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종주기17
*정맥구간:신풍고개-정병산-남산치
*산행일자:2011. 3. 11일(금)
*소재지 :경남창원/김해
*산높이 :정병산567m, 비음산510m
*산행코스:신풍고개-소목고개-정병산-독수리봉-내정병봉-비음산
-남산치-상남교회 버스정류장
*산행시간:7시25분-16시11분(8시간46분)
*동행 :나홀로
낙남정맥 종주 중 산길에서 산성(山城)을 접해보기는 이번 진례산성((進禮山城)이 처음입니다. 성의 규모나 짜임새는 진주남강의 진주성에 대비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성곽도 분명치 않아 보잘것없습니다만, 이 성이 낙남정맥의 마루금에 위치해 있는 가야의 옛 성이어서 제게는 어느 성 못지않게 반갑고 소중했습니다. 말이 좋아 성(城)이지 실제로는 성곽도 없고 성문도 없으며 그 나마 큰 돌들이 조금 남아 있어 여기가 성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진례산성은 창원과 김해의 진례를 어우르는 비음산 산줄기를 따라 쌓은 산성입니다. 능선 위에 쌓아 골짜기를 안고 있는 포곡식산성인 이 성은 그 둘레가 약 4Km 정도이고 높이가 1-2m이며 폭이 1m정도라는데 이번에 본 것은 산성일부와 동문지 터뿐이었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수로왕 때 한 왕자를 봉하여 진례성의 왕이 되게 하였으며 토성과 천문을 관측하는 첨성대가 있었는데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다”고 “여지집성(與地集成)”에 적혀 있다고 하는 데 저는 아직 “여지집성(與地集成)”이 어떤 자료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 산성은 가야가 축성한 성으로, 지금처럼 석성이 아니고 토성으로 쌓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박창희 님의 “가야사 이야기” 등 몇 권의 역사서적 어디에도 진례산성에 대한 사료가 나와 있지 않아 통일신라시대에 쌓았다는 일설도 있는 이 성을 누가 언제 쌓았는지 또 어느 나라를 상대로 해 쌓은 것인지 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낙남정맥 종주를 마칠 때까지는 우선은 가야와 관련된 유적지와 유적들을 부지런히 찾아볼 뜻입니다. 그리하면 옛 가야의 윤곽이 그려질지도 모르기에 먼저 찾아가서 보는데 주력하고자 합니다. 종주가 모두 끝나면 그동안 모은 자료들을 한 줄로 엮어볼 생각입니다. 그리하면 지금은 시계 제로인 가야 역사가 어렴풋이나마 보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침7시25분 신풍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마산역에서 5-6분을 걸어가 다다른 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김해 가는 버스를 타고가다 지난번에 산행을 마친 신풍고개에서 하차했습니다. 오른 쪽 산마루가든으로 향하는 시멘트길을 따라가 이 집 왼쪽 끝에 나있는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신풍고개 출발 후 한전의 변전설비(?)에 이르기까지 반시간 조금 넘는 동안 마루금의 북사면에 들어선 과수원 윗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과수원이 들어설 만큼 산 높이가 낮은데다 어느새 햇살이 퍼지기 시작해 발걸음이 절로 가벼웠습니다. 변전설비를 막 지나자 왼쪽의 과수원이 끝났고 대신에 오른 쪽 아래로 창원컨트리클럽의 필드가 시작되어 거의 한 시간 동안 골프장 윗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능선의 울타리를 피해 조금 아래 낸 길을 따라가느라 능선 길보다 더 깊은 안부를 여러 번 지났는데 몇 곳은 로프를 매달아 놓았고 한 곳은 흙 길을 파서 계단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9시2분에 골프장 끝머리에 도착해 50분 간 나란히 걸어온 골프장과 헤어졌습니다.
9시36분 소목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골프장을 벗어나 이어지는 길은 오르내림이 별로 없어 걷기에 편했습니다. 이내 만난 첫 번째 산죽터널은 맛보기로 짧았지만 다음 터널은 상당히 길어 산죽의 싱그러움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산죽터널 길을 지나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다 293.8m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소목고개고개로 내려갔습니다. 신풍고개에서 소목고개에 이르는 길이 이리 편하고 쉬운 줄 진작 알았다면 지난 번 산행을 신풍고개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여기 소목고개까지 와서 마쳤을 것을 하고 아쉬워한 것은 그리 했다면 이번에 냉정고개까지 진출할 수 있는 것을 다음 산행으로 미뤄야 해서였습니다. 2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걸어 바로 앞에 보이는 치받이 길의 정병산 오름길이 시작되는 소목고개에 다다라 정자에 걸터앉아 10분 가깝게 쉬었습니다. 왼쪽 옆으로 습지일 것 같은 갈대밭이 자리하고 오른 쪽으로 창원대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 소목고개에서 정병산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송전탑을 지나면서 통나무계단 길로 바뀌면서 경사 또한 급해졌습니다. 중간 중간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제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하는 것은 그리하면 된비알 길을 오르는 일이 훨씬 힘이 덜 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0시40분 해발567m의 정병산에 올라섰습니다. 암벽이 정상을 받쳐주는 정병산에 오르는 마지막 비알 길에 목제계단을 설치해 놓아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내 오른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30m를 옮겨 가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정상석과 삼각점이 서 있는 정상에서 휘돌아보는 전망은 일품이었습니다. 정북 쪽으로 주남저수지가 두 눈에 꽉 차 들어왔고 그 오른 쪽 멀리로 낙동강 줄기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을 필두로 오른쪽으로 마재고개, 천주산, 신풍고개, 창원컨트리 클럽을 지나 바로 아래 소목고개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이 한 눈에 들어와 요 몇 번에 걸친 종주산행을 총 정리했습니다. 다시 정자가 서있는 능선 삼거리로 돌아가 남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왼쪽 아래 진초록 색의 서천저수지 바로 위가 지도에 나와 있는 창원시험원으로 그 안에 활주로 같은 넓은 길을 동서로 길게 나있어 보기에 시원스러웠습니다.헬기장을 지나고 북사면의 질퍽한 길을 지나 다다른 암봉에서 목제계단을 따라 급하게 내려가자 어린이나 노인들은 위험한 암릉 길을 타지 말고 안전하게 오른 쪽 아래로 돌아가라는 안내문이 보였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그대로 직진해 올라선 암봉이 독수리 봉으로 내려가는 길이 급하기는 했으나 목제계단이 설치되어 우회로로 돌아가지 않기를 잘했다 했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다 내려가 방금 통과한 독수리봉을 올려다보니 이 봉우리를 받쳐주는 깎아지른 절벽이 절경이어서 사진 찍어왔습니다. 이곳에서 20분 가까이 쉰 후 내정병봉으로 향했습니다.
12시50분 용추계곡갈림길에 다다라 점심을 들었습니다. 독수리봉 아래 계단에서 몇 걸음 옮겨 만난 독수리봉 우회 길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고나서야 앞서 지나온 봉우리가 독수리봉임을 알았습니다. 갈림길에서 그대로 직진해 나지막한 두 봉우리를 넘어 해발493m의 내정병봉에 올라서자 먼발치로 오른 쪽 상공을 유유히 선회하는 독수리 두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고 나자 과연 저 독수리들도 앞서 지나온 독수리봉이 자기들을 닮았다고 생각하는지 새삼 궁금했습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은 한 겨울에도 보아온 것이기에 봄맞이 이벤트로 볼 수 없겠지만 때마침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을 맞으며 내정병봉 정상에 올라 평상에 홀로 앉아 있는 한 여인은 “남촌서 남풍불제 나는 좋다네”하며 춘심에 들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선 용추계곡 갈림길은 체육시설이 들어선 쉼터여서 이곳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창원시내에서 여기 쉼터로 오르내리는 일이 연세든 분들에는 쉽지 않을 텐데 이 쉼터에서 운동을 즐기시는 나이든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쉼터에서 0.3km를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갈리는 우곡사 길을 버리고 직진해 봉우리에 올라선 다음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갔습니다. 415m봉과 475m봉을 차례로 올랐다가 가야의 옛 성으로 알려진 진례산성(進禮産城)을 따라 내려가 이 성의 동문지(東門址) 앞에 도착한 시각이 14시21분이었습니다.
14시37분 해발510m의 비음산에 올랐습니다. 동문지에서 비음령에 이르는 목제계단의 오름 길은 진달래 꽃밭 사이로 나있고 중간에 촬영데크(?)가 있어 제 철에 오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정맥 길이 왼쪽으로 이어지는 비음령의 능선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0.8Km 떨어진 비음산을 들러보기를 참 잘했다 싶은 것은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를 볼 수 있어서였습니다. 넓은 공터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 비음산 정상에서 만난 한 분으로부터 북쪽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저 동네에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가 동네와 그 오른 쪽의 낙동강 줄기도 같이 보았습니다. 제가 종주하고 있는 낙남정맥과 저 아래 낙동강이 공들여 낳은 큰 인물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해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대통령의 죽음에 매우 비판적인 내용의 글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제 블로그에 올린 일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을 지낸 분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한 점에 대해서는 그 이유가 어떠하든 비윤리적이고 비교육적이라는 저의 비판적인 생각을 바꿀 뜻이 없습니다만, 이 분이 아직도 많은 국민들 가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것은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느 다른 대통령보다 잘 어루만져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비음산에서 비음령으로 돌아가 남쪽에 자리한 대암산 방향으로 정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15시14분 남산치에 도착했습니다. 비음령에서 얼마가지 않아 진례산성(進禮産城)이 끝났습니다. 안내판에 이 성의 유래와 규모가 자세히 적혀 있어 이 성이 가야의 옛 성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지막한 517m봉을 넘어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선 곳이 이번 산행의 종주끝점인 남산치로 이 고개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김해의 진례저수지에 닿게 되고 오른 쪽 길은 창원시의 포곡쉼터에 이르는 길입니다. 주남저수지에 추가해 노대통령 생가를 둘러볼 생각으로 쉼터에서 쉬고 있는 한 분에 어느 길로 하산하는 것이 좋을까 여쭤어 진례저수지 쪽은 택시를 불러야하고 주남저수지와 생가가 한 방향이 아니어서 해떨어지기 전에 두 곳을 다 들르기는 무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창원쪽에서 여기 남산치로 올라와야 하기에 이번에는 웬만하면 그 길을 피해 진례저수지 쪽으로 내려가고자 했으나 비용과 시간이 다 문제겠다 싶어 이분을 따라 창원 쪽으로 하산했습니다.
16시11분 사파정동의 상남교회 앞에서 하루산행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남산치에서 포곡쉼터까지는 제게 길안내를 해준 이분과 동행했습니다. 몇 년 전 모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하고 새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58세의 이분을 가슴 아프게 한 것은 큰 아들이었습니다. 전문대학 재학 중 군에 입대해 복무하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을 볼 적마다 가슴이 매진다는 이분은 1차 국가를 상대로 벌인 재판에서 패소했으나 머지않아 다시 소송을 하겠다며 억울해 했습니다. 진위를 가릴 형편이 아니어서 이분 말씀이 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누구라도 자식이 저런 일을 당했다면 이분과 똑같이 진상을 밝히려고 여기저기 쫓아다녔을 것입니다. 포곡쉼터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큰 길을 따라가다 왼쪽으로 꺾어 자동차 전용도로를 지하도로 건넜습니다. 창원FC(?)체육관과 아파트 단지를 차례로 지나 진해-창원을 잇는 큰 도로를 건너 상남교회앞 버스정류장에 다다랐습니다. 때마침 도착한 105번 버스에 올라 마산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버스를 바꿔 타 덕산으로 옮긴 후 택시를 잡아 서둘러 주남저수지를 들러보았습니다. 돈은 좀 더들었지만 알뜰살뜰히 시간을 운용한 덕에 주남저수지를 들러보고도 저녁 7시에 창원역을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탐방한 주남저수지가 어느 날 별안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이 저수지 또한 가야의 비밀을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겨울이면 날아드는 철새들도 가야가 이 땅을 지배했던 천수백 년 전에 똑같이 이 저수지를 찾아와 겨울을 났을 것입니다. 그 때야 지금처럼 모이를 따로 주며 철새들을 불러들이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떼거리로 찾아오지는 않았겠지만 한번 머물고 간 시베리아의 철새들은 가야 땅의 넉넉함에 매료되어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지 못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철새들과 대화할 수단을 찾아낸다면 가야의 진실한 역사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느라 귀경길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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