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종주기 14
*정맥구간:잣골고개-경기인력개발원-장명산
*산행일자:2009. 3. 28일(토)
*소재지 :경기 고양/파주
*산높이 :장명산102m, 고봉산209m
*산행코스:잣골고개-고봉산-고봉산삼거리-일산가구단지-경기인력개발원
- 월드메르디앙아파트-교하중학교-장명산-우신레미콘정문앞
*산행시간:11시21분-18시51분(7시간30분)
*동행 :나홀로
산허리가 잘려나간 한북정맥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할까 하고 제가 가슴 아파 하는 것은 작년 10월 용화산 산행 중 등뼈를 다섯 곳이나 분질러먹은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쳐 고생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일산의 잣골고개에서 파주의 장명산에 이르는 마지막 구간의 한북정맥 길은 대단위 주택단지공사로 반 가까이 허리가 끊겨 있었습니다. 해발 고도가 100m도 채 안 되는 이 나지막한 산줄기들을 몽땅 들어내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의 끝없는 탐욕이 정말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멀쩡한 나무들을 다 베어내고 불도저로 산허리를 잘라내 뭉개는 사람들의 오만함에 그동안 너그러웠던 자연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머지않아 보복을 해올 것 같았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쥐도 쫓기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사람보다 훨씬 파워풀한 자연이 사람들의 탐욕을 마냥 지켜보지만 않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저는 세속의 이익에 민감한 보통사람일 뿐 세상만사를 오로지 환경이라는 잣대 하나로 재단하는 환경지상주의자가 아닙니다. 지율스님이 도롱뇽을 보호한다며 천성산 턴널공사를 막으려고 100일 단식을 벌였을 때 그러다가 죽는다면 그 것도 그 스님의 팔자일 뿐이라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진보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내어 녹색주의는 생각만큼 안전한 사상이 아니며 녹색주의가 바로 진보의 적이라고 갈파한 프랑스의 지성인 기 소르망에 박수를 보낸 사람이 또한 저입니다. 일부 환경론자들이 환경문제를 지나치게 과장해 밥벌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 덴마크의 통계학자 비외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라는 엄청 두꺼운 책을 한 페이지도 빼놓지 않고 다 읽었습니다. 환경보전이라는 가치 있는 일은 자기들만이 할 수 있는 양 낄 데 안 낄 데 가리지 않고 참견하는 환경지상주의자들에 위의 두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보고 싶은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허리가 끊긴 한북정맥을 보며 제가 분노한 것은 단지개발 주체가 무엇이 주민들에 정말로 이익이 되는지 헤아리지 못하고 눈앞에 이익만 쫓아 삶의 질을 형편없이 떨어뜨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주택단지 공사가 끝나고 아파트에서 살 사람들이 다 입주하고 나면 높이가 백m도 안 되는 야산을 깎아 뭉갠 것이 얼마나 잘 못된 일이었나를 곧바로 느낄 것입니다. 산줄기가 낮아 시민들이 산책하기에 더 할 수 없이 좋은 최고의 도심공원을 누가 없앴는지 저처럼 따지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시멘트 건물에 아스팔트길이 거의 다인 아파트 단지 내에 만들어진 몇 개의 공원만으로는 턱없이 숲이 부족해 아파트 단지의 허파노릇을 하기가 역부족임이 금방 드러날 것입니다. 신도시 산본이나 분당 및 수지처럼 산들이 인접해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여기 운정단지는 그러한 산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산허리가 무참하게 잘려나간 한북정맥을 누가 종주 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자 아쉬움과 분노가 더했습니다.
서울역에서 경의선열차로 일산역까지 이동한 다음 들머리인 잣골고개까지는 택시로 옮겼습니다. 전철화공사로 주변이 어수선한 일산역에서 한참을 기다렸어도 택시가 보이지 않아 시내버스를 타고 도심지로 나가서 잡아타느라 20분가량 늦어졌습니다. 지난겨울은 날씨가 영 겨울답지 않다 했는데 봄 또한 그러해 나흘 후면 4월이 시작되는데도 아침기온이 0도 가까이로 떨어졌고 바람 또한 제법 쌀쌀해 장롱 속에 처박아둔 겨울용 자켓을 다시 꺼내 내피만 떼어내고 입어야했습니다.
오전11시21분 잣골고개를 출발해 고봉산으로 향했습니다.
작년 10월 종주산행 시 날머리였던 잣골고개를 들머리로 해 고봉산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는 중 왼쪽의 영천사를 먼발치서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4-5분을 더 걸어 올라선 삼거리에서 군사기지가 들어선 고봉산 정상을 왼쪽으로 에돌아 장사바위에 다다르자 수많은 일산시민들이 먼저 올라와 쉬고들 있었습니다. 저 어렸을 때만 해도 한강변에 자리한 논 뜰에 물이 자주 가 농사를 망치기 일쑤여서 제 고향 파주에서는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든 농민들이 주로 이곳 일산으로 이사 나가곤 했었습니다. 자유로를 건설해 범람하는 한강물을 막고 신도시로 건설해놓아 이제는 한수이북에서 최고로 살기 좋은 도시로 바뀌었으니 상전벽해란 이를 두고 말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정상에 오를 수 없는 해발209m의 이 산이 고봉산(高峰山)의 이름을 얻은 것은 여기 일산시민들로부터 백두산 못 지 않는 고봉으로 대접받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사바위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다 헬기장을 지나고 팔각정을 지나 고봉산삼거리로 내려섰습니다.
12시23분 고봉산삼거리에서 98번 도로를 건넜습니다.
나지막한 산을 올라서자 5년 전 1차 종주 시에 보았던 금정굴 유해발굴현장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뜻 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한국전쟁 때 좌익으로 몰려 떼죽음을 당한 이 곳 주민들의 주검을 발굴해 원통함을 다 풀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풀지 못한 여한이 남아있는지 그 때의 움막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운동시설이 갖춰진 쉼터를 지나 오른 철조망울타리 앞 삼거리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쉬는 동안 오른 쪽으로 눈을 돌리자 흐릿하게나마 제 고향 금병산이 보여 반가웠습니다. 바로 앞의 108봉을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틀어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봉우리 하나를 넘어 아파트단지로 내려섰습니다. 일산동고등학교 교문을 지난 다음 왼쪽으로 꺾어 호곡중학교 담장을 끼고 걷다가 탄현의 큰마을아파트로 들어섰습니다. 경의선 선로를 가로 지르는 탄현큰마을교 다리를 건너 일산가구단지 앞 359번 도로에 다다르기까지 10분여 허리가 잘려 사라진 한북정맥의 흔적을 찾아 도심의 아파트단지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13시38분 일산가구단지 앞 음식점에서 냉면을 사 든 후 종주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차도를 따라 노송가구 간판 앞까지 갔다가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이 아파트단지공사로 허리가 잘리고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사장을 가로 질러 만난 아미가골프연습장의 녹색울타리를 지나 창건사 앞에 이르는 동안 출구를 못 찾아 공사장 안에서 몇 곳을 왔다 갔다 하느라 십 수분은 까먹었습니다. 창건사 앞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이 또 다시 끊긴 것은 파주운정지구의 대단위 주택단지 공사가 진행중이어서였습니다. 북 쪽 먼발치로 눈에 익은 경기인력개발원 건물이 보여 그 쪽으로 방향을 잡고 사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아미가골프장 정문으로 내려갔습니다. 정문에서 조금 내려가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은 후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 안으로 난 차도를 따라 경기인력개발원 쪽으로 향했습니다. 문화유적발굴안내 간판 앞에서 질러가려고 오른 쪽으로 들어섰다가 길이 끊겨 원위치 하느라 10여분을 날린 후 다시 차도를 따라 걸어 벽산아파트 앞 차도에 이르렀습니다.
15시 정각 경기인력개발원 앞을 출발했습니다.
벽산아파트 앞에서 오른 쪽으로 차도를 따라 올라선 고개 마루 오른 편에 자리한 경기인력개발원에서 현대모비스 정문으로 내려가 도로를 따라 진행했어야 했는데 그리하지 않고 공사장 안 차도로 바로 들어선 것이 긴 시간 알바를 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정맥 길이 북서쪽으로 조금 이어지다가 이내 북쪽으로 뻗어있는 지도를 보고 길 건너 북서쪽으로 난 차도로 들어섰는데 쉴 새 없이 덤프트럭들이 지나다녀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십 수분을 걸은 다음 북쪽으로 올라섰다가 다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차도를 따라 갔습니다. 얼마 후 삼거리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찻길을 따라갔더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공장정문이 나타나 당혹스러웠습니다. 8-9분가량 되돌아가다가 만난 덤프트럭기사 분에게서 목동삼거리로 가는 길을 대충 파악해 우여곡절 끝에 현대아파트 공사장 옆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산길을 따라 4-5분을 걷자 다시 공사장이 나타나 난감했는데 나물 캐는 한 아주머니로부터 공사장을 가로 지르면 목동삼거리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안심됐습니다. 공사장을 가로 질러 만난 차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몇 분간 걷자 삼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가다 먼저 이 길을 걸은 한 분의 산행기에 나오는 새아란유치원이 보였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제 길을 찾았다 싶어 뛸 듯이 기뻤는데 유치원 앞에서 정맥 길이 다시 끊겨 이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16시10분 새아란유치원을 출발했습니다.
다시 큰 차도로 나와 오른 쪽으로 걷다가 아파트 앞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조금 후 이 길이 한북정맥 산줄기임을 알리는 표지기가 걸린 교하읍 고인돌산림욕장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길의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산속 길을 얼마고 걷자 들꽃 어린이집이 보였고 산책하러 나선 몇 분들도 함께 보였습니다. 자유로와 파주시청을 연결하는 56번도로를 지하도로 건너 오른 쪽으로 올라가자 성재암 표지석이 갈 길을 안내했습니다. 절개면 꼭지점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이 모처럼 편안했습니다. 파평윤씨정정공 묘지와 성재암 입구를 지나 다다른 교하중학교 후문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선사시대의 지석묘인 고인돌을 찾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제 고향 파주 땅에서 선사유적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전곡리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우리의 선조들이 일찍부터 한수이북의 파주연천 일대에 정착해 살아온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17시14분 핑고개에 도착해 장명산 가는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유진케미칼 뒤쪽 산길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데다 가시풀밭 길이어서 한 여름에 지나기에는 마땅찮은 길입니다. 좁은 산길을 따라 걸어 산불감시초소가 들어선 봉우리에 올라서자 마치 이 봉우리가 장명산인 양 표지기가 꽤 많이 걸려있었습니다. 5년 전 1차 종주 시에는 여기서 공사장 안으로 내려가 맞은편의 장명산을 올랐지만 이번에는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걸어 공사장을 한 바퀴 휘돌았습니다. 중간에 깎아지른 암반 위 봉우리를 밑으로 난 임도로 가로 지른 후 야트막한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섰는데 지난 해 11월 경동동문산악회원들이 타종했던 화생방종이 보이지 않아 방금 전에 밑으로 지난 더 높은 봉우리가 장명산이다 싶어 안부로 되 내려가 그 봉우리를 올랐습니다. 다른 분의 산행기에서 본 도당산신제단과 향나무만 보일 뿐 화생방종이 보이지 않아 그 때 올랐던 이회장과 한 후배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 했습니다. 공사장 건너편으로 깃봉이 서있는 봉우리가 화생방종이 설치된 장명산임을 확인하고 온 길로 하산 해 앞서 오른 작은 봉우리를 다시 올랐습니다.
18시40분 해발102m의 장명산을 올라 제2차 한북정맥 종주를 전부 마쳤습니다.
되올라선 작은 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곡릉 천변에 다다르자 강바람이 저를 반겼습니다. 1962-1964년 3년간 금촌에서 하차해 오리가량 떨어진 문산중학교까지 걸어가는 동안 겨우 내내 피할 수 없었던 것은 가슴팍을 파고드는 냉랭하기 이를 데 없는 곡릉천의 강바람이었습니다. 그 때는 한북정맥이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분기하여 여기 곡릉천에서 침잠한다는 것을 몰랐기에 이 샛강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강변을 따라 횟강다리 쪽으로 가다가 우신레미콘 안으로 들어가 왼쪽의 장명산으로 올랐습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깃봉이 세워진 정상에 올라서자 예의 빨간 화생방 종이 보였습니다. 재작년 9월 대성산 남쪽아래 수피령을 출발해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잣골고개까지 13회를 함께 종주한 경동동문산악회원들이 작년 11월에 먼저 오른 것은 제가 용화산을 오르는 중 바위에서 떨어져 병상생활을 하느라 함께 오를 수 없어서였습니다. 저 혼자서 장명산에 오르자 160Km 남짓한 한북정맥 길을 전부 밟고 종주산행을 마무리하는 감격을 화생방종 타종으로 분출한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감격의 타종을 대신해 저는 무릎을 꿇고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해가 막 진 후 곡릉천에서 물안개가 피어올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우신레미콘 정문 앞으로 하산했습니다.
우신레미콘 정문앞에서 산행을 마친 시각이 18시51분으로 이번 산행에 걸린 총 시간은 7시간 30분이었습니다. 5개월 만에 나선 첫 산 나들이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데도 그리 힘들지 않았던 것은 산행코스 거의 다가 평지 길이었고 이번에 처음으로 양손에 스틱을 잡고 산행을 한 덕분입니다. 아직은 허리를 고정시키는 보조기를 차고 걷느라 오름길에서 많이 불편했고 두 손으로 스틱을 잡고 걷는 것이 익숙지 않아 제때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았지만 가파른 바위 길과 급경사의 내림 길은 여전히 무리여서 앞으로도 한 동안은 비교적 길이 평탄한 산을 찾아 천천히 오르내릴 생각입니다.
제게 다시 산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다친 허리에 힘을 되돌려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의 조속한 쾌유를 빈 수많은 분들에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말없이 저를 기다려준 한북정맥의 산들도 고맙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모두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 아사비 아사비 Y
- 2009.03.30 10:10
-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건강 회복 되셨다니 좋은 글 많이 탐독하겠읍니다.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3.31 15:00
- 큰 맘먹고 나섰는데 거의 다가 평지 길이어서 생각보다 덜 힘들었습니다.
본격적인 산행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손병운 손병운 Y
- 2009.04.03 23:28
- 산행기를 보고 깜짝놀랐읍니다. 완쾌되지않은상태에서, 보호대를 착용하고,아무리야산이라도,장시간산행한다는것이,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느끼면서,다른한편으론 무모하다고생각듬니다. 간청건대 완쾌될때까지(보호대풀때)는 무리한산행은 자제하세요. 환절기에 몸조심하시고,3째주에 맥주한잔하시죠! 그럼안녕히계세요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4.05 21:03
-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 종주한 구간은 거의다가 그냥 평지길입니다.
한 여름이라면, 또는 비가 오는 날이면 공사장이 질퍽대어 엄청 고생할 그런 코스이기에
날씨가 좀 싸늘할 때 남은 한 구간을 마저 마치려고 서둘렀습니다. 다녀오고 나서 후유증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만 나흘 후 의사선생 진찰이 끝나야 보호대를 풀을 수 있을지 판가름 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산행사진>
- 松琳 통나무 松琳 통나무 Y
- 2009.04.07 22:12
- 형님사진을 보니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네요..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4.07 23:21
- 기억이 오래 쌓이면 추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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