 ‘逶迤百里揷雲間’의 시구(詩句) 때문입니다. 서거정이 정상에서 구름을 보았다면 그 구름은 골짜기를 가득 메운 운해가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몸소 정상에 오르지 않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활한 운해를 먼저 노래하지 구름 위로 솟은 산봉우리를 노래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이상언(李尙彦)이 비로봉에 올라 지은 유산시 ‘登毗盧峰’을 보면, 서거정의 ‘豊基 小白山’은 정상에 오르지 않고 먼발치서 바라보며(?) 읊었으리라는 심증이 더욱 굳어집니다.

登毗盧峰

曳杖陟崔嵬 지팡이 이끌고 높고 험한 곳 오르니

長風四面來 휘몰아치는 바람 사방에서 불어오네

靑天頭上帽 푸른 하늘은 머리 위의 모자요

碧海掌中杯 푸른 바다는 손바닥 안의 술잔이네

소백산의 칼바람을 언급한 것도 그렇습니다. 정상에 올라서야 머리 위에 하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어 머리 위의 하늘을 모자로 묘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정상석에 서거정의 ‘豊基 小白山’을 새겨놓은 것은 요새 사람들이 한일입니다. 서거정은 조선의 건국공신 권근의 외손자로 경국대전 집필에도 참여한 조선조 초기 최고의 관각파(館閣波) 문인입니다. 당연 그 명성이 두 세기 후 현종 때 사헌부집의를 마지막으로 관직을 떠난 이상언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도 저라면 비로봉 정상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이상언의 ‘登毗盧峰’을 새겨 넣을 것입니다.

16시28분 달밭골 초암사 갈림길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비로봉에서 남동쪽의 비로사로 내려가는 길은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소백산 국립공원에서 경사가 급한 곳에는 계단을 설치하는 등 길을 잘 정비해 하산 길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조난추모비를 지나 비로봉에서 1.2Km 떨어진 양반바위에 이른 시각은 15시35분이었습니다. 4.3Km를 더 걸어야 다다르는 삼가주차장에 집결하기로 한 시간이 16시30분여서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오랜 벗인양 담소를 즐기는 이교수와 호부회장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민가 옆을 지났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 동쪽으로 초암사 길이 갈리는 넓은 공터에 다다라 먼저 내려온 일행들에 합류했습니다. 비로봉 대신 자갈길을 택한 권회장께서 먼저 삼가주차장에 도착해 화물차를 올려 보낸 덕분에 약속시간보다 그다지 늦지 않게 삼가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풍기에서의 회식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사당역으로 돌아와 인근 맥주 집에서 뒤풀이를 하는 것으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소백산을 오른 것은 이번이 11번째입니다. 1970년 처음 올랐을 때는 청량리에서 밤차를 타고 내려가 풍기에서 일박하고 그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소수서원으로 옮겨 청다리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죽계구곡을 따라 올라 초암사에서 점심을 지어먹은 후 된비알 길을 올라 다다른 석윤암 바위굴에서 묵었습니다. 국망봉을 거쳐 비로봉에 올라선 후 연화봉으로 직진해 희방사로 내려가 야영을 했습니다. 다음 날 희방역까지 걸어내려 가서 청량리행 기차를 탔으니 모두 3박4일이 걸린 셈입니다.

3박4일 길을 하루에 마치고 서울에서 뒤풀이를 할 정도로 시간을 압축해 써 사흘을 벌었습니다. 그 사흘을 단 하루도 쉬는데 쓰지 못하고 바쁘게 보내야하는 것이 일상적인 삶이니 모두들 참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셈입니다. 사람들이 산을 다녀오고도 제대로 산행기를 남기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나름 열심히 산행기를 써왔다고 자부해온 제가 쓴 소백산 산행기도 네 번을 쓰지 않아, 7편에 불과합니다.

“소백산”에 실린 꽤 많은 유산기와 유산시가 하나같이 소중한 것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조선시대의 작품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의 작품들이 대다수인데도 원전은 한문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아직 한문을 해독할 수준이 못되어 제게는 그림의 떡이었는데 영주문화유산보존회에서 번역해 실어주어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 류산(遊山)
  • 2014.11.16 17:16
  • 답글 | 차단 | 삭제 | 신고
  • 즐감 합니다.
    천동~삼가 산행하셨군요.
    제 선산이 순흥과 청량산밑 태자라서..
    자주 방문하던 곳이라 더 눈길이 기는군요
    저수령~죽령, 죽령~고치령구간인 대간길도
    떠 오르구요.
    우리나라에서 정말 손꼽히는 명산이죠?
    잘 보고 갑니다.
    겨울이 시작되는데요, 건강유의하십시요
    몇 년만에 소백산을 올랐는데 여전히 새로웠습니다. 저수령, 죽령, 고치령 모두 땀흘리며 지난 곳입니다. 영주는 소백산 덕분에 정저적으로 아주 가깝게 느껴집니다. 항상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 松琳 통나무
  • 2011.02.22 10:54
  • 좋은 사진이 저보다 더 많네요...잘 봤습니다.
    • 시인마뇽
    • 2011.02.23 21:34
    • 그날 수고 많았습니다

     

     

                                                                    소백산(3)

     

     

                                  *산행일자:2011년 2월 12일(토)-13일(일)

                                  *소재지   :충북단양/경북영주

                                  *산높이   :소백산 비로봉1,440m/국망본1,421m

                                  *산행코스:죽령휴게소-천문대-비로봉-국망봉-초암사-배점리탐방소

                                      -제1일:죽령휴게소-천문대-제1연화봉-비로봉-어의곡리주차장

                                      -제2일:어의곡리주차장-비로봉-국망봉-석륜암-초암사-죽계계곡-배점리탐방소

                                  *산행시간:총16시간42분

                                      -제1일:11시26분-18시41분(7시간15분)

                                      -제2일: 7시38분- 17시 5분(9시간27분)

                                  *동행     :경동고등학교 동문3명(24회 김주홍, 우명길, 29회 정병기)

     

     

     

      이름도 모른 채 세 번이나 걸었던 소백산의 죽계계곡을 34년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고교 동창들과 함께 나선 소백산 종주코스는 죽령고개-비로봉-구인사 코스였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구인사 길이 통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망봉에서 하산 코스를 바꾸어 초암사로 내려갔습니다. 초암사에서 1곡이 시작되는 9명소의 죽구계곡이 우리 국문학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려 말 충숙왕 때 문신 안축(安軸)이 지은 죽계별곡(竹溪別曲) 덕분입니다. 이번에 다시 걸어 내려가 실망하기까지는 1971년 산우들과 두 번을 올랐고 1977년 결혼하던 해 여름 집사람과 함께 걸어 내려간 이 계곡이 안축의 죽계별곡이 없었다면 저라도 아름다움을 찬하는 글을 남기고 싶은 추억어린 명소였습니다.

     

     

     

      1973년에 습작한 졸고 “어떤 죽음”이라는 소설에 순흥의 배점리를 출발해 청다리까지 이어지는 죽계계곡을 따라 걸어 초암사에 다다른 다음, 가파른 길을 따라 석륜암을 숨 가쁘게 올라서기까지를 아래와 같이 서술해 놓았습니다.

     

     

      “소백산은 이번으로 3번째 찾는 것이지만 몇 번이고 다시 찾고픈 좋은 산이다. 천여미터의 고지에 자리 잡은 석윤암은 그 높이로 전망이 일품이다. 해발 1,400여미터의 국망봉을 한 시간 거리에 두고 있고, 풍기에서 청다리를 지나 초암사를 거쳐 오르면 5-6시간이면 족한 조촐한 코스다. 청다리까지 이어지는 옛 선비들이 유유 작작했을 법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제법  산내음을 짙게 풍기는 초암사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민가는 없고 두어 채 화전민의 집이 있을 뿐이다. 그들 화전민조차 여름 한 때 더위를 피해 온 피서객처럼 벌써 풍기로 내려갔다. 말이 화전민이지 겨울이면 풍기에서 부유하게 살림을 꾸리고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만 밭을 일구어 옥수수와 감자 등을 심어 화전민 고유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그들이다. 초암사를 지나면 계곡의 폭은 좁아져 급류가 되고 물살이 거세진다. 그리고 오솔길이 시작된다. 복중에 발을 담가도 냉기가 서릴 찬 물과 문답하며 2시간가량 오르면 45도 이상 경사진 가파른 언덕바지를 오른다. 청다리에서 4시간 가깝게 걸어 이곳에 이르기에 오직 역부족을 실감할 뿐이다. 간신히 반시간 가깝게 올라 석윤암에 도착하면 7-8미터 높이의 불상을 만나는데 완전한 석불입상이랄 수는 없어도  규모가 대단하고 그 돌 밑에 아낙들이 시주하는 곳이 있다. 전설로는 돌부처의 귀를 통해 쌀이 흘러 내려와서 이곳 암자에 거처하는 분들에 제공되었는데 임란 때 왜병들이 그 귀를 빠개어서 지금은 그저 전설만을 되씹을 뿐이다. 때가 11월이니 만큼 여름철 짙푸른 옷으로 치장했던  넓은잎나무 들은 모두가 알몸이었고 더러는 내내 벌거벗은 고사목들도 눈에 띄었다. 석윤암 암자 앞에는 제법 너른 뜰이 있어 야영하기에 적합하고 조금 오른 쪽으로 돌면 바위가 천정인 방이 있다. 희방사에서 출발하던 풍기에서 출발하던 산에서 첫 밤은 이곳에서 묵게 된다. 몇 년 전부터 비치해둔 방명록을 보여주는 주인의 자랑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간 사람들의 손이 많이 가 죽계계곡은  옛선비들이 유유작작했을 법한 옛길이 아니었습니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차도로 변한 계곡 길을 걸어 내려가면서 34년 전에 이 길을 함께 걸은 집사람을 불러내 같이 걷자고 말할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제 1일(2월 12일):죽령휴게소-천문대-제1연화봉-비로봉-어의곡리주차장

     

      한 겨울에 고교동창들과 함께 설산(雪山)을 종주하는 산행은 올해가 세 번째입니다. 재작년 겨울에는 덕유산을 이틀 간 산행했고 작년에는 지리산을 또 이틀 종주했습니다. 두 산 모두 능선 길에 대피소가 있어 산에서 1박을 해 편했는데, 이번 종주 길에 나선 소백산은 대피소가 따로 없어 비로봉에서 어의곡리로 내려가 하루를 묵고 다시 올라가야 했습니다. 죽령-비로봉-구인사 코스는 아침 일찍 시작하면 당일코스로도 가능합니다만, 이번 산행목적이 소백산 특유의 칼바람에 맞서보고 또 가능하면 느긋하게 진행해 눈길 산행의 진수를 맛보는 데 있어 어의곡리에서 하룻밤 자는 것으로 일정을 잡고 산행 길에 올랐습니다.

     

     

     

      휴대폰의 알람이 작동하지 않아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한 아침 6시40분에야 겨우 눈을 떠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와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별 수 없이 동서울터미널을 6시59분에 출발하는 단양 행 첫차를 포기하고 그 다음 8시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10시15분경 도착한 단양터미널에서 죽령고개까지는 택시로 이동해 반시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여느 해처럼 산행 중 버너를 피워 점심을 해먹다가는 마냥 늦어질 것 같아 좀 이르기는 하지만 죽령휴게소에서 우거지 국을 사먹고 곧바로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11시26분 죽령휴게소를 출발했습니다. 천문대로 향하는 종주 길은 북쪽으로 이어졌는데 한 여름이라면 시멘트도로에서 내뿜는 후끈거리는 지열로 고생을 했을 이 길을 하얀 눈을 밟으며 올라갔습니다. 길가에 수북이 쌓인 눈이 서울 근교 산처럼 지저분하지 않아 소백산의 공기가 얼마나 청정한가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1시간을 조금 못 걸어 다다른 전망대에서 죽령 너머 풍기 쪽을 내려다보자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중앙고속도로가 시원스레 잘 보였습니다. 요 며칠 남한 땅의 눈 거의 다를 영동지방에 몰려 쏟아 부어서인지 새벽에 소백산에 내린 눈은 길을 살짝 덮을 정도였다 합니다. 그래도 그간 내린 눈이 많아 길가 눈 무더기는 스틱이 푹 들어갈 정도로 깊었습니다.

     

     

     

      13시13분 이동통신탑이 세워진 통신기지 바로 아래 “백두대간 제2연화봉”의 표지석을 지났습니다. 제가 가지고 간 지도에 죽령-비로봉코스가 4시간15분, 어의곡리-비로봉 코스가 1시간30분해서 모두 5시간45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어 해떨어지기 전에 어의곡리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했는데 표지목에 죽령-비로봉간 거리가 11km가 넘는 것으로 적혀 있어 서둘러도 저녁 7시가 다되어야 다다를 것 같아 야간산행이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통신기지를 왼쪽으로 에돌다 바람을 피할 만한 곳에서 잠시 머물러 과일을 꺼내 든 후 다시 종주산행을 이어갔습니다. 한참동안 내려가다 다시 올라 소백산 천문대 앞을 지난 시각이 14시7분으로 잠시 멈춰 서서 천문대를 사진 찍었습니다. 실로 광활하기 이를 데 없는 우주에 아주 작은 점을 찍고 있는 별들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 천문학(Astronomy)이 세속의 점성술(Astrology)과 같을 수 없기에 칼바람을 맞아가며 이 높은 천문대에 올라 천체를 관측하는 분들이 도시에 앉아 찾아오는 손님들에 운명을 점쳐주는 점성가들과 같은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15시13분 해발1,340m의 제1연화봉 바로 밑에서 쉬었습니다. 천문대를 지나 해발1,383m의  연화봉으로 오르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철쭉 지대를 지났습니다. 희방사로 넘어가는 연화봉은 여러 번 올라 이번에는 왼쪽 아래 길로 질러갔는데 5월의 철쭉제를 준비하는 연달래들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어 이 또한 볼만했습니다. 연화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해 왼쪽으로 계속 내려가 만난 안부에서 계단 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답압(踏壓)으로 인한 황폐화를 막고자 계단을 설치해 오름길이 더 힘들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종주꾼들에 대간 길을 막지 않고 열어놓은 소백산국립공원에 참으로 고마워하는 것은 아무리 밟아도 닳을 리 없는 너덜 길의 황철령 구간을 아예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설악산국립공원의 속 좁은 처사와 대비되어서입니다. 계단 길 중간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천문대 및 통신탑이 눈 덮인 하얀 능선과 어우러져 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남은 계단을 마저 올라 다다른 제1연화봉 바로 밑에서 15분여 쉬면서 과일을 꺼내 들었습니다.

     

     

     

      16시41분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제1연화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비교적 평탄한데다 사방이 탁 트여 전망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올 겨울 내내 오르내린 낙남정맥 길에서는 아예 눈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여기 소백산의 눈 언덕과 고드름이 반갑고 신비로웠습니다. 왼쪽으로 천동리 길이 갈리는 민배기재(?)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노라면 좌측 사면이 북쪽에 자리한 넓은 평원이어서 살을 에는 칼바람을 한 점도 빼지 않고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도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어인 일인지 그 악명 높은 칼바람이 숨을 죽이고 있어 태풍전야의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덩그러니 정상석이 홀로 서있는 텅 빈 비로봉에 오르자 그동안 숨죽였던 칼바람이 본색을 드러내 사진 몇 장만 후딱 찍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7-8분 내려가 다다른 국망봉 가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어의곡리로 향했습니다. 평원지대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고 나서야 몸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18시41분 어의곡리 주차장에 도착해 첫날 산행을 마쳤습니다. 비로봉에서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이 생각보다 순조로웠습니다. 6년 전 초여름 어의곡리에서 비로봉을 오른 일이 있어 길 찾기는 문제없겠다 하면서도 혹시라도 길이 잘 나있지 않아 캄캄한 밤에 러셀을 해나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주능선과 마찬가지로 길이 잘 나있었습니다. 저 혼자라면 어둠에 쫓겨 하산을 서둘렀겠지만 동행하는 친구들이 둘씩이나 되어 땅거미가 지고 사방이 칠흑같이 깜깜해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활엽수 나무들이 진을 친 능선에서 골짜기로 내려서며 낙엽송 숲길을 지났습니다. 고도가 낮아져 수종이 바뀌어도 길을 덮은 눈은 그대로여서 하산을 마칠 때까지 크램폰을 풀지 않았습니다. 머리에 찬 헤드랜턴이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상하로 같이 움직여 탐방소를 막 지나자 아랫마을 백열등이 마치 춤추는 듯 보였습니다. 첫 마을로 내려가 대기 중인 비가목팬션의 차에 올라 숙소로 내려갔습니다.

     

     

     

      밤11시 심야전기가 들어오기까지는 방안이 생각만큼 뜨듯하지 않았지만 김주홍동문이 마련한 삼겹살을 정병기동문이 가져온 버너를 피워 구워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워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훈기가 느껴졌습니다. 한 해 내내 건강하게 산행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지는 설산 종주는 앞으로도 20년 넘게 이어갈 뜻입니다. 팔십 넘은 나이에도 이번처럼 삼겹살 파티를 즐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으랴 싶어서입니다.

     

     

     

     

     

             *제 2일(2월13일):어의곡리주차장-비로봉-국망봉-석륜암-초암사-죽계계곡-배점리탐방소

     

     

      휴대폰 알람이 또 울리지 않아 반시간 늦게 출발했습니다. 아예 꺼놓았더라면 자다 깨다는 몇 번 반복했겠지만 정해진 시간 전에 일어날 수 있었을 텐데 휴대폰에 전적으로 기상시간을 맡겼다가 연 이틀 낭패를 보았습니다. 휴대폰 같은 문명의 이기가 몸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 등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에 나이가 들거나 심약한 분들을 위해 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이야기들이 논의되곤 하는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환경론자들이 염려하는 생태파괴를 기술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산이 갖고 있는 호연지기가 누구에게나 고루 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어서입니다. 이 나라 평균수명이 80세를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연세든 분들에 걸어서만 산에 올라가라 하는 것은 열심히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에 너무 가혹한 주문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될 정도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과의 접촉을 최대한 확대해주는 문명의 이기는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일 것입니다.

     

     

     

      아침7시38분 어의곡리를 출발했습니다. 몇 분후에 지난 탐방소의 온도계가 영하 12도를 가리킬 만큼 산 속의 공기가 매섭도록 차가웠습니다. 해발고도를 천백미터 가까이 높여 국망봉 갈림길에 이르는 것이 일차 과제인데 하룻밤 푹 자고나자 두 다리에 힘이 다시 붙어 별반 힘들지 않았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 냉기서린 산속 눈길을 따라 오르는 중 새벽 4시 반에 어의곡리를 출발해 비로봉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두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살을 에는 소백산의 칼바람을 마다 않고 이 산 정상에 올라 해오름을 지켜봤을 젊음을 부러워하면서 꾸준히 고도를 높여가 9시23분 “어의곡리3.1Km/비로봉2.1Km"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10시45분 비로봉0.4km 전방의 국망봉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자 햇살이 바짝 다가오고 시야가 트여 골짜기를 걸을 때의 답답함이 사라졌습니다. 전날 저녁 해가 남아 있을 때 걸었던 길이어서 하나도 낯설지 않았지만 운동방향이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과 정반대여서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줄기와 큰 가지에 걸터앉은 눈 무더기들이 햇빛을 받아 더욱 희게 보였습니다. 해발고도가 천m를 훨씬 넘는 능선 길을 천천히 걷다가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숲의 낙엽생산성 분석을 위해 설치한 낙엽포집기를 보았습니다. 낙남정맥 종주 길에 음양수 근처에서 처음 본 낙엽포집기를 다시 보며 국립공원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항목이 몇 개나 될까 궁금했습니다. 얼핏 생각나는 것은 공원 안에 살고 있는 생물의 총 개체수와 종의 다양성이 중요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연휴식년제가 국립공원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크게 유용할 것 같았습니다. 오른 쪽으로 비로봉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후미를 기다려 얼마간 같이 쉰 후 국망봉을 향해 북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12시45분 해발1,421m의 국망봉에 올라섰습니다. 국망봉 갈림길에서 조금 내려가 만난 철 계단에 눈이 도도록도도록 쌓여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발목 깊숙이 잠기는 눈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대간 길이 이러한데 길이 거의 나있을 것 같지 않는 구인사 길은 과연 어떠할까 걱정을 했습니다. 오전 9시에 어의곡리를 출발했다는 부천의 대간 팀원들이 저희들을 앞질러 국망봉으로 내달렸습니다. 북사면의 눈길을 지나 널찍한 안부로 내려서자 오른쪽 아래로 송림지가 잘 보였습니다. 안부에서 조금 올라  석윤암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왼쪽으로 지근거리에 있는 국망봉에 올라 라면을 끓여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산행속도가 생각보다 많이 느려 구인사 행을 포기하고 초암사로 내려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지도상에 비로봉-국망봉 구간이 1시간 20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보다 0.4Km 짧은 구간 통과에  2시간이 걸린 저희 발걸음으로 6시간은 족히 소요될 구인사로 내려가다가는 저녁6시 구인사 발 마지막 서울 행 버스를 탈 수 없을 것 같아 만부득이 하산코스를 초암사로 바꾸었습니다.

     

     

      13시30분 국망봉을 출발했습니다. 초암사 갈림길로 5-6분 되돌아가 남사면으로 내려서는 계단 길로 들어섰습니다. 옛날에 이 길을 지났을 때는 계단이 설치되지 않아 엄청 힘들었다고 말했더니 지나가던 한 분이 그 때가 언제냐고 물어와 1971년이라고 답하자 픽 웃었습니다. 꼭 40년 전의 일을 마치 몇 년 전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천연덕스럽게 보였나 봅니다. 그때는 모르고 그냥 지나친 복 바위인 돼지바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복스러운 모습을 사진 찍었습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저 아래 시내에서 돈 만원에 팔렸다 하니 이바위가 돈을 만드는 명물임에 틀림없습니다. 한참동안 더 내려가 석윤암터에 도착한 시각은 14시14분이었습니다. 높이가 18m나 되는 석륜암 터 큰 바위가 마치 거대한 봉황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봉바위로 부른다는 안내문을 보고 그 때 주인아저씨가 들려준 전설과 사뭇 다르다 싶었지만 그 바위의 위용은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아직 살아 계시다면 80줄을 훌쩍 넘었을 그 아저씨를 뵙지 못하고, 또 눈이 너무 많이 쌓여 그 옛날 몇 번을 묵었던 바위가 천정인 골방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달랑 터만 남은 석륜암을 출발했습니다.

     

     

     

     

     

     

     

      16시22분 초암사에 도착했습니다. 석륜암터에서 3.4Km 거리의 초암사가 꽤나 멀게 느껴졌습니다.

     

    내려가는데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싶었는데 2시간이 꼬박 걸렸습니다. 하산 길에 만난 순둥이 백구

     

    와 어느 누가 바위 밑에서 따다가 길가에 옮겨놓은 커다란 고드름을 사진 찍는 일조차 없었다면 조금

     

    은 지루 했을 이 길을 따라 내려가 15시35분 “초암사1.4Km/석륜암2.0Km” 지점을 지났습니다. 석륜

     

    암골이 월천계곡과 합류하는 합수점을 막 지나 초암사를 3백m 남겨놓고 오른 쪽으로 비로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국망봉에서 만난 풍기 분으로부터 초암사에서 배점리로 내려가는

     

    죽계계곡 길이 통행 금지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어 잠깐 쉬면서 일행들과 어느 길로 갈까 협

     

    의했습니다. 풍기택시에 물어본즉 초암사까지 택시가 들어온다고 해 가까운 초암사로 내려갔습니

     

    다. 1970년대 초암사는 초라한 암자규모의 절로 기억하고 있는데 대웅전 위에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어 삼층석탑이 아니었다면 옛 기억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

     

    았습니다.

     

     

     

     

      17시5분 배점리탐방소에 도착했습니다. 초암사에서 택시를 타지 않고 탐방소 직원으로부터 앞으로

     

    는 이 길로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탐방소까지 걸어간 것은 추억이 깃든 죽계계곡 길을 다

     

    시 걷고 싶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이 계곡이 고려말 문신인 안축이 경기체가 “죽계별곡”을 지어 이

     

    름을 널리 알린 죽계계곡인 줄 몰랐습니다. 안축이 환생해 시멘트로 포장된 이 길을 걷는다면 과연

     

    이 계곡을 찬하는 경기체가를 다시 지을지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숲이 우거지고 물이 많이 흐르는

     

    한 여름에 다시 찾는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겨울철의 죽계계곡은 명소 9곡을 확인할 마

     

    음이 내키지 않을 정도로 썰렁했습니다. 탐방소 직원이 타준 커피로 몸을 녹인 후 택시를 불렀습니

     

    다. 풍기역을 저녁6시10분에 출발하는 청량리 행 열차에 올라타 이틀에 걸친 소백산 산행을 매듭졌

     

    습니다.

     

     

     

     

                      ****************************************************************

     

     

     

      죽계계곡이 기대에 못 미쳐 많이 아쉬웠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영주지부의 원정(園丁)님이 뜻풀이를 한

     

    안축(安軸)선생의  죽계별곡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합니다.

     

     

     

     

     

     

                       죽계별곡(竹溪別曲)

     

     

     

     

    <1장>

     

    竹嶺南 永嘉北 小白山前/죽령의 남쪽과 영가의 북쪽 그리고 소백산의 앞에

     

     

    千載興亡 一樣風流 順政城裏/천 년을 두고 고려가 흥하고 신라가 망하는동안

     

     

    他代無隱 翠華峯 天子藏胎/한결 같이 풍류를 지닌 순정성 안에, 다른 데 없는

     

                           취화같이 우뚝 솟은 봉우리에는, 왕의 안태가 되므로

     

     

    爲釀作中興 景幾何如/아! 이 고을을 중흥하게끔 만들어준 광경,

     

     

                        위양작중흥 경기하여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淸風杜閣 兩國頭御 /청백지풍을 지닌 杜衍처럼 높은 집에 고려와 원나라의

     

     

                       관함을 지니매

     

     

    爲 山水淸高 景幾何如 /아! 산 높고 물 맑은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2장>

     

     

    宿水樓 福田臺 僧林亭子/숙수사의 누각과 복전사의 누대 그리고

     

     

                           승림사의 정자,

     

     

    草菴洞 郁錦溪 聚遠樓上/소백산 안 초암동의 초암사와 욱금계의 비로전

     

     

                           그리고 부석사의 취원루들에서

     

     

    半醉半醒 紅白花開 山雨裏良/술에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깨었는데, 붉고 흰

     

                               꽃이 핀 산에는 비가 내리는 속에

     

     

    爲 遊寺 景幾何如 /아! 절에서 노니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高陽酒徒 珠履三千/습욱의 고양지에 노는 술꾼들처럼 춘신군의 구슬 신발을

     

     

                      신은 삼천객처럼

     

     

    爲 携手相從 景幾何如/아! 손잡고 서로 의좋게 지내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3장>

     

     

    彩鳳飛 玉龍盤 碧山松麓/산새는 채봉이 날아오르련 듯·지세는 옥룡이 빙빙

     

     

                           돌아 서린 듯, 푸른 소나무 우거진 산기슭을 안고

     

     

    紙筆峯 硯墨池 齊隱鄕校/향교 앞 지필봉(영귀봉)과 그 앞에는 연묵지로

     

     

                           문방사우를 고루 갖춘 향교에서는,

     

     

    心趣六經 志窮千古 夫子門徒/항상 마음과 뜻은 육경에 스며들게 하고 그들

     

                           뜻천고성현을 궁구하며 부자를 배우는 제자들이여,

     

     

    爲 春誦夏絃 景幾何如/아! 봄에는 가악의 편장을 읊고 여름에는 시장을

     

     

                         음절에 맞추어 타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年年三月 長程路良/해마다 삼월이 오면 긴 노정으로

     

     

    爲 呵喝迎新 景幾何如/아! 큰소리치며 신임자를 맞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4장>

     

     

    楚山曉 小雲英 山苑佳節/초산효와 소운영이라는 기녀들과 동산 후원에서

     

     

                           노닐던 좋은 시절에

     

     

    花爛 爲君開 柳陰谷/꽃은 만발하여 난만한데, 그대 위해 훤히 트인 버드나무

     

     

                       그늘진 골짜기로

     

     

    忙待重來 獨倚欄干 新鶯聲裏/바삐 거듭 오길 기다리며 홀로 난간에 기대어,

     

     

                               새로 나온 꾀꼴새 울음 속에

     

     

    爲 一朶綠雲垂未絶/아! 한 떨기 꽃처럼 검은 머릿결이 구름처럼 흘러내려

     

     

                      끓임 없는데

     

     

    天生絶艶 小桃紅時/타고나 천하절색인 小桃紅맘 때쯤이면

     

     

    爲 千里相思又柰何/아! 천리 먼 곳에 두고 서로 그리워함을, 또 어찌

     

                      하겠습니까?

     

     

     

     

    <5장>

     

     

    紅杏紛紛 芳草 樽前永日/붉은 살구꽃이 어지러이 날리고·향긋한 풀은

     

     

                           푸른데, 술동이 앞에서 긴 봄 날 하루놀이와

     

     

    綠樹陰陰 畵閣沈沈 琴上薰風/푸른 나무가 우거진 속에 단청올린 다락은

     

                  

                      깊고그윽한데, 거문고 타는 위로 불어오는 여름의 훈풍

     

     

    黃國丹楓 錦繡靑山 鴻飛後良/노란 국화와 빨간 단풍이 청산을 비단처럼

     

     

                        수놓을 제, 말간 가을 밤 하늘 위로 기러기 날아간 뒤라

     

     

    爲 雪月交光 景幾何如/아! 눈 위로 휘영청 달빛이 어리비치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中興聖代 長樂大平/중흥하는 성스러운 시대에, 길이 대평을 즐기느니

     

     

    爲 四節遊是沙伊多/아! 사철을 즐거이 놉시다 그려

     

     

     

     

     

     

                                         <산행사진>

     

     

     <제1일(2월12일):죽령휴게소-천문대-연화제1봉-비로봉-어의곡리주차장>

     

     

     

     

     

     

     

     

     

     

     

     

     

     

     

     

     

     

     

     

     

     

     

     

     

     

     

     

     

     

     

     

     

     

     

     

     

     

     

     

     

     

     

     

     

     

     

     

     

     

     

    <제2일(2월13일):어의곡리주차장-비로봉-국망봉-석륜암-초암사-죽계계곡-배점리탐방소>

  • 소백산
  • 2011.02.20 17:47
  • 설에 고향갔다가 이래저래 시간이 어중간해서 그냥올라와서 아쉬웠는데...즐감했습니다.

     

    시인마뇽

     

    *2011.02.22

    *고향이 소백산과 가까우신가 봅니다. 이번이 9번째 소백산산행인데 오르는 즐거움이

    결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소백산 (4)

    *산행일자:2014. 11. 1일(토)

    *산높이 :비로봉 1,440m

    *소재지 :경북영주/충북단양

    *산행코스:천동리주차장-천동야영장-비로봉

    -달밭골 초암사갈림길

    *산행시간:11시5분-16시22분(6시간17분)

    *동행 :산서회 회원 6명

    (권병화, 안성민, 이규성, 이정표, 조동준, 호경필, 우명길)

    영주 분들의 소백산 사랑이 부러운 것은 그 사랑이 책으로 결실되어서입니다. 영주문화유산보존회가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고보조를 받아 함께 펴낸 “소백산”이 바로 그것입니다.‘ 소백산의 역사와 문화를 개괄한 290쪽의 한 권과 ‘장장 600쪽에 걸쳐 소백산의 유산기와 유산시를 실은 또 한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을 훑어보고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 말씀이 만고불변의 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산 높이로 말한다면 제가 낳고 또 살고 있는 경기도의 최고봉인 화악산이 이번에 산서회 회원들과 같이 오른 소백산보다 28m 더 높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런 화악산이 소백산에 비할 만큼 잘 정리되고 연구된 자료나 논문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화악산에도 소백산처럼 꿸 구슬이 과연 세말이나 있을지 의문인 것은 소백산은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에 자리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왔으나 화악산은 백두대간에서 분기된 한북정맥에서도 얼마간 떨어져 있어 그렇지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제대로 꿸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소백산”이 공짜로 배포하는 그저 그런 책이 아니고 앞으로 두고두고 꺼내 읽어야할 소중한 선물이다 싶었습니다.

    소백산에 꿸 구슬이 많다는 것은 산세가 유려하고 문화유산이 많아서일 것입니다. 구슬을 제대로 꿸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조선의 이름난 유학자들이 소백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퇴계선생께서 백두산 유산기를 남기지 못한 것이 너무 멀어서라면, 소백산 유산기를 남긴 것은 거처한 안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산이 자리해 가능했을 것입니다. 순흥 쪽의 죽계구곡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일찍이 고려의 문인 안축이 경기체가 ‘죽계별곡’을 지어 노래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계곡으로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또 잉태될 객관적 여건이 충분히 갖춰졌더라도 영주 분들의 소백산 사랑이 절실하지 못했다면 “소백산”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11시5분 천동리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제게는 이번 소백산 산행이 산서회 회원들과 함께하는 첫 나들이여서 얼마간 가슴이 설렜습니다. 사당역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반가량 달려 도착한 천동리 주차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비로봉으로 향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물이 불어 계곡물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습니다

    오른 쪽 가로 인도를 붙여 낸 넓은 길을 따라 오르면서 이미 절정을 넘긴 단풍들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낙엽을 재촉하는 늦가을비가 내린 후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산 위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흔한데 이번에는 전날 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생각지 않게 날씨가 푹해 전혀 냉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혼자 뒤쳐질까 염려되어 조금 먼저 주차장을 출발했지만 다리안폭포를 지나 소백산북부사무소를 지날 즈음 준족의 일행들에 따라잡혀 후미로 쳐졌습니다.

    12시45분 천동야영장 휴게소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온 몸을 닦아내서인지 여기 소백산의 천동계곡 단풍이 며칠 전에 다녀온 지리산의 피아골보다 더 깔끔하고 고와 보였습니다. 북부사무소를 지난 후 그리 오래 되지 않아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의를 꺼내 입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양이 적었고 바람도 불지 않아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안개가 자욱이 끼고 낙엽이 살짝 덮인 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면서 느껴지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잠시 빠져 있다가 힘차게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에 깜짝 놀라 산오름을 계속 했습니다. 천동야영장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 합류해 함께 식사를 한 곳이 비를 피할 수 있는 휴게소 안이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점심을 들었습니다. 제가 준비해간 점심은 달랑 김밥 두 줄이어서 꺼내 놓기가 민망했는데 다른 분들이 싸온 점심이 풍성해 한껏 배를 불려 오후 산행을 대비했습니다.

    15시4분 해발1,440m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넓고 경사가 완만한 길은 천동야영장에서 끝났습니다. 이곳에서 민배기재로 오르는 초반 길은 돌길인데다 비가 내려 조금 지척거렸습니다. 데크 길에 댕그라니 고사목 한 그루가 서 있는 포토사이트에 이르자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 백두대간 길과 합류하는 민배기재에서 일행들이 저를 기다려주어 고마웠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왼쪽으로 꺾어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짙은 안개가 정상 가까이의 퇴색한 황금빛의 억새밭을 덮어 시계가 100m에 못 미칠 것 같은 길을 주변을 돌아보며 산책하듯 걸어오를 수 있었던 것은 소백산 특유의 칼바람이 불지 않아서였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엄청 북적댔을 비로봉 정상이 비교적 한가해 정상석 뒷면에 새겨진 서거정(徐居正)의 유산시(遊山詩)를 일별할 수 있었습니다. 정상석에는 시 제목이 ‘小白山’으로 적혀 있는데, 영주문화유산보존회에서 발간한 “소백산”에는 ‘豊基 小白山’으로 나와 있고 이 시의 출전이 ‘四佳詩集補遺’라고 밝혔습니다.

    豊基 小白山

    小白山連太白山 소백산은 태백산과 이어져있는데

    逶迤百里揷雲間 백리를 굽이쳐서 구름위로 솟았네

    分明畵盡東南界 분명하게 동남쪽 경계를 갈라놓고

    地設天成鬼破慳 하늘땅이 만든 비밀 귀신이 깨뜨렸나

    몇 번이나 읽어보았지만, 서거정이 비로봉을 직접 올라 지은 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목대로 풍기에서 비로봉을 올려다보고 읊은 것이다 싶은 것은 ‘逶迤百里揷雲間’의 시구(詩句) 때문입니다. 서거정이 정상에서 구름을 보았다면 그 구름은 골짜기를 가득 메운 운해가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몸소 정상에 오르지 않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활한 운해를 먼저 노래하지 구름 위로 솟은 산봉우리를 노래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이상언(李尙彦)이 비로봉에 올라 지은 유산시 ‘登毗盧峰’을 보면, 서거정의 ‘豊基 小白山’은 정상에 오르지 않고 먼발치서 바라보며(?) 읊었으리라는 심증이 더욱 굳어집니다.

    登毗盧峰

    曳杖陟崔嵬 지팡이 이끌고 높고 험한 곳 오르니

    長風四面來 휘몰아치는 바람 사방에서 불어오네

    靑天頭上帽 푸른 하늘은 머리 위의 모자요

    碧海掌中杯 푸른 바다는 손바닥 안의 술잔이네

    소백산의 칼바람을 언급한 것도 그렇습니다. 정상에 올라서야 머리 위에 하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어 머리 위의 하늘을 모자로 묘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정상석에 서거정의 ‘豊基 小白山’을 새겨놓은 것은 요새 사람들이 한일입니다. 서거정은 조선의 건국공신 권근의 외손자로 경국대전 집필에도 참여한 조선조 초기 최고의 관각파(館閣波) 문인입니다. 당연 그 명성이 두 세기 후 현종 때 사헌부집의를 마지막으로 관직을 떠난 이상언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도 저라면 비로봉 정상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이상언의 ‘登毗盧峰’을 새겨 넣을 것입니다.

    16시28분 달밭골 초암사 갈림길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비로봉에서 남동쪽의 비로사로 내려가는 길은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소백산 국립공원에서 경사가 급한 곳에는 계단을 설치하는 등 길을 잘 정비해 하산 길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조난추모비를 지나 비로봉에서 1.2Km 떨어진 양반바위에 이른 시각은 15시35분이었습니다. 4.3Km를 더 걸어야 다다르는 삼가주차장에 집결하기로 한 시간이 16시30분여서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오랜 벗인양 담소를 즐기는 이교수와 호부회장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민가 옆을 지났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 동쪽으로 초암사 길이 갈리는 넓은 공터에 다다라 먼저 내려온 일행들에 합류했습니다. 비로봉 대신 자갈길을 택한 권회장께서 먼저 삼가주차장에 도착해 화물차를 올려 보낸 덕분에 약속시간보다 그다지 늦지 않게 삼가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풍기에서의 회식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사당역으로 돌아와 인근 맥주 집에서 뒤풀이를 하는 것으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소백산을 오른 것은 이번이 11번째입니다. 1970년 처음 올랐을 때는 청량리에서 밤차를 타고 내려가 풍기에서 일박하고 그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소수서원으로 옮겨 청다리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죽계구곡을 따라 올라 초암사에서 점심을 지어먹은 후 된비알 길을 올라 다다른 석윤암 바위굴에서 묵었습니다. 국망봉을 거쳐 비로봉에 올라선 후 연화봉으로 직진해 희방사로 내려가 야영을 했습니다. 다음 날 희방역까지 걸어내려 가서 청량리행 기차를 탔으니 모두 3박4일이 걸린 셈입니다.

    3박4일 길을 하루에 마치고 서울에서 뒤풀이를 할 정도로 시간을 압축해 써 사흘을 벌었습니다. 그 사흘을 단 하루도 쉬는데 쓰지 못하고 바쁘게 보내야하는 것이 일상적인 삶이니 모두들 참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셈입니다. 사람들이 산을 다녀오고도 제대로 산행기를 남기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나름 열심히 산행기를 써왔다고 자부해온 제가 쓴 소백산 산행기도 네 번을 쓰지 않아, 7편에 불과합니다.

    “소백산”에 실린 꽤 많은 유산기와 유산시가 하나같이 소중한 것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조선시대의 작품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의 작품들이 대다수인데도 원전은 한문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아직 한문을 해독할 수준이 못되어 제게는 그림의 떡이었는데 영주문화유산보존회에서 번역해 실어주어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 류산(遊山)
  • 2014.11.16 17:16
  • 답글 | 차단 | 삭제 | 신고
  • 즐감 합니다.
    천동~삼가 산행하셨군요.
    제 선산이 순흥과 청량산밑 태자라서..
    자주 방문하던 곳이라 더 눈길이 기는군요
    저수령~죽령, 죽령~고치령구간인 대간길도
    떠 오르구요.
    우리나라에서 정말 손꼽히는 명산이죠?
    잘 보고 갑니다.
    겨울이 시작되는데요, 건강유의하십시요
    몇 년만에 소백산을 올랐는데 여전히 새로웠습니다. 저수령, 죽령, 고치령 모두 땀흘리며 지난 곳입니다. 영주는 소백산 덕분에 정저적으로 아주 가깝게 느껴집니다. 항상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소백산 (2) 

     

                                *산행일자:2007. 1. 14일

                                *소재지  :충북단양/경북영주

                                *산높이  :1,439미터

                                *산행코스:천동매표소-민배기재-비로봉-연화봉-희방사-희방매표소

                                *산행시간:9시50분-16시(6시간10 분) 

     

     

     

                                
       해발 1,400미터가 넘는 소백산을 오르내리고 나서 양지와 음지를 나누는 햇빛보다 더 극명하게 겨울 산을 추운 곳과 따스한 곳으로 가르는 것이 바람임을 알았습니다.  민배기재에서 비로봉에 올랐다가 다시 민배기재를 거쳐 연화봉에 이르기까지 2시간 남짓한 산행은 시베리아의 한기를 실고 남하한 북서풍이 능선 오른 쪽에서 세차게 불어와 바람막이가 전혀 없는 평원 길을 걷는 동안 엄청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능선에서 왼쪽 아래로 난 반대편 길은 바람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데다 남중한 태양이 한낮의 햇살을 고스란히 비춰주어 잠시 쉬면서 오수도 즐길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따뜻하고 안온했습니다. 양지와 음지의 따뜻한 정도 차이는 바로 기온의 차이만큼만 느껴지지만 바람은 몸에서 열을 뺏어 가버리기에 바람 부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느끼는 차이가 실제의 온도차를 훨씬 뛰어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화작가 이솝이 진작 저와 함께 한 겨울에 소백산을 올랐다면 태양보다 바람의 위력이 더 강한 곳도 있음을 배워 그의 우화내용 일부를 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우리의 감싸주는 햇빛정책에도 혼내주는 바람정책이 일부 가미되어야 보다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같이 들었습니다.


     

      아침9시50분 천동매표소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매표소입구에서 돈을 받는 대신에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건네 온 것은 올 들어 국립공원입장료가 없어지고 나서 시작된 새로운 변화로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기에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매표소에서 천동쉼터에 이르는 길이 넓고 경사도 완만해 설산 산행을 즐기고자 소백산을 찾은 많은 분들이 오르내리가 편안했을 것입니다. 천동교와 신선교, 그리고 다래교 등 목재로 만든 예쁘장한 다리 6곳을 건너면서 이 다리들이 설원의 비로봉을 오르는 관문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0시34분 다래덩굴쉼터를 지났습니다.

    천동계곡에 다소곶이 내려앉은 하얀 눈을 보고 직전에 하늘에서 정신없이 흩날렸을 흰눈을 연상하기 힘들었던 것은 현존하는 최적의 질서에서 지나가버린 최고의 무질서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아서였습니다. 계곡에 소북이 쌓인 눈과 하늘 높이 치솟은 낙엽송들에게서 한 겨울에도 제 자리를 지키는 우리 산하의 질서를 보았으며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계곡 물이 겨울 속에 숨어 있는 봄의 소리를 전해주는 이 자연의 순리도 함께 읽었습니다.  먼저 이 길을 밟은 사람들이 다져 놓은 눈길을 걸어 오르는 동안 막 쌓인 신설을 밟는 삽상함을 느낄 수 없었지만 뽀드득하고 나는 눈 밟는 소리가 어렸을 때 눈 덮인 시골 길을 걷던 때처럼 여전히 듣기에 좋았습니다.


     

      11시17분 천동야영장에서 공원직원 몇 분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0대의 남자분과 20대의 남녀 젊은이들 모두 3명이 한조가 되어 산 오름에 나선 듯 했습니다. 이분들이 제일 애를 먹는 것이 공원 안에서 불법으로 취사를 하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산 속에서 취사를 금한지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삼겹살을 구워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믿기 어려웠던 점은 소백산 국립공원 안에서는 어디서고 숙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당연 이곳 천동야영장도 폐쇄되었고 1977년 여름에 하룻밤을 머물렀던 국망봉에서 초암사로 내려서는 길의 석윤암도 바위 장 아래 잠자리를 모두 없앴으며 비로봉 바로 아래 건물도 주목감시초소일 뿐 잘 수가 없다 합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과는 달리 정상에서 산 밑까지 내려가는 모든 하산코스가 짧아 굳이 산속에서 자야할 이유가 없어서라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산객들은 그저 얌전하게 이 산을 다녀만 가고 다른 짓은 일절 하지 말라는 데 있는 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소백산 옹달샘을 지나 나무계단 길에 오르자 소백산과 맞닿는 능선의 하늘이 질리도록 새파랗게 보여 냉기가 더할수록 겨울하늘이 더 파랗게 보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12시35분 해발1,439미터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소백산 정상봉인 비로봉을 오르기는 이번이 여덟 번째지만 계속해 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산이 백두산을 닮은 작은 백두산인 소백산이기 때문입니다. 금강산을 흉내 낸 소금강은 도처에 즐비한데 소지리산과 소설악산이 하나도 없는 것은 선조들의 상상력의 빈곤에서 오는 또 하나의 쏠림현상이라고 생각해왔던 제가 지난 가을 한남금북정맥을 종주하다가 음성에서 소속리산을 만나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그렇다면 백두산을 닮은 소백두산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소백산이 바로 그 산이겠다 싶었고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함백산과 태백산을 미리 만들어 보았기에 소백산을 작은 백두산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겠다 싶었습니다.  이제껏 중국령 백두산의 연봉들을 서파능선을 따라 한번밖에 오르지 못한 제가 소백산이 백두산의 어디를 어떻게 닮았냐고 물어온다면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지만 백두산은 워낙 큰 산이기에 소백산이 닮은 백두산의 능선과 골짜기가 어디엔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최고봉인 백두산이 남녘땅에 자기를 닮은 소백두산을 하나도 만들지 않았대서야 어디 영봉으로 대접받을 수 있겠느냐 싶어서도 더욱 그러했습니다.

      

      민배기재에 오르자 그동안 잠잠했던 바람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무섭게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집 떠날 때부터 각오했던 바람이라 얼굴가리개등 단단히 채비를 한 덕에 견뎌낼 만 했습니다만, 전망이 뛰어난 정상봉인 비로봉에 올라섰어도 카메라가 얼어붙어 아무 것도 담아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비로봉을 오르는 평원 길이 하얀 눈이 설화를 꽃피우는 설원이었으면 참 좋겠다는 기대를 안고 정상을 올랐지만 올 들어 한번도 큰 눈이 내리지 않아 작년 1월 덕유산을 오를 때보다 설량이 훨씬 적고 눈꽃도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오름 길에서는 비스듬히 바람을 등지고 걸어 그래도 견딜 만 했는데 내림 길은 바람을 안고 가게 되어 정말 살을 에는 듯 했습니다. 입추의 여지없이 빽빽이 들어선 산객들로 주목감시초소안에서 틈 비비고 들어앉아 점심을 먹는 일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아 포기하고 바로 밖으로 나와 연화봉으로 향했습니다.


     

      12시46분 민배기재를 막 지나 작은 바위가 바람을 막아준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방금 지나온 비로봉 아래 평원 길이 지옥이었다면 이 곳은 지상낙원을 방불해 어서 빨리 자리비우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여러분  있어 서둘러 점심을 들고 자리를 떴습니다. 점심 식사 중 벗었던 얼굴가리개를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쓰고 나자 안경에 입김이 서려 결국에는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1시간여 걸었는데 북서풍을 막아줄 바람막이가 전혀 보이지 않는 철쭉단지의 평원 길을 걷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오름길에서 유난히 힘들어하는 한 후배는 강풍까지 더해진 이번 산행이 녹록하지 않은 듯 제1연화봉을 오를 때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13시40분 해발1,394미터의 제1연화봉 바로 아래 고개 마루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안부로 내려서는 계단 길 중간의 데크에서 되돌아본 비로봉이 그리 멀게 보이지 않아 희방사를 출발해 오름길의 이곳에서 바라다보았을 때 엄청 멀게 느껴졌던 4년 전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마지막 삭풍은 안부에서 끝났고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은 그리 바람이 세지 않았습니다. 제우스신이 공들여 입혀준 하얀 눈옷이 모진 바람에 모두 벗겨지는 아픔을 참아내며 온 몸으로 삭풍을 막아준 벌거벗은 나목들 덕분에 봉우리 에돌기가 평원 길 걷기보다 한결 수월했습니다.


     

      14시30분 해발1,383미터의 연화봉에 올랐습니다.

    한동안 못 뵈었던 반가운 산악회 회원 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 속주머니에서 체온으로 따뜻하게 덥힌 카메라를 꺼내 먼발치의 비로봉을 간신히 잡았는데 이 커트가 유일한 비로봉 사진이었습니다.  왼쪽으로 내려서는 하산 길이 급한데다 양지바른 능선 길은 눈이 거의 다 녹아 질퍽거렸지만 얼굴가리개를 벗고 안경을 다시 써 비로소 제 눈을 찾았기에 발걸음을 내딛기가 훨씬 쉬웠습니다. 연화봉 출발 40분 후에 다다른 희방깔닥고개에서 희방사로 하산하는 길은 경사가 더 급했습니다. 대부분이 돌계단 길이어서 조심해서 내려서느라 희방사에 다다르기까지 20분이 걸렸지만 천동계곡을 따라 오르며 보지 못한 장송들을 만나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15시30분 신라의 고찰 희방사에 다다랐습니다.

    6.25 전란 중 두건대사가 창건한 희방사 건축물이 소실되는 것을 지켜봤을 희방폭포는 자연이 빚어낸 비경을 아무런 손상 없이 그대로 간직해와 영남 제1의 폭포로 자리매김했음을 보고 예술은 유한하고 자연은 무한함을 배웠습니다. 창건한지 천사백년이 다 되가는 희방사와 바로 아래 높이 28미터의 희방폭포를 카메라에 담는데 또 다시 성공했습니다. 차도를 제켜놓고 탐방로를 따라 하산하면서 계곡을 덮은 하얀 눈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바위에 단단히 들러붙은 눈들을 웬만한 바람으로는 떼어내기가 불가능할 것이고 오로지 따뜻한 햇볕으로 녹여내야만 가능할 것으로 보여 역시 태양이 바람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시 즈음에 희방매표소에서 하루산행을 끝냈습니다.

    천동매표소를 지날 때 이제껏 박스 안에서 표를 팔아온 분들이 밖으로 나와 산객들에 아침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붕어빵에 붕어 없다고 누구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듯이 얼마고 시간이 지나면 매표소에서 표를 팔지 않는다고 의아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이산을 찾는 이들에 표 대신에 정상등정의 꿈을 판다면 희망매표소로 이름만 바꿔달고 매표소는 그냥 놔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대했던 눈꽃들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소백산 특유의 칼바람에 정신이 번득 들어 긴장됐던 하루였습니다.

    산본으로 돌아와 긴장 속에 하루 산행을 무사히 마친 후배친구와 함께 자축하는 술 몇 잔을 나누었습니다. 가슴 속으로 품고 온 소백산의 칼바람도 술잔 속에서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기에 맥주 몇 잔으로 따뜻하게 가슴을 데울 수 있었습니다.

         

     

     

     

                                                              <산행사진>

     

                                      

                                           

     

                                                     소백산(1)


                       *산행일자:2004년5월22일

                       *소재지:충북단양/경북영주

                       *산높이:소백산 1,438미터

                       *산행코스:천동계곡입구-비로봉-연하봉-죽령휴게소

                       *산행시간:10시20분-17시20분(7시간45분)

     

     


      어제는 회사직원들과 함께 소백산을 올라 죽령-비로봉 구간의 백두대간을 밟았습니다.

    1970년대에 3번, 90년대에 1번, 그리고 작년 6월에 이어 어제로 6번째 올랐습니다. 70년대의 소백산 산행은 중앙선 열차로 다녀오느라 3박4일이 걸린 긴 여행길이었는데 요즈음은 오가는 교통이 편해져 하루산행으로도 충분히 종주를 마칠 수 있어 많이 쉬워졌습니다. 옛날에 나흘 걸려 다녀온 산을 하루에 마치고 돌아와 쉴 새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저 같은 보통사람들에는 좋아진 도로여건에  고마워하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분기마다 한번씩 실적이 부진한 영업소의 직원들이 “고행의 산행”을 갖습니다. 지난 1/4분기에는 눈 덮인 백덕산을 8시간에 걸쳐 오르내렸고, 이번 분기에는 어제소백산 기슭인 천동리에서 출발, 비로봉-연화봉-죽령휴게소의 주능선을 7시간 반을 걸어 “고행의 산행”을 마쳤습니다. 목표를 기필코 달성하겠다는 의욕과 이를 실천할 땀이 부족하면 영업실적이 부진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 영업사원들에 정상에 오르겠다는 도전정신과 땀 흘려 정상에 섰을 때의 성취감을 맛보게 해 영업의욕을 일깨우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참뜻인데, 산행을 성공리에 마친 영업사원들이 그 참뜻을 터득하고 뿌듯해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아침 9시11분 천동리 유스호스텔옆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들은 짐을 나누며 산행준비를 했습니다. 부산에서 올라온 유남수, 조연제, 송우식,  김홍범, 서울에서 내려간 안준성, 이상룡, 최재정, 박윤수, 권혁용대원과 제가 소백산에 오르고자 모인 10명의 대원들의 면면입니다. 저처럼 몸무게가 지나치게 많이 나가는 부산의 김 소장과 서울의 안 계장에게는 가장 중요한 산행준비가 기필코 정상에 오르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는 것입니다. 한북정맥의 청계산-노채고개를 뛰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이번 산행에 참여한 것은 새로 입사한 영업사원들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 나누며 하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9시22분 천동리를 출발했습니다.

    천동계곡을 따라 올라 다리안 폭포를 보고 자연의 건강함과 신비로움을 맛보았습니다. 천동교와 신선교, 그리고 다래교를 차례로 건너 신선바위에 다다라 고도계를 체크해보니 690미터로 나타나 출발지인 천동리 주차장에서 어느새 고도로 260미터를 오른 셈입니다. 신선바위 앞에 세워진  작은  표지석에는 이곳의 고도가 610미터로 표기되어 있어, 제 고도계에 나타난 수치에서 80미터를 감해야 실제고도와 맞게 됩니다.


      10시22분 천동리에서 3.2키로를 걸어 출발 한 시간 만에 첫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일행들은 먼저 출발하고 뒤늦게 도착한 부산의 김소장이 쉴 수 있도록 기다려 10시 37분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틀 전에 내린 비로 계곡의 물이 맑고 깨끗했으며 수량 또한 풍부해 물소리가 힘찼습니다. 길섶의 나무들이 볕을 가려 산행하기에 덥지 않았고 완만한 경사길이 계속해 이어져 숨 가쁘지 않았기에 돌바닥의 오름 길도 참을 만 했습니다.


      11시10분 비로봉 2.7키로 전방의 야영장에서 목을 추겼습니다.

    해발 1,000미터대에 자리 잡은 야영장의 식수대에서 차디찬 물로 작은 페트병을 채웠습니다. 아직은 김소장의 컨디션이 견딜 만 해 10분만 쉬고 또 다시 산 오름에 나섰습니다. 샘터를 얼마고 지나자 나무계단 길로 이어져 뒤늦게 본격적인 오름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백산을 상징하는 주목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고,  한북정맥에서 만난 노란 꽃의 피나물이  여기 소백산에서도 그 화사함을 뽐냈습니다.


      12시7분 많이 지친 김 소장이 그늘진 나무계단 길에서 숨을 고르는 동안 주목나무와 피나물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고 후미를 책임진 박소장과 피로를 회복중인 김소장의 모습도 함께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12시 32분 해발 1,439미터의 정상인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다음주에 열릴 단양시의 소백산철쭉제가 성황리에 끝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정상부근의 철쭉들은 꽃을 피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출발 3시간 10분만에 90키로 가까운 거구를 이끌고 6.8키로의 먼길을 걸어 정상에 오른 김소장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1,000미터를 넘는 고산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오르는 도중 퍼지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잘도 참고 올라 고마웠습니다. 산에서는 오르느라 흘린 땀만큼 소찬도 비싼 호텔의 성찬만큼 맛이 있는 법입니다. 점심으로 김밥을 든 후 함께 오른 직원들의 자랑스러운 모습들을 기념하고자 비로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13시 10분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정상에서 0.6키로 하산하여 만나는 천동계곡행 갈림길까지의 넓은 평원에 조성된 주목군락을 보호하기 위하여 나무계단길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은 60년 생 한 그루에서 암 환자 한명을 치유할 만한 항암물질을 추출해 낼 수 있다니 분명 고마운 나무임에 틀림없으며 제대로 보호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연제, 이상룡, 최재성, 박윤수, 권혁용 대원과 저를 포함한 6명의 대원은 죽령휴게소까지 대간 길을 종주하고, 종주가 역부족인 부산의 유남수, 송우식, 김홍범과 서울의 안준성 대원등 4명은 천동리로 되돌아 내려가 죽령휴게소에 차를 대기로 하고 갈림길에서 헤어졌습니다. 비로봉에서 죽령휴게소까지가 11.5키로이니 이번 산행의 총거리는 18.3키로로 , 올 들어 가장 긴 코스를 뛰는 것입니다. 맑은 날씨덕분에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마루 금이 한눈에 들어와 끝자리의 중계소도 확인할 수 있었기에 빗속에 길을 잃는 어려움은 전혀 없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습니다.


      제1 연화봉을 지나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작년 6월에 거꾸로 오르면서 몇 번을 쉬었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방향만 반대인데 오르고 내리는데 드는 힘의 차이는 엄청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리를 따르면 일이 쉬워지지만 순리를 거역하면 일이 꼬이는 이치일 것입니다. 자연계에서 정반응은 쉽게 이루어지는데 그 역반응은 일어나지 않는 불가역반응이 많이 존재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 생각됩니다.


      14시25분 천문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짐을 풀고 천동리에서 지고 올라온  맥주를 마셨습니다. 노란색의 피나물과 파란색의 현호색은 길섶에 피어 있어 자주 눈에 띄는 대표적인  소백산의 야생초로, 주 능선을 종주하는 산악인들에는 잠시나마 피로를 잊게 하는 고마운 풀입니다.


      14시42분 연화봉을 조금 지나 천문대에 다다랐습니다.

    몇 번의 산행에서도 희방사를 거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소백산에 처음 오른다는 권 본부장이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웠던지 연화봉을 다녀온다 하기에 나머지 대원들은 그 시간동안 편안히 쉬었습니다. 죽령휴게소까지 7키로가 남아 있어 여기서도 짧지 않은 길인데 차들이 다니는 넓은 길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다리에 무리가 갈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높은 곳에서 말없이 근무하는 분들의 노고가 없이는 이 사회가 제대로 견뎌내지 못할 진데, 이 길이 매일 오르내려야 하는 그 분들을 위해 닦은 길이라 생각하니 걷기에 좀 불편하더라도 참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15시 26분 연화봉중계소 전망대에서 희방사 건너편을 조감했습니다.

    오른 편으로는 아침에 오른 천동계곡과 만나는 백자골이  눈에 들어왔고 왼편으로는 작년 10월에 다녀 온 월악산이 먼발치로 눈에 잡혔습니다. 그리고 비로봉에서 이어지는 마루 금이 분명하게 그 선을 보여 하루의 발자취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제2 연화봉의 정상에 자리 잡은 한국통신중계소를 끼고 돌며 본격적인 하산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시멘트길이 미안해서인지 종종 길옆에 샛길을 만들어 흙을 밟을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엿보여 고마웠습니다.


      15시 52분 길섶에서 잠시 짐을 풀고 땀을 식혔습니다.

    휴게소까지 예쁜 이름의 쉼터가 여러 군데 준비되어 있었지만 17시까지 차를 대라고 하였기에 아쉽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래도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꽃망울을 막 열고 있는 산목련만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산목련 몇 송이를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1970년 6월 소백산을 처음 올랐을 때 초암사에서 석륜암에 이르는 길에서 만난 고귀한 자태의 산 목련을 다시 보는 듯싶어 더 할 수 없이 반가웠습니다.


      16시 52분 죽령휴게소에 도착 , 7시간 30분간의 “고행의 산행”을 마쳤습니다.

    천동계곡으로 내려 간 김소장이 많이 지쳐 능선을 종주한 저희들과 거의 같은 시간에 하산을 마쳤다 합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소백산 산행을 마친 직원들에 오직 감사할 따름입니다.  단양시내로 자리를 옮겨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들면서 이번 산행을 반추했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10명의 대원모두가 하나가 되어 땀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환희와 자신감을 간직한 보람찬 하루였다고 자부하며, 다음 분기에는 영업실적이 크게 향상  회사살림이 나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 > 명산100산 탐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점봉산 산행기  (0) 2007.01.02
    11.방태산 산행기(1-3)  (0) 2007.01.02
    9.화악산 산행기(1-4)  (0) 2007.01.02
    8.가리왕산 산행기(1-2)  (0) 2007.01.02
    7.오대산 산행기(1-3)  (0) 2007.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