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지맥·분맥·단맥/한북정맥 분기지맥

한북왕방지맥 종주기(1차)

시인마뇽 2012. 1. 16. 09:14

                                         한북왕방지맥 종주기3(최종회)


         *지맥 구간:칠월리고개-개미산-한탄강아우라지

         *산행 일자:2008. 2. 23일(토)

         *소재지    :경기포천/연천

         *산높이    :개미산453m, 종현산589m

         *산행코스:칠월리고개-389.3봉-555봉-종현산-갈림길바위-개미산-박석고개

                         -160.4봉-백의리시멘트길-한탄강아우라지-청산리

         *산행시간:8시50분-17시40분(총8시간50분/구간종주7시간3분)

         *동행      :나홀로 

 


  

  해가 짧은 한 겨울의 산행지로는 너무 멀어 반년 넘게 해온 호남정맥종주를 작년 11월 유둔재에서 일단 접고, 12월부터는 경기도의 산줄기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북정맥의 지맥들은 그 길이가 50km를 넘지 않고 한강 또는 임진강이나 한탄강에서 산줄기가 끝나기에, 어느 지맥이든 3-4회만 출산하면 그 지맥의 끝자락에서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어제는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합수점인 아우라지에서 한북왕방지맥 종주를 마쳤습니다. 영평천은 포천의 광덕산에서 발원한 도평천과 소홀면의 무수리에서 시작되는 포천천의 물을 영중면 성동리에서 모두 받아 한탄강으로 흘려보내는 한탄강 제1지류로, 이 영평천이 한탄강과 만나는 합수점이 바로 여기 아우라지입니다. 서쪽의 감악지맥과 함께 동두천을 관통하는 신천을 만들고, 동쪽의 한북정맥과 더불어 포천천 및 영평천에 물을 대는 거대한 물탱크가 바로 어제 종주를 마친 한북왕방지맥입니다.


  아침 8시50분 칠월리 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이 고개에서 만난 눈보라는 성미 급한 사람들에 겨울이 가도 봄이 가깝지 않으니 아직은 진득하게 기다리는 것이 상책임을 일러 주고자 작정하고 휘날리는 듯했습니다. 저런 기세가 몇 시간만 계속된다면 이번에 목적한 아우라지까지 가기가 쉽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눈송이도 컸고 바람도 매몰찼습니다. 밭두렁을 가로 질러 청산고개쉼터 음식점 뒤 둔덕에 오른 후 왼쪽으로 난 넓은 임도 길로 들어섰습니다. 울창한 잣나무 숲 속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걸으며 눈보라를 가릴 수 있게 되자 고개에서 장갑을 벗고 짐을 챙기느라 곱아진 손가락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잣나무 숲을 지나 안부로 내려섰다가 묘지 옆으로 올라 다다른 무명봉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튼 후, 오른 쪽 아래로 골프장이 보이는 산줄기를 이어가는 중에 눈보라는 멈췄고 바닥에 내려앉은 눈들도 모두 녹아 사라졌습니다. 고개출발 반시간 남짓 지나 삼각점이 서있는 389.3봉에 올랐습니다. 


  10시20분 345.4봉을 지났습니다.

389.3봉에서 내려가다 만난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사거리 안부로 내려서자 뱃속이 부글대기 시작했습니다. 봉분이 거의 무너진 헐벗은 묘지 위의 360봉에서 오리나무(?) 조림지를 지나 “적방어지대”표지목 앞에서 왼쪽으로 조금 옮겼다가 이내 허브농장 분기점에서 오른 쪽의 잣나무 숲속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임도 길은 잠시였고 안부를 지나 GPS 수신을 돕기 위해 나무들을 베어낸 345.4봉에 올랐습니다. 이 봉우리에 세워진 삼각점을 카메라에 담은 후 내쳐 553봉으로 향하는 중 대포 소리가 크게 울려 주말에도 포사격을 하는 가해 의아스러웠습니다.


  11시8분 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553봉에 올라섰습니다.

345.4봉을 출발해 땅바닥에 나뒹구는 간벌 목들이 길을 막은 곳을 지나자 얼마 후 이번 산행의 깔딱 길인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됐습니다. 방공호의 갈림길을 지나 참호굴뚝이 튀어나온 553봉에 오르자 공터에 내려앉은 하얀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었는데,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 전망은 별로였습니다. 553봉에서 3-4분을 내려가 서쪽 멀리 떨어진 종현산 갈림길에 도착하여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인근의 종현산을 다녀올 것인가 여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아우라지까지 3시간 걸린 선답자 한분이 칠월리고개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2시간이 걸렸는데 제가 그분 보다 22분밖에 늦지 않았을 정도로 산행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는 생각이 들자, 2시간 안에는 충분히 종현산을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별 문제없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12시1분 해발 588.5m의 종현산 앞에 다다랐습니다.

옛 선비들은 아무리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데 산 욕심이 많은 저는 자꾸 종현산이라는 왕방지맥의 곁불에 손이 갔습니다. 넉넉잡고 두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종현산을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다시 찾아 오를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서 눈 딱 감고 11시16분에 종현산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남서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를 타고가다 전망바위에서 멈춰 서서 553봉에서 찍지 못한 주위의 고봉들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국사봉에서 소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하도 수려해 하루 날 잡아 소요지맥을 종주해보겠다는 욕심이 동했습니다. 20분을 채 못 걸어 군사도로로 내려선 후로는 나머지 길이 한결 수월했지만, 또 다시 굉음의 포성이 들려와 갈 길이 걱정됐습니다.  정상 바로 못 미쳐 나무계단 길을 올라 다다른 종현산 정상은 군부대가 점하고 있어 오르지 못하고, 바로 아래 헬기장에서 사방을 휘둘러보며 주변의 산들을 조망했습니다. 감악산과 마차산이 북서쪽으로 멀리 보였고 감악지맥의 끝점인 한탄강 국민관광지와 그 옆의 전곡시내도 눈에 들어왔으며 북동쪽으로는 얼마 후 오를 개미산과 방화선도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서둘러 갈림길로 되돌아온 시각은 12시46분으로 1시간 반 만에 종현산을 왕복한 셈입니다. 큼직한 바위 아래 바람이 가려지고 양지바른 곳에서 20분간 점심을 든 후 13시10분에 갈림길을 출발했습니다. 


  14시 정각 해발 453m의 개미산에 올라섰습니다.

갈림길 바로 위 집 채만한 두 바위사이로 바위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내려갔다가 벙커가 있는 482봉을 올라 왼쪽으로 내려섰습니다. 낙엽이 폭신한 길을 걸어 왼쪽 사면에 깎아지른 암벽 옆을 지나 방화선이 시작되는 범칙금1500만원의 민간인 출입금지구역 앞에 다다르자 방화선을 지나는 동안 포를 터뜨리지 않을까 싶어 겁이 덜컥 났습니다. 어렸을 때 제 고향 파주에서 숱하게 들은 포 소리여서 귀에 익숙하기는 했지만 혼자서 몸을 숨길 곳이 없는 방화선을 걷는다 하자 발걸음이 엄청 빨라졌습니다. 포사격 훈련을 할 때는 사이렌을 먼저 울리고 이 깃봉에 빨간 깃발을 매달아 올린다는데 20분 만에 방화선을 통과해 달랑 깃봉만 서있는 개미산에 오르자 공연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싶었습니다. 오른 쪽 길로 내려가 다다른 공터에서 로프 길을 따라 내려서자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감악산과 한탄강 물줄기가 보이는 전망 좋은 헬기장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15시36분 37번 국도가 지하로 지나는 박석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개미산에서 1시간이면 내려설 수 있는 박석고개에 다다르는데 시간 반이 넘겨 걸린 것은 중간에 갈림길을 지나쳐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제 길로 들어서느라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송전탑을 거쳐 삼거리 안부를 지나 몇 분을 더 내려가 선답자 한분의 산행기를 보고나서 저도 그 분처럼 갈림길을 그냥 지나쳐왔음을 알았습니다. 다시 15분을 걸어 송전탑까지 되돌아 올라갔다가 5-6분을 되짚어 내려가며 오른 쪽으로 난 갈림길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교통호를 따라 내려가 다다른 안부에서 길을 잘 못 들어 왼쪽으로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직진했습니다. 왼쪽 묘지 길로 들어서 박석고개로 내려서자 길 건너 백석가든 음식점의 개 두 마리가 요란하게 짖어댔습니다. 가든 오른 쪽 묘지 옆길로 올라가 군부대 철조망 울타리를 만났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쵸코렛으로 요기를 한 후 왼쪽으로 이어지는 군부대 울타리에 바짝 붙어 20분 넘게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160.4봉에 올랐습니다. 


  16시38분 “팔각정 가는 길”의 표지판이 바닥에 놓인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이 길은 백의리(?)로 넘어가는 삼거리 고개 마루로 지맥 길에서 오른 쪽으로 한참 벗어나 있어 영평천과 한탄강이 만나는 왕방지맥 끝점의 아우지리로 돌아가는데 무려 45분이 걸렸습니다. 막판에 길을 잘 못 들어 지맥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는데 아직도 어느 지점에서 벗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60.4봉에서 폐타이어진지까지는 제대로 진행했고 바로 올라선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야 할 것을 그대로 오른 쪽으로 진행한 것이 지맥 길을 벗어나게 한 것 같습니다. 몇 분을 더 걸어 다다른 안부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섰다가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되돌아와 오름길을 따라 오르자 알 수 없는 초소 같은 텅 빈 건물이 서있었고 그 아래로 등산로가 나 있었습니다. 등산로는 이내 산허리에 낸 임도로 이어졌고 임도 따라 7-8분을 걸어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이제야 길을 잘 못 들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고 지나온 한 봉우리에서 이 시멘트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영평천에 다다를 수 있음을 보았기에 그냥 이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17시23분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아우라지에 도착해 왕방지맥 종주를 마쳤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만난 여학생으로부터 이 길을 따라 가면 강이 나온다는 것과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넘으면 백의리로 간다는 것을 확인한 후로는 마음 놓고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길가의 건물들은 대부분 축사이거나 텅 빈 폐가라서 개소리만 요란했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얼마를 더 걸어야 아우라지에 도착할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 영평천에 눈길을 주며 하류의 물줄기를 카메라에 옮겨 담느라 손놀림이 바빴습니다. 문을 닫은 음식점을 지나자 저 아래로 넓은 강과 낮은 다리가 보여 그곳이 바로 합수점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절벽 왼쪽으로 난 고개로 올라서자 지맥 길을 알리는 표지기가 보여 반가웠고 창피했습니다. 고개 너머 동네도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그 아래 음식점도 모두 문을 닫아 얼어붙은 것은 저 강물만이 아니고 이 지역의 경기와 인심도 같이 얼어붙었다 했습니다. 아우라지의 풍광을 둘러본 후 다리 건너 전곡-재인폭포 간 차도로 올라가 왼쪽의 전곡방향으로 향했습니다. 20분 가까이 걸어 다다른 청산리에서 한 슈퍼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들며 차디찬 몸을 덥혔습니다. 인근 정류장으로 옮겨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는 전곡행 버스를 타고나자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지맥종주가 끝나간다 싶어 아쉽기도 했습니다.


  역시 아우라지의 풍광은 빼어났습니다.

영평천과 합류하는 합수점이라서 그런지 이곳의 강변은 한탄강의 다른 강변보다 넓고 시원했습니다. 용암대지(熔岩臺地)의 한탄강(漢灘江) 유역에는 화강암지층위에 현무암이 두껍게 쌓여 있다 합니다. 다른 강에서 볼 수 없는 이 강만의 아름다움은 협곡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용암대지 위에 평야가 위치해 있고, 이 평야의 일부가 깊게 패여 협곡이 만들어졌으며,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빚어낸 한탄강의 비경은 협곡이 아니고서는 만나볼 수 없을 것입니다. 협곡을 벗어나 넓은 유역을 이루고 있는 합수점의 아우라지에도 강변에 면해 곧추선 절벽들이 보였습니다. 수 천 만년 한 자리를 지켜온 절애의 암벽들이 잠시도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쉴 새 없이 흐르는 강물에 쓸려간 세월이 얼마나 될까 혜량하는 것 같았습니다. 억겁의 세월에 한 점을 찍고자 아우라지에 서고 보니 혹시라도 포사격 훈련을 을 할까 겁먹어 뛰다 시피 방화선을 지난 것도 정말 찰나의 일로 벌써 저 강물에 쓸려 흘러가버렸구나 했습니다.


  막판에 잠시 방심해 엉뚱한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종국에는 목적지인 아우라지를 찾아가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왕방지맥종주는 실패한 것입니다. 지맥종주는 끝까지 마루금을 벗어나지 않고 산줄기를 이어가는 산행이기에 아무리 목적지에 다다랐다 해도 다른 길로 찾아갔다면 잘못입니다. 필시 물을 건넜을 테고 그래서 실패한 것입니다. 세상살이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똑 같이 부를 이루었다 해도 부의 축적과정이 옳지 않으면 부자로서 존경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장관으로 내정된 몇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단순히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라 청부(淸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고 보니 제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도를 걷는 것이 종주 산 꾼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국민들을 크게 섬기겠다는 큰 일꾼에도 똑같이 중요한 가봅니다. 큰 일꾼으로 나서기 전에 오랜 시간 마루금을 벗어나지 않고  제 길을 똑바로 가야 완주할 수 있는 백두대간을 먼저 종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간종주를 한번 권해드리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 댓글()
  • 자 연
  • 2008.02.27 05:54
  • 안녕 하세요 .시인마뇽님~~오랫만에 방문 했지요. 이제는 산악 전문가가 되신것 같아요. 사진도 잘 찍으시고~~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산에 다니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으십니다..또 방문 할께요.
  • 시인마뇽
  • 2008.02.27 12:11
  • 반갑습니다. 산악전문가라니요? 아직도 암릉길을 걸으면 겁이나 다리가 떨립니다. 전문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산사랑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어찌했든 그리 불러주시니 고맙습니다. 3월2일 산사랑 산행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한북왕방지맥 종주기 2


           *지맥구간:오지재고개-왕방산-칠월리고개

           *산행일자:2008. 1. 18일

           *소재지  :경기포천/동두천

           *산높이  :왕방산737M/국사봉745m/하늘봉389m

           *산행코스:오지재고개-왕방산-국사봉-하늘봉-칠월리고개

           *산행시간:8시23분-16시1분(7시간48분)

           *동행    :나홀로

 


 포천의 국사봉을 지나 칠월리고개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으며 짜릿한 감흥을 맛보았습니다. 오지재고개에서 국사봉까지의 한북왕방지맥 길은 포천의 진산인 왕방산을 찾은 많은 산객들로 한 주 전에 내린 눈들이 거의 다 녹았지만, 해발 745m의 국사봉을 지나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은 지맥 길로 들어서자 그동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어 길을 잃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이번 종주산행의 끝점인 칠월리고개로 내려서기까지 두 번 길을 잘 못 들기도 했지만 설사 며칠 후 녹아 없어질지라도 하얀 눈 위에 저의 족적을 남기게 되어 산길을 걷는 동안 내내 가슴 뿌듯하고 짜릿했습니다.

 

 새로운 눈길을 처음 밟는다고 얼마고 좋아하다가 선명하게 나있는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처음 밟는 기쁨을 산짐승에 넘겨주었습니다. 산짐승들도 분명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데 그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이 낸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제가 새로 냈다고 박박 우길 수는 없어서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들이 흔적을 남긴 길은 사람들이 다녔던 지맥 길 거의 그대로여서 초행길인 제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산토끼가 남긴 족적은 어려서 산에 올라 토끼몰이를 여러 번 해 쉽게 알 수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큰 발자국은 혹시나 멧돼지가 남긴 것이 아닌 가 해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언제 이 길을 지났는지 모를 짐승들과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졌습니다. 서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해 눈길을 나누지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옷깃을 스친 이상의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앞장서 새 길을 개척한 선각자분들과의 인연도 그들의 뒤를 따르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불가의 말씀은 인연의 의미를 너무 좁혀놓았다는 판단입니다. 옷깃을 스친다는 것은 시간과 장소가 같아야 함을 전제하기에 역사가 맺어주는 인연이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부산한 도시거리를 지나며 옷깃을 스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보다는 비록 시간은 다를 지라도 이 땅에서 살아온 선조들과의 인연이 더 깊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의식 없이 제가 스쳐지나간 사람들보다는 조선조 영조 때에 이 땅의 산줄기를 체계화해 산경표를 편찬한, 그래서 저로 하여금 산줄기탐방에 나설 수 있도록 한 여암 신경준 선생과의 인연이 더욱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인연이 이러한 것이라면 하얀 눈 위에 저보다 먼저 길을 내어 저의 산줄기 탐방산행을 도와준 짐승과의 시간을 달리한 만남도 옷깃을 스치는 만큼의 인연은 될 수 있다 생각하자 저 혼자 나선 산행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아침8시20분 오지재고개를 출발했습니다.

7시50분이 조금 넘어 동두천 중앙역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대진대학 가는 50번 시내버스에 오른 지 20여분 만에 동두천시와 포천시를 어우르는 오지재고개에 닿았습니다. 장갑을 벗고 아이젠을  꺼내 차는 등 단 몇 분간 산행준비를 하는 동안 그새 손가락이 아려올 정도로 공기가 냉랭했습니다. 차도건너 나무계단 길로 들어서 낙엽송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 지맥 길로 복귀하기까지 17분이 걸렸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지난 주 올랐던 해룡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오지재고개0.4Km, 왕방산2.9Km"의 표지목이 세워진 능선 길에서 왼쪽으로 난 지맥 길을 따라 15분을 더 걸어 높다란 돌탑이 세워진 한 봉우리에 오르자 얼마 전에 퍼지기 시작한 햇살에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돌탑봉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지맥 길가에 서 있는 노송들을 보자 신라의 헌강왕과 조선왕조를 열은 태조 임금이 모두 이 산을 찾아 왕방산으로 명명되었다는 오랜 전설이 떠올랐습니다.


  10시18분 해발737m의 왕방산을 올랐습니다.

얇은 안개가 능선 길 오른 쪽 아래 들판을 살짝 덮어 빚어낸 포천 벌의 정경이 몽환적이었습니다. 우뚝 선 바위를 지나고 그다지 오름내림이 힘들지 않은 봉우리를 몇 개 넘어 헬기장에 도착한 시각이 9시48분이었습니다. 감악산과 마차산이 서쪽 가까이로 선명하게 보였고 해룡산을 오를 때 만났던 이 산의 서쪽 산허리를 휘돌며 뻗어나가는 임도 길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커다란 암봉을 오른 쪽으로 에돌아 헬기장출발 반시간 후에 소나무 한그루가 지키고 있는 왕방산 정상에 올라섰는데 그새 날씨가 푹해져 하나도 춥지 않았습니다. 표지석이 세워진 왕방산 정상은 과연 포천의 진산다워 사방을 둘러보는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남쪽 멀리로 도봉산과 북한산이,  북동쪽으로는 광덕산에서 명성산으로 이어지는 명성지맥이, 국사봉에서 왼쪽으로 조금 비껴선 북서쪽으로는 소요산이 잘 보였습니다. 무럭고개에서 동쪽 산줄기를 타고 정상에 올랐던 2003년 12월에는 왕방산 정상이 북적댔는데 오지재 고개에서 정상에 다다르기까지 딱 한분 밖에 만나지 못 한 것은 평일산행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머리 위를 살짝 덮은 박무가 채 가시지 않아 몽환적 분위기가 그대로인 포천 벌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본 후 10시31분에 왼쪽의 쇠목고개 길로 들어서 국사봉으로 향했습니다.


  11시56분 국사봉 정상에 자리한 군부대 정문 앞에 다다랐습니다.

왕방산 정상 출발 14분이 지나 오른쪽으로 깊이울로 내려서는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를 지났습니다. 송전탑을 지나 오른쪽 아래에 자리한 깊이울 저수지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깊숙이 내려선 안부사거리에서 국사봉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종주산행의 최고의 깔딱 길인 된비알 길을 올라 고도를 200m가량 높이자 하얀 눈이 바닥을 덮은 공터가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에 이름 석 자를 스틱으로 써 놓은 후 조금 더 올라가 부대 앞에 다다랐습니다. 왼쪽 울타리에 바싹 붙어 3-4분을 걸어 부대 후문에 다다랐고 눈길이 미끄러운 시멘트 길을 따라 20여m 내려가다가 오른 쪽 지맥 길로 들어서자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길이 나타나 가슴이 뛰었습니다. 3년 전에 이 길을 지나 깊이울로 내려설 때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는데 한 주전에 내린 눈길로 사람들이 지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지맥 길 또한 깊이울 만큼이나 또한 깊고도 먼 길인가 봅니다.


  12시44분 “조수보호구역”의 표지목이 세워진 690봉을 지났습니다.

지맥 길이 눈에 덮여 길 찾기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도 표지기가 길안내를 해주어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곳곳에 길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에 파묻혀 짐승들의 발길을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한 겨울로 접어들고 나서는 그 많던 새들도 소리를 죽이고 있는데 이렇게 하얀 눈 위에 길을 내준 짐승들이 고마웠습니다. 깊이울로 내려서는 능선삼거리를 거쳐 670봉을 지나자 북쪽으로 몇 번이고 올랐던 고대산(?)이 보여 반가웠습니다. 690봉을 지나 만난 첫 봉우리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햇살이 따뜻해 20분을 쉰 후 13시에 지맥 길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10분가량 걸어 오른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야 할 것을 직진하다 삼각봉이 세워진 봉우리에서 원위치 하느라 10여분을 까먹었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뭔가 제 길이 아니다 싶은 느낌이 바로 들어서였습니다. 나홀로 종주산행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알바의 거리와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바로 이 예감 덕분인데 이번 산행에서도 그 예감이 곧바로 작동되어 생고생을 면했습니다. 원위치 해 돌아온 봉우리에서 동 쪽으로 확 꺾어 진행하는 중 “참나무 시들음병”의 확산을 막고자 비닐로 씌워 놓은 참나무 토막들이 많이 보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활엽수인 참나무의 보존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해 심히 걱정되었습니다.


  14시32분 지맥길에서 동쪽으로 비껴선 해발389m의 하늘봉을 올랐습니다.

낚시용 의자가 보일 정도로 깊이울 저수지와 가까운 490봉에 이르러서 동진을 멈추고 북쪽으로 내달았습니다. 왼쪽 사면에 잣나무가 울창한 능선 길을 지나 양쪽 아래로 집들이 보이는 안부사거리를 지난 지 10분 후 커다란 고목과 그 아래 돌들이 얹혀 진 안부사거리인 가마골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왼쪽 옆으로 제법 큰 건물이 들어선 가마골고개에서 17분을 올라 다다른 능선 삼거리에서 지맥 길을 벗어나 있는 하늘봉을 다녀왔습니다. 죽어서 승천하기 전에 하늘봉을 먼저 오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는 장난기가 작동되어 반시간을 넘게 들여 다녀온 하늘봉은 기대와는 달리 시멘트 군사용 구축물이 남아 있어 아주 썰렁했습니다. 다시 능선 삼거리로 되돌아와 남은 떡 한 조각을 마저 든 후 왼쪽으로 난 지맥 길을 따라 10분여 걸어 임도 길로 내려서자 국사봉 못 미쳐서 멈추었던 카메라가 다시 작동되어 눈 덮인 계류리의 임도 길을 담아 올 수 있었습니다.


  16시1분 칠월리고개에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임도를 건너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걸어 올라선 무명봉에서 왼쪽 길로 들어선 것이 두 번째 알바였습니다. 간벌된 나무들이 발목을 잡는 평탄한 능선 길을 4-5분을 걸었는데도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지도를 꺼내보니 아무래도 이상해 일단 무명봉으로 원위치하자 오른 쪽 길로 표지기가 보였습니다. 이번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예감이 제대로 작동되어 제 스스로에 고마워했습니다. 왼쪽 아래로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능선 길을 꽤 오래 걸어 344번 도로 변에 청산고개쉼터 음식점이 들어선 칠월리고개로 내려서기 바로 전에 오후 4시를 알리는 시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고개마루에서 왼쪽으로 200m 떨어진 갈월리 버스정류장을 16시40분에 지나는 동두천행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신북온천과 초성리를 지나 동두천에 이르기까지 40분은 족히 걸렸습니다.


 임도길에서 칠월리고개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걷다가 짐승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는 눈길을 사진 찍어 왔습니다. 이 길을 먼저 밟은 짐승과의 인연을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여름 호남정맥을 혼자서 종주하며 나름대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산식구들이 겨울 들어 거의다가 몸을 숨겨 그 소식이 궁금했는데 마침 발자국을 보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한편 산식구들의 겨울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새봄을 기다릴 산식구들에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쌍사임덕찬

  • 2008.01.19 21:01
  • 왕성한 산행사진 잘 보고갑니다.저는 오늘 명성지맥길을 배모루에서 마치고 왔습니다.
    다음주중 국사봉을 출발하는 미완의 왕방지맥을 할까합니다.
  • 시인마뇽
  • 2008.01.21 17:54
  • 새해에 복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올 한해도 안산, 즐산하시기를

 

     

 

                                한북왕방지맥 종주기 1


              *지맥구간:한북정맥 분기점(287.3봉)-천보산-오지재고개

              *산행일자:2008. 1. 9일

              *소재지  :경기양주/동두천/포천

              *산높이  :천보산423m, 해룡산661m

              *산행코스:축석고개-287.3봉-어하고개-회암고개-천보산

                        -해룡산-오지재고개

              *산행시간:10시17분-16시19분(구간종주5시간32분/총6시간2분)

              *동행    :나홀로

 


  동두천을 관통하는 신천(莘川, 일명 강화천)은 한북정맥의 한강봉에서 발원하여 한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한탄강 제1지류이자 임진강 제2지류이며 한강의 제3지류로 그 전장이 38.5Km나 되는 긴 물줄기입니다. 작년 12월 이 지천의 서쪽 벽인 한강봉에서 한탄대교 앞까지의 한북감악지맥 종주를 마쳤고, 어제는 이어서 동쪽 벽을 이루고 있는 한북왕방지맥에 첫발을 들여놓아 2008년도 산줄기탐방산행을 열었습니다. 한북왕방지맥은 축석고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북정맥의 287.3봉에서 갈라져 나와 천보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과 개미산을 거쳐 한탄강과 양평천의 합수점에서 끝나는 커다란 산줄기로 한북정맥 분기점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가 신천의 동쪽 울타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산줄기는 강줄기의 유역을 나누는 분수령이기에 산줄기와 물줄기를 따로 떼어놓고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동안 백두대간과 몇 개 정맥을 종주하면서 산세의 웅장함에 감탄하고는 어떻게 하면 무탈하게 완주할 수 있을까에 신경을 썼지 대간과 정맥들이 만드는 강줄기에 눈을 돌리지는 못했습니다. 몇 해 전에 사서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이형석 님의 “한국의 강”이라는 강줄기 답사서를 다시 꺼내 읽으면서 제가 놀란 것은 이 책 첫 장(章)에 실린 내용이 신경준의 산경표에 의거해 설명한 우리나라 산줄기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장(章)에 정약용의 대동수경표에 대한 내력을 곁들여 강줄기를 설명하고 있어 산줄기와 물줄기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지맥종주로 산골짜기의 물을 받아 한탄강으로 내닫는 신천의 수계를 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제가 태어난 경기도 북부의 산하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종주 길에 올랐습니다.


  아침10시14분 의정부와 포천을 경계 짓는 축석령을 출발했습니다.

의정부역 앞 길 건너 정류장에서 포천방향의 72번 시내버스에 오른 지 반시간 남짓 지나 축석검문소에서 하차해 넓은 차도를 건넜습니다. 방호벽 아래로 고개를 되 넘어 오른쪽으로 난 교회주차장으로 올라가 왼쪽의 한북정맥 길로 들어서자 날씨가 흐려 햇살이 퍼지지 못해서인지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2004년 한 여름에 한북정맥을 종주했을 때에는 축석령에서 왕방지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이르는 길이 산줄기에 나 있지 않고 산허리를 에돌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장마철이라면 물이 흐를만한 지곡들을 두 서너 곳 지나면서 산줄기에 난 제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지만 표지기가 곳곳에 걸려있는데다 지맥 길이 아니고 출발점에 접근하는 길이어서 그대로 산행을 계속 했습니다.


  10시47분 287.3봉 분기점에서 한북왕방지맥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축석령 출발 반시간이 조금 못되어 왕방지맥이 갈라지는 287.3봉의 분기점에 다다르자 바로 아래로 로얄골프장이 보였고 훤칠한 키의 아카시아 나무들이 서쪽 사면에 빽빽하게 서 있었습니다. 분기점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왼 쪽 아래로 내려서는 한북정맥과 헤어지고 오른 쪽 어하고개로 향하는 왕방지맥 길로 들어섰습니다. 출발이 늦은 터라 이번 산행의 끝점인 오지재고개에 해지기 전에 닿고자 산행을 서둘렀는데 길이 넓게 잘 나있어 발걸음에 속도가 많이 붙었습니다. 해발고도가 2-3백m 정도의 야산으로 갈림길 곳곳에 이정표를 세우고 쉬어가도록 나무벤치를 만들어놓는 등 양주시에서 정성을 들여 산책로로 조성해, 연세든 분들이 이 길을 많이 오가셨습니다. 바위위에 세워놓은 돌탑을 지나고 한참을 더 걸어 밧줄을 붙잡고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커다란 바위에 올라서자 바로 앞에 상공회의소로 갈리는 갈림길이 나타났고 텅 빈 벤치 2개가 있었습니다.


 12시4분 350번 지방도가 지나는 어하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상공회의소 갈림길에서 지맥 길은 오른쪽의 어하고개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북서쪽 멀리로 희미하게 감악산 방송탑이 보였고 서쪽으로 안개가 막 걷힌 불곡산 산줄기가 잘 보였지만, 그 아래 삼숭동은 안개가 뿌옇게 끼어 있어 보기에 답답했습니다. 첫 번째 삼각점을 지나 경기도에서 지적삼각점 인식표를 박아 놓은 377봉에 올라섰는데 억새풀에 가려 자칫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조금 더 가 만난 바위에서 내리막길이 시작됐습니다. 두 번째 만난 “삼숭동/어하고개/GS자이”의 갈림길에서 경사진 오른쪽 길로 들어서 어하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차도를 건넌 후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서서 회암령으로 향하는 들머리를 찾았습니다. 출입금지를 알리는 군부대 경고판을 지나 로프를 잡고 완만한 바위 길을 올라 절개면 상단에 올라선 후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능선 길옆에 박힌 “천주교”표지석이 길 안내를 맡은 지맥 길은 어하고개까지의 마사토 길이 낙엽 길로 바뀌어 걷기에 좋았습니다. 한참을 북진해 삼각점이 세워진 “부대/어하고개” 이정표가 서있는 봉우리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바위 길을 따라 걷다가 얼마 후 송전탑과 군부대훈련장을 거쳐 오른 쪽 아래로 송우리 길이 갈리는 석문령에 내려선 시각이 12시44분이었으니 어하고개 출발 40분이 걸린 셈입니다.


  13시5분 천보산 헬기장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석문령에서 왼쪽 부대 쪽으로 조금 떨어진 천보약수터에서 약수를 받아 마신 후 지맥종주를 이어갔습니다. 공터 길을 지나 완만한 오름 새의 능선 길을 따라 걸어 헬기장에 다다르기까지지 쉬지 않고 올랐습니다. 50대의 남자 한  분이 훌라후프를 하고 있는 둥그런 공터의 헬기장에 이르자 천보산과 해룡산이 비로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해발314m의 헬기장에서 벤취에 앉아 점심을 들면서 모처럼 십 수분을 편히 쉬다가 눈발이 내리고 손끝이 아려오기 시작해 서둘러 헬기장을 출발했습니다. 15분을 걸어 내려가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벽에 새겨 놓은 천주교 묘지를 지나는 중 무당, 불교, 기독교와 일련법종 등 여러 종교를 바꿔가며 믿으시다 돌아가시기 6년 전에 마지막으로 천주교로 개종해 독실한 신자가 되신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저희 아들 며느리에 유언을 남기시어 끝내 천주교신자로 만드신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신지 19년이 지난 오늘도 주님과 함께 낙원에서 편안하게 머무르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묘지를 지나고 얼마 후 56번 도로가 지나는 회암고개로 내려섰습니다.


  14시14분 해발 423m의 천보산에 다다랐습니다.

두바위휴게소가 들어선 회암고개에서 딱 반시간을 걸어 천보산 정상에 이르는 동안 대체적으로 오름 길이 완만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군사도로를 따라가다가 헬기장을 만나고 회암사약수터로 갈리는 능선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좌사면이 암벽인 천보산 정상은 먼발치에서는 절애의 암벽과 단풍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볼만하다 했는데 로프를 잡고 마사토 길을 걸어 벤치가 세워진 정상에 올라서자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산에서 난을 피한 조선의 한 임금께서 하늘 밑에 보배로운 산이라 하여 천보산으로 불렀다는데 어엿한 정상석이나 삼각점 하나 없이 다 낡은 함석표지판만 보여 보배로움은 사라지고 마냥 썰렁해 보였습니다. 십 수분을 더 걸어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칠봉산으로 가는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 쪽 길을 따라 얼마간 내려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정상출발 15분 만에 사거리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안부 오른 쪽 아래로 집 한 채가 보였고 직진 방향의 임도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자 쇠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15시40분 해발661m의 해룡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부대 앞에 다다랐습니다.

안부사거리에서 임도 오른 편의 능선 길을 따라 올라 나지막한 무명봉을 넘은 후 잘 조성된 묘역을 지나 다시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이번 산행의 깔딱 길은 임도 오른 쪽 능선 길로 들어서면서 시작됐습니다. 40여분 동안 고도차가 300m를 넘는 된비알 길을 오르느라 모처럼 진땀을 흘렸습니다. 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일고 흰 눈이 쉬지 않고 내려서인지 회암고개를 지나서는 천보산과는 달리 그 많던 산객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낙엽을 살짝 덮은 하얀 눈이 오름길을 미끄럽게 했지만 산줄기 어디에서도 쌓인 눈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계속된 겨울가뭄이 얼마라도 해소될 수 있도록 큰 눈이 내려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무명봉을 넘고 헬기장을 지나 다가선 군부대를 끼고 오른쪽으로 10분 가까이 에돌아 철조망 울타리를 지나는 중 부대 안에서 축구를 하다 쉬고 있는 병사들을 보았는데 누구하나 어디 가느냐고 묻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동안 저처럼 철조망울타리에 바짝 붙어 군부대를 우회하는 산객들이 꽤 많았나 봅니다. 


  16시19분 오지재고개에 도착해 한북왕방지맥의 첫 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군부대 울타리를 벗어나 오른 쪽으로 급하게 내려가는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왼쪽 아래로 넓은 차도가 보여 처음에는 저 길이 오지재고개를 넘는 334번 도로가 아닐까 했습니다만,  헬기장을 지나서 얼마 후에야  그 길이 방금 지나온 군부대로 이어지는 시멘트 차도임을 알았습니다. 시멘트 길로 내려서 걷다가 몇 분 지나지 않아 왕방산의 주능선이 한 눈에 잡히는 산길로 다시 들어서 오지재고개로 하산했습니다. 차도 건너 나무 계단 길이 왕방산으로 오르는 길임을 확인한 후 고개 마루 간이매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었습니다.


  50번 시내버스에 올라 오지재고개에서 동두천으로 옮기는 중 광암리 고모님 집 앞을 지났습니다. 생존해 계셨다면 당연히 들렀을 고모댁은 어려서 여러 번 놀러왔습니다. 그 때는 파주 광탄의 제 고향보다 산이 엄청 높은 산골이다 했는데 그 높은 산들이 바로 해룡산 줄기임을 이번에야 확실히 알았습니다. 해룡산과 왕방산이 모아서 흘려준 계곡물이 광암리 고모댁 앞을 지나 신천으로 흘러 들어간 다음 한탄강과 몸을 섞은 후 임진강에 합류된다 생각하니 왕방지맥의 산줄기와 물줄기가 어렴풋하나마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