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2)
*산행일자:2008. 2. 17일(일)
*소재지 :경기포천/가평
*산높이 :운악산936m, 원통산567m
*산행코스:노채고개-원통산-운악산-철암재-47번국도
*산행시간:8시48분-16시37분(7시49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등 총14명
(24기김주홍부부, 김남진부부, 백인목, 서중원, 이규성, 이기후, 이명재
우명길, 29기유한준, 김정호, 정병기 및 그의 지우 박현출님)
지난달에 오르내린 길마봉과 더불어 한북정맥 최고의 난코스로 알려진 운악산의 암릉 구간을 무사히 통과하여 정상에 오른 후 윗봉수리의 47번 국도변으로 하산했습니다. 2004년 여름 고교동창 몇몇이서 한번 종주한 구간이어서 길안내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위험한 암릉 길을 오르내리며 누구 한 사람이라도 만의 하나 다칠까 보아 산행이 다 끝날 까지 가슴 죄었습니다. 이번의 운악산 구간을 끝으로 한북정맥의 나머지 구간들은 더 이상 가슴조일 난코스가 없어 한 걱정 놓게 되었기에 저도 이제부터는 다른 일행들처럼 종주산행 중에 한 번 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볼 생각입니다.
이번 한북정맥 6구간의 종주산행은 운악산 산행이 전부였습니다.
운악산이 시작되는 북쪽의 노채고개에서 한북정맥에 발을 들인 저희들은 능선 길을 따라 남진해 운악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남진을 계속하다 아기봉 갈림길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1시간 여 하산하여 운악산이 끝나는 47번 국도변에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렇듯 이번 산행은 운악산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종주산행이었기에 산행 중 거의 내내 동쪽의 연인지맥과 서쪽의 명성지맥의 수려한 산줄기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 오른 운악산(雲岳山)은 경기 오악의 한 산으로 일명 현등산(懸燈山)으로도 불리는 것은 고려 때 고승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창건한 현등사(懸燈寺)가 이 산 동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산 중턱의 덤불 속 절터 석등에서 사흘 동안 불빛이 비치는 것을 본 지눌 스님께서 이곳에 절을 짓고 현등사로 명명했다는 전설처럼 구름에 가린 바위산에 불을 밝혀 길을 열어주는 현등사가 있어 운악산 산길이 보다 환한 가 봅니다. 기암절벽이 빼어난 운악산은 산림청에서 명산100산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산세가 아름다워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린 다지만, 산행 중에 이 산의 빼어난 풍광에 넋을 빼앗겨도 좋을 만큼 녹녹한 길이 거의 없어 산행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아슬아슬한 산이기도 합니다.
아침8시48분 노채고개를 출발했습니다.
포천 일동에서 택시4대에 분승해 6구간 들머리인 노채고개로 옮겼습니다. 한 달 전 고개 마루를 두텁게 덮었던 그 많은 눈이 다 녹아 없어지자 맨 흙이 그대로 보여 이 길이 아직은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임이 드러났습니다. 배수구를 따라 오른쪽 위로 난 가파른 길을 따라 절개지 위에 오른 후 왼쪽으로 꺾어 편안한 길을 따라 원통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골프장이 보이는 능선 길에서 뒤돌아본 청계산은 노채고개 너머로 작아 보였지만 정상 삼각봉의 예리함은 여전했습니다. 기온이 영하에서 머물러 살갗에 와 닿는 공기는 냉랭했지만 하늘이 쾌청했고 바람이 불지 않아 산행하기에 좋았습니다.
9시23분 해발 567m의 원통산을 올라 숨을 돌렸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4년 전에 서있었던 각흘산악회의 낡은 표지목은 보이지 않고 삼각점 혼자서 이 봉우리를 지키고 있어 텅 빈 정상이 그 때보다 더 쓸쓸해 보였습니다. 7-8분을 이 봉우리에 머물면서 호흡을 가다듬은 후 운악산을 향해 남진했습니다. 첫 번째 내려선 사거리 안부를 지나며 일행들에 이 고개가 구 노채고개라 일러주었는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아무래도 성황당 잔해가 남아 있는 다음 사거리 안부가 맞는 것 같아 바로잡고자 합니다. 1시간을 걸어 커다란 소나무와 참나무들을 솎아낸 간벌지 능선에 도착해 10분 여 쉬는 중 전날 저녁 군포성당에서 특전미사를 드리고 나서 본 SBS의 녹화프로그램이 생각났습니다. 카톨릭 성지인 미리내 일원에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간벌을 핑계대고 멀쩡한 자연목을 마구 베어낸 산림현장을 고발한 환경보전프로그램으로 이 프로를 보고나서 서로 부대끼지 않고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간벌해서 솎아내야 할 것은 산속의 나무들이 아니라 자연림의 거목들을 마구 베어내도록 눈감아준 관련공무원들이다 싶었습니다. 선두에 나선 제 뒤에 바짝 붙어 다시 50분을 부지런히 걸었어도 힘들어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은 한 친구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그동안 우리 팀의 산행시간이 이 친구에 좌우될 정도로 주력과 지구력이 모두 달렸는데 어느새 몰라보게 좋아져 산행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11시33분 커다란 암봉 바로 앞 양지바른 능선에서 또다시 쉬었습니다.
난코스의 암봉을 우회하는 갈림길이 멀지 않은 것 같고 전체적으로 산행속도가 빨라져 좀 쉬어가도 시간운용에 문제없을 것 같아 배낭을 벗고 마음 놓고 쉬었습니다. 산행 중에는 힘이 들어 나누지 못하는 이런 저런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마음 놓고 나눌 호기가 바로 퍼지고 쉬는 시간이어서 아무리 길게 잡아도 짧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휴식시간입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삼거리 우회길이 나타날 것이라는 제 기억이 곧바로 나타난 암릉 길이 좀처럼 끝나지 않음을 보고 맞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4년 전에 한 번 밟은 암릉 길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이 혹시라도 다시 무자년을 맞는 나이테의 두께 때문인가 걱정을 했는데 동행했던 저보다 몇 살 아래 후배사장도 마찬가지인 것을 보고 바뀐 계절 때문이구나 하면서 안심했습니다. 암릉 길 두 곳을 뒤따라온 친구와 후배사장의 도움을 받아 통과해 고사목이 서있는 전망바위에 다다르자 과연 운악산이다 싶을 정도로 자나온 암릉코스가 아기자기하고 주변 산세가 수려해 보였습니다. 12시 20분 경 거대한 암봉 바로 앞의 갈림길에 도착해 아이젠을 꺼내 찬 후 엄청 가파른 오른 쪽 우회 길로 로프를 잡고 내려섰습니다.
12시50분이 다 되어 아기봉에 조금 못 미친 능선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급경사 우회 길을 내려갈 때 혹시나 필요할 지도 몰라 준비해간 20m보조자일은 내려가는 길에 가느다란 로프 줄이 걸려 있어 꺼내 쓰지 않았습니다만, 우회하지 않고 암봉을 바로 넘으려면 20m로는 짧고 30m는 되어야한다는 것이 먼저 종주한 분들의 의견입니다. 두 개의 거대한 암봉을 오른 쪽으로 에돌아 다시 한북정맥의 마루금에 올라서자 이제 난코스는 끝났다 싶어 안심되어서인지 점심상이 다른 때보다 훨씬 더 풍성해 보였습니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병풍바위가 선명하게 보여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13시40분경 자리를 떴습니다.
14시20분 해발935.5m의 운악산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애기봉을 막 지나 서쪽 아래 운주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해 눈이 녹지 않은 가파른 계단 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포천군에서는 첫 번째 오른 서봉에 정상석을 세웠지만 운악산의 주봉은 서봉에서 조금 떨어진 동봉이라 하는데 동봉의 표지석에 산 높이를 937.5m로 잘못 새겨 넣어 지형도에 나와 있는 해발고도 935.5m와 차이가 났습니다. 동봉에 세워진 표지석 뒷면에 백사 이항복의 시 한 수가 새겨져 있어 한 구절을 옮겨 왔습니다.
遊人不道姓 노는 사람들 성을 말하지 않았는데
怪鳥自呼名 괴이한 새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
스스로 이름을 부르는 새를 괴조라고 표현한 백사께서 금강산 바위에 새겨진 김일성-김정일 찬가를 보았다면 틀림없이 놀라 자빠졌을 것입니다. 정상에서 얼마 내려가지 않아 능선 왼쪽에 자리한 남근석 바위가 보였고 이 남근석을 사진 찍기 편하도록 남근석촬영소라는 안내판을 세워놓고 쉼터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생산력이 월등한 남자들이 더 대접을 받았던 농경사회에서는 아들이 많아야 부자가 될 수 있기에 아들을 여럿 낳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을 남근석 바위는 바로 부와 풍요의 상징이어서 어귀에 남근석을 세워놓은 동네가 여기 저기 꽤 많았나 봅니다. 왼 쪽 현등사로 내려서는 절고개에서 한 여성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랐는데 크게 다친 곳이 없다하니 크게 다행이었습니다.
15시6분 하얀 눈이 덮인 넓은 공터에서 십 분여 쉬었습니다.
절고개에서 825봉을 향하여 직진해 오르다 중간에 오른 쪽으로 우회했습니다. 철암재로 내려가는 길은 급했고 누군가 나무에 로프를 엮어 망을 만들어 놓아 바위를 내려서기가 수월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서 만난 철암재는 안부사거리로 오른 쪽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이 잘 나있어 일행 중 한 명은 혹시 그 길이 정맥 길이 아닌 가해서 제게 물어왔습니다. 철암재에서 10분가량 걸어 헬기장으로 보이는 공터에 올라서보니 햇빛이 잘 드는 이 공터에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남은 먹거리를 꺼내 든 후 을씨년스러운 채석장이 잘 보이는 아기봉 갈림길의 바위 위에 올라섰습니다.
16시37분 윗봉수리의 47번 국도변에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아기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확 꺾어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자 안부로 내려섰다가 별로 높지 않은 649봉으로 올라서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한참을 내려가 군부대의 철조망 울타리를 지났습니다. 마루금은 부대 안으로 들어가 버려 이어가지 못하고 울타리에 바짝 붙어 산허리를 오르내리다 47번 국도변으로 내려서 예정보다 1시간 일찍 6구간 종주를 끝냈습니다.
대성산 남쪽아래 수피령을 출발해 운악산을 지나기까지 그동안 꽤 많은 고봉들을 오르내렸습니다. 복계산, 복주산, 회목봉, 상해봉, 광덕산, 국망봉, 견치산과 민둥산은 그 높이가 모두 천미터를 넘는 고산들이고, 백운산, 도마치봉과 운악산은 9백미터를, 강씨봉과 청계산은 8백미터를 상회합니다. 산 높이가 이 정도 되는 정맥 길이라면 주변 산세가 웬만한 대간 길에 못지않습니다. 이러한 정맥 길이 서울에서 가까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하루치기로 종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운악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8백미터를 넘는 고봉을 정맥 길에서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고산들을 남들보다 더 힘들게 오르내리며 체력을 강화해온 이기후동문은 그 서운함이 남다를 것입니다. 이 친구의 몰라보게 좋아진 주력이 이번 산행을 예정보다 1시간 빨리 마칠 수 있도록 했는데, 이제 남은 구간에는 도봉산, 수원산과 죽엽산을 뺀다면 진땀을 흘리며 오를만한 이렇다 할 고산이 없으니 말입니다. 남은 구간 종주로 얻게 될 은근과 끈기가 일반산행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저희들은 한 달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한북정맥의 마루금을 이어갈 것입니다.
<산행사진>
운악산(1)
*산행일자:2004. 5. 26일
*소재지 :경기포천
*산높이 :936미터
*산행코스:약수터-노채고개-원통산-운악산-철암재-47번국도
*산행시간:9시25분-17시28분(8시간3분)
*동행 :경동동문 함기영/정병기
점이 모여 선을 이루듯 모든 산맥은 산들이 모여 만들어집니다.
대성산의 수피령에서 시작하여 47번 국도에 다다를 때까지 수많은 산들을 넘었습니다. 복주산, 회목봉,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견치산, 민드기봉, 강씨봉, 청계산, 원통산과 운악산등 이름 있는 산들만 10개를 넘게 올랐는데 앞으로 종주할 산들과 이들을 모두 모으면 한북정맥이 되고 이 산들을 모두 이은 선이 한북정맥의 마루금이 됩니다.
1969년 대학 2학년 때부터 즐겨 산을 탔지만 본격적으로 몇 개의 산을 이어서 “선의 산행”을 한 것은 작년부터이고 그 전까지는 주로 어느 한 산을 정하여 오르내리는 “점의 산행”을 해왔습니다. 제 경우 1997년까지는 “점의 산행”도 몇 개의 산에 집중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는 서울근교의 몇 개의 산들을 제외하고는 혼자 오르는 것을 감히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1998년 1년간 몸담고 있는 대학교에서 안식휴가를 얻은 친구와 더불어 경기도의 1,000미터를 넘는 산들에 도전하면서 점의 수를 늘렸고 작년부터는 안내산악회를 따라가고, 저 혼자서 몇 개의 산들을 연속해 오르내리며 “선의 산행”을 시도해왔습니다.
“점의 산행”이나 “선의 산행”이나 어느 산행이 더 가치가 있다거나 더 어렵다고 예단할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 “점의 산행”이 짧은 시간에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소모한다면 “선의 산행”은 은근과 끈기를 더욱 필요로 하기에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고, “점의 산행”이 아기자기한 계곡등반을 즐길 수 있다면, “선의 산행”은 산마루에서 주위의 정경들을 조감할 수 있기에 기쁨을 느낍니다. 제게는 한북정맥의 종주가 “점의 산행”이 쌓여 “선의 산행”으로 발전한 결과이기에 뜻깊은 것이며, 수 년 내에 백두대간을 종주하여 “선의 산행”의 결실을 맺고자 합니다. 물론 그 사이 사이 “점의 산행”도 계속하며 해외의 고산을 트레킹하는 즐거움도 맛 볼 뜻입니다.
어제는 경동OB산악회의 함 기영회장및 정 병기후배와 함께 8시간에 걸쳐 한북정맥의 일곱 번째 구간인 노채고개-원통산-운악산-47번국도의 10키로 남짓한 코스를 뛰었습니다. 먼저 다녀온 분들의 산행기에 운악산의 산세가 매우 험하여 몇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반드시 자일을 휴대하고 산행을 해야 안전하다고 적혀 있어 함 회장에 지원을 요청, 이번 코스를 함께 뛰게 된 것입니다. 이들 지원군의 일정에 맞추느라 먼저 밟아야 할 청계산-노채고개의 구간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한북정맥의 여러 산 중 가장 험난하다는 운악산을 함께 올랐습니다.
일동에서 노채고개 약수터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9시25분 약수터를 출발하여 그 15분 후에 해발 360미터대의 노채고개에 다다랐습니다. 9시40분 원통산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쉽게 찾아 쉼 없이 능선 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어제는 흐린 날씨로 하늘이 활짝 열리지 않았지만 땡볕을 피할 수 있어 산행을 하기에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하루였습니다. 원통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흙 살이 촉촉하고 부드러워 걷기에도 좋았습니다.
10시14분 해발 547미터의 원통산을 올랐습니다.
각흘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을 배경으로 동행한 두 사람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능선 길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전진했습니다. 영신동으로 하산하는 첫 번째 안부를 지나 강동구갈림길까지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내림 길이 생각보다 경사가 급해 스틱을 꺼내들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11시3분 일명 또 하나의 노채고개로 불리는 두 번째 안부인 해발 360미터대의 강동구갈림길에서 목을 추기며 숨을 골랐습니다. 노채고개를 떠난 지 1시간 23분만에 여기에 도착한 저희들의 주행속도는 그래도 빠른 편이어서 이 속도라면 오후 4시안에 47번 국도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 잠시라도 편히 쉬었습니다. 쉬는 동안 다른 몇 분들의 산행기를 다시 읽고 나서, 가능한 한 위험한 암벽등반을 피하고 우회 길이 나있으면 그 길로 안전하게 산행하기로 뜻을 모은 후 강동구 갈림길을 출발하여 고도를 조금씩 높여 갔습니다.
5월초 수피령에서 하오현까지 산행을 할 때만 해도 산마루에 만개한 이런 저런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오가는 이들의 눈을 끌었는데 이제는 그 자리를 신록의 숲에 물려준 듯 나도양지꽃과 현호색을 제외하고는 다른 야생화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스스로가 4-5시간용 무릎이라 생각하여 장시간 산행을 자제한 함 회장이 스틱을 시험 사용한 후 내린 결론이 내리막길에서는 스틱을 사용하고 오름 길에서는 주인에 되돌려 주는 것이어서 주인인 정병기후배가 짜증이 날만도 한데 군소리가 없는 것은 오로지 함회장의 인격 때문만 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의심도 갔습니다.
12시16분 해발 560미터대의 안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토스트와 김밥, 그리고 후식으로 오렌지를 맛있게 먹었으며, 오후 간식을 위하여 토스트와 김밥을 조금씩 남겨 놓았습니다. 긴장을 풀고서 이런 저런 방담을 나누는 느긋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12시 38분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 오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름 새도 급한 바위 길을 몇 번이고 올라 다다른 바위전망대로 추정되는 해발 680미터대의 산마루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추긴 후 비지땀을 흘리며 계속해 산을 올랐습니다. 운악산의 서봉이 지척의 거리로 가까워지고, 높다란 봉우리의 병풍바위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13시28분 병풍바위를 바로 앞에 둔 해발 780미터대의 능선에서 병풍바위 쪽으로 직진하는 방향과 오른쪽의 운주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모두 표식기가 걸려있어 어느 길로 가야할지 판단이 잘 안 섰습니다. 직진하여 준비해온 자일로 병풍바위를 넘을 것인가, 아니면 하산길일지도 모를 우측 길로 들어서 우회할 것인 가를 결정하고자 서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결국 산행기를 다시 자세히 읽어본 후 우측의 길이 우회로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섰고, 제가 스트링을 갖고 오지 않아 보조자일이 짧을 것 같다는 함 회장이 염려도 있어 준비해 온 자일을 쓸 일이 없어 아쉽지만 우측 길로 들어서 병풍바위를 우회하기로 최종결정을 했습니다.
13시 43분 능선을 출발하여 까까비탈의 길을 5-60미터 내려가니 병풍바위를 끼고 도는 우회로가 왼쪽으로 나있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두 개의 산줄기를 넘어 다시 해발 830미터대의 주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그 동안 그토록 걱정해왔던 병풍바위를 27분만에 완전히 트래파스하고 나니 이번 산행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둥바위에 조금 못 미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쉬는 동안 함 회장이 울산에 머물고 있는 이 규성 동문에 성공적인 산행을 알렸습니다. 운악산에서 먼저간 어떤 분의 죽음을 기리는 묘비석이 서 있는 기둥바위를 지나 운주사행 갈림길에 다다르자 5년 전에 저 혼자 힘들게 오른 길이 눈에 익어 반가웠습니다.
14시 55분 운악산 정상인 해발 936미터의 만경대에 올라섰습니다.
방금 지나온 서봉에서 만난 어느 젊은 두 분에 병풍바위를 우회하는 길을 생생하게 안내해 주고 나니 노채고개에서 5시간 15분을 걸어 여기 만경대에 오른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햇빛을 가릴 나무가 전혀 없는 만경대정상을 서둘러 내려와 가까운 숲길에서 등정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15시 15분 47번 국도로 이어지는 하산 길을 찾았습니다.
어느 분의 안내대로 포천방향으로 2-3분 전진하니 그 길은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인 듯 싶어 다시 돌아와 현등사 길로 하산했습니다. 길섶에 피어 있는 둥굴래 꽃망울이 입을 벌리지 못한 채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근접촬영으로 카메라에 옮겨 담았지만 사진솜씨가 신통하지 못하여 제대로 재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현등사길과 헤어지는 절고개를 지나 하산속도를 올렸습니다.
15시53분 해발 610미터대의 철암재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고르며 아기봉 갈림길까지의 오르막길을 타기 위해 남아 있는 힘을 모두 모았습니다.
16시 18분 해발 700미터대의 아기봉 갈림길에 올라 남은 김밥과 토스트로 배를 채웠습니다. 가평쪽으로 들어선 채석장이 남동사면의 운악산을 갉아먹고 있어 보기에도 흉물스럽고 공해도 대단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으며 채석장을 허가한 가평군에서 얼마나 제대로 된 환경평가를 했을 까 의심이 갔습니다.
16시 33분 다시 하산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이어진 급경사의 하산 길을 스틱의 도움으로 엉덩방아 한번 찧지 않고 잘도 내려왔습니다. 군부대의 철조망울타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해 걸어 47번 국도의 구도로에 내려서니 3중대하차지점이 나타났습니다.
17시 28분 47번 국도의 3중대 하차지점에 도착함으로써 한북정맥 제 7구간인 노채고개-원통산-운악산- 47번국도의 긴 코스를 8시간만에 마쳤습니다. 윗봉수로 이동하는 중 만난 상봉터미널 행 버스를 집어타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모두들 선약이 잡혀있어 간단한 뒤풀이도 갖지 못한 채 과천에서 헤어지는 바람에 산행이 끝나면 빼놓지 않고 마시던 맥주도 건너뛰었습니다.
“점의 산행”을 “선의 산행”으로 옮겨가면서 최근에는 나 홀로 산행이 잦아졌습니다.
나 홀로 산행도 나름대로 멋과 맛이 있어 앞으로도 계속할 뜻입니다만, 어제처럼 지우 들과 오랜 추억을 반추하며 마루 금을 밟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이기에 가능한대로 주선해 볼 생각입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뛰어준 함 기영, 정 병기 동문에 감사드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동행 :경동동문 함기영/정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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