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지맥·분맥·단맥/한북정맥 분기지맥

한북수락지맥 종주기

시인마뇽 2012. 12. 31. 01:07

                                                   한북수락지맥 종주기4(최종회)

 

 

 

                                         *지맥구간:새우개고개-아차산-아차산입구

                                         *산행일자:2012. 11. 10일(토)

                                         *소재지 :서울시

                                         *산높이 :아차산287m, 구능산171m

                                         *산행코스:새우개고개-구능산-망우리고개-아차산-아차산입구

                                         *산행시간:9시58분-15시2분(5시간4분)

                                         *동행 :산우 성봉현님

 

 

 

   이번 한북수락지맥 종주가 제 나름 뜻 깊은 것은 2004년 5월에 첫 발을 들인 한북정맥과 그 8개의 지맥을 모두 밟았다는 것입니다. 한 산을 정해 오르고 내려오는 점의 산행에 익숙했던 제가 장대한 산줄기를 연이어 오르내리는 선의 산행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전장 168Km의 한북정맥 종주를 시작하고 나서였습니다. 16회 출산으로 한북정맥 종주를 성공적으로 종주를 마치고나서, 이어나간 첫 번 째 지맥이 한북천마지맥이었습니다. 오두지맥, 감악지맥, 왕방지맥, 화악지맥, 연인지맥과 명성지맥을 차례로 종주한 후 지난 3월 마지막으로 오른 지맥이 한북수락지맥이었습니다.

 

 

 

  지난 3월에 수락지맥의 첫 종주산행을 청학동의 43번국도상 고갯마루에서 마치고 남겨놓은 구간을 지난달과 이 달에 집중적으로 올라 이번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실인즉 100여km 남은 낙동정맥을 마저 종주해 2004년에 시작한 백두대간과 9개 정맥 종주라는 대장정을 마무리 짓고 싶었습니다. 학기말시험이 점점 가까워져 왔다 갔다 하는데 시간이 많이 드는 낙동정맥 종주에 쉽게 짬을 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이 수락지맥 종주였지만 이 또한 언제고 마쳐야 할 숙제였습니다. 이번 수락지맥의 마지막 구간 종주로 총연장 약520Km에 이르는 한북정맥과 8지맥 종주를 모두 마친 것으로 한 숙제 해냈다 싶어 시원하고 가슴 뿌듯합니다.

 

 

  9시58분 새우개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봉화산역에서 만난 성봉현님 차로 새우개고개까지 이동해 20여분 일찍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고갯마루에서 오른 쪽 절개지의 사면을 올라 산길로 올라서자 왼쪽 아래로 보현사가 보였습니다. 무명봉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선 해발171m의 구릉산 정상에 우유팩 등 쓰레기들이 방치되어 있어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구능산에서 정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진행해 길 왼쪽 군부대 울타리 안에 안테나가 세워진 봉우리를 지났는데 이 봉우리가 지형도에 나와 있는 해발177.9m의 구릉산이라 합니다. 고맙게도 새우개고개-아차산-아차산입구의 마지막 구간의 길안내를 성봉현님이 맡아 주어 마음 편히 미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충군육교로 내려갔습니다.

 

 

 

  10시57분 충의육교 차도를 건넜습니다. 이름만 육교일 뿐 실제 육교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니고 지하차도 큰망우리굴 위의 다리여서 보통 건널목과 다를 바 없는 충의육교를 건너 고갯마루를 넘자 사진에서 본 엄청 가파른 오름길이 보였습니다. 차도 옆 사다리를 올라 철조망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자 문자 그대로 4-5m 높이의 사다리 직등 길이 나타나 조금 불안했지만, 그 다음 20m가량의 오름길은 경사가 덜 급한 철제계단 길이어서 마음 놓고 올랐습니다. 산봉우리들이 모두 그 높이가 200m에도 못 미치는 구릉인데 곳곳에 군부대가 들어서 있는 것은 수도 서울을 지켜내는 데 더 할 수 없이 중요한 요충지여서일 것입니다. 또 다시 군부대 울타리 옆길을 따라 망우리고개로 향했습니다. 냉랭한 날씨였지만 하늘이 쾌청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늦가을 구릉 길 걷기에 딱 알맞았습니다.

 

 

 

  11시50분 망우리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차도를 건너 망우산-용마산 문화재 안내도 앞에서 망우리공원묘지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마루금을 이어가고자 공원묘지 내 편안한 차도를 버리고 묘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해발301m의 망우산에 올라 묘역을 돌아보자 요즘 새로 생긴 공원묘역이 고층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라면 여기 망우리 공동묘지는 저층의 연립주택 단지에 비할 만큼 초라해보였습니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40여 년 전 입경한 이후 줄곧 그 이름을 들어와서인지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망우리 공동묘지만으로 늘어나는 묘지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제 고향 파주의 용미리에 서울시립묘지가 들어선 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요즘은 매장보다 화장을 원하는 분들이 더 많아 서울시에서도 새로 조성하는 청계산의 자유공원을 납골당 공원으로 꾸밀 계획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숨이 끊어져 죽어가는 모습은 옛 그대로이나 장례문화는 사회변화에 맞게 진화되어 좁디좁은 이 땅에서 산 자와 죽은 자들이 갈등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어 크게 다행입니다.

 

 

 

  12시58분 해발287m의 아차산에 올랐습니다. 망우산에서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묘역 위 능선 길을 따라 걸으며, 격동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써 내려가느라 정말 숨 가쁘게 사셨던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을 떠올렸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신 한용운,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섭 선생이 묻히신 곳이 바로 이 묘역이어서 이분들의 살아생전 업적을 기리느라 제 머리가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아차산에 올라 여기 아차산 일대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낱낱이 지켜봤을 한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망우산 묘역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현대사를 증언하는 곳이라면, 아차산 일대는 천 수백 년 전 삼국이 서로 전략적 요충지인 한강유역을 차지하려 접전을 벌인 역사의 현장입니다. 고구려가 한강과 나란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자리한 올망졸망한 봉우리에 고구려가 수많은 보루(保壘)를 구축한 것도 신라나 백제에 선점한 한강유역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14시4분 아차산 4보루에 다다랐습니다. 망우산과 용마산, 그리고 아차산 일대에 자리한 보루 중 복원이 가장 잘 된 곳이 아차산 4보루입니다. 보루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이나 흙 등으로 튼튼하게 쌓은 진지를 이릅니다. 이 일대의 보루는 서력457년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후 551년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에 패해 물러나기까지의 역사를 밝혀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로, 문화재로 지정된 17개소와 아직 지정되지 못한 4개소 등 21개의 보루(保壘)가 포진해 있습니다. 성벽과 건물터로 구성된 여기 아차산 4보루는 성벽의 둘레가 249m로 고구려 성 쌓기의 전형인 퇴물림형식이 잘 나타난 것으로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잘은 몰라도 여기 21개보루가 모두 산성으로 연결된 것 같지는 않았고, 보루 하나하나가 작은 산성의 역할을 해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보루보다 규모가 큰 테뫼식산성은 퇴물림형식의 산성보다 뒤늦게 발달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자료를 찾아 확인한 것이 아니어서 들어내놓고 말하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15시2분 광장동 쪽 아차산입구에서 한북수락지맥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아차산 4보루에서 광장동 쪽으로 하산하는 길에 해맞이대를 지났습니다. 최근 수년간 해맞이 산행을 같이 한 고교동창들이 올해는 번거롭게 먼 곳으로 가지 말자며 오른 곳이 여기 아차산의 해맞이대였습니다. 낙동정맥 종주 길에 오른 동해안의 한 산에서 해오름을 지켜본 저는 일출사진을 남겼는데, 여기 아차산에 오른 친구들은 구름이 잔뜩 끼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며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광장동 쪽 입구로 하산해 긴 시간 역사와의 대화를 끝내고 그 아래 생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겨 동행한 성봉현님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산에 관한 이야기가 주였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도 같이 나누었습니다. 저야 달리 직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하루하루의 삶이 단조롭기 그지없지만, 저보다 한 띠 젊은 성봉현님은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50대 초반이어서 참으로 바쁘게 살아간다 싶었습니다. 

 

 

  이번 산행이 다른 산행보다 더 의미 있었던 것은 산 친구 성봉현님과 함께 해서였습니다. 2004년 오두지맥 종주 차 제 고향 파주의 고령산을 오르내린 이분의 산행기를 보고 댓글을 달은 것이 만남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를 통해 댓글을 주고받다가 오프라인에서 첫 만남을 가진 것은 2006년 12월이었습니다. 성봉현님의 주선으로 2007년부터 매년 봄가을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대구분들과 함께 산을 오르느라 그간 여러 번 산행을 같이 했지만 단둘이 산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무엇보다 고마워하는 것은 이분이 올린 상세한 산행기로, 만약 이 산행기가 없었다면 길 찾기에 애를 먹어 저의 정맥 종주가 엄청 힘들었을 것입니다. 모처럼 쉬는 날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저를 위해 길안내를 맡아준 성봉현님에 고맙고 고맙다는 뜻을 전하는 것으로 한북정맥과 8지맥 종주를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한북수락지맥 종주기3

 

 

                                   *지맥구간:덕릉고개-불암산-새우개고개

                                   *산행일자:2012. 11. 3일(토)

                                   *소재지 :서울/경기남양주

                                   *산높이 :불암산510m

                                   *산행코스:덕릉고개-불암산-학도암갈림길-삼육대-새우개고개

                                   *산행시간:11시50분-17시27분(5시간37분)

                                   *동행 :나홀로

 

 

  불암산(佛岩山)을 이 세상에 널리 알린 분들은 산 꾼들이 아닙니다. 이 산 아래 태능선수촌에서 연일 비지땀을 흘리며 메달밭을 일궈온 국가대표선수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의 기량과 체력이 선수촌에서 끌어올렸다면, 극한상황을 이겨내도록 강인한 정신을 키워낸 도장은 다름 아닌 불암산입니다. 천천히 세월을 낚으며 산을 오르는 저 같은 산 꾼이라면 불암산을 뛰어오를 일이 없습니다만, 여기 이 산을 정신훈련의 도장으로 삼아 오르는 선수들이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이 불암산을 뛰어오르는 것은 자신을 정상적인 체력으로는 도저히 감당 못할 극한상황으로 몰아넣어 전 세계의 경쟁선수를 압도할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이제껏 방송국에서 올림픽을 얼마 앞두고 우리 선수들이 죽을힘을 다해 불암산을 오르내리는 것을 TV에 방영해온 덕분에 해발고도가 6백m도 안 되는 불암산이 t인들에 널리 알려졌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불암산(佛岩山)이 국가대표선수들의 도장으로 활용되는 것은 이 산이 청계산과 같은 부드러운 흙길의 육산(肉山)이 아니고 이름 그대로 암봉이 많은 골산(骨山)이어서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를 더 보탠다면 깊고 깊은 불심(佛心)일 것입니다. 바위 길의 골산이 흙길의 육산보다 부드러움은 덜하지만 대신에 견고함과 강인함은 훨씬 더합니다. 우리 선조들이 부처상을 바위에 그려 넣는 것도 기실은 바위의 견고함에 힘입어 그들의 불심을 후세에 오래 전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이 산이 그저 그런 암산(岩山)이 아니고 불심(佛心)이 깊은 암산인 불암산(佛岩山)이라면 선수들의 정신훈련도장으로 삼을 만하다 싶은 것은, 호국종교임을 자임해온 우리 불교가 받들어 모시는 부처님이 국가의 명에를 드높일 우리 선수들을 돌보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선수들이 부처님의 가호로 아무리 견뎌내기 힘든 극한훈련도 능히 이겨낼 수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오전 11시50분 덕릉고개를 출발했습니다. 4호선 종점인 당고개에서 버스로 갈아타 청학리쪽으로 10분가량 가다가 덕릉고개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음지의 오른 쪽 들머리로 들어서자 정오가 다 됐는데도 냉기가 느껴졌습니다. 나무계단을 올라 이내 지난 번 수락산에서 이어온 능선을 만났고, 이 능선을 따라 남진했습니다. 다소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오른 지 반시간도 채 안되어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해, 잠시 멈춰 서서 겉옷을 벗어 넣고 남방차림으로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오른 쪽 건너로 백운대와 만장봉이 깔끔하게 보이는 능선을 따라 오른 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나 오른 쪽 아래로 폭포약수터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 가을의 마지막일수 있는 만산홍엽의 정취에 흠뻑 빠졌습니다.

 

 

 

  13시16분 해발510m의 불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의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이 눈에 띄자 바위공포증이 되살아났습니다. 4년 전 용화산에서 추락사고를 당하기 훨씬 전인 2004년에 오를 때도 매끄러운 암면을 거쳐 정상에 올라서기에 얼마간 겁이 난 산이어서 그랬습니다만, 가까이 다가가자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안심됐습니다. 4-5분을 기다렸다가 올라선 정상에서 지난번에 종주한 수락산을 되돌아보자 8년 전 학도암을 출발해 이 산을 먼저 오른 다음 수락산을 거쳐 장암동약수터로 하산한 산행이 생각났습니다. 지맥종주라는 개념 없이 그저 해가 바뀌기 전에 200산 등산이라는 개인목표를 달성하고자 한창 두서너 개산을 연이어 산행하던 때여서 한 여름 혹서를 무릅쓰고 불암산-수락산 연계산행에 나섰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그런 과정을 거쳐 1대간9정맥 종주에 도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 것 같습니다. 정상 남쪽 가까이의 간이 휴게소 옆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14시43분 학도암갈림길을 지났습니다. 점심식사 후 산행을 재개해 헬기장을 지나서 불암산성(佛巖山城)터에 도착했습니다. 산성 터에 세워진 안내판에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암산성이 규모는 작지만 삼국시대의 석축산성의 전형적인 축성기법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소개되었는데, 정작 그 축성기법이 무엇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산성은 초기에는 서울의 아차산성처럼 주로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해 산허리에 테를 두르듯 성을 쌓은 테뫼형 산성이 대부분이었으나, 후기로 접어들면서 충북단양의 온달산성처럼 능선을 따라 쌓아 그 사이 골짜기를 빙 둘러싸는 폐곡선의 형태를 가진 포곡형산성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니, 여기 불암산성은 아무래도 초기의 산성인 테뫼형산성인 것 같습니다. 산성터 출발 15분후 다다른 학도암 갈림길에서 그대로 남진해 왼쪽 아래로 삼육대학교 길이 갈리는 노원고개에 도착한 시각이 14시52분이었습니다.

 

 

 

  15시47분 삼육대정문앞에 이르렀습니다. 노원고개에서 곧장 왼쪽 길로 내려가야 할 것을 그대로 직진하다 철조망울타리를 만났는데 그 너머가 출입금지구역인 태능이어서 더 이상 능선을 따라 직진하지 못하고 산허리에 난 희미한 길을 따라 왼쪽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삼육대학교 교지로 들어가 처음 만난 것은 작은 못 제명호로, 아담하고 숲 안에 자리해 주변 경관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제명호에서 조금 더 내려가 대학본부를 지나고 단풍나무 길을 지나 삼육대학교를 빠져 나갔습니다. 말로만 들어온 삼육대학교를 직접 보고 난 후의 인상이 참으로 좋았던 것은 캠퍼스가 크지 않고 건물도 저층인데다 나무가 많고 아늑해 이런 분위기라면 공부할만 하다 싶어서였습니다. 담터고개에서 다시 만난 마루금을 이어가기 위해 차도를 건너 천성교회 옆길로 들어섰습니다.

 

 

 

  17시27분 45번 국도가 지나는 새우개고개에서 수락지맥 3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천성교회를 조금 지나 새우개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지 못하고 오른 쪽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올라가 능선을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건물들이 들어서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난망해 능선을 넘어 경춘선이 보이는 쪽으로 진행했습니다. 경춘선을 고가 밑으로 지나 만난 47번국도 앞에서 왼쪽으로 꺾은 것이 반시간 넘게 헛걸음한 알바의 시작이었습니다. 천성교회를 지나 벗어난 능선을 다시 만났을 때 남서쪽으로 꺾어 태능골프장 옆길로 진행했어야 했으며, 기왕 47번 국도로 나왔으면 오른 쪽으로 차도를 따라 진행해야 새우개 고개에 이르는 것을, 두 번 다 판단을 잘못해 정 반대방향인 서울외곽순환도로 밑까지 거의 다 가서야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알아챘습니다. 4년 전 수락지맥을 종주한 성봉현님에 전화를 걸어 새우개고개의 위치를 확인한 후 왔던 길로 되돌아가 47번 국도를 따라 남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갈매역을 지나 올라선 나지막한 새우개 고개에서 건너편의 들머리를 눈짐작으로 확인한 후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월간 ‘산’의 부록으로 발간된 지도에 나와 있는 불암산의 크고 작은 사찰들이 무려 10개나 됩니다. 서울에 인접한 한강 남쪽의 청계산에 포진한 절은 청계사와 관현사 단 두 개밖에 안되는데 이 산보다 높이도 조금 낮고 크기가 훨씬 작은 불암산의 사찰 숫자가 청계산의 5배나 된다는 것만으로도 불암산은 부처님을 모시는 불산(佛山)으로 불릴 만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불심이 넘쳐흐르는 산을 들라면 그 첫 번째는 단연 경주의 남산입니다. 삼릉입구에서 상선암을 오르는 삼릉계곡은 신라석불의 야외전시장으로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경주삼릉계 석불좌상과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등을 이 계곡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의 불우한 천재작가 김시습이 전기소설 “금오신화”를 써낸 곳이 바로 남산 한 쪽에 자리한 금오산의 용장사입니다. 남산의 부처님이 김시습으로 하여금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역사해 내셨다면, 불암산의 부처님은 대표선수들을 통해 공들여 만들어내는 것은 올림픽정신을 담고 있는 세 색깔의 메달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행사진>

 

 

 

 

 

 

 

 

 

 

 

 

 

 

 

 

 

 

 

 

 

 

 

 

 

 

 

 

 

 

 

 

 

 

 

 

 

 

 

 

 

 

 

 

 

 

 

                                                 한북수락지맥 종주기2

 

                                 *지맥구간:43번국도-수락산-덕릉고개

                                 *산행일자:2012. 10. 25일(목)

                                 *소재지   :경기남양주/서울노원

                                 *산높이   :수락산637m

                                 *산행코스:43번국도-기차바위봉-수락산-도솔봉-덕릉고개

                                 *산행시간:12시15분-17시25분(5시간10분)

                                 *동행      :나홀로

 

 

 

  요즘 유별나게 몸과 마음이 온통 찌뿌드드한 것은 두 달도 안남은 방송대의 기말고사준비로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낙동정맥 종주 길에 나서지 못해서입니다. 작년 6월 부산의 몰운대를 출발할 때만 해도 아무리 늦어도 올 가을까지는 낙동정맥 종주를 마칠 수 있겠다 했는데 학년이 더해질수록 학과공부가 난해해 짬 내기가 점점 어렵습니다. 8월 초 울진의 백암산을 지난 후, 두 달을 쉬었다가 검마산 자연휴양림을 출발해 한티재까지 진출하고나서 또 다시 세 주가 지났으니 종주산행에 익숙해진 제 몸이 낙동정맥을 오르자며 안달을 부릴 만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꿩이 안 된다면 닭이라도 잡아야하는 것이 아닌가해 생각해낸 것이 한북수락지맥 종주였습니다. 지난 3월 청학리의 43번 국도에서 첫 구간 산행을 마친 한북수락지맥종주는 집에서 들머리까지 이르는데 한 두 시간이면 충분해 기말시험 준비와 병행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8개의 지맥 중 한북수락지맥만 마치지 못한 것이어서, 이참에 나머지 구간을 마저 종주해 한북정맥 8지맥 종주를 마무리 짓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눈 딱 감고 수락지맥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주력이 좋은 종주꾼들은 한북수락지맥의 전 구간 종주를 단 두 번의 출산으로 끝내지만, 걸음이 느린 저로서는 전체를 그 두 배인 네 구간으로 나누는 것이 무리가 안 될 것 같아 이번 산행의 끝점을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의 안부인 덕릉고개로 잡고 아침 10시가 다되어 집을 나섰습니다.

 

 

  낮 12시15분 43번 국도를 출발했습니다. 청학동 시내에서 하차해 들머리를 찾기까지 반시간 넘게 걸린 것은 지도상의 지명을 아는 분들을 찾기 힘들어서였습니다. 물어물어 찾아간 숫돌고개에서 조금 떨어진 43번국도상의 고갯마루에 올라 들머리를 사진 찍은 후 숫돌고개로 되돌아가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녹색철조망울타리 오른 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20분여 서쪽으로 진행해 벙커가 들어선 해발176m봉에 도착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오른 쪽 갈림길을 지나쳐 헬기장까지 되올라가느라 십 수분을 까먹었습니다. 헬기장 바로 아래 모래적재함 앞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얼마간 내려가다가 시멘트 구축물사이로 난 사기막고개(?) 길을 지나자 다시 오름길이 시작됐습니다.

 

 

  13시25분 해발250m대의 능선삼거리에서 20분여 쉬었습니다. 이번 학기 들어 방송대 공부에 쫓겨 예전처럼 산을 다니지 못해서인지 1시간 남짓밖에 걷지 않았는데 숨이 차고 힘이 들어 옥류폭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능선삼거리에서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올라가는 길에 암릉 지대를 몇 곳 지나면서 아슬아슬함을 느낀 것은 코스가 특별히 험해서가 아니고 4년 전의 용화산 추락사고로 더욱 심해진 바위공포증 때문이었습니다. 왼쪽으로 절이 보이는 슬라브 길의 암릉지대를 지나고 로프 줄을 잡고 올라선 능선에서 곱게 물든 진적색의 단풍에 눈길을 주고 나서야 이 산이 가을의 절정을 맞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465m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 약수터에 다다른 시각이 14시46분이었습니다.

 

 

  15시22분 해발638m의 수락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약수터에서 10분을 걸어 올라선 “기차바위우회길”의 표지목이 세워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장암동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해발608m의 “홈바위”의 표지목에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10분 남짓 걸어 수락산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선 수락산 정상은 서울근교의 명산답게 평일인데도 오른 분들이 꽤 많아, 사방을 휘둘러보며 가을 산의 풍경을 사진을 찍기까지 얼마간 기다려야했습니다. 다섯 해만에 다시 오를 만큼 아주 뜸하게 수락산을 찾은 것은 수락산의 암릉 길에 신경이 쓰여서인데, 종주 중인 한북수락지맥이 이 산을 지나가 이 산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17시29분 덕릉고개에 내려서 한북수락지맥의 2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치마바위를 지나 16시20분 경 도솔봉 기점에 도착했습니다. 해발540m의 도솔봉 앞 분기점에서 마루금은 왼쪽으로 확 꺾여 동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372.6m봉의 능선에서 3-4분을 더 걸어 송전탑을 만났습니다. 길은 다시 오른 쪽으로 방향이 바뀌어 남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잠시 쉬면서 뒤를 돌아보자 암봉인 도솔봉이 “큰 바위 얼굴”이 되어 제게 다가왔는데, 정작 이 산의 정상은 먼발치로 물러나 있어 자그맣게 보였습니다. 바위 길은 벌써 끝났고 내려가는 능선 길이 완만해 저녁녘의 하산 길이 마냥 편하고 넉넉했습니다. 군부대 울타리 오른 쪽으로 난 길로 진행해 덕릉고개에 이르러 다리 건너 만난 초병에 바로 아래 도로로 내려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이 초병이 일러준 대로 불암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왼쪽으로 내려가 덕릉고개 고갯마루에 도착했습니다. 길 건너 군부대 정문 옆에서 2-3분 기다렸다 시내버스에 올라 당산역으로 옮겨 지하철 4호선에 몸을 싣는 것으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다섯 해만에 다시 오른 수락산은 옛 그대로였습니다. 암릉 길을 다듬어 나무계단 길을 놓은 몇 군데를 빼고는 길도 옛길 그대로였습니다. 서울의 동쪽 끝에 붙어 있어 노원구와 도봉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수락산 산줄기를 남북으로 종주하면서 북쪽 건너 정좌한 북한산과 도봉산도 조망했습니다. 하나 아쉬웠던 것은 이번 산행이 산줄기를 이어가는 종주산행이라서 계곡에서나 볼 수 있는 수락(水落)의 풍경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북송시대의 명문인 구양수(歐陽修)는 그의 수필집 취옹정기(醉翁亭記)에서 산간의 가을 모습을 풍상고결(風霜高潔)로, 겨울 풍경은 수락이석출(水落而石出)로 묘사했습니다.

 

 

“바람이 높은데서 불고 서리가 깨끗하더니(風霜高潔), 계곡에는 물이 빠져 바위가 드러난다(水落而石出).” 

 

(2007년11월23일자 동아일보 “한자이야기” 참조)

 

 

 

  이번에 오른 수락산(水落山)에서 제가 만나보기를 원한 수락(水落)은 물이 빠져 바위가 드러나는 수락(水

 

落)이 아니고 두 곳의 높이 차로 물이 떨어지는 수락(水落)입니다. 수락산에는 낙차 크게 물이 떨어지는 폭

 

포가 여러 곳 있으니, 수락8경에 들어 있는 옥류폭포, 은류폭포와 금류폭포 등이 그것들입니다.이번 산행이

 

종주산행이어서 수락(水落)을 만나 보지 못했지만 오는 겨울에 이 산을 다시 찾아 구양수가 읊은 “수락이석

 

출(水落而石出)”의 '수락(水落)'과 낙차 크게 떨어지는 '수락(水落)'의 빙폭을 함께 볼까 합니다.

 

 

 

 

 

 

                                                                      <산행사진>

 

 

 

 

 

 

 

 

 

 

 

 

 

 

 

 

 

 

 

 

 

 

 

 

 

 

 

 

 

 

 

 

 

 

 

 

 

 

                                      

    

 

 

                                                   한북수락지맥 종주기1

 

                                

                                 *지맥구간:한북수락지맥 분기점-용암산-43번국도

                                 *산행일자:2012. 2. 5일(일)

                                 *소재지   :경기남양주/포천

                                 *산높이   :용암산477m, 소리봉536m

                                 *산행코스:축석고개-한부수락지매분기점-용암산-소리봉

                                                -비루고개-43번국도(숫돌고개)

                                 *산행시간:8시30분-18시23분(9시간53분)

                                 *동행 :나홀로

 

 

 

 

  우리 선조들은 일찌감치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산자분수(山自分水)의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산자분수의 또 다른 표현은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산줄기는 물을 가르기에 크고 작은 물줄기의 울타리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한남정맥, 속리산에서 분수령에 이르는 백두대간 일부, 그리고 한북정맥이 어울려 한강이라는 물줄기를 둘러쌀 수 있는 것도 산자분수의 원리 덕분입니다.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분기된 한북정맥이 파주의 장명산에 이르는 까지 가지 친 산줄기가 꽤 많습니다. 우리 산 꾼들은 그중 남한 땅의 대표적인 산줄기 8개를 골라 ‘한북정맥 8지맥’이라 이름 붙이고 이 지맥들을 종주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7년 전 오두지맥에 첫발을 들인 후 천마지맥, 감악지맥, 왕방지맥, 화악지맥, 연인지맥과 명성지맥을  종주했고 수락지맥 하나만 남겨 놓았습니다.

 

 

  수락지맥이란 다름재 인근의 무명봉에서 한북정맥과 나뉘어져  아차산에 이르는 산줄기로 그 전장이 약 40Km에 달합니다. 중량천의 동쪽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수락지맥 종주를 서두른 것은 이 지맥이 광릉수목원을 지나 용암산 일대가 입산금지지역으로 묶여 있어서입니다. 눈이 쌓인 한 겨울에는 아무래도 건조한 봄철보다 불이 날 염려가 적어 단속이 느슨하리라 판단하고 어제 수락지맥 종주에 나섰습니다. 별 탈 없이 입산금지구역을 통과했지만 용암산 일대를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2시간 남짓 동안 내내 마음을 졸였습니다. 남은 구간은 수락산, 불암산과 아차산 등 길이 열려 있는 산들로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통과하지 않아도 되어 이번 산행으로 큰 걱정 하나 던 셈입니다.

 

 

  아침8시30분 축석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의정부역에서 대진대학교로 가는 버스에 오른 지 25분가량 지나 축석고개 검문소 앞에서 하차해 남동쪽으로 난 차도를 따라 10분 가량 걸었습니다. 포유 레스토랑 앞에서 산행채비를 마친 후 마침 만난 주민 한분이 일러준 대로 공사장 앞길을 따라올라 한북정맥 능선에 발을 들였습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온 산이 새하얗습니다. 네 해 전 한북정맥을 종주할 때 이 길을 걸었을 때와 달리 큰 나무들이 쓰러져 길을 막고 있는 것이 꽤 여러 곳 있었습니다. 많이 마루금에 걸터앉은 군부대를 왼쪽으로 끼고 에돌아가는 중 철조망울타리 안의 군견들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짖어대 정신이 없었습니다. 군부대가 끝나는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가 안부사거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대로 직진해 십 수분을 걸어가다 봉우리삼거리에서 표지기를 보았습니다. 이 표지기가 한북정맥 표지기라면 수락지맥 분기점이 바로 이봉우리라고 판단해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5-6분가량 지나 아래 쪽 마을을 보고 길을 잘못 들었다 싶어 일단 안부사거리로 원 위치해 성봉현님의 산행기를 꼼꼼히 읽었습니다. 이 안부에서 북쪽으로 난 넓은 임도는 한북정맥의 다름재로 이어지는 새 길이었습니다. 수 년 전 한북정맥 종주시 이 길을 보지못해 이곳이 수락지맥이 갈리는 분기점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엉뚱한 곳에서 분기점을 찾아 헤매다 되돌아온 것입니다.

 

 

 

  10시41분 한북수락지맥에 첫 발을 들였습니다. 축석고개에서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의 분기점에 이르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려 이번 종주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안부사거리에서 직진하여 표지기가 걸린 봉우리까지는 방금 걸은 길이어서 속도를 냈습니다. 이번에는 오른 쪽으로 가지 않고 표지기가 걸려 있는 왼쪽으로 꺾어 진행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 묘지가 있는 능선을 걸어 올라선 나지막한 구릉에서 직진해 내려가다 아닌 것 같아 원위치하자 남쪽으로 표지기가 보였습니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해 올라선 바위 구릉에서 조금 내려가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임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 만난 중말마을을 드세게 합창하는 견공들이 거슬려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 쪽으로 에돌아갔습니다. 다시 산길로 들어가 올라선 나지막한 구릉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계반대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이 후미진 시골에 산을 깎아 지은 번듯한 양옥집들이 외지인들이 들어와 새로 지은 듯해 능선에서 내려다 본 마을에서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12시6분 “소풍길(무지랭이) 3.0Km/소풍길(현충탑) 3.0Km” 표지목이 세워진 안부사거리를 지났습니다. 외지인 마을(?)을 왼쪽으로 끼고 에도는 능선 길은 간벌된 나무들이 길을 막아 걷기에 많이 불편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다 234m봉 바로 밑에서 왼쪽으로 꺾어 공장건물 뒤 안부 사거리로 내려갔습니다.  “소풍길(무지랭이) 3.0Km/소풍길(현충탑) 3.0Km” 표지목이 세워진 사거리에서 직진해 임도를 따라 5-6분 진행하다 눈이 녹은 묘지에서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MTB 바이커 두 명이 앞서 지나간 임도를 따라 걸으면서 마루금에서 비껴났다 싶었지만 용암산으로 가는 길은 틀림없는 것 같아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얼마간 진행해 오른 고갯마루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자 꽁꽁 얼은 계곡이 나타나 당혹스러웠습니다.

 

 

 

  13시47분 해발477m의 용암산에 올랐습니다. 얼음장 빙판을 사진 찍은 후 비닐하우스가 지어진 밭가로 난 길을 따라 용암산 쪽으로 걸어가다 하산하는 한 분에게서 이 길이 앞에 보이는 용암산으로 이어짐을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 분이 앞 봉을 소리봉이라 한 것은 용암산을 잘 못 알고 일러준 것이리라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밭이 끝나는 곳까지 큰 길을 따라 걸어가다 왼쪽 능선으로 치올라갔습니다. 마루금을 제대로 밟았다면 벌써 만났을 송전탑을 한참 에돌아 올라선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르다 얼마 후 광릉수목원에서 세운 입산금지안내판을 보고 제가 걷는 길이 마루금이 확실하다 했습니다. 오른 쪽으로 이동해 만난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오르면서 먼저 오른 분들이 힘들어한 길이 이 길이다 한 것은 용암산 정상까지 강파른 길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아이젠을 차지 않았다면 눈 덮인 길이 미끄러워 오르기가 만만찮았을 비알 길을 쉬지 않고 오르다 오전 10시 반에 43번국도를 출발했다는 한 분을 만나 앞 봉우리가 소리봉이 아니고 용암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무려면 지도가 틀리랴 했습니다. 밭이 끝나는 곳에서 고도를 300m 가까이 높여 올라선 용암산 정상에 삼각점에 세워졌고 태양열 전지판이 설치된 시설물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북동쪽의 죽엽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지만 전망이 좋지 않아 잠시 멈춰 숨을 돌린 후 오른 쪽으로 꺾어 소리봉 쪽으로 향했습니다.

 

 

 

  14시54분 해발 536m의 소리봉에 올라섰습니다. 오름 길에서는 몰랐는데 남서쪽으로 진행하면서 눈이 아이젠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큰 덩어리로 불어나는 바람에 스틱으로 이 눈덩이를 떼어내느라 빨리 걸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 만난 임도를 따라 걷다가 이내 산길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한 봉우리를 넘어 다시 임도로 내려선 것은 응달진 임도의 눈은 햇볕이 닿는 능선의 눈과 달리 구두에 들러붙지 않아서였습니다. 임도를 따라 남쪽으로 진행하다가 소리봉 분기점을 지나칠 것 같아 다시 산길로 올라갔습니다. 이미 분기점을 지나친 것을 알고 광림수목원의 최고봉인 소리봉을 이 때 안 오르면 언제 오르랴 싶어 내친 김에 소리봉을 오르자며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비알 길을 오르고 바위 길을 지나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소리봉에 오르자 예정에 없었던 봉우리를 오르느라 시간을 까먹었다 싶어지자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곧바로 하산하기 시작해 25분 만에 소리봉 갈림길인 402m 봉 앞의 수락지맥으로 복귀했습니다. 왼쪽으로 꺾어 7-8분을 진행해 “동북아산소나무유전자 보전원” 조성을 위해 나무들을 베어낸 능선 길에 이르렀습니다.

 

 

 

  16시35분 비루고개에 내려섰습니다. 벌거벗긴 능선의 구릉에 오르자 사방이 탁 트여 사진 찍기 딱 좋았습니다. 가져간 귤을 까먹으며 십 수분을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비루고개를 향했습니다. 포천의 각흘산 능선을 빼어 닮은 벌거벗은 이 능선 오른 쪽 사면의 나무들을 모두 베어 낸 것은 “동북아산소나무유전자 보전원”을 조성하기 위한 것 같았습니다. 개활지 능선이 끝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다가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선 322m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갔습니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224m봉에서 조금 내려가 도착한 비루고개에서 잠시 머뭇거린 것은 이번 종주산행을 여기서 접을까 해서였는데 제 뒤를 따라 오다 지름길로 질러 먼저 온 몇 분들이 43번 국도까지 2km밖에 안 남았으니 그냥 가도 충분하다고 해 당초 계획대로 43번 국도까지 가서 산행을 마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18시23분 43번 국도에서 수락지맥 첫 구간 종주산행을 마무리 졌습니다. 비루고개를 같이 출발한 몇 분들을 따라가다 이내 힘에 부쳐 먼저 가시라며 인사를 한 후 제 속도대로 걸었습니다.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남은 지맥 길에 자리한 최고봉이 300m 높이여서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할 정도로 몸이 조금 지쳐 있었습니다. 눈사람이 앙증맞게 서 있는 300m봉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면서 과일로 에너지를 충전해서인지, 아니면 서녘의 붉은 해가 서둘러 해넘이를 준비하는 것을 보아서인지 저도 모르게 두 다리에 힘이 붙어 속도를 냈습니다. 깃대봉을 지나 오른 쪽 아래 샘터가 있는 펑퍼짐한 안부를 지나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일찌감치 헤드랜턴을 켰지만 어둠이 완전히 장막을 내린 것은 해가 지고도 반 시간가량 지난 후여서 완전히 캄캄해지기 직전에 43번 국도에 도착했습니다.  도로변 묘지에서 옷을 갈아 입은 후 43번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길을 건너 청학동 시내 아파트단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십분 넘게 걸어가 33번 마을버스를 탔습니다. 반시간 조금 못되어  당산역에 도착해 산본 행 전철에 올랐습니다.

 

 

  광릉수목원은 18년전인가 한 번 집사람과 함께 들른 기억이 납니다. 거의 매주 한 번 산을 오르는 제가 따로 짬을 내어 수목원을 찾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제껏 나무들의 자연박물관인 수목원을 제대로 탐방하지 못했습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산림에 의지해 사는 모든 생물들에 최고의 안식처로 자리매김한 수목원을 보는 시각이 나이가 들면서 가볼 만한 곳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산림이 주는 정중동(靜中動)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광릉수목원을 대표하는 식구는 단연 나무입니다. 나무들이 자라 숲을 만들고 이 숲속을 보금자리로 해서 각종 동식물이 자라고 있는 곳이 수목원입니다. 조선조 최고의 악장 용비어천가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인다고 찬한 문구가 나옵니다.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자리를 지키는 나무는 분명 항상 움직이는 동물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얼핏 보면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 나무들이 항상 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땅속의 물을 빨아올려 나뭇잎에 공급해 녹음을 만들고 꽃을 피우는 일을 나무들이 맡아 해내고 있습니다.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들에도 이 물을 공급해 나무들이 긴 세월을 버텨낼 수 있도록 해줍니다. 뿌리 깊은 나무라 해서 바람에 아니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언제 허리를 분질러먹을 줄 몰라 얼마간 바람에 버티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바람 부는 방향으로 재빨리 등을 굽힐 줄 아는 것이 나무들입니다. 말없이 한 자리를 지키면서 할 일을 다 하는 나무들이 제게 전하는 메시지는 정중동의 진정한 의미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나무들을 두고 하느님이 만드셨다고 극찬한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Joyce Kilmer)의 시 "나무"의 전문을 옮겨 놓으며 첫 구간 종주기를 맺습니다.

 

 

 

 

 

                                    나무(Trees)

 

 

 

 

 

나는 생각한다,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I think that I shall never see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A poem lovely as a tree

 

 

 

대지의 단물을 흐르는 젖가슴에                A tree whose hungry mouth is prest

 

굶주린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Against the earth's sweet flowing breast

 

 

 

온 종일 하느님을 보며                            A tree that looks at God all day

 

잎이 무성한 팔을 들며 기도하는 나무:       And lifts her leafy arms to pray  

 

   

 

여름엔 머리칼에다                                 A tree that may in summer wear

 

방울새의 보금자리를 치는 나무;               A nest of robins in her hair

 

 

 

가슴에 눈이 쌓이는;                               Upon whose bossom snow has lain

 

또 비와 함께 다정히 사는 나무.                Who intimately lives with rain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 뿐.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