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독서산책(No.242- )
339.혈의 누
*이인직 저/문학과 지성사 간(2007)
*이인직의 “혈의 누”를 읽지 않고 우리나라 현대문학을 논할 수 없는 것은 이 소설이 한국최초의 신소설이기 때문임. 소설의 구성이나 스토리가 현대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는 많이 엉성해 보일 것이지만 우리나라 소설이 이 단계를 거쳐 발전된 결과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녀에게”라는 신체시를 발판으로 현대시가 만들어진 것과 같은 과정을 겪었음. 청일전쟁으로 부모와 헤어진 이산가족 옥녀는 일본인 장교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유학 가서 공부하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며 다시 조선인 유학생 구완서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마친 후 귀국해 부모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 주 내용이며, 여기저기 일본에 대한 긍정적 생각을 갖게 하는 부분들이 눈에 띄어 거슬렸음. 동경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을사오적이 대표격인 이완용의 비서로도 일했던 저자이기에 조선이 개화된 일본의 도움이 꼭 필요하리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신소설의 최초 작가가 친일인사라는 데는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음. “혈의 누” 외에 “귀의 성” 및 “은세계”도 같이 실렸는데 감동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이 들음. 본격적인 한글소설이라는 데 얼마간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임.
*2009. 11. 27일
338.과학을 배반하는 과학
*에른스트 페터 피셔 저/전대호 역/해나무 간(2009)
*“오류는 인간적이다”라는 한 라틴어 경구처럼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고 또 잘 못 아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되는 과학지식을 바로 잡고, 우리시대에 걸맞은 교양으로서의 과학을 보여주고자 독일의 과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대중들에 내놓은 저서가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임. 과학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100가지를 바로잡고자 애쓰는 저자의 노력은 상식에의 맹신을 극복해야 가능한 것으로 읽기 전에는 과연 그럴까 하다가 한 번 읽고 나면 통쾌함도 느껴지기도 함. 조지프 슘페터에 의해 처음으로 제시된 혁신이 성장과 어울리는 한 쌍으로 여겨온 혁신광들에 새 것은 존재하자마자 곧바로 옛것이 된다는 내재된 모순을 일깨워 주며 그래서 새로움보다 좋음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한 때 기업을 경영하며 혁신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던 나로서는 절로 고개가 끄떡여졌음. 알을 낳은 수탉을 극악하고 반자연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산채로 불태우는 극형을 처한 것이 서양이라면 이 이례적이고 두려운 현상을 하늘의 조치로 여기기에 황제나 그 지역 통치자가 수탉대신 위험에 처하는 것이 중국이라 비유한 것은 저자의 동양문화에 대한 앎이 대단함을 보여주는 사례임. 상식의 과학을 배반하는 저자의 과학이 보다 많은 대중들에 널리 알려지기를 희망하며 책읽기를 마쳤음.
*2009. 11. 21일
337.무화과
*염상섭 저/동아출판사 간(1995년)
*850페이지에 이르는 장편소설 “무화과”는 비틀어졌으나마 꽃 속에서 나고 꽃 속에서 자란 부모 시대가 아닌 꽃 없이 난 무화과의 시대를 살아온 작가가 자식의 일생을 꽃 속에서 기르고 싶어 쓴 작품이라고 작가의 말에 언급되었음. 횡보 염상섭의 문학세계가 교활한 현실과 복잡한 인간을 그리는데 있다면 “무화과”는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그의 전 작품 “삼대”의 후편으로 불리고 있음. 평론가 류보선이 지적한 대로 “무화과”는 한마디로 돈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각축장으로 악인 김홍근의 등장으로 재미가 더해졌으니 작가의 악역묘사가 어느 작가보다 철저했다는 생각임. 사회주의 운동을 하거나 지원을 해 검거되고 풀려나는 것은 보조적 장치일 뿐 철저하게 속물 부나비들이 어떻게 돈을 탐내 덤벼드는 가를 세심히 보는 것이 이 소설을 재미있게 그리고 작가와 만날 수 있는 독서법이라는 생각임. 사실적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당대의 교활한 사회상을 복잡한 인간들을 등장시켜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임.
*2009. 11. 14일
336.안중근 평전
*김삼웅 저/시대의창 간(2009)
*1879년 황해도 해주부에서 태어나 1910년에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1909년10월26일 하얼빈 역에서 국적1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지 100년을 맞는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안중근 의사의 족적과 사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안중근 평전”을 사 읽은 것은 의미 깊다 하겠음. 저자 김삼웅씨가 좌파세력의 리더급이어서 주저되기는 했으나 안중근 의사가 활동하던 때는 공산주의가 한반도에 뿌리박기 전이어서 관계없을 것 같았고 한편 좌파에서 안중근 의사를 어떻게 평가하나도 알고 싶어 사 보았으나 좌파의 색채는 전혀 띄지 않아 다행이다 했음. 상무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역설한 안중근 의사는 러일전쟁시까지도 친 일본적이었던 것은 일본이 서구세력을 구축하고 동양평화를 위해 매진할 것이라 믿어서인데 을사늑약 강제 체결을 보고 생각을 바꾼 것으로 판단됨. 이토 히로부미가 동양평화의 장애물이라고 판단한 안중근 의사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임에도 대의를 위해 암살을 감행하는 데 다른 테러리스트와 대별되는 점은 목적한 바 대의가 숭고하고 고매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임. 청년 안중근은 부친을 도와 동학도들을 진압한 것과 안중근의사와 세 살 위인 김구선생과의 인연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음.
*2009. 11. 12일
335.눈의 지혜
*마가레테 브룬스 저/조이한-김정근 역/영림카디널 간(2009)
*신문의 서평에 끌려 산 이 책은 미술을 공부하거나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는 일독을 권할 만한 책임에 틀림없지만 이 분야 문외한인 내게는 읽어 이해하기에는 내내 버거운 책이었음. “눈의 지혜‘라는 책 제목이 어떻게 이 책의 주테마인 형상을 드러내는지는 몰라도 알타미라 동굴벽화 및 왕희지의 서체 등 세계 여러 문화 속에 존재하는 여러 형상들을 끌어내 설명하고 해석하는 미학서적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음. ”형상은 현실을 찍어낸 것이 아니라 그저 형상일 뿐이라는 저자는 형상은 진실될 필요도 없고 아름다울 필요도 없으며 선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악한 것을 행하거나 허용하거나 보여줄 경우에도 자신을 정당화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창조하는 신과는 대조되는 점이라 맺었음. 형상이 시각의 시대적 반영이라면 형상을 꿰뚫는 눈의 지혜가 어떤 것일까 새삼 궁금증이 일기도 했음. 형상은 보이고 신은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둘 다 인간들의 어떤 판단에도 요지부동인 것이 같은 점이라고도 했음. 기회 되면 다시 읽어 이해도를 높여볼 생각임.
*2009. 11. 8일
334.지리산
*최화수 저/김근원 사진/대원사 간(1999)
*지리산을 개관하는데 이만큼 유용한 책도 드물 것이다 하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전문 산악인이 아니고 기자여서 산은 잘 소개했지만 산행소개는 등산로 외에 소개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임. 이는 이 책이 지리산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조금씩 다 소개하려다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임. 지리산이 사람의 산이자 신앙의 산이고 아픔의 산이자 생명의 산이라는 관점에서 글머리를 시작한 것은 동감 하는 바가 큼. 1948년에서 1955년까지 빨치산의 주 활동무대가 지리산이었기에 1970년 내가 처음 지리산에 올라갔을 때 파출소에 가서 입산신고를 해야 했으며 그 당시에는 벽소령에 군부대가 주둔하기도 했음. 인문지리 내용이 자연지리보다 읽을거리가 많아서인지 이 책의 1/3 이상이 인문지리내용을 담고 있음. 자연의 보존과 이용의 상반된 과제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는 이 책이 던진 화두이기도 하지만 어느 한 쪽의 목소리가 과다하게 커서는 이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생각임.
*2009. 11. 1일
33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이윤기 역/열린책들 간(2009)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이 소설은 “희랍인 조르바”라는 제목으로 박이문교수가 번역해 1972년에 창간된 문학사상의 창간호에 실려 꽤 오래 연재된 소설로 창간호를 포함해 몇 번 읽었으니 이 소설을 완독하는데 무려 37년이 걸린 셈임.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작가 니코스 카잔스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그리고 니체와 붓다의 철학을 섭렵한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자유였음. 작가의 자유사상을 잘 표현한 소설이 바로 그리스 인 조르바로 조르바는 실존인물로 허위를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살다간 그리스인이라함.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저자에게 문학은 존재와의 거대한 싸움터였다 함. 모든 허위의식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조르바를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며 조르바의 생각과 삶을 옮겨 놓는 소설 속의 나는 책 장이로 책속에서 삶의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나와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음. 작가의 거침없는 문체도 마음에 들었으며 두 번씩이나 노벨상 후보자로 오를 만큼 한번 잡은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했고 국내작가들의 소설보다 더 힘이 느껴졌음.
*2009. 10. 30일
332.유림(4)-백화제방/선함에 이르는 길
*최인호 저/열림원 간(2006)
*예수의 가르침이 바울에 의해 체계화되었다면 공자의 가르침은 맹자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것이 세평인 듯함.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550여년 간 189종의 사상적자유시장이 열렸다는 것은 중국 말고 어떤 나라가 이런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나 나는 알고 있지 못함. 사상적 자유시장에서 활약한 제자백가들 중 맹자가 단연 돋보이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을 살려 성선지설을 주창했기 때문이지만 이에 덧붙일 것은 순우곤, 묵자, 양주 등의 제자백가들과의 논쟁을 승리로 이끌어 공자의 유학을 계승 발전시켰다는 것임. 맹자의 성선설은 인의 측은지심, 의의 수오지심, 예의 공경지심과 지의 시비지심 등 사단지심에서 비롯된 것임. 맹자는 인의예지는 외부에서 녹아든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해 성선설을 뒷받침했음. 성선설에 대응되는 성악설은 맹자보다 몇 십 년 늦게 태어난 순자에 의해 주창되는 데 작가 최인호는 성선설과 성악설은 서로 대립되어 불용되는 것이 아니고 유학의 양 날개로 보아 어는 하나만으로는 웅비가 안 된다고 보았음. 대중소설작가라고 폄훼하고 이분의 작품들을 애써 외면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끼는 것은 언제 유학을 공부하고 소화해 일반 독자들에 길안내를 할 수 있게 되었나 하는 점임. 총6권으로 간행된 유림의 마지막 권으로 본 이 책을 통해 맹자를 만나본 것은 반갑고 기쁜 일이었음.
*2009. 10. 27일
331.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박완서 저/웅진닷컴 간(2003)
*1931년생의 작가가 성숙한 처녀에서 시집가기까지 겪은 것들을 그린 자화상으로 이때가 마침 한국전쟁 때여서 전쟁을 증언하는 소설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임. 이 책을 읽으면서 앞서 읽은 영국의 전쟁 사학자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내전이 자꾸 떠 오른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전쟁도 스페인내전과 마찬가지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이 싸운 내전이기 때문이었음. 내전을 치루며 북에 치이고 남에 치이는 민초들이 특히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고 오빠를 잃은 당시 여성들이 어떻게 전쟁을 치렀으며 또 어떻게 입에 풀칠을 했는가를 이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었음. 소설 속에 천재화가 박수근 화백이 먹고 살기 위해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장면이 나오는 데 비범한 화가의 평범한 생활이 상당한 고통이었겠다 싶고 실제 박수근의 작품은 국내에서 그 진가가 인정받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고 미국인에 의해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함. 분노할 만한 상황들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하게 관조하며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이 카프계열의 작가들보다 훨씬 돋보인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임. 이청준 선생과 박경리선생 두 분이 작년에 타계하신 후 부쩍 박완서님의 작품들을 찾아 읽는 것은 연륜과 휴머니즘을 같이 느낄 수 있어서임.
*2009. 10. 21일
330.스페인 내전
*앤터니 비버 저/김원중 역/교양인 간(2009)
*1936년 발발된 스페인 내전은 35만명의 사망자와 50만명의 외국망명자 및 30만명의 수감자를 낳은 채 1939년에 끝난 참혹한 내전으로 이 내전의 원인과 진행 경과 및 종전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이 책이 전하고 있음. 이 책이 내게 던진 질문은 인간은 개인차원이 아닌 집단으로서 움직일 때 과연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행하는 가였음. 이 책을 읽고 나서 불행히도 나는 인간은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이성이 아닌 광기가 지배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음. 최고의 지성인으로 불릴만한 조지 오웰, 앙드레 말로, 어네스트 헤밍웨이 및 에즈라 파운드 등의 유명 작가들도 공화진영 정부를 지원하고자 기꺼이 참전했다가 배후세력인 볼세비키 세력의 음흉함을 간파하고 지원의 손길을 거두는 등 갈팡질팡한 이 내전에 쿠테타를 일으킨 국민진영이 옳았느냐 아니면 합헌정부인 공화진영이 옳았느냐를 따지기가 70년이 지난 지금도 힘든 일이거늘 당대의 국민들은 판단하기가 정말로 지난했을 것이라는 생각임. 두 세력 모두 나치즘과 볼세비키즘에 기대어 전쟁을 이끌어갔고 어느 세력도 반대진영의 국민들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갔기에 스페인 내전의 역사적 책임은 두 세력의 지도자들이 같이 져야 한다는 생각임. 이에 비견할 만한 내전이 바로 한국전쟁인바 1950-53년 3년간 우리 국민이 치른 한국전쟁도 그 참혹함이 스페인 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아 이 책을 읽으면서 어째서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스페인내전에서 역사적교훈을 읽지 못했을까 안타까움과 분노를 같이 느꼈음. 한국전쟁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국제전 성격을 띤 것도 스페인 내전과 유사하다는 생각임. 하나 확실한 것은 소련이 개입된 전쟁은 궁극에는 공산진영의 패배로 귀착되었는바 이는 국민을 위해서가 아닌 공산당 그 세력들을 위해서 전쟁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임. 북한문제를 놓고 좌파와 우파가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재도 걱정되는 바가 큰데 이 책이 시사하는 바를 정치지도자들이 읽고 깨달았으면 하고 바랄 뿐임.
*2009. 10. 20일
329.탈출기/낙동강/질소비료공장/군중정류
*최서해, 조명희, 이북명, 송영 저/두산동아 간(1997년)
*1925년-1935년의 일제강점기 중 활발하게 활동한 문예단체는 카프(KAFF)라 불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진보적 단체였음. 카프 계열의 작품을 발표한 최서해의 "탈출기", 조명희의 "낙동강", 이북명의 "질소비료공장"과 송영의 "군중정류"등 대표작품들과 다른 몇 작품을 함께 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일제시대 때 우리 어르신들이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가를 생생하게 느꼈고 또 하나 카프계열의 작가들이 사회문제를 들춰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작품의 완성도는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음. 송영의 "늘어가는 무리"에서 주인공 승오의 동경에서의 행적이 그려졌는데 "그는 이제까지 석달동안에는 최고의 이상이 밥벌이요, 최대 환희가 밥먹을 것이요, 최대고통이 밥없는 것이었다"라고 묘사되었음. 이처럼 먹고사는 1차적 과제가 너무 긴박한 상황에서 카프계열의 저항문학이자 리얼리즘 소설이 태동된 것은 당연했다는 생각이나 카프계열 작가들의 지나친 상황몰입으로 분노는 있어도 감동이 적은 소설이 쓰여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임.
*2009. 10. 16일
328.천마총 가는 길
*양귀자 저/동아출판사 간(1996)
*작년 가을 사고로 허리 수술을 받은 후 등을 눕히고 책을 읽느라 읽기 쉬운 소설을 많이 사보았는데 동아출판사에서 간행한 "한국소설문학대계" 전집이 내게 적격이었던 것은 우선 헌책방의 책값이 권당3천원으로 엄청 쌌고 또 하나는 지금은 잊혀져 거의 읽히지 않는 옛날 작다들의 작품을 사볼 수 있어서였음. 이번에 사읽은 "천마총 가는 길"의 작가 양귀자는 1955년생으로 그간 읽어온 작품들의 작가들에 비해 현대작가 축에 들었고그래서 이 작가가 생생하게 그려낸 1980년대의 신흥도시 소시민들의 삶을 30여년이 지난 현재에서 되돌아 보며 함께 나의 삶도 되돌아 보았음. "천마총 가는 길"의 일부 고문 묘사부분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이야기가 일체 배제된 작품들이며, 특히 원미동에서의 삶의 묘사가 여러 유형의 소시민들이 겪는 애환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어 공감하는 바가 컸음. 스탕달이 이야기했듯이 소설이 거리의 거울이라 한다면 작가의 거울이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원미동 골목에 걸어봄직했다는 생각임.
*2009. 10. 11일
327.순수이성비판
*이마누엘 칸트 저/윤성범 역/을유문화가 간(1975)
*30년이 훨씬 넘도록 처박아둔 철학서를 다시 꺼내 읽기를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무슨 수가 있어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간 이러한 시도를 몇 번 했지만 결국 중간에 책을 덮었기 때문임. 일단 끝까지 읽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중도에 책을 덮은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되어 그간 내가 쌓은 지식이 참으로 별것 아님을 확인했을 뿐임. 로크나 흄 등에 주도된 영국철학의 경험론에 대응되는 독일철학의 관념론을 정립한 철학자인 칸트는 1724년에 태어나서 1802년에 작고한 분으로 이 분의 활동 시기는 조선조 르네상스 시기인 영-정조 때가 됨. 이 책은 크게 선험적 원리론과 선험적방법론으로 대별됨. 선험적 원리론은 선험적 감성론과 선험적 논리학으로 나뉘며 선험적 논리학은 다시 선험적 분석론과 선험적 변증론으로 소분됨. 이 책에서 언급되는 순수이성비판은 인간의 견식을 확장하기 위하여 이성능력의 범위, 내용, 그리고 한계를 한정하려는 것이라 함.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용어는 선천적 또는 선험적 의미로 쓰인 아프리오리와 그 반대의 뜻으로 쓰인 아포스테리오리임. 기억하고 싶은 내용으로 이성에 관한 것이 있어 여기 옮겨 놓고자 함. 이성의 일체의 관심은 그것이 사변적관심이든 실천적 관심이든 다음 세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으니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나,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되는 가, 마지막으로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 가로 첫째 질문은 사변적인 문제이고 둘 째 질문은 실천적인 문제이며 셋째 질문은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문제로 이 책은 적고 있음. 이번 독서는 그저 꾹 참고 끝까지 다 읽었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는데 다시 한 번 이 책에 도전해볼 생각임.
*2009. 10. 8일
326.유림(5)-격물치지/바름에 이르는 길
*최인호 저/열림원 간(2008)
*도산서원 탐방기 작성을 위한 유림 탐방은 퇴계 이황선생에 이어 율곡 이이선생을 이어졌음. 도산서원으로 이사 가기 전 퇴계 선생께서 머무르셨던 계상서원으로 선생을 찾아가 사흘을 묵으면서 두 분이 서로 나눈 대화가 전해지는 것은 없으나 율곡 이이는 이 탐방을 계기로 잠시 외도했던 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유학으로 되돌아오는 전기가 되었으며 또 평생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고 퇴계는 문하생 월천에 보낸 서신처럼 후생가외를 느낀 율곡 이이에 얼마 후 한 때 잘못은 잊어버리고 이제 궁향에서 벗어나 유학에 매진하라는 위로의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함. 퇴계 이황선생께서 내려준 한 말씀 “거경궁리(居敬窮理)”에 힘써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이룬 것이 율곡 이이가 퇴계 이황을 만난 최고의 결실이라는 생각임. 거경이란 경에 머무른다는 뜻으로 사물에 이르러 그 이치를 궁구하는 격물에 이르기 위해서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며, 궁리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로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을 더욱 끝가지 이루어 궁리하는 치지를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 함. 다시 말해 사물이나 현상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이치를 탐구하여 나의 지식을 완전히 이룬다는 의미의 격물치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거경궁리가 필수적인바 이를 깨닫게 한 분이 바로 퇴계 이황이었으니 율곡 이이의 평생스승이라 할 만한 것임. 장원급제를 하게 만든 “천도책” 역시 거경궁리의 산물임. 이 책을 통해 유학자로서 율곡 이이를 엿볼 수는 있었으나 경세가로서의 면모를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음.
*2009. 9. 28일
325.유림(6)-이기이원론/겸양에 이르는 길
*최인호 저/열림원 간(2008)
*저자 최인호님은 “작가는 창조자가 아니라 통역자”라며 다만 “최선을 다할 것은 초자연의 존재가 불러주는 침묵의 언어를 오역 없이 받아쓰는 일”이라고 작가후기에 그의 의견을 피력했는데 이점에서 저자는 상당부분 성공한 작품이 이 소설이 아닌가 싶음. 공자나 퇴계 등의 성학(聖學)들이 초자연의 존재로 보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으나 3대성인의 한 분으로 추앙받는 공자의 말씀과 가르침을 오역 없이 통역해 나같이 유학에 별반 지식이 없는 이들에 보다 쉽게 유학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평가받을만하다는 생각임. “일지춘”, “사단칠정”과 “군자유종”은 퇴계선생에 관한 글이고 “유림”은 공자의 제자와 자제들의 활동을 적은 글로 이 책을 통해 유교의 완성자인 퇴계 이황선생의 이기이원론의 대강을 이해할 수 있었음. 후학인 고봉기대승과의 사단칠정에 대한 서간을 통한 논쟁은 퇴계 이황선생의 학문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열려 있는 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아날로그문화가 요즈음의 디지털문화보다 철학을 융성하게 하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관기 두향이 선생에 매화를 보냈고 선생은 이 매화를 매형으로 부르며 애지중지했다는 내용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픽션인지 알 수 없으나 플라토닉 러브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아 가슴 뭉클했음. 작가에 감사함.
*2009. 9. 22일
324.유림(3)-추로지향/군자에 이르는 길
*최인호 저/열림원 간(2008)
*이 책의 앞부분은 유림(2)에 이어 공자가 주유열국를 끝내고 기원전484년 노나라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타계할 때까지 활약상을 그렸고 뒷부분은 공자를 최고의 스승으로 모신 퇴계 이황선생의 관기 두향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추로지향을 상술했음. 앞부분의 주테마는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의미의 공자천주(孔子天珠)라 할 수 있는데 공자가 우리의 가슴에 빈 구멍을 무엇으로 메우고 꿰려는 가를 선생의 생애와 학문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음. 딱 9개월간 관기 두향과의 사랑은 퇴계선생이 단양군수에서 풍기군수로 전보됨에 따라 끝나지만 비록 만남 없는 사랑이지만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플라토닉러브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임. 공자의 귀향에 비견되는 것으로 퇴계선생이 관직을 저버리고 소백산을 넘는 것이라 했는데 이 고개를 넘음으로써 위인지학이 위기지학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지고 있음. 최고의 휴머니스트이자 유학자인 퇴계를 이렇게 만나본 것도 작가 최인호 덕분이라는 생각임.
*2009. 9. 19일
323.유림(2)-주유열국/사람에 이르는 길
*최인호 저/열림원 간(2008)
*도산서원탐방기를 쓸 자료를 준비하면서 퇴계 이황선생의 인간적인 진면목을 접해볼 뜻으로 소설가 최인호님의 작품 유림(3)을 읽다가 퇴계 이황선생이 존경해 마지않은 공자를 먼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 유림(2)을 사서 보았음. 이 책을 통해 3대성인의 한분인 공자는 다른 성인 예수나 석가모니보다 훨씬 인간적임을 느끼게 된 것은 선정을 베풀고자 열국을 주유하며 겪는 간난을 이겨내는 공자의 고뇌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임. 군자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달리 방법이 없다함은 우리네와는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목숨을 내던지고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 극복하는 예수나 석가모니와는 다른 것으로 보였음. 공자의 제자들 중 염유와 자로, 자공과 안회 등에 관한 인간됨을 알 수 있었고, 안회를 제외한 이들 제자들로부터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면서도 원칙을 지키느라 아무 군주나 부른다고 함부로 응하지 않음을 이해받지 못하는 아픔이 공자에게도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았음. 노자와 공자와의 만남이 퇴계와 율곡의 만남과 다른 것은 노자의 무위와 공자의 유위의 차이가 퇴계의 주리론과 율곡의 주리론의 차이보다 훨씬 컸기 때문으로 생각됐음.
*2009. 9. 18일
322.서양문화사
*민석홍, 나종일 공저/서울대학교 출판부 간(1997)
*얼마 전 미국의 라이샤워교수와 페어뱅크 교수 두 분이 같이 쓴 동양문화사를 읽고 나서 서양문화사도 마저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큰아들의 대학교재인 서양문화사가 집에 있어 꺼내 읽었음. 이 책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조감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과 숲의 관계를 쌍방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고마운 삼림욕장”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쓸 수 있었음. “고대세계의 성립과 발전”, “중세봉건사회와 그 문화”, “근대문화의 탄생과 절대왕정”, “근대시민사회의 성립”과 “현대사의 전개”의 5편의 큰 테마를 설정해 역사적 사건과 그 의미를 기술한 이 책으로 서양의 역사를 개관할 수 있었고 책 맨 뒤의 서양사 연표는 우리역사와 비교할 수 있어 유용하게 쓸 것임. 350만 년 전에 이 지구에 나타난 인류가 진화해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이 출현한 것은 대략 4만 년 전의 일이고, 농경과 목축을 시작해 생산경제를 맞은 것은 불과 1만 년 전의 변혁이며,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매소포타미아지방에 슈메르인이 정착해 촌락을 형성한 것이 기원전 3,500년 전의 일로 서양문화사는 이 시점에서 시작해 점점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해왔음. 이 책을 다 읽고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역사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음.
*2009. 9. 16일
321.나목/도둑맞은 가난
*박완서 저/민음사 간(2005)
*이청준 선생이 타계 후 어느 한 작가에 천착하지 않고 내가 두루두루 우리 소설을 읽어온 것은 선생만한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없을 바에 특정작가의 작품에 연연할 필요가 더 이상 없겠다 싶어서였음. 여러 작가들을 거쳐 다시 만난 박완서 선생의 작품을 읽으며 바로 이분의 작품이 내가 앞으로 집중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동했음. 선생의 데뷔작 “나목”을 읽고 6.25 전쟁 후 작가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소설화 했구나 한 것은 초상화를 그리는 한 화가의 이야기가 박수근화백을 지칭함을 눈치 챘기 때문임. 평론가 유종호님은 작가의 나목을 전쟁과 청춘의 책이라 평했듯이 당시 전쟁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무엇을 생각했는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음. 전쟁 기간 중 두 오빠를 잃은 주인공은 때로는 전쟁이 계속되어 재난을 골고루 분배되기를 원하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찾아 옥희도 화백에 마음을 주는 것은 당시 젊은이들의 고뇌를 엿보게 해주는 것임. 가난을 경험하고자 방학을 이용해 공장에 나가는 갑부 집 아들과 생활비를 아끼고자 같이 생활한 재봉사인 여주인공에 방학이 끝나자 일상으로 돌아간 갑부 집 아들이 집으로 들어가 사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고 재산뿐만 아니라 가난조차도 부자들에 도둑맞았다고 절규하는 것으로 끝맺는 “도둑맞은 가난”에서 부자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읽을 수 있었음.
*2009. 9. 10일
320.학대받은 사람들
*도스또옙스끼 저/정음사 간(1974)
*1974년 어렵게 장만한 도스또옙스끼 전집(총8권)을 “학대받은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35년 만에 완독했음을 자축코자 함. 당시27세의 나는 작가 특유의 장광설에 질려 첫 번째 손에 든 “죄와 벌”을 간신히 다 읽고 난 후 30년 넘게 나머지 작품들을 쳐 박아 두었었음. 작년에 한 신문에서 세계적인 연주가인 장영주(?) 양이 지도교수가 권해서 접하게 된 도스또옙스끼의 “악령”을 참으로 감동 깊게 읽었다는 한 신문의 인터뷰기사를 읽고 나서 “악령”을 다시 읽기 시작했음. 세계적인 연주가 되기 위해 엄청 고생했을 어린 장양이 그 바쁜 중에도 어렵게 짬을 내 본 작품을 나이든 내가 사놓고도 읽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 마음 다져먹고 “악령”을 읽기 시작해 오늘에야 전8권을 모두 다 읽었음. 주인공 바냐가 사랑하는 나탸샤를 위해 헌신하는 순애보를 주 내용으로 하는 “학대받은 사람들”은 작가 자신의 자전적소설로 알려졌음. 연적이랄 수 있는 알로샤에도 적대감 없이 진심으로 대하는 것을 보고 사랑의 힘이 위대함을 느꼈음. “이 책에 실린 “스쩨판찌 꼬보마을과 그 주민”에는 포마포미치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한 독재자가 주위사람들을 어떻게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노예적 근성을 강화시키는 가를 잘 보여줘 섬뜩하기도 했음. 상 하단 세로쓰기의 이 전집은 깨알같이 작은 글자로 쓰여 있는데다 작가 특유의 길고 긴 문장에 여전히 힘들었으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작가의 메시지가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는 생각임. 명작을 남긴 작가 도스또옙스끼에 경의를 표하고자 함.
*2009. 9. 5일
319.시장과 전장
*박경리 저/동아출판사 간(1996)
*우리나라 문단의 최고봉이었던 박경리님의 작품으로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자 내가 6.25전쟁을 몸소 겪은 것 같아 전율이 느껴졌음.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남는 다는 것이 얼마나 중하고 지난한가를 지영이라는 여주인공을 통해 증언하는 작가는 이를 시장으로 표현한 듯 했고 여주인공의 시아주버니인 공산주의자 기훈이 살아가는 현장을 전장으로 묘사했다는 생각임. 전장과 시장을 대비해가며 6.25전쟁 때 시장에서든 전장에서든 참으로 끈질기게 살았고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을 생생하게 일러준 이 작품은 작가가 6.25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면 문학적 상상력으로만 지어내기기가 불가능했을 것임. 우리 문학에서도 한국전쟁을 문학적으로 이토록 잘 소화한 작품이 있다 싶어 가슴 뿌듯하면서도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전쟁이 재발되지 않기를 비는 마음때문에 우울하기도 했음. 여성작가의 섬세함보다는 묵직한 사실묘사가 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높였다는 생각임.
*2009. 8. 28일
318.이중인격
*또스또옙스키 저/동 완 역/정음사 간(1974)
*1846년에 발표된 중편소설 “이중인격” 외에 “가난한 사람들”, “네또치까 네즈바노바” 등 2편의 중편소설이 더 실렸고 “주부”, “유부녀와 침대밑 사나이”, “쁘로하친 씨”, “뽈 준꼬프” 등의 단편소설이 8편 실려 총 이 한권으로 11편의 소설을 읽었음. 다른 6편의 전작집에 실린 장편소설보다 소재도 가벼운 듯했고 작가 특유의 세밀하고 긴 묘사도 그 정도가 약한 것 같아 읽기에 부담이 훨씬 적었음. “가난한 사람들”과 “이중인격”을 빼고는 비평가로부터 그리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데 그래도 이 작품들이 나름대로 읽히는 것은 후에 “죄와 벌”등의 대작을 쓰는데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라 함. 이 작품집에 실린 대표작인 “이중인격”에서 주인공 골랴드 낀은 그의 내향적 성격에서 불행이 태동되었으니, 이는 주인공을 둘러싼 비인간적인 사무와 경쟁 등을 특징으로 하는 관계에서 살아남으려 하는 면과 한편 이것들로부터 떨어져 자기의 개성을 지키려하는 이중적인 삶에서 정신분열이 초래되었다는 생각으로 현대사회의 병폐를 예견한 소설이라 할 수 있음.
*2008. 8. 23일
317.조선상식문답속편
*최남선 저/삼성문화재단 간(1974)
*“조선인에게 급히 조선지식을 줌에는 학교, 강습회, 도서관보다 먼저 천근(淺近)한 상식문답서를 제공함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육당 최남선 선생이 1947년 앞서 지은 “조선상식문답”의 속편으로 펴낸 저서임. 과학, 문학, 도서, 금석, 음악, 연극, 서학, 회화 등 총 8개 분야에 대해 질의응답 식으로 각 분야의 상식적인 것들을 망라한 이 소책자에서 육당선생의 계몽주의적 애국심을 엿볼 수 있었음. 말이 상식이지 이 책에 실린 상식들은 책깨나 읽는다고 자부하는 내가 모르는 내용들이 수두룩해 다시 한 번 선생의 박학다식함에 놀랐음.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타계하셨으니 생의 반 이상을 일제치하에서 보내야 했던 선생은 기미독립선언문을 지으실 만큼 나라사랑이 대단하셨는데 35년이란 일제강점기를 이겨내지 못해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친일반역죄로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임. 어려운 한자가 토 없이 너무 많이 쓰여 읽어나가기에 애를 많이 먹었지만 그간 잃어버린 언어들을 이 책에서 만나보는 기쁨도 느꼈음. 첫 장의 과학을 빼고는 모두 예술에 관계된 내용들인데 대중의 예술이 아닌 특정 소수 층에 치우친 예술이 우리 선조의 예술임을 확인한 것 같아 뒷맛이 그리 개운치 못했음. 이는 우리나라가 일반 대중들은 배우고 익힐 수 없는 한자문화권에 속했고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하신 후에도 기득권층이 한자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임.
*2009. 8. 17일
316.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김수환 추기경 구술/평화신문 엮음/평화방송-평화신문 간(2009)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해 환희에 찬 마음으로 이 책을 접었음. 이웃집 아저씨 같이 편안한 분이 머금고 계시는 온화한 추기경님의 웃음은 내게는 희망의 웃음이자 믿음의 웃음이었음. 지난 겨울 명동성당을 찾아 추기경님의 영면을 빌면서 온화한 그 웃음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는데 이 책이 추기경님의 웃음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아 한 번 잡고 나자 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음. 조부께서 순교하셨고 옹이장사를 하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으신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사제의 길을 걸으신 추기경님이 사제가 되기까지 걸어온 삶을 담백하게 그려낸 이 책은 추기경이 되신 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애쓰신 역정이 소박하게 기술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음. 추기경께서 선종하시면서 남기신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십시오.”의 말씀이 추기경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일러주는 마지막 말씀이라는 생각임. 세속과 벗하면서 세속에 희망의 빛을 비치는 등대가 되시고자 번민하시고 또 즐거워하신 추기경님께서 지금도 세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저 세상에서도 기도하고 있으시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강하게 들었음. 추기경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갈 생각임.
*2009. 8. 13일
315.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김주영 저/동아출판사 간(1995)
*장편소설 “객주”로 만난 소설가 김주영은 어찌 그리도 우리말을 그렇게 감칠 맛나게 쓸 수 있나하며 어휘실력이 대단한 작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이번에 읽은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음. “산지니”, “맵짜다”, “해토머리깨”, “고샅” 등 사전을 찾아보지 않으면 그 뜻을 쉽게 알 수 없는 잊혀 진 우리말들이 수두룩한 그의 소설에서 힘들게 현대사를 써온 숱한 군상들의 삶을 만나볼 수 있는 것도 그의 소설을 읽는 재미였음. 작가는 “거울 위의 여행”, “때ㅅ국”, “괘종시계”,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의 작품들 속에서 화자인 내가 겪은 다양한 어린 시절을 보여주었고 “모범사육”과 “도둑견습”에서 가정에서 방치된 아이들의 악랄한 어투와 행위를 들춰내보였음. 작가의 소설에서 어머니는 비중 있게 그려진데 반해 아버지는 그렇지 못한 것이 내게 각별하게 보인 것은 진학문제로 아버지로부터 구박을 받았다는 어렸을 때의 반감이 커서도 그대로 남아 나 역시 이런 저런 내 글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추억을 많이 그렸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쓰지 않았기 때문임. 작품 속에 나오는 어머니 상은 다양해 때로는 실망스럽게도 그려졌지만,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들이 간난극복에 주도적 역할을 했음도 분명함을 읽었음.
*2009. 8. 12일
314.문명의 붕괴(Collapse)
*제레드 다이아먼드 저/강주헌 역/김영사 간(2008)
*지난겨울 병상에서 저자의 작품인 “총, 균, 쇠”를 읽은 후 책은 이렇게 써야 독자들에 감동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던 것은 인류의 문제를 이렇게 극명하게 보여준 책이 따로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 책에 끌렸던 것은 우선 저자의 다양한 체험과 해박한 지식에 놀라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문제를 정말 진지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이 책을 썼기 때문이었음. 저자의 이러한 노력은 “제3의 침팬지”에 이어 이번에 읽은 “문명의 붕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위대했던 문명들이 왜 몰락했고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문명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소상히, 그리고 균형감 있게 일러주고 또 문명의 붕괴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제시해 주고 있음. 그린란드를 점령한 노르웨이 바이킹들이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적대적으로 대해 결국은 공멸한 것도 퍽 시사적이었고 마야문명이 사라지게 된 근인과 원인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음. 신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주신 선물이 바로 천혜의 자연으로 알아온 내게 오스트레일리아가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지 못한 조건들이 수다한 위험스런 땅임을 처음 알았음. “제3의 침팬지”에서 인류학자로, “총, 균, 쇠”에서는 사회학자의 면모를 보인 저자가 이 책에서 환경학자로 나타난 것은 그의 학문의 통섭 노력 덕분일 것임. 우리나라 환경론자들의 세속적인 작태에 분노하고 있는 내가 환경을 살리고 문명의 붕괴를 막고자 하는 저자 나름대로의 진단과 처방에 상당부분 공감하는 것은 저자의 진지한 노력에 감명 받아서임. 현안 환경 이슈를 목소리를 크게 내는 호기로만 삼아온 우리나라 환경론자들에 저자의 진지함을 배우도록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임.
*2009. 8. 8일
313.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
*장하준(H-J, Chang) 저/이순희 역/ 부.키 간(2008)
*"The Myth of free Trade and the Secret History of Capitalism"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장하준 교수의 저서로 원문이 영어여서 우리글로 번역되었음. 이 책은 미국을 주류로 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세계경제주도가 얼마나 잘못되고 선진국중심의 이기적인 것인가를 여러 면에서 고찰한 저서로 세계화를 주도하는 큰 축인 IMF, IBRD, WTO들이 개도국 또는 후진국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가를 잘 보여주고 있음. 선진국들은 경제발전을 꾀하기 위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갔으면서도 후진국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다리를 치운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것으로 사다리는 다름 아닌 자유경쟁이 아닌 이미 선진국들이 발전초기에 다들 써먹은 정부주도형의 경제정책이라는 것으로, 내가 못 보았던 신자유주의의 잘못된 면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어서 고마웠음. 하지만 내게 이 책이 먼지 터는 작업의 소산으로 보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가 누구든 100% 선하거나 악하지 않으며 또 100% 맞거나 틀리는 것이 아니라면 양의 많고 적음의 문제는 있겠지만 누구라도 얼마간은 나쁜 사마리아인도 될 수 있고 또 좋은 사마리아인도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임. 그러기에 먼지 터는 작업이나 보석 찾는 작업은 필요하고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그 결과 또한 일정범위 안에서만 참이기에 신자유주의자들을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공격하는 저자도 반대로 신자유주의자들로부터 먼지가 털릴 수 있으며, 이 때는 저자가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비난받을 수 있을 것임. 이 책을 읽고 난 내 결론은 절대 옳거나 그른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그래서 헤겔이 지적한대로 이제까지 인류역사는 정과 반이 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며 꾸준히 발전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리될 것이며, 저자의 역저 또한 이 흐름의 일부라는 것임.
*2009. 7. 30일
312.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또엡스끼 저/함일근 외 /정음사 간(1974)
*이 책에 실린 도스또옙스기의 작품은 “죽음의 집의 기록” 을 포함해 “도박자”. “영원한 남편”과 “아저씨의 꿈”등 모두 4편으로, “죽음의 집의 기록”을 빼놓고는 내가 이제껏 읽은 저자의 소설과는 색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음. 간질병환자도 등장하지 않고 음울하고 심각한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지도 않아 예의 장광설에 가까운 상황묘사나 긴 대화가 없었다면 다른 러시아 작가의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새롭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느낀 소감임. 감옥의 모습과 죄수들이 이 감옥에서 어떻게 살고 있으며 이 생활 속에서도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일러주는 “죽음의 집의 기록”만은 사형집행 직전에 감형은전으로 살아난 저자의 독특한 경험과 사상이 곁들여진 작품으로 생각되었음. 나머지 세 작품들은 내용적으로는 전혀 연결이 되어있지 않으나 독특한 소재로 가볍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독자의 심리적 부담을 얼마고 덜어준 중편소설로 저자의 숨겨진 일면을 만나 본 느낌임. “아저씨의 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속물적 처신을 보면서 이 또한 오랜 세월 쌓여온 지식일 수 있겠다 싶었음.
*2009. 7. 28일
311.태양의 아이들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저/이창희역/세종서적 간(2009)
*책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과학자가 저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문제점도 제시하고 나름대로 논리를 펴나가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저자가 과학자가 아니고 역사학자인 것이 수긍될 것임. 에너지를 향한 끝없는 인간욕망의 역사 한가운데 있는 것은 바로 태양으로 이 세상에 태양이 없다면 인류는 존재할 수 없음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태양의 아이들”이 아닌가 싶음. 푸드 체인에서 생산자역할을 하는 식물들이 동물들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생산 공정인 광합성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빨아올린 물만 가지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태양으로부터 빛에너지를 받아야 이루어지는 것임을 볼 때 인간의 먹이 감이 모두 태양에너지의 소산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임. 석탄과 석유 또한 식물에서 만들어 진 것이기에 태양에너지가 변환된 것이며 수력과 풍력 또한 태양열에 의한 대기순환의 결과인 것임. 다시 말해 음식이든 어떤 형태의 에너지든 인간에 긴요한 것들 모두 태양에너지가 그 근원이므로 사람들을 “태양의 아이들”로 표현한 것은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임. 달에 의한 조력발전과 핵분열 및 핵융합을 이용한 원자력발전만 태양과 무관한 것인데 이것들만으로 에너지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태양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임. 이 책을 읽고 나서 태양이 공급하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는 법이기에 태양의 아이들인 인간들도 에너지를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음.
*2009. 7. 19일
310.살아있는 우리 신화
*신동흔 저/한겨레출판 간(2007)
*우리나라 신화를 조감하고 조감도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한 이 책은 우선 재미있고 또 그 재미 속에서 숨어 있는 의미를 일깨워줘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음. 책머리의 “우리 신화 배경 지도”를 참조하며 신화를 읽노라면 역사부도를 옆에다 펴놓고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이해가 빨랐음. 단순히 전해오는 신화들을 나열 한 것이 아니고 신화지도에 준해 나름대로 체계를 갖고 엮어나가 이제까지 만났던 옥황상제, 바리공주, 저승사자 등의 여러 신들의 관계를 알 수 있었고 우리의 신화도 그리스-로마 신화에 못지않게 흥미진진함을 알게 되었음. 이 책의 열두 마당에 소개된 신화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아 그리스-로마신화에 그 양이 따르지 못함은 아쉬운 면이기는 하나 더 많은 신화는 다른 책에서 구해보아야 할 것 같고, 이 책을 통해 신화를 읽고 그 의미를 되새김하는 방법에 눈을 뜬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라 하겠음.
*2009. 7. 10일
309.한국의 호수
*김추윤 글-손재식 사진/대원사 간(1992)
*출판사 대원사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빛깔 있는 책들”의 한 권으로 호수에 대한 개괄과 남북한의 유명호수를 간결하게 설명해 나름대로의 빛깔이 느껴지는 소책자임. 호수란 원칙적으로 “바다와 연결되지 않은 지표의 와지(漥地:오목하게 패어 웅덩이가 된 땅)에 위치하는 정수괴(靜水塊)의 총칭”으로 대부분 담수로 되어 있으나 염수로 된 곳도 있다 함. 한국의 자연호는 포, 호, 연, 지, 담 , 택 등 그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함. 2004년 가을 금강산 관광 길에 찾아본 삼일포는 북한3대 자연호의 하나로 동해가 지척인데다 풍광이 고혹적이어서 이름그대로 삼일 간 머물고 싶은 생각이 절로 일었음. 가을에 가면 거의 물이 보이지 않는 백록담의 최대 수심이 150m라 하여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으나 백록담은 출구가 없어 큰 비가 와 물이 차오르면 그리 된다는 뜻인 것 같음. 조만간 우포를 찾아 호수의 진면목을 관찰하고 명소탐방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보고 절로 났음.
*2009. 7. 9일
308.우상의 눈물
*전상국 저/두산동아 간(1997)
*구제불능의 독한 학생인 기표를 담임선생이 어떻게 순치시키는가를 그린 소설 “우상의 눈물”은 순치의 결과로 부끄러움을 잘 타는 학생으로 변한 기표가 담임선생이 공들여 유치한 영화촬영을 하기로 된 날 가출해 담임이 골탕 먹는 것으로 끝이 나는 데 담임선생과 반장의 의 공작은 하도 치밀해 소름끼쳤음. 한 할아버지의 인생전말을 보여주어 한 인간이 얼마나 패악스러운가를 보여준 “외딴 길”을 읽으며 분노하기도 했는데 이 노인이 죽은 후에도 마지막 사술로 도와준 일가들을 괴롭히는 끝 부분의 극적 전개는 흥미도 진진했음. 1940년 생으로 6.25전쟁을 초등학교 다닐 때 경험한 작가는 그의 여러 소설에서 6.25의 잔흔이 발견되는 데 이 잔흔이 좀처럼 지어지지 않는 비극적이고 표독스런 문신 같은 것이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운명의 그림자처럼 느껴졌음. 전후문학에는 6.25전쟁과 분단의 현실이 어떤 식으로든 녹아 있는데 전상국의 문학에는 사상적 문제보다는 이것들의 상흔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일러주는데 치중한 것 같았는데 “아베의 가족”이나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가 그러했음.
*2009. 7. 7일
307.암사지도/오발탄
*서기원, 이범선 저/ 동아풀판사 간(1995)
*고교시절 작가들의 필력이 대단함을 알았지만 이들의 소설을 여러 편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음.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여러 각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두 작가의 소설들은 모두가 암울한 전후 현실을 담고 있었음. 서기원의 장편소설 “전야제”를 통해 전후방에서 전쟁을 보는 시각이 같지 않음을 보았으며, “암사지도”를 통해 전후 젊은이들의 성에 관한 기존의 윤리관이 얼마나 변화했는가를 알 수 있었음. 이범선의 “오발탄”은 전후문학의 리얼리즘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으로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어머니의 “가자”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아들이 무작정 “가자”며 택시를 여기 저기 끌고 다니는 마지막 장면이 독자들의 가슴을 휑하게 만든다는 느낌임.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로 새삼 관심을 가지고 읽은 소설이 이범선의 “자살당한 개”임. 자동사 “자살하다”를 타동사로 바꾸어 수동태로 묘사한 점이 독특했는데 진정한 자살도 들여다보면 상황이 자살로 몰았다는 것으로 이해되었음. 한국전쟁이 낳은 전후문학이 나처럼 나이든 사람들에는 리얼하게 읽히겠지만, 그래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겠지만 배불리 사는 요즈음의 젊은이들에는 딱히 감동적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음.
*2009. 7. 2일
306.지형도 읽기
*권동희 저/한울아카데미 간(2007)
*등산에 요긴하게 쓰이는 지도는 지형도와 개념도가 있는데 개념도를 작성할 때 밑 자료가 되는 것이 바로 지형도이니 지형도에 관해 먼저 공부하는 것이 순서일 것임. 지형도 상식, 지형도 도식, 지형도 읽기와 지형도 이용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지리교육과 교수분이 집필해서인지 내용이 난해하지 않고 실물사진과 지형도를 대비해가며 설명을 해주어 지형도 읽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음. 삼각점, 표고점과 수준점이 무엇이며 서로 어떻게 다른 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고 지형도에서 자기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의 소개도 큰 도움이 되었음. 궁극적으로 지형도를 가지고 개념도를 작성할 수 있도록 지형도 읽기에 노력하고 대형문구점에서 커비 미터(curvi meter)를 구입해 지형도를 통해 산행거리를 미리 산정해볼 뜻임.
*2009. 6. 25일
305.미성년
*도스또엡스끼 저/동 완 역/정음사 간(1974)
*도스또옙스끼의 소설을 읽으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길고 난해한 내용의 지문과 대화에다 등장인물이 많고 이름이 어렵다는데 그 이유가 있음. 한 번 시작하면 만사 제쳐놓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야 등장인물이 누구인가를 잊지 않아 내용 소화가 가능한 데 옛날에 출간된 이 책은 세로 판에 글자가 깨알같이 작아 계속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아 이번에도 이름만으로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정확히 생각나지 않아 애를 많이 먹었음. “악령” 출간 후 5년 후인 1875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21세의 청년 아르까지 돌고루끼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 청년이 바라보고 겪은 것들을 이야기로 꾸며놓은 것으로 여러 모순된 사상과 행동을 만나보게 됨. 로스챠일드가 되겠다며 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면서도 부를 버리고도 침착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하나 받아서는 안 될 돈을 받아 노름에 탕진하는 등 추악한 행동을 억제하지 못해온 주인공이 19세기 중반에 러시아제국에서 활동했던 전형적인 청년이 아니었겠나 싶었음. 사생아인 주인공의 생부인 베르씰로프와 그의 하인이자 주인공의 법률상의 아버지인 마까르 돌고루끼, 어머니 쏘피아, 누이동생 리자와 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등장인물에 각기 다른 성격을 부여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특히 파리꼼뮨을 적극 지지하는 진보적 이상주의자이면서도 이상을 실현할 힘이 없음을 애통해 하는 베르씰로포의 성격묘사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단숨에 읽어나가기가 그리 쉽지 않은 난해한 소설임.
*2009. 6. 22일
304.정쟁
*신봉승 저/청아출판사 간(2009)
*조선조 선조임금부터 정조임금에 이르기까지 소위 당쟁이라 불리던 사건들을 정쟁이라는 시각으로 새롭게 엮어낸 역사서로 극작가인 신봉승님이 지은 것이라서인지 우선 흥미진진했고 몰랐던 사실들도 이 책을 통해 많이 알게 되었음. 저자는 이제껏 당쟁이라 불러온 조선조의 정치를 “조선정치의 꽃”인 정쟁으로 바꿔 부르는 이유로 당쟁은 당파만을 위한 것임에 반해 조선조의 정치는 소속당파를 떠나 나라를 위한 것임을 들고 있는데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느낀 것은 조선조의 정치는 역시 당쟁으로 얼룩졌다는 것임. 일부분 소속 당파의 이익을 떠나 논쟁을 이끈 부분도 있으나 이는 극히 미미하고 환국과 사옥의 거의 다가 당쟁의 결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임. 숙종 때에 이르러 거의 5년마다 임금을 뺀 집권층이 바뀌는 환국이 일어나는 데 이 환국을 통해 권력의 물갈이가 이루어지는 점은 일면 긍정적인 일이다 싶으면서도 이 물갈이가 반대파의 숙청으로 매듭지어져 현세의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와는 크게 달랐음. 환국이 정당하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입헌군주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리하지 못한 것은 정쟁이 아니고 당쟁이었기 때문임. 조선조의 정치가 백성들을 위한 정치가 못되고 권세가들의 그들만의 정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실용을 중시하지 않고 관념과 사변을 중시한 결과라는 생각임.
*2009. 6. 18일
303.똑똑한 등산이 내 몸을 살린다
*야마모토 마사요시 저/신우섭 역/마운틴 북스 간(2008)
*50대의 산악인이자 스포츠과학의 전문가인 저자가 지어낸 본서는 등산운동을 과학으로 끌어올린 책으로 내가 진작 이 책을 읽었더라면 무릎의 통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역작임. 등산에서 탄수화물섭취가 왜 중요한가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가장 확실한 트레이닝이며 물을 왜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가를 임상테스트를 통해 얻은 자료로 설명하는 저자는 어떠한 스트레칭이 유효한 것인가도 이 책을 통해 알려주고 있음. 프리클라이머에 요구되는 근력은 무엇이며 고산등반 시 누구나 겪는 고산병을 어떻게 극복하는 가에 대한 제언도 상당히 유용한 정보라는 생각임.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유산소운동과 무산소운동의 개념을 이해했음. 60대 초반의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등산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알고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 가를 나 나름대로 정리해 실천에 옮길 생각임. 똑똑한 등산이란 바로 등산도 과학임을 인지하고 무작정 산을 오르내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알맞은 산행을 알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저자의 이 책을 읽고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 산행을 해온 내 습관이 올바른 산행습관임을 확인했음.
*2009. 6. 17일
302.까르마죠프네 형제들
*도스또엡스키 저/이동현 역/정음사 간(1974)
*실제로 있을 법한 한 가계의 아버지와 그 아들 간의 갈등을 그려 19세기 러시아인들의 삶을 생생하게파헤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까르마죠프네 형제들"은 러시아의 대 문호인 도스또옙스키의 최후의 작품으로 그의 인간에 대한 성찰과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걸작임. 더할 수 없는 속물적 인간인 아버지 표도르와 이 아버지와 한 여인을 두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저질의 큰아들 드미트리, 얼마의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유산 때문에 큰 아들과 마찬가지로 살의를 품고 있으며 무신론자인 둘째아들 이반, 이런 집안에서 이런 도덕적인 아들이 어떻게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나 형제들과 달리 신앙심이 돈독한 막내아들 알로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이 펼치는 대 로망은 큰 아들 드미뜨리가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정점으로 치닫고 있음.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큰아들은 실형을 언도받고, 이반의 뜻을 간파하고 표도로를 죽였다는 이복형제일지도 모르는 하인이 자살로 이반은 스스로 죄인이라고 절규하며, 수도원에서 나와 큰형의 무죄를 확신하며 궁극에는 실형을 언도받아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야하는 큰 형을 탈주시키겠다는 알로샤 등 세 형제가 종국에는 모두 신을 믿게 되는 것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을 속속들이 드러낸 작품으로 러시아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작가의 휴머니즘도 강하게 느꼈음. 1821년에 태어나서 1881년에 타계한 작가와 동시대에 살았던 이 땅의 선현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이런 대작을 남기지 못한 것은 당시 글쓰는 선비들이 백성들의 삶을 치열하게 사랑하지 못했고 또 아직도 우리말을 그대로 담는 한글로 글을 쓰지 않고 남의 글인 한문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임. 40여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문인이 배출되기를 갈망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음.
*2009. 6. 12일
301.아시모프의 지구과학/화학
*아이작 아시모프 저/안희수, 박택규 역/웅진출판 간(1993)
*러시아 태생의 미국의 과학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난해한 과학에 일반대중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과학의 여러 분야를 나누어 입문서를 알기 쉽게 쓰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과학 분야 작가임. 화학은 대학4년 동안 전공한 과목이고 지구과학은 고교교사로 근무할 때 한 해 동안 가르친 과목이어서 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이 낯선 것은 아니었음. 작가가 다룬 내용이 지구과학이나 화학의 전반이 아니고 극히 일부만을 다룬 것이어서 아쉽기는 하나 주기율표가 완성되기까지 과학자들의 원소발견 노력이 소상히 실린 것은 이 책의 강점으로 생각됨.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초안한 제퍼슨 대통령도 운석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믿지 않은 우를 범했다는 글을 읽으며 과학의 발전이 수많은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임을 새삼 깨달았음. “부동의 자유”가 학문의 전제이듯이 선현들의 업적을 일면 계승하면서 또 한편 부정해 새로움을 만들어가는 것이 수많은 과학자들이 견지해온 기본적인 자세였다는 생각임.
*2009. 6. 8일
300.죄와 벌
*도스또옙스키 저/함일근 역/정음사 간(1974)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또옙스키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죄와 벌” 및 이 작품 직전에 발표된 “지하생활자의 수기”등 총 5편의 소설이 실린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좀처럼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는 그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임. 1970년대에 한 번 읽었던 “죄와 벌”이 다시 읽어도 감동을 받는 것은 작가의 생명에 관한 철학을 만나 대화할 수 있기 때문으로,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죽음을 보고 죽음의 양태가 어떠냐가 내게는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음. 자기 생명을 자의로 얻은 것이 아니듯이 생명의 종식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보통사람들의 자살도 비난받아 마땅한데도 전직대통령의 자살이 어떤 이유로든 미화되는 것은 이 사회가 병들었다는 반증일 것임. 한 때 대학생이었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가, 비범인은 범인과 달리 보다 나은 것을 창조하기 위해 법률을 초월할 권리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고리대금업자를 살인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비범인의 초월적 살인행위에 대해 가책을 하게 되며 급기야는 영혼이 이를 데 없이 맑은 창녀 쏘냐에 살인을 고백하고 벌을 받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지만, 그 여운이 오래 남는 것은 어떤 죽음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강제로 생명을 끊게 하는 것은 그 생명의 주인공이 어떤 누구든 죄악이라는 것이며, 당연 그에 따른 벌이 따른 다는 자명한 가르침을 이 소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음.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고 긴 대화와 장문의 지문이 내용이 비교적 단순한 소설을 난해하게 만든 일면도 있다는 생각임.
*2009. 6. 5일
299.삼국통일 전쟁사
*노태돈 저/서울대학교출판부 간(2009)
*통사로 알고 있는 삼국통일과 통일을 가져온 전쟁에 관한 나의 지식이 참으로 별 것 아니다 생각한 것은 노태돈 교수의 “삼국통일전쟁사”라는 한국학 연구총서를 읽고 난 후였음.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 진정한 삼국통일이냐에 대해 소개된 학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으니 이는 발해를 어떻게 보느냐 와도 관련 있기 때문임. 내가 즐겨 읽는 이이화님의 “이야기한국사”에 후기신라와 발해를 같은 반열에 놓고 남국신라와 북국발해로 표현한 것이 삼국통일의 개념을 소극적으로 부정하는 것일 수 있다 싶었음. 당태종이 회군을 한 이유가 안시성전투에서 대패한 외에도 연개소문의 외교활동의 성공으로 몽고 쪽의 설연타가 당을 공격해 오리라는 정보 때문이라는 것도 처음 안 사실임. 패망한 백제의 부흥을 돕고자 부여풍을 부여에 보내고 군대도 파견한 왜에 신라가 대당항쟁을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해 머리를 낮추고 몇 십년간 왜국과 교섭한 사실도 이제껏 몰랐던 사실이었음.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반대론 중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도 관련이 있으니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국가로 당의 고구려침공은 내전일 뿐이므로 삼국통일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중국의 반대론이라는 것임. 이 책으로 삼국통일의 전 과정을 상세히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럴수록 고구려 땅을 우리 땅으로 만들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음.
*2009. 6. 1일
298.섬진강 답사기행
*유현민 저/버들미디어 간(2004)
*작년 가을 용화산에서 추락사고를 당해 중단한 섬진강산울타리 환주산행을 가을 쯤 재개해 올 안에 마치면 내년에는 섬진강 강줄기를 종주할 계획이어서 섬진강답사기를 사모으고 있는 중임. 지난3월 신정일의 “섬진강 따라 짚어가는 우리 역사”도 같은 취지에서 사본 것인데 막상 강 이야기는 별로 없고 주변의 문화재 이야기만 잔뜩 실려 있어 조금은 실망하면서도 책제목이 “섬진강 따라 짚어가는 우리역사”로 정해진 이상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답사기행이라는 제목을 단 이 책도 앞의 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많이 실망스러웠음. 우리나라 문화재의 상당수가 사찰이나 정자 등 백성들의 삶이 녹아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강과 한참 떨어진 곳의 문화재도 유명하다는 이유로 섬진강과 억지로 연관시켜 실어야하나 회의가 많이 갔음. 섬진강답사기행에서 섬진강은 사라지고 진안군, 임실군, 순창군, 정읍시, 구레군, 하동군과 광양시 등 주변지역의 문화재가 자리를 대신한 이 책이 답사기의 전형을 보인 것이라면 나는 이 전형을 과감히 깨 보일 생각임. 섬진강과 그리고 이 산에 물을 대는 산과 그리고 강변에 면하고 있는 촌락이나 도시를 주 소재로 써볼 생각임. 글자가 크고 사진이 많이 들어가 책이 너무 두꺼우며 그래서 내용에 비해 값도 비싸다는 생각임. 섬진강을 답사하며 어떤 글을 쓸 것인가가 나의 큰 과제임을 이 책이 일깨워주었음.
*2009. 5. 30일
297.잉여인간
*손창섭 저/두산동아 간(1997)
*작가의 이 작품은 1965년 고교 1학년 때 읽은 소설로 당시 문과와 이과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고민하는 내게 문과를 가지 말고 이과로 선택하라고 강력하게 암시를 준 작품임. 작가의 작품들에 나오는 군상들의 거의 다가 취직이 안 되어 실업자로 비참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을 보고 그래도 취직이 손쉬운 이과로 가자고 결심해 그 2년 후 서울사대 화학과에 들어가게 된 것이기에 언제고 그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다고 줄곧 생각해오던 차 헌책방에서 이 책을 사서 보게 된 것임. 이미 60세를 넘긴 지라 충격이 그 때보다 훨씬 못하지만 작가 손창섭이 아니고는 당시의 군상들이 아무런 희망 없이 나날을 어떻게 살아왔는 가를 제대로 전해줄 작가가 누구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음. 이 책에 잉여인간 외에도 “미해결의 장 ”등 총 19편이 실려 있는데 독립운동가의 아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을 상세히 그린 “낙서족”을 빼놓고는 하나같이 낙오자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품이어서 살기가 웬만해진 지금에 와서는 더러 역겹다는 생각도 들지만 1950-60년대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는 교과서적인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음.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가서 살다가 해후 귀국해 귀향한 작가는 월남해 남한에서 뿌리박고 사는 가 했는데 60세가 훨씬 넘어 다시 일본으로 귀화하는 등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기에 어느 면으로 이 소설집은 작가의 자화상일 수 있다 싶기도 함.
*2009. 5. 28일
296.페스트/이방인
*알베르 까뮈 저/방 곤 역/범우사 간(1999)
*부조리(Absurdity)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대표작인 페스트와 이방인을 몇 십 년 만에 다시 읽고 나자 젊었을 때 이 소설들을 읽고 왜 흥분 했는가 이해되지 않았음. 신종 인푸렌자로 지구촌이 들썩대는 요즈음 소설 페스트가 정말 수작이라 생각되는 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의사 리외의 마지막 언급내용인 다음 문장 때문임.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갖다 주기 위해서 페스트가 또 다시 저 쥐들을 깨워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 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페스트가 교만한 인간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신종 인푸렌자 뿐만 아니라 형태를 달리한 전인류적 고통이 언제고 다가올 것임을 경고한 메시지라는 생각임.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는 어머니의 죽음을 무의미하게 받아들이고 장례를 치른 그 이튿날 전 직장동료와 정사를 벌이고 급기야 아랍인을 해변에서 사살하는데 법정에서 살해이유로 태양이 뜨거워 그랬다는 주인공 뫼르소의 생각과 행태에 엄청 분개했는데 점점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까뮈가 설정한 주인공의 행태를 차분하게 관찰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임. 뫼르소의 행태에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은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와 다름이 없지만 뫼르소처럼 인간이 부조리한 면을 갖고 있음은 인정할 뜻임. 시지프스의 신화를 다시 읽어 까뮈의 작품세계를 차분히 들여다 볼 생각임.
*2009. 5. 19일
295.동양문화사
*존 K. 페어뱅크, 에드윈 O. 라이샤워 공저/고병익, 전해종 공역/을유문화사 간(1964)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문화사를 한 권에 담은 본서는 하바드 대학의 라이샤워 교수와 페어뱅크 교수가 힘을 모은 역저로 1964년에 번역/간행되었는데 역자가 실토한 대로 당시 우리나라에 이만한 동양문화사 서적이 없었다 하니 벽안의 두 교수가 이룩한 이 분야 학문적 업적과 저술이 얼마나 뛰어났나를 짐작할 수 있음. 9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중 중국에 500여 페이지를, 일본에 300여페이지를 할애했으면서 한국에는 단 100페이지도 못되는 분량만 할애한 것은 당시로는 전쟁을 막 치르고 난 한국이 전 동양적 단위에서 보았을 때 그리 중요하지 않고 영향력도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되나 이제 그 두 분들이 다시 쓴다면 한국의 역사도 역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변천해왔음에 주목할 것이 틀림없을 것임. 동아시아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3국의 문화사를 유럽의 발전사와 비교해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며 문화사가 어떤 것인가를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음. 두 저자 분들의 역작을 파주의 북카페 “반딧불”에서 헐값으로 살 수 있었음도 내게는 행운이었음.
*2009. 5. 16일
294.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저/김명자 역/까치 간(2002)
*저자는 과학적지식의 발전이 혁명적으로 이루어진다며 과학의 진보가 누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기존의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부정했음. 저자가 말하는 과학혁명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패러다임이란 언어 학습에서 사용되는 표준예(exempler)를 의미하며 과학혁명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대체되는 비축적적인 변화의 에피소드를 가리킴. 혁명에 의해서 과학이 변화하며 혁명들 사이에 과학자들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안전한 활동기의 과학을 정상과학이라 칭하며, 정상과학은 과학자사회의 전형적 학문활동의 형태로서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라 말하고 있음. 결국 과학혁명은 구조적으로 기존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하겠음. 과학혁명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키워드는 패러다임인데 이 책에서도 상당히 다의적으로 쓰이고 있어 조금은 혼란스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과학지식의 발전이 누적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비축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저자의 견해는 옳으며 신선하다는 생각임.
*2009. 5. 7일
293.우리 숲 산책
*차윤정 저/웅진닷컴 간(2002)
*자연을 서로 돕고 사는 아름다운 것으로 볼 수 있고 아니면 살아남으려고 죽이고 죽는 이전투구의 현장으로 이해할 수 도 있을 터인데 어떻게 보느냐는 전적으로 보는 이의 관점일 것임. 실제 자연은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임. 자연을 아름다운 것으로 본다 해도 글로 그렇게 표현해야 하는데 자연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개가 이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어서 몇몇 분을 제외하고는 독자들과 유리된 글을 쓰기가 십상인데 저자는 이 점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임. 산행의 묘미에 빠져 저자 이상으로 산을 찾는 내게도 숲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전문적 지식과 자연의 언어를 사람들의 언어로 바꿔놓을 만한 능력이 없어 안타까울 뿐임. 아쉽다면 전문적인 내용을 더 많이 실고 감상적인 부분을 조금은 줄여도 좋겠다는 것임. 백두산 실사 레포트를 읽고 나자 다시 한 번 이 산을 오르고 싶다는 욕망이 일고 있음.
*2009. 5. 5일
292.한국의 자연지리
*김종욱외 12명 공저/서울대학교출판부 간(2008)
*인문지리학과 더불어 지리학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자연지리학이 어떤 학문인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첫 번째 수확임. 전통적으로 전해온 산경의 개념에 대비되는 산맥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분류되는 가를 안 것도 부수적인 수확임.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며 우리나라 산하에 관한 자연지리적 궁금증을 얼마간 풀 수 있었으며 수문환경에 대한 입문적지식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읽은 소득임. 이 책을 읽으며 궁금증이 더해진 것은 그렇다면 자연지리와 지구과학은 어떻게 구분되나 하는 것이었는데 한국의 지구과학은 존재할 수 없어도 한국의 자연지리는 존재할 수 있다는 것으로 나 나름대로 정리해보았음. 다시 말해 지구과학의 내용을 다루어도 전 지구적인 차원이 아니고 한국처럼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다른 점일 것이라고 생각해보았음.
*2009. 4. 29일
291.개선문
*에리히 M. 레마르크 저/홍경호 역/범우사 간(2007)
*독일서 태어나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소설을 내놓아 유명해진 저자는 나치의 집권으로 저자의 작품이 금서목록에 오르자 조국을 탈출하여 스위스에 머무르다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생활을 하면서 소설 “개선문”을 완성했음.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탈출해 파리에 밀입국한 주인공 라비크가 파리에서 무능한 의사들을 도와 환자들을 수술해주는 대가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중 혼혈 여인 조앙마두를 만나 사랑과 절망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음. 독일의 비밀경찰인 하아케를 살해해 계획했던 복수에 성공하고 갈등 속에 사랑을 나눈 조앙마두가 그의 애인에 총 맞아 죽어가는 시간을 함께한 주인공 라비크는 마침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키자 전시에 의사는 어디를 가도 할 일이 있다며 파리의 강제수용소로 자진해 들어가는데 그와 또 다른 밀입국자들을 실은 트럭이 어둠뿐인 개선문을 지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고 있음.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군상들의 제각기 다른 삶이 묘사되는 가운데서 특히 주인공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묘사가 돋보였다는 생각임. 어두운 주제를 너무 어둡게 그려내지 않고 삶의 긍정적 측면을 그리고자 한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자 함.
*2009. 4. 24일
290.담장 속의 과학
*이재열 저/사이언스북스 간(2009)
*“서구에서 수입된 현대과학을 담장 밖의 과학”이라 한다면, 이에 대비되는 “전통 문화 속에 농익어온 지혜와 지식을 담장속의 과학”으로 풀이한 저자는 대학에서 농생물학과를 전공했음에도 전통의 의식주문화를 통털어 주제로 삼고 이 문화 속에 자리 잡은 선조들의 지혜가 과학에 기초하고 있음을 예증하고자 많이 애썼음. 특히 김치나 된장 등 우리고유의 발효식품에 내재된 과학을 끄집어내어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논증한 것은 일반 독자들에 감흥을 불러일으켰을 것임.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담장안의 우리과학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그렇다면 담장 밖의 서구과학에 비해 너무 초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으니 이는 저자가 일반 독자들 모두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너무 쉽고 간단하게 써서 그러할 것임. 우리나라 저자들이 쓴 책들 중 꽤 많은 책이 저작료가 비싸서인지 번역본에 비해 책값이 그 내용에 비해 너무 비싸 불만인는데 이 책도 담장안의 과학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기에 턱 없이 부족하면서 책값이 너무 비싸 불만임.
*2009. 4. 20일
289.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유숙자 역/민음사 간(2008)
*서양무용론을 쓰는 것이 고작인 한 중년의 여행가가 온천 촌에서 17세의 게이샤와 만나 사귐을 갖는 지극히 통속적인 소재를 갖고 이리도 아름다운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말고 과연 누가 또 있을까 할 정도로 나를 매료시킨 작품이었음. 니가타에서 도야마까지 기차여행을 한 후 골짜기에 눈이 꽤 많이 남아 있는 8월의 다테야마를 오른 바가 있어 니가타 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겨울묘사가 낯설지 않았음. TV 드라마라면 저질의 연애드라마로 몰고 가도 인기몰이가 가능했을지도 모를 남녀의 통속적인 만남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여 당장이라도 달려가 주인공이 머물렀던 온천 촌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음. 이 소설을 통해 동양적 미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는 평을 받고 1968년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가 그 후 4년 후 자살로 만73년의 생애를 마감한 것이 안타까웠던 것은 백설의 순수함이 넘쳐나는 설국을 찾아 나서는 작가의 글쓰기 여행이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기 때문이었음.
*2009. 4. 17일
288.진보와 그 적들
*기 소르망 저/이진홍, 성일권 공역/문학과 의식 간(2003)
*프랑스의 지성인 기 소르망의 환경론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읽노라면 통쾌하기까지 한데 이는 우호적인 세력의 10년 집권으로 물을 만난 상당수 시민단체들의 위선적 행위에 염증이 났기 때문임. 환경론자들이 지구 온난화를 진정으로 염려한다면 GMO와 핵 발전을 적극 추진해야 하는데 이것들을 극력 반대하고 나서는 세력들도 또한 이들이라고 비판하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환경론자와 NGO의 거의 무조건적 반대를 시원하게 공박하고 있음. 저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장래의 사회는 영혼을 동반한 자유를 존중하는 "블루(blue)"를 제시하고 있으며 품위의 경제라든가 최소한의 악의 수용 등을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아직은 실체가 뚜렷한 것은 아닌 듯함. 이미 이념의 노예가 된 것으로 판단되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지난 10년간 향유했던 세속의 권력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한국사회에서 저자의 “블루”사회가 교조적인 그들을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지 이론일 수 있다는 생각임. 기소르망의 용기 있는 지성에 찬사를 보내고자 함.
*2009. 4. 12일
287.꿈길과 말길
*최일남 저/동아출판사 간(1995)
*작가의 소설이 어느 정도 향토색을 풍긴다 해도 문순태나 한승원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지는 것은 호남의 토착어를 상당히 절제해서 썼다는 것과 그러면서도 해학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임. 작가가 동아일보의 논설위원으로 일할 때부터 작가에 소리 없는 성원을 보낸 팬의 한 사람으로 “꿈길과 말길”을 보며 절박한 사회이슈를 다루면서도 흥분하지 않고 자기감정을 절제하는 작가의 노력이 느껴졌는데 이는 소설가이면서도 이 시대의 무게있는 언론인이기에 가능했을 것임. 정치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가정부 춘자를 통해 세태와 인심을 풀어본 “춘자의 사계”에서 심각한 고민보다 해학을 느낀 것은 춘자의 삶이 우리네 시골 누나들의 또 다른 형태의 삶일 수 있겠다 싶어서임. 이 소설에 나오는 우리말은 이제는 생명이 끝난 잃어버린 토착어가 아니고 지금 다시 써도 좋을만한 우리의 말들이어서 단어집을 만들어 정리해 볼 뜻임.
*2009. 4. 6일
286.읽기만 해도 재미있는 생물이야기
*요시다 쿠니히사 저/안소현 역/해바라기 간(2007)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다가 생물학에 대한 기본 지식의 결여를 통감하고 기초적인 생물서를 찾다가 읽기만 해도 개념과 원리가 쏙쏙 들어온다는 표지 글을 보고 이 책을 사 읽게 되었음. 생물학의 전 분야를 다루는 개론서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명과 세포, 유전과 생태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으로 저자가 쉽게 설명하느라 정성을 들였으며 표지 글처럼 개념과 원리설명에 애쓴 점이 돋보였음. 우선 어려운 내용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써 힘들지 않게 일독을 끝냈으며 몇 번은 더 읽어볼 생각임. 세포를 모르면 생명의 신비를 모른다며 세포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으며 이 책을 통해 세포와 유전자와 DNA의 차이점을 비로소 알 수 있었음. 또 식물이 동물에 비해 열등한 생물이 아니라는 저자의 설명에 전적으로 공감이 갔으며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지구에 가장 늦게 출현한 인류가 탐욕을 줄이고 다른 생물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지 않으면 인류도 다른 생물과 같이 멸종되어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음.
*2009. 4. 3일
285.T. S. 엘리엇
*요하네스 클라인슈티크 저/김이섭 역/한길사 간(1997)
*미국에서 건너간 영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T. S. 엘리엇을 만난 것은 대학 다닐 때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로 시작되는 “황무지”를 읽고 나서였으며 지금 기억해보니 전문은 아니고 “사자의 매장”의 일부이었음. 졸업 후 민음사에서 발간한 이재호 역편의 영미시인선집인 "장미와 나이팅게일” 을 사서 “사자의 매장”외에 “체스놀이”, “불의 설교”, “수사”와 “천둥이 한 말”등의 “황무지”시 5부 전부를 접할 수 있었는데 시가 하도 난해해 다 읽기를 미뤄오다가 요하네스 클라인슈티크의 본서를 사 읽은 후 다시 꺼내 황무지 전부를 읽게 되었음. 이 책을 통해 작가 T. S. 엘리엇이 어떤 인물인가와 에즈라 파운드, 보들레르, 예이츠, 키츠 등의 시인들과 단테, 세익스피어 등의 작가들과 어떻게 교섭했는가를 알 수 있었지만 이 책 또한 T. S. 엘리엇의 작품만큼 그 내용이 난해해 황무지를 다시 읽고 감상하는데 큰 도움이 안 되었다는 생각임. “예술가의 진보는 끊임없는 자기 희생, 개성의 끊임없는 소멸을 의미한다.”는 엘리엇의 신념과 그에 따른 작품이 적대적 비평가와 독자들을 많이 양산했다는 생각임.
*2009. 3. 30일
284.회색눈사람/경마장의 오리나무
*최 윤/하일지 저, 동아출판사 간(1995)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라는 제목의 소설로 처음 만나보는 작가 최 윤의 문체가 내게는 많이 생경해 어렴풋이나마 1980년의 광주 사태를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책을 접었을 것으로 그녀의 작품 중 “아버지감시”가 그 나마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음. 월북했다가 탈북해 중국에 사는 아버지의 나들이를 맞는 파리에 사는 유복자 막내아들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 “아버지 감시”를 읽고 시대의 뒤안 길로 밀려난 아버지들은 누구라도 이 소설의 아버지처럼 자식들과 이 시대의 주역들에 이런 저런 감시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 “경마장 가는 길”로 한 번 만난 작가 하일지의 “경마장의 오리나무”는 거의 단숨에 읽어내려 갈 정도로 복잡한 심리 묘사 등이 없었고 작가의 메시지는 저만치 물러서있는 채 절실하게 도망가야 할 이유도 없는 주인공의 엉터리 같은 도망기가 흥미를 끈 것은 누구라도 현재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도망가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기 때문일 것임. 50대 중반의 문체에서 대비되는 두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소설의 다양성을 실감했음.
*2009. 3. 27일
283.세계문화소사/현대문명비판
*H. G. 웰즈/A. J. 토인비 저, 지명관 역, 을유문화사 간(1974)
*내가 알고 있는 저명인사들이 감명 깊게 읽었다고 찬하는 “세계문화사대계”를 지은 영국의 사학자 H. G. 웰즈를 그의 또 다른 명저 “세계문화소사”를 통해 처음으로 만나 기뻤음. “세계문화사대계”는 개인이 사서 소장하기는 너무 방대해 아직 읽지를 못했는데 이번에 단행본 분량의 “세계문화소사”를 읽고 나서 세계는 자기와 자기 나라를 고집해서는 전쟁 등의 재앙을 피할 수 없으며 이 연장선상에서 저자가 아편전쟁을 주도한 영국의 비도덕성을 질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다만 중국의 역사를 거의 다루지 않은 저자의 편협함도 같이 보아 씁쓰레한 느낌도 같이 들었음.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틀로 설명해온 아놀드 J.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등을 저술한 존경받는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임. 희랍문명의 역사적 위치를 이 책에서 다시 확인했고 기독교를 위시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와 이 종교들이 가교역할을 한 문명들과의 관계를 일별할 수 있었음. 진보란 각 개인이 자유로 사용할 수 있는 은총의 방법이 누적적으로 증대하는 일이라는 저자의 한 마디를 새겨보고자 함.
*2009. 3. 26일
282.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잔네 파울잔 저/김숙희 역/풀빛 간(2002)
*중학교 때 멘델의 유전법칙을 배웠으면서 식물이 성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 알았다는 것은 식물에 대한 나의 시야가 극히 제한적이었음을 말해준다 하겠음. 꽃이 바로 식물의 성기임을 들려주는 이 책에서 저자는 식물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여러 관점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어 종주산행을 하면서 식물들에 항상 궁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내게는 고마운 책임. 유전자변형식물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점이 나와 상반된 부분이지만 식물이 생장하고 죽을 때가지 그들이 어떤 언어로 살아가고 있는 가를 보여주고 외부환경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 가 등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들을 일상적인 언어로 묘사한 저자의 노력 덕분에 이 책이 “2001 독일청소년문학상 논픽션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생각임.
*2009. 3. 21일
281.백 년 동안의 고독
*G. 마르케스 저/안정효 역/문학사상사 간(2008)
*우리나라에서 출간 11년 동안 3판8쇄를 낼 만큼의 스테디셀러인 이 책을 통해 중남미의 문학을 처음 만나본 것이 큰 수확임.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 소설은 100년 만에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는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를 현실과 환상이 혼재된 작가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음. 소설 첫 부분에 가계도를 그려놓지 않았다면 도저히 기억해 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부엔디아 가문이 마콘도 마을을 건설해 살아나가다 외부의 문명과 접하면서 이 마을이 붕괴되고 근친상간으로 돼지꼬리가 달린 애를 낳는 것으로 100년만에 종말을 맞는 이 가문의 영고성쇠가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그려낸 이 소설을 읽고 저자의 조국인 콜롬비아의 근대사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음. 우리나라 작가들로는 소재로 삼기 어려운 근친간의 무절제한 성생활 및 환생한 집시의 묘사 외에도 소설 전 편에서 감지되는 신비로움 때문에 새로운 감흥이 일었음.
*2009. 3. 19일
280.섬진강 따라 짚어가는 우리 역사
*신정일 저/판미동 간(2007)
*불의의 추락사고로 허리를 다쳐 섬진강산줄기 환주산행을 마치지 못해 섬진강 탐사를 늦출 수밖에 없기에 이 기간 중 섬진강 답사기를 구해 읽어보려 했으나 여의치 못해 미뤄오는 중 이달 초순 광화문의 교보문고를 뒤져 간신히 구한 책이 바로 이 책임. 저자의 “섬진강 따라 걷기”는 절판되고 청소년을 위한 역사체험여행서로 이 책을 낸 것 같은 데 따라 걷기를 안내하기보다는 강 주변의 문화재나 전설 등의 소개가 주여서 탐사 길에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임. 저자의 한강과 낙동강 탐사기를 이미 읽은 터라 저자의 문체에 많이 익숙해졌고 섬진강을 둘러싸고 있는 호남기맥과 호남정맥 및 금남호남정맥 종주를 마친 터라 지명도 많은 익은 편이어서 내용이해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음. 이 책을 읽고 나서 220Km의 섬진강 강줄기를 걸으며 이 강 주변의 문화재를 답사해 소개하는 저자의 열정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음. 저자의 강줄기탐사기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분만큼 강이 엮어낸 문화유산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감탄하면서도 강 자체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문화유산기만 범람해 본말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임. 또 이 강들에 물을 대는 산에 대한 기술이 너무 적어 문화유산답사기로는 훌륭할지 모르나 탐사기로는 2%이상 부족하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생각임.
*2009. 3. 15일
279.해방 전후
*이태준 저/동아출판사 간(1996)
*월북작가의 작품을 통으로 읽어보기는 이 소설집이 처음임. 안티 레드가 사회를 풍미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운동권이 아니었다면 읽기 쉽지 않은 월북작가의 작품이어서 흥미를 가졌는데 이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음. 일제 때는 이효석과 더불어 좌익작가들의 카프에 대항해 결성된 9인회의 일원이었던 작가가 해방되고 나서 좌익으로 전향한데는 그 만의 타당한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세류에 부응해 배를 바꿔 탄 것이라면 그의 불행한 인생말기는 인과응보적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음. 그의 전향에 비판적인 비평가들도 있을법한데 그런 내용의 글을 읽어보지 못한 나는 그의 해방 후 작품인 “농토”에서 그의 전향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생각했으나 막상 읽어보니 자본주의에 대한 치열한 증오는 찾아보지 못했음. 나이 든 한 작가가 경주여행 중 한 처녀와의 만나 겪는 심리적 변화를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린 “석양”과 돌다리를 다시 놓는 한 노인의 땅에 대한 신념을 묘사한 “돌다리”등 해방 전의 작품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자 함. “석양”에 인용되어 실린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석양은 무한히 좋으나 다만 황혼이 가까워 온다. 李義山 著)라는 시구를 읽고 그 것이 바로 인생임을 어찌 하겠는가 싶었음.
*2009. 3. 13일
278.철학강요
*헤겔 저/서동익 역/을유문화사 간(1975)
*철학이란 국어사전에 적혀있는 것처럼 세계, 인생, 지식 등의 근본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을 일컫는다면 철학이 단순히 철학자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보통사람들에도 유익한 학문이라 판단되는데 이 책은 그 내용이 너무 난해해 철학자들의 도움이 없이는 일반 독자인 내가 읽고 소화하기가 너무 어려웠음.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의 3개 부문으로 구성된 이 책을 읽으며 놀란 것은 철학자인 헤겔의 역학, 물리학 등의 자연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었음. 책 내용이 너무 난해해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거의 유일한 소득은 이 책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명제를 만나 헤겔의 설명을 들은 것이라 하겠음.
*2009. 3. 11일
277.해변의 길손
*한승원 저/동아출판사 간(1995)
*전남 장흥이 낳은 이 시대의 작가인 이청준 선생의 타계를 큰 손실로 생각해온 내게 작가 한승원을 만난 것은 또 다른 시각의 남도문학을 접할 수 있어 기쁨이었음. 이청준 선생의 작품 중 향토색 짙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한승원의 소설은 “해변의 길손”, “폐촌”, “포구의 달” 등 모두가 토속의 언어들이 벌이는 향연 같았음. 남과 북, 바다와 무속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키워드가 틀림없는 것 같고 이는 작가가 전설어린 천관산이 자리하고 남해바다에 면한 장흥에서 다 크기까지 살아서일 것임. 이 책으로 처음 만난 작가 한승원이 구수하면서도 예리한 토속 언어들로 잘 차린 소설이라는 밥상에 앉아 한 톨도 남가지 않고 자근자근 씹어가면서 정말 맛있게 들었음. 기회가 닿으면 2000년대에 쓴 작가의 작품이 어떤 변화가 있나 한 번 사서 읽어보고자 함.
*2009. 3. 7일
276.탈무드
*강영희 엮음/브라운 힐 간(2007)
유태인들의 지혜서로 일컬어지는 탈무드를 읽고 나서 이 책은 단순히 책이 아니고 위대한 문학이라는 이야기가 참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구약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 탈무드는 기원전 5백년에서 기원 후 5백년에까지 구전되어 오던 것을 10년에 걸쳐 2천명의 학자들이 편찬해낸 책으로 그 내용이 장장 1만2천 페이지에 실려 있기에 탈무드의 완역본을 읽은 다는 것은 아예 가능치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이번에 읽은 이 책은 오자와 탈자가 많고 번역 때 참조한 원전도 밝혀지지 않아 내용이 관계없이 상당히 실망했음. 나름대로 책을 잘 골라온 내가 할인판매라 하더라도 어엿한 서점에 진열되어 있어 주저 없이 산 것이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음. 키신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옛 이야기와 오늘 이야기가 섞여 있고 동양의 가정교육과 과장되게 비교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이 정말 탈무드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음.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두뇌는 비교하지 말고 개성을 비교하라는 탈무드의 한 가르침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자 함.
*2009. 3. 6일
275.제3의 침팬지
*재레드 다이아몬드 저/김정흠 역/문학사상사 간(2005)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책에서 제3의 침팬지는 피그미침팬지나 일반 침팬지와 98.4%의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1.6%의 차이로 인간이 되었음을 밝혀 놀랐는데 핵과 환경파괴로 이 인간이 멸망의 위기에 서있음을 경고해 더욱 충격적이었음. 1.6%의 차이로 도구를 발명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예술을 키워온 인간에게 집단대학살이라는 제노사이드의 성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진실들을 부지런히 얘기해주는 저자에게서 학자의 냉엄함과 인류애를 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학자들의 노력이 결실되어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핵폭탄과 환경파괴의 검은 구름을 거둬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음. 현세인류의 시초라는 크로마뇽인이 나타나는 대약진 기간 중 네안데르탈인들이 사멸된 것이 제노사이드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자 1.6%의 차이가 우리가 발붙이고 살고 있는 지구의 종들에 좋은 영향만을 준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임. 인류의 앞날이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지혜를 모아 인류의 멸망을 막아야하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런 희망이 보인다고 끝맺는 저자의 바람이 헛되지 않도록 환경파괴방지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2009. 3. 4일
273-274.현대과학의 풍경
*피터 보울러, 이완 리스 모러스 공저/김봉국, 홍성욱 역/궁리 간(2008)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와 뉴턴 등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불릴만한 과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17세기의 과학혁명에서 현대의 인간과학(행동과학)에 이르기까지 현대과학의 발달을 개관한 과학사 서적임. 이 책은 단순히 과학의 역사적 업적을 시대순으로 배열해 설명한 것이 아니고 에너지 보존, 다윈 혁명, 대륙이동설 등의 세기적인 과학의 아젠다를 다뤘을 뿐만 아니라 과학과 종교, 이데올로기, 젠더, 의학 및 전쟁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도 함께 다루어 과학사 서적의 지평을 넓혔다는 생각임. 모든 문제는 결국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기에 과학자들의 소망과는 달리 과학이 순수한 과학으로 머무르지 못하고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면 이제껏 과학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가를 고찰하는 이 책의 과학사 접근방법도 크게 유용할 것임. 원제 “Making Modern Science"를 ”현대과학의 풍경“으로 바꾼 것은 이 책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음.
*2009. 3. 1일
272.김강사와 T교수/모밀꽃 필 무렵
*유진오, 이효석 저/두산동아 간(1997)
*소설가 유진오와 이효석의 작품들을 한 묶음으로 해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저자들이 일본 강점기에 작품활동을 한 동시대의 작가이고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니즘을 따랐으나 그들의 예술단체인 카프(KAFF)에 가맹하지 않은 동반자작가로 출발했기 때문일 것임. 유진오의 “여직공”, 이효석의 “노령근해”등이 좌향적 작품으로 분류되나 정작 유진오의 대표작인 “김강사와 T교수”나 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은 마르크시즘에서 탈피한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음. 고교 국어교과서에서 읽었던 유진오의 “창랑정기”를 다시 읽을 수 있어 좋았고 이효석의 향토색 짙은 작품들에 숨어 있는 형용사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어서 반가웠음. 일제강점기의 시대상과 우리 조상들이 그 시대를 살면서 어떤 애환을 겪었는가를 엿볼 수 있었음. 유진오는 일제 말에 절필하고 이효석은 요절해 해방 후의 작품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음.
*2009. 2. 27일
271.부초
*한수산 저/두산동아 간(1997)
*1978년 1월 집사람과 함께 서해안으로 겨울여행을 떠나면서 사 들고 간 책이 바로 한수산의 “부초”였는데 21년 만에 다시 읽었는데도 그 때의 감흥이 고스란히 다시 살아나는 느낌임. 결혼 그 이듬해 교직에 몸담고 있던 우리 부부가 겨울방학 때 함께 떠난 여행의 첫 기착지가 충남의 수덕사였고 근처 여관에서 일박하며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이 바로 이 책이었음. 시대에 밀리는 써커스단 단원의 생활상과 이들의 애환을 그린 부초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갈보가 구경 오면 그게 구경꾼이지만 우리가 갈보집엘 가면 그 땐 우리가 구경꾼이잖아.”하면서 “어디엘 가든 내가 디디고 있는 땅이 무대가 아니겠어. 하늘이 천막이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목숨가지고 어디든 발을 붙여 볼란다.”하는 주인공 하명의 절규가 가슴 깊이 와 닿았음. “부초”외에 ”사월의 끝”등 중편소설 몇 편이 더 실렸는데 “회선”의 분위기는 “부초”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임.
*2009. 2. 24일
270.103인의 현대사상
*김우창 외 엮음/민음사 간(1996)
*20세기를 주도한 사상가들의 면면들을 한 책으로 만나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기에 이 책이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임. 이 책의 첫머리에 실린 지평융합을 주창한 독일의 한스 게오르규 가다머부터 생면부지의 철학자여서 당황했는데 페이지를 더하면서 내가 저서를 읽었거나 지면을 통해 이름을 익히 들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고 그 분들의 철학 사상과 학문적 업적을 읽을 수 있어 뿌듯했음. 103인의 사상가 속에 중국학자가 한국인과 똑 같이 세 분 밖에 실리지 않은 것은 편집자들이 밝힌 대로 자료수집의 어려움 때문에 서구사상가들에 국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 해도 너무 서구 쪽으로 경도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음. 이 책에 실린 아인슈타인, 하이제베르크, 닐스 보어 등의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철학자들이 수학과 과학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고 이분들은 벌써 학문의 통섭을 실천한 분들이다 싶었다. 내 서재에 꽂혀 있는 철학 사상관련 서적들이 이 책에 실린 분들이 지은 책임을 확인하고 내가 좋은 책을 잘 골라왔다는 자부심도 생겼음. 20세기를 풍미해온 수많은 과학적 업적과 철학 및 사상들을 이 책에서 조우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만의 기쁨임.
*2009. 2. 21일
269.택리지
*이중환 저/이익성 역/을유문화사 (2008)
*조선조 숙종 때인 1690년에 태어나 영조 때인 1752년에 숨진 실학자 이중환이 지은 지리서로 사민총론, 팔도총론, 복거총론과 총론의 4부로 구성되어 있음. 팔도의 지리적 특징과 사는 사람들의 인품을 논한 팔도총론과 어디에다 살터를 잡는 것이 좋을 것인가를 지리, 생리, 인심과 산하의 기준을 따져 전국의 명소를 실은 복거총론이 택리지의 주요내용으로 간간이 대간과 정맥을 지칭하는 산들이 실려 있기도 함. “풍수지리적인 요소를 강조하면서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연현상과 인간생활과의 관계를 찾으려고 한 점에서 최초의 인문지리서”로 평가받는 것으로 적혀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내용이 조금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안도와 전라도는 가보지 않았다면서 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해 풍수지리의 병폐를 드러낸 것은 이 책의 객관적 가치를 저하시켰다는 판단임. 유득공의 발해고나 이중환의 택리지 모두 조선조에 쓰인 최초의 발해역사서이며 인문지리서라는 면에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하나 내용은 그리 실해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내 솔직한 의견으로 이는 주자의 성리학이 조선조 지식인들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결과일 것임. 정조에 이르러 다산 정약용이라는 불세출의 실학자를 만날 수 있도록 한 유득공이나 이중환 등의 선도적 역할만으로도 이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고자 함.
*2009. 2. 19일
268.백두대간의 역사
*장성규 저/한국학술정보(주) 간(2008)
*백두산의 어원과 대간, 정간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쓰였는가를 문헌적으로 고증한 이 책에는 산경표가 만들어지기까지 선조들의 어떻게 노력해왔는가도 함께 실려 있음. 백두대간과 대간에서 갈라져 나와 바다로 뻗어가는 산줄기들을 일목요연하게 족보 식으로 표기한 산경표가 만들어지기까지 선조들이 나름대로 우리의 산줄기와 강줄기를 지도에 그려왔으며, 성호새설에서 백두대간의 용어가 처음 쓰인 이래 이중환이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대간과 정맥을 명확히 지칭하지는 않았어도 이들 산줄기의 흐름을 실었고, 여암 신경준이 이들을 집대성해 산수고를 지었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음. 이러한 선조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인 산경표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임. “백두대간의 역사”라는 제목에서 시사하는 것과는 달리 백두대간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이 대간에 누가 살아왔으며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고찰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음. 백두대간의 어원을 찾아서 고전을 섭렵한 저자의 노고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대간의 남한 땅을 종주한 나로서는 백두대간이라는 말이 어느 문헌에 있느냐를 밝히는 것에다 대간이 지질학적으로 어떻게 생성되었고 언제부터 사람들이 자리 잡아 살기 시작 했는가 등이 추가로 실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았음.
*2009. 2. 17일
267.꿈의 해석
*지그문트 프로이드 저/장병길 역/을유문화사 간(1974)
*무의식의 심리학을 주창한 오스트리아의 의사인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1900년에 지어낸 이책에 의해 심리학의 지평이 열렸음. 꿈은 하나의 소원충족임을 여러 실례를 들어 논증하면서 꿈을 해석하는 키워드로 섹스를 사용한 것은 당시로는 놀랄만한 것으로 여론의 지탄도 많이 받았다고 함. 이 책을 통해 오디프스 컴플렉스를 다시 확인했으며 꿈의 기저에 무의식의 작용이 있음도 배웠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꿈에 의한 미래의 예지는 물론 생각될 수 없다. 그 대신 꿈은 과거를 가르쳐준다.”를 다시 곱씹어 보는 것은 꿈의 해석이 미래를 점치는 Fortune Telling이 아니고 환자의 과거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어 환자치료에 활용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생각 때문임. 34년 전에 사놓은 이 책을 이제야 꺼내 보는 바람에 수많은 꿈의 해석 실례가 실렸음에도 세로편집과 한자혼용 및 고루한 표현으로 읽기가 많이 힘들었음.
*2009. 2. 12일
266.부활
*L. N. 톨스토이 저/최경준 역/홍신문화사 간(2007)
*고교시절 부활(復活)의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나를 잘 알지 못한 채 읽었던 이 작품을 다시 편 것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등 저자의 대표작을 읽고 나자 또 하나의 대표작인 이 소설을 빼놓고 싶지 않아서였음. 젊어 한때 불장난을 참회하고자 지주로서 기득권을 거의 포기하고 여죄수 카튜사를 돌보고자 유형지로 같이 떠나는 네흘류도프 공작을 순애보의 주인공으로만 생각해왔는데 이번 독서로 그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 분 안에서 부활의 기쁨을 맛보는 참다운 크리스챤임을 깨달았음.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에서 엿볼 수 있었지만 제정 러시아의 더할 수 없이 부패하고 백성들에는 오직 군림만 하는 관리들과 상류사회계층들의 병폐가 적나라하게 묘사된 이 소설을 보고 레닌의 공산혁명의 역사적 당위성을 부정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저자의 휴머니즘이 잘 드러난 소설로 감명깊게 읽었으나 또 한편 얼마간은 한물간 계몽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도 같이 들었음.
*2009. 2. 9일
265.발해고
*유득공 저/정진헌 역/서해문집 간(2008)
*서얼출신으로 북경을 몇 번 다녀온 유득공이 검서관으로 일하면서 발해고를 지어 펴낸 것이 조선조 정조 8년의 1784년이었음. 이때야 비로소 발해의 역사가 우리나라 역사로 편입되었으니 그동안 모화사상에 빠진 선조들이 발해를 외면했음이 새삼 부끄럽게 느껴졌음. 저자가 발해고를 쓰기 위해 참고한 문헌이 “구당기”등 22책으로 전해지고 있음. 이 중 삼국사기 등 6책만이 우리 책이고 나머지 16책이 중국문헌일 정도로 선조들의 발해역사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것이 없기에 뒤늦게나마 저자가 지어낸 발해고가 더욱 가치 있다는 생각임. 발해의 역대임금, 신하들, 지리, 관직, 의장, 특산물, 언어, 외교문서와 그 후예 등을 내용으로 담은 발해고는 우리 선조가 최초로 지은 발해역사서라는 역사적의미를 뺀다면 그 내용은 그리 실하다고 여겨지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오래 잊혔던 북쪽의 발해와 그 아래 남쪽의 신라를 묶어 남북국시대론을 주창한 저자의 논리가 중국의 동북공정론의 부당함에 쐐기를 박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음.
*2009. 2. 7일
264.러시아에서 그 분과 함께
*월터 J. 취제크 저/최진영 역/바오르 딸 간(1996)
*미국인 신부인 저자는 1940년 러시아에 잠입해 종교활동을 하다가 그 이듬해 러시아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됨. 강제노동형을 선고받고 부틸카수용소와 시베리아에서 강제노동을 하면서 틈틈이 신자들을 위해 사목활동을 하면서 1955년 만기출감하기까지 저자가 겪은 가혹한 고초는 신의 가호가 있어 이겨냈을 것임. 만기출감후에도 KGB의 감시아래 지방소도시에서 공원생활을 하다가 1963년 풀려나 미국으로 귀환하기까지 저자가 겪어온 고행과 사목활동을 담담하게 그려내 카톨릭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이 공감했으리라 생각됨. 저자가 겪는 수난과는 별개로 소련연방의 치하에서 종교를 갖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알았는데 이 책을 보고 비공개적으로는 어느 정도 종교 활동이 용인된 것이 아닌가 싶었음. 작년도 기독교박해국 중 첫 번째로 꼽히는 나라가 북한이라는 발표를 보고 종교의 자유가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원조나라인 구 러시아만도 못한 21세기의 북한정치체제와 그 지도자들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당혹스러울 뿐임.
*2009. 2. 5일
262-263.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저/최원준 역/홍신문화사 간(1999)
*세계적인 문호로 칭송받는 톨스토이의 대작답게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안나카레니나”라는 한 자유부인의 사랑행각을 차분하게 그려진 소설로 당대 러시아의 사회상 및 귀족들의 사상편린을 들여다볼 수 있었음. 주인공인 안나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마치 자유롭지만 부도덕한 한 여성의 삶을 찬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은 이 소설이 톨스토이의 3대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역정이 메스껍지 않고 담백하게 그려졌고 레빈이라는 한 비중 있는 인물이 종교로 귀의하는 과정의 환희를 그리는 것으로 이 소설의 대미를 맺어서일 것임. 수많은 귀족들의 생활이 별반 생산적이지 못해 기층사회를 이루고 있는 농민들의 존경을 받기가 힘들었을 텐데 이점에서 농민들과 더불어 사는 레빈이 톨스토이가 그리는 귀족의 모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함. 이 소설을 읽고나서 감각적인 묘사가 주를 이루는 현대작가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함과 중후함이 톨스토이의 위대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톨스토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토스토예프스키 작품보다 밝다는 느낌임.
*2009. 2. 3일
261.한국의 철학사상-자료와 해설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상연구소 편/예문서원 간(2001)
*주술적 무속신앙에서 출발한 한국사상이 어떻게 오늘에 이르러 우리의 사상과 철학으로 정립하게 됐는가를 시대 순으로 보여주는 800페이지가 넘는 사상서로 고려대가 정말 큰일을 한 것임. “한국의 고유사상”, “한국의 불교사상”, “한국의 도교사상”, “한국의 성리학 사상”과 “한국의 실학과 근대사상”의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내가 지금껏 이름으로만 알아온 선현들의 사상과 철학을 접하게 되어 우리 사상을 얼마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음. 이 책을 일고나서 내가 느낀 것은 조선조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판단되는 성리학의 이기론 논쟁은 선비들과 사대부들의 다툼이었지 백성들을 위한 것이 못된 것은 성리학의 근원적 한계라는 것임. 이 책 말미에서 만난 분이 혜강 최한기선생인데 조선조 말기에 이르러서야 선생에 의해 성리학이 무조건 따라야 할 지존의 것이 아니고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는데 이미 늦었다는 판단임. 이렇다 할 선생의 후학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실학의 대가인 다산 정약용을 뛰어넘는 과단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2009. 1. 30일
260.깊고 푸른 밤
*최인호 저/동아출판사 간(1996)
*“별들의 고향”이나 “고래사냥‘등으로 필명을 날린 작가에 우호적이지 못했던 것은 그의 작품이 너무 세속을 따르는 대중성이 너무 강해서였음. 작가의 필력은 인정해도 최인훈이나 이청준 선생의 작품보다 예술성에서 뒤진다고 생각해온 내가 작가의 작품 중 처음 사서 읽은 것은 역사소설인 상도였으며 대중성이 상당히 배제된 이 소설을 보고 작가에 긍정적 시각을 갖기 시작했음. 이번에 읽은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나름대로 문제작이라 생각되며 내게 다가온 것은 "깊고 푸른 밤"보다는 “무서운 복수”였음. 나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1970년대 초반 대학생활을 하면서 데모에 참여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했엇기에 공감이 많이 갔음. 1970년대의 시대적 특징이 도시화라면 이 책에 수록된 거의 모든 작품들이 도시화의 이면이 잘 그려내고 있어 1970년대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음.
*2009. 1. 29일
259. 단테의 비밀의 집회
*줄리오 레오니 저/김효정, 최병진 역/황매 간(2008)
*신곡을 지은 중세 이탈리아의 시인인 단테(1265년-1321년)를 주인공으로 한 이 책은 이탈리라 최고의 역사추리소설가인 줄리오 레오니 작품으로 단테가 태어나고 자란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이나 “단테의 빛의 살인”과는 달리 로마를 배경으로 쓰여 진 소설임. 피렌체의 대사로 교황청에 파견되는 단테가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한 여인의 살해사건을 목격한 후 이 사건의 실상을 파악하기까지 과정을 그린 추리소설임. 원로원의 스파다의원이 이단의 종교에 빠져 그의 딸 피암마를 보니파키우스 교황을 폐하고 그 자리에 앉히고자 십자군원정을 가장하여 반란을 일으키나 결국 실패하는 과정에서 이 의원과 추종세력이 이단의 종교의식을 따르고자 로마의 비천한 여인들을 죽이는 살해동기를 밝히는데 스릴과 긴장감, 그리고 반전을 맛보는 추리소설 본래의 재미는 얼마 전에 본 “밀레니엄 ”보다 조금 떨어진다는 생각임. 지난해 11월 문병 온 나뭇꾼님이 선물로 준 책으로 고맙게 잘 읽었음.
*2009. 1. 28일
258.한국문화유산 답사기(2)
*이형석 저/홍익재 간(2006)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의 책으로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제목을 달다니 하고 못마땅해 할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은 웬만한 아마추어도 이보다 나은 책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십상이기 때문임. 저자의 “한국의 강”이라는 비슷한 책을 읽어 찬사를 아끼지 않은 나도 문화유산답사에 어울리지 않는 하천답사기가 실리고 또 편집 잘못인지는 몰라도 글이 중간에 잘린 채 마무리된 곳도 여러 곳 있는 이 책에 후한 점수를 주기가 주저됐음. 이러한 몇 가지 흠을 바로 잡는 다면 사실에 충실하고 미사여구가 동원되지 않고 전문작가들이 쓴 책보다 훨씬 참고할 자료가 많다는 생각임. “우리나라 서쪽 끝 마안도”나 “백두산정계비와 간도를 중심으로 토문강과 두문강 연구”는 한국하천연구소장으로 일하며 발로 뛰는 저자의 작품다웠음.
*2009. 1. 26일
257.만다라
*김성동 저/동아출판사 간(1996)
*1947년에 태어난 작가의 작품에 공감하는 것은 내가 그와 동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 것임. 법운스님이 파계승 지산스님을 만나 동행하며 고심하다가 끝내 파계해 환속하기까지 심리적 갈등과정을 묘사한 만다라가 유사한 삶을 살아온 그의 대표적인 종교소설이라면 작가가 환속 후 쓴 소설 중에 좀 지루하기는 해도 가슴에 찡하게 남는 것은 풍적이 아닌가 함. 526번 사형수 김일봉이 사형을 당한 후 그 영혼이 삼도천과 흑백강을 건너 아들 영복의 집으로 귀향하는 과정을 그린 중편소설 풍적은 6.25 전쟁이 빚어낸 대표적인 문학작품이라는 생각임. 작가의 작품 전편에 흐르는 휴머니즘은 주의나 종교에 경도되지 않는 중립적인 것을 표방하면서도 딱 부러지게 이거다 하지 못하는 것은 1980년대까지 이 사회를 풍미한 반공주의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작가에게서 평등이 중시되는 약간은 좌편향적인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음. 이 소설을 읽고 진정한 휴머니즘은 보통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을 똑 같이 중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음.
*2009. 1. 24일
256.성호 잡저
*이 익 저/이익성 역/삼성문화재단 간(1972)
*1681년에 태어나 1763년에 별세하기까지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전심한 성호 이익 선생이 지은 이 책은 공거사의(貢擧私義)를 비롯해 총 20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음. 이 논문 모두가 국리민복을 위해 기존 제도의 병폐는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해야하는 가를 적시해 선생의 실사구시를 기본으로 하는 실학의 참 모습을 엿볼 수 있었음. 붕당론에서 붕당은 말과 얼굴빛이 공손하지 못하거나 동작이 고약해 일어난다는 기존의 표면적인 진단을 거부하고 밥그릇 즉 자리는 적은 데 적어서 차지하고자하는 사람들은 많아서 그런 것이니 과거를 줄여야 한다고 진단한 것 등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 올바른 대처방안을 내놓았다는 생각임. 다만 논전화(論錢貨) 편에서 화폐유통을 반대한 것은 당시의 경제상황을 잘 알지는 못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처방이 아닌가 싶음. 선생을 흠모하여 따르는 제자들이 많아 후대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안정복, 권철신,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등이 선생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많이 받은 분들이라 하니 출사해 3정승에 오른 재상들 못지않게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 하겠음.
*2009. 1. 22일
254-255.밀레니엄 I-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스티그 라르손 저/임호경 역/아르테 간(2008)
*집에서 요양 중인 내게 독서는 아주 유효한 시간보내기 프로그램임. 작년 12월 고교동창이 빌려준 22권의 책들이 얌전히 등을 눕혀 골절된 흉추를 다독거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명작이 아닌 현대소설을 그것도 아프카니스탄이나 스웨덴 등의 생소한 나라의 작가들이 쓴 소설을 접할 수 있게 해주었음. 빌린 책 중 마지막으로 읽은 스웨덴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이 쓴 이 소설은 밀레니엄 3부작의 1부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편으로 소설내용이 부제가 시사한대로 정신 나간 일가의 남자들이 여성들을 얼마나 잔혹하게 대하는 가를 보여주고 있음. 재벌인 반예르가의 한 소녀가 아버지와 오빠로부터 근친상간을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외국으로 잠적하고 주인공인 밀레니엄잡지사 기자가 이 소녀의 작은 할아버지로부터 의뢰를 받아 이 소녀의 자취를 추적하면서 진실을 밝혀내는 추리소설로 인간의 잔혹한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음. 중간에 반예르가의 소개가 너무 장황해 추리소설의 스피드한 맛이 떨어졌으며 소재가 우리나라 소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근친상간 이상의 것이어서 쇼킹했음. 한 겨울에 기온이 영하 37도까지 떨어진다는 글을 읽고 그런데서 어떻게 살 수 있겠나 싶었으며 그러한 스웨덴의 겨울이 음울한 이 소설을 낳았을 것이라는 생각임.
*2009. 1. 21일
253.그 분과의 만남
*케네드 N. 테일러 저/박용일 역/성요셉출판사 간(1988년)
*1월1일의 “야훼께서 몸소 너의 앞장을 서 주시고 너의 곁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너를 포기하지도, 버리시지도 않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도 말라.”에서 시작하여 12월31일의 “정복할 땅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로 맺기까지 매일 한 말씀 씩 선정해 성경말씀으로 풀이까지 해주는 매일묵상집임. 매일 한 페이지씩 성경말씀 내용을 인용해 담은 이 책을 통해 바쁘다는 사람들도 그 분과의 만남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 고마운 종교서임. 지난 해 3월까지 읽고 이번에 마저 다 읽었는데 다시 천천히 매일 한 페이지씩 읽어 매일 묵상집으로 활용하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엮은 본뜻이기에 그리해볼 생각임. 나보다 11년 먼저 세례를 받은 집사람이 물려준 것을 이제 뒤늦게 일독을 마친 것임.
*2009. 1. 19일
252.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저/이미선 역/열림원 간(2008)
*미국으로 이주한 아프카니스탄 출신의 자가인 저자가 영어로 미국에서 내놓은 이 소설은 주인공 아미르가 아프카니스탄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되짚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됨. 하인으로 생각했던 하산이 아미르 자신 때문에 곤경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자리를 피한 것을 비겁하다며 나이 들어 어른이 되어서도 고통스러워하는데 그 하산이 이복동생인 것을 나중에 알고 부모를 잃은 하산의 아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기까지 심리적 변화를 잘 묘사하고 있음. 조카이자 하산의 아들이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말을 잃고 칩거하다가 아미르가 이 조카와 함께 연을 날리다 조카를 위해 연을 쫓아가며 조카의 웃음을 되찾아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고 있음. 일제침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50-60년대의 우리나라를 연상토록 하는 소련군 주둔과 탈레반의 악정에 시달려온 아프카니스탄의 비극이 소설의 배경이 되어 더욱 관심을 갖게 했음. 작가의 흥분된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주인공의 성장과 갈등을 묘사한 이 소설은 보기 드문 수작으로 생각됨.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에 비견될 386홍위병들의 정치세력을 2007년 12월 대선으로 물러나게 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은 아직도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이 저지른 역사적 비극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임.
*2009. 1. 17일
251.진화란 무엇인가
*에른스트 마이어 저/임지원 역/사이언스 북스 간(2008)
*1970년대 교직에 5년간 몸담으면서 화학, 지학, 물리는 시골 고등학교의 고3입시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어 이 분야 책들은 어렵지만 읽어낼 수 있는데 유독 생물만은 전공도 아닌데다 한 번도 가르쳐본 적이 없어 생물 관련 도서를 읽는 것은 여전히 내게는 난제임에 틀림없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고 이 저자가 추천사를 쓴 이 책을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우선 용어의 뜻을 헤아리지 못해 참으로 힘들게 읽었고 내용도 상당부분 그냥 흘려보내야 했음. 진화란 생명이 출현한 이래 생명의 세계가 발달해온 점진적 과정이며 자연선택의 대상은 유전자나 종이 아니고 개체이며 인간의 의식도 동물의 의식으로부터 진화해왔음을 아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음. 결국 책방에 가서 “읽기만 해도 재미있는 생물이야기”라는 쉽고 재미있다는 생물관련 책을 한 권 샀는데 이 책에서 기초를 읽힌 후 진화에 관한 책들을 다시 읽어볼 생각임.
*2009. 1. 16일
250.성벽/징소리
*조선작, 문순태 저/동아출판사(1996)
*두 작가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에 반가웠음. 조선작은 동아일보 연재소설 “미스양의 모험”을 통해서 만났고, 문순태는 “말하는 징소리”로 내 머리에 오래 각인되었던 작가였음. 이 책에 실린 조선작의 작품이 주로 도시하층 그룹의 삶을 그렸다면 문순태는 전라도 시골의 향토색 짙은 시골출신들의 고달픈 삶을 끈질기고도 감칠 맛나게 잘도 그렸다는 생각임. 이청준 선생의 작고로 남도 작가를 잃었다고 생각해온 내게 문순태를 다시 만난 것은 커다란 기쁨임. 잊혀 저 가는 그 지방 방언들이 그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다시 몇 권을 사서 읽어볼 생각임. 찡하게 가슴에 다가온 "징소리”를 연작으로 써낸 작가에 고마움을 표하며 어찌하면 이런 글을 남길 수 있을까 부럽기도 했음. 지난 해 여름 이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된 백암산을 호남정맥 종주 차 지나서 더욱 생생하게 그려졌음.
*2009. 1. 14일
247-249.전쟁과 평화
*L. N. 톨스토이 저/최일호 역/홍신문화사(2001)
*부끄럽게도 세계적인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소설은 고교시절 읽은 “부활”이 전부였기에 신년 들어 마음 다져먹고 그의 대작 “전쟁과 평화”를 을 읽기 시작했음. 1,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장편소설인 전쟁과 평화는 보나파트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패전해 퇴각하기까지 전쟁상황과 당시 러시아에서 살고 있던 민중과 이들을 기반으로 살고 있던 귀족들의 삶의 상황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역사는 몇 몇 엘리트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고 민중에 의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 500명이 넘는 등장인물에다 그 이름들이 귀에 익지 않아 소설 맨 앞에 주요등장인물들을 간단히 설명하는 요약표가 없다면 진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임. 대 전쟁에 대한 역사들의 해석을 쫒지 않고 새로운 주인공으로 민중들을 내세워 그들의 삶의 편린을 보여주었다고는 하나 내가 읽기로는 여전히 그 사회의 지배계층인 귀족들 묘사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 것으로 보임. 소설의 스토리는 끝났는데도 제4권 마지막 편에 40페이지가 넘는 지면을 할애해 역사가와 다른 관점에서 자유와 필연 등을 설명한 저자가 전편을 통해 조금씩 드러낸 민중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생각임. 19세기 러시아의 또다른 문호인 또스또예프스키의 작품보다 덜 난해하고 심리묘사부분이 훨씬 짧아 비교적 수월하게 읽었음. 톨스토이의 체취를 느낀 대작임.
*2008. 1. 11일
246.이코노믹 씽킹
*로버트 프랭크 저/안진환 역/웅진지식하우스 간(2007)
*미국의 경제학 교수인 저자가 수식과 그래프에 기초해 경제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고 별 소용없음을 지적하고 생활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경제현상들의 원인과 이유들을 쉽게 풀어쓴 덕분에 경제과목에 흥미를 갖게 한 점이 이 책의 강점임. 학생들이 풀은 답을 기초로 재정리해 쓴 이 책이 각각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비용/편익분석이었는데 이에 동원된 수학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특징임. 남성들이 일부다처제를 금하는 이유로 이를 허용 시 미혼여성 수가 줄어들어 결혼하고자 하는 남성들이 신부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하는 등 이 책에 어떤 현상의 핵심을 꿰뚫어 이해를 쉽게하는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이 실려 있음.
*2009. 1. 6일
244-245.만행-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저/열림원 간(2000)
*큰 스님으로 모시는 숭산스님의 말씀대로 전생에 조선독립군이 아니었다면 예일대와 하버드대학원을 다닌 전도유망한 저자가 먼 나라 한국까지 와서 승려생활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의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며 이 책은 이러한 의문에 명쾌한 답을 주고 있으니 천주교신자인 저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침을 얻는 것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구하고자 노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바로 그 것임. 불교를 택한 것이 천주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종교관에 의견을 같이하는 내가 놀란 것은 저자의 한국 사랑인데 한국을 조국으로 둔 내가 부끄러울 정도임. 천주교와 불교가 서로 배척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이 왜 가능한가도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되어 저자에 고마워하고 있음.
*2009. 1. 3일
243.신화의 시대
*이청준 저/물레 간(2008)
*未白 이청준 선생의 유작인 신화의 시대는 주인공 태산이 도시의 사범학교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 미완성작품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단편소설 몇 구절을 읽다가 짜증이 나 중단한 것이 작가의 짧지만 잘 쓰이지 않는 현란한 수사 때문인데 선생의 이 작품은 이야기하듯 풀어나가 한 번 잡게 되자 끝까지 읽게 되었음. 선생의 고향인 장흥이 배경이며, 나도 한 번 올랐던 천관산을 태산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였음.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가다 주인공의 소년기에서 소설이 중단되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은 선생은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니기 때문임. 누군가가 이 작품을 이어 쓸 수 있다면 아니 나라도 그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책읽기를 마쳤음.
*2009. 1. 2일
242.등산교실
*이용대 저/해냄 간(2006)
*코오롱 등산학교의 이용대교장선생께서 쓴 이 책은 배낭꾸리기에서 해외트레킹까지 필요한 사항들을 문답식으로 풀어써 이해가 빨랐음. 40년 넘게 산을 다녔고 짧으나마 한 때 암벽등반을 했다는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산을 너무 쉽게 생각해왔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은 이 책이 등산 초보자뿐만 아니라 산행경력이 많은 산객들에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등산지식을 익힐 수 있어서임. 암벽등반과 빙벽등반은 전문산악인만이 할 수 있는 등반이기에 어차피 전문과정을 밟아야한다면 이 등반에 관한 상세한 지식보다는 트레킹에 보다 많은 지면이 할애되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음. 우리나라 산악가들 중 보기 드물게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저자의 산사랑과 산객에 대한 사랑이 이 책을 만들었다는 판단에서 저자의 노고에 각별히 감사하고자 함.
*2009. 1.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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