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감악지맥 종주기 3(최종회)
*지맥구간:간패고개-마차산-한탄대교
*산행일자:2007. 12. 29일
*소재지 :경기동두천/연천
*산높이 :마차산588m, 구정산412m
*산행코스:간패고개-마차산-양운리고개삼거리-구정산-한탄대교
*산행시간:10시43분-16시40분(5시간57분)
*동행 :경동고 29기 정병기동문
“천년을 한가지로 흐르면서 세월을 셈하는 것은 오로지 강물뿐이다.”
대하소설 “조선총독부”로 필명을 날린 유주현 선생의 소설 “임진강은 흐른다”의 첫 장에 실린 위의 글귀처럼 서해바다를 향해 한가지로 흐르면서 임진강이 셈했을 세월은 천년을 수 만 번 반복하고도 남을 만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강 또한 다른 강과 마찬가지로 선생의 말씀대로 강 유역에 수많은 전설을 쌓았다 흐트러트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임진강은 다른 강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낌을 받지 못하는 것은 휴전선에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소설 “임진강은 흐른다”에 나오는 두 청년처럼 잘 못 접근했다가는 간첩으로 오인 받아 총격을 받을 수도 있었던 강이어서, 임진강은 장병들이 지키는 무서운 강이지 언제라도 다가가고 싶은 정감 가는 강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향이 파주인 제가 임진강이 한강의 제1지류라는 사실을 이제껏 몰랐음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임진강은 바다에 닿기 전에 오두산 바로 아래 합수점에서 한강에 유입되어 끝나기에 한강의 제1지류로 분류하는 가는 잘 모르겠지만 어엿한 제 고향의 강을 어느 강의 지류로 본 다는 것은 저로서는 아무래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북감악지맥이 끝나는 한탄강의 자료를 뒤적이다 뒤늦게 접한 사실로, 그동안 고향의 산들은 열심히 찾아 오르면서도 고향의 큰 강인 임진강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어제로 종주산행을 마친 한북감악지맥의 산줄기가 끝나는 곳이 임진강 제1 지류인 한탄강(漢灘江)입니다. 북한 땅 강원도 평강군의 해발고도가 1,052m인 장암산에서 발원한 한탄강은 그 길이가 130여Km가 된다 합니다. 경기 연천의 미산면과 전곡읍의 도감포사이에서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한탄강은 한탄대교 인근에서 한북정맥의 한강봉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는 신천(莘川)의 물을 받습니다. 그래서 신천은 한강의 제3지류이고 임진강의 제2지류이며 한탄강의 제1지류가 되는 것입니다. 동두천을 관통하는 신천의 서쪽 울타리가 바로 감악지맥인 것을 안 것은 종주산행을 다 마치고 난 후였습니다. 그동안 산경(山經)만 보았지 수경(水經)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도를 보면서 물줄기는 외면하고 산줄기만 보아온 잘못된 습관 때문입니다. 이번 지맥종주산행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뒤늦게나마 산경과 수경을 같이 보아야겠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아침10시43분 간파고개에서 고교후배 정병기 사장과 함께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밤늦도록 마신 술로 쳐진 몸을 일으켜 세워 아침 늦은 시간인 7시40분에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몇 시간이고 땀 흘리며 산줄기를 오르내리고 나면 몸속의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술에 찌든 속을 산 속의 신선한 공기가 말끔하게 씻어줄 것 같아 주저하지 않고 마지막 한 구간 남은 한북감악지맥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전철로 2시간을 달려 다다른 동두천 중앙역에서 9천원을 들여 택시로 지난번에 내려선 간파고개로 이동했습니다. 기상청예보대로 눈이 오지는 않았지만 기온이 많이 떨어져 장갑을 끼었어도 손끝이 아려왔습니다. 간패고개에서 이어지는 지맥 길은 시멘트 길로 시작되었다가 바로 토치카를 지나서 교통호와 나란히 남동쪽으로 나 있었습니다. 반시간 남짓 걸어올라 교통호가 끝나는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10-20m가량 가서 만난 능선삼거리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북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가파르게 내려선 늦은고개는 시멘트길이 고개를 넘는 넓은 길의 안부사거리로 마차산 2.3Km의 표지봉이 세워져 있었고 왼쪽 아래로 골재채취장이 보였습니다. 넓은 임도를 따라 얼마를 오르다 오른 쪽의 진달래(?) 밭으로 들어섰더니 한 가운데에 쉼터가 있어 제 철이라면 한 숨 쉬어가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 임도로 나와 얼마고 걷다가 임도삼거리에서 직진하여 공터를 지난 후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정오가 다되어 오른 무명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MTB를 즐기는 젊은이 세 사람이 올라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맨몸으로도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봉우리를 10Kg가 넘는 산악용자전거를 끌고 올라온 그들의 젊음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12시33분 해발588m의 마차산을 올랐습니다.
한발 앞서 자전거를 타고 무명봉을 내려선 그들도 가파른 다음 봉우리는 곧바로 오르지 못하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습니다. 이제껏 완만했던 능선 길이 정상을 얼마 앞두고 오름길의 경사가 별안간 급해져 이 산이라고 다른 산에 다 있는 깔딱 길이 없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우리를 넘고 거암을 왼쪽으로 돌아 오르자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간패고개를 떠날 때 가까이 보였던 정상이 가까이 다가설수록 멀게 느껴진 것은 다 올랐다 싶은 봉우리가 연이어 나타나서였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힘들게 오르는 젊은이들을 붙잡아 세워 사진을 찍게 한 것은 정상 바로 못 미쳐 바위에 뿌리박은 거송 한그루로 옆으로 넓게 퍼져 있는 모습이 점잖고 장대해 보였습니다. 마차산 정상은 암벽이 동사면을 받쳐주는 암반으로 된 공터로 먼저 오른 몇 사람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시야는 트였지만 흐릿한 스모그로 시계는 그리 멀지 못해 북쪽의 감악산과 동쪽의 소요산 정도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태양이 남중하는 정오의 시간인데다 바람이 멎어 600m 가까운 높이의 정상에서도 온기가 느껴져 바로 아래 공터로 옮겨 20분 넘게 점심을 들었습니다.
13시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연세가 들어 보이는 서울에 사신다는 두 분과 잠시 동행했는데 그 중 한분이 올해 나이 70세로 같이 오른 친구 분과 거의 매일 산을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6분이 지나자 앞에서 뛰어가는 그 분들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 뒤따르기를 포기하고 동행한 후배사장과 둘이서 원래 페이스를 유지하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늦은고개에서 처음 본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있어 앞의 구간처럼 길 잃을 걱정은 없었지만 혹시나 염려되어 자주 멈춰 서서 위치를 확인하느라 산행이 많이 더뎠습니다. 땅속이 얼어 바닥이 미끄러운 길을 조심해서 내려가 댕댕이 고개를 지난 후 밤골재에 이르기까지 정상출발 반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계속해서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에 쌓인 낙엽들이 잘게 부서지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길을 오가는 산객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14시9분 양우니고개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오른 쪽 밤골로 내려서는 밤골재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어 올라선 능선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갔다가 431봉에 올라섰습니다. 동서 양쪽으로 표지기 걸려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행기와 지도를 점검한 후 오른쪽으로 진행방향을 정하고 조금 더 걸어 벙커위에 삼각점을 세운 봉우리에 다다랐습니다. 이봉우리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가 다다른 삼거리약수터에서 0.81Km를 걸어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소요산역으로 내려서는 양우니고개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는 한적한 능선 길을 걸으며 이번 산행이 금년에 마지막으로 오르는 송년 산행이다 싶어지자 낙엽 밟는 소리도 예사로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정표가 없었다면 어느 누구라도 고개 마루로 알아채지 못할 만큼 밋밋한 능선의 양우니고개삼거리를 지나 "등산로입구0.8Km"의 마지막 이정표기 세워진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랐는데 오른쪽 아래로 동두천시와 연천군을 남북으로 가르는 산줄기가 뻗어 내려갔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15시44분 해발412m의 구정산을 올랐습니다.
연천군으로 들어서 만난 임도 길은 꽤 길었습니다. 능선 길 오른 쪽으로 난 낙엽 덮인 임도를 따라 40분가량 걸어 다다른 넓은 공터의 임도삼거리에서 임도 길은 왼쪽으로 확 꺾여 지고 지맥 길은 그대로 직진해 이어졌습니다. 억새밭 공터를 똑바로 지나서 바닥에 깔린 철조망을 넘어 얼마만큼 오르자 벙커위에 세워진 깃봉이 보였습니다. 깃봉을 지나 다시 만난 임도를 따라 올라 공터삼거리 출발 반시간 만에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구정산(?)에 다다르자 소나무 바로 아래에 거송산악회에서 세운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0분 가까이 걸어 또 다른 비석인 구정산제비(鳩頂山祭碑)를 보았는데 앞서 본 구정산제단(九政山祭壇)과 산 이름의 한자가 달라 헷갈렸습니다.
16시40분 한탄대교 앞에 도착해 한북감악지맥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구정산제비에서 군부대삼각점이 세워진 291봉에 올랐다가 14분을 더 걸어 다다른 헬기장에 서 동행한 후배의 사진을 찍으면서 하루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가파른 길을 올라 벙커 봉에 올라서자 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계속되는 교통호를 건너 고도를 낮추자 오른 쪽 아래로 한북감악지맥이 그 맥을 다하고 강 속으로 침잠하는 한탄강이 보였습니다. 한북정맥의 한강봉에서 갈라진 감악지맥을 따라 40Km 넘게 걸어 이 지맥의 끝 지점인 한탄강으로 내려선다 생각하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한탄강으로 내려서는 마지막 100여 미터가 힘들었던 것은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만난 돌밭을 걸어 내려가기가 경사도 급하고 미끄러워서였습니다. 조심해서 한탄강변 도로로 내려선 후 차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몇 걸음 옮겨 한탄대교 앞에 다다랐습니다.
동두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주민한분으로부터 한탄강의 국민관광단지가 폐쇄된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탄대교 앞 “한탄강 국민관광단지 500m”라는 안내판에 X표를 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샘내고개에서 흐르기 시작한 하천에 공장페수가 스며들었고, 이렇게 오염된 물이 한탄강에 유입되어 강물에서 냄새가 지독하게 나 폐쇄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고개도 높지 않은 샘내고개를 중심으로 물이 한탄강과 한강으로 갈리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이 분이 물 갈림을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한북정맥 이 고개를 지나는 것을 모르기 때문으로 여암신경준의 산경표와 다산 정약용의 대동수경표를 알았다면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에 감탄해 무릎을 쳤을 것입니다.
한 해가 다해갑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산객님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안산 그리고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산행사진>
한북감악지맥 종주기 2
*지맥구간:스르레미고개-감악산-간패고개
*산행일자:2007. 12. 25일
*소재지 :경기파주/양주/연천
*산높이 :감악산(설인귀봉)m, 임꺽정봉674m
*산행코스:스르레미고개-수레네미고개-설머치고개-감악산-간패고개
*산행시간:8시45분-17시45분(9시간)
*동행 :경동고29회정병기 동문
서로 다른 둘이 손잡고 공존하면 평화이고, 대립하고 싸우면 전쟁입니다.
한북감악지맥의 종주 길에 오른 감악산 정상에서 평화와 전쟁의 상징들을 모두 보았습니다. 이 산 정상에서 강 건너 북쪽의 송악산을 뚫어져라 지켜보는 초병의 얼굴을 보고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했는데, 이 초병에 안온함을 안겨주는 4-5분 거리의 성모 마리아 상 앞에 다가가서는 무한한 평화를 느꼈습니다. 이 산의 최고봉을 놓고 자웅을 겨루다 단 1m 차이로 설인귀봉에 정상을 넘겨준 임꺽정봉에 올라서자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한 이 봉우리가 날카로운 바위를 곧추세우고 한판 붙어볼 기세여서 섬뜩함이 느껴졌지만, 산 아래 신암저수지와 원당저수지등 두 저수지가 산꼭대기 암벽들과 자기자리에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믿음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이런 것들이 바로 평화이다 했습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것을 다 감싸고 있어 볼거리가 훨씬 많은 감악산이 명산100산으로 선정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관악, 운악, 화악 및 송악과 더불어 경기5악으로 불리는 감악산도 바위가 많은 악산임에 틀림없지만, 이처럼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들과 또 갈등하며 상쟁하는 것들을 모두 어우르는 산이 어디 이 산 말고 달리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상에 올라 휘 한번 둘러보고 나서는 때로는 웃고 더러는 분노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자화상을 본 것 같아 친근감이 더해졌습니다. 비석에 한 글자도 남아 있지 않아 언제 세워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설인귀봉의 빗돌대왕비가 이 산이 겪어온 과거를 이야기해주는 것이라면 바로 아래 신설 중인 거대한 KBS DMB 방송탑은 미래의 상징물일진데 이 둘에서 과거와 미래의 평화로운 공존을 보는 듯해 과연 감악산이다 했습니다.
아침8시45분 해태상이 세워진 스르레미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의정부 가능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32번 금촌행 버스를 타고 50분 가까이 달려 다다른 스르레미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1973년에 처음 정상을 오른 후 7번 째 찾는 감악산을 이번에는 파주와 양주를 경계 짓는 산줄기를 따라 올랐습니다. 이 고개에서 오른 쪽 구릉에 올라서자 군용차도가 넓게 나있어 동행한 후배동문과 함께 이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고 한 참을 더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차도와 헤어지고 바로 앞의 임도 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안지나 266.1봉에 올라서서 서쪽 저만치에 자리한 파평산을 카메라에 담은 후 오른쪽으로 꺾어 가파른 잣나무 숲길로 내려섰습니다.
9시45분 수레네미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파주 쪽에서 올라온 한 무리의 노인 분들이 시멘트 길을 따라 고개 마루를 넘어 양주 쪽으로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면서 격동기의 젊은 날을 엄청 고생하며 보냈을 저분들이 이제는 뒤따라오는 젊은이들에 뒷모습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로건너 가파른 길을 올라 오래전에 지어놓았을 은둔용(?) 가건물이 세워진 바로 앞 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서자 다시 군사도로가 나타나 이 길을 따라 무건리고개에 닿기까지 계속 북진했습니다. 사격장통제용 깃대와 넓은 헬기장 다음으로 무언가를 숨겨놓을 목적으로 만들었을 커다란 벙커 같은 군 시설물을 지나 어느 한 일가의 아담한 묘지 앞에 다다랐습니다. 호화분묘는 아니더라도 상석과 묘비 등의 즐비한 석조 구축물들이, 산 속의 모든 것들이 오랜 세월 끝에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시스템에 반하는 것들이어서, 정맥 길의 다른 묘들처럼 언제고 이장명령을 받아 옮겨질 때 석조구축물들만 덜렁 남겨두어 볼꼴사납게 나뒹구는 것이 아닐까 싶어 같이한 동문에 수목장이 가장 친환경적인 매장이어서 좋겠다는 제 뜻을 전했습니다. 묘지를 지나고 헬기장도 지나 넓은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가 무건이고개에 닿기까지는 더할 수 없이 산행이 여유로웠습니다.
10시49분 2층망루가 세워진 무건이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설머치고개까지는 계속 길을 잘 못 들어 헤매고 또 헤맸습니다. 철문 안으로 도로가 내려서는 무건이고개에서 오른 쪽 도로를 따라 가다가 왼쪽 봉우리로 올라섰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다시 군사도로로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2-3분을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풀들이 덮인 임도를 따라 낮은 구릉을 올라섰다가 천천히 내려서자 가파른 내림 길이 보였는데 뭔가 찜찜해 잠시 멈춰 서서 지도를 보았습니다. 무건이고개에서 동진해야 설마치고개에 다다를 수 있는데 정신없이 북진해 지맥 길에서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얼마 후 삼거리에서 다시 들어선 군사도로를 되짚어 가다가 시멘트로 포장된 넓은 공터를 만나 지맥 길로 복귀한 것이 첫 번째 알바였습니다. 시멘트공터 5거리에서 직진해 공동묘지 옆의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다 산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삼각점이 세워진 365.7봉에 올라섰습니다. 이봉우리에서 내려선 고개마루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자 능선 왼쪽으로 사계를 시원스레 정리한 산줄기가 북으로 향하고 있어 이 길이 아님을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잡목을 베어내고 유일하게 소나무만이 몇 그루 서있어 전방만 아니라면 운치를 느낄만한 능선 길에서 고개마루로 다시 내려와 군부대에서 설치한 철조망을 건넜습니다. 하얀 눈이 덮인 응달 길을 따라 동쪽으로 3-4분을 내려가 만난 맨 흙의 넓은 공터에서 지맥 길에 합류한 것이 두 번째 알바였습니다. 3번째 알바는 다 내려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보고서야 확인한 것이어서 맥이 더 빠졌습니다. 토치카 같은 군 시설물을 지나서 한참 후에 다다른 가족묘표지석이 세워진 능선삼거리에서 다음카페의 한 산악회가 걸어놓은 표지기를 보고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 것이 실수였습니다. 넓은 길로 먼저 내려선 동문이 이 카페의 표지기를 다시 보고 제 길이라며 따라오라 했으나 앞에 놓인 계곡이 이 길이 아님을 분명하게 얘기해주어 별 수 없이 가족묘 표지석이 세워진 능선삼거리로 다시 올라서 3번째 알바를 끝냈습니다. 마지막 4번째 알바도 바로 전 알바와 유사했습니다. 삼거리에서 직진해 능선 길을 따라 걷다가 7-8분 후 능선 왼쪽으로 난 임도 길로 들어섰습니다. 4-5분 후 만난 임도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야 할 것을 왼쪽으로 꺾어 한참을 내려가자 집 한 채와 그 아래 계곡 건너로 3번 째 알바에서 만났던 넓은 길이 다시 보였습니다. 산줄기를 이어가는 종주산행에서는 계곡을 건너면 무조건 안 되기에 오른 쪽의 군부대 울타리에 바짝 붙어 4-5분을 전진하자 의정부에서 적성 가는 371번 도로가 나타났습니다. 이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군부대 정문을 지나서 한창 도로공사중인 설머치고개마루에 올라가 감악지맥의 마루금을 밟고서야 제 길을 찾았다 싶어지자 저를 따라 나선 후배동문에 된 고생을 시킨 것이 새삼 미안했습니다.
13시31분 설마치고개로 올라섰습니다.
도로확장공사로 어수선한 고개 마루에서 10분여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은 후 오른쪽의 군부대 울타리에 바짝 붙어 파헤쳐진 공사장을 건넌 다음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뿌리 채 뽑혀 내동그라진 삼각점을 지나 오른 무명봉에서 점심을 들면서 모처럼 20분 가까이 푹 쉬었습니다. 스르레미고개에서 설머치고개까지는 군사도로와 임도가 얼기설기 나있어 길 잃기가 십상이었지만 설머치고개에서 감악산에 오르는 길은 거의 외길이어서 더 이상 딴 길로 들어서 헤맬 일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는데 넓은잎나무들이 떨어낸 낙엽들이 소북이 쌓여 있는 능선 길이 얼마고 계속되어 알바로 생고생했던 발바닥이 즐거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왼쪽 아래 사기막 골의 굿 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한참을 오르자 다시 군사도로가 나타나고 뒤이어 가스실습훈련장 건물이 보였습니다. 얼마 후 군사도로에 벗어나 가파른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가파른 길을 올라 출입을 금한다는 군부대경고판을 뒤로하고 고개마루에 올라서자 오른 쪽으로 암릉 길이 나타나 왼쪽으로 에돌았습니다.
15시38분 법륜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임꺽정봉 0.7Km 전방의 고개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응달진 길의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아이젠을 찼는데 이내 만난 아기자기한 암릉 길을 오르내리느라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작년 11월에는 안개가 자욱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여기 암릉 길에서 저 아래 원당저수지가 선명하게 보일만큼 하늘이 쾌청해 바위의 소나무를 배경으로 저수지를 향해 몇 번이고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16시 정각에 해발674m의 임꺽정봉에 올라 운무 위로 능선만 빠끔히 보이는 북녘 땅 송악산을 바라보자 이제껏 떼돈을 퍼주고도 북한정권이 쳐놓은 커튼을 거둬내지 못한 햇빛정책을 계속 끌고 가야하는 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 임꺽정이 숨어살았다는 임꺽정굴을 내려 가보지 못하고 바로 설인귀봉으로 향했습니다.
16시21분 감악산 정상인 해발675m의 설인귀봉에 올랐습니다.
넓은 공터 한 쪽에 세워진 빗돌대왕비는 글자가 한자도 남아 있지 않아 몰자비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의 유격대장 설인귀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은 비록 적장이지만 용맹스럽고 인간적인 면이 있어 설인귀전이라는 군담소설이 조선 땅에서도 번역되어 민중들에 널리 읽힌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정상봉을 설인귀봉으로 부르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지만, 진흥왕 순수비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빗돌대왕비를 이렇다 할 고증 없이 설인귀비로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서둘러 바로잡을 일이다 싶었습니다. 정상에서 건너편 마리아상으로 옮기는 중 작년에 보지 못한 커다란 송전탑 같은 것이 서있어 다시 보니 KBS DMB라는 작은 표지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마리아 상에서 기도를 올린 후 오른 쪽으로 꺾어 커다란 암벽을 왼쪽으로 돌아 지성소로 내려갔습니다.
17시45분 간패고개에서 2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지성소가 가까워지자 더 이상 굿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일몰을 얼마 앞둔 산속이 고요했습니다. 지성소 역내로 들어가 길을 잃고 헤맸던 작년 산행이 생각나 이번에는 지성소에 다다르기 직전 오른 쪽 능선으로 붙었는데 얼마 후 헬기장으로 내려서서야 길을 제대로 들었음에 안도했습니다. 헬기장을 출발해 한 번도 쉬지 않고 죽어라고 내달렸어도 간패고개로 내려서는데 1시간이 다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 나지 않는 낙엽 쌓인 한적한 능선 길을 따라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어 동쪽으로 내달리는 저희들을 땅거미가 바로 쫓아왔습니다. 혼자라면 닥쳐올 어둠에 불안했을 산길을 둘이서 부지런히 걸어 차도가 얼마 남지 않은 묘지에 내려서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묘지에서 조금 내려서 간패고개에 도착해 길옆에서 웃옷을 갈아입은 후 10분여 오른 쪽으로 걸어 내려가 황방1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후 10분가량 기다렸다가 어유지리를 출발한 동두천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동두천역 앞에서 삼겹살을 들며 되새김한 이번 종주산행은 숱한 알바로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감악산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물줄기와 그 건너 북녘 땅의 송악산 산줄기를 본 것만으로도 기억에 남을만한 산행이었다고 자평을 했습니다. 짙은 안개로 작년 산행에서 제대로 못 본 임꺽정봉으로 오르는 암릉길 절애의 바위들이 볼만했고 성탄절 날 산상에 세운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이 땅에 평화가 깃들 것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린 것도 뜻 깊었습니다. 장장 9시간을 함께 땀 흘린 후배 동문에 특별히 감사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한북감악지맥 종주기 1
*지맥구간:한강봉-노고산-스르레미고개
*산행일자:2007. 12. 8일
*소재지 :경기파주/양주
*산높이 :한강봉436m, 은봉산380m, 팔일봉464m
노아산337m, 노고산401m
*산행코스:말머리고개-한강봉-은봉산-팔일봉-노아산
-노고산-스르레미고개
*산행시간:8시13분-17시21분(총9시간8분/구간종주8시간10분)
*동행 :나홀로
남한 땅 아홉 정맥 중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시작하여 남서쪽으로 내 닫다가 제 고향 파주의 교하 벌에다 해발102m의 장명산을 마지막으로 일군다음 곧 바로 곡릉천으로 내려앉습니다. 이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지맥 중에 파주 땅 한 복판을 동서로 내지르는 산줄기는 오두지맥이고, 동쪽에 인접한 양주시와 경계선을 그으며 남북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가 감악지맥입니다. 한북정맥, 오두지맥과 감악지맥, 그리고 이 두 지맥에서 분기한 단맥들만 찾아 올라도 파주의 웬만한 산들은 거의 다 커버되기에 저는 우선적으로 이들 산줄기들을 먼저 올라 고향땅 산 오름을 가름해왔습니다. 그래서 2004년에 한북정맥과 2005년에 오두지맥을 종주했고, 올 봄에 감악지맥에서 분기한 금병단맥과 파평단맥을 올랐으며 그동안 숙제로 남겨둔 감악지맥에도 어제 드디어 첫발을 들였습니다.
한북감악지맥이란 한북정맥의 한강봉에서 북쪽으로 내달아 해발675m의 감악산을 솟군 후 동쪽으로 휘어가다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되돌려 해발565m의 마차산을 일구고 국민관광지인 3번 국도변 한탄강으로 가라앉는 커다란 산줄기로 그 전장이 40Km를 조금 넘는다 합니다. 이렇듯 한북정맥에서 새끼 친 감악지맥이 임진강 상류인 한탄강에서 끝난다는 것은 한북정맥이 그저 한강의 이북 땅을 지나는 단순한 산줄기가 아니고 한강과 임진강을 가르는 커다란 분수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강의 지류인 곡릉천 이북 쪽을 지나는 오두지맥을 한북정맥으로 하고 한강봉에서 도봉산을 거쳐 곡릉천을 그 남쪽에서 만나는 한북정맥 줄기를 도봉지맥으로 부르자는 박성태님의 주장은 옛 지리서인 산경표와는 그 내용이 다르더라도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북정맥에서 분기한 오두지맥과 감악지맥, 그리고 금병단맥으로 빙 둘러싸인 제 고향 문산천도 한강이 아니고 분명 임진강으로 흘러내려가고 있습니다.
아침8시13분 장흥과 백석을 가르는 말머리고개를 출발했습니다.
7시30분에 구파발을 출발한 주내행 15-1번 마을버스에 몸을 실은 지 반시간이 막 지나 꽤 많은 차량들이 쉴 새 없이 넘나드는 말머리고개에 도착했습니다. 1995년 회사의 물류센터부지를 알아보고자 저 아래 백석 땅을 샅샅이 뒤지느라 이 고개를 수도 없이 넘나들었는데, 그 12년 후 산 나들이를 위해 아침 이른 시간에 이 고개 마루에 다시 서고 보니 좀 쉬었다 가라고 아무리 말려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앞만 보고 흐르는 세월을 12년간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의구한 산천도 어찌하지는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고 땅은 하루 이틀 전에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변해 이제야 비로소 겨울 한 가운데 서 있음이 실감됐습니다. 오른 쪽 들머리로 들어서서 새하얀 눈길을 오르면서 도시에 내린 눈들은 벌써 다 녹아 없어졌는데 이 산자락에 내린 눈들은 한동안 녹지 않고 올 겨울을 낼 기세여서 자리를 잘 잡아야 오래도록 흥할 수 있다는 풍수지리가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 하얀 눈들에도 잘 들어맞는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 눈을 제가 처음 밟는다는 쾌감 속에 흠뻑 빠진 채 동쪽으로 반시간을 걸어 한북정맥에 다다르자 방금 걸어온 오두지맥을 한북정맥으로, 그리고 도봉산을 지나는 산경표의 한북정맥길을 도봉지맥으로 적어 넣은 안내판이 서 있었습니다.
9시11분 해발 436m의 한강봉을 출발해 한북감악지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한북정맥상의 능선 삼거리를 지나자 여러 사람들이 앞서 눈을 밟고 지난 흔적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돌무덤이 쌓인 한강봉에 오르자 불곡산에 이르는 서쪽 산 아래를 가득 메운 운해가 참으로 볼 만했습니다. 한강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은봉산 가는 길에 소나무밭 쉼터를 지났습니다. 바로 아래 동화아파트와 장흥 양방향으로 길이 갈리는 능선사거리를 지나서는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본격적인 지맥길이 시작되어 여름 한때 풀들이 무성했을 좁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무명봉을 넘어 안부사거리인 느르미고개로 내려섰다가 바위 위 송전탑을 지나 은봉산에 다다랐습니다.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종합훈련장 공터로 올라서자 사방으로 전망이 탁 트인 데다 꽤 많은 눈이 넓은 공터를 하얗게 덮어 평화롭다 했는데 공터에 토치카와 이런저런 훈련용 구조물들이 같이 있어 여기도 휴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방 지역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10시30분 왼쪽 아래로 기산 저수지가 가까이 보이는 소사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종합훈련장사거리에서 훈련장 맞은 편의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 몇 걸음 내려갔다가 길이 아님을 확인하고 사거리로 되돌아와 서쪽으로 내려가는 넓은 군용도로로 들어섰습니다. 훈련 차 군부대 트럭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골이 깊게 파져 길이 울퉁불퉁했습니다. 15분을 넘게 내려가 방호벽이 세워진 소사국도를 건넜습니다. 은봉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소사고개를 넘고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삼각점이 바로 아래 박힌 무명봉에서 끝나고 이 무명봉에서 감악지맥은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내달았습니다. 무명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삼각점이 세워진 한 봉우리를 지나고부터는 팔일봉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까지 높낮이가 별로 없는 평평한 길이어서 우측사면에 질서정연하게 들어선 희멀건 자작나무들과 인사를 나누며 20분여 편안한 산행을 즐겼습니다. 민족의 발원지(?)인 바이칼호에서 신단수로 모셔지는 자작나무는 우리 조상의 발자취를 따라 한반도로 이식되어 백두산을 둘러싼 드넓은 장백임해(長白林海)의 최고 수종으로 자리 잡아 왔기에 이미 타계한 미국의 빡빡머리 영화배우 율부린너의 할아버지인 러시아 인이 구한말 우리 조정으로부터 채벌 권을 따냈을 것입니다. 서라벌을 다녀간 왜국 사신들이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어 사방이 온통 하얀 것을 보고 귀국해 신라를 백국(白國)으로 부른 것은 우리조상의 신단수인 자작나무는 옛 조상들과 더불어 저 멀리 바이칼호에서 한반도로 들어와 남쪽 끝자리의 서라벌까지 옮겨왔음이 사실임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11시44분 지맥에서 동쪽으로 벗어난 곳에 자리한 해발464m의 팔일봉을 올랐습니다.
왼쪽 아래로 절이 보이는 분기점에서 노아산은 오른 쪽 길로 이어지는데 저는 팔일봉을 들러보고자 왼쪽 길로 올랐습니다. 처음 몇 분간은 길이 완만해 거저먹기다 했는데 이내 오름길이 가팔라지고 햇살을 받아 막 녹기 시작한 눈들이 그물망 아이젠에 들러붙어 발걸음이 불안했고 수시로 이 눈덩이들을 스틱으로 털어내느라 산행이 한참 더뎠습니다. 전망이 탁 트인 헬기장에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수많은 봉우리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얼마고 더 걸어 팔일봉에 올랐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정상의 표지판을 확인한 후 갈림길로 되돌아온 시각이 12시2분이었으니 팔일봉을 들르는데 무려 48분이 걸린 셈입니다. 한번 엉겨 붙기 시작한 눈덩어리는 계속 불어나 이 덩어리를 떼어내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자 더 이상 눈을 밟기가 짜증났습니다. 갈림길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 넓은 공터를 지나자 경사가 아주 급한 내림 길이 이어졌습니다. 나뭇가지를 잡으며 안부로 내려서 군사도로로 쓰이는 임도가 사방으로 나 있는 하우고개에 다다랐습니다. 이 고개에서 감악지맥 종주 차 10시경에 말머리고개를 출발했다는 혼성팀 네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3시26분 해발337m의 노아산을 올랐습니다.
임도사거리에서 하우고개표지판 바로 옆으로 난 산길로 올라서 4-5분 능선 길을 걷다가 다시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햇살이 완전히 퍼져 온기가 느껴지자 임도의 눈들도 녹아 눈 속의 진흙들이 구두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우고개에서 반시간 가량 걸어올라 만난 임도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올라 양지바른 길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바람도 그다지 차지 않고 햇살이 따사로워 10분여 점심시간이 춥지 않았습니다. 새까만 커피 한잔의 오랜 추억을 불러내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어 짐을 추슬러 종주 길에 다시 나섰습니다. 이내 넓은 공터에 올라 종주 길을 잠시 멈추고 동쪽으로 조금 비껴선 노아산을 올랐습니다. 임도 끝 지점의 왼쪽에 세워진 군 초소는 비운지 꽤 오래되어 보였고 길 건너편 벙커 위 삼각점이 세워진 노아산에서는 이 산줄기 최고의 전망봉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여기저기에 자리한 눈에 익은 여러 산들을 막힘없이 온전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앞 노고산 뒤로 감악산이보였고 시계방향으로 소요산, 불곡산은 물론 멀리 오봉도 챌봉너머로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감악산에서 다시 시계반대방향으로 눈길을 주자 지난봄에 오른 파평산과 금병산이 보였고 서쪽으로는 LG 필립스 전자 건물이 깨끗하게 보였습니다. 사방을 휘둘러보는 저를 반 긴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머리 위를 맴도는 몇 마리의 매들이었습니다. 열셋까지 쉬는 영특한 까마귀의 머리를 따라가지 못해 막상 일대일로 붙으면 매가 진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은 터라 매가 노는 곳에 까마귀가 모여들만 하겠다 싶었는데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만나 볼 수 있는 까마귀들이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여기 전방의 산들을 지키는 일을 매들에 넘겨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터로 되돌아가 오른 쪽으로 난 경사가 급한 북쪽 길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낮은 봉우리 두 개를 넘어 진행하다가 길이 아닌 것을 알고 시멘트봉이 세워진 첫 봉우리에서 조금 떨어진 능선삼거리로 되돌아오는데 20분 가까이 걸렸습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14시26분에 360번 지방도가 지나는 게네미고개에 닿았습니다.
16시4분 해발 409m의 노고산을 올라 모형 레이다를 보았습니다.
360번 지방도에서 오른쪽 고개마루를 넘어 성보사로 향하는 시멘트길로 들어섰습니다. 호화묘지가 줄이어 들어선 능선 길을 20분가량 걸어 묘지 끝자리 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사거리안부로 내려서 몇 분을 걷다가 커다란 소나무가 들어선 평평한 곳을 지나서 얼마 후 우뚝 선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돌아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중대OP" 안내판에서 몇 분을 내려가 만난 절개지상단의 꼭짓점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세우게고개를 관통한 삼현터널 위 에코브리지를 15시21분에 건너 따끈한 커피를 꺼내 들었습니다. 희미한 길을 따라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 지맥 길로 복귀하여 한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5-6분을 내려가 임도삼거리를 만났습니다. 임도를 건너 노고산으로 오르는 길에 간벌 차 베어진 나무들이 길을 막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산 오름이 마치 장애물넘기경주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노고산 바로 밑에서 우측으로 돌아 능선에 오르자 2006년에 지뢰제거작업을 했으나 미처 없애지 못한 지뢰가 남아 있을 수 있으니 더 이상 오르지 말라는 경고판과 철망이 쳐져 있어 잠시 멈칫했습니다. 바로 위에 보이는 봉우리가 노고산 정상인데 그냥 돌아가기는 여태껏 들인 발품이 아까워 조심해서 철조망을 넘고 모형 레이다가 들어선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억척스러운 분들은 저 건너 군부대가 들어선 봉우리까지 진출했다가 군인들의 만류로 더 이상 지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임도로 내려섰다 하는데 저는 이 봉우리에서 온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17시21분 파주시와 양주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스르레미고개에 도착해 지맥종주를 마쳤습니다. 레이다기지가 들어선 정상봉에서 임도삼거리로 되 내려가다가 중간쯤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걸으며 군기지가 들어선 기지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16시31분에 공군부대 정문이 바로 앞에 보이는 넓은 공터에 다다르자 오봉과 도봉산이 먼발치로 보였습니다. 군부대가 통과를 막은 오른 쪽 위 지맥 길을 바라보며 시멘트 길을 따라 걸어 미화레미콘 공장을 지나 금촌-의정부를 잇는 56번 국도로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이 도로를 따라서 15분을 걸어올라 지난 5월 한북감악파평단맥 종주를 시작한 오현고개 마루에 다다랐습니다. 다시 평지길 56번 도로를 따라 10분을 걸어 감악지맥이 지나는 스르레미고개에 도착해 감악지맥 첫 구간 종주를 무사히 마쳤음을 기념하고자 고개 마루를 사진 찍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어둠이 밀려왔습니다. 다시 오현고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와 파주휴게소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든 후 금촌가는 버스를 타 귀가했습니다.
올 겨울 들어 하얀 눈이 소북이 쌓인 산길을 걷기는 이번의 한북감악지맥 종주산행이 처음이었습니다. 지맥 길 얼마간은 제가 처음 눈을 밟아 길을 냈고, 하우고개 이후로는 “내 마음의 등산”팀 네 분이 저를 앞서가 길 찾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산 속의 이 눈들이 녹게 되면 한강이 아닌 임진강으로 흐르게 됩니다. 파주 광탄의 고향집 앞을 흐르는 문산천이 큰비가 오면 건널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불어 어렸을 때 개울 건너 초등학교를 빠진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번 감악지맥의 첫 구간 종주를 마치고 나자 비로소 문산천을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가 머릿속에 확실히 그려졌습니다. 산경(山經)과 수경(水經)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은 바로 산자분수령(山自分水領)의 원리가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고향 땅 산줄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물줄기도 함께 익힐 수 있으니 산경표를 편찬한 신경준님의 가르침이 새삼 고마울 따름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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