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지맥·분맥·단맥/한북정맥 분기지맥

한북천마지맥 종주기(2차)

시인마뇽 2012. 1. 16. 08:22

                                             한북천마지맥 종주기5(최종회)

 

              *지맥구간:먹치고개-예봉산-천주교공원묘지입구

              *산행일자:2007. 7. 15일

              *소재지  :경기남양주

              *산높이  :갑산547m/적갑산561m/예봉산683m/직녀봉590m

              *산행코스:먹치고개-갑산-적갑산-예봉산-직녀봉-천주교공원묘지입구

              *산행시단:9시48분-18시18분(8시간3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24기 이규성, 27기 송기훈, 29기 박웅경, 유한준, 정병기)

     

 

  어렸을 때 어른 들이 서로 족보를 따지는 것을 보고 할 일이 저리도 없으실까 정말 못마땅해 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족보논쟁은 양반과 상놈 논쟁으로 번졌고 양반가문을 몰라보는 이 세상이 말세라는 식으로 끝을 맺기에 족보는 사회이동을 가로막는 봉건적 잔재로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족보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바꾼 것은 자식들을 낳고 기른 후의 일로 족보란 제가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를 알려주는 좌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정치시킬 수 있는 좌표가 없다면 광장에 내던져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치감각을 잃어 자아를 상실하게 됩니다. 어려서 내버림을 당한 아이들이 성장해서 낳은 부모를 찾는 것은 효도하고 싶어서기보다는 스스로의 좌표를 확인하고 자아를 되찾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설사 다른 사람들 앞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족보라 하더라도 스스로가 자식들에 더 이상 부끄러운 족보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자성의 계기가 되는 것만으로도 족보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요즈음 부쩍 관심을 기울이는 족보는 가문의 족보가 아니고 한반도 산들의 족보입니다. 사람들이 오른 봉우리가 어느 산줄기에 속해 있고 그 산줄기를 타고 계속 가면 어디에 닿을까 하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을 주고 있는 족보가 있습니다. 정조 때 편찬된 신경준의 산경표가 바로 그 것입니다. 족보가 가문의 체계도이라면 산경표는 우리나라 산줄기의 체계도입니다. 우리 국토의 척추는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입니다. 이 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져 나오고 이 정맥에서 다시 분기된 지맥들을 일목요연하게 표를 만들어 정리한 것이 산경표입니다. 최근 지맥에서 갈라진 산줄기를 분맥 또는 단맥으로 명명하고 하나하나 밟아가며 족보를 보완해 나가는 몇몇 분들의 노력 덕분에 머지않아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가 대대적으로 증보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경동동문산악회의 족보탐방은 한북천마지맥 종주로 시작됐습니다.

시작은 지맥 종주로 미미하나 끝은 대간 종주로 창대하리라는 믿음을 공유한 것이 한북천마지맥 종주를 마무리하고 나서 얻은 가장 큰 보람입니다. 지난 3월 한북정맥의 수원산 아래 서파/포천/명덕온천으로 갈리는 고개마루 삼거리에서 한북천마지맥에 발을 들인 지 넉 달 만에 팔당변 천주교공원묘지입구에서 종주산행을 마무리하기까지 총 5회를 출산했습니다. 처음 종주에 참여한 5명의 대원들 모두 50여Km의 지맥 길을 빼놓지 않고 전부 밟아 완주를 한 것은 대간완주에 비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작은 시작으로서는 충분히 의미 있는 쾌거입니다. 무릎통증으로 첫 회부터 고전했던 송기훈 부회장은 영국출장으로 합류하지 못한 구간을 회사직원들과 함께 했고, 중국에서 비행기를 제 때 잡지 못해 불참한 유한준 동문도 하루를 날 잡아 혼자서 뛰었으며, 다른 산악회의 시산제에 참여하느라 한 구간을 빼먹은 이 규성회장 역시 두 구간을 연이어 한번에 뛰는 등 착실히 자율학습을 해 전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했음은 분명 자랑할만한 새로운 기록입니다. 모든 대원들이 오는 9월부터 한북정맥 종주 길에 다시 나서겠다고 뜻을 모은 것도 지맥종주를 완주한 성공적인 기록덕분입니다.  


  아침 9시48분 먹치고개를 출발해 마지막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청량리역에서 8시38분 발 전철을 타고 덕소 역으로 가서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먹치고개까지 가는데 약 1시간이 걸렸습니다. 먹치고개에서 서쪽으로 난 큰 길을 따라 4-5분을 걷다가 오른 쪽 산소를 지나 지맥 길로 올라선 대원들은 전 구간 완주를 예정한 5명과 새로 동참한 2명 등 모두 7명이었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자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남진 길이 전혀 덥지 않았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걸어 다다른 해발378.3m의 큰명산(?)에서 숨을 고른 후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갑산으로 향했습니다. 무릎수술을 얼마 앞둔 송부회장의 고군분투를 돕고자 다른 때보다 더 자주 쉬었다 가기로 한 터라 모처럼 산행이 여유로웠습니다. 2년 전 4월 쏟아지는 폭우에 모든 동물들이 숨죽이고 숨어 있을 때 저 혼자서 이 길을 걸어 오르며 이 산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저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산경표를 편찬한 여암 신경준이 길은 지나가는 사람이 임자라고 일렀다는 얘기를 듣고 제 생각이 주제넘은 것만은 아님을 알았습니다.


  11시 정각 해발 547m의 갑산에 올랐습니다.

큰명산에서 봉우리를 4개 넘고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헬기장을 막 지나 갑산에 다다랐습니다. 산불감시카메라가 바위 위에 세워진 갑산에서 조금 내려와 안부에 내려서자 시야가 탁 트여 가깝게는 운길산이 멀리로는 용문산과 북한산 및 도봉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갑산에서 밋밋한 길을 따라 걸어 헬기장을 지난 다음 다다른 새우재/구선동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새재고개 가는 길이 엄청 가팔라 그동안 조용했던 송부회장의 무릎이 말썽을 부릴까 염려되었습니다. 탈 없이 새재고개로 내려선 것을 보고 송부회장도 지맥종주를 깔끔하게 끝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12시6분 운길산과 예봉산으로 갈리는 삼거리봉우리인 459.3봉에 올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갑산에서 내려선 새재고개는 사통팔달의 십자안부로 의자가 놓여 있고 운길산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사시사철 물이 나오는 샘물이 있어 모두가 쉬어가는 고개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예봉산 지역이어서 이제껏 걸어온 갑산 길과는 달리 꽤 많은 분들이 산길을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새재고개에서 나무계단을 올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맥 길은 459.3봉까지 오름 길이 계속됐습니다. 봉우리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자 길도 넓고 오르내림도 별로 없어 오른 쪽으로 연세대농원으로 갈리는 안부삼거리로 내려서기까지 산행이 더 할 수 없이 편안했습니다.


  13시41분 패러글라이딩활공장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굽이도는 한강을 조망했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한 두 봉을 더 넘어 적갑산 바로 못 미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방태산을 다녀오느라 밤늦게 집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해 다른 대원들이 해온 먹거리를 고루고루 얻어먹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25분을 걸어 오른 쪽이 탁 트인 활공장에 도착했습니다. 하남과  덕소는 물론 서울의 거의 전 지역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활공장에서 조망한 한강의 물줄기는 완연한 곡선으로 마냥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서울을 남북으로 가른 한강의 힘이 저 부드러움에서 나온 것이라면 한강이야말로 외유내강의 표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시9분 해발683m의 예봉산을 올랐습니다.

다산 정약용 삼형제가 올라와 학문을 논했다는 철문봉으로 올라섰다가 헬기장이 있는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다시 한번 숨 가쁘게 올라선 봉우리가 예봉산으로 북한강과 남한강, 그리고  이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모두 조망되는 훌륭한 전망지이고 간이매장이 있어서인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됐습니다. 오른쪽 길로 하산해 팔당 가서 딱 한잔하면 정말 좋겠건만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이번 산행이 지맥종주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마루금은 동쪽 안부로 내려섰다가 해발 587m의 율리봉으로 이어졌습니다. 15시에 오른 율리봉은 안내문에 따르면 스스로를 철문으로 부르며 다산 정약용의 후학을 자처했다는 정화성 선사가 밤이 많은 산에 있는 봉우리라 하여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16시4분 해발 590m의 직녀봉에 올랐습니다.

율리봉에서 고도를 200m 가량 급격히 낮추어 내려선 사거리안부에서 직녀봉으로 오르는 길이 마지막 깔딱 길이었습니다. 일명 귀티 나는 예빈산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직녀봉은 조금 떨어진 견우봉과 마주하고 있어 자연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생각났습니다. 견우와 직녀의 러브스토리가 많은 사람들에 감동을 주어 회자될 수 있는 것은 일년에 딱 한번 만나고 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매일 밤 만난다면 까마귀와 까치가 매일 밤 오작교를 놓아줄 수도 없는 일이고 또 매일 눈물을 흘릴 수도 없어 칠월 칠석 날  비가 내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리되면 이들의 만남에서 감동적인 요소가 모두 사라져 전설로 승화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콩쥐밭쥐전에 나오는 대로 계모 배씨의 방해로 외갓집 잔치에 가지 못하고 겉피 석 섬을 마당에 널어놓고 베를 짜고 있는 콩쥐를 베틀에서 내려오게 한 후 순식간에 베 한필을 다 짜고 새로 지은 옷과 댕기 및 신발 한 벌을 콩쥐에 내준 직녀의 선행이 있었기에 까마귀와 까치들이 오작교를 놓아 주었을 것입니다. 7년 전에 먼저 간 집사람을 이제라도 만나볼 수 있다면 견우와 직녀의 연례적인 만남보다 훨씬 극적인 일일 텐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것은 그동안 제가 남들에 베푼 덕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럴 것입니다. 견우봉은 직녀봉보다 고도는 낮았지만 한강전망의 최적지였습니다. 두물머리가 바로 아래 내려다보이는 견우봉에서 사진들을 찍어대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습니다만, 빼어난 조망이 긴 시간의 산행피로를 한방에 날려 보냈습니다. 지맥완주를 눈앞에 둔 대원들에 제공되는 최고의 보너스인 견우봉을 내려서기가 정말 아쉬웠습니다.


  18시18분 천주교공원묘지 입구 정류장에서 한북천마지맥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견우봉에서 승원봉을 거쳐 신당동 교회가 조성한 천주교공원묘지로 내려섰습니다. 다리가 아파 지맥종주에 참여하지 못한 24기 이길호 회원이 저희들의 완주를 축하하고자 벌써부터 덕소역에서 기다리고 있어 이회장을 비롯한 3명이 먼저 출발했습니다. 공원묘지 입구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누구보다도 힘들게 한북천마지맥을 완주한 송부회장에 하이파이브로 축하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자그마한 지맥종주기념패는 뒤풀이 자리에서 증정되었습니다.

이어서 술잔을 치켜들고 큰 소리로 지맥완주를 자축했습니다. 당연 환희의 자리였습니다. 감사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결의의 자리였습니다.


  3월초 회장으로 취임하여 복잡했던 산악회문제를 쾌도난마로 풀어가고 정상궤도로 올려놓은 24기의 이규성 회장께 우선 감사말씀 드립니다. 회장을 보필하며 총무 업무를 함께해온 27기의 송기훈 부회장에 훈장이라도 수여하고 싶은 것은 부실한 다리로 완주하느라 누구보다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29기의 유한준, 정병기 동문에도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같이 전합니다. 또 양주와 북한 술을 준비해 모두에 한 잔씩 따라 준 24기의 이길호 동기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두 구간을 같이 종주한 29기의 박웅경 동문도 고맙고, 한북정맥종주에 동참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한북천마지맥을 먼저 밟아 길을 내준 많은 분들도 고맙고, 언제고 그 자리에서 저희들을 반겨준 한북천마지맥의 수많은 연봉들에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할 수 있도록 정맥과 대간 길 하나하나를 종주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한북천마지맥 종주기를 모두 맺습니다. 

 

 

                                                   ,산행사진>

 

 

 

 

 

 

 

 

 

 

 

 

 

 

 

 

 

 

 

 

 

 

 

 

 

 

 

 

 

 

 

 

                                                      


                                          한북천마지맥 종주기4

 

            *지맥구간:마치고개-백봉산-먹치고개

            *산행일자:2007. 6. 17일

            *소재지  :경기 남양주

            *산높이  :백봉587m/고래산529m

            *산행코스:마석경성아파트-마치고개-백봉산-수레넘어고개-고래산-먹치고개 

            *산행시간:9시11분-16시56분(7시간4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4명

 


  어제의 종주산행은 새삼 길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고마운 산행이었습니다.

세 번의 한북천마지맥 종주를 순탄하게 해온 저희들이 어제는 마치고개-먹치고개의 네 번째 구간에서 엉뚱한 길로 잘 못 내려가 다시 올라오느라 40분여 진땀을 흘렸습니다. 재작년 4월 저 혼자서 이 구간을 지났을 때는 모두 세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맸는데 이번에는 그 때 큰비를 맞으며 학습한 덕분에 백봉산-수레넘어고개의 중간 지점인 송전탑 부근에서 딱 한 번 알바를 했습니다. 이번 알바로 종주산행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고 더 많은 준비와 세심한 운행이 필요함을 배웠기에 먹치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고 가진 뒤풀이에서 중국출장차 이번 산행에  참여하지 못한 한 유한준 동문이 혼자서 이 구간을 알바를 하지 않고 종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데 뜻을 모았습니다. 


  길이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기에 짐승들이 다니는 이동통로를 길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또 어쩌다 한 두 사람이 지나간 곳도 길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은 길이란 많은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산행 중 길 찾기에 애를 먹는 것은 가고자 하는 곳에 아예 길이 없거나 아주 희미하게 나서입니다. 또 길이 여러 방향으로 나있어 어느 길이 제 길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때도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길 찾기의 어려움을 극복한 분들은 바로 개척자이자 지도자 들입니다. 아예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낸 분은 개척자입니다.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극히 한정되어 있어 거의 같은 길만 왔다 갔다 하는 야생동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답답한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여러 길 중에서 한 길을 골라 제 길로 이끄는 사람들을 지도자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길 저 길을 수 없이 다녀서 모든 길이 제 길 같이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산 아래에서 사람 사는 이치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프론티어 들이 있는 가하면  온갖 달콤한 말로 나쁜 길로 내모는 사이비지도자가 있고 제 길을 앞에 두고도 무능해서 엉뚱한 길로 이끄는 무능한 지도자도 꽤 많습니다. 어제 길안내를 잘 못해 죄송했던 제가 새삼 느낀 것은 새롭게 길을 내고 제 길로 바로 이끌어 주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였습니다. 그러기에 알바도 한 인생인 것 같습니다.


  아침9시11분 마석을 조금 못 가 경성아파트 앞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에 출장 간 유한준 동문이 빠지고 동문산악회에 회의장을 내준 조동식 동문이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8시20분 경 청량리 역에서 마석 행 좌석버스에 올라 탄지 50분이 채 안되어 마치고개 바로 밑의 터널을 막 지나 경성아파트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짐을 챙긴 후 아파트단지로 너무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느라 옛길을 따라 지난번에 내려선 마치고개의 마루로 올라서기까지 20분이 넘겨 걸렸습니다.


  9시34분 마치고개에서 왼쪽 산길로 들어서 4구간종주를 시작했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얼마고 오르자 왼쪽 아래에 넓게 자리 잡은 비전힐스의 그린필드가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그 건너 멀리로 용문산 정상과 세모꼴의 백운봉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하늘이 쾌청해 한낮에는 성하의 무더위가 위세깨나 부릴 것 같았습니다. 능선 오른 쪽 아래의 철 지난 스키장이 썰렁해보였습니다. 호평의 대단위아파트단지가 가까이 있어서인지 백봉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습니다.


  10시43분 해발587m의 백봉을 올랐습니다.

스키장 위 암봉을 조금 지나 오른편이 깎아지른 절벽인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돌아 백봉에 다다르자 먼저 오른 많은 분들로 정상이 붐볐습니다.  서쪽 먼 곳에 자리한 북한산과 도봉산의 암봉 들이 너무 산뜻해 한 때나마 바위를 한다고 열 올렸던 대학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내달23일이 제게 록 크라이밍을 가르쳐준 선배 한분이 알프스에서 조난사를 당한지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선배에게서 닉카바지를 물려받으며 열심히 바위를 할 것을 다짐했지만 재주가 기대에 못 미쳤고 졸업하자마자 지방에서 교직생활을 하느라 더 이상 록크라이밍을 하지 못했지만, 그 때 익힌 도전정신만은 그대로 살아있어 저 혼자서 꾸준히 정맥종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선배는 1972년에  한국산악회에서 알프스훈련대로 프랑스에 파견을 보냈을 만큼 뛰어난 크라이머 이면서 기타와 사진에도 조예가 깊은 아티스트였습니다. 후배들에 모범을 보인 지도자이자 알프스에도 새롭게 코스를 낸 개척자였기에 많은 후배들이 따랐습니다. 1977년 7월23일 샤모니 산군의 푀테리봉 남서벽에서 조난사를 당한 선배의 죽음을  이 나라의 원로 산악인 손경석 님도 그의 저서 “등산 반세기”에 글을 실어 슬퍼했습니다. 지맥의 마루금은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을 지나 한강이 보이는 남동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얼마 후 시작된 내림 길이 송전탑까지 계속됐습니다.


  12시15분 40여분의 알바 끝에 다시 송전탑 위치로 되돌아 왔습니다.

백봉에서 한참을 내려가 만난 송전탑에서 조금 올라가 406봉에 다다랐습니다. 2년 전 이곳에서 길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다가 간신히 길을 찾은 터라 이번에도 길 찾기에 과다하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406봉에서 송전탑으로 되돌아가다 만난 첫 번째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난 산줄기로 들어섰습니다. 이제껏 걸어온 길보다 좁기는 하지만 사람 다닌 흔적이 분명하고 지도상의 길과 방향도 같은 데다 2년 전에 지나간 기억이 어렴풋이 나 주저 않고 이 길로 내려섰습니다. 20분 가까이 내려서자 공활지가 나타났고, 골짜기 건너로 점심을 들기로 예정한 339봉이 높이 보여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직감했습니다.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바로 치고 올라가면 339봉에 다다를 것 같아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자 생각보다 계곡이 깊고 숲도 우거져 포기하고 20분 넘게 오던 길로 다시 올라 송전탑으로 원위치 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펴보니 먼저 출발한 데서 송전탑 쪽으로 조금 내려서자 동쪽으로 큰 길이 나 있었습니다. 백봉에서 송전탑에 내려선지 40여분 후에 간신히 제 길을 찾아 동진했습니다만 도가니가 실하지 못해 고전하는 송기훈 부회장에 생고생을 시켜 정말 미안했습니다. 339봉으로 가는 길은 앞 선 알바를 보상할 듯 길이 넓고 편안했으며 길섶의 엉겅퀴 꽃이 눈을 끌었습니다. 송전탑 출발 반시간만에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원두막 같은 쉼터의 339봉에 올라섰습니다. 이 곳에서  40분여 송기훈 부회장이 정성들여 준비한 먹거리를 맛있게 들면서 푹 쉬었습니다.


  13시25분 339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잠시 후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안부에서 맞은 편 봉우리를 향해 십수m를 오르다가 봉우리 중턱에서 오른 쪽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서 지난번에 길을 잘 못 들어 수레넘어 왼쪽 아래 휴게소로 내려선 알바를 피해갔습니다. 오른 쪽 산비탈을 타고 내려가다 묘지를 거쳐서 안부사거리를 지난 후 또 다른 송전탑 앞에 다다랐습니다. 왼쪽 방향의 송전탑을 지나서 산불감시초소에 이르러 급경사의 수레넘어 고개 절개지를 따라 철조망 앞까지 내려섰습니다. 철조망 앞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풀숲을 헤치며 나가다 철조망이 끝나는 곳에서 차도로 내려섰는데 반 팔 차림의 다른 대원들은 이 길을 지나느라 애를 먹었을 것입니다. 차도를 건너 왼쪽 위 고개마루로 오르다가 마루에 다다르기 직전 잠시 쉰 후 오른 쪽 길로 들어선 시각이 13시55분이었습니다.


  14시26분 삼각점이 서있는 320봉에 다다랐습니다.

수레넘어 고개 마루에 조금 못 가 오른 쪽 길로 들어서 몇 걸음 옮겼더니 왼쪽 위로 희미한 길이 나타나 이 길을 따라 능선의 임도 길로 올라섰습니다. 군용도로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임도에는 잡풀이 많이 났고 이런 저런 여름 풀꽃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능선 길에 자리한 해주최씨 상석을 지나 오름 길이 가파른 320봉에 올라서자 지형도에도 없는 삼각점이 세워져 사진을 찍었습니다. 320봉에서 10분도 못 내려가 땅 바닥에 산악군행로 0.5Km 지점이라는 팻말이 쓰러져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다시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마치 사막과 같은 산 사면을 통과해 얼마 후 숲길로 들어서자 나뭇잎 사이로 능선 왼쪽의 골프장이 보였고 오른 쪽 아래로 송전탑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오름 길은 320봉에서 끝났고 320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골프장 절개지 꼭지점에 이르렀습니다. 2년 전에 공사 중이었던 골프장이 완공되어 클럽하우스가 바로 아래 보였고 그 오른 쪽으로 고개를 넘는 포장도로도 보였습니다. 절개면 꼭지점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나무들을 듬성듬성 심어놓은 차도 바로 위의 동물이동통로(?)를 지난 시각이 15시14분이었습니다.


  16시10분 해발529m의 고래산을 올랐습니다.

골프장의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절개면의 흙이 유실되지 않도록 심어 놓은 풀이 제법 자라 이 풀들을 붙잡고 절개면을 쉽게 올랐습니다. 2년 전에 비를 맞으며 이 절개면을 오르기가 정말 힘들었기에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도로공사가 끝나고 풀들을 심어 놓아 다행이었습니다. 절개면을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얼마고 걷다가 이번 산행의 깔딱고개 길을 만났습니다. 20분 가까이 계속된 된비알의 깔딱고개를 눈 딱 감고 단숨에 올랐습니다. 해발470m대의 헬기장에서 깔딱고개 오름은 끝났고 헬기장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지맥 길이 오른 쪽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무릎이 신통치 않은 송부회장과 새로 합류한 조동식 동문은 갈림길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세 명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고래산으로 향했습니다. 낮은 봉우리 2개를 더 넘어 13-4분 후에 삼각점과 철봉이 세워진 고래산 정상에 올라서자 이제껏 걸어온 지맥길이 한 눈에 들어와 반가웠습니다. 북쪽으로 가까이 천마산이 보였고 그 왼쪽 뒤로 철마산이, 오른 쪽 멀리로 주금산이 흐릿하게 보여 저 먼 길을 탈 없이 걸어온 저희들이 새삼 대견스러웠습니다.     


  16시57분 먹치고개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고래산에서 다시 능선삼거리로 내려와 기다리는 일행들과 합류해 물을 들며 잠시 쉬었습니다. 헬기장 바로 위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내려서며 2년 전 혹독하게 알바를 한 지점을 생각했습니다. 헬기장에 오르기 한 참 아래에서 오른 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희미하던 길도 완전히 끊긴 데다 천둥번개가 쳐대어 엄청 무서웠습니다. 골짜기로 내려섰다가 능선으로 올라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정신없이 뛰어 먹치고개 북쪽 아래 한 음식점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능선삼거리를 바로 찾은 것은 무엇보다 날씨가 쾌청해서지만 지난번의 알바경험도 일조를 했습니다. 헬기장-먹치고개 중간쯤에 길 양옆에 서있는 바위를 보고 일행 들 모두 사진을 찍고 가자는 생각을 같이 한 것은 아름다운 정경을 보는 눈들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후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한 참을 내려가 차도가 지나는 먹치고개에 내려섰습니다. 갑산을 넘어 새재고개까지 진출하겠다는 애당초 계획을 수정해 먹치고개에서 종주산행을 마친 것은 송전탑 부근에서 알바를 해 40분을 까먹었으며 날이 무더워지고 길 찾는 데 신경을 써 많이들 피곤해 해서였습니다. 고개마루 음식점 산야에서 간단히 뒤풀이를 마친 후 덕소로 나가 용산행 전철을 탔습니다.


  생전에 선배께서 들려주었던 로제 듀프라의 유작시 “그 어느 날”을 30주기를 맞아 선배의 영령께 올립니다. 선배께서는 샤모니에서 로제 듀프라의 누이동생 앞에서도 이 시(?)를 노래했다 합니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그 어느 날”시의 전문은 꽤 긴데 선배께서 들려준 시는 어떤 영문에서인지 아래와 같이 짧았습니다. 이제 다시 읽어보니 이 시는 듀프라의 시를 빌려 이 시처럼 짧게 사신 선배께서 남기신 유언처럼 들렸습니다. 삼가 편안한 쉼을 빕니다.


                   그  어느 날             

                                         -듀프라- 

          언젠가 그 어느 날 산에서 죽으면

          오랜 산 친구에 전하여 주게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죽음이었다고

          사내답게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전하여주게 다정한 나의 아내에게

          내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살아가 달라고


          자식들에게는 내가 밟던 발자욱들이

          고향바위산에 남아 있다고-


          친구여! 산에 조그마한 케륜을 쌓아서

          무덤을 만들어 주게


                -픽켈을 세워서- 

 

 

                                                       <산행사진>

 

 

 

 

 

 

 

 

 

 

 

 

 

 

 

 

 

 

 

 

 

 

 

 

 

 

 

 

 

                                                  

 

 

                                       한북천마지맥 종주기3

 

 

            *지맥구간:과라리고개-천마산-마치고개

            *산행일자:2007. 5. 20일

            *소재지  :경기 남양주

            *산높이  :813미터

            *산행코스:내방리가양초교-과라리고개-676봉-천마산-마치고개

            *산행시간:11시05분-18시15분(7시간1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5명

             (이규성, 이성종, 유한준, 정병기, 우명길) 

 


  시간을 미분하면 순간이 되고, 순간을 적분하면 세월이 됩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산을 오르면 순간을 다투며 푸르게 변해가는 신록의 숲에 발을 들이게 되고, 억겁의 세월이 정성들여 만든 바위도 오르게 됩니다. 순간과 세월이 모두 시간의 함수라면 5월의 산에 올라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실체를 만져볼 수 없다고 시간의 존재를 잊어버린다면 삶의 자취를 점찍어 나갈 시공의 좌표면도 같이 잊게 되어 살아나가기가 엄청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삶의 현주소가 확인 안 되어 언제 어디에서 온 누구인가를 새까맣게 잊게 될 것이고 앞으로도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계를 만들어 오관으로 확인 할 수 없는 시간을 측정하고 기록해두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즐겨하는 산행도 결국은 그때그때 남기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고 쌓아가 세월을 만들어가는 삶의 한 과정이기에 이 또한 시간의 함수입니다.


  어제는 경동고교 동문들과 함께 천마산 구간의 한북천마지맥을 종주했습니다.

천마산의 산줄기를 타면서 계절의 여왕으로 널리 알려진 5월이 명불허전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하루 산행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어제의 천마산 산행만 같기를 바라는 것은 5월이 준비해 놓은 신록과 바람 덕분입니다. 두 달 전 수원산 줄기에서 한북천마지맥 종주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지맥의 산줄기에 겨울의 잔재가 하나도 가시지 않았는데, 어제 오른 천마산에는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들이 어느새 크게 자라 온 산이 푸르렀으며 산줄기로 올라선 골바람이 적절한 세기로 불어주어 얼마고 걸어도 더운 줄 모르고 한참을 쉬어도 써늘하지 않은 최적의 기온이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길섶의 야생화도 저희들에 곁을 주어 천마산이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쉴 새 없이 하늘거리는 야생화의 청아하고도 아름다운 한 순간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는 민첩성이 돋보인 한 후배의 재빠른 손놀림이나, 오랜만의 장시간 산행으로 지쳐 마지막 얼마동안 다리를 끄는 또 다른 후배의 느린 발걸음 모두 5월의 산줄기가 준비한 시간놀음이었습니다.


  아침11시5분 남양주시 수동면의 가양초교 앞에서 하차하여 길 건너 시멘트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지난 4월에 빼먹은 금단이고개-철마산-과라리고개의 두 번째 구간과 이번 과라리고개-천마산-마치고개의 세 번째 구간을 한번에 종주하는 이규성 회장을 12시 반에 과라리고개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터라 다른 때보다 늦은 9시50분경에 청량리를 출발했습니다. 마석에서 왼쪽으로 꺾어 몽골촌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넘겨 달려 도착한 내방리의 가양초교에서 수산천 오른 쪽으로 나란히 나있는 시멘트도로를 따라 반시간 넘게 걸었습니다. 모내기를 막 끝낸 논과 쓰레질을 해놓고 모내기를 기다리는 논들 모두 전날 내린 비로 물이 가득 차있어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수산천을 건너 왼쪽 산길로 들어선 후 4-5분을 오르자 산소를 끝으로 길이 끊겨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오른 쪽 산등성을 타고 내려가 수산천과 만나는 작은 계곡을 건넜습니다. 합수점에서 남쪽의 산길로 다시 들어서 계곡과 나란히 걸어 오르다가 또 다시 합수점을 만나 오른 쪽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얼마고 걸었습니다. 이내 길이 끊어지고 없어져 오른쪽 산등성을 타고 무조건 지능선으로 올랐습니다.


  13시 과라리고개에 도착해 금단이고개에서 출발한 이 회장을 만났습니다.

지능선에 오르자 왼쪽위로 희미한 길이 나있어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맥의 주능선에 오를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습니다. 얼마 후 만난 묘지에서 몇 분간 쉬다가 약속한 시간보다 반시간 먼저 도착한 이 회장의 전화로 이내 자리를 떴습니다. 12시50분 경 주 능선의 한 봉우리에 올라 지난번에 내려선 과라리고개가 어느 쪽에 자리했는지 잠시 가늠한 후 왼쪽으로 내려서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과라리고개에서 이회장과 해후했습니다. 유한준사장과 이 번에 처음으로 지맥종주에 합류한 이성종사장이 마련한 식단으로 풍요롭게 점심상을 차려 긴 시간 식사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고개도착 30분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비알 길을 20분 가까이 올라 양지봉에 도착했습니다.


15시18분 오른 쪽으로 보광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안부에 도착했습니다.

양지봉에서 내려서 잠시 구릉길이 이어지다가 다시 된비알 길이 시작됐습니다. 신록의 풋풋한 나뭇잎들이 햇빛을 가려주고 골바람이 불어와 능선 길은 더 할 수 없이 선선했습니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야생화를 카메라에 옮겨 담고자 하늘거리는 꽃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셔터를 누르는 정병기 사장의 모습이 진지해보였습니다. 왼쪽으로 갈라진 지능선에 길이 나있는 해발 676미터의 둥글봉(?)에 오르자 발음이 비슷한 제 별명 “둥굴씨”가 생각났습니다. 용인에서 서울을 출퇴근하느라 녹초가 다 된 1980년대의 주말이면 방안에서 빈둥대는 저를 보고 집사람이 “둥굴씨”라고 놀려댔는데 그 후 애들이 다 커서도 계속되어 “여보”를 밀쳐내고 완전한 제 호칭으로 굳어져버렸습니다. 잠시 둥글봉에서 퍼지고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 꽤 깊숙이 보이는 삼거리안부에 내려서자 괄아리고개로 표기한 긴급구조 표지판이 서있었습니다. 안부를 넘는 골바람이 시원해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천마산으로 향했습니다. 


  16시6분 해발812미터의 천마산 정수리에 올라섰습니다.

괄아리고개에서 10분을 걸어 보구니바위 옆 능선길에 오르는 동안 땅바닥에 떨어진 철쭉  꽃을 보았습니다. 지리산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철쭉꽃을 본 것이 지난 주였는데 고위도지방의 천마산에서 벌써 꽃이 진 것은 해발고도가 지리산보다 1,100미터나 낮아서입니다. 보구니바위에서 돌핀샘바위와 전망바위를 지나서 천마산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 길은 이제껏 걸어온 육산의 흙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르락내리락도 급했고 대부분 암릉 길이어서 로프를 잡고 내려서는 등 조심해야할 곳도 있었습니다. 능선 길을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는 산객들의 눈길을 끈 것은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연분홍 꽃의 또 다른 산객이었으니 이 산객은 철쭉꽃의 또 다른 이름으로 진달래와 구별해 연달래로 부르기도 합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암봉의 정상에 오르자 다른 분들이 먼저 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분이 저희 일행 5명의 기뻐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옮겨 담아 주었는데 사진을 찍으며 “들어갑니다”하고 시그널 한마디를 보냈습니다. 이제껏 피사체가 카메라 안으로 들어간 다고 믿어온 제게 거꾸로 카메라가 피사체 안으로 들어간다고 일러준 그 분의 한마디에서 저의 세상 보는 눈이 너무 고답적임을 알았습니다. 거대한 산줄기가 카메라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는 제가 작은 카메라를 웅장한 산속으로 들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은 촌철살인과 같은 “들어갑니다.” 한마디였습니다.


  북쪽 멀리로 주금산의 독바위가 보였고 그 앞으로 철마산도 보였습니다.

남쪽 가까이는 다음에 오를 백봉이 마치고개 건너에 자리하고 있었고 동쪽으로 축령산-서리산 산줄기가 흐릿해 보였으며 서쪽 까마득히 한강의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이 석자만 더 길었어도 손끝이 하늘에 닿을 수 있다하여 천마산으로 불린다는 이 암봉에 석자가 훨씬 넘는 깃봉이 세워졌어도 하늘은 여전히 높아보였습니다. 어차피 손끝에 닿지 못할 하늘이라면 깃발을 세워 소리 없는 아우성을 전하는 편이 옳겠다는 판단에서 이 암봉에 깃봉을 세우고 태극기를 매달았다면 같은 뜻으로 깃봉을 세웠을 주금산, 철마산과 천마산 정상봉을 묶어 한북천마지맥의 국기봉 삼형제로 불러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정상에서 참외를 까먹은 후 마치고개로 향했습니다. 천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맥 길은 경사가 급한 내림 길이 각시붓꽃이 수줍어하는 헬기장까지 이어졌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서 얼마 후 가느다란 나일론 줄이 쳐있는 오른 쪽의 안전한 우회 길을 놔두고 로프를 잡고 절벽을 내려서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18시15분 마치고개로 내려서서 한북천마지맥의 3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절벽의 바위에서 조금 내려서 고도차가 별로 없는 편안한 구릉 길에 발을 들이면서 남은 지맥길이 더도 덜도 말고 이 길만 같으라고 빌었습니다. 더할 수 없이 안온한 이 순간을 적분해 세월 수준으로 끌고 갈 수 있다면 남은 지맥 길이 이 길과 같아 최고의 양탄자 길이 될 수 있을 것을 하면서 이 순간의 스러짐을 아쉬워했습니다. 나무의자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스키장 위 전망지에서 천마산의 점잖은 자태를 카메라에 실은 후 구도로가 지나는 터널 위 마치고개에 이르렀습니다. 길 건너 백봉의 들머리를 확인 한 후 왼쪽의 마석 쪽으로 내려가 아파트 단지 정류장에서 청량리행 버스에 올라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일년 열두 달 중 산행하기 가장 좋은 달은 누가 뭐라 해도 계절의 여왕인 5월임에 틀림없습니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마냥 싱그러워진 신록의 산속에서 7시간여 동문들과 같이 보낸 어제의 천마산 산행은 걸으면서 시간이 멈춰서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순간이 꽤 여러 번 있었던 그냥 보내기 아쉬운 산행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순간은 포말처럼 사라지기에 그새 세월 속으로 숨어버린 아쉬운 순간들을 끄집어 내 산행기를 쓰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산행사진>

 

 

 

 

 

 

 

 

 

 

 

 

 

 

 

 

 

 

 

 

 

 

 

 

 

 

                                     한북천마지맥 종주기2

 

               *지맥구간:금단이고개-철마산-과라리고개

               *산행일자:2007. 4. 15일

               *소재지  :경기 남양주

               *산높이  :철마산711미터

               *산행코스:내방동금단골입구-금단이고개-786.0봉-철마산

                               -과라리고개-팔현2리버스종점

               *산행시간:9시28분-16시48분(7시간20분)

               *동행       :경동 동문산악회 회원

                              (27송기훈, 29유한준/정병기/박웅경)

 


  산을 넘는 길을 고갯길이라 하고 고갯길 중 가장 높은 지점을 고개 마루라 합니다.

이제껏 우리나라 역사가 순탄했다면 고갯길은 바로 새로운 문화교류의 실크로드이고 고개 마루는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나는 통섭의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최근까지 우리나라 역사는 그 반대여서 고갯길은 피난길이었고 고개 마루는 통곡의 현장이었습니다. 십리도 못가서 발 병날 아리랑고개를 넘는 모질게도 애절한 사연들이 단장의 미아리 눈물고개까지 그대로 이어져왔음은 우리 선조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듯 고개가 고난과 절망만을 상징해 왔기에 조상들은 쌀이 떨어지고 보리가 여물기 전 얼마동안 초근목피를 해야 했던 춘궁기를 보리고개라 불렀을 것입니다. 


  어제는 철마산 산줄기를 가로 넘는 과라리고개에서 작가미상의 시 “과라리아리랑”을 읽고 난 후 작은 돌 하나를 주워 고개 마루에 자리한 아담한 돌탑 위에 던져 놓았습니다. “산다는 게 살아간다는 게 모두 구비 구비 돌아 산마루턱에 다다르는 산길과도 같아서” 많이 힘들어하는 뭇 사람들에 “그래, 많이 힘들 재? 여기 잠시 쉬었다 가거라. 긴 숨 한 번 크게 들이켰다가 쭉 내뱉어보아라. 세상사 그리 부러운 님 없을게다.”하며,  이름모르는 작가가 “그래도 어디 찐한 데가 있거든 여기 과라리 고개턱에 무심한 돌 하나를 던지거라.” 하고 권해왔습니다. 이 분이 권하는 대로 저도 돌 한 개를 던져 놓은 후 고개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습니다. 고개란 우리선조들에는 굽이굽이 돌아 올라서야 하는 고난의 마루턱이자 산 오름의 종착점이었지만, 일삼아 종주산행을 계속해온 제게는 산마루에서 내려서는 편안한 쉼터이자 다시 산마루로 올라서는 희망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자, 다시 시작하거라. 가는 길에 행여 고비를 맞거든 스스럼없이 이제 나를 밟고 지나가거라. 무심하게 그냥 무심하게”라고 끝을 맺는 작가의 속삭임이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아침 9시28분 금단골 입구의 공터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경동고교 동문들과 두 번째로 나선 한북천마지맥 종주구간은 금단이고개에서 과라리고개까지의 철마산 구간으로, 첫 번째 주금산 구간보다 코스가 훨씬 짧아 모처럼 느긋했습니다. 청량리역을 7시55분에 출발하는 경춘선 열차를 타고 마석역으로 가는 중 50대 중반의 남자들 몇 사람이 고교시절 수학여행 이후 30여년 만에 친구들과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기차여행이라며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고 여행길에는 옛 친구 같은 기차가, 그것도 KTX가 아닌 무궁화호가 더 잘 어울린다 싶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마석역에서 하차해 시골 역사와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역무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인근 터미널에서 금단골입구까지는 몽골문화촌 행 관내버스로 옮겼는데 기사분의 친절로 정확히 금단골 입구에서 하차할 수 있었습니다. 공터에 세워진 안내판을 일독한 후 잣나무 밭으로 나있는 산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도착한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올라선 것이 계획했던 금단골 계곡산행을 못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였음을 나중에 금단이고개에 올라 확인했습니다. 오른쪽 임도 길을 따라 수분을 걷다가 왼쪽 오름길을 따라 걸어 능선으로 올라서기까지 입구를 출발해 20분이 걸렸습니다.


  10시40분 1차 지맥종주를 마쳤던 금단이 고개에 다다랐습니다.

능선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파른 길을 쉬지 않고 올랐습니다. 아침안개는 완전히 가셨지만 햇살이 퍼지지 않아 비탈길을 올랐어도 그리 땀이 나지 않았습니다. 공터에다 차를 주차한(?) 능선 길 바위에서 쉬어가는 부부 한 팀을 만나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을 앞서갔습니다. 두 헬기장 중간쯤에 우뚝 솟은 543봉에 올라 지맥 길과 합류, 왼쪽으로 내려서 헬기장을 지난 후 금단이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으며 10여분을 쉰 후 2차 지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왼쪽 아래로 금단골계곡 길이, 오른 쪽 아래로 팔야리 골프장 길이 나있는 안부사거리인 금단이고개에서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폐타이어로 교통호를 만든 775봉까지 결코 만만찮은 된비알의 오름길이 계속되어 천천히 올랐는데도 등에 땀이 배었습니다. 능선 길 중간 중간에 소북이 쌓인 낙엽 위를 걷는 소리는 가을철이 아니어도 사각사각 여전히 리드미칼했습니다.


  11시51분 철마산 최상봉인 787봉에 올라섰습니다.

폐타이어의 775봉에서 8분을 더 걸어 헬기장이 들어선 787봉에 다다랐습니다. 넓은 공터의 헬기장 한 끝에 깔끔한 표지석이 세워진 이봉우리를 철마산으로 표기한 산행기가 많이 있지만 국립지리원에서 펴낸 지형도에는 남쪽으로 한참 떨어져있는 711봉을 철마산으로 표기해  혼란스러웠습니다. 대부분의 산들은 주봉과 상봉이 일치하지만 이 산뿐만 아니라 주왕산이나 노추산처럼 서로 일치하지 않은 산들도 더러 있습니다. 이런 경우 공인기관에서 펴낸 지도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제 산행기에는 작은철마산으로도 불리는 711봉을 철마산으로 적어놓습니다. 지난 10월에 오른 축령산과 서리산이 서쪽 건너에 자리 잡았고 그 반대편으로 한북정맥 상의 죽엽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면으로 해발고도 711m인 철마산 정상이, 그 뒤 왼쪽으로 조금 비껴 천마산이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저희들보다 먼저 오른 부부 한분에 부탁해 저희 일행 모두를 사진 찍고 나서 787봉을 떴습니다.


  12시25분 733봉에 도착해 점심을 들었습니다.

787봉을 출발해 안부로 내려섰다가 또 다른 헬기장의 765봉에 이르는 동안 양지를 찾아 나선 양지꽃들이 길 섶에 즐비하게 피어있어 지맥길이 환했습니다. 철쭉과 물푸레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산길을 걸어 765봉에 올라섰다가 가파르게 내려서는 중간에 오른 쪽으로 절골로 내려서는 길이 갈라지는 절고개를 지나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철마산에서 점심을 들겠다는 애당초 계획을 대폭 당겨서 733봉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여럿이서 함께 하는 산행의 즐거움 중 단연 으뜸인 것은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혼자서 산행할 때는 20분을 넘기지 못하는 점심시간이 이번에는 1시간을 꽉 채운 것은 이것저것 준비해온 음식은 물론 이런저런 주고받는 이야기들도 많아서였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러도 춥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충분히 따뜻해서 가능했습니다. 오랜 휴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13시25분에 철마산으로 향했습니다.


  14시8분 해발711m의 철마산 정상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733봉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밧줄을 잡고 직벽에 가까운 암벽 길을 내려섰는데 눈이 쌓인 한 겨울에는 거꾸로 올라서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안부로 내려선 다음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어 태극기가 펄럭이는 암봉에 도착했습니다. 오른 쪽 산 밑에 자리한 철마부대에서 타임캡슐을 묻어놓고 10년만인 2013년에 열어보겠다는 내용을 받침대 철판에 적어놓았는데 내용물이 뭔지는 몰라도 그 기간이 너무 짧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옆의 정상에는 삼각점만 있을 뿐 표지석이 따로 없어 이 봉우리를 철마산 정상으로 알아볼 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싶었습니다. 철마산성의 흔적을 눈여겨보지 못한 채 정면으로 보이는 578봉을 향해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15시37분 과라리고개에 도착해 한북천마지맥의 2번째 구간종주를 마쳤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서서 얼마동안 낙엽이 쌓인 포근한 길을 걸었습니다.  삼거리안부인 쇠푸니고개에서 조금 더 걸어 578봉을 왼쪽으로 에돌았습니다. 다시 만난 능선 길에서 왼쪽으로 90도를 확 틀어 그동안의 남진을 끝내고 동진 길에 들어섰습니다. 578봉에서 과라리고개로 이어지는 능선 길에는 여기 저기 만개한 연분홍 꽃 진달래가 노랑색의 생강나무 꽃들과 어우러져 꽃동산을 연출해 볼 만 했습니다.  과라리고개로 먼저 내려서서 도가니가 아파오기 시작해 뒤쳐져 쉬고 있는 한 후배를 기다리는 동안 돌탑위에 세워놓은 시문 “과라리아리랑”을 정독했습니다. 어느 분이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고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시여서 이 산행기 둘째 단락에 시 몇 구절을 인용해 옮겨놓았습니다.


  16시48분 팔현2리 버스종점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과라리고개에서 왼쪽으로 내려서 오남리저수지 방향으로 하산했습니다. 고개출발 20분 후 쯤 다다른 계곡에 흐르는 물로 손을 닦으며 십 수분을 쉬었습니다.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 한 아주머니로부터 저녁 5시에 오남리로 나가는 마을버스가 있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편안한 쉼을 끝내고 하산 길을 이어갔습니다. 계곡을 건너 큰 임도로 들어섰고 몇 분 후 산속의 요새 같은 집 한 채를 지나 마을의 시멘트길로 들어섰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10분 가까이 걸어 내려가 개천 가 쉼터에 도착해 옛 마을이름이 과라리인 팔현2리 버스 종점임을 확인 한 후 하루산행을 반추했습니다.  


  나뭇가지에서 막 돋아난 연두색의 잎파랑이들이 새 생명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4월의 한 가운데 서서 이제껏 걸어온 고개의 의미변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옛 조상들이 힘들게 살았던 고난의 시대에는 고개는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지만 모두의 노력으로 웬만큼 올라선 고개는 앞으로는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고 새로운 산마루로 올라서는 디딤돌로 변화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금단이고개에서 짊어진 2구간 종주의 짐을 벗어 놓은 과라리고개에다 돌 하나를 던져놓고 하산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에 이 고개에 다시 올라 3구간 종주를 시작할 것입니다. 

 

 

                                                          <산행사진>

 

 

 

 

 

 

 

 

 

 

 

 

 

 

 

 

 

 

 

 

 

 

 

 

 

 

 

 

 

 

 

 

 

 

 

 

 

 

 

 

 

                                         한북천마지맥 종주기1


                   *지맥구간:수원산분기점-주금산-금단이고개

                   *산행일자:2007. 3. 18일

                   *소재지  :경기포천/가평

                   *산높이  :813미터

                   *산행코스:수원산분기점-서파-주금산-시루봉

                                   -금단이고개-팔야리                  

                   *산행시간:9시32분-17시40분(8시간8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이규성대장,송기훈,유한준, 정병기대원)

 


  두 해전과 마찬가지로 어제도 한북천마지맥 종주 길에 주금산을 올랐습니다.

오랫동안 이산 저산을 함께 오른 고교동기인 이 교수가 동문산악회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그동안 부진했던 산악회활동을 활성화하고자 지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보다 많은 회원들의 동참을 끌어내고자 서울근교에서 가깝고 종주 길이 그리 길지 않은 한북천마지맥을 종주하기로 하고 제가 길안내를 맡아 어제 그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한북천마지맥은 한북정맥의 수원산 어깨에서 동남쪽으로 갈려나와 주금산, 철마산, 천마산, 백봉, 갑산, 적갑산, 예봉산과 예빈산을 차례로 지나 팔당의 한강으로 침잠하는 산줄기로 총 도상거리가  50Km 가량 밖에 안 되어 누구라도 쉽게 도전해볼만한 종주코스입니다. 전문 종주꾼들이라면 천마산의 마치재에서 한 번 끊고 두 번에 마치는 이 코스를 보다 많은 동문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총 4회로 나누어 종주하기로 했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재미가 없다면 참으로 황량할 것입니다.

가까이는 부모형제 등 친척들의 혈연을 시작으로 지연과 학연을 넓혀가고 급기야는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연을 확대해가는 것이 요즈음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말로는 인연이고 영어로는 휴먼네트워크(Human Network)이겠는데 왜인지 연을 중시하면 뒤쳐진 사람 같고 네트워크(Network)를 들먹이면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처럼 보이는 것은 전통적인 혈연, 지연과 학연이 그동안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연의 폐쇄성을 극복하는 데는 솔직하고도 개방적인 대화가 필수적인데 이러한 대화는 산행을 하며 자연의 힘을 빌릴 때 훨씬 수월해집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산행 중 처음만나는 사람들과도 손쉽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산이라는 자연의 장 안에서 이루어져서입니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학연의 폐쇄성을 극복해 진정으로 동창의 연을 이어가는 데는 선후배를 가릴 것 없이 똑같이 땀 흘리는 등산만한 것이 없을 것 입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회장과 세 해 후배 1명, 그리고 다섯 해 아래 2명 등 총 5명이 어제 처음으로 한북천마지맥에 발을 들였습니다.


  아침9시32분 한북정맥이 지나는 수원산 아래 서파/포천/명덕온천으로 갈리는 고개 마루 삼거리에서 한북천마지맥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8시20분에 상봉을 출발하는 사천행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서파고개에서 하차해 56번 도로를 따라 고개마루로 향했습니다. 십 수분을 걸어 다다른 고개마루에서 출정기념사진을 찍은 후 남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지맥 길을 올랐습니다. 20분 가까이 되어 서파고개를 지나는 47번 국도를 건넜고 묘지를 지나 주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다시 올라 마루금을 따라 걸었습니다. 2년 전에 한번 종주했던 길이어서 길 찾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고 잔설도 없는데다 날씨도 산행을 하기에 딱 알맞아 철마산까지 내달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군인들이 파놓은 교통호와 벙커를 능선 길에서 여러 번 만나 한수이북을 내닫는 이 지맥 길이 휴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짙푸른 전나무 숲길을 지나고 봉우리 몇 개를 지나 로프 줄이 걸려있는 안부에 도착한 시각은 산행시작 딱 1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11시30분 삼각점이 세워진 588봉에 올랐습니다.

로프를 붙잡고 미끄러운 흙길을 올라 헬기장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대원들에 1시간 걷고 10분을 쉬겠다고 운행원칙을 일러주었습니다. 등산화 밑창과 무릎관절이 다 같이 나갔다는 3년 후배가 걱정은 되었지만 앞장선 제 걸음이 워낙 느리기에 웬만하면 따라올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장시간 산행을 오랜만에 해서인지 고전하는 기색이 역력해보여 안쓰러웠습니다. 임도 길로 내려섰다가 바로 능선 길로 직진해 헬기장 몇 곳을 지났습니다. 네 번째 헬기장에서 588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낙엽들이 쌓여 카펫 위를 걷는 것처럼 폭신하고 편안했습니다. 앞서 지나간 산객들이 거의 없는 듯 낙엽이 그대로 살아있는데다가 표지기가 걸려있지 않아 초행길이었다면 이 길이 과연 맞는지 불안했을 것입니다. 철제안테나(?)가 세워진 봉우리에서 588봉에 이르는 길이 이번 산행의 낙엽 길 중 백미라고 생각된 것은 떡갈나무 잎들이 지나온 어느 곳보다 소북이 쌓여 발끝에 전해지는 촉감과 낙엽 밟는 소리가 더할 수 없이 상쾌했기 때문입니다.


  12시56분 684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583봉을 지나 한 여름이라면 잡목들과 풀들이 길을 막았을 풀 숲길을 지나 길 양쪽의 나무들을 베어내 시야가 탁 트이는 넓은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2년 전에 길 위에 즐비하게 놓아두었던 베어진 나무들이 그사이 깨끗하게 치워져 개주산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까지 별 어려움 없이 진행했습니다. 왼쪽 길은 개주산으로, 오른 쪽 길은 주금산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684봉까지는 꾸준한 오름 새의 좁은 길로 이어졌습니다. 무릎이 안 좋은 후배가 학수고대한 점심시간은 반시간이나 계속되어 피로회복이 충분했으리라 생각했는데 주금산에 이르기까지 40분 가까운 마지막 오름 길이 죽음의 길이었다는 한 마디에 너무 강행군을 한 것이 아닌 가해서 미안하면서도 선후배들이 번갈아가며 뒤쳐진 후배를 추스르는 것을 보고 또 한편 고마웠습니다.


  14시4분 해발813미터의 주금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684봉을 출발해 몇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중 오른 쪽 아래에 자리한 아직도 눈이 쌓인 새하얀 베어스타운의 스키슬로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베어스타운 행 하산 길이 갈리는 봉우리삼거리에서 4분을 더 걸어 태극기가 펄럭이는 정상에 오르자 사방의 산세가 한 눈에 파악되었습니다. 북쪽의 운악산을 시작으로 동쪽의 축령산, 남쪽의 철마산과 천마산, 서쪽의 국사봉을 차례로 짚어보고 마지막으로 이제껏 걸어온 비단 길처럼 부드러운 지맥 길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갈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때면 이제껏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자신감을 되살리곤 했기에 힘들어하는 후배에 4시간 반 가까이 밟아온 지맥 길을 짚어 주었습니다. 한북천마지맥의 최고봉인 주금산의 정상석을 배경으로 함께 오른 동문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남쪽 멀리 딱 버텨서있는 철마산으로 향했습니다. 2년 전에 까옥까옥하며 떼거리로 저를 환영했던 까마귀들은 다른 산으로 봄나들이를 나섰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는데 정상출발 10분 후 쯤 도착한 넓은 공터에는 여전히 거대한 벙커와 여러 개의 환기통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의 전망바위에 올라 축령산 가는 길을 조망한 후 다시 지맥 길을 이어가다 주금산의 명물 독바위를 지났습니다. 독을 엎어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거대한 암봉 독바위는 그 높이가 정상봉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남서쪽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주금산의 얼굴로 종주산행 특성 상 정상에서 남동쪽 아래에 자리한 국민관광지 비금계곡의 비경을 들러볼 수 없는 아쉬움을 덜어주었습니다.    


  15시18분 독바위를 지나 헬기장에서 쉰지 반시간도 안 되어 송전탑아래에서 과일을 까들며 또다시 쉬었습니다. 무릎이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며 오른 쪽 안암절로 하산하기를 원하는 후배에 계속 산행을 강권했기에 1시간 걷고 10분을 쉰다는 산행원칙을 반시간을 걷고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조정했습니다. 무릎이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선배를 모시고 함께 내려가겠다는 또 다른 후배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걸어온 길 보다 갈 길이 훨씬 짧고 오르내림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 속도를 늦추고 자주 쉬면 가능하리라 판단되어 그대로 강행했습니다. 이제는 제 코스를 다 밟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후배가 새롭게 에너지를 충전하고 완주의 전의를 다져서인지 생각보다 잘 걸어 안심됐습니다. 조림한 듯한 물푸레나무들의 군락지를 지나서 가파른 경사 길을 걸어 해발 634미터의 시루봉에 올라 또 다시 쉬었습니다.


  16시45분 안부사거리인 금단이고개에 도착해 첫 번째 구간종주를 마쳤습니다.

시루봉에서 이 고개에 이르는 길도 오르내림이 몇 번 있었지만 중간에 헬기장에서 두 번을 쉬어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주저앉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던 후배도 잘 따라붙었습니다. 종주산행을 시작할 때는 철마산을 지나서 절골로 내려가겠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이 고개까지 무사히 온 것만도 다행이다 싶어 예정대로 오른 쪽 팔야리 길로 내려섰습니다. 다음에는 내방리로 가 금단 골로 내려서는 왼쪽 길로 이 고개에 오르기로 하고 이번에는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오른 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낙엽이 길을 덮은 마지막 보너스 길을 따라 내려와  왼쪽으로 골프장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등산복 차림으로 골프장 안길을 걷기가 뭣해 그대로 직진해 능선 길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17시40분 팔야리버스정류장에 조금 남겨놓은 삼거리에서 장장 8시간의 긴 산행을 마쳤습니다. 안암절로 같이 내려가겠다던 후배가 골프장에 근무하는 동생분에 차를 대기토록 이분의 차로 구리 역까지 편하게 이동했습니다.


  조촐한 뒤풀이로 주금산을 올라 첫 번째 지맥종주를 무사히 마친 잔잔한 감동을 되새겼습니다.

힘들었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어 자신감을 얻었다는 후배가 금단이고개에서 천마산까지 다시 한 구간을 더 나누겠다는 저의 제의를 듣고 한북천마지맥을 완주하겠다는 뜻을 밝혀 고마웠습니다. 주금산을 오르내리며 고교동창들과 함께한 시간이 가슴 뿌듯해 벌써부터 다음달 철마산구간의 종주산행이 기다려졌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