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오두지맥 종주기4(최종회)
*정맥구간:파주농수산물유통센타-바구니고개-오두산
*산행일자:2005.3.19일
*소재지 :경기 파주
*산높이 :오두산112미터
*산행코스:파주농수산물유통센타-바구니고개-보현산-오두산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주차장
*산행시간:9시13분-16시40분(7시간27분)
*동행 :나홀로
어제 송추의 고비골 고개에서 시작한 오두산행 한북정맥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지난 2월 12일 고비골고개를 출발, 네 번에 걸쳐 제 고향 파주를 관통하는 오두산 행 한북정맥을 모두 밟았습니다. 한북정맥의 끝 지점이 장명산이냐, 아니면 오두산이냐의 논쟁은 곡릉천을 한강의 지류로 보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만, 이 두산 모두 고향의 산들이기에 작년 8월 곡릉천에 인접한 교하의 장명산을 올라 한북정맥 종주를 마무리 진 후에도 내친 김에 탄현의 오두산 행 정맥 길도 마저 밟고자 별러 오던 중 지난 2월 용기를 내어 종주 길에 다시 나섰습니다. 어제는 지난 주 토요일에 산행을 마친 파주농수산물유통센타의 고개에서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종주산행을 마무리짓고자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편의를 생각해 아침 일찍 과천을 출발해 통일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후 택시를 불러 유통센타 옆의 고개로 옮겼습니다.
9시13분 유통센타에 인접한 고개 마루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 묘지로 올라섰습니다.
유통센타를 왼쪽으로 끼고 북서쪽으로 난 능선을 타고 전진하여 40분 후에 무명봉에 올라섰습니다. 이 무명봉 주위에는 산불로 가지를 태워 시꺼먼 줄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나무들이 즐비해 몰골 사나웠는데 이 나무들도 오랜 세월이 지난 후면 지리산의 고사목처럼 회색의 말끔하게 변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10시13분 표고가 200미터 가까이 되어 주변에서 가장 높게 솟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앞의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만난 임도를 따라 오르다 우회전해 걸으니 묘지가 나타났고 다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랐습니다. 이 곳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잡아 이 능선 길을 편하게 오르다 만난 산객 몇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봉우리에 올라서 나침반으로 방향을 읽자 북서쪽이 아닌 남서쪽으로 너무 전진했으며, 선답자 분 들의 산행기대로 라면 벌써 나타났어야 할 헬기장과 철조망 및 시멘트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아 길을 잘못 들었음을 직감했습니다.
11시 3분 오던 길로 돌아가 어렵게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돌양지님의 산행기대로 오른 쪽의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택해 북서쪽으로 나아가자 철조망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철조망을 넘어 오른 쪽으로 가야하는데 철조망을 따라 직진하자 밭이 나와 또 정맥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밭을 가로질러 만난 시멘트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고개 마루로 올라갔습니다. 이 고개 마루에서 왼쪽의 나지막한 산마루로 올라서 어렵사리 정맥 길을 이어 갔습니다만, 능선 길을 따라 얼마고 전진하다 만난 삼거리 분기점에서 북쪽 길로 접어 든 것이 또 정맥 길에서 벗어나 축현리로 내려서게 했습니다. 아침에 택시로 지나 위치를 확인했기에 농로를 따라 남쪽으로 10여분간 이동해 바구니 고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11시54분 바구니고개의 대전차장애물이 설치된 고개 마루에서 오른 편의 야산으로 올라섰습니다. 탄현면 미곡처리장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만난 임도를 따라 전진하여 기독교 공원묘지를 만나자 역시 파주는 죽은 사람들의 안식처로 더 할 수 없이 훌륭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근까지 군사지역으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어 산 사람들은 여러모로 살기에 불편했는데 그 사이 묘지는 계속 늘어나 죽은 사람들의 천국으로 자리잡았으니 말입니다.
12시24분 공원묘지를 지나 다다른 131봉에서 짐을 풀고 빵을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산불감시초소가 들어 선 131봉에서 바라다 본 먼발치의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월롱산 맞은편의 기간봉의 능선이 한 일자로 곧게 뻗어 있었고 서쪽 산 너머로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해 강화 쪽으로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가 눈에 잡혔습니다.
13시33분 해발 108미터의 보현산에 올랐습니다.
대단위의 묘지로 조성된 통일공원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차 길을 건넜습니다.
고려이엔지 옆의 축대를 따라 걸어 올라선 보현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꺾어 정맥 길을 이어가다 청파 윤도균 님의 조카 분이 운영하고 있는 일송정에 들러 냉면을 사먹었는데 통성명을 마친 조카 분이 맥주1병을 내주어 고맙게 들었습니다.
14시7분 일송정을 출발해 10여분을 헤매다 결국 마루금에서 한참 벗어난 길로 빠져 차도를 만났습니다. 차도에서 왼쪽으로 먼발치의 야산 밑에 탄현산업단지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단지 위를 지나는 능선이 정맥 길이었습니다. 차도를 따라 남쪽방향으로 한참동안 걸어 자유로에서 헤일리마을로 들어오는 8차선 도로를 만났습니다. 그 도로 밑으로 뚫린 굴 길을 지나 성동4거리의 비전스 힐 레스토랑의 간판이 왼쪽으로 보이는 지점에서 바로 산 위로 치고 올라가 또 다시 정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일송정 출발 한 시간 후 문창환님이 걸어놓은 표지리본을 보자 비로소 안심이 됐습니다. 이제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것은 오두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자유로 건너편의 오두산을 오르기 전 마지막 가건물에서 바라다본 임진강을 카메라에 담은 후 아스팔트길로 내려서 인도를 따라 오두산을 올랐습니다.
15시53분 통일전망대입구에 도착해 한북오두지맥 종주를 전부 마쳤습니다.
통일전망대에 올라 주님께 나흘 간의 종주를 무사히 마쳤음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만들어 낸 조강의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하고자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16시40분 주차장을 출발, 지난 1월 실비아님과 함께 커피를 마셨던 헤일리 마을의 북카페에 들러 책한 권을 사들고 과천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의 한북정맥종주를 반추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미지의 길을 밟아 보람 있었음을 기록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한북오두지맥 종주기3
*정맥구간:오산기도원-상승백마벽-월롱산-파주농수산물 유통센타
*산행일자:2005.3.12일
*소재지 :경기 파주
*산높이 :월롱산 229미터
*산행코스:오산기도원-상승벽마벽-월롱산-파주농수산물센타
*산행시간:12시10분-18시 (5시간50분)
*동행 :나홀로
어제는 해발 229미터의 월롱산을 올랐습니다.
파주의 오산 기도원에서 시작해 월롱산을 거쳐 파주농수산물 유통센타에서 마치기까지 성봉현 님의 상세한 산행기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코스를 무난히 끝냈습니다. 30년 전에 졸업한 문산중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월롱산은 휴전선에 근접한 산중 고도가 제일 높아 제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북에서 남파된 간첩들이 숨어사는 은신처였으며 이 산을 넘나들 던 학생들에 신고 되어 체포된 간첩이 꽤 많았습니다. 파주경찰서에서 매월 한번씩 간첩을 신고한 학생들에 포상을 했는데 그 때마다 최소한 한 두 명은 상을 타곤 했습니다.
12시10분 상촌고개에 자리잡은 오산기도원에서 한북정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최자실기도원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5-6분 후 공동묘지로 들어서 103봉에 올랐습니다. 103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공장 뒤편의 안부로 내려섰다 다시 올라 만난 군부대의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몇 번이고 오르내림을 반복했는데, 이러한 길은 군부대가 많이 들어서 있는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중 자주 만나는 길입니다.
13시5분 해방교회 공원 묘지를 거쳐 가 건물이 있는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제 고향 파주의 임야가 비싸게 거래되는 것은 서울에서 가까워 묘지로 쓸 수 있는 임야의 수요자가 많아서라 합니다. 그래서인지 파주에는 공동묘지가 많이 있습니다. 광탄 용미리에는 서울시립묘지가 들어섰고, 탄현에는 이북 5도민들의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과 묻혀있는 망자들을 모두 합한다면 파주시는 인구밀도가 높은 상위그룹의 시로 랭크될 것입니다.
13시47분 등원리와 도감골을 연결짓는 지방도로변의 금광비철금속을 지나 고개마루 직전에서 왼쪽으로 난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20분전에 오른 100미터 봉에서 북쪽으로 난 정맥을 따라 걸어 대전차장애물이 있는 고개마루로 내려서야 하는데 성봉현님의 산행기를 봤으면서도 저 역시 고개마루에서 등원리쪽으로 약 200미터 벗어난 곳으로 내려서는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 도로를 따라 고개 마루까지 걸어 올라왔습니다. 임도를 따라 5분 여 올라 다다른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길을 내며 내려서 시멘트 길을 만났습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얼마고 걷자 농사용 가공수로가 보였습니다. 이 가공수로에 조금 못 미쳐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야산으로 올라서자 다시 군부대의 철조망이 나타났습니다 군부대 울타리를 왼쪽으로 두고 그 밑으로 얼마고 전진하자 군부대 정문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에서 우측편의 제일테이프를 지나 승일콘크리트 정문까지 직진한 후 우측의 비포장도로를 밟으며 어렵사리 정맥 길을 이어가 서울-문산간의 1번 국도에 다다랐습니다. 중학교를 다닐 때 광탄에서 산길을 따라 월롱의 영태리까지 걸어 간 적이 꽤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는 별 어려움 없이 잘도 다녔는데 어제는 그 길은 아니지만 정맥을 꼭 이어가야 하기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14시54분 월롱역 100미터 전방에서 1번 국도를 건너 상승벽마벽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오산 기도원에서 이곳까지의 1차 관문은 무난히 통과한 듯 싶습니다. 여기에서 성봉현 님이 6시간 걸려 다다른 바구니고개까지 해 떨어지기 전에 진출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해 이번에는 파주농수산물 유통센타에서 하루산행을 마무리짓기로 하고 바로 월롱산으로 내달렸습니다. 10분도 못 걸어 만난 대전차장애물이 설치된 삼거리에서 방향을 못 잡아 왔다갔다하며 10여분을 낭비했습니다. 인근 주민에 물어 예비군교정 방향으로 길을 잡고 도로를 따라 4-5분을 걷자 성봉현님의 산행기에 나와있는 "경상좌도 관찰사 승병조판 서신공신도비"가 세워진 삼거리에 다다라 안심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조 때 언제 경상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경상도, 충청도와 전라도가 남북으로 나누어 있는데 충청도만은 좌도와 우도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충남의 천안이 충북의 영동보다는 훨씬 북쪽에 위치해 있기에 말입니다.
15시47분 오산기도원을 출발한지 3시간 반이 넘어 처음으로 휴식다운 휴식을 취했습니다,
마루 금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길을 20분 여 걸어 다다른 양지바른 묘지에서 김밥을 꺼내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한북정맥의 마루 금을 제대로 잇기가 힘든 것은 산마루에 군부대가 들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끝내고 곧바로 능선으로 올라서자 삼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월롱산으로 가는 제대로 된 길을 찾았습니다.
16시25분 해발 229미터의 월롱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맞은 편의 기간봉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정상에서 우측으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가다 두 번 째 만난 헬기장을 조금 지나 다시 우편의 정맥 길을 따라 걸어 하이마트 경인물류센타가 있는 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16시 55분 대전차장애물이 설치된 고개 마루에서 도로를 건너 기간봉으로 향했습니다.
묘지 2기를 지나 군사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군부대가 들어서 있는 정상 조금 못 미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하산했습니다. 10여분 후에 도착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어 군사도로를 벗어났습니다. 무명봉에 올라서자 정맥길이 분명하게 나지 않아 눈짐작으로 마루 금을 이어가다 운천 김광운님이 매달아 놓은 표식기를 보고 안심이 됐습니다. 어둡기 전에 산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아 잘 못 서두르다가는 엉뚱한 길로 들어설까 염려되어 조심해서 내려왔습니다.
17시 55분 2차선 포장도로에 내려섰습니다. 오른쪽 가까이에 동해물산을 보고서야 이제까지 제대로 마루 금을 이어왔다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대전차장애물이 설치된 고개마루를 넘어서 파주농수산물 유통센타 입구에 다다라 18시 정각에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이제 하루만 더 걸으면 오두산에 닿게 됩니다. 어제 하루는 비교적 쉽게 마루 금을 이어 갔는데 남은 코스는 쉽지 않을 듯싶어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산행사진>
한북오두지맥 종주기2
*정맥구간:됫박고개-박달산-석불입상-오산기도원
*산행일자:2005. 3. 1일
*소재지 :경기파주
*산행코스:됫박고개-박달산 밑-석불입상-양지가든-163봉-전위마을입구
*산행시간:12시-17시40분(5시간 40분)
*동행 :나홀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옛 말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한 어제의 산행은 알바로 얼룩졌습니다.
설익은 앎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훨씬 위험함을 경험한 어제는 결국 마루금에서 한참 벗어난 엉뚱한 곳에서 산행을 끝냈습니다. 됫박고개-상촌고개 구간의 정맥 길은 제가 태어나고 십 수년을 자란 파주 광탄의 산들을 지나기에 별반 준비 없이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이 정맥 길은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표지리본도 아주 드물게 걸려있어 길 찾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출발 전에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 했는데 다 아는 고향 산을 오르내리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 싶어 지도만 대충 보고 집을 나선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12시 파주 보광사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인 됫박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전날 밤 맥주를 많이 마신 탓에 예정보다 3시간 가량 출발이 늦어져 월롱역까지 진출하기는 힘들 것 같아 오산리의 상촌고개에서 산행을 마무리짓기로 하고 출발 전 찻집에 들렀습니다. 당근쥬스를 사 마신 후 고개 마루 왼쪽으로 난 들머리를 지나 폐타이어참호로 올라서 익산백두산악회의 표지리본를 발견하고는 안심이 되어 임도를 따라 눈길을 밟으며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12시30분 박달산으로 갈라지는 송전탑 옆의 넓은 공터에서 점심을 들고 있는 저보다 연배로 보이는 잔디밭산악회의 남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대간과 정간은 물론 기맥까지 모두 마친 이 분을 이 곳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제 생각대로 왼쪽의 능선을 타고 혜음령 고개로 내달려 엄청 헤맸을 뻔했습니다. 이분이 갖고 있는 지도에 마루금이 혜음령고개가 아닌 박달재방향으로 그어져 있어 이상하다 했는데 성봉현 님의 산행기를 자세히 읽어보니 제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이 분과 함께 임도에서 우측의 송전탑방향으로 난 길을 잡아 박달재로 향했습니다. 헬기장을 거쳐 직진하다 갈림길을 지나친 것이 첫 번째 알바였습니다. 갈림길로 되돌아가는 중 위장미사일 옆에서 사진을 찍은 후 오른쪽으로 난 내림 길로 들어서 다시 정맥 길을 밟았습니다.
13시16분 부대정문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갈림길에서 군부대철망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이 길도 역시 한북정맥 길이구나 싶었던 것은 군부대 울타리 옆으로 길이 나있어서였습니다. 부대정문 초소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와 우측으로 보이는 임도를 따라 올라 갔습니다. 군견 훈련장과 헬기장을 지나 다다른 박달산 바로 밑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트레파스를 했습니다. 해발 369미터의 꽤 높은 박달산이 이곳에 숨어 있었음을 전혀 몰랐기에 한번 오르고 싶었는데 그냥 지나쳐 아쉬웠습니다.
14시 5분 한 20분간의 두 번 째 알바 끝에 분수리의 동서전자 앞 고개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제대로 찾았습니다. 박달산을 트레파스하여 왼쪽으로 난 능선길을 따라 정상부위가 움푹 파인 240봉을 오른 다음 곧바로 내려서 전진했습니다. 산줄기가 좌우로 갈리는 지점에서 길이 흐릿해져 어느 길이 정맥길인지 판단이 안 섰습니다.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 산행기에 나오는 노란 표지리본을 찾아 이곳에서 다시 뒤돌아서 10여 미터를 전진하다 오른쪽으로 난 내리막길로 들어섰습니다. 소나무 숲을 지나 산소로 내려서자 정지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동행하신 분의 말씀대로 정간 길 중 고도가 아주 낮은 곳은 택지나 공장부지로 개발되고 있는데 대간 길처럼 개발을 법으로 막기에는 사유재산 침해이고 국토이용의 효율을 떨어트리는 일이라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포장도로에서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 마루금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 고개에서 우측으로 꺾어 동서전자를 관통해 마루금을 탔습니다. 14시39분 삼각점이 있는 163봉에 올라서니 혜음령고개와 고개너머 먼발치로 눈 덮인 북한산이 한 눈에 들어와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능선 길을 따라 몇 개의 낮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얼마고 걷자 우측 밑으로 넓은 채석장이 보였는데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5시25분 도로변의 양지가든에서 라면으로 요기를 했습니다..
10분전에 지나온 석불입상은 전면에서 보지 못했지만 천연의 암반 위에 올려놓은 두 얼굴조각을 직접 만져보고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78번 국도상의 양지가든에서 미리 와 식사중인 잔디밭산악회의 몇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약 20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저 혼자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군부대 정문의 왼편으로 울타리를 따라 올라 다시 정맥 길로 들어섰습니다. 군 교육장을 거쳐 능선삼거리에 올라서니 맞은 편 밑으로 공릉저수지가 보여 반가웠습니다. 70년대에 사귀던 아가씨들과 데이트를 즐긴 곳이 바로 이 공릉 저수지였기 때문입니다.
16시2분 능선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틀어 곧바로 전진해 143봉을 지났습니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을 하다 다시 되돌아온 것이 세 번 째 알바였습니다. 분명 익산백두산악회의 리본이 왼쪽 길로 안내했는데 산행기를 잘못 읽어 10여분을 허비했습니다. “급속매복” 폐타이어 길을 지나 헬기장에 올랐다가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17시5분 무명봉에 올라섰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또 산행기를 잘못 읽어 오른 쪽 길로 전진해 4번째 알바를 했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했을 때는 이미 정맥 길에서 상당한 벗어난 터라 해가 얼마 남지 않아 다시 돌아가기를 포기했습니다.. 능선 길을 따라 직진을 하다 아스팔트포장길을 만나 길을 잘못 들었음을 확인했는데 내친 김에 이 길로 죽 가면 어디가 나올까해서 아스팔트길을 건너 맞은 편의 봉우리에 올라섰더니 산밑으로 군부대의 연병장이 보였습니다, 봉우리에서 다시 아스팔트길로 되돌아 내려와 오른 쪽으로 내려서자 오산출판단지 옆의 전진마을에 다다랐습니다.
17시40분 상촌고개에서 광탄방향으로 3-4백미터 떨어진 56번도로 상의 전진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불광동 행 버스에 올라 5시간 40분간의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 산행은 이번으로 끝내고, 앞으로는 철저한 사전 준비로 정맥종주를 다시 이어가 오두산까지 완주하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한북오두지맥 종주기 1
*산행일자:2005.2.12일
*정맥구간:한강봉/챌봉 능선분기점-개명산-됫박고개
*소재지 :경기양주/파주
*산높이 :고령산622미터/수리봉 521미터/챌봉516미터
*산행코스:송추고비골고개-챌봉-말머리고개-수리봉-앵무봉
-보광사-됫박고개
*산행시간:10시45분-15시56분(5시간 11분)
*동행 :나홀로
작년 여름 16회로 나누어 완주한 한북정맥종주 길에 다시 나섰습니다.
작년 8월호 "산"지에 챌봉-울대고개-도봉산의 산줄기는 도봉지맥이며 한강봉-챌봉 사이의 갈림길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개명산과 월롱산을 지나 오두산에서 끝나는 산줄기가 바로 한북정맥이라는 기사가 실려 어리둥절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신경수님의 의견을 성봉현님의 산행기에서 읽고 나서 저도 이 코스를 한번 밟아 보겠다고 별러왔습니다. 도봉산과 북한산을 끼워 넣고자 한강지류인 곡릉천 남쪽의 챌봉-도봉산-노고산-장명산 산줄기를 한북정맥으로 명명한 것은 잘못이며 곡릉천 북쪽으로 개명산-월롱산-오두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가 이름그대로 한강이북의 한북정맥이라는 지적에 저도 의견을 같이하기에, 어제 작년 말 이 코스를 먼저 끝낸 성봉현님이 올린 산행기의 도움을 받아 한북정맥 종주를 다시 이어갔습니다. 한강봉-챌봉사이의 오두산행 갈림길-말머리고개-수리봉-(개명산)-됫박고개 구간을 종주했는데 개명산은 군부대가 점하고 있어 반대편의 고령산정상인 앵무봉에 오른 다음 보광사로 하산하였다 됫박고개로 다시 올라 다음 산행의 들머리를 확인했습니다. 됫박고개에서 오두산까지 한북정맥은 제 고향 파주를 관통하기에 이참에 고향의 산들을 제대로 한번 타볼 생각입니다.
아침10시45분 송추의 23번 버스종점인 고비골 고개 밑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의정부역에서 울대고개를 거쳐 25분만에 도착한 버스에서 하차하여 짐을 추스른 후 차 길을 따라 올라 10분 후 고개 마루에 조금 못 미친 곳의 여행스케치레스토랑에 다다랐습니다. 이 집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챌봉으로 오르는 들머리를 쉽게 찾아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11시35분 해발 516미터의 챌봉에 올라섰습니다.
챌봉에 오르는 중 작년 여름 울대고개 가는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잘못 내려선 임도를 만나 반가웠습니다. 이 임도를 건너 된비알의 산길을 25분간 진땀을 흘리며 올라 무인경비시스템이 설치된 챌봉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울대고개 가는 길을 알리는 산마루산악회의 표지리본을 찾았습니다. 북서쪽에 오두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줄기가 한눈에 잡혔고 남쪽에 자리잡은 도봉산의 자태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2시2분 오두산행 갈림길을 만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말머리고개까지 하산 길은 산불감시초소를 지날 때 잠시 알바를 했을 뿐 경사도 완만하고 편안했습니다. 챌봉에서 처음 만난 갈림길을 그냥 지나치고 두 번째 갈림길을 제대로 택한 것은 성봉현 님의 산행기에 힘입어서이며, 그 분에 감사말씀 드립니다.
12시34분 휴게소에서 맥주1캔을 사들며 확보한 10분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장흥-백석간의 말머리고개를 건너 유스호스텔 주차장 뒤로 난 들머리로 들어서 다시 산행 길에 나섰습니다. 나무계단을 밟으며 오른 441봉에는 큰 나무가 베어져 누워 있었고 495봉을 거쳐 오른 헬기장의 535봉은 햇살이 따사롭고 막힘이 전혀 없어 전망이 좋았기에 왼쪽의 북한산과 오른 쪽의 기산저수지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13시30분 해발 521미터의 수리봉에 다다랐습니다.
수리봉에는 지금은 문산467삼각점이 세워져 있고, 옛날에는 봉화대가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기산번영회에서 세운 안내판이 없었다면 전남 장흥의 천관산 정상에서처럼 봉송대가 없어 아주 작은 석축만으로는 이곳이 봉화대였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준비해간 김밥으로 요기를 한 후 13시50분 앵무봉으로 향했습니다. 개명산-앵무봉 능선에 오르기 전 곱게 하늘로 뻗은 회백색의 활엽수 십 수 그루를 만났습니다. 흔히 볼 수 잇는 참나무와는 달리 피부도 곱고 살색도 희뽀야 겨울산행을 하면서 이토록 귀티 나는 미인나무를 처음 보았기에 카메라를 들이대 셔터를 눌렀습니다.. 개명산이 가까워지자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출입을 금한다며 출입시의 절차와 유의사항을 적어놓은 경고판이 여러 개 세워져 있어, 능선에 올라선 후 왼쪽의 군사기지가 들어선 개명산을 포기하고 한북정맥상의 봉우리는 아니지만 오른쪽의 앵무봉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4시50분 해발 622미터의 고령산 정상인 앵무봉에 올랐습니다.
앵무봉에 근접하자 한 떼의 까마귀가 까악 까악 소리를 질러댔는데, 이제는 이들의 저공비행과 군무가 눈에 익숙해져 더 이상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동쪽으로 구정 연휴에 오르내린 서파-주금산-철마산-천마산의 한북천마지맥이 한 눈에 들어 왔고 서쪽으로는 오두산 가는 산줄기를 조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10분간을 정상에 머무르며 문산자유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과 주위의 산들을 카메라에 옮겨 실은 후 오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도솔암으로 향했습니다.
1974년 여름 도솔암에 올라 저와 연배가 비슷한 젊은 스님 한분을 만나 긴이야기를 나눈 일이 생각났습니다. 동국대를 졸업하셨다는 스님과 당시 어느 문예지에 실린 "산사의 아침"이라는 수필을 읽은 소감을 서로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보광사밑의 계곡에서 야영을 하고 이른 아침 올랐기에 아침햇살을 머금은 조용한 산사의 아침에 해맑은 영혼을 가지신 스님과 말씀을 나눌 수 있었음은 제게는 좀처럼 갖기 힘든 기회였기에 지금도 그 스님의 동안이 어렴풋이 잡히나 봅니다.
15시 30분 도솔암을 거쳐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내려와 보광사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신라 진성여왕 8년인 서기 894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이 보광사는 그 후 수 차례 중건되어 오늘에 이어졌는데 제게는 혜안이 없어 이 고찰이 담고 있는 천 년 넘는 역사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 산을 찾는 중생들을 편안하게 해준 고찰과는 달리 요즘 들어 스님들의 목소리가 너무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지율스님의 환경영향평가 재 실시를 위한 목숨건 장기간의 단식투쟁으로 천성상 터널공사가 지연되자 많은 분들이 스님들의 현실참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희귀동물로 지정되지도 않은 도롱룡의 생존권보다 보통사람들의 행복권이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범부이기에 지율스님의 단식으로 세금을 더 내야한다면 그 스님의 주장에 반대할 뜻입니다..
15시56분 됫박고개에서 산행을 마쳤습니다.
찻집에 들러 버스를 기다리며 산행기를 정리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걷고 또 걸으며 확인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산줄기를 종주하며 확인하는 것은 저의 실존입니다. 아니 실존의 방식입니다. 틈나는 대로 가슴 설레며 미지의 산을 올라 흘린 땀의 진가를 터득하고 몇 시간이고 혼자 두려움을 안고 산줄기를 타면서 자연과 대화하고 그 위대함에 탄복하며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내려서는 일련의 산행과정은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실존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산에서 내려와서도 이 방식대로 설렘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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