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지맥·분맥·단맥/한북정맥 분기지맥

한북연인지맥 종주기

시인마뇽 2012. 1. 16. 10:25

                                            한북연인지맥 종주기5(최종회)

 

 

                      *지맥구간:빛고개-호명산-조종천

                      *산행일자:2010. 9. 19일(일)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호명산632m, 주발봉489m

                      *산행코스:상색버스정류장-빛고개-주발봉-큰고개-호명호-기차바위-호명산-조종천

                      *산행시간:10시13분-18시18분(8시간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16명

                      (24회이규성, 이기후, 서중원, 김주홍, 우명길, 26회임종륜, 27회송기훈, 29회 유한준,

                       정병기/김의정, 김정호, 최우승, 오창환, 31회임윤호, 43회김동희, 초대 박현출님)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라는 것이 참으로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이번 산행에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고교동문 이규성교수와 호명산을 함께 오른 것이 2002년 2월이고 그 때 산행코스가 이번에 오르는 빛고개-주발봉-호명호수-호명산-청평시내와 같은 코스라고 철떡 같이 믿은 제게 이 교수는 빛고개가 아니고 큰골고개에서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청평에서 구도로 상의 빛고개까지 버스로 왔다는 제 얘기를 듣고 이쪽 지리를 잘 아는 한 친구는 이고개로 버스가 다니지 않은 것은 10년이 훨씬 넘는다고 했습니다. 빛고개에서 산길로 들어서서 한 시간 이상 걸었는데도 기억나는 데가 한 곳도 없어 제 기억이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이교수가 얘기하는 대로 빛고개를 큰골고개로 수정했습니다. 큰골고개에서 시작했다면 왼쪽 아래로 묘지들이 보여야하는데 그렇지 못해 산행을 마치고도 내내 찜찜했지만 저보다 공부도 잘 했고 아직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교수가 당연 정확하게 알 것으로 믿고 그때 산행기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이 종주기를 쓰면서 산행시간을 비교해보고자 그 때 산행기를 찾아 읽고 놀란 것은 저도 이교수도 모두 잘 못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004년2월 호명산을 처음 오를 때 출발한 곳은 빛고개가 아니고 북한강변을 따라가는 75번 도로상의 갈치고개였습니다. 갈치고개를 출발해 처음 오른 봉우리가 주발봉으로 나머지 코스는 이번과 동일했습니다. 큰골고개에서 4시간15분간 걸어 올라선 호명산을 이번에는 3시간6분만에 다다랐습니다. 그간 나이테는 여섯 줄이 더 늘었는데 산행시간이 25%가량 줄어든 것은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며 체력을 단련시킨 결과여서 기뻐할 일이 분명합니다.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육체에서 비롯되듯이 기억력도 따라서 그만큼 좋아진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이번에 보니 오히려 더 떨어졌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교수도 그러했습니다. 저희가 그렇다면 제 또래의 다른 친구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기억력 감퇴는 판단력 저하를 불러올 것이기에 혼자서 옳다고 박박 우겨서는 백전백패할 것이 분명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을 많이 하고 많아진 경험이 올바른 판단을 이끈다고 굳게 믿어 항상 옳다고 고집부리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싶어 겁이 납니다.

 

 

 

  오전10시35분 빛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청량리 현대코아 앞에서 가평 행 좌석버스에 올랐습니다. 하늘이 잔뜩 찌푸려 언제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궂은 날씨에 나선 산행이어서 비 채비를 단단히 해왔습니다. 기왕 내릴 비라면 아예 초반부터 펑펑 퍼부어 모처럼 우중산행 한 번 제대로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했는데 그간 가을비가 너무 많이 내려 24개의 수문 중 5개를 열어놓고 물을 방류하는 청평댐을 보고 더 이상 비가 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덴스포츠타운을 지나 고개 너머 상색리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 시각은 청량리 출발 후 1시간 40분가량 지난 10시12분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방금 넘어온 고개 마루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제3야수단상색운전교장입구에서 왼쪽 구도로를 따라 올라가 사이클테마공원이 들어선 빛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전 대원이 한 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은 후 나무 계단 길로 올라가 빛고개-큰고개-호명산 구간에 첫 발을 들였습니다. 남동쪽으로 몇 분 오르다 태풍 곤파스에 뿌리가 뽑힌 잣나무가 길을 가로 막고 있는 능선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했습니다. 이번 산행을 마치기까지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아 피해서 간 곳이 몇 번 더 있었지만 이틀 전에 오르내린 인근 청우산보다는 그 정도가 훨씬 덜해 산행에 크게 방해되지는 않았습니다.

 

 

 

  11시24분 에덴성전(?) 인근의 쉼터에 다다랐습니다. 쓰러진 잣나무를 에돌아 오른 쪽에 철조망을 쳐놓은 능선을 따라 얼마간 동쪽으로 진행하자 아직 전선을 잇지 않은 송전탑이 보였습니다. 첫 번째 송전탑에서 새로 난 도로를 따라 두 번 째 송전탑 봉우리로 이동했습니다. 산허리를 잘라내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넓은 길은 송전탑공사를 위해 새로 낸 길로 공사가 끝나면 지금보다 몇 배를 승압해 송전하게 되고 그리되면 전기 손실이 훨씬 줄어든다고 합니다. 극성스런 환경단체들도 일부 훼손된 산림은 나중에 복원하는 조건으로 승압공사는 계속 진행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공사반대 플라카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번 째 송전탑 봉우리에 오르자 오른쪽으로 에덴스포츠공원의 건물들을 빼닮은 대형 건물들이 보였는데 일행 한 명이 에덴성전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아스팔트포장도로로 내려가 벤치가 몇 개 들어선 쉼터에 다다라 십 수분 간 휴식을 취했습니다. 가지고 간 오가피주를 한 후배의 고급맥주와 바꿔 마시는 동안 하늘은 그동안 준비해온 비를 조금씩 뿌리면서 산자락을 안개로 감쌌습니다.

 

 

 

  12시11분 해발489m의 주발봉을 올랐습니다. 안개 속을 걸어 “주발봉0.95km/빛고개굴1.8Km/하 산2.0Km"의 이정표가 세워진 350m봉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고른 후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주발봉으로 향했습니다. 주발봉에 이르기 전에 능선에서 왼쪽 아래로 북한강이 보인다는데 이번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TV안테나와 안내판이 서 있는 주발봉에 올랐어도 북한강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발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6년 전 호명산을 오를 때 출발지였던 갈치고개에 닿게 되고 지맥길은 오른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상에서 큰골고개를 향해 300-400m 가량 진행하다 넓게 자리 잡은 능선에서 일행들과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13시35분 큰골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점심식사 내내 내린 비가 그치지 않아 우의를 꺼내 입고 빗길을 걸었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가을비가 눈치 없이 퍼붓는 바람에 여름에도 하지 못한 우중산행을 이번에 제대로 한 번 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고 편안한 능선 길을 따라 내려가 이정표에 발전소고개로 표시된 큰골고개에 다다른 것은 빛고개 출발 3시간이 지난 후이고 그간  약4.5Km를 걸었습니다. . 이 속도라면 큰골고개에서 6.6Km 떨어진 호명산정상까지 3시간이 넘어 걸릴 것이고 조종천까지는 5시간 가까이 걸릴 것이기에 예정했던 6시간 안에 종주산행을 마치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큰골고개에서 6번 도로를 건너 싸이클 기념비 뒤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몇 분 안 걸어 다다른 410봉에서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올라 "호명호수1.2Km/발전소고개0.6Km"이정표를 지난 지 얼마 안 걸어 왼쪽으로 발전소사택창고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14시34분 팔각정에 올라 안개 속의 호명호수를 조망했습니다. 앞서간 일행들을 만나 잠시 멈춰 쉰 호명호수 전방 600m 지점 능선삼거리에서 조금 더 올라 작은 바위 몇 개가 박혀 있는 589m봉에 이르렀고, 이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몇 분을 더 가자 헬기장이 넓게 들어선 598.4m봉이 나타났습니다. 점심 식사 때부터 굵어진 빗줄기가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아 상하의 모두 비옷을 껴입었더니 처음 얼마간은 사타구니가 훗훗했습니다. 비가 계속 내리자 바깥 냉기가 안으로 전해져 걸을 만 했습니다. 기왕 올 바에는 확실하게 퍼부어야 비옷을 입은 것이 효과가 나는 데 이번 산행이 그러해서 모처럼 우중산행을 제대로  했습니다. 598.4m봉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려가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발전소 건립을 기념해 고 최규하대통령이 휘호를 쓴 건립 기념탑을 둘러 본 후 팔각정자 호명정의 2층전망대로 올라가 발전을 하느라 반으로 물이 줄어든 호명호수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5시32분 550m봉을 지났습니다. 가파른 시멘트계단을 한참 내려가 만난 호명호수의 동쪽 변 도로를 따라 돌아 다시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가파르게 몇 분을 내려가 만난 철제문이 자리한 곳이 왼쪽 아래로 대성사 길이 갈리고 오른쪽으로 호명교회 길이 분기되는 십자안부로 호명산으로 가는 길은 남서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십자안부에서 기차봉으로 불리는 618m봉에 이르는 능선 길은 밧줄을 잡고 오르는 등 미끄러운 암릉 길이 여러 곳 있어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15시32분에 올라 선 550m봉을 조금 못 미쳐 일행 한 명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거꾸로 넘어져 걱정을 했는데 다친 데가 없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550m봉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기차봉까지는 고도차가 별로 안나 산 오름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호명산1.6Km/호명호수2.0Km"의 이정표가 세워진 해발618m의 기차봉에서 쵸코렛을 들면서 십 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16시41분 해발632m의 호명산을 올랐습니다. 기차봉 암봉을 에도는 길은 왼쪽 아래로 이어졌는데 경사가 매우 급해 밧줄을 잡고 내려갔습니다. 암봉을 완전히 에돈 후부터는 한동안 경사가 완만해 모처럼 속도를 냈습니다. 기차봉 출발 40분가량 지나 올라선 호명산은 헬기장이 들어섰을 정도로 정상이 넓었습니다. 때맞춰 비가 멈춰 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보인 건너편 뾰루봉을 사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자 건너편 산자락을 감쌌던 구름들이 안개를 피어 올리며 움직이는 몸놀림이 엄청 빨랐습니다. 호명산을 오른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6년 전 첫 오름은 고교동기 이규성교수와 겨울에 같이 했고 그 다음 해 패션업계 사장 몇 분들과 함께 올랐을 때도 역시 겨울이어서 이번처럼 구름들이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는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중산행의 보너스가 바로 이런 것이다 싶어 부지런히 사진 찍었지만 솜씨가 서툴러 신통한 사진은 한 장도 못 건졌습니다. 지맥 길이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청평공고 길로 이어져 하산 길은 생각보다 편했습니다.

 

 

 

  18시18분 조종천을 건너 빛고개-호명호수-호명산구간의 지맥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호명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 가 오른쪽으로 대성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잠시 경사가 급하다 했는데 이내 길이 완만하게 이어져 하산 길이 대체로 편했습니다. 길이 너무 좋아 그대로 직진하다가 사람 다닌 흔적이 분명하지 않아 다시 올라가 북쪽으로 내려가 얼마 후 전망데크에 이르렀는데 청평댐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와 오는 11월 경춘선이 개통되면 이 전망대를 찾아 오를 산객들이 많이 늘 것 같았습니다. 전망대에서 조금 내려가 청평공고 길 대신 청평역 길로 코스를 바꿔 하산했습니다. 나무계단 길로 내려가 산을 완전히 빠져 나온 뒤 수로에서 몸을 씻느라 15분여 늦어졌습니다. 비는 멈췄지만 하늘의 먹구름은 그대로여서 맑은 날보다 어둠이 빨리 시작됐습니다. 조종천을 건너는 징검다리는 시멘트 뭉치를 갖다가 일정 간격으로 놓은 것으로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물이 넘쳐 건널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조종천을 건너 다 왔다 싶은 청평버스정류장이 한참 멀게 느껴진 것은 또다시 후룩후룩 비가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번 산행으로 연인지맥 종주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절고개-불기봉-빛고개 구간을 다음으로 미뤄놓아 지맥이 끝나는 조종천을 건넜으면서도 지맥종주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백두대간과 7정맥, 그리고 여러 지맥들을 종주하면서 지맥의 끝 구간을 마지막코스로 밟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어떻게 산행기를 맺어야 할지 당혹스럽습니다. 미뤄놓은 구간을 마저 종주해야 뒤가 깔끔할 것 같아 웬만하면 이달내로 마칠 생각입니다.

 

 

 

  기억력 감퇴가 불러올 걱정스러운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한 번 오른 산을 다시 오를 때 기억만을 믿고 산행하다가 엉뚱한 길로 들어설까 걱정됩니다. 아는 산을 오를 때도 지도와 나침반 및 선답자의 산행기를 반드시 지참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입학한 방송대의 공부도 문제입니다. 지난 학기 시험 준비를 하면서 방송을 통해 배운 것이 이해는 잘 되는 데 기억이 잘 안되어 애를 먹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애써 암기한 내용이 시험 장소에서 틀리게 기억난다면 이 또한 큰일입니다. 반복학습을 통해 기억을 확실히 하는 방법 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생각 안 납니다. 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것이 이래서 어려운 가 봅니다. 그래도 기왕 시작한 일이니 죽어라고 공부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아 그리 해볼 생각입니다.

 

*덧 붙이는 글

  닷새 후 건너 뛴 절고개-불기산-빛고개 구간을 종주해 한북연인지맥 종주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앞의  구간을 그대로 놔두기가  찜찜한데다 한달 후 동문산악회에서 다시 오를 때는 방송대 중간시험을 코 앞에둔 시기여서  한달을 가다려 동문들과 같이 하지 못하고 저 혼자 마쳤습니다. 한북정맥과 화악지맥에 이어 연인지맥을 모두 마치고 나자 가평의 산줄기가 눈에 잡히는 듯합니다.  산줄기뿐만 아니라 가평천과 조종천 등 북한강 제1지류들인 하천들도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산줄기 종주를 거듭할 수록 우리의 산하가 살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산행사진>

 

 

 

 

 

 

 

 

 

 

 

 

 

 

 

 

 

 

 

 

 

 

 

 

 

 

 

 

 

 

 

 

 

 

 

 

 

 

 

 

 

 

 

 

 

 

 

 

 

 

                                               한북연인지맥 종주기4

 

 

                             *지맥구간:절고개-불기산-빛고개

                             *산행일자:2010. 9. 23일(목)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불기산601m

                             *산행코스:두밀리버스종점-절고개-529.7m봉-수리재-불기산-빛고개

                             *산행시간:11시7분-17시31분(6시간24분)

                             *동행 :나홀로

 

 

  텔레비전에서 추석 명절에 수해를 입어 망연자실해 하는 수재민들을  보고 나자 배낭을 걸쳐매고 산나들이를 나서기가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102년만의 집중호우로 발생한 자연재해라지만 달리 피하거나 그 피해를 줄일 길은 과연 없었는지 치산치수를 책임진 역대 통치자들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향의 형님은 벼들이 쓰러지지 않아 다행이지만 배추농사를 망쳐 걱정이라 했습니다. 북한강의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여전히 탁해 요 며칠 하늘이 쏟아낸 장대비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됐습니다. 사람들만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자란 잣나무들도 뿌리를 뽑혔거나 허리를 꺾여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땅위를 기는 잡풀들은 말짱했지만 잘 자란 억새들은 모두 쓰러져 억새밭 방화로가 폐허 같았습니다.

 

 

  닷새 전 한북연인지맥의 마지막 구간인 빛고개-호명산-조종천을 잇는 산줄기를 종주했으면서도 내심 찜찜했던 것은 제가 몸담고 있는 경동동문산악회에서 바로 앞의 절고개-불기산-빛고개 구간을 다음 달로 미뤄놓아 끝 지점인 조종천에서 연인지맥 종주를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때 마침 추석연휴기간이어서 10월 달까지 기다릴 것 없이 하루 날 잡아 건너 뛴 구간을 마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터에 어제  며칠 장대비를 쏟아낸 하늘이 모처럼 활짝 개고 날씨도 선선해 이 때다 싶어 못 다한 구간을 마저 뛰었습니다. 중간의 구간을 미루어 두었다가 종주한다 해서 본질이 달라질 바도 아닌데 찜찜한 마음을 하루 빨리 털어버리고 싶어 어제 서둘러 마쳤습니다.

 

 

  오전11시7분 두밀리 버스종점을 출발했습니다. 가평에서 10시30분에 출발하는 군내버스가 참으로 오지다 싶은 삼일리를 들어갔다 나오느라 11시가 다되어 종점인 윗두밀에 도착했습니다. 종점삼거리에서 등산안내판이 세워진 오른 쪽의 시멘트 길을 따라 직진하다 자그마한 “대금산정상2.3Km"안내판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올라갔습니다. 이 마을 식수통인 커다란 물탱크를 지나 산허리를 잘라 낸 임도를 따라 절고개로 향했습니다. 절고개에서 이 길로 내려가 두밀리에서 택시를 탄 것이 불과 두 달 전인데 동네 안에서 길을 잘 못 들어 몇 분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오른 쪽 위로 대금산 정상 길이 갈리는 임도를 따라 걸어 고도를 330m 가량 높이자 지난 7월 종주산행을 끝낸 절고개가 나타났습니다.

 

 

 

  12시11분 해발고도가 500m가량 되는 절고개에서 연인지맥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어제가 추분인데도 쾌청한 하늘에서 내리쬐는 한낮의 가을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습니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임도길이  편해 끝까지 이 길을 따라 걸어 지난 주 금요일에 올랐던 청우산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절고개에서 10분을 걸어 왼쪽 위로 4.4 Km 떨어진 불기산 길이 갈리는 임도삼거리에 도착해 그늘에서 점심을 들며 가을의 넉넉함을 완상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솜털구름은 여름의 먹구름처럼 요동치지 않아 한껏 여유로워보였습니다. 혼자서 식사하는 제가 안 되어 보였는지 잠자리와 나비들이 곁이라도 같이 할 양 가깝게 날아들었습니다. 바람소리도 들리는 듯 마는 듯 조용했지만 여름의 폭풍보다 훨씬 선선했습니다.

 

 

 

  13시3분 592.7m봉에 올랐습니다. 모처럼 맞은 가을의 넉넉함은 임도에서 왼쪽 방화로로 올라서자마자 끝났습니다. 임도보다  70-80m 높은 592.7m봉을 다른 때라면 십 수분이면 족히 오를 터인데 이번에는 그 배가 넘는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작년 여름 키를 넘는 억새들이 방화로를 가득 덮은 화악지맥의 몽가북계 능선 길을 종주한 바 있어 임도에서 이 봉우리 너머 안부까지 이어지는 방화로를 지나기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는 어려움이 그 때보다 몇 배 더해 엄청 힘들었습니다. 태풍과 폭우로 억새들이 거의 다 쓰러져 길 찾기가 어려웠고 쓰러진 억새를 넘어 몇 분 나아가자 금세 힘이 빠져 이 또한 계속 할 수 없었습니다. 억새밭을 헤집고 걷느라 제가 낸 소리에 놀란 시꺼먼 멧돼지가 억새밭 속에서 산속으로 신속히 이동하는 것을 보고  놀이터가 산 속인 그녀석이 부러웠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전하다가 억새밭에서 왼쪽 가로 이동해 길도 없는 산 속 풀숲 길을 걸어 오르며 혹시라도 지맥에서 벗어날까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교통로를 건너고 억새밭을 들락날락하면서 간신히 올라선 592.7m봉에 다소곳이 서 있는 삼각점이 반가웠습니다. 억새밭 방화로는 이 봉우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쪽 깊숙한 안부까지 이어진 방화로의 억새들도 쓰러지기는 마찬가지여서 오른 쪽 끝 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올해 74세가 되셨다는 할아버지 한분은 오른 쪽 아래 수리재마을에 사신다는 데 젊어서부터 이 근처 산을  다니셨다 합니다. 592.7m봉에서 안부로 내려가는 길이 이봉우리를 오를 때보다 훨씬 편했던 것은 이 할아버지를 따라 안부로 내려선 덕분입니다.

 

 

 

  14시32분 수리재를 지났습니다. 산삼과 버섯을 캐시는 이 노인은 안부를 조금 지나 다른 산으로 옮기셨고 저 혼자 앞 봉우리를 올랐습니다. 앞서 뵌 할아버지께서 수리봉이라 말씀하신 가파른 암봉을 지나 만난 또 다른 작은 암봉에서 이제는 힘든 길은 끝났다 싶어 가져간 맥주 한 캔을 까 들면서 10분 간 편히 쉬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10분 남짓 가파른 길을 내려가 100m가량 고도를 낮추었다 다시 조금 오른 후 고도를 50m가량 더  낮추어 오른쪽 아래로 상천3리수리재 가는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로 내려섰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2-3분 걸어내려가 다다른 수리재에 커다란 고목에 오색 천을 걸어놓은 것으로 보아 이 고개가 상천리와 두밀리를 이어주는 고개 마루가 분명한데 이제는 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이 없어 두 마을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리재에서 90m가량 고도를 높여야 이를 수 있는 헬기장까지 오르는 길도 가팔랐습니다. 헬기장에 오르자 북쪽 멀리로 화악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15시48분 해발601m의 불기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헬기장을 조금 지나 그늘에서 잠시 쉰 후 비알 길을 올라 고도가 500m넘는 봉우리 몇 개를 넘었습니다. 고도계를 보고 이제 다 올라왔다 싶은 봉우리에 “빛고개1.7Km/정상300m/두밀리2.4Km"의 이정표가 서 있어 오름 길에 두 번째로 만난 심마니(?) 한분의 일러준대로 정상이 마냥 멀게 느껴졌습니다. 정상까지 300m의 능선 길은 고도차가 거의 나지 않아 길이 편안했습니다. 정상에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는 동안 두 젊은이들이 올라와 빛고개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앞서 지나온 “빛고개1.7Km” 봉우리로 되돌아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자세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지도를 꺼내 확인해본 즉 이 젊은이들 이야기가 맞았습니다. 그러면 앞서 지난 봉우리에 세워진 “빛고개1.7Km"의 이정표는 뭔가 잘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동쪽으로 몇 분 내려가자 과연 빛고개 길을 알려주는 낡은 표지목이 보였습니다.

 

 

 

  17시31분 빛고개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표지목이 세워진 능선삼거리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 얼마간 진행하자 왼쪽으로 검은 비닐 천을 둘러 울타리를 만든 산양재배지 옆길을 지났습니다. 공손하게 “들어오지 마십시오” 해도 뜻은 충분히 전달될 터인데 출입하면 형사고발하겠다는 살벌한 경고판을 여러 개 걸어놓은 것을 보고 세상인심이 참으로 각박해졌다 했습니다. 두 번째 묘지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난 길을 따라 내려가 편한 길을 걸었습니다. 얼마 후 쓰레기소각장의 철망 울타리를 만나 왼쪽 공사용 도로로 내려섰습니다. 송전탑공사차 낸 길로 보이는 도로를 따라 오르자 오른 쪽으로 소각장 안으로 들어가는 엉성한 목제 문이 보였습니다. 문은 자물쇠로 잠가 놓았지만 틈새가 커 비집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가 소각장을 지나고 가평군자원순환센터를 지나 내려선 도로가 청평-가평을 잇는 46번 도로였습니다. 빗고개 정류장에서 조금 더 내려가 46번 도로를 횡단해 새한레미콘 앞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길로 조금 더 올라가 다다른 싸이클공원 끝의 빛고개 들머리를 사진 찍은 후 절고개-불기산- 빛고개 구간 종주를 끝냈습니다.

 

  자연재해를 입고나면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자연에 더 겸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자연을 해하지 말고 자연과 공존해야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 분들 의견에 상당 부분 공감하지만 전적으로 같이 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지적한 점은 백번 맞지만 이제껏 자연을 개발해 잘 살아온 사람들이 자연과 공존하겠다며 겸손해진다해서 자연재해가 멈출리는 없습니다. 빙하가 내습하고 노아의 홍수가 있었던 것은 인간이 자연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을 때 일어난 일들입니다. 공룡이 지구 상에서 사라진 것은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자연조건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지는 것도 진화입니다. 자연을 거스릴 줄 전혀 모르는 억새들도 잣나무도 자연재해를 입어 쓰러졌습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자연의 자해를 예방하고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지혜일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해진다고 자연재해가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재해와 맞대응해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또 자연재해와의 맞대응이 또 다른 재해를 불러오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모두 아우르면 치산치수가 될 것입니다.

 

 

 

 

 

                                                      <산행사진>

 

 

 

 

 

 

 

 

 

 

 

 

 

 

 

 

 

 

 

 

 

 

 

 

 

 

 

 

 

 

 

 

 

 

 

 

 

 

 

 

 

 

 

 

 

 

 

 

 

 

 

 

 

 

 

 

 

 

 

 

 

 

 

 

 

 

 

 

 

 

 

 

 

  

 

 

 

 

 

                                          한북연인지맥 종주기3

 

                            *지맥구간:우정고개-대금산-절고개

                            *산행일자:2010. 7. 18일(일)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매봉929m, 대금산810m

                            *산행코스:마일리연인산입구-우정고개-매봉-깃대봉-대금산

                                           -절고개-두밀리버스종점

                            *산행시간:9시10분-17시57분(8시간47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10명

                             (24회이규성, 이기후, 서중원, 김주홍, 우명길, 29회정병기/김의정,

                             오창환, 유한준, 초대손님 박현출)

                               

 

   연인지맥 종주 길에 가평의 대금산에서 하얀 꽃에 내려앉은 표범나비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장마 비가 이틀 연속 내려 습한데다 하늘을 덮고 있는 시꺼먼 먹구름이 여차하면 큰비를 내릴 기세여서, 이맘때면 번갈아가며 합창을 해 산속을 떠들썩하게 했던 새들과 매미들 모두 숲 속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새들과 매미들은 행여 비에 젖을까 날개 짓을 그만두고 노래 부르기도 멈추었는데, 이들보다 훨씬 가벼워 바람을 안고서는 도저히 날 수 없는 작은 몸으로 이 높은 곳에 자리한 야생화 꽃밭으로 날아들어 제게 인사를 건네는 표범나비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나비는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아 불완전변태를 하는 메뚜기와는 달리 알-애벌레-번데기-성충의 네 과정을 모두 거쳐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으로,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후로는 2개월에서 1년까지 삽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약260종의 나비가 살고 있는데 이번에 만나본 나비는 주홍색 바탕에 검은 점이 고루 퍼져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나비로 집에 돌아와 도감을 찾아본 즉 작은은점선표범나비로 보였습니다. 네발나비과 은점선표범나비속에 속하는 작은은점선표범나비는 섬을 제외한 한반도전역에 두루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나비의 학명 속에 들어 있는 셀레네(Selen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바람의 신들과 어울려 노닌다는 계절의 여신으로, 이 나비는 학명에 어울리게 초가을까지 계절의 여신다운 아름다운 자태를 계속 보여주며 뽐내고 있다고 이원규/김정환 두 분이 같이 지은 “우리나비 백가지”는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나비들이 그 이름을 처음 들어도 친숙한 것은 나비박사로 알려진 석주명박사 덕분입니다. 이 땅의 나비들에 고유한 이름을 지어준 석주명님은 국어실력도 그 분야의 웬만한 학자를 뺨치는 수준이었기에 이토록 나름대로의 특징을 잘 드러내도록 나비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관모산지옥나비나 차일봉지옥나비는 지옥나비속에 속하는 나비들입니다. 이들 지옥나비들은 2천미터가 넘는 고산의 초본 대에서 사는 나비여서 이들을 만나보려면 이름그대로 지옥훈련에 가까운 고산등반을 마쳐야 합니다. 이번 대금산에서 작은은점선표범나비가 나풀거리는 것을 보고 참으로 곰살궂다 한데는 나비 이름도 한몫했다는 생각입니다.

 

 

 

  아침9시10분 마일리의 국수당 마을을 출발했습니다. 청량리 현대코아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가 현리에서 택시로 바꿔 탔습니다. 이달 초 우정고개에서 현리까지 걸어 내려온 길을 거꾸로 내달려 국수당 마을의 연인산 입구에서 하차했습니다. 뒤늦게 이틀 연이어 장마 비가 퍼부어 계곡의 물이 많이 불었습니다. 10분 남짓 걸어올라 다다른 시멘트다리 앞의 텅 빈 간이쉼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넓은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마지막 집 앞에서 첫 번째 계곡을 건넜습니다. 지난 번 이 길로 하산할 때는 계곡을 한 번 밖에 안 건넌 것 같은데 여기 저기 계곡물이 질펀하게 넘쳐흘러서인지 이번에는 네 번이나 물을 건너 우정고개에 이르렀습니다.

 

 

 

  10시15분 우정고개에서 한북연인지맥의 3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우정고개에서 이번 산행의 끝점인 빛고개까지 거리가 약 17Km에 달해, 부지런히 걸어야 해떨어지기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우정고개에서 해발고도를 70m가량 높여 남쪽의 헬기장에 오르기까지 길이 가파르고 억새풀이 무성해 초반 산 오름이 힘들었지만, 그 후 헬기장에서 매봉에 이르기까지는 경사가 심하지 않아 그리 고되지 않았습니다. 먹구름이 산록을 덮어 그다지 멀지 않은 연인산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른쪽으로 국수당 길이 갈리는 “우정고개1.5Km/국수당1.5km" 지점을 지나 헬기장에 이르자 삼각점이 보였는데 매봉의 표지석은 조금 더 걸어 보았습니다.

 

 

 

  11시25분 해발929m의 매봉에 올라섰습니다. 6년 전 가을에 칼봉산을 거쳐 매봉을 한 번 올랐기에 눈에 익을 법도 한데 숲이 우거지고 안개가 잔뜩 끼어 주위풍경이 낯설었습니다. 칼봉산 가는 길은 동쪽으로 갈리고 빛고개로 이어지는 연인지맥은 정남쪽으로 뻗어나갔습니다. 왼쪽 산허리에 낸 길이 잡풀들로 뒤덮여 생각만큼 빨리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번에 경반리로 내려간 능선삼거리를 지난 시각은 12시 2분이었고, 40분을 더 걸어 깃봉이 세워진 깃대봉에 다다르기까지 까치수염과 동자꽃, 그리고 당귀를 차례로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2시42분 해발910m의 깃대봉에 다다랐습니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깃대봉에서 점심을 들면서 반시간 가까이 쉬었습니다. 기말시험을 1주일 앞두고 시간을 내지 못해 지난달은 종주산행을 이 친구들과 같이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점심은 두 달 만에 함께하는 자리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땀이 식고 골바람이 불어올라오자 등 뒤가 써늘하게 느껴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깃대봉에서 3.4Km 떨어진 대금산으로 향하는 길은 오른쪽으로 확 꺾어 이어졌습니다. 깃대봉을 출발해 오른쪽 아래로 하면마일리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를 지나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왼쪽 아래로 두밀리 길이 갈리는 대금산 전방2.3Km 지점의 봉우리삼거리에서 적당한 곳을 찾아 속을 비우느라 저 혼자 뒤쳐졌습니다. 삼거리에서 남진하다 이내 만난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돌아 나지막한 봉우리에서 쉬고 있는 후미일행들을 따라잡은 시각은 깃대봉 출발 1시간이 조금 지난 14시18분으로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15분을 더 걸어 대금산 전방 1.2Km 전방에서 선두팀을 만나 잠시 같이 쉬었습니다.

 

 

 

  15시19분 해발704m의 대금산에 다다랐습니다.  새롭게 산식구로 편입된 버섯들이 장마철을 맞아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어 이들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아무리 버섯이 예쁘고 탐스러워도 따먹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색상이 현란하면 할수록 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데 이러한 지혜가 절세미인을 만나서는 전혀 작동되지 않기에 예부터 미인계가 유효한 전략으로 쓰였을 것입니다. 여차하면 왼쪽 아래 두밀리 마을로 탈출할 수 있는 갈림길이 꽤 여러 곳 있어 일일이 헤아리기도 번거롭다 싶은데 대금산을 200m남겨 놓은 안부에서도 왼쪽으로 두밀리 갈림길이 나 있었습니다. 자동우량경보시설을 막 지나 대금산에 이르자 산자락에 드리웠던 구름들이 모두 물러나 바로 뒤 전망바위에서 서쪽 건너 운악산을 지나는 한북정맥을 조감할 수 있었습니다. 남쪽으로 청우산과 그 너머로 축령산 및 서리산이 보였고 그 왼쪽 뒤로 천마산이, 오른쪽 먼발치로 백운대가 희미하게 보이는 대금산 정상에서 한참 동안 쉬었다가 짐을 챙겨 불기산으로 향했습니다.

 

 

 

  16시44분 절고개에 이르러 지맥종주를 마무리했습니다.  대금산 정상에서 암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해 깊숙한 안부로 내려설 즈음 11시에 국수당을 출발했다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한북정맥 종주를 막 마치고 곧바로 연인지맥 종주에 나섰다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분은 금세 저희들을 앞서 내달렸습니다. 야생화들이 가득 들어선 초원의 안부로 내려섰다가 헬기장을 지나 가파른 방화선 길을 따라 오르다 일행 한 명이 넘어져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별달리 다친 데가 없어 크게 다행이었지만 길이 미끄러워 다시 넘어지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겠다 싶어 걱정됐습니다. 바위 길에서 엉덩방아를 크게 찧고 나자 경사가 급한 길로 내려서는 것이 조심스러워 올라서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왼쪽 아래로 두밀리 길이 갈리는 두밀리고개를 그냥 통과해 630봉에 올랐습니다. 이 속도로는 빛고개까지 진행하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라고 판단한 산행대장이 중간에 적당한 지점에서 탈출해 두밀리마을로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나자 나머지 산행이 한결 여유로웠습니다. 630봉에서 청우산쪽으로 진행해 절고개에 이르러 4륜구동차는 능히 다닐만한 넓은 임도를 만났습니다. 청우산과 불기산의 분기점인 592.7봉이 앞에 보이는 절고개에서 연인지맥의 3구간종주산행을 마치고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임도를 따라 두밀리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17시57분 두밀리마을 버스종점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절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는듯하다가 이내 고도를 낮추었습니다. 두밀리고개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 동쪽으로 얼마간 더 내려가 두밀리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몸을 가릴 만한 나무다리 밑에서 시원한 물로 몸을 닦은 후 4-5분 거리의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저녁7시10분에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택시를 불러 가평으로 이동했습니다. 10여년전 학생 수가 적어 초등학교를 폐교할 때 두밀리마을이 신문에 난 적이 있어 이 마을이 도시에서 엄청 멀리 떨어진 촌마을로 생각했는데 차도도 잘 나있고 택시요금이 만 오천 원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제는 오지가 아니다 싶었습니다.

 

 

 

  9시간 가까이 산행하면서 새소리를 들은 것은 딱 한 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인 일인지 잠시 해가 났는데도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숨죽이고 있는 동안 산속에서 저희들을 반긴 것은 구름을 몰고 다니는 바람과 나풀나풀 팔랑팔랑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는 나비들이었습니다. 나비들은 그 종이 다양해 한 여름 중복 무렵 더위를 피해 일시적으로 활동을 멈추고 휴면에 들어갔다가 선선한 아침저녁에만 잠시 나타나 활동을 하는 나비들도 있고, 그 반대로 겨울잠을 자는 나비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들 모두 알이 부화해 애벌레가 되고 이 애벌레가 보기 흉한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충으로 재탄생해 화려하게 변신합니다. 나비들의 변신이 칭송받는 것은 마지막 단계의 변신이 추하지 않은 것을 넘어 극적으로 화려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노년변신이 나비처럼 화려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노추(老醜)로 이어지지는 않아야 욕을 면할 것이라 생각하자 말년의 삶은 나비들이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민통선의 흰나비”는 제가 자주 흥얼거리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정태춘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를 듣노라면 나비는 그 특유의 화사함뿐만 아니라 그 자유로움 때문에도 엄청 탐이 납니다. 휴전선을 넘나드는 날 것들이 어디 나비뿐이겠느냐 만서도 정태춘이 굳이 나비를 등장시킨 것은 이런 작은 통일에의 염원이 증폭되어 언젠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나비효과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비와 같이 한 산행이 행복했음을 고하며 다시 한 번 이노래를 불러봅니다.

 

 

 

                         민통선의 흰나비

 

 

 

    맑은 햇살 푸르른 수풀  돌보지 않는 침묵의 땅

    긴 긴 철조망 살벌한 총구 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

 

    바람에 눕는 억새 위 팔랑거리는 흰 나비

 

    저 수풀 너머 가려네 저 산도 넘어 가려네

 

 

 

 

    기름진 땅, 무성한 잡초 흐드러진 꽃밭에서 쉴래

 

    소나무 그루터기 무너진 참호  녹슨 철모위에서 쉴래

 

    졸졸 시냇물 건네며 팔랑거리는 흰나비

 

    저 강도 넘어 가려네 저 언덕  너머  음.

 

 

 

    해 기울어 새들 날고 서편 하늘 노을이 지면

 

    산봉우리 스피커, 초소위의 망원경 날개짓도 조심 조심

 

    외딴 아기 새 둥지 위  팔랑거리는 흰나비

 

    어두워 지기 전 가려네 저 너머로 음

 

 

 

 

 

 

                                                     <산행사진>

  

 

 

 

 

 

 

 

 

 

 

 

 

 

 

 

 

 

 

 

 

 

 

 

 

 

 

 

 

 

 

 

 

 

 

 

 

 

 

 

 

 

 

 

 

 

 

 

 

 

 

 

 

 

 

 

 

 

 

 

 

   

 

 

 

                                              한북연인지맥 종주기2

 

 

 

                                 *지맥구간:아재비고개-연인산-우정고개

                                 *산행일자:2010. 7. 1일(목)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연인산1,068m

                                 *산행코스:백둔리버스종점-아재비고개-연인산-우정고개

                                                -마일리버스종점-현리버스터미널

                                 *산행시간:10시18분-18시48분(8시간30분)

                                 *동행 :나홀로

 

 

  올 3월에 입학한 방송대의 학기말 시험은 전 과목 모두 객관식으로 출제되어 공부를 안 했다가는 과락을 당하기 일쑤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어온 터라 그간 한 주도 거르지 않은 주말산행을 두 주 연속 빼먹으면서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일반 대학과는 달리 전 과목을 단 하루에 치르는 방송대의 학기말 시험이 한주 밖에 남지 않아 지난달에는 매월 셋째 일요일에 진행해온 경동고교 동문산악회의 한북연인지맥 종주산행을 불참하고 시험관련 특강을 들었습니다. 그간 저 나름대로 꾀부리지 않고 꾸준하게 공부해온 덕에 지난 일요일 1학기말 시험을 어렵지 않게 치렀습니다.

 

 

  기말시험에 대비하고자 제게 내린 딱 2주간의 비상령을 시험이 끝나자마자 해제하고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요 며칠 동안 집근처 극장을 찾아 영화 “포화 속으로”를 감명 깊게 보았고, 대학동창을 만나 4대강개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대학가의 학림다방을 삼 십 수년 만에 다시 찾아 한 국문과 학형의 설화 같은 러브스토리를 들었습니다. 과천의 서점을 들러 “민족 민족주의”제목의 책을 샀고, 아들이 가져다 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도 마음 편히 읽었습니다. 제게 일상이란 이와 같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만나보고 싶은 친구들을 만나고, 오르고 싶은 산을 오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어서 일상으로의 복귀가 전혀 야단스럽지 않습니다. 

 

 

  어제는 저 혼자서 시험 때문에 빼먹은 한북연인지맥의 두 번째 구간을 종주했습니다. 아재비고개-연인산-우정고개를 잇는 이번 구간을 모두 밟고 나자 숲이 우거질 대로 우거진 7월의 산속은 이 산에 뿌리박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축제를 벌이는 큰 마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속의 맹주로 군림하는 멧돼지도 이번 향연장에 틀림없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기대하게 된 것은 산행시작 얼마 후 만난 동리 분에게서 이 골짜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멧돼지가 출몰하니 큰 소리를 내면서 올라가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인데, 멧돼지는 끝내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온갖 풀꽃들과 나무 꽃들, 진초록의 나무 숲, 이들과 공생하는 버섯들, 숲속의 요정으로 불릴만한 크고 작은 새들, 각종 나비와 곤충들이 모두 연인산에 모여 연가를 부르는 듯 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짝짝이 모여 사랑을 노래하는 연인산을 저 혼자 오르기가 조금은 뭣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지려 밟고 지나가도 불평 한마디 않는 질경이가 제 연인이려니 하고 능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이산의 모든 연인들은 툭하면 갈라서는 싸가지 없는 사람들을 본떠서는 안 됩니다. 밟히고 또 밟혀도 굴하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는 질경이의 사랑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사랑이 낳고 사랑이 키워주고 사랑이 이어가는 것으로 질경이의 사랑이 남달라 생명 이어감 또한 남다르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오전10시18분 백둔리 버스종점을 출발했습니다. 가평터미널을 9시35분에 출발한 군내버스는 백둔리에서 저를 마지막으로 내려놓고 몇 분 동안 머물다 다시 가평으로 돌아갔고, 저는 연인지맥의 2구간이 시작되는 아재비고개를 향해 서쪽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차량통제구간이 시작되는 곳에서 시멘트길이 끝났다 했는데 과수원을 지나 지역식수원 보호 및 사유재산보호를 위해 설치했다는 철문을 옆으로 지나자 시멘트 길이 넓게 나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걸어 만난 생태경관 보전지역 안내판 앞에서 시멘트 길은 끝났고 숲길이 이어졌습니다. 이내 계곡을 건넜고 숲이 우거진 계곡 옆길을 걸어 오르며 7월의 산속이 참으로 거함을 느꼈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는 중 긴 자루의 갈고리를 들고 내려가는 동리 분을 만났습니다. 그 갈고리는 어디에 쓰느냐고 여쭸더니 제 스틱을 가리키면서 이것들로는 멧돼지를 막을 수 없다며 혼자서는 위험하니 그냥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해 당황했습니다. 꼭 올라가야 한다면 조용히 가지 말고 계속 헛기침소리를 내야 멧돼지가 피할 것이라며 조심해서 올라가라고 일러주어 고마웠지만, 이제껏 제가 적의를 갖고 대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을 멧돼지가 제게 새삼 덤벼들 리 없다고 믿고 있기에 저는 이분처럼 흉기(?)를 들고 다닐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멧돼지를 보았고 그때마다 겁은 났어도 도망가지 않고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은 그들에게서 저를 해치겠다는 적의를 발견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멧돼지를 포함해 수많은 산식구들이 어우러져 같이 사는 산속에서조차 저희들이 주인이라고 행세하려들면 산식구들은 당연히 노할 것입니다. 여기 산속의 숲이 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삶의 터전임을 인정한다면 이들이 저희들의 산 오름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12시5분 상판리와 백둔리를 이어주는 연인지맥의 아재비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백둔천 상류의 계곡은 꽤 길었습니다. 시멘트길이 끝나고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걸으며 몇 번 계곡을 건너 다다른 합수점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진행하다가 길이 아닌 듯싶어 표지기가 걸려있는 오른 쪽 길로 들어선 후에도 몇 번 더 계곡을 건넜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물이 불어 계곡을 건너는 일이 쉽지 않겠다 싶은 오름길을 쉬지 않고 오르면서 얼마를 더 올라가야 계곡이 끝날까 했는데 결국 물소리가 끝난 것은 아재비고개마루에 다다르기 5분전이었습니다. 지난 5월 1구간 종주를 마치고 하산한 아재비고개에 다시 올라 15분을 쉰 후 남쪽으로 3.3Km 떨어진 연인산으로 향했습니다. 음산하고 희미한 계곡 길에서 만나지 못한 멧돼지를 넓고 시야가 트인 능선 길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더 이상 멧돼지에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나무들조차 숨소리를 멈춘 듯 적막감이 감도는 산길은 온갖 소리를 다 먹어 삼킨 양 하늘을 나는 비행기조차 제 소리를 내지 못해 모기소리처럼 아주 작게 들렸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어 13시3분에 다다른 1010봉 삼거리에서 점심을 들면서 산행 내내 제게 평온함을 안겨준 풀꽃과 바람과 산새들에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13시50분 해발1,069m의 연인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1010봉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선 후 연인산 정상으로 향하는 중 가평에서 함께 버스에 올랐다가 연인산 입구에서 먼저 내린 몇 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산행 중에 유일하게 만난 이분들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5-6명의 아주머니들로 백둔리를 출발해 연인산과 명지3봉을 거쳐 명지산을 오른 후 익근리로 하산한다며 쏜살같이 내달렸습니다. 바위사이로 길이 난 문바위를 거쳐 꿩의 비름 군락지를 지나면서 도톰한 연분홍 꽃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정상에 올랐어도 박무로 시야가 가려 바로 앞의 1030봉을 빼놓고는 어느 봉우리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목봉을 연인산으로 개명한 가평군청에서 새로 지은 산 이름에 걸맞게 정상에서 뻗어나가는 산줄기에도 이름을 지어주었으니 소망능선, 장수능선, 청풍능선, 연인능선과 우정능선이 바로 그 것들입니다. 이 많은 능선 중 연인지맥이 지나는 능선은 가장 서쪽에 자리한 우정능선으로 8년 전에 한 번 지났던 길입니다. 정상에서 오래 머무를 일이 없어 잠시 숨을 고른 후 곧바로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는 우정능선으로 내려섰습니다. 1030봉을 지나 평탄한 길이 계속 이어져 능선 길을 걷는 중에도 졸음이 와 잠시 멈춰 서곤 하다가 넓은 헬기장에 올라선 시각이 14시15분이었습니다.

 

 

  15시32분 전패고개로도 불리는 우정고개에 내려섰습니다. 헬기장에서 우정고개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 뚜렷해 여느 지맥 길처럼 길 잃을 까 걱정은 아니 해도 되었습니다. 오른 쪽 상판리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두 번 지나고 비좁은 헬기장 두 곳을 지나 우정고개로 내려서기까지 돌양지꽃, 나리꽃, 꿩의 다리, 승마, 까치수염, 좁쌀풀, 쑥부쟁이와 이름 모르는 자주색 꽃들 등 이런 저런 꽃들을 만나보고 7월은 역시 녹음과 방초가 절정에 이르는 성하의 한 달임을 실감했습니다. 지맥 길 동쪽 사면에 자리 잡은 잣나무들 가지 끝에 달려 있는 잣송이가 한껏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녹음과 방초의 화사함과는 영 거리가 먼 질경이들이 뿌리박은 곳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길바닥이었습니다. 들판에서도 그러했고 산 위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채소가 요즘처럼 흔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먹을거리 들풀들이 고마웠습니다. 질경이는 매년 씨 뿌리고 길러야 하는 채소와는 달리 생명력이 강인한 다년생 잡초여서 양지 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랍니다. 봄과 여름에는 어린 순을 캐서 나물로 먹고, 가을에는 말린 씨로 차전자(車前子)를 만들어 사용하며, 뿌리를 씹어 먹거나 잎의 즙(汁)을 내어 먹으면 토사곽란(吐瀉藿亂)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질경이가 사람들의 눈을 끌지 못하는 것은 꽃과 잎 모두 화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어머니께서 끓여준 질경이 국을 자주 들은 제게는 질경이가 들풀이기에 앞서 고마운 채소였기에 모양새는 예쁘지 않더라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밟고 그냥 지날 수는 없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길바닥이 미끄러워 몇 번을 넘어진 후 우정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이참에 가평의 명승지인 용추계곡으로 내려갈까 고심하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그 반대편의 마일리로 하산하기로 정한 후 반시간 남짓 그늘에 앉아 푹 쉬었습니다.

 

 

  17시14분 마일리 버스종점에 다다랐습니다. 우정고개에서 왼쪽 마일리로 하산하는 길은 넓었으나 바닥이 고르지 못해 자칫 발목을 뼈기 쉬울 것 같아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오른 쪽의 그늘 진 산길로 들어섰다가 큰 길을 건너 왼쪽의 산길로 다시 들어가 계곡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졸졸 흐르던 계곡 물이 어느새 큰 소리를 내며 콸콸 흐르는 아랫목에서 짐을 벗고 탁족을 끝내고 나자 발바닥이 시원했습니다. 흙길이 끝나고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한참 동안 걸어 내려가 다다른 마일리버스종점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왼쪽 위로 동막골 길이 갈리는 삼거리가 버스종점인데 옆 건물은 비어 있는 것 같았고 정류장 소파는 흙투성이여서 엉덩이를 붙일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햇빛조차 가릴 수 없는 정류장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 버스를 타느니 그냥 걸어가다 가게를 만나면 그 곳에서 맥주라도 사들며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 싶어 아스팔트길을 따라 마일리 마을을 향해 게속 걸었습니다.

 

 

  18시48분 현리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청량리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종점에서 17분을 걸어 마일1리 회관에 이르기까지 한사람도 만나지 못하다가 회관을 조금 지나 할아버지 한분을 뵈었습니다. 이분께 현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나 여쭈었더니 잰걸음으로 40분가량 걸린다고 말씀해 내친 김에 현리터미널까지 걸어갔습니다. 지난달 섬진강 산줄기 환주산행을 모두 마친 터라 오는 9월 쯤 섬진강물줄기 따라 걷기를 시작할 계획을 갖고 있어 그 전에 아스팔트길을 걸어 연습해두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앞서 할아버지가 말씀한 대로 40분 거리는 아니었고 부지런히 걸어도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습니다. 현리터미널을 십 수m남겨놓고 저녁6시30분에 마일리종점을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를 만났으니 시간이 절약된 것은 없고 버스비만 천원이 굳은 셈입니다.

 

 

  18일 만에 처음 나선 종주산행이 전혀 힘들지 않은 것은 지맥코스가 짧은 데다 아재비고개-연인산-우정고개에 이르는 능선길이 오르내림이 별로 없어 더 할 수 없이 편안했고, 녹음방초가 한창이어서 볼거리가 많아서였습니다. 이에다 시간도 넉넉하고 이 길을 찾은 산객들도 별로 없어 모처럼 여유로웠습니다. 마지막 마일리버스종점에서 현리까지의 도보행군은 따로 사서 한 고생이기에 염두에 둘 것이 못 된다면 저는 실로 오랜만에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넉넉하고 평안한 산행을 즐겼습니다. 두 주간 죽어라고 공부해 기대한 만큼 시험성적을 올렸기에 이번 산행이 마음 편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와 산행 중 어느 하나만 택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산행사진>

 

 

 

 

 

 

 

 

 

 

 

 

 

 

 

 

 

 

  

 

 

 

 

 

 

 

 

 

 

 

 

 

 

 

 

 

 

 

 

 

 

 

 

 

 

 

 

 

 

 

 

 

 

 

 

 

 

 

 

                                                  한북연인지맥 종주기1

 

 

 

                                     *지맥구간:890봉-명지3봉-아재비고개

                                     *산행일자:2010. 5. 16일(일)

                                     *소재지 :경기포천/가평

                                     *산높이 :명지3봉1,199m/귀목봉1,036m

                                     *산행코스:무리울삼거리-오뚜기고개-890봉-귀목봉-귀목고개

                                                    -명지3봉-아재비고개-상판리버스종점

                                     *산행시간:8시45분-17시30분(8시간4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9명

                                      (24회 김주홍, 서중원, 우명길, 29회오창환, 유한준, 정병기

                                       43회 서석범, 김동희, 초대손님 박현출님)

 

 

  한북정맥의 오뚜기고개 남쪽 위 봉우리인 890봉에서 분기되어 조평천의 동쪽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한북연인지맥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890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한북연인지맥은 귀목봉, 명지3봉, 연인산 등 해발고도가 천m를 넘는 고봉들과 9백m대의 매봉, 깃대봉, 7백m대의 대금산, 6백m대의 불기산과 호명산을 차례로 일궈 세운 후 청평대교 앞에서 북한강으로 침잠하는 전장 43Km의 산줄기입니다. 한북정맥에서 갈라진 여덟 개 지맥 중 6번째로 종주하는 한북연인지맥은 모교인 경동고 동문들과 함께 하게 되어 한 여름에 치러 내야하는 종주산행이지만 저 혼자서 할 때보다 힘이 덜 드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전8시45분에 무리울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을 아침7시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가다 일동에서 하차해 택시로 이번 종주산행의 들머리인 무리울삼거리로 이동했습니다. 한북정맥과 만나는 오뚜기고개까지 약6Km의 길이 차가 다닐 만큼 넓은데다 길가에 햇빛을 가릴 나무들이 별로 없어 산길을 걷든 것보다 훨씬 더 짜증스러웠습니다. 산행시작 1시간이 다 되어 “횃불”이라 적힌 절개면 바위를 지나 조금 더 가자 모래 보관용으로 지은 듯한 시멘트 가 건물이 보였습니다. 동쪽으로 계속해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시간 반을 조금 못 걸어 넓은 공터의 오뚜기고개에 이르렀습니다. 2008년 1월 한북정맥차 지난 이 고개 한 가운데 “오뚜기령”이라 적힌 커다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고 먼저 온 일행들은 그늘진 이정표 한 쪽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11시 정각 890봉에서 한북연인지맥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월 대학동창인 이상훈 교수와 함께 오뚜기고개를 출발해 890봉에 올랐을 때는 새로 내린 눈이 무릎을 넘게 쌓여 그 위에 길을 내고 올라가느라 시간 반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눈 대신 붓꽃, 양지꽃 등의 야생화와 진달래 및 벚꽃이 활짝 피어 그 반도 안 되는 4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학친구와의 연인지맥 종주를 포기하고 청계산으로 행로를 바꿨던 890봉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연인지맥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귀목봉으로 올라가는 능선 길 양 옆으로 줄기가 굵은 싸리나무가 도열해 있어 덥다고 반팔차림으로 산행을 했다면 싸리나무들이 귀찮을 뻔 했습니다. 얼레지 꽃이 다 졌다 했는데 고도를 높여가자 아직 지지 않은 꽃이 치마를 치켜 올리고 귀목봉을 오르는 저희들을 반겼습니다. 나무널판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몇 걸음을 더 올라가 다다른 해발1,036m의 귀목봉은 사방이 막힘없이 보이는 최고의 전망지여서 한북정맥과 연인지맥이 한눈에 잡혔습니다.

 

 

 

  12시26분 귀목고개로 내려섰습니다. 귀목봉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귀목고개로 향했습니다. 진노랑 꽃 피나물은 같은 노랑색의 양지꽃보다 송이 수는 적었지만 꽃이 커 훨씬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상판리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자 내림 길의 경사가 제법 급했습니다. 귀목봉에서 4백m 가까이 고도를 낮추어 내려선 귀목고개는 깊숙한 안부로 바람의 통로여서 땀 흘린 등이 금세 서늘해졌습니다. 언제고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김주홍동문이 싸온 밥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40분 넘게 점심을 들면서 푹 쉰 후 13시10분경에 오른 쪽 아래로 상판리 길이 갈리는 귀목고개를 출발해 명지3봉으로 향했습니다. 1,200m에서 1m가 빠지는 해발1,299m의 명지3봉을 오르려면 귀목고개에서 표고를 450m가량 높여야 해 오름 길이 쉽지 않겠다싶어 긴장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각점이 박혀 있는 794.9봉을 지났고 귀목고개 출발 1시간 가까이 걸어 헬기장에 다다르기까지 활짝 핀 양지꽃과 얼레지 꽃들이 웃음으로 반기지 않았다면 산 오름이 꽤 힘들었을 것입니다.

 

 

 

  14시38분 해발1,199m의 명지3봉에 올라섰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뚱뚱한 사람들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양 바위 사이를 지났습니다. 끝이 뾰족한 바위가 비스듬히 서 있는 암봉을 비껴가 만난 나무계단에 앉아 후미를 기다리는 산행대장을 보고 제가 산행을 맡아 진행한 한북정맥 종주를 떠올렸습니다. 그 때보다 인원은 조금 줄었지만 산행능력이 향상되어 별 문제없이 종주산행을 진행하고 있지만 산행이 완전 종료되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산행대장은 그때나 이때나 홀로 외롭게 산행을 이끌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통나무계단과 널판 계단 길이 몇 번이나 교차되는 봉우리를 몇 개 넘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연인지맥은 오른쪽으로 분기되고 봉정산으로도 불리는 명지3봉은 왼쪽으로 십 수 걸음 비껴서 있었습니다. 암반이 꽤 넓은 명지3봉 암봉에서 바지춤을 잠간 동안 내리고 올 들어 처음으로 거풍을 즐겼습니다. 오름길에 숨죽였던 바람이 명지3봉 정상에 선 저희들을 시원하게 휘감아 웃통을 벗고 바람을 맞는 대원들이 꽤 많았습니다. 반시간 넘게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기념사진을 찍은 후 연인산으로 이어지는 지맥종주에 다시 나섰습니다. 아재비고개로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급했지만 암릉 길이 아니어서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불에 탄 듯 가지와 줄기가 시꺼먼 활엽수만 보면 아직도 봄이 멀었다 싶은 데 이 날 서울의 최고 기온은 섭씨 27도였다니 해발고도가 천m를 넘는다는 것이 보통 높이가 아니다 했습니다.

 

 

 

  15시49분 아재비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아재비고개가 가까워질수록 활엽수 가지에서 돋아난 연초록 잎이 많아지고 야생화들도 그 종류가 다양해졌습니다. 꽃대가 외대여서 홀아비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홀아비촛대와 홀아비바람꽃이 반가웠고 군락을 이룬 피나물 밭은 화사했습니다. 왼쪽 아래로 백둔리 길이 갈리는 아재비고개에서 지맥종주를 마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상판리길로 내려섰습니다. 초반 흙길은 이내 끝났고 길이 희미한 돌 가닥 길이 나타나 긴장했는데 까다로운 그 길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해발고도가 600m대로 낮아지자 계곡에서 물이 흐리기 시작했고 나뭇잎이 많아 해를 가릴 수 있었습니다. 돌탑이 세워진 낮은 고개를 넘어 명지3봉에서 흘러내리는 계곡과 합류되는 합수점에 이르러 짐을 내려놓고 발을 발을 닦으며 10분 넘게 쉬었습니다.

 

 

 

  17시30분 상판리 버스종점에 도착했습니다. 합수점에서 버스종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중간에 계곡에서 다시 한 번 쉬었습니다. 지난 3월 상판리-명지3봉-명지산-익근리로 산행코스를 잡았다가 합수점에서 길을 잘 못 들어 눈 덮인 계곡을 따라 명지3봉으로 바로 오르느라 기진맥진했고 결국 명지산을 포기하고 귀목고개를 거쳐 상판리로 하산한 산행이야기를 당시 산행대장 오창환 동문이 들려주었습니다. 산악회의 발전은 이런 알바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경동동문산악회에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상판리 버스종점에서 첫 구간 종주산행을 마친 후 20분가량 기다려 버스를 타고 현리로 나가 다리가 아파 다섯 달을 거른 서중원동문이 낸 저녁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서둘렀다면 해떨어지기 전에 우정고개까지 진출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리 했으면 총 산행거리가 20Km를 넘어 몇 몇 대원들에는 상당히 무리였을 것입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으니 욕심내지 않고 아재비고개에서 종주산행을 마친 것은 대장이 잘 결정한 것입니다. 천천히 걷는다고 지맥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닌데 무리해서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바꾼 것은 용화산 산행에서 사고를 당하고 나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1970년대 산행을 시작할 때 가슴 속에 새긴 산행모토가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였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나이 60이 훌쩍 지나 그 소중한 산행모토를 다시 일깨웠습니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