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지맥·분맥·단맥/한북정맥 분기지맥

한북화악지맥 종주기

시인마뇽 2012. 1. 16. 09:32

                                        한북화악지맥 종주기5(최종회)

 

         

          *지맥구간:가일고개-물안산-가평교

          *산행일자:2009. 9. 20일(일)

          *소재지  :경기가평/강원춘천

          *산높이  :물안산438m, 보납산330m, 월두봉453m 

          *산행코스:달개지-가일고개-월두봉-주을길고개-물안산-보납산-가평교

          *산행시간:9시50분-18시5분(8시간1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12명

          (24기이규성, 서중원, 김주홍, 이기후, 우명길, 29기정병기/김의정, 유한준,

           김정호, 오창환, 45기김영준, 초대손님 박현출님)


  46번 국도상의 가평교에서 다섯 번에 걸친 한북화악지맥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화악지맥은 서쪽 건너편의 한북정맥 일부구간 및 연인지맥과 더불어 장장 38Km의 가평천에 물을 대는 동쪽의 울타리로, 경기도 제1고봉인 우람한 화악산이 이 지맥 길에 자리하고 있어 누구라도 한 번은 꼭 밟고 싶은 매혹적인 산줄기입니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만고불변의 산자분수(山自分水)의 원리에 따르면 대간이든 정맥이든 지맥이든 산줄기를 따라 걷는 종주산행에서 물 위의 다리를 건너는 것은 기나긴 산줄기 종주를 모두 마치고 나서나 유효합니다. 가평천을 가로지르는 가평교 앞에 다다르자 이제 화악지맥 종주도 끝났다 싶었습니다. 작년 9월 한북정맥의 도마봉에서 이 지맥에 발을 들인지 만 1년 만에 종주산행을 모두 마치고 나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지맥종주를 시작한지 한 달 남짓 후 춘천의 용화산을 오르다가 실족 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홍적고개에서 열달이나 발이 묶여 있었기에 더 그러했습니다.


  아침9시50분 개곡리합수점의 달개지를 출발했습니다.

청량리역을 7시50분에 출발했으니 가평 개곡리의 들머리까지 이동하는데 꼭 2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청량리에서 기차타고 가평으로 와서 이곳까지 택시로 내달렸는데도 2시간이나 걸린 것은 전적으로 경춘선 열차의 굼뜸 때문입니다. 얼마 전 서울서 춘천까지 고속도로가 뚫렸고 머지않아 공사 중인 전철마저 개통된다면 이 굼뜬 열차여행도 끝나게 됩니다. 눈에 잡힐 정도로 서서히 바뀌는 차창 밖 풍경들을 느긋하게 지켜보는 것도 경춘선 열차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맛이자 멋인데  이 느림의 미학을 완상하는 기쁨도 전철개통과 더불어 끝이 난다하니 벌써부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7월 홍적고개-북배산-가일고개 구간의 화악지맥을 종주한 후 한참을 걸어 택시를 불러 탔던 달개지에서 그림같이 아담한 옆집에 사신다는 한 아주머니에 부탁해 합동사진을 찍고 나자, 한창 맹위를 떨치고 있는 여름폭서와 8시간 가까이 맞서며 키를 넘는 억새들이 가득히 들어선 지맥 길을 걷느라 진땀을 억수로 흘린 두 달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그새 산객들에 그토록 잔혹했던 여름은 물러나고 가을이 산 능선을 차고앉아 마음 놓고 다시 지맥 종주에 나섰습니다. 춘천시의 당수반으로 넘어가는 꽤 넓은 임도를 따라 걸어 지맥 길과 합류하는 가일고개로 올라서기까지 15분이 걸렸는데도 등 뒤로 땀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습니다. 가일고개에 오르자 이곳까지 차를 몰고 올라와 지난 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는 40대 중반의 부부 두 분이 아침 식사를 들고 있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0시11분 해발320m의 가일고개에서 지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종주 때 오르내렸던 계관산이 바로 뒤에 보이는 가일고개에서 산행대장이 배포한 개념도를 받아보자 이번에 밟을 마지막 구간의 화악지맥에서 가지 친 산줄기가 40개가 넘게 나와 있었습니다. 이 많은 봉우리를 다 넘어야 화악지맥의 끝 봉인 보납산에 이를 수 있어 이번 산행도 만만치 않겠다 싶었습니다. 제일 높은 월두봉이 해발453m이고 보납산이 330m 높이이며 출발지인 가일고개의 산 높이가 해발 320m여서 안부와 산 마루간의 표고차가 크지 않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했습니다. 지맥 길은 계속해 서쪽으로 이어졌고 가일고개 출발 40여분 동안 오르내린 산 마루와 안부간의 표고차가 대략50m를 넘지 않았습니다. 몽가북계의 억새 풀 대신 졸참나무를 위시한 넓은잎나무들이 해를 가려주어 종주산행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지난주까지 산상음악회 연주 단원이었던 매미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산새들의 조잘거림도 힘이 빠진 듯 한여름만 영 못했습니다.


  11시35분 좌측사면이 토양이 드러날 정도로 깨끗하게 벌목된 개활지를 지났습니다.

까까비탈의 나무들을 저토록 깔끔하게 베어내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다른 수종으로 바꿔 심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고 그렇게 심은 나무들이 다 자라 숲을 이루기에도 십 수 년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그 사이 나무숲과 경계를 이루는 능선 길에는 키가 작은 잡목들과 억새들 그리고 이런 저런 가시나무들이 제 멋대로 자라 종주꾼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하다 함을, 저는 그간 정맥과 지맥을 종주하면서 이런 산길을 수도 없이 뚫고 지나오면서 몸소 겪어 잘 알고 있습니다. 북동쪽으로 화악산 정상과 응봉 그리고 그 사이 화악터널 위의 실운현이 한 눈에 들어오는 몇 곳 지나 다다른 삼거리에서 잠시 지체한 것은 다음 삼거리에서 길이 갈리는 월두봉 갈림길을 잘 못 알고 진행했다가 허탕치고 되돌아왔기 때문입니다.


  12시43분 해발453m의 월두봉을 들렀습니다.

지맥 길에서 남쪽으로 십 수분 떨어져 있는 월두봉에 오른 것은 이봉우리가 이번 산행 중 오르는 최고의 봉우리여서 전망이 빼어날 것으로 기대해서였는데 남서 쪽 아래로 북한강이 조금 보일 뿐 나뭇잎에 가려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월두봉으로 오르는 길은 암릉 길도 있고 로프도 쳐져있어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지만 정작 월두봉에 오르자 정상을 알리는 나무 판때기만 걸려있고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어 그저 밋밋했습니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점심을 함께 들으며 모처럼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13시49분 자리에서 일어나 북서쪽으로 난 엄청 가파른 비탈길을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길가로 쳐 놓은 로프 줄을 잡는 대신 스틱을 길게 빼고 내려가느라 산행이 조금 더뎠습니다. 295봉과 305봉을 차례로 넘어 내려선 헬기장에서 조금 더 내려가 만난 움푹한 십자안부가 지금은 길이 끊긴 원래의 주을길고개 같았습니다.


  15시23분 해발 438m의 물안산에 올라섰습니다.

십자안부에서 15분을 채 못 걸어 오른쪽 아래로 개곡리 길과 왼쪽으로 주을길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는 임도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물봉선과 꽃송이가 아주 작은 야생화들이 떼 지어 피어 있는 임도사거리에 세워진 표지목에 보납산까지 4Km가 남아 있는 것으로 적혀 있어 쉬지 않고 물안산을 향해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오름 길로 들어섰습니다. 수직으로 180m가량 고도를 높여야 하는 된비알 길을 힘들게 올라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4-5분을 더 걸어 425봉에서 쉬고 있는 선두팀 대원들을 만났습니다. 방금 지나온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3-4분만 오르면 다다를 수 있는 물안산을 그냥 지나쳤음을 뒤늦게 알고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지맥 길에서 북동쪽으로 야간 비껴 서있는 물안산 정상에서 서쪽 아래로 가평천이 흐르고 또 남동쪽으로 해발425m의 마루산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이 가평천과 수직으로 면하고 서있는데다 마루산 너머로 북한강까지 눈에 들어와 조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소나무 한그루가 암 봉의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물안산에서 삼거리로 되돌아가 지맥종주를 이어갔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보납산으로 향하는 길은 초반 얼마간은 암릉 길이 이어졌습니다. 400m를 조금 넘는 봉우리 몇 개를 지나 375봉을 넘은 다음 235봉에 이르기까지 몇 십분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흙길이어서 모처럼 편안했습니다.


  이 능선삼거리에 이정표가 서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직진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선지 한참 후에야 이 길이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이 아니고 보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됐습니다. 사람 다닌 흔적이 희미한 지방의 산줄기를 혼자서 종주하며 이런 갈림길에서 길을 잘 못 들어 생고생을 한 적이 꽤 여러 번 있습니다.  지형도를 꺼내 보고서도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것은 이제까지 걸어온 대로 그대로 이어가려는 관성과 절대로 제가 틀릴 수 없다는 과신이 주 이유였습니다. 제 판단이 옳다고 믿은 나머지 심한 경우에는 제 생각과 다르게 나온 지도를 불신하고 나침반도 고장 났다며 엉뚱한 길로 들어가 급기야는 그 날 종주산행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삶의 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내달릴 것이 아니라 가끔은 갈림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인생의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보고 자기 길을 점검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제껏 제 인생에서 지도와 나침반 이 되어주신 여러분들에 감사말씀 올립니다.


  17시2분 해발330m의 보납산에 올랐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선지 오래되지 않아 운동기구들이 들어선 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이 16시45분으로 보광사가는 길이 왼쪽 아래로 갈렸습니다. 이곳에서 보납산까지 오름 길은 조금 가팔랐으며 인근 가평시내에서 산책 나온 분들을 여러 분 만나 뵈었습니다. 가평시내가 한눈에 잡히는 보납산은 화악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로 북한강이 조망되는 최고의 전망대여서 기념사진을 함께 찍은 후 경동고교 교가를 제창했습니다. 교가에 나와 있는 대로 “옛 성 밖 뫼 뿌리에 우뚝 선” 구릉 위의 학교를 3년 동안 오르내린 덕에 이번에 십 수Km를 걸어 여기 보납산에 오를 수 있었고 작년에 도상거리 기준 160Km가 넘는 한북정맥 종주를 거뜬히 마칠 수 있었다 싶어 한껏 목청 높여 불렀습니다.


  18시5분 가평교에서 화악지맥종주산행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보납산에서 정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엄청 급했습니다. 왼쪽 위로 보광사 길이 나있는 큰 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왼쪽 아래 계곡가로 내려가 땀을 씻어 냈습니다. 마을 지나 가평천 방죽을 따라 난 길을 따라 남진해 가평교에 다다랐습니다. 다리 건너 시내로 옮겨 지난 달 딸을 출가시킨 박현출님이 낸 저녁을 맛있게 든 후 20시발 청량리 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저는 이번 화악지맥 종주로 1대간 7정맥 7지맥의 산줄기를 밟았습니다.

그 사이 제 나이는 다섯 살이 더해졌으니 그간의 종주산행기록은 제 나이와 맞바꾼 나이테에 다름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낙동정맥과 낙남정맥을 오르지 못했고 앞으로 올라야 할 기맥과 지맥도 수두룩하게 남아 있습니다. 제 나이와 맞바꿀 산줄기가 얼마나 되는지 그래서 제몸에 나이테를 몇 개나 더 그려야 하는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번 화악지맥 종주로 몸이 많이 좋아졌음을 확인했기에 내년 봄부터 남은 정맥 종주에 나서볼 뜻입니다. 기왕이면 굵은 선으로 제 나이테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 松琳 통나무
  • 2009.09.22 09:54
  • 카메라는 고치셨는지요?.....
  • 답글
  • 시인마뇽
  • 2009.09.23 09:25됐다 안됐다 합니다. 다시 맡겨야지요

 

 

 

                                        한북화악지맥 종주기 4


            *지맥구간:홍적고개-북배산-가일고개

            *산행일자:2009. 7. 19일(일)

            *소재지  :경기가평/강원춘천

            *산높이  :몽덕산690m, 가덕산858m, 북배산867m, 계관산730m, 작은촛대봉665m

            *산행코스:홍적고개-몽덕산-가덕산-북배산-계관산-가일고개-개곡천합수점 팬션 앞

            *산행시간:9시56분-19시6분(9시간1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회원14명

                         (24기 김주홍/김경옥, 서중원, 이규성, 이기후, 우명길, 29기김정호,

                          오창환, 유한준, 정병기/김의정, 43서석범, 51이현석, 초대손님 박현출) 

 

 

                (이 사진은 동행한 박현출님이 찍은 것입니다)


 

  독하게 마음 다져먹고 화악지맥 종주 길에 올랐습니다.

한북화악지맥이 지나는 홍적고개-북배산-작은촛대봉 구간은 키를 넘는 억새들이 방화로를 낸 긴 능선을 덮고 있어 이 풀숲을 헤치고 나가기가 정말 고역입니다. 2003년 9월 홍적고개에서 계관산까지 몽가북계 길을 걸으면서 여기 억새풀숲의 위력을 이미 경험한 터라 작년 9월 저는 한북정맥의 도마봉에서 시작한 화악지맥종주를 일단 홍적고개에서 멈추었습니다. 매년 10월말경이면 군 당국에서 방화로의 억새들을 베어낸다기에 기다렸다가 종주할 생각으로 이 고개에서 멈춘 것인데, 작년 10월 예기치 못한 산행사고로 허리를 다쳐 만부득이 지금까지 미뤄온 것입니다. 마침 제가 속한 경동동문산악회에서 이 구간을 종주한다고 해 참가신청을 해놓았지만 억새풀숲의 극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성하의 7월에 땡볕을 쪼여가며 아픈 허리를 이끌고 긴 시간 산행해야한다고 생각하자 적지 아니 걱정됐습니다.


 작은촛대봉에서 가일고개로 내려서는 나무 숲길로 들어서기까지 7시간 남짓 억새숲길을 걸었습니다. 반바지 반 팔 차림의 몇 몇 대원들은 억새 풀 속에 몸을 숨긴 산딸기에 팔 다리 여기저기를 긁혔고, 한 선배가 오름 길 400m가량 배낭을 들어주어야 할 정도로 탈진 한 후배대원은 하산 후 계곡물에서 몸을 다 씻고 난 후에야 원기를 되찾은 듯했습니다. 저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홍적고개에서 북배산까지는 그렁저렁 잘 진행했는데 북배산에서 계관산에 이르는 능선 길에서 뒤늦게 구름을 헤치고 나온 태양이 목덜미를 내리쬐어 많이 힘들었습니다. 웬만한 된비알 길이 아니면 최소한 한 시간은 걸은 다음 휴식을 취해온 제가 이번에는 2시간 남짓 걸려 약 4Km를 걷는 동안 두 번이나 쉬었는데도 계관산 정상에 이르렀을 때는 저녁이면 더해지는 허리통증도 느끼지 못할 만큼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오전9시56분 홍적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아침7시시50분에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경춘선 열차를 타고가다 가평역에서 하차하여 택시로 홍적고개까지 이동했습니다. 출발 시 날씨는 하늘에 구름만 끼었을 뿐 비가 내리지 않아 한 여름에 억새풀숲의 구간을 통과하기에는 최적이었습니다. 6년 전에 이 길을 걸을 때 보지 못한 넓은 길을 따라 오른 헬기장에서 더 진행해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길을 잘못 든 것을 알고 곧바로 헬기장으로 복귀해 동쪽으로 난 절개면 윗길로 들어섰습니다. 절개면을 지나자 예의 억새풀숲이 보였지만 이내 간간이 정상적인 나무 숲길도 나타나 몽덕산에 이르기까지는 별반 힘들지 않았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풀숲 길이 물 숲길이려니 싶어 껴입은 비옷바지를 얼마 후 벗어버린 것은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아 안의 바지가 땀에 온통 다 젖어서였습니다.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지맥 길을 따라 40분여 걸어 다다른 “몽덕산0.8Km/홍적고개1.4Km"의 이정표 앞에서 잠시 쉬며 숨을 돌렸는데 다행히도 걱정했던 허리통증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11시6분 해발690m의 몽덕산에 올랐습니다.

6년 전 길을 잘 못 들어 2시간 걸린 홍적고개-몽덕사 길을 이번에는 50분이 단축된 1시간 10분 만에 주파했습니다. 카메라에 물이 들어가 수리를 맡긴 터라 메모를 많이 해야 산행기 작성 시 참고할 텐데 선두에 따라붙기 바빠서 산행 중 거의 아무 것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몽덕산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지맥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섰다가 급하게 올라 윗홍적으로 길이 갈리는 납실고개를 지났습니다. 몽덕산에서 2.0Km 떨어진 가덕산으로 가는 길은 거의다가 억새풀숲 길이었지만 아직은 태양이 얼굴을 내밀지 않아 참고 걸을 만 했습니다.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해 다다른 825봉 삼거리에도 윗홍적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12시19분 삼각점이 박혀있는 해발858m의 가덕산에 다다랐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만난 헬기장에서 친구 마님이 따로 싸온 밥을 들며 모처럼 옛날의 한북정맥종주팀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13시11분에 삿갓봉으로 길이 갈리는 헬기장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가덕산에서 북배산까지는 2.5Km 거리인데 뱃속이 든든해 중간에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헬기장삼거리에 세워진 이정표가 북배산 가는 방향을 잘못 가리키어 일행 중 한 친구가 제 방향으로 다시 돌려 고쳐잡았습니다만, 한심한 누군가가 이정표를 돌려놓는 위험한 장난을 친 것이 분명합니다. 헬기장 출발 얼마 후 나무그늘 아래서 점심을 들고 있는 산 꾼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억새풀숲 길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이 장소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바로 6년 전 제가 몽가북계 길을 종주할 때 점심을 들며 쉬던 곳이었습니다.


  14시27분 몽가북계의 최고봉인 해발867m의 북배산에 올라섰습니다.

가덕산과 북배산의 표고차가 9m밖에 안 되어 편한 길이라 생각한 것이 크게 오산이었던 것은 오랜 시간 구름 뒤로 몸을 숨긴 태양이 얼굴을 내미는 횟수가 급작스레 늘어나 열기가 더해졌고  안부와 봉우리의 표고차가 생각보다 훨씬 커 오르내림이 심해서였습니다. 큰멱골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1.5km 떨어진 북배산이 멀리보이는 것은 다 자란 억새 풀숲과 산딸기 가시에 많이 시달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정표 하나를 더 지나고도 몇 번을 더 오르락내리락해 정상부가 완만한 북배산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석과 삼각점이 몇 십m 떨어져 있는 정상부 끝자리에서 바람이 들 만한 그늘을 찾아 10분여 쉬었습니다. 몽가북계의 마지막 고봉인 계관산이 한눈에 들어온 것은 지나온 가덕산보다 가까워서가 아니고 고스락을 에워싼 구름이 걷히어서였습니다. 완만한 정상부에서 깊숙한 안부로 급하게 내려갔다가 올라선 680봉에 “북배산1.6Km/계관산2.4Km"의  이정표가 서 있었습니다.


  16시36분 해발730m의 계관산 정상을 밟았습니다.

680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중 그늘 진 곳이 눈에 띄어 배낭을 내려놓고 10분여 쉬었습니다. 한 시간도 못 걸어 쉬었던 것은 제 몸의 피로도가 수용 가능한 임계치를 벗어나면 복원력을 잃게 되어 털썩 주저앉을까 겁이 나서였습니다. 몇 곳의 봉우리를 더 넘어 자라바위를 통과했습니다. 노목의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 계관산 1.2 Km 전방의 싸리재에서 먼저 와 자리 잡은 친구와 함께 다시 쉬었는데 정 몸이 말을 안 들으면 이곳에서 종주산행을 접고 오른 쪽 싸리재마을로 하산하려 했었습니다. 정상 전방 400m 지점에서 두 번을 오르내려 정상에 다다르기까지 많이 힘들었지만 여러 차례 잘 익은 산딸기로 당분을 보충해 견뎌냈습니다. 정상에 올라 6년 전 하산했던 오른 쪽 싸리재마을로 연결되는 급경사의 능선 길을 확인한 후 10분 넘게 푹 쉬었습니다. 몽가북계 길은 끝났지만 지맥 길은 남쪽 아래 작은 촛대봉으로 이어졌고 억새풀숲길도 그 봉우리를 넘어 계속됐습니다.


  17시54분 가일고개에서 8시간에 걸친 구간 종주를 마치고 오른 쪽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계관산 출발 20분 후에 다다른 작은촛대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은 후에야 비로소 억새풀숲과 헤어지고 정상적인 나무 숲길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가파른 길을 얼마간 따라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꺾어 지맥 길을 이어갔는데 정신없이 서두르다가는 그냥 직진해 알바하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방화로를 낸답시고 사람들이 손을 본 능선 길은 그토록 불편했는데 자연 그대로의 능선 길은 이리도 편안한 것을 이제껏 잊고 산행해온 것입니다. 무명봉에 올라 숨을 고른 후 30-40대의 두 후배는 뒤에 쳐진 후미대원들에 식수를 공급하고자 남아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머지 선두들은 가일고개로 내려갔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임도가 보인다 했는데 이내 가일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서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지맥 길과 헤어져 오른 쪽 임도 로 걸어 내려갔습니다.


  19시6분 첫 번째 합수점 옆 팬션(?) 앞에서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가일고개에서 임도 따라 7-8분을 내려가다 다리 건너 집한 채를 만났고 바로 아래 개곡천 상류의 계곡으로 내려가 모두들 알탕을 즐겼습니다. 서둘러 알탕을 마친 후 얼마간 더 내려가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첫 번째 지류가 개곡천과 합류하는 합수점 위의 팬션 앞에서 걷기를 마치고 가평택시에 올랐습니다. 가평역에서 번개 불에 콩 튀어먹듯이 후다닥 저녁을 든 후 20시3분발 청량리행 열차에 몸을 실고나자 결코 만만치 않은 긴 구간을 힘들고 지치기는 했어도 아무 탈 없이 종주한 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작년10월 숫돌고개-잣골고개 구간의 한북정맥을 끝으로 무려 9개월이나 동문산악회의 종주산행을 빠진 것은 사고로 다친 허리 때문이었는데 앞으로 며칠 간 지켜보아 달리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번 홍적고개-가일고개 구간의 화악지맥을 성공리에 종주한 것이 더 이상 빠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더욱 기뻤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어려운 구간을 완주한 일행들도  뿌듯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나무들을 베어낸 능선 길에 확실히 자리 잡은 식물은 억새였습니다.

이 억새들이 남긴 좁은 공간을 파고 든 것은 가시투성이의 산딸기였습니다. 더러더러 들꽃들도 보였지만 키를 넘는 억새들에 가려 사람들 눈을 끌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진청색의 도라지꽃을 보자 해마다 이맘때면 선산에서 도라지를 캐 오신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시큼 달콤한 산딸기와 도라지꽃조차 없었다면 억새풀숲 길은 더욱 고됐을 것입니다. 이 길을 내리쬐는 직사광선을 부담스러워하는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애 띠어 보이는 살모사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서 똬리를 틀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나무 대신 들어선 억새들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같이 살 새 식구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습니다. 산딸기와 도라지는 물론 살모사조차도 새로운 생태계에서 같이 살자고 초대받았는데 저희들만은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었습니다. 저희들을 억새들은 반가워하지는 않았지만 아예 근접하지 못하도록 내쫓지 않은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라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들어서면 못 들어오도록 경고를 하거나 경찰에 신고해 잡아가도록 했을 텐데 억새들은 저희들에 그리 매몰차게 대하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오랜만에 종주산행에 참여해 몸을 조율하느라 고생하셨을 한 마님과 산행 내내 고군분투한 거구의 후배에 완주의 기쁨을 넘기면서 이번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아래 사진은 동행한 박현출님이 찍은 것입니다)

 몽가북계...봉이 아니라 산을 4개를 넘어야 한다..

 

 들머리에서 살짝 알바를 하고...

 

 철망을 밟고 건너가는 위험지역 통과.

 

 무성한 숲에 가려 인물사진 찍기가 힘들정도...

 첫 몽덕산 정상석.

 아직도 갈길이..

 잣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쳐 놓은 철조망....이 작업도 엄청 많은 수고를 드렸으리라..

 

 

 어디가 길인지 알수 없다.

 

 

 

 

 

 서 석범군 의 손.

 

 중식을 했던 헬기장.  하필이면 바로 이때 해가 쨍쨍 쬐기 시작..

 

 

 

 

 숨은 그림찾기....

 겨울이면 눈에 덮혀 넓은 평탄한 길일텐데...

 

 

 

 

 

 마지막 관문이 계관산이 멀리 보이고...

 요기가 자라 바위

 허리의 아픔도 잊으신 우명길 형님.

 후미 병기를 약올리는  할배. 

 

 

 눈빛 표정이 귀엽게 보인다...근데...중요한 부위에 웬 물이....ㅋㅋ...땀이 흘러 거기까지...휴~

 

 

 표식판 목까지 자란 풀...죽갔다...앞으로 6.1 키로...

 삼악산으로 가는 지맥 갈림길.

 

 

 

 

 

 드디어 임도를 만나 알탕장소로 이동.  김여사가 당당 선두 그룹에서...

 야들이 여기가 고수분지 수영장인줄 아나~~ 삼각 수영팬츠를 입고 시리...왼쪽 서석범, 오른쪽 이헌석..

헌석군 뒷 자태가 ...3Km 수영을  40분에 주파 실력 보유자.

 겨우 살아난 병기..나무숲사이로 이 규성 형님.

 

 멀쩡해진 정군...왜..술이 기다리니까...

 

 



 

  • 계백
  • 2009.07.22 09:41
  • 기차로 가는산행 운치가 있지요
    엄청난 위력으로 다가왔던 장맛비도 이젠 막바지에 이르러 에너지가 다했는지
    화창하게 시작한 음력 6월 초하루(수요일) 천문현상인
    일시(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로 들어와 일부 또는 전부 태양을 가린 현상)를
    관찰하며 더위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식히시길 제안 드립니다.
    행복감 넘친 수요일 빕니다.
    • 답글
    • 시인마뇽
    • 2009.07.23 12:16
    • 제게는 지방산행이 아니면 기차여행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사업상 타는 것이 아니고 여행을 목적으로 타는 기차이기에 동행의 친구들과 웃고 담소를 나눌 수 있어 좋아합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한북화악지맥 종주기3


                *지맥구간:실운현-촉대봉-홍적고개

                *산행일자:2008. 9. 25일(목)

                *소재지  :경기가평/강원화천 및 춘천

                *산높이  :화악산응봉1,436m, 촉대봉1,125m

                *산행코스:화악리버스종점-화악터널-실운현-응봉초소앞-촛대봉

                          -990봉-홍적고개-양지버스정류장

                *산행시간:9시25분-19시10분(9시간45분)

                *동행    :나홀로

     

     

      화악지맥 종주 길에 녹이 잔뜩 슬은 철모 하나를 보았습니다.

    세월이 머물다간 흔적이 너무나도 뚜렷한 철모가 나무줄기에 어떻게 해서 걸려 있는지 잘 모르지만 시뻘건 녹이 덕지덕지 슬은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 버려진지도 몇 십 년은 족히 지난 것 같았습니다. 옆자리에서 수 십 년 동안 철모를 지켜봤을 나무들은 아무런 상처 없이 잘 자라 수피도 깔끔하고 키도 훤칠해 녹 슬은 철모와 극명하게 대조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나무들이 마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만은 아닙니다. 나무들 역시 삭풍이 나무 끝에 불 때면 가지의 잎들을 모두 떨어내야 했고, 엄청난 괴력의 태풍이 몰아칠 때는 뿌리 채 뽑히는 아픔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똑같이 간난의 세월을 살아왔으면서 나무들과 철모의 모습이 저렇게 다른 것은 왜일까 궁금해 하다가 나무는 산이 만들지만 철모는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은 수많은 생물들에 상생의 장을 제공하지만, 사람들은 상쟁을 통해 생명을 이어오고 문화를 일궜습니다. 사람 사는 집에서는 애완동물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물 몇 종만이 같이  살 수 있지만, 산에서는 온갖 생물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본다면 산이 상생의 장이라는 제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상생의 장에 뿌리박은 나무들은 세월과 벗하며 살아가면서 매년 한 줄씩 자기 몸속에 나이테를 그어  뒤를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내달리는 세월에 벌써 한 해가 지났음을 알려줍니다.  이에 반해 사람들이 만든 철모는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빼어 닮아 세월에 맞서느라 상처를 많이 입은 것입니다. 잠시 머물다 갈 뜻으로 들러본 세월에 싸움을 걸어본 철모는 단순히 상처만 입은 것이 아니고 세월이 동원한 비와 산소의 집요한 공격으로 피부가 헐을 대로 다 헐었고 급기야는 시뻘건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가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철모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하루라도 더 일찍 녹이 슬어 자신을 해체하고 한시라도 더 빨리 흙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철모가 흙으로 변해 상생의 장인 산으로 돌아갈 때 이 좁은 땅에서 시끄러움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그렇지 않고서는 종전(終戰)과 함께 숨죽였던 철모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 전쟁을 불러들일까 걱정되어서입니다.  



      새벽3시에 일어난 보람도 없이 괜한 일로 꿈지럭거리다 아침 6시10분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는 가평 행 첫 버스를 타지 못했습니다. 그 바람에 화악산의 중봉을 오른 후 실운현으로 가서 화악지맥을 종주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바로 실운현으로 올라가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아침7시5분에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경춘선 열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자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긴 여행길에 오른 듯했습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의 기차여행이 더 운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제가 특별히 감상적이어서가 아니고 대학시절 우연찮게 비 오는 날 여행을 많이 떠났기 때문인데, 마침 기차가 대성 역에 다가설 즈음해서 비가 뿌리기 시작해, 먼 곳으로 향하는 충만한 저의 여심(旅心)을 달래어 다음다음 역인 가평에서 바로내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산을 찾아 오르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은 제게는 바로 먼 곳에의 동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몇 년 전에 “먼 곳에의 동경”이란 이름으로 블로그를 개설한 후 제가 다녀온 산들의 산행기를 이 블로그에 빼놓지 않고 담고 있습니다.



      아침9시25분 화악리 마을회관을 출발했습니다.

    8시40분에 가평을 출발한 군내버스는 홍적마을을 들러 9시20분이 조금 못되어 화악리 버스 종점인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공기가 냉랭해 쟈켓을 꺼내 입었습니다. 종주산행 출발점인 실운현으로 올라서는 길이 화악-도계간의 도로를 확장/포장하는 공사 중이어서 지난 일요일처럼 햇빛이 쨍쨍 내리쬔다면 엄청 힘든 길이 됐을 텐데 날씨가 흐리고 기온도 많이 내려가 참으로 다행이다 했습니다. 산행시작 20분 후에 왕소나무가 서있는 천도교수련원 갈림길을 지났고 1시간이 지날 즈음 청원농원을 조금 더 가서 지난번 하산 길에 옷을 갈아입었던 넓은 공터의 공사용 가건물(?)을 지났습니다. 그간 두 주 사이에 계곡의 물소리가 많이 약해졌고 매미들도 확실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11시 11분 왼쪽 위로 실운현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도로공사용 가건물을 지나자 구비 구비 돌아가는 찻길의 경사가 본격적으로 가팔라져 4백m대이던 해발고도가 어느새 7백m를 넘어섰다 했는데 이내 실운현 행 군사도로가 나타났습니다. 화악터널로 이어지는 도로 반쪽이 아스팔트포장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석유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어렸을 때 차가 지나가면서 내는 연기냄새가 구수하다고 느꼈던 것은 아주 드물게 지나가는 자동차가 신기해서였는데 이제는 차가 하도 많아 그 신기함은 사라지고 뿜어내는 배기가스가 매연의 주범으로 각인되어 짜증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길섶을 환희 밝힌 쑥부쟁이나 마지막 몇 송이까지 꽃을 다 피운 달맞이꽃은 이런 냄새에 관계치 않고 가을치장을 마친 듯 했습니다.


      12시30분 실운현을 출발해 화악지맥3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실운현 갈림길에서 화악터널로 올라가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아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전 한 때 산 위로 밀려 난 구름들이 응봉을 에워 싸 실운현에서 응봉의 군사기지로 오르는 군사도로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운현 갈림길에 이르기 직전에 잠깐 얼굴을 내밀었던 태양도 이내 구름 속으로 몸을 감췄고 세를 얻은 응봉의 구름이 그 아래 촉대봉을 덮기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하얀 구름의 몸놀림이 엄청 빨랐습니다.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인 화악터널을 걸어서 지나 강원도 땅으로 들어선 다음 바로 아래 샘터에서 목을 축인 후 왼쪽으로 난 군사도로로 올라섰습니다. 몇 걸음 걷다가 왼쪽으로 숲 속 길로 들어섰는데 비에 젖은 흙길이 미끄럽고 경사가 급해 다시 군사도로를 만나기까지 20분 넘게 걸려 그대로 군사도로를 걷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았습니다. 숲 속에서 만난 비는 비 채비를 끝내자마자 멈추었고 대신에 짙은 구름은 그 세가 더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실운현에 도착해 10분간 점심을 든 후 동쪽 맨 꼭대기에 자리한 응봉으로 향했습니다.  민간인은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판을 외면하고 응봉 가는 군사도로로 올라서기가 참으로 찜찜했지만 이 길을 거치지 않고 화악지맥을 종주하는 다른 방법이 없어 가다가 제지당하면 돌아설 각오를 하고 일단 응봉으로 출발했습니다.


      13시25분 군사도로에서 벗어나 오른 쪽 숲속으로 내려섰습니다.

    실운현에서 응봉으로 오르는 길은 군사도로로 시멘트 길에다 햇빛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영락없는 대성산 길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몇 주 전에 오른 대성산 길은 땡볕 더위 속에 걸었고 이번 응봉 길은 기온도 떨어지고 운무가 가득해 때때로 한기가 느껴졌다는 정도였습니다. 물기를 머금고 있는 구름 속의 풀꽃들이 그윽하고 청아해 보였습니다. 산굽이를 돌고 돌아 고도를 높여가는 중 뒤에서 차 소리가 나 가슴을 졸였는데 군 지프차가  아무 소리 없이 저를 지나쳤습니다. 실운현 출발 1시간이 거의 다되어 오른 쪽 길섶의 나지막한 방호 턱이 손상된 곳을 찾아내 길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바로 위에 자리한 해발1,463m의 응봉 군사기지가 선명하게 보였을 텐데 몇 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이 짙게 깔려 길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15시 정각 해발1,125m의 촉대봉에 다다랐습니다.        

    군사도로에서 오른 쪽 풀숲으로 내려가 표지기를 찾아 왼쪽으로 진행했습니다.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설 뜻에서 길이 나 있지 않은 몇 곳을 뚫고나가고자 시도하다가 아무리 군부대 정문을 몰래 비껴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사람 다닌 흔적이 이렇게 없을 수는 없다 싶어 길 뚫는 일을 그만두고 표지기가 걸려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다가 이내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나 이제야 비로소 제 길로 들어섰다는 생각에서 마음 놓고 속도를 냈습니다. 넓은잎나무들과 그 아래 투구 꽃 및 진범 등의 고산의 야생화들이 공존하는 지맥 길을 가득 덮은 운무가 좀처럼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흐릿한 길이 더욱 희미해졌으며 나무에 걸린 녹슨 철모가 스산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 듯했습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데 철모에 저렇게 세월의 때가 두껍게 낀 것은 이 산의 현대사를 증언하고자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일 것입니다. 14시 조금 넘어 지금까지 지나온 길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니 군부대의 허락 없이 들고 나서지 말라는 경고판을 지나고 나자 더 이상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어 홀가분했습니다. 경고판에서 촉대봉에 이르는데도 짧은 길이 아니어서 1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안개는 자욱한데 좀처럼 표지기가 나타나지 않아 혹시 길을 잘 못 든 것이 아닌 가 해 또다시 불안해 하다가 40분이 지나 처음으로 강원도계 종주표지기를 보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마지막 암릉 길을 지난 지 얼마 되어 해발 1,167m로 표기된 정상석이 자리한 촉대봉에 올랐습니다. 운무는 여전히 짙게 깔려 사방을 둘러봐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16시43분 990봉에 다다랐습니다.

    촉대봉에서 경사가 급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 남서쪽으로 향하는 지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정남쪽으로 방향이  바뀌는 1,125봉에서 990봉으로 진행하는 중 두 번씩이나 넘어질 정도로 물기에 젖은 길이 미끄러웠습니다. 암봉을 우회하느라 몇 번이고 깊숙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랐더니 힘이 좀 빠진 듯 해 봉우리하나를 바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의 평탄한 길로 에돌아 남쪽으로 내려섰습니다. 한참 동안 내려가 해발830m대의 “촉대봉2.3Km/하산길1.8Km"의 이정표 앞에 이르자 왼쪽 아래로 넓은 임도가 보여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직감했습니다. 산행기를 꺼내 읽어본 즉 이 길은 광악분교로 내려가는 하산길이어서 20분 넘게 걸어 그냥 지나쳤던 봉우리를 되올라갔습니다. 이 봉우리가 바로 990봉으로 여기에서 동쪽으로 진행해야 할 것을 그냥 지나쳐 남쪽으로 내려선 것이 잘 못이었습니다. 두 번의 알바로 시간을 까먹고 나자 갈 길이 바빠졌습니다. 이정표에 따르면 목적지인 홍적고개까지 4.4Km 거리라는데 우물쭈물하다가는 해지기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선채로 숨만 잠시 고른 후 홍적고개를 향해 들입다 내달렸습니다.


      18시13분 홍적고개에 도착해 3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990봉에서 5-6분 간 동쪽으로 진행해 “하산3.70Km"의 이정표를 지났습니다. 몇 분들이 기어서 통과했다는 바위를 별 어려움 없이 지나 ”촛대봉2.90Km/하산2.90Km"의 이정표 앞에 다다랐습니다. 산행 중 내내 비에 젖은 바위를 기어가다가 잘 못 실수해 밑으로 미끄러지는 것은 아닌지 했던 걱정은 제 소심이 불러온 과잉반응이었습니다. 풀숲 길 진행이 점점 힘들어진다 했는데 “하산2.10Km"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억새풀이 키를 넘는 방화선 길이 본격적으로 전개됐습니다. 올망졸망한 봉우리 몇 개를 넘어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삼각점과 “하산0.60Km" 이정표가 세워진 526.2봉에 도착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송전탑에 다다르니 바로 아래로 홍적고개 길이 보였습니다. 교통호를 지나 홍적고개로 내려선 후 어둠이 밀려오기 전에 이 고개를 뜨고자 물기가 푹 스며든 옷을 서둘러 새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19시10분 양지버스정류장에서 택시를 불러 타 가평읍내로 나갔습니다.

    홍적고개에서 3구간 종주를 마친 후 홍적리마을을 향해 오른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저녁7시40분에 홍적리를 출발하는 가평행 막차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한참 동안 내려가다가 뭔가 찜찜해 가평터미널에 문의해 저녁6시에 막차가 떠났다는 답을 듣고 별 수 없이 택시를 불렀습니다. 택시가 오는 데 한 20분 걸릴 것이라 해 이 참에 보고 싶은 추억의 인물들을 불러내 함께 시골 밤길을 걷고자 했으나 동네가 가까워지자 죽어라고 짖어대는 개들로 아련한 추억을 제대로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더 이상  걷기를 포기하고 두 번째 만난 양지정류장에서 십분 남짓 기다렸다가 택시에 올라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녹슨 철모에 관심을 집중하느라 정작 철모의 주인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철모의 주인이 이 땅을, 또 이 산을 지키려다 산화한 분이라면 저희들은 이 분의 고귀한 뜻을 영원히 기릴 것입니다. 북위 38도선이 지나는 화악산을 이렇게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은 이 땅을, 그리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내고자 온 몸을 바친 분들 덕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혹한 역사의 처절한 흔적을 깔끔히 지우지 못하고 이 땅에 평화를 뿌리내리지 못한 채 앞으로만 내달리는 세월이 밉살스러워 발목 잡고 맞붙느라 녹이 슬은 것이라면 철모의 시뻘건 녹은 수모의 상처가 아니고 영광스러운 훈장이겠다 싶어 이를 기리고자 철모사진을 올립니다. 

     

     

                                                           <산행사진>

     

     

     

     

     

     

     

     

     

     

     

     

     

     

     

     

     

     

     

     

     

     

     

     

     

     

     

     

     

     

     

     

     

     

     

     

     

     

     

     

     

     

     

     

     

     

     

     

     

     

     


     

    • 松琳 통나무
    • 2008.09.29 20:11
    • 나무에 걸려있는 철모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 시인마뇽
    • 2008.09.30 04:35
    • 교훈적이기도 합니다

     

     

     

     

                                     한북화악지맥 종주기2


            *지맥구간:방림고개-화악산북봉-실운현

            *산행일자:2008. 9. 12일(금)

            *소재지  :경기가평/강원화천

            *산높이  :화악산 북봉1,435m, 석룡산1,147m

            *산행코스:용수리38교-부채골-석룡산-방림고개-화악산북봉

                      -실운현-건들내-화악2리버스종점

            *산행시간:10시8분-17시48분(7시간40분)

            *동행    :나홀로

                                            

     

      흔히들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러한 표현이 5월을 계절의 여왕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그저 많은 이들이 즐겨 쓰는 문학적수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화악지맥을 종주하면서 참나무 가지에서 도토리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과연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 맞구나 했습니다. 한 낮의 기온이 섭씨 30도를 육박하는 요즈음 여름더위의 마지막 저항이 부질없어 보이는 것도 산속에서 나무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벌써부터 소리 없이 가을을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피부에 감촉되는 더위만 믿고 아직도 여름인양 목청을 높이며 온 몸으로 가을의 진군을 막는 매미들이 마지막 하루를 맞을 날이 멀지 않다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결실(結實)이란 식물들이 열매를 맺는 것을 이릅니다.

    나무가 결실한 열매는 과실(果實)이라 하고 풀들이 맺는 열매는 과채(果菜)라고 합니다.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라 불리는 것은 철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과채를 맺는 풀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가을을 기다려 과실을 결실하는 나무들 덕분일 것입니다. 마음먹고 주워 담는다면 배낭 하나 가득 채우는 것쯤은 한 시간 일감도 안 될 정도로 참나무의 결실인 도토리가 땅바닥에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무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연신해서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참나무 한그루가 결실하는 도토리가 한 말은 족히 될 것 같았습니다.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나무가 결실한 도토리 숫자만큼  많은 자식들을 두었다면 이 지구는 벌써 망가졌을 것입니다.


      도대체 참나무는 왜 자기가 평생 끼고 살 것도 아니면서 저렇게 많은 도토리를 생산할까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공기 중에 산재하는 이산화탄소를 끌어 모으고 중력에 반하는 방향으로 힘들게 물을 끌어올린 다음 태양에 사정해서 얻어낸 빛으로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 낸 과실을 스스로 소비하는 것도 아니면서 해마다 무엇 하러 그리 많이 만드는지 도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종족보존을 위해서라면 백분의 일만 결실해도 그 열매를 다 발아시켜 키울만한 공터가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참나무가 유독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다른 나무들을 살펴본 즉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밤나무도 밤송이가 다닥다닥 달려 있어야 흥이 나는 것 같았고 잣나무도 하늘 높이 솟은 가지 끝까지 잣송이를 달고 있어야 자기소임을 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궁리하다가 저는 그 답을 나무의 이타주의에서 찾았습니다.

    나무들이 제 먹고살려고 그리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생물들과 더불어 살고자 그렇게 많이 결실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나무들의 이타주의가 절정을 이루는 것은 자기가 만든 과실을 나무 끝에 붙잡아두지 않고 땅바닥으로 떨어트리는 것입니다. 이 나무 저 나무를 날아다니는 새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타지 못하는 산짐승들에도 몫이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마구 나무를 흔들어대거나 더러는 낫을 들고 덤벼드는 성미 급한 사람들도 손쉽게 주울 수 있도록 땅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나무는 이렇게 해서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공존의 장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과연 나무는 하느님이 만든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전10시8분 용수리38교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6시50분에 청량리를 출발한 좌석버스가 목동삼거리에 도착한지 20분이 더 지나 9시에 가평을 출발한 용수리행 군내버스로 갈아탔습니다. 강씨봉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지는 논남을 들렀다가 용수리 종점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2-3분을 걸어 만난 38교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오른 쪽 조무락골로 들어섰습니다. 화도를 지날 때 흩뿌렸던 비로 잠시 걱정을 했었는데 그새 하늘이 말짱하게 가셔 이제는 거꾸로 땡볕 더위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올 들어 조무락골 계곡을 따라 걷는 것이 세 번째여서 길이 눈에 많이 익었습니다. 비좁은 밭떼기에 빈틈없이 들어앉아 흐드러지게 핀 하얀 메밀꽃을 보자 천수답 논 몇 배미를 더 사들이고자 한 해 겨울을 쌀밥 한번 구경 못하고 메밀국수로 때운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어른들이 산에 간 것은 산 자체를 탐닉하러 등산한 것이 아니고 땔 감과 먹거리를 구하러 오른 것이기에 지금처럼 여유롭게 산행기를 남길 계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10시27분 첫 번째 이정표가 세워진 조무락골의 지계곡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부채골로 들어섰습니다. 40분 가깝게 걸어 오르며 계곡을 여섯 번 건넜습니다. 더 이상 물소리가 안 들려 이제 지계곡이 끝났다 했는데 한참을 더 올라가 마른 계곡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60대로 보이는 남자 한분이 너무 깨끗한 옷차림으로 이 산을 오르다가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내려갔고, 그 후 실운현에서 앳되어 보이는 장병을 만나기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초행길이라서 풀숲이 우거진 것은 아닌지 염려했지만 생각보다 길이 잘 나있는데다 물봉선 등 이런 저런 풀꽃들이 저를 반겨 계곡을 다 오르기까지 힘든 줄 몰랐습니다. 계곡을 따라 오르며 땅에 떨어진 다래를 주워 먹는 재미도 솔솔 했습니다. 부채골 상단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 임도사거리에 도착해 목을 축인 후 임도를 가로 질러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11시45분 왼쪽 아래로 갈리는 자루목 길이 갈리는 첫 번째 능선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임도를 가로 질러 몇 분간 오르자 왼쪽으로 빙 돌아 이어진 임도 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 임도를 따라가며 산허리를 에돌다가 다시 왼쪽으로 오르며 임도와 헤어졌습니다. 이렇게 올라선 능선 길에 “자루목/38교/석룡산”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 있었습니다. 얼마를 더 걸어 또 다시 만난 이정표에는 석룡산이 1.5Km 남아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이표기가 맞는다면 저는 0.5 Km를 되돌아 간 셈이 되어 황당했습니다. 이정표의 표기내용은 황당했지만 길바닥에 널려있는 동글동글한 도토리를 밟으면서 산을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꼭 뒤로 미끄러질 같았습니다. 두 번째 만난 “자루목/38교/석룡산”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산허리를 에도는 고즈넉한 길을 걸었습니다. 직접 빛이 와 닿지 않는 숲길에서 몇 분간 쉬고 나면 등 뒤가 써늘해져 한낮의 수은주를 30도 가까이 끌어올리는 여름더위도 이제 마지막이다 싶었습니다.

     

      13시14분 첫 번째 구간의 끝 지점인 방림고개로 내려섰습니다.

    두 번째 “자루목/38교/석룡산”의 능선 삼거리에서 산허리를 에돌아 940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자 지난주에 걸었던 한북화악지맥이 능선 길을 내보여 반가웠습니다. 도마치에서 석룡산으로 오르는 길이 암릉과 풀숲 길이어서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는데도 반갑게 보이는 것은 한 주전에 밟은 지맥길이 그새 머릿속에 추억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암릉 길을 잠시 걸어 1100봉을 지나고 지맥 길에 합류한 것은 12시40분으로 봉우리삼거리 바로 아래 판초로 가린 커다란 참호가 보였습니다. 삼거리 암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석룡산에 이르는 길에도 암릉이 있었습니다. 우회하는 길이 너무 내려가는 것 같아 암릉에 바로 붙어 조심해 내려선 후 조금 더 걸어올라 해발1,427m의 석룡산에 다다랐습니다. 12시55분에 올라선 석룡산 정상은 비좁은 바위 봉인데다 시야가 꽉 막히고 왕파리들이 윙윙대 후딱 정상석만 사진 찍고 자리를 떴습니다. 지맥 길 합류 35분 만에 내려선 방림고개에서 10분가량 쉬면서 점심 식사를 끝낸 후 북봉으로 향했습니다.


      14시14분 1260봉에 올라섰습니다.

    방림고개에서 1260봉에 이르는 길은 꾸준한 오름 길로 생각만큼 길섶 풀들이 무성하지 않아 도마봉에서 도마치로 내려가는 풀숲 길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도마치봉에서 석룡산으로 오르는 길을 밝힌 대표적인 꽃이 원앙새를 빼어 닮은 진범이라면 방림고개에서 북봉에 오르는 길섶에 도열하고 있는 대표적인 꽃은 진범보다 한층 더 전투적으로 보이는 투구 꽃이었습니다. 두 꽃 모두 낮은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고귀한 꽃들이어서 꽃 색깔이나 크기는 확연하게 달랐지만 꽃모습의 청아함은 서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능선 길을 걸으며 며칠 전에 올랐던 대성산을 찾아보았습니다. 대성산에서 조망한 화악산은 그 윤곽이 분명하게 잡혔는데 어인 일인지 이번에는 대성산이 아주 희미하게 보여 혹시 제가 북한의 오성산을 잘 못 본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헬기 한 대는 충분히 내려앉을 만한 공터의 무명봉은 사방이 탁 트여 모처럼 사방을 휘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15시8분 해발1,435m(?)의 화악산 북봉을 올랐습니다.

    왼쪽 아래 삼일리로 커다란 산줄기가 뻗어나가는 공터 봉에서 지맥 길은 오른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방림고개에서 공터 봉에 이르는 길은 밋밋한 오름길이어서 투구꽃, 진범, 이질풀등의 풀꽃들이 같이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민숭민숭한 길이었을 텐데, 공터 봉에서 북봉에 오르는 길은 하나도 심심치 않았습니다. 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맺혀있는 앙증맞은 열매들을 카메라에 실어 담으면서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덕지덕지 찍어 바른 화장기 짙은 여인네들의 얼굴이 아니고 어느 여인도 색감을 흉내 낼 수 없는 오묘한 주홍색의 바로 이 열매이다 싶었습니다. 경기도 최고봉을 이렇게 좋은 날씨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조망한다 생각하자 지나온 암릉 길도 우거진 풀숲 길도 모두 화악산의 신선봉을 한눈에 바라보는 기쁨을 배가시켜주기 위해 준비해놓은 프로그램 같았습니다. 북봉 바로 아래 교통호에서 왼쪽으로 돌아 지난 8월 지난 적이 있는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신선봉 바로 아래 군부대 철조망 울타리 앞까지 올라선 다음 뒤돌아서서 몇 걸음 떨어진 북봉을 올랐습니다. 삼각점 대신 박혀있는 시멘트 봉을 확인한 후 삼거리로 되 내려가 실운현으로 내려서는 지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16시13분 안부사거리인 실운현을 지났습니다.

    북봉에서 실운현으로 내려가는 길은 지난달에 거꾸로 오른 길이어서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무리 험한 길도 한번 걸은 길이면 초행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편하게 느껴집니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 비로소 제대로 보지 못한 산식구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금강초롱이나 투구꽃보다 더 짙은 진청색으로 분장한 용담(?)이 다소곳이 인사를 건네 와 반가웠습니다. 실운현 건너편에 자리한 해발1,436m의 응봉도 그 위용이 해발1,468m의 신선봉 못지않았습니다. 실운현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가 시원하게 보였고 응봉 정수리에 자리 잡은 군사기지도 신선봉의 그것들보다 그다지 작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좀처럼 고도가 떨어지지 않다가 실운현 아래 터널을 지나는 차 소리가 들릴 즈음해서 내림 길의 경사가 급해졌습니다. 헬기장을 지난 직후 내려선 안부사거리인 실운현에서 지맥종주를 마쳤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이어간 지맥은 방림고개에서 여기 실운현까지로 3시간이 채 안 걸린 초미니 구간입니다. 애당초 지맥종주를 시작한 것도 지맥 길보다는 이 기회에 화악산의 이모저모를 살피자는데 뜻을 두었기에 이번 구간 종주를 홍적고개까지 욕심내지 않고 실운현에서 자를 수 있었습니다.


      17시48분 화악리 버스종점에서 하루 산행을 접었습니다.

    실운현 고개마루에서 왼쪽으로 꺾어 시멘트 차도로 내려섰습니다. 지난번에는 차를 타고 이 고개를 올랐지만, 차도를 따라 화악리 버스종점까지 걸어 내려가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저녁 6시에 가평 가는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을 더 기다려 막차를 타야하기에 일단은 저녁6시 버스를 탈 생각에서 속도를 냈습니다. 오가는 차들도 거의 없고 해가 서산에 걸치는 시간이어서 차도 거의 다가 응달져 걷기에 좋았습니다. 실운현 출발 25분 후에 화악터널을 지나는 공사가 덜 끝난 341번 도로를 만나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건들내를 지나  계곡과 나란히 나 있는 차도를 따라 정신없이 내달렸습니다. 계곡에서 머뭇거리는 마지막 여름에 눈길을 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 건들내 팬션과 방갈로는 벌써부터 동면에 빠져든 듯 적막감이 맴돌았습니다. 길가의 왕소나무 한 그루를 흘낏 본 후 몇 분을 더 내려가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습니다. 지맥종주시간은 2시간48분에 불과한데 지맥접근과 이탈에 무려 4시간42분이 걸려 총산행시간은 7시간 40분이나 됐습니다.


      투박한 흑갈색의 도토리나 말쑥한 주홍색의 이름 모르는 열매들 모두 산 속에 기거하는 동물들에 더할 수 없이 긴요한 월동용 먹이입니다. 나무들이 종자로 남겨놓은 열매들은 무시할 정도로 작은 양일뿐, 이들이 결실한 과실들은 거의 다가 더불어 사는 산식구들에 먹이 감으로 제공됩니다. 깊은 산속에서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알고 보면 나무들의 이타주의가 맺은 결실덕분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요절시인 조이스 킬머는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 뿐”이라고 나무를 극찬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나무들도 열매를 떨구고 잎이 떨어져나가면 나목(裸木)으로 겨울을 맞게 됩니다. 천수를 다하신 우리나라 시인 김춘수님은 나목과 시와의 관계를 이렇게 읊었습니다.


                     나목(裸木)과 시(詩)  


         겨울하늘은 어떤 불가사의(不可思議)의 깊이에로 사라져 가고,

         있는 듯 없는 듯 무한(無限)은

         무성(茂盛)하던 잎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무화과(無花果)나무를 나체(裸體)로 서게 하였는데,

         그 예민(銳敏)한 가지 끝에

         닿을 듯 닿을 듯 하는 것이

         시(詩)일까

         언어(言語)는 말을 잃고

         잠자는 순간(瞬間)

         무한(無限)은 미소(微笑)하며 오는데

         무성(茂盛)하던 잎과 열매는 역사(歷史)의 사건(事件)으로 떨어져 가고,

         그 예민(銳敏)한 가지 끝에

         명멸(明滅)하는 그것이

         시(詩)일까  


      어떤 분은 이 시를 보고 시인의 언어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과 불투명한 세계를 언어로 포착하려고 하는 예민한 감각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는 작품이라 평했습니다. 과연 그러한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목과 시와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은 아마도 이 시를 지은 시인이 아니고 나무를 만드신 하느님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산행후기>

     

     

     

     

     

     

     

     

     

     

     

     

     

     

     

     

     

     

     

     

     

     

     

     

     

     

     

     

     

     

     

     

     

     

     

     

     

     

     

     

     

     

     

     

     

     

     

     

     

     

     

     

     

     

     

     

     

     

     

     

     

     

     

     

     

     

     

     

     

     

     

     

                                                     한북화악지맥 종주기1


                                      *지맥구간:도마봉-석룡산-방림고개

                                      *산행일자:2008. 9. 3일(수)

                                      *소재지  :경기가평 및 포천/강원화천

                                      *산높이  :석룡산1,147m

                                      *산행코스:광덕고개-백운산-도마봉-도마치-989봉-석룡산

                                                     -방림고개-조무락골-38교-용수목버스정류장

                                      *산행시간:8시32분-17시36분(9시간4분)

                                      *동행    :나홀로

     


      화악산은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고산으로 해발고도가 1,468m에 달합니다.

    그동안 이 산을 홀대해온 미안함을 씻어보고자 어제 처음 한북화악지맥의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한북정맥의 도마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가평읍내 보납산에 이르는 전장 45Km의 긴 산줄기인 한북화악지맥은 38Km를 달려 북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가평천의 동쪽 울타리 산줄기로 서쪽 울타리인 한북정맥과 함께 이 하천에 물을 대주고 있습니다. 도마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나가며 석룡산, 화악산, 응봉, 촉대봉, 몽덕산,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 물안산과 보납산을 차례로 일군 후 북한강으로 침잠하는 한북화악지맥이 자신 있게 내놓는 산이 바로 화악산입니다. 맨 꼭대기에 군부대가 주둔해 정상에의 산 오름이 막혀 있고 산 높이에 상응하는 유명 사찰이나 유적지는 물론 이렇다 할 전설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 화악산의 명성은 몇 십 미터 높이가 낮은 소백산이나 가야산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그 덕분에 오늘까지 자연 그대로 온존할 수 있었기에 최근 들어 때 묻지 않은 청정한 산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이번 종주산행에서는 이제껏 소홀했던 화악산에 대한 예우를 다 해보자는 뜻에서 이 산을 후딱 지나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랜 시간 머물러 볼 생각입니다. 제 주력이 단 두 번으로 이 산줄기를 종주한 분들보다 한참 딸리는 데다 화악산의 이모저모를 제대로 살펴보자면 산행구간을 좀 더 세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출발점인 도마봉에서 화악산이 끝나는 홍적고개까지 3구간으로 나누고, 나머지 2구간을 더해 총 5구간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어제 하루 첫 구간 산행으로 호남정맥의 능선 길보다 풀숲을 뚫고 나가기가 더욱 힘들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구간을 짧게 자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아침8시32분 광덕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사창에서 택사타고 도마치로 가서 도마봉을 오를까 하다가 구간을 세분하며 최대한 느긋하게 종주하기로 한 산행이어서 그리 급할 것도 없다 싶고, 이참에 한북정맥 능선 길도 다시 걷고 싶어 광덕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가파른 철 계단을 올라 산길로 들어선지 몇 분 안 되어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한 분이 뒤에서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한북정맥을 혼자서 종주하는 분으로 이번 두 번째 구간은 도성고개에서 끝낸다고 해 안산하라는 인사말을 전한 후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왼쪽 사창리 쪽으로 새 하얀 운무가 주위 산골짜기를 가득 메워 운해를 이루고 있는 정경이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늘 길은 지열이 없어 선선했지만 하늘이 열린 곳을 지날 때는 여전히 뜨거웠습니다. 제 세상 만났다고 한껏 목청을 높였던 매미들의 목소리가 잦아져 새소리에 묻히는 것이 느껴지자,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이 더위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남국의 포도 알이 알알이 익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구한 마지막 이틀의 여름태양과 함께 조만간 스러질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10시 조금 못되어 해발 903m의 백운산에 오르기까지 둥근이질풀 등 앙증맞은 풀꽃들에 이른 봄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곤 했던 얼레지 꽃의 안부를 물었지만, 4-5개월 전에 무대에서 물러난 얼레지 꽃의 근황을 가을맞이에 바쁜 이 꽃들이 알 리가 없었습니다. 백운봉에서 50분을 더 걸어 해발937m의 도마치봉에 이르자 가리산의 암벽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11시10분 해발870m의 도마봉에서 한북화악지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도마치봉에서 샘터로 내려가는 중 앞서 간 한 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길이 아닌 것 같아 도마치봉에 다시 올라 위치를 확인할 뜻이었는데 중간에 저를 만나 도마봉까지 같이 산행했습니다. 한 겨울에 눈길을 밟으며 이 길을 지났으면서도 그 때 길섶의 샘터를 보지 못했기에 조금 더 내려가 샘터를 확인해볼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서 지나온 백운산과 도마치봉에서 보지 못한  표지석을 여기 도마봉에 세운 것은 한북화악지맥이 갈리는 분기점이기 때문이겠지만, 산림청에서 명산 100산의 한 산으로 선정한 백운산에 표지석을 세우지 않은 것은 명산에 대한 예우가 아닐 것입니다. 잠시 동행한 한분은 똑바로 진행해 한북정맥 길을 이어갔고 저는 왼쪽으로 꺾어 한북화악지맥에 첫 발을 들였습니다. 도마봉에서 도마치까지 이어지는 지맥 길에도 한북정맥과 마찬가지로 길 섶 나무들을 베어내고 방화선을 만들어 놓아 여름 내내 한껏 자란 풀들이 우거져 지맥 길이 완전히 덮였습니다. 키를 넘는 풀숲 길을 헤쳐 나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밤새 내린 이슬로 바짓가랑이가 거의 다 젖었을 뿐만 아니라 뒷덜미를 내리쬐는 햇살도 생각보다 따가워 반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도마치로 내려가는 길이 무려 50분이나 소요됐습니다. 도마봉 출발해 헬기장을 지난 후 얼마 안 되어 “도마치0.7Km/도마치0.8Km"의 능선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도마치0.8Km“라고 적힌 쪽이 능선 길이고 ”도마치0.7Km“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어서 주저 않고 "도마치0.8Km" 길을 택해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12시 정각 해발690m의 도마치로 내려섰습니다.

    도마치고개의 깎아지른 절개면 꼭지점까지 가서 오른 쪽 가평방향으로 내려갔습니다. 흐릿한 표지기가 가리키는 대로 가파른 풀밭 길을 내려갔다 절개면 가운데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차도로 내려서  시멘트 길의 “도마치0.7km" 길과 만났습니다. 지맥 종주가 아니라면 굳이 ”도마치0.8Km"길을 고집할 일이 아닌 것은 절개면 꼭지점으로 마루금을 이어가 어렵게 절개면을 내려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개 마루를 넘어 휴게소에서 맥주를 사들며 산행시작 3시간 반 만에 처음으로 10분여 편히 쉬었습니다. 산골짜기를 뒤덮은 운해가 장관이었다면 하늘을 수놓은 구름들의 모습도 제법 다양했습니다. 화악산정상부근에 발달한 구름은 언제라도 소나기를 몰고 올 듯 이내 적란운으로 발달할 것 같았지만 도마치 고개 바로 위 하늘에는 깃털보다 훨씬 더 정교해 보이는 새털구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3시12분 989봉을 넘었습니다.

    도마치 고개에서 남쪽 위 석룡산 방향으로 난 시멘트 길은 곧바로 비포장 흙길로 바뀌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넓은 군사도로가 끝나고 다시 풀숲 길을 만나기까지 약 50분 동안 내리쬐는 태양을 피할 수 없었지만, 한북정맥 길에서 만난 운모가 군사도로의 흙 속에서 반짝이고 있어 반갑고 또 반가웠습니다. 군사도로가 끝나고 가파른 산길이 시작됐습니다. 도로에서 14분을 걸어 올라선 989.0봉에 응당 박혀있으리라 기대한 삼각점은 보이지 않았지만 표지기가 몇 개 걸려 있었습니다. 비좁은 989.0봉에서 조금 내려가 커다란 참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풀 길 한가운데 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14시10분 해발1,130m의 수덕바위봉(?)을 지났습니다.

    점심을 다 들고 산행을 재개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길바닥에 웅크리고 머리를 박고 있는 고슴도치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어른들이 잡아온 고슴도치를 본 적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가까이 들여다본즉 이 녀석은 벌써 죽어 있어 제가 넘어가는 데도 꿈쩍을 안 한 것입니다. 도마치 휴게소의 아주머니께서 제게 가다가 위험한 곳을 몇 군데 만날 테니 조심하라고 일러준 바위 길을 만났습니다. 로프가 걸려있지 않은 바위 길을 지나기에 신경이 조금 쓰이기는 했지만 우거질 대로 우거진 풀숲 길을 지나는 것보다 덜 짜증스러웠고 짜릿하기도 했습니다. 두 곳의 거암을 오른 쪽으로 에돈 후 또 다른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올라선 봉우리에서 왼쪽 아래로 희미하게 길이 나있는 것으로 보아 수덕바위봉이 멀지 않구나 했습니다. 15분을 더 걸어 올라선 봉우리가 수덕바위봉으로 여겨졌으나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산 속에서 살고 있는 웬만한 동물들은 사람들처럼 누가 매장을 해주지 않아도 그 주검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다른 동물들이 청소를 해주어서인데 어찌하여 방금 전에 만난 고슴도치는 죽어서도 살아있는 모습이 원형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그 이유가 자못 궁금했습니다.  한 가지 이유로 추론해본 것은 바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가시 털이었습니다. 살아서 자기 몸을 지킨 가시가 죽어서도 다른 동물의 목구멍을 찔러 접근을 막는데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죽어서도 영영 저렇게 웅크리고 앉아있어야 한다 생각하니 이를 지켜보는 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모든 동물들에 공통된 이치일 것인데 그 이치에 순응하지 못하고 내팽겨 쳐진 것이 참 안됐다 싶었다가 우리네 사람들도 이 고슴도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고슴도치의 가시 털은 언제고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사람들의 시체를 에워싼 호화석곽 묘지는 먼 훗날 고슴도치사체들 보다 더 흉물스럽게 이 산속에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해서였습니다. 호화묘지를 지날 때마다 훨훨 하늘을 날지 못하고 영원히 석곽 속에 갇혀 있는 죽은 자의 영혼이 이것은 자연의 순리가 아님을 자기 후손들에 전해달라는 간절한 간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15시30분 해발1,147m의 석룡산을 올랐습니다.

    수덕바위 봉을 지나서 한 20분간은 평탄한 능선 길이 계속 이어졌고 온갖 여름 꽃들이 만개해 천상의 화원을 방불했습니다. 깊숙한 안부로 내려서자 오른 쪽 옆으로 길이 나있는데 하산 길인지 우회길인지 가름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직진해 헬기장을 지나서 다시 안부로 내려갔어도 이정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부에서 똑 바로 오르다가 아무래도 석룡산까지 쉬지 않고 강행하는 것이 무리일 듯싶어 산 중턱에서 짐을 내려놓고 편하게 쉬었습니다. 3-4분을 더 걸어올라 “38교 4.3Km/석룡사산”의 이정표를 만났고 바로 위 봉우리에는 표지석을 빼낸 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9년 전 고교동창인 하이맛 친구와 이 산을 처음 올랐을 때는 이 봉우리에서 정상석을 본 것 같았습니다. 깊지 않은 안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다다른 석룡산에는 높이가 서로 다르게 표기된 정상석이 2개나 세워져 있었었습니다. 1,150m로 표기된 가느다란 표지석을 방금 지나온 봉우리에서 옮겨놓았다고 생각한 것은 제가 가지고 간 옛날 개념도에는 지나온 봉우리에 석룡산1,150으로 표시되어 있어서였습니다. 


      이제껏 지나온 길가에 드문드문 피어 있는 앙증맞은 둥근이질풀도 떼를 지어 꽃을 피우자 온 주변이 화사했습니다. 원앙새보다 더 바짝 붙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진교, 5년 전 백두산의 서파능선에서 만나보았던 투구꽃, 자주색 꽃이 크지 않으면서도 조금도 세련되게 보이지 않는 산골무꽃, 저 아래 남쪽 산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금강초롱꽃과 모시대, 가을의 전령 쑥부쟁이, 드물게 보이는 노랑꽃의 동자꽃, 멀쑥하게 키만 커버린 듯한 노랑꽃의 마타리, 딱 한곳에서 만나 본 연분홍색의 물봉선 외에도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풀꽃들이 모여든 화원 길은 평탄한 길이 끝나고도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아마도 이 꽃들이 가을까지 이산으로 벌 나비들을 계속해 불러 모을 것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중에도 커다란 벌 한 마리는 윙윙거리며 이 꽃 저 꽃들을 옮겨 다니느라 분주했습니다.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면 그 꽃은 집 꽃이지 야생화는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에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는 꽃은 집에서 기르는 꽃들이지 산에서 피어나는 야생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 야생화가 잘 보이려고 치장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벌과 나비들을 위한 것이기에 이들만이 진정 사람과 야생화중 누가 더 아름다운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야 빤하겠지만 말입니다.


      15시49분 방림고개에서 지맥종주를 마치고 38교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석룡산 정상에서 16분을 내려가 만난 방림고개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조무락골로 향했습니다. 저 아래 용수리 정류장에서 저녁5시50분에 가평으로 나가는 막차가 있어 이 버스에 오르고자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묘지를 지나자 물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고 방림고개에서 20분을 채 못내려와 조무락골에 들어섰습니다. 새들도 춤춘다는 비경의 조무락(鳥舞洛)골은 지난 달 화악산을 올랐다가 내려간 계곡이어서 눈에 많이 익었습니다. 지난번에 사진을 남긴 쌍룡폭포와 그 아래 복호등폭포를 그냥 지나가 벌은 시간은 계곡에서 땀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는데 충당했습니다. 삼팔교 위 계곡을 가득 메운 물놀이객들은 여름보다 먼저 이 계곡을 빠져나가 비로소 새들이 춤을 추고자 조무락골에 모여 든 듯 했습니다. 북위38도의 삼팔교를 지나는 38선과 동경127도 30분을 지나는 국토자오선이 만나는 곳이 바로 화악산이기에 여기 조무락골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새들이야 말로 한반도 중원에서 놀고 있는 행운의 새들이기도 합니다.


      17시36분 용수목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첫 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방림고개에서 화악산북봉을 지나 실운현까지 가는데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한데도 다음 구간으로 미뤄놓고 38교로 내려간 것은 화악산을 바로 올라 지나쳐버리기가 내키지 않아서였습니다. 종주산행으로는 곰 같은 짓이지만 화악산 탐방 길로는 조무락골이 더 나을 것 같아 38교로 하산했습니다. 덕분에 버스 안에서 한북화악지맥이 물을 대는 가평천을 찬찬히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달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 종주산행을 마무리 지었기에 섬진강 동쪽 울타리 산줄기 환주는 한 번 출산하면 2-3일을 연속 산행하는 원거리 산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달에 1-2번 정도는 섬진강 울타리를 환주하고 나머지 두 서너 번은 한북정맥의 지맥들을 오를 생각입니다. 화악지맥을 마친다 해도 명성지맥, 연인지맥과 수락지맥이 남아 아직 연이어 오를 산줄기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도 저는 더욱 더 이 산하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