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31.당항포 탐방기

시인마뇽 2011. 3. 4. 00:01

                                                       당항포 탐방기

 

                                            *탐방일자:2011. 2. 5일(토)

                                            *탐방지   :경남 고성 당항포

                                            *동행      :나홀로

 

 

  정말 오랜만에 바닷가 길을 걸었습니다. 경남고성의 당항포를 찾아가 혼자서 뉘엿뉘엿 해가 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별반 차가 다니지 않아 한갓진 차도를 따라 해변을 걸었습니다. 해륙풍이 방향을 바꾸고자 잠시 숨죽이고 있어서인지 당항포 앞바다는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고요했습니다. 한 여름이었다면 회를 들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많았을 당항 마을이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것은 몇 십 년 만의 한파에 구제역까지 겹쳐 누구라도 쉽게 집을 나설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였을 것입니다. 당항포 관광지 입구를 출발해 도로 변의 모텔과 횟집들이 더할 수 없이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당항마을 앞의 방파제까지 갔다가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데 한 시간이 채 안 걸렸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 저는 산줄기 이어걷기에 흠뻑 빠져 오로지 종주산행에만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백두대간과 7정맥을 종주했고 8번째 발을 들인 낙남정맥 종주 길도 거의 끝나갑니다. 오는 5월 쯤 하나 남은 낙동정맥 종주를 부산의 몰운대에서 시작하여 내 후년 쯤 마치게 되면 남한 땅의 큰 강에 물을 대는 울타리산줄기 걷기도 웬만큼 해내는 셈입니다. 그간 대간이나 정맥을 종주하며 아주 드물게 바다를 먼발치서 바라보기는 했어도 직접 바다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 나름대로 틈틈이 짬을 내어 섬에 자리한 명산들을 찾아 오르곤 했습니다. 이때도 주목적이 산에 오르며 그 아래 바다 풍경을 조망하는 것이기에 한가롭게 바닷길을 걷지 못했습니다. 2006년 가을 울릉도를 다녀오는 길에 정동진을 들러 하루를 묵으며 해변의 모래사장을 산책한 후 이번에 처음으로 바닷가 길을 걸었습니다.

 

 

 

  낙남정맥을 종주하면서 고성의 명소 몇 곳을 들러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 첫 번째로 송학동의 가야고분군을 둘러본 저로서는 이 지방 최고의 명소인 당항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생각지 않게 남부터미널에서 고성 행 버스를 1시간 넘게 기다리느라 늦어져 17시15분에 당항포관광지의 바다의 문(Sea Gate)앞에 도착했습니다. 관광지입장은 17시에 종료됐다며 입장을 막아 배둔에서 잡아타고 간 택시로 되돌아갈 뻔 했습니다. 이런 때 유용한 것은 읍소작전이어서 불원천리 경기도 산본에서 내려왔고 나이도 적지 않아 다시 오기도 쉽지 않은 데 저기 보이는 전승탑까지 가서 사진 몇 장만 후딱 찍고 문을 닫는 17시30분 안에 반드시 돌아오겠으니 한 번 만 눈감아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제 청을 다 듣고 난 젊은 직원이 마지못해 입장을 허락해 2백-3백m 거리의 전승탑을 향해 힘껏 내달렸습니다.

 

 

 

  차도를 따라가다 왼쪽 둔덕으로 올라갔습니다. 당항만 저쪽 조선소가 잘 보이는 전승탑 앞에서 당항포 해전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습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데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임란 발발 한 해 전에 종6품의 정읍현감 이순신을 정3품의 전라좌수사로 추천한 서애 유성룡 선생이 공이 가장 지대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서애 유성룡 선생은 “징비록”을 남겨 후세 사람들이 임진왜란의 전모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두 분들의 가르침만 제대로 파악해 실행에 옮겼어도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만은 고칠 수 있어 얼마 후 병자호란의 참화는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외교적으로 역량 있는 군주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서인들에 의해 추대된 인조임금은 반정공신 이괄의 반란에 놀라 남한산성을 토성에서 석성으로 개축한 것 말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좌우명으로 삼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저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충무공이순신장군은 이곳 당항포에서 왜군과 맞서 싸운 두 차례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끕니다. 제1차 당항포 해전은 임란이 발발한 1592년 6월에 치른 전투입니다. 당포해전 때 패하고 도망친 왜군이 당항포에 주둔하고 있음을 알아 낸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 원균과 전라 우수사 이억기와 합세하여 왜선 26척을 격파하고 적수 50여명의 목을 베어 승리로 매듭진 해전이 제 1차 당항포 해전입니다. 이러한 공로로 이순신 장군은 資憲大夫(정2품)에 승품됩니다. 제2차 당항포 해전은 두 해 후인 1594년 3월에 치릅니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이순신 장군이 왜선 31척이 당항포로 이동하고 있음을 탐지한 후 조선수군을 견내량과 증도 근해에 배치하여 왜선의 퇴로를 막습니다. 조방장 어영담에게 군사를 주어 왜선을 치게 하여 당항포 근해의 왜선 10척을 격파한 다음 전군이 일제히 공격해 포구에 장박한 나머지 21척을 불태워 도합 31척의 왜선을 없애버립니다. 1, 2차 당항포 해전을 통해 57척의 왜선을 격파해 모두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은 그 후 장군의 전공을 시샘하는 원균 등 반대파들의 음모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해버린 당항포는 고성군의 회화면 쪽에 자리한 포구로 그 앞 바다가 당항만입니다. 마산시 진전면과 고성군 회화면, 마암면, 고성읍, 거류면과 동해면이 시계반대방향으로 빙 둘러싸고 있는 당항만은 이 만 어귀에서 서쪽 깊숙이 길쭉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아도 이 만 어귀를 지나 서쪽 안으로 들어선 배가 일단 공격을 받고나면 다시 돌아 나가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 같았습니다. 5백 여 년 전에 이 나라를 지킨 천혜의 요새 당항만이 요즘은 천혜의 비경답게 관광지로 탈바꿈해 수많은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두 차례의 해전을 언제 치렀는가 싶을 정도로 전승탑에서 바라본 당항만의 물결은 더할 수 없이 잔잔하고 고요했습니다. 건너편 장기리쪽의 건조 중인 대형 선박을 빼놓고는 이 만을 지나다니는 큰 배가 보이지 않아 마치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기실은 애초에 바닷길을 걸어보자고 집을 나선 것은 아닙니다. 당항포관광지를 다 찾아보는 것만도 벅찰 것이라 했는데 17시 반에 문을 닫아 더 이상 관광지를 둘러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관리소 직원과의 약속시간이 다 되어 공룡엑스포 주행사장은 들러보지 못하고 바다의 문으로 되돌아가 관광지를 빠져 나왔습니다. 해가 떨어져 깜깜해지기 까지 새로 생긴 반시간 이상의 여유시간을 어떻게 보낼 까 생각하다가 이참에 바닷가 길을 산책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서쪽멀리로 공사 중인 마동방조제가 보이는 해변 길을 걷던 중 찻길을 내느라 암벽이 드러난 절개면을 보았습니다. 바다 속 퇴적암이 융기해 만들어졌을 층암이 한 가운데 밴드를 두른 듯 하얀 차돌(?)이 띠를 이루고 있어 눈길이 갔습니다. S자형으로 굽어진 찻길을 따라 얼마간 걸어가자 길 왼쪽으로 짧은 방조제가 보였습니다. 마을을 빙 돌아가면 맞은 편 방조제가 이쪽 방조제와 맞이하고 있는데 배가 나다닐 수 있도록 가운데를 열어놓은 길이가 몇 십m에 지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방조제 끝까지 가서 마동방조제를 사진 찍은 후 찻길로 되돌아와 당항마을 앞길을 걸었습니다. 모텔과 횟집만 여름날의 활기를 잃은 것이 아니고 동리 전체가 썰렁했습니다. 시골 동리로 들어서면 견공들이 일 만났다고 낯선 이들을 보고 죽어라고 짖어대는데 이 마을은 견공조차 보이지 않아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맞은 편 방조제로 옮겨가 조선소가 들어선 반대 쪽 바다를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이번처럼 바닷가에서 느긋하게 해넘이를 지켜본 적이 언제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날은 고성시내로 돌아가 잠만 자면 되기에 하나도 급할 것이 없어 어둠에 쫓겨 서두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산행 중에는 소리 없이 다가서는 어둠보다 더 빨리 산을 벗어나야 해 정신없이 내달리는데 이번에는 온전히 석양을 조사하는 바다의 잔잔한 물결을 지켜보았습니다. 바람도 일몰을 지켜보느라 숨 한 번 크게 쉬지 않았습니다. 양쪽의 방조제 안에 정박한 작은 배들에 내려앉은 마지막 햇빛이 어둠에 갇히는 순간을 지켜본 후 다시 동네 앞을 지나 바다의 문 앞으로 돌아갔습니다. 택시를 불러 배둔으로 나가 고성읍으로 옮겨 일박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느 곳이든 쉽게 가볼 수 있도록 각종 인프라가 갖춰진 이 땅이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럽습니다. 시간이 없어 공룡엑스포장은 가보지 못했지만 덕분에 한가롭게 바닷길을 걸어봤습니다. 그리고 겨울바다를 관조했습니다. 한 세대 먼저 사시느라 이 땅에서 좋은 세월을 보지 못하고 인고의 시간만을 힘들게 참아내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시인 김남조님의 “겨울바다”를 올리며 당항포탐방기를 맺습니다.

 

 

                                             겨울바다

 

                                 겨울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