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종주기16
*정맥구간:마재고개-천주산-신풍고개
*산행일자:2011. 3. 6일(일)
*소재지 :경남마산/창원/함안
*산높이 :천주산639m, 장등산425m
*산행코스:마재고개-장등산-안성고개-천주산-굴현고개-신풍고개
*산행시간:7시8분-16시17분(9시간9분)
*동행 :나홀로
“집 소”로 읽히는 한자 “巢”는 나무 위에 새 집이 있고 그 위에 세 마리의 새가 앉아 있는 모양을 형상화 한 것으로 “새 집”을 의미하는데 이 뜻 외에도 “깃들이다”와 “모이다”라는 뜻의 동사로 쓰이기도 합니다. 술이 잔뜩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도 자기 집을 용케 찾아가는 것은 귀소본능(歸巢本能)덕분인데 이 때 “巢”는 물론
집을 뜻합니다.
낙남정맥 종주 길에 새 둥지 “巢”를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대간과 산맥을 종주하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어도 어느 하나 전신을 내보이며 포즈를 취해주지 않아 온전하게 그들의 모습을 사진 찍은 것은 몇 번 안 됩니다. 이런 새들이니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둥지를 틀리가 없고 보면 산행 중에 새 집을 만나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들판이나 보리밭에서 여러 번 본 새 집은 멧새나 종다리들의 둥지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둥지 안의 알들을 집으로 가져가 또래 아이들에 자랑을 했던 일도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미 새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짓거리였습니다. 동리 어귀 나무 위 높은 곳에 까치들이 지은 집들은 이번에 사진 찍어온 새 집에 비하면 대궐에 비견될 만한 큰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을 뒷받침하는 귀소성(歸巢性)은 동물이 먼 곳에 갔다가도 살던 집이나 둥지로 돌아가는 성질을 이릅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바로 위 형님이 산에서 때가치 새끼를 잡아다주어 한 해 여름 내내 방아깨비 등 곤충을 잡아다가 먹여가며 정성스레 기른 적이 있습니다. 가을이 되자 아침 집을 나가 어디론가 날아갔다가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기를 며칠 간 계속해 고맙다 했는데 어느 날 집을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아 어린 마음에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새들 또한 낳은 정이 기른 정보다 더 끈끈해 자기를 낳은 어미 새들을 찾아 산속 둥지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까치의 원거리 비행은 바로 귀소성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전날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도 자라난 집을 찾는 귀소성 덕분이라면 태어난 집에 대한 귀소성이 그 곳을 떠나 상당 기간 살던 집에 대한 그것보다 훨씬 강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또한 낳은 정이 기른 정보다 강하다는 명제가 참임을 밝히는 좋은 실례가 될 것입니다.
고개마루에서 만나본 새 집은 그 크기로 보아 때까치나 비둘기가 지은 집은 아닌 것 같고 박새나 곤줄박이가 아니면 동고비 둥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巢)의 형태가 잘 보존된 것으로 보아 몇 년된 고가(古家)는 아닌 것 같지만 텅 빈 둥지에서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혹시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느라 버려두고 간 폐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사를 갔더라도 사람들처럼 크게 성공해서 언제고 새끼들을 데리고 이 집으로 금의환향 할지도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이 집이 그때까지 보존될지 걱정됐습니다. 혹시라도 그들 새들이 돌아오기 전에 이 집이 없어질 수도 있다 싶어 사진이라도 여기에 걸어놓으라고 이 집이 제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역할은 능히 해낼 수 있을만큼 이번에 제대로 사진을 찍은 것 같아 퍽 다행입니다.
아침7시9분 마재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새벽 1시에 강남터미널을 출발한 심야우등버스가 마산에 도착한 것은 4시40분이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15분 거리의 마산역으로 옮겨 20분 가량 시간을 죽인 후 아침 식사를 마치고 113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마재고개에 도착하자 하늘에 구름이 조금 끼기는 했어도 해뜨기 직전인데도 공기가 그다지 냉랭하지 않아 이번 종주산행이 수월할 것 같았습니다. 10분 남짓 올라 만난 능선 삼거리에서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이어지는데 혹시라도 직진방향의 구봉산 길이 정맥 길일 수도 있다 싶어 바로 위 무명봉을 올라가 이 길이 아님을 확인하고 능선삼거리로 돌아오느라 15분 넘게 시간을 까먹었습니다. 오른 쪽의 평성소류지 방향으로 진행해 나지막한 안부에 도착하자 작은 새둥지가 보여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안부에서 통나무 계단 길을 걸어 올라가 만난 첫 번째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의 희미한 길로 잘못 들어서는 통에 또 15분 이상 허비했습니다. 이 길로 한참 동안 걸었는데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지형도를 꺼내보니 직진 길이 맞는 것으로 나와 다시 삼거리로 돌아갔습니다. 3-4분가량 직진하자 낙남정맥 표지기가 보여 안심하고 올라 바로 위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한창 에코브리지공사가 진행 중인 송정고개에 8시38분에 도착했으니 앞서 치른 두 번의 알바로 마재고개에서 45분 거리인 이 고개에 이르기까지 배가 늦어진 셈입니다.
9시8분 제석농원앞 시멘트 길 안부를 지났습니다. 내려선 송정고개에서 오른 쪽 터널을 지나 건너 편 절개면이 거의 끝나는 곳에서 축대를 딛고 산길로 들어서 직벽의 절개면 꼭짓점 부근에 올라선 후 오른 쪽으로 꺾어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파란 대형저수통이 들어선 202m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는 길에 묘지의 비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아래 위 묘비에 돌아가신 분이 교회의 장로 분으로 적혀 있었습니다만, 위에 자리한 작은 묘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손이 가지 않아 봉분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아래의 큰 묘는 최근에 안치된 것으로 관리가 잘 되어 깔끔했습니다. 장로 분들이 묻혀 있는 두 묘가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주님이 내리시는 은총이 차이나서가 아니고 후손들의 살림살이가 같지 않아서라면 3대가는 부자가 없다는데 아래 묘에도 언제 나무가 뿌리를 내릴 줄 모르는 일이다 싶어, 언제고 흉물스럽게 방치될 묘비 같은 구조물을 세우는 것은 삼가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등산 2.2Km전방의 시멘트길 안부에서 직진해 지도에 개사육장으로 나와 있는 제석농원 앞을 지나면서 풀어놓은 개들을 몇 마리 만났지만 모두가 순둥이어서 짖기만 할 뿐 덤벼들지 않아 문제없이 통과했습니다. 차가 다니는 넓은 길을 따라 조금 가다가 통나무 다리를 건너 왼쪽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얼마 후 다다른 묘지봉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하며 낙엽 깔린 푹신한 길을 지나 “게이트볼장/내서중리/장등산정상”의 표지목이 세워진 무명봉에 이르렀습니다.
10시32분 해발425m의 장등산에 올랐습니다. 산행시작 3시간 넘게 걸어 다다른 무명봉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약수터윗고개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지도에 425m봉으로 나와 있는 장등산에 도착해 10분 남짓 편히 쉬었습니다. 정동쪽으로 보이는 천주산을 향해 왼쪽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해발고도를 120m가량 낮추어 급하게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348m봉에서 조금 내려가 안성재에 다다랐습니다. 왼쪽 아래로 안성저수지 길이 갈리는 십자안부 안성재에서 조금 올라가 "천주산3.0Km/금강산계곡3.2Km/3.15국립묘지”의 제2금강산표지목이 세워진 삼거리에 이르렀는데 제가 갖고 있는 지도에는 어디에도 금강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능선을 오르는 중 잔잔하던 바람에 속도가 붙자 귀가 시렸습니다. “작대산, 예곡/마재6km/천주산3km"의 철근 봉 표지판 앞에서 오른 쪽으로 가파른 길을 따라 걸어 “예곡4.1Km/안성마을3.2Km/천주산1.3Km”의 표지목이 세워진 봉우리삼거리에 올라선 시각이 11시36분이었습니다.
12시25분 해발639m의 천주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왼쪽으로 내곡마을 길이 갈리는 봉우리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을 걸어 억새들이 가득 들어선 길을 올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마산 구암동 길이 갈리는 봉우리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1.1Km 남은 천주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창원시가 한눈에 잡히는 능선을 따라 바위 봉에 올라서자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정남쪽의 무학산과 남서쪽의 여항산은 쉽게 눈에 들어왔는데 코앞의 천주산을 빼고는 앞으로 올라야할 멀지 않은 정병산과 대암산 모두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모든 것은 결국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려선 안부에서 바람 춤을 추고 있는 억새들을 뒤로하고 올라선 천주산은 조금 못가 돌탑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정상에 천주산 정상석과 용지봉 표지석이 나란히 서있었습니다. 북적대는 정상을 떠나 바로 아래 헬기장 끝머리의 왼쪽 사면이 진달래군락지인 육각정으로 옮겨 점심을 들었습니다. 마산, 창원 및 함안을 어우르는 명산으로 진달래군락지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으며 이원수 선생이 작사한 “고향의 봄” 노래의 창작배경이 되었다는 이 산이 천주산(天柱山)으로 불리는 것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을 지녀서라 합니다. 지붕이 내려앉지 않도록 기둥을 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하늘이 무너질까 기둥을 세우는 일은 아무래도 기우일 듯싶은데 그럼에도 기둥을 세웠다면 하늘을 믿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반시간 남짓한 긴 휴식을 끝내고 12시57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천주봉으로 향했습니다.
13시55분 해발478m의 천주봉(天柱峰)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천주산 정상의 육각정을 출발해 “만남의 광장0.4Km/천주산1.1Km"표지봉이 세워진 구릉에 이르기까지 몇 개의 헬기장이 계속 보였습니다. 육각정을 출발해 넓은 안부로 내려섰다가 전망대를 지나 여러 개의 돌탑들이 산불감시용 카메라와 함께 자리한 612m봉에 올라섰습니다. 612m봉에서 마지막 헬기장이 들어선 “만남의 광장0.4Km/천주산1.1Km"의 지점에 다다른 다음 왼쪽 아래 만남의 광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무척 질어 길을 골라 내려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꽤 넓은 임도가 교차하는 만남의 광장을 조금 지나 창원시에서 세운 산림도서장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서 문을 열어보았는데 읽을 만한 책들이 눈에 띄지 않아 조금은 실망했습니다. 그대로 직진해 팔각정을 지나고 얼마 후 산림감시초소가 서 있는 천주봉에 도착했습니다. 천주산에서 천주봉에 이르는 길이 질어 생각보다 늦게 천주봉에 도착해 신풍고개에서 더 진행하기가 힘들 것 같아 바위에 앉아 잠시 쉬면서 땅이 녹았을 지도 모를 급경사길을 안전하게 내려가기 위해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15시19분 해발293m의 북산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창원시와 팔용산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천주봉을 출발해 엄청 가파른 동쪽 사면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몇 곳은 길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꺼내 차기를 잘했다 했습니다.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 공동묘지 앞에서 잠시 쉬면서 아이젠을 풀었습니다. 공동묘지를 지나 내려선 굴현고개는 왕복2차선의 좁은 도로가 지나고 조금 더 가 그 밑으로 낸 터널을 79번의 넓은 도로가 지났습니다. 굴현고개에서 대나무를 잡고 올라선 길이 왼쪽의 과수원을 비껴가느라 죽림 안을 지났습니다. 조금은 복잡한 길을 벗어나 넓은 임도를 지나는 길에 길 옆에서 버너를 지피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눈이라고는 눈 부비고 찾아보아도 손톱만치도 보이지 않아 길섶의 잡목들이 바짝 말라 있는 여기 남쪽지방의 산길에서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을 피우지 않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입니다. 왼쪽으로 구룡산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몇 분을 걸어 북산에 이르렀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에 하얀 의자 하나가 놓여 있어 쉬어가도 좋음 직한데 신풍고개에서 더 진행할 지도 몰라 선채로 긴 호흡을 취한 후 왼쪽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16시17분 신풍고개에 도착해 16구간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북산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편했습니다. 15분 남짓 걸어 내려가 만난 남해고속도로는 과수원 아래 지하도로 건넜습니다. 지하도를 통과해 왼쪽으로 4-5분 이동해 왕복2차로의 차도가 지나는 고개 마루에 다다랐습니다. 밭에서 일하시는 노인 분들에 여쭸으나 고개이름은 알지 못하고 저 아랫마을이 용강마을이라는 이야기만 들려주셨습니다. 이 고개를 지나 나지막한 야산에 일군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송전탑에서 조금 더 올라가 돌탑과 정자가 세워진 쉼터에서 체육시설을 이용해 몸을 다지고 계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자에서 왼쪽으로 꺾어 14번 도로가 지나는 신풍고개로 내려서자 도로확장공사 가 진행 중이어서 덤프트럭 등이 많이 지나다녔습니다. 일단 길을 건넌 다음 시간을 점검해본 즉 해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이 2시간 조금 더 남아 그 안에 적당한 탈출로가 보이지 않는 낙남정맥을 계속하기가 무리라는 판단을 하고 이번 산행을 이 고개에서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다시 길을 건너 도로변의 가게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들었습니다. 60세들의 젊음이 한 없이 부럽다는 76세의 가게주인 할머니가 제게 들려준 말씀은 산에 다닐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앞 용강검문소에서 삼도버스를 타고 마산 시외버스터미널로 옮겼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라가야의 고분군을 탐방하고 남강과 낙동강의 합수점을 들러본 후 일찍 상경해 귀가하고자 함안으로 넘어갔습니다.
금의환향하는 새들을 보고 시 한수 읊을 수 있다면 그 분이야말로 사람 사는 멋과 맛을 아는 분일 것입니다. 국문학자 조동일교수는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없이 세계를 자아화하는 문학갈래가 서정문학이며 이 갈래에 향가, 시조와 시(詩)등이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바로 자기 시를 통해 세계를 자아화하는 분이기에 사람 사는 멋과 멋을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새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그를 노래한 한 분이 계십니다. 귀거래사를 읊은 분답게 "귀조(歸鳥)"라는 시를 남긴 중국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이 분의 4연시 귀조(歸鳥)"를 여기에 옮겨놓으며 이번 산행기를 맺습니다. (이 시는 태종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장기근교수게서 편저한 "陶淵明"에서 따왔습니다.)
歸 鳥
<一 章>
翼翼歸鳥(익익귀조) : 펄럭펄럭 돌아오는 새들은
晨去于林(신거우림) : 아침에 숲을 나가노라
遠之八表(원지팔표) : 멀리는 하늘 끝까지 날기도 했고
近憩雲岑(근게운잠) : 가까이 구름 봉우리에 쉬기도 했지
和風弗洽(화풍불흡) : 그러나 화풍이 미흡하여
翻翮求心(번핵구심) : 날개 돌리어 본고장 되찾고저
顧儔相鳴(고주상명) : 서로 짝을 보며 우짖으며
景庇淸陰(경비청음) : 몸을 맑은 그늘에 숨기고자 하여라
<二 章>
翼翼歸鳥(익익귀조) : 펄럭펄럭 돌아오는 새들은
載翔載飛(재상재비) : 훌쩍 날아 내닫노라
雖不懷遊(수불회유) : 이리저리 놀고 싶은 생각 없으나
見林情依(견림정의) : 숲을 보면 내 집인 듯 정을 쏟고
遇雲頡頏(우운힐항) : 구름 만나 아래 위로 날으면서
相鳴而歸(상명이귀) : 서로 울며 내 집으로 돌아오거늘
遐路誠悠(하로성유) : 참으로 길이 멀고도 아득하구나
性愛無遺(성애무유) : 본성으로 좋아하는 바 잊지 않으리
<三 章>
翼翼歸鳥(익익귀조) : 펄럭펄럭 돌아오는 새들은
相林徘徊(상림배회) : 내 집 숲을 보고 배회하며
豈思天路(기사천로) : 하늘 높이 오를 생각 버리고
欣及舊棲(흔급구서) : 옛 집에 돌아온 일 기뻐하노라
雖無昔侶(수무석려) : 비록 옛날의 벗은 없으나
衆聲每諧(중성매해) : 모든 소리가 함께 어울리고
日夕氣淸(일석기청) : 밤 기운 더욱 맑으니
悠然其懷(유연기회) : 가슴 속이 유연해지네
<四 章>
翼翼歸鳥(익익귀조) : 펄럭펄럭 돌아오는 새는
戢羽寒條(집우한조) : 날개 거두고 고목가지에 쉰다
遊不曠林(유불광림) : 날아도 숲 멀리 가지 않고
宿則森標(숙칙삼표) : 깊은 숲 가지에 앉아 잠드네
晨風淸興(신풍청흥) : 맑은 아침 바람 일면
好音時交(호음시교) : 좋은 소리로 어울릴 뿐
矰繳奚施(증격해시) : 줄살도 이 새를 겨누지 않으니
已卷安勞(이권안로) : 피곤한 몸 이제는 안락하게 풀어라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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