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종주기15
*정맥구간:한치재-무학산-마재고개
*산행일자:2011. 2. 24일(목)
*소재지 :경남마산/함안
*산높이 :광려산720m, 대산727m, 대곡산516m, 무학산767m
*산행코스:한치재-광려산-대산-쌀재고개-대곡산-무학산-마재고개
*산행시간:7시1분-17시47분(10시간41분)
*동행 :나홀로
낙남정맥 종주 길에 소나무의 나이테를 보았습니다. 간벌 차 막 줄기를 베어내 은은한 솔향기가 배어나는 소나무 그루터기의 절단면에서 이 나무의 나이만큼 생성된 가지런한 동심원들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동심원의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나이테가 성글은 것은 이 나무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입니다. 나이테란 그 나무가 자라온 일생과 주변 환경까지 일러준다 합니다. 어느 해에 가물었고 비가 많이 내렸는지, 또 산불이 나고 번개를 맞은 해는 언제인지 전문가들은 나이테를 보고 알 수 있다 합니다.
나무의 생장비밀을 알려주는 나이테는 수피가 줄기를 둘러싸 밑동을 잘라내야 비로소 그 모습이 드러나기에 어떤 나무든 생장비밀이 외부에 알려지면 그 순간에 운명적으로 자기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는 끝내 자기 나이를 혼자 간직한 채 수명을 다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죽어서도 나이를 밝히지 않고 그 자리에서 썩어 사라지는 것이 또한 순리입니다. 이러니 나무들은 그 이웃들에 나이가 몇이냐고 물을 리가 없습니다. 물어보았자 몸속에 숨어 있는 자기 나이를 헤아려 대답해 줄 수도 없기에 말입니다. 나이를 묻지 않아도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 숲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의 나이 챙기기기는 좀 유별납니다. 낳자마자 출생신고를 해 나이를 세도록 합니다. 나이를 세지 않다가는 적령기를 놓쳐 사람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차야 자격을 주는 사회제도가 상존하는 한 어느 누구도 나이를 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년 생일차례를 빼놓지 않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사람 말고 어느 생물이 매년 생일을 해먹으며 나이를 세는지 저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살아서는 생일을 차려먹고 죽어서는 기일을 챙깁니다. 예수님의 연세는 아예 이분이 태어난 해를 기원 삼아 매년 헤아립니다. 석가모니님도 공자님도 규모의 차이는 있어도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몇 주년 탄생을 기념한다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생일차례를 해드립니다. 나이를 헤아린다는 것이 이토록 세상살이를 복잡하게 만드는데도 사람들은 나이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입니다.
숲속의 나무들이 사람들처럼 나이를 챙기려 한다면 생일상을 차리고 기념식에 참가하기 바빠 고유의 임무인 광합성을 하는 일에 짬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인류의 탄생은 350만 년밖에 안되지만 지구상에 침엽수가 나타나 숲을 이룬 것은 중생대 때의 일로 얼추 계산해도 2억년이 넘으니 숲속의 나무들이 각종 기념일을 챙긴다면 사람보다 몇 십 배 많을 것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나이테는 드러나지 않고 수피 안에 숨어 있듯이 우리 나이 역시 내면에 숨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아침7시1분 한티재를 출발했습니다. 강남터미널을 새벽 1시에 출발한 심야우등버스가 마산에 이르기까지 4시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버스기사분에 물어본 즉 마산역까지 걸어서 15분가량 걸린다고 해 택시를 타겠다는 생각을 접고 물어물어 갔는데 20분은 족히 걸렸습니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 저녁9시15분에 출발하는 서울행 KTX 표를 끊은 다음 인근 음식점에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한티재 바로 아랫마을인 대현으로 가는 72번 첫 버스가 마산역을 아침 6시에 출발해 진동을 거쳐 종점인 대현에 도착했습니다. 10분가량 함안 쪽으로 걸어 올라가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한티재에 이르렀습니다. 거목의 느티나무 한 그루를 사진 찍은 후 오른 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묘지를 지나 한길사슴농장에서 올라오는 시멘트길을 만나기까지는 경사가 급하지 않았으나 이내 정맥 길은 된비알 길로 바뀌었습니다. 한티재에서 해발고도를 600m가량 높여야 광려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어 초반부터 진을 빼다가는 목적지인 마재고개에 이르기 전에 지쳐서 나자빠질 것 같아 산행속도를 늦추어 진행했습니다. 이른 아침 냉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산속의 공기가 한 낮이 되면 영상14도까
지 올라간다는 것이 기상청의 예보이고 보면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겨울도 꼬리를 내린 모양입니다.
8시20분 내곡마을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된비알 길을 천천히 오르는 저를 반긴 산 식구는 이름 모르는 작은 산새들이었습니다. 한 겨울이라면 이리 일찍 몸을 내보이지 않았을 산새들이 재잘거리는 것은 봄이 우수를 넘기고 코앞에 와있음을 감지해서일 것입니다. 가파른 오름 길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다른 산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노각나무를 사진 찍었습니다. 이어지는 솔밭을 지나 왼쪽 아래로 내곡마을 길이 갈리는 능선 삼거리에 이르자 잔설이 눈에 띄어 엄청 반가웠습니다. 지난 해 12월 재개한 낙남정맥 종주산행이 이번이 여덟 번째인데 따뜻한 남쪽의 산줄기를 이어가서인지 그동안 한 번도 눈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20분가량 암릉 길을 걸어 광려산삿갓봉에 올랐습니다. 해발720m의 표고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진 삿갓봉의 전망데크에서 남쪽 아래 바다를 조망하며 10여분 쉬었습니다.
9시20분 해발720m의 광려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삿갓봉에서 고도를 수정한 후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잔설이 녹았다가 얼어붙은 북쪽사면의 산길이 많이 미끄러워 낙남정맥 종주 처음으로 크램폰을 꺼내 찼습니다. 봄철이라면 철쭉꽃들이 터널을 만들었을 북사면의 철쭉 군락지를 지나 능선 길로 다시 들어서자 바람이 세게 불어왔습니다. 지난 번 여항산을 오를 때 못지않게 바람은 거셌지만 더 이상 삭풍이 아니어서 소리만 요란했습니다. 광려산 정상에 올라서자 지나온 여항산과 다가갈 대산이 잘 보였습니다. 달랑 표지봉만 세워져 삿갓봉보다 초라해 보이는 광려산 정상에서 70-80m 가량 푹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칼바위능선을 왼쪽으로 우회했습니다. 칼바위능선이 끝나는 안부에서 다시 올라선 벤취가 세워진 쉼터 봉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습니다.
10시51분 해발727m의 대산에 도착했습니다. 쉼터 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다가 “낙남정맥을 종주하는 산님들 힘 힘 힘 내세요”라는 글귀의 보드를 걸어놓은 “준. 희”님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일었는데 누군가가 그 보드에 매직으로 “준희님 감사” 문구를 써넣은 것을 보고 속으로 “저도요” 했습니다. 산불조심 경고판이 서 있는 즈음해서 오른 쪽으로 꺾어 조금 내려가자 평탄한 길이 이어졌습니다. 대산이 가까워지면서 연달래는 진달래로 바뀌었고 다시 가파른 오름길이 전개됐습니다. 얼마간 오르자 목제계단 길이 나타났고 바로 오른 쪽 옆으로 지금은 다니지 않는 로프 길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산”에서 발간한 자료집에 실린 낙동정맥 소개 글을 보고 로프가 매달린 암벽길이 위험한 것으로 나와 있어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이처럼 견실한 목제계단을 설치해 안전하게 대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남쪽에 자리한 푸른 바다와 올망졸망한 섬들이 퍽이나 다정다감하게 다가왔고 북동쪽 멀리 자리한 무학산은 마산의 진산답게 참으로 의젓해 보였습니다. 15분 넘게 모처럼 편히 쉰 대산을 떠나 동쪽으로 5-6분 진행하자 5만분의 1 지형도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은 “광산먼등”봉우리가 나타나 이 봉우리 벤취에 잠시 앉아 크램폰을 풀었습니다.
11시57분 571m봉의 산불감시초소를 지났습니다. “광산먼등”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바람재로 향하는 북사면의 길이 질퍽해 크램폰을 너무 빨리 푼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해토된 시꺼먼 흙들이 구두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비를 맞아 흠뻑 젖었을 때 보다 발걸음을 옮겨 놓기가 더 무거웠습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내려가는 중 때마침 선을 보인 주홍나비가 팔랑거리며 길을 안내해 반가웠습니다. 아직은 날개 짓이 많이 힘들어 보이지만 저 아래에서 불어올라오는 바닷바람에 맞서 날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간벌 차 막 줄기가 잘려나간 한 소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선명한 나이테를 보았습니다. 진달래 단지의 윗바람재를 지나 산불감시초소의 전망데크에 이르자 바다와 다리가 훨씬 더 가깝게 보였습니다. 초소를 지키는 분에 여쭈어 창포만과 마창대교의 위치를 확인한 후 이 모두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영상10도를 훨씬 넘어 훈훈해진 봄바람이 살랑거려 시간만 넉넉하다면 한 숨 자다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13시 정각 쌀재에 내려섰습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질퍽하고 얼음이 남아 있어 미끄러운 길로 내려갔습니다. 벤치가 세워진 쉼터봉에서 10분가량 내려가 다다른 바람재는 이름 그대로 바람이 활개 칠만한 넓은 평원이었습니다. 이 넓은 평원에서 열리는 진달래축제는 다른 데 보다 몇 주 빠른 3월말 경에 열리나봅니다. 예쁘장한 팔각정을 지나 왼쪽으로 산허리를 휘어 도는 임도를 따르지 않고 그대로 직진해 비알 길을 올랐습니다. 대산과 무학산을 가름하는 쌀고개로 내려서기 얼마 전에 왼쪽으로 돌아온 넓은 길의 임도를 건넜습니다. 열려 있는 쇠파이프 철문을 지나 쌀재에 내려서자 직진 길은 사유농장이니 왼쪽 아래로 150m 내려가라는 안내판이 보여 왼쪽으로 조금 내려갔습니다. 이내 오른 쪽 통나무 게단 길로 30-40m 가량 올라가 햇빛을 가릴 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푹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들어선 통나무 계단 길이 얼마간 가파르게 이어지다가 널판 계단 길로 바뀌었습니다. 농장을 왼쪽으로 우회해 산길을 오르다가 마루금에 복귀한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 대곡산으로 향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14시 정각에 다다른 대곡산은 2009년 12월에 한 번 오른 바 있는데 그 때 본 돌탑과 소나무 한 그루가 저를 반기는 듯 했습니다.
15시15분 해발767m의 무학산(舞鶴山)에 올라섰습니다. 대곡산에서 북쪽의 무학산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명산100산답게 넓게 나 있고 곳곳에 표지물들이 세워져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전혀 없었습니다. 날 등을 지날 때는 햇살이 따가워 남방의 깃을 세워 목덜미를 가렸습니다. 한티재를 출발한 후 대곡재에 이르기까지는 간벌하는 두 사람과 초소감시원 등 세 사람이 산행 중 만난 사람 전부였습니다만 대곡산을 지나서부터는 무학산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지난번에 무학산에서 대곡산으로 거꾸로 내려갈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마산 앞바다가 이번에는 깔끔하게 조망되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손가락이 바빴습니다. 지금 보아도 저리 푸른데 1932년 노산 이은상 선생이 “가고파”라는 시를 쓸 때는 마산 앞바다가 얼마나 파랬을까 잘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샘터를 지나고 데크계단 길을 지나 올라선 무학산 정상에는 평일인데도 붐볐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이 산의 모습이 춤추는 학을 닮았다하여 신라의 문성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름 지었다는 무학산(舞鶴山) 정상에서 마재고개로 향하는 낙남정맥은 헬기장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졌습니다. 평평한 길을 얼마간 따라가다 눈이 녹아 길이 질펀하고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미끄러워 크램폰을 다시 꺼내 찼더니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시루바위 길이 왼쪽으로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15시54분에 바로 위 662m봉에 올랐습니다.
17시47분 10번도로가 지나는 마재고개에서 15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662m봉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얼마 후 다시 오른 낮은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안부로 내려갔습니다.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524m봉의 벤치에 앉아 오래 쉬었더니 저녁이 가까워져서인지 등 뒤의 땀이 다 식어 냉기가 느껴져 대곡산에서 무학산을 오를 때 너무 더워 벗어 넣었던 자켓을 다시 꺼내 입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길에 한 분을 만나 마재고개에서 마산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110번, 111번, 113번, 114번과 115번으로 자주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자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넓적한 바위를 지나고 왼쪽으로 중리길이 지나는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확 꺾어 송전탑이 들어선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무학산 둘레길이 지나는 안부에서 나지막한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 화물차들이 많이 서있는 주차장에 내려서서 크램폰과 스틱을 챙겨 넣은 후 20분가량 쉬었습니다. 바로 앞의 도로를 건너 오른 쪽 삼거리로 이동했습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 3-4분 가다가 도로를 건너 마재고개에 이르러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 한 후 다시 건너가 오른 쪽 아래 중리 쪽으로 내려가 110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마산 역사에서 커피를 들며 시간을 죽인 후 저녁 9시15분에 서울행 KTX에 올라탔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해 떨어지기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없다 했는데 아직은 몸안에서 에너지가 많이 분출해 생각보다 일찍 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런 날이면 절로 어깨가 으쓱여지고 두 다리에 힘이 붙습니다. 그리고 나이는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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