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11.방태산 산행기(1-3)

시인마뇽 2007. 1. 2. 17:55

                                                  방태산(3)

 

                *산행일자:2007. 7. 14일

                *소재지  :강원인제

                *산높이  :1,444m

                *산행코스:자연휴양림주차장-매봉령-구룡덕봉-주억봉(정상)-주차장

                *산행시간:11시26분-17시58분(6시간32분)

                *동행    :경동고 24기동기 11명

                  (김경옥/김주홍, 김양미/김남진, 문순신, 백인목, 서중원, 

                      이규성, 이기후, 이달헌, 이명재) 

 

 

   제 4호 태풍 마니가 복 더위를 날려버려 초복 날 산 오름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오끼나와를 강타한 태풍 마니가 백두대간에서 서쪽으로 조금 비껴있는 이 산에 한 여름의 폭염을 달래기에 충분한 비바람을 건네주어 6시간 남짓 고산을 오르내렸어도 전혀 더운 줄 몰랐습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간헐적으로 비를 뿌려 전망이 좋지 않았고 길이 질펀해 오르내리기가 미끄러웠지만 한여름에 작렬하는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때맞춰 일본을 지난 태풍마니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상에 오르기 전후해서 단 몇 분이라도 비가 멈추고 안개 속에 감춰진 장대한 산세가 그대로 드러나 자연이 빚어내는 한편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이번 비바람만은 구름의 신 제우스가 조화를 부린 것이 아니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명을 받은 태풍의 심술로 빚어졌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나서 가슴 속에 품었던 제우스신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모두 털어냈습니다.


  지난 해 가을부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명산을 찾아 오른 고교동기들과 이번 여름을 맞아 함께 찾아 나선 산은 강원도 인제의 방태산입니다. 십수 년 전부터 최고의 하계레포츠로 각광받는 래프팅의 명소 내린천에 물을 내리는 방태산은 웬만한 산에는 빼놓지 않고 들어선 그 많은 절하나 없는 깊숙한 오지의 산이어서 교통이 불편한데다 인근 설악산의 명성에 밀려 1990년대까지는 이산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실 저도 처음 방태산을 찾은 것은 2002년 여름으로, 회사직원들과 함께 약수골로 들어가 주억봉에 오르고자 했으나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다 정상을 포기하고 사태골로 내려왔지만 해발고도 1,000m가 훨씬 넘는 곳에 훤칠한 아름드리 교목이 빽빽이 들어섰고 그 사이로 난 능선 길에 낙엽이 잔뜩 쌓여 발이 푹푹 빠져 걷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깊은 계곡과 약수, 울창한 수림과 산상화원의 야생화에 산나물이 많다는 소문이 밖으로 퍼져나가면서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으며 저도 이번 탐방 길이 벌써 다섯 번째가 됩니다.


  아침11시41분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시킨 후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차 3대가 움직인 데다 국수에서 해장국을 드느라 반시간 가량 지체됐지만 7-8시간이 족히 걸리는 정상을 올랐다가 푯대봉을 거쳐 계곡이 긴 대골로 하산하는 긴 코스 대신에 5-6시간이면 마칠 수 있는 구룡덕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짧은 코스를 택했기에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독립적으로 이 산을 찾아온 여주 사는 한 동문이 매표소에서 새롭게 합류해 모두 12명이 산을 올랐습니다. 매표소에서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하느라 적가리골의 명소인 마당바위, 이폭포와 저폭포를 가까이서 보지 못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태풍마니의 영향으로 서울을 출발할 때의 맑은 하늘은 어느 샌가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방태산에 들어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수량이 풍부해진 계곡을 끼고 십 수분을 걸어 다다른 합수점에서 왼쪽 계곡 길로 들어서 구룡덕봉으로 향했습니다.


  13시30분 매봉령에 도착해 먼저 오른 선두대원들과 처음으로 함께 쉬었습니다.

합수점을 출발해 매봉령에 오르기까지 계곡을 모두 네 번 건넜습니다. 급류로 물이 갑자기 불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준비해온 20m길이의 보조자일이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한 곳을 제외하고는 세 곳 모두 견고하고도 예쁜 다리가 놓여 계곡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계곡을 벗어나 산등성으로 올라서자 빗줄기가 거세져 배낭에 방수카바를 씌우고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과속의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 뻔한 한 친구가 앞으로 내달리는 바람에 좀처럼 보이지 않아 걱정됐습니다. 얼마 후 선두팀에서 쳐진 이 친구를 만나 한 아름이 훨씬 넘는 피나무 그늘아래에서 10분 가까이 쉬는 동안 수지 사는 친구내외가 준비해온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들어 다섯 명 모두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비를 머금어 발그스름한 살갗이 고혹적인 거제수 몇 그루가 눈을 끌어 카메라에 옮겨 담아왔습니다. 이번 산행코스에서 유일한 깔딱고개 길을 오르는 중 후미를 걱정해 되내려온 친구를 만나 고마웠는데 몇 분을 더 걸어 매봉령에 올라서자 선두팀원들이 반갑게 맞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매봉령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구룡덕봉으로 향했습니다.


  14시9분 해발1,388m의 구룡덕봉에 올랐습니다.

매봉령에서 능선 길을 따라 얼마고 걸어 차들이 다니는 넓은 임도로 올라섰습니다. 짙은 안개 속에 숨어있는 산자락은 끝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풀숲에 몸을 숨긴 더덕만은 그 특유의 향내로 마음껏 존재를 과시했습니다. 임도에 올라서자 구룡덕봉은 봉우리가 아니고 그저 나지막한 구릉에 지나지 않았지만 태고의 음향을 재현한 듯한 비바람소리만은 더 할 수 없이 드세고 거셌습니다. 구룡덕봉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이내 주억봉으로 향해 몇 분을 더 걸었습니다. 이내 바람을 막아 줄 능선 왼쪽 바로 아래 평평한 곳을 찾아내어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준비해온 음식들로 배를 불리고 복분자술을 주종으로 한 다양한 알코홀 류로 몸을 덥히는 긴 시간의 교류를 마친 후 정상을 향해 내딛는 친구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차보였습니다. 주억봉 바로 앞의 1365봉 삼거리에 이르기까지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편안한 능선 길을 걸으며 길섶의 야생화들을 눈여겨보았습니다.


  15시37분 해발1,444m의 방태산 최고봉인 주억봉에 올라섰습니다.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선 곳에 세워진 정상석과 삼각점을 1년 만에 다시 보자 반가웠습니다. 하니동계곡을 거쳐 대골재에 올라 능선에 펼쳐진 야생화들의 자태에 흠뻑 빠졌던 제가 여기 정상에 오르자 구름에 가렸던 산자락이 모습을 드러내고 동쪽의 갈전곡봉을 남북으로 지나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와 같이 오른 일행들이 탄성을 절로 냈는데 이번에는 비가 뿌리고 바람이 거칠어 등정기념 사진 몇 방만 찍은 후 서둘러 1365봉으로 되 내려갔습니다. 그동안 저 나름대로 공을 들여 제우스신과는 좀 대화가 된다고 생각해 저희들이 정상에 오를 즈음해서 이 신이 단 몇 분간이라도 하늘을 열고 산자락을 덮은 구름을 거두리라 기대했습니다. 이런 저의 기대와는 달리 제우스신이 미동도 하지 않아 저도 잔뜩 화가 났습니다. 제가 등을 돌린다면 이 산속에서 수준 높은 얘기를 주고받을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제우스신이 하산하는 저를 멈춰 세우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이번 비바람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나서서 만들어 낸 것이어서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비록 포세이돈이 하늘을 다스리는 제우스의 동생이기는 해도 독자적으로 바다를 다스리고 있고 질투심이 많기로 이름난 신이어서 제우스신도 어찌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다음에 태풍을 피해 이 친구들과 다시 오를 때에는 지리산의 층적운을 모두 옮겨 놓아 운해의 장관을 보여줄 것을 다짐받았습니다. 제우스신은 역시 인격신이었습니다. 


  15시 정각에 가파른 능선 길 하산을 마치고 지당골로 내려섰습니다.

1365봉에서 계곡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경사가 급한데다 땅이 질어 미끄러지기 십상인 길이어서 하산 길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습니다. 스틱의 도움으로 용케도 한번도 미끄러지지 않았지만 몇 번을 미끄러진 어느 한 분은 지당골에 내려서자마자 묻은 흙을 씻어내느라 두 손이 바빴습니다. 3년 전 동업계사장분들과 된비알의 이 길을 거슬러 정상을 오르다가 50대 후반의 일행 한분이 탈진해 정상을 코앞에 둔 1365봉에서 등정을 포기하고 되 내려간 일이 있어 이번에는 좀 멀리 돌더라도 경사가 완만한 매봉령코스를 택했는데 단 한명도 낙오 없이 정상에 모두 올라 고맙고 기뻤습니다. 급한 대로 등산화에 묻은 진흙을 먼저 씻어 낸 후 출발지인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7시58분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지당골을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하산 길은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환상적인 산책코스였습니다. 이 산 특유의 활엽수들이 만든 숲을 가르고 난 길은 경사가 거의 없고 서너 번 계곡을 건너 이어지는 고즈넉한 산길을 말없이 걷노라니 산골짜기에 조용히 내려앉는 저녁 기운이 감지되곤 했습니다. 저녁기운이란 안도의 기운이자 긴장의 기운이기도 합니다. 한 낮 내내 재잘대던 새들이 소리를 접는 편안한 저녁시간에 긴장감이 감도는 것은 이 산속에 더 이상 천적이 없는 멧돼지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야행을 준비해서입니다. 낮 시간에 몸을 숨겨 편안히 산행을 할 수 있도록 해준 멧돼지가 마음 놓고 나다닐 수 있도록 해지기전에 산을 빠져 나가는 것이 예의인 듯싶어 하산 길을 서둘렀지만 광장 조금 못가 다다른 넓은 바위 계곡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짐을 풀고 세수를 하며 몇 분을 쉬었습니다. 반바지와 반팔상의로 갈아입고 나자 하산 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오래 참았던 하늘이 굵은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분 후 주차장에 도착해 승용차에 올라타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귀경 길에 주문진을 들러 생선회가 곁들인 뒤풀이를 가진 후 가을산행을 논의했습니다.

우려했던 휴가철 교통체증이 전혀 없어 귀경길이 편했습니다. 작년 가을 설악산 산행이후 처음으로 날씨가 궂고 비가 내렸지만 우중산행의 묘미가 바로 여름산행의 참맛이어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정상에 올랐어도 전망이 트이지 않아 갑갑했지만 다음에 오를 때에는 틀림없이 하늘을 열어주겠다는 다짐을 제우스신으로부터 받아놓은 터라 귀경길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오랜 시간 운전대를 잡은 김남진 부부 및 김주홍 부부 그리고 서중원 동문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뒤풀이에 든 비용 상당부분을 부담한 이 기후동문에도 감사인사 드립니다.  다음 산행을 기다리는 설렘이 저희들의 삶을 활기차게 할 것입니다. 남은 여름 모두 다 건강하게 보내기를 기원하며 방태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 Joohong
귀경길 너무 늦었죠?????
고생 많으셨읍니다. 퍼 갑니다
  • 시인마뇽
  • 2007.07.20 19:45
두분이 운전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안산하시기 바랍니다.

                                         

 

 

 

                                            방태산 (2)

 

              *산행일자:2006. 6. 25일

              *소재지  :강원 인제

              *산높이  :주억봉1,444미터

              *산행코스:미산리하니동계곡-배달은석-정상주억봉-지당골

                            -적가리골-매표소

              *산행시간:10시9분-17시24분(7시간15분)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원시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곳으로 몇몇 산객들에만 알려졌던 방태산이 2000년대 들어 그 진면목이 밖으로 조금씩 알려지면서 요즈음은 이 산을 찾는 산객들이 꽤 많아졌습니다. 저만 해도 최근 3년 동안 어제로 네 번째 이 산을 찾았습니다.  오지의 이 산에 올 때 마다 이 산에 대해 아는 바가 조금씩 늘어나고 또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어 자연 하루산행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저는 “아는 것이 즐거움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하고 또 한편에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고도 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뭐 좀 안다고 나 설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하고 지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연 모르는 것이 약이 되겠지만, 이리되면 교육의 존재의의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기에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아는 것이 힘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모든 권력은 지식에서 나오는 것으로 확대해석해 자식교육에 모든 것을 다 거는 등 삶이 피곤해질 수 있기에 “아는 것이 힘이다”에서 “아는 것이 즐거움이다”로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공자님도 “배우고 또 배우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어제 방태산을 오르면서 아는 것이 즐거움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대골재의 넓은 초원에서 긴 시간을 머무르면서  “산상의 화원”에서 피어나는 야생화 식구들 하나하나에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야생화박사인 어느 한분이 별로 아는 바가 없어 꽃들을 그냥 지나쳐야 했던 저보다는 분명 훨씬 더 즐겁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대간 길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전인 2004년 5월에 이 산의 정상인 주억봉에 처음 올랐을 때는 동쪽 먼발치에서 남과 북으로 끊임없이 뻗어가는 백두대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햇볕만 쨍쨍 내리쬐는 등 별로 감흥이 일지 않아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는데, 어제는 지난겨울에 땀 흘리며 걸은 대간 길이 확연하게 드러나 반갑고 기뻤기에 오랜 시간을 머무르며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아침 10시9분 버스에서 하차하여 바로 미산리의 하니동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며칠 전에 하루해가 가장 긴 하지를 떠나보낸 이 여름이 깊숙이 들어앉은 하니동계곡은 한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고도 남을 만큼 냉랭하고 시원했습니다. 내린천으로 내닫는 하니동 계곡을 12번이나 건너면서 손을 담가본 계곡물이 냉랭했고  활엽수들이 빛을 가려 만들어준 숲 속의 그늘이 시원했습니다. 이번만은 후미에서 벗어나고자 부지런히 계곡을 건너고 돌길을 걸어 산행시작 36분 만에 6번째 계곡을 건너면서 바로 위에 자리한 아담한 폭포를 카메라에 옮겨 실은 후 계곡 길을 이어갔습니다.


 

  11시27분 11번째 계곡을 건너 4분을 쉬었습니다.

계곡의 바위에 낀 연초록의 깨끗한 이끼가 이 계곡이 청정지역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금언대로라면 계곡에 박혀있는 붙박이 바위들에 이끼가 모두 끼어야 하는데 공해가 극심한 서울근교에서는 이끼를 찾아보기가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2억4천5백만 년 전에 끝난 고생대 페름기에 이끼가 나타나 오늘까지 온전하게 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종들보다 끈질긴 생명력 덕분이겠는데 이렇게 왜소하고 약해보이는 이끼가 숨겨놓은 강인한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돌가닥 길을 걸어 10분 후 마지막 12번째로  계곡을 건넜고 조금 후 만난 붉으스레한 수피의 거제수나무가 서있는 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산 오름이 시작되어 큰바위 약수터에 다다르기까지 약 30분간 된비알의 오름길이 계속되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암봉인 깃대봉을 받쳐주는 장대한 암벽들을 오른 쪽으로 돌아가자 배달은석 봉우리 밑으로 넓은 초원이 펼쳐졌습니다. 어느 한분은 열심히 딴 나물이 곰취가 아니고 동의나물로 밝혀져 내버리는 헛수고를 했지만 덕분에 잠시라도 산나물을 따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니 그리 서운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진 모자를 줍느라 풀 숲 속에 떨어트린 안경을 찾으며 잠시 긴장했습니다.


 

  12시30분 깃대봉과 배달은석 중간의 대골재에 올라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암벽을 조금 지나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올랐으면 예정대로 깃대봉을 들렀을 터이지만 오른 쪽 길을 택해 대신에 산상의 화원 길을 걸었습니다. 산 라일락으로도 불린다는 연분홍의 꽃개회나무와 삘기장다리처럼 키가 훤칠하고 줄기 끝부분에 꽃을 피우는 박새 등 다른 산에서 본 기억이 없는 꽃들이 산상의 화원을 천상의 나라로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산상의 꽃 나라에 바람과 구름이 함께 해주어 행복했으면서도 풀꽃들의 이름을 더 많이 알아 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더 행복했을 것을 그리하지 못했다 싶어 아쉬웠습니다.


 

  13시2분 맨 꼴찌로 대골재를 출발했습니다.

대골재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분들과 함께 걷고자 후미를 자청해 맨 끝에서 배달은석 봉을 지나면서 고사목과 활짝핀 하얀꽃의 함박꽃나무에 눈길을 주느라 발걸음이 빠르지 못했습니다.  대골재 출발 13분 만에 올라선 해발 1,416미터의 배달은석에서 정상인 주억봉까지는 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관목 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걸으며 멧돼지가 분탕질을 한 흔적을 보았습니다. 한 봉우리를 지나 암릉 길을 오르내리며 동쪽으로 전진했습니다. 대골재 출발 한 시간 후에 평평한 능선에서 그늘을 찾아 한참을 쉬면서 서울의 명문고를 1966년 같은 해에 졸업했다는 아홉 명의 동창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뒷다리에 쥐가 나 얼마간 걸음이 조금 더뎠습니다만 모두가 산행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어서 시간 안에 주차장에 닿는 데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14시45분 해발 1,444미터의 정상봉인 주억봉에 올라섰습니다.

북쪽 멀리 산 너머로 펼쳐진 운해가 장관이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솜뭉치 모양의 구름들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산자락에 걸쳐 있는 구름 떼들은 조금씩 꿈틀대며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다가서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동쪽 멀리로는 대간 길이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벌써부터 남북으로 뻗어있는 대간 길이 이번에야 비로소 새롭게 눈에 들인 것은 지난겨울 저 길을 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들리는 것이기에 아는 것 만큼 반갑고 기쁠 것입니다.


 

  15시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1365봉 직전의 삼거리에 지켜서있는 여성산행대장 분이 일러 준대로 A코스인  구룡덕봉으로 직진하지 않고 지당골로 내려서는 B코스를 택해 왼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하산 길에 동창팀 중 어느 한분이 6.25 때 겪었던 일을 다른 분들에 얘기하는 것을 뒤에서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정확하게 6.25가 일어난 지 56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보다 한 해 빨리 태어났는데 용케도 그 때 일을 기억해내는 그분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월드컵 소리에 함몰되어 불과 4년 전인 2002년6월29일에 일어난 서해교전을 새까맣게 잊고 지내는데 56년 전에 일어난 일들을 기억해내는 그 분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집에 돌아 와 1951년 5월17일 중공군에 밀린 우리 국군이 오전에 비껴온 1436고지인 깃대봉을 거쳐 하진부리로 퇴각하는 중에 많은 전사자를 내었다는 온창일 박사의 “한민족전쟁사”를 읽고나서 어제산행이 시의적절 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삼거리에서 한 시간을 걸어 내려와 지당골 계곡을 만났습니다.


 

  16시44분 지당골 계곡에서 몸을 닦으며 14분을 쉬었습니다.

매봉령갈림길을 조금 지나 길 오른 쪽으로 넓은 바위가 있는 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골짜기가 깊은 만큼 골짜기를 흐르는 물도 차가왔고 수량도 많았습니다.  물이 너무 차가와 발가벗고 목욕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웃옷만 벋고 땀을 씻어냈는데도 온몸이 시원해 나무들 사이로 내 비치는 저녁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졌습니다. 탐방로 입구를 지나자 산속에서 좀처럼 만나볼 수 없었던 적송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다리 건너 큰길로 들어서 왼쪽의 계곡을 완상하며 천천히 내려가는 중 적가리골의 비경을 대표하는 이폭포와 저폭포 및  마당바위를 보았습니다.  나무를 만드신 하느님이 저 바위와 폭포를 빚었다고 생각하자 저의 짧은 언사로 그들의 아름다움을 전하기가 겁이 났습니다.


 

  17시24분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감했습니다.

누가 방태산으로 산행지를 결정했냐며 고마워한 어느 분처럼 제게도 이번 산행이 정말 좋았습니다. 방태산이 남쪽 기슭에 숨겨놓은 한니동 계곡, 대골재에 펼쳐지는 산상의 화원, 배달은석에서 주억봉가는 길에 오르내리는 암릉길, 정상에서 조망한 대간 길과 운해, 들러보지 못하고 눈길만 준 적가리골의 비경들 모두가 방태산의 진가를 높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고생대페름기의 먼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초록의 이끼가 이산의 역사를 가늠하게 해주었습니다.


 

  아는 것이 즐거움이고 알아가는 것 또한 즐거움이기에 귀가길 버스에서 야생화박사님에 카메라에 담아온 꽃들과 풀이름을 물어 확인하면서 저보다 많이 아는 분들과 함께 산행을 하는 것도 큰 즐거움임을 알았습니다.

 

 

 

                                               <산행사진>

 

방태산(1)

*산행일자:2006. 6.

*산행코스:미산리하니동계곡입구-주억봉-적가리골-매표소

*동행 :송백산악회








 

                                     방태산(1)


                 *산행일자:2003년 6월 29일

                 *소재지  :강원 인제

                 *산높이  :1,444미터

                 *산행코스:휴양림 매표소-적가리골-지당골-1,365고원

                           -정상 주억봉-지당골-매표소

                 *산행시간:10시40분-17시20분(6시간 40분)


  작년 10월 청계산 산행을 마치고 결성된 서울대 AFB산악회가 처음으로 지방의 명산에로나들이를 나섰습니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크고 작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 바쁘게 주중을 보내기에, 주말에는 세속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오지의 원시림을 찾아 하루를 보내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 산행지로 강원도 인제의 방태산을 선정, 버스 1대를 대절하고 무전기 2대를 빌리는 등 단단히 채비를 했습니다.


  전날만 해도 15명이 참여할 것으로 확인되어 그에 맞게 준비를 했는데 출발지인 잠실운동장에 모인 인원이 모두 11명밖에 안되어 버스에 올라 한껏 넓게 자리를 잡았어도 빈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2기의 이상일, 김도삼, 김점한사장 등 3명과 1기의 정광진, 배조정, 정중화, 고미희, 전문환, 김미숙, 우명길 사장 등 7명, 그리고 이상일 사장의 지인 박상식 님 등 총 11명이 어제 하루 함께 땀 흘린 분들입니다.


  아침 7시 20분 잠실 운동장을 출발했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을 보낸 6월의 산하는 어느새 짙은 초록색으로 성장하여 싱그러운 여름을 맞고 있었습니다.  회색의 도시 서울에서 탈출하여 이 아름다운 6월의 산하에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가 꼭 필요한 분들이 이 모임의 회원 분들 일진데, 그리 할 수 없는 사정이 딱해 보였습니다. 중간에 탐진강 휴게소에서 들러 잠시 쉰 후, 내쳐 내달려 서울을 출발한지 3시간 10분만에 방태산 휴양림의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10시40분 매표소를 출발해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큰길 오른 편의 적가리 골에는 물 흐름이 힘차 보였습니다. 적가리 골을 내리닫는 물줄기가 시원스레 낙차 크게 밑으로 떨어져 만든 “이폭포”와“저폭포”는 이 계곡의 대표적인 명소입니다. 20분 여 적가리골을 따라 올라 오른 쪽의 지당골로 들어섰습니다. 계곡의 규모가 적가리 골에 못 미치지만, 깊숙한 산골짜기를 양편으로 가르며 구비 구비 흐르는 지당골이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산객들에는 더욱 정감이 가는 계곡입니다. 이 계곡을 따라 경사가 완만한 길이 나 있어 힘들이지 않고 1시간 가량 걸어 올랐습니다.


  11시 40분 편안한 계곡 길이 끝나고 치받이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짐을 풀고 첫 쉼을 가졌습니다. 한 여름의 산행이라 땀을 많이 흘려 빨리 목이 탔기에 성미 급한 몇 분들이 정상주로 준비한 막걸리로 목을 추겼습니다. 산등성으로 올라서고자 급경사의 비탈길을 밟으면서 고행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치받이 코스를 오르느라 막걸리를 조금 과하게 들었다 싶은 한 분이 쳐지기 시작했습니다. 후미의 몇 분들이 그 분과 함께 쉬며 가며를 반복해 어렵게 7부 능선까지 올랐습니다.


  13시 10분 선두는 주억봉-구룡덕봉을 잇는 1,365고원에 올라서 점심을 들겠다고 무전으로 알려왔습니다. 한참 뒤로 쳐진 그 분이 다리의 근육이 뭉쳐 걸을 수 없다고 해 다시 쉬면서 뭉친 근육을 풀고자 연신 다리를 주무르는 중 마침 하산하는 어느 한 분이 수지침을 놓아주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14시 산마루까지 간신히 걸어 올라가 50분 늦게 선두에 합류해 점심을 들었습니다.

해발 1,444미터의 정상인 주억봉을 500미터 남겨놓고 근육통으로 고통스러워했던 그 분이 더 이상의 등정을 포기해, 저도 달포 전 과천산악회원과 함께 정상에 올랐기에 그분과 함께 이곳 산마루에 머물면서 선두가 정상에 올랐다  돌아오기까지 약 30분간을 편하게 쉬었습니다.


  15시 1,365고원으로 되돌아 온 선두와 같이 올라온 길을 되짚어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구룡덕봉을 거쳐 하산하고자 했으나 뜻밖의 환자발생으로 포기하고 짧은 코스를 택해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여유를 갖고 하산하자 비로소 정신 없이 오를 때 지나쳤던 방태산의 원시림이 눈에 잡혔습니다. 관목이 무성할 것으로 생각했던 이 높은 곳에 아름드리 활엽수가 숲을 이루고 있음이 신기했습니다. 작년 6월 회사직원들과 같이 맞은 편의 약수골로 들어서 주억봉을 목표로 능선에 올랐다가 길을 잃어 중도포기하고 하산했는데, 그때도 능선에 자리한 통큰 나무들에 압도당해 감탄했었습니다.


  14시30분 지당골을 거의 다 내려가 마당바위에서 짐을 풀고, 바위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물에 발을 담가 몸을 식혔습니다. 탁족은 산길을 오르내리느라 혹사시킨 두 발을 달래주는 것이기에 여름산행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세레모니며, 또한 즐거운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17시 40분 하루 산행을 마치고 휴양림을 출발했습니다.

강원도 인제에 처갓집을 두고 있는 1기의 배조정 사장께서 내린천 변의 아담한 음식점을 잡아 저녁을 냈는데 이곳 특유의 두부 맛이 일품이어서 맛있게 들었습니다. 저희 산악회모임에는 산행 시마다 스폰서가 나타나 뒤풀이를 맡아주곤 했었기에 참가자들이 산행 시마다 내는 2만원의 회비를 상당액 비축해와 11명의 조촐한 인원으로도 대형관광버스를 세내어 편하게 다녀 올 수 있었습니다.


  밤 11시 잠실에 도착해 방태산 나들이를 전부 마쳤습니다.

이번 산행을 같이하신 11분 모두가 아름드리 나무들의 원시림과 깊고 깨끗한 계곡의 방태산을 오르느라 힘들었지만 좋았다는 총평을 전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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