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앵자지맥 종주기6
*지맥구간:천진암갈림길-정암산-종여울
*산행일자:2009. 8. 24일(월)
*소재지 :경기광주/양평
*산높이 :해협산531m, 정암산403m
*산행코스:천진암-천진암갈림길-500.9봉-염치고개-해협산-정암산-종여울
*산행시간:9시7분-18시36분(9시간29분)
*동행 :나 홀로
남한강 물이 한양으로 흐르면서 만들어진 여울이 이 마을에서 끝났다 하여 종여울이라는 이름을 얻은 검천2리 마을 앞 남한강에서 한남앵자지맥종주를 마쳤습니다. 도로변 버스정류장에서 몇 십 걸음 더 다가가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을 지켜보았습니다. 대하소설 “조선총독부”의 작가 유주현 선생은 “천년을 한가지로 흐르면서 세월을 셈하는 것은 오로지 강물뿐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앵자지맥은 남한강 유역의 종여울에서 끝났지만 이 산줄기가 모아준 물은 제가 흘린 땀을 실고 한강으로 흘러들어 지금도 여전히 세월을 셈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셈속에 조선조 5백년의 흥망성쇠도 계산되었을 것이고 저의 이번 앵자지맥종주도 아주 짧게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지순례를 겸한 앵자지맥종주가 제게 아무리 소중한 발걸음이다 해도 이제는 흐르는 강물 속에 과감히 띄워 보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산줄기를 찾아올라 제 느린 삶을 흐르는 강물에 셈해보라고 맡길 뜻입니다. 강물이 셈해주는 제 인생은 세월과 같아 무상하더라도 언젠가 드넓은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말입니다.
아침9시7분 천진암에서 마지막 앵자지맥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퇴촌 가는 버스는 아침7시에 강변역을 출발하여 천호동과 하남시를 빠져나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인지 8시20분이 다되어서야 퇴촌 농협 앞에 다다라 이 곳에서 하차했습니다. 15분을 기다렸다가 천진암 가는 우산리행 버스를 타고 15분 남짓 달려 9시가 조금 못되어 이 버스 종점인 천진암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채비를 하는 동안 생각지도 않은 정문이 스르르 열리고 승용차 몇 대가 이 문을 지나가는 것을 보자 집 떠날 때 생각해둔 천진암에서 앵자봉을 올랐다가 천진암 갈림길을 거쳐 염치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고 나머지 구간은 다음에 하겠다는 산행계획을 바꿔 천진암갈림길로 바로 올라가 종여울까지 진행해 이번 한번으로 앵자지맥종주를 끝내겠다는 욕심이 일었습니다. 지난번 하산 때는 안내소에서 오전10시에 문이 열린다하여 종여울까지 한 번에 진행하기는 너무 늦을 것 같아 염치고개에서 자르는 것으로 구상했는데 1시간 일찍 문이 열린 덕에 좀 서두르면 해지기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아 안내소를 찾아가 천진암갈림길로 올라가겠다고 신고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성지통과를 허락 받고 지난번에 내려온 길로 다시 올라가 천진암 갈림길에 올라섰습니다.
9시57분 천진암갈림길에서 다시 앵자지맥에 발을 들였습니다.
안내소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서둘러 오르느라 고즈넉한 낙엽송 숲길을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고 나자 이 고요한 아침시간에 이런 오솔길을 얼마간은 다시 밟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마냥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천진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400m대의 봉우리에 올라선 후 이봉우리와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들을 수도 없이 넘으면서 송전탑공사장을 꽤 여러 곳 지나느라 짜증스러웠던 것이 이번 산행의 두드러진 특징이었습니다. 천진암갈림길에서 염치고개까지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던 것은 송전탑설치공사로 길이 자주 끊기었기 때문으로 하도 진행방향이 자주 바뀌어 일일이 산행기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제 방향을 잡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천진암 갈림길 바로 위 455봉에서 북서쪽으로 진행하며 나지막한 봉우리 두 곳을 넘어 465봉에 이르기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465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오른 족 아래로 내려가 이번 산행 처음으로 송전탑공사장을 지났습니다. 한전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만난 건설현장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만 이내 세 번째 건설현장으로 내려섰습니다. 이번에는 북서쪽으로 한참동안 내려가 320m대 높이의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3-4분 간격으로 공사자재를 실어 나르는 헬기가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을 내어 산행이 더욱 짜증스러웠습니다. 낮은 봉우리를 넘어 안부사거리인 성황당고개에서 도착한 시각이 11시3분으로 이 고개에서 7-8분간 쉬면서 자두를 꺼내들며 에너지를 충전했습니다.
12시15분 삼각점이 세워진 500.9봉을 지났습니다.
오른쪽 아래로 내려서면 형사소송을 내겠다는 협박성경고판이 걸린 성황당고개에서 100m가량 고도를 높여 한 봉우리에 오르기까지 땡볕을 쬐어가며 된비알 길을 20분여 오르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얼마간 진행해 다다른 송전탑 건설장에서 일하는 몇 분들이 김밥을 권해와 고마웠습니다. 공사장을 지나 오름길은 계속 되었고 경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묘지를 지나 삼각점이 박힌 500.9봉에 올라서자 제가 가져온 지형도에 오른 쪽으로 나있는 지맥길이 왼쪽으로 이어져 당황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 오른 쪽으로 꺾어 진행했다면 지난번의 대형 알바가 재현될 수밖에 없어 저 아래 염치고개에서 산행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왼쪽으로 먼저 오른 분들의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어 다행히도 알바를 면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지형도를 다시 보고 제가 생각 없이 양평군강하면과 광주시퇴촌면의 경계를 따라 산줄기를 표시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500.9봉에서 왼쪽으로 조금 진행해 북대봉표지봉이 바닥에 놓여 있는 한 봉우리에 다다랐습니다.
13시52분 88번 국도가 지나는 염치고개로 내려섰습니다.
북대봉을 지나 올라선 480(?)봉에서 오른 쪽으로 급하게 꺾어 내려가다가 얼마 후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했습니다. 13시가 다되어 오른 쪽 바로 아래로 시멘트포장도로가 나있는 280m 높이의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봉우리 하나를 넘어 묘지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송전탑이 서있는 320(?)봉에 오르자 북동쪽으로 시야가 탁 트여 남한강과 용문산이 잘 보였습니다만, 헬기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 곧바로 왼쪽 길로 내려갔습니다. 조금 내려가 점심을 든 후 다시 올라가자 송전탑공사장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길 건너 해협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송전탑공사장에서 계속 내려가 해발200m 높이의 염치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영동리”표지석이 세워졌고 생칡즙을 파는 가게가 문을 연 염치고개 마루 바로 아래에 생수를 받는 약수터가 있어 물 한 모금을 받아 마시며 숨을 돌렸습니다. 천진암에서 염치고개까지 4시간45분이 걸려 이 속도로 과연 종여울까지 갈 수 있을 까 염려되어 먼저 오른 한분의 산행기를 참고해 계산해본 결과 저녁7시 안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에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해협산으로 향하고자 양평쪽으로 염치고개를 넘어 길 건너 방호벽이 끝나는 곳에서 왼쪽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15시 정각 해발 531m의 해협산에 올라섰습니다.
염치고개에서 산길로 올라선 후 묘지를 거쳐 송전탑공사장을 지나서 가파른 길을 똑바로 올라 310(?)봉에 다다랐습니다.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다 다시 직등 길을 숨 가쁘게 올라 390(?)봉에 오르자 얼마간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졌습니다. 전선이 연결된 송전탑이 세워진지 얼마 안 지나선지 공사장을 덮은 덮개 천이 새것 그대로였습니다. 전망이 양호한 송전탑에서 잠시 멈춰 이번에 지나온 지맥을 뒤돌아보았습니다. 능선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짜증나는 송전탑공사장을 수도 없이 지나면서 송전탑공사를 발주했을 한전에 한 마디도 욕을 내뱉지 않은 것은 이 또한 기간시설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싶어서였지만 그러자니 짜증은 더 났습니다. 송전탑을 지나서 다시 오름길을 이어가다 "해협산 0.1Km"의 표지판을 보이자 엄청 반가웠습니다. 염치고개에서 수직으로 330m 가량 고도를 높여 해협산 정상에 이르는 1시간 남짓한 산 오름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산불자동감지기와 삼각점이 서있는 이 산 고스락에서 나무의자에 올라서자 남한강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와 이 산에 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안내판에 그려진 해협산 안내도를 일별한 후 오른 쪽 수청리 쪽으로 내려섰습니다. 얼마간 내려가자 “해협산0.7Km/청탄1.7Km”의 표지목이 길안내를 해주었는데 이러한 표지목은 종여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가 세워져 있어 고마웠습니다. 그 다음 표지목이 세워진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는 길은 계곡으로 잘 못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 길로 얼마간 내려가자 평탄한 능선 길이 한동안 계속되어 몸과 마음이 모처럼 편안했습니다. “해협산1.8Km/정암산2.6Km"의 표지목이 세워진 안부사거리에서 직진해 봉우리 하나를 넘어 정암산이 3.0Km 남았다고 잘 못 기록된 표지목이 세워진 성황당고개에 다다른 시각이 15시47분이었습니다.
17시25분 앵자지맥 끝 봉우리인 해발403m의 정암산에 올랐습니다.
성황당고개에서 15분 간 꾸준히 올라 다다른 380(?)봉에서 바위에 걸터앉아 잠깐 쉬면서 오른 쪽 아래로 흐르는 남한강의 물줄기를 지켜보았습니다. 10분을 채 못 쉬고 일어나 조금 내려갔다가 봉우리 하나를 다시 넘어 “정암산/해협산”의 표지목이 서있는 409봉에 올라섰습니다. 이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정암산에 이르기까지 3백m대의 봉우리 네 곳을 수직고도로 50-60m를 오르내린 후 270m대의 깊숙한 안부로 내려갔으니 정암산에 오르려면 130m 이상 고도를 높여야 했습니다. 정상에 귀여리와 검천리를 가름하는 큰 바위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정암산에 오르자 양수리를 가득 채운 한강물이 석양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습니다. 해협산보다 주변 풍광이 훨씬 아름다운 정암산 정상에 올라 사방을 휘둘러보며 한껏 기뻐했습니다. 앵자지맥이 끝나는 곳은 검천2리 종여울이어서 10분을 쉰 후 지는 해를 등지고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지맥을 따라 하산길에 들어섰습니다.
18시36분 검천2리 종여울에서 6회에 걸친 앵자지맥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정암산에서 북동쪽으로 진행하다 만난 암봉을 오른 쪽 아래로 에돌아 다시 지맥 길로 복귀했습니다. 나무의자가 놓인 쉼터에서 둘러본 주변 정경이 정암산 정상 못지않아 카메라를 꺼내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 광활한 양수리 합수유역의 저녁 풍경을 사진 찍었습니다. 왼쪽 아래로 검천2리 알미 마을로 길이 갈리는 능선 분기점에서 직진하여 안부에 내려서자 지맥길이 이어지는 직진방향의 등산로는 폐쇄되었고 대신에 오른 쪽 아래로 0.4Km 남은 종여울로 가는 길이 나있었습니다. 능선에서 벗어나 오른 쪽 아래로 내려서자 집 몇 채가 보였습니다. 한 젊은이가 산보를 시키려 데리고나온 삽살개를 보고 이 동네 개들이 한 목소리로 짖어대는 바람에 온 동네가 시끄러웠습니다. 움직이는 생명체는 뭣이든 그들의 적이라고 판단해서인지 그들의 시야에서 삽살개가 사라진 후 제가 동네로 들어서자 저를 보고 정신없이 지저댔습니다. 마을을 빠져나가 342번 지방도가 지나는 검천2리 버스정류장에서 앵자지맥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길 한복판에 서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습니다.
지난 가을 다친 허리가 아직 다 낫지 않아 저녁때면 등짝에 통증이 더 심하게 느껴집니다. 이 부실한 허리를 믿고 종주산행을 이어갈 수 있을까 자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통증이 집에서 가만히 있다고 해 덜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산을 오를 때는 얼마간 통증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다져 먹고 집에서 멀지않은 한남앵자지맥의 종주 길에 나섰던 것입니다. 이참에 미리내와 천진암의 두 성지를 잇는 성지순례를 같이 한다면 주님께서 저를 보살펴 주실 것 같았습니다. 그리되면 앵자지맥종주산행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을 것 같아 미리내성지에서 지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삼덕고개, 은이성지, 골배마실성지와 천진암성지를 차례로 순례했고 이번에 종여울에서 지맥종주도 마무리했습니다.
주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몇 년 전에 이 길을 먼저 밟고 꼼꼼하게 산행기를 남겨주신 안성산지기님에도 감사드립니다. 갈림길 곳곳에 표지기를 달아 길 찾기를 쉽게 해주신 선답자 여러분에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 산줄기에 길을 내주신 모든 분들에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아래 글은 천진암 입구에서 길을 막는 직원 한분과 승강이를 벌인 일과 길에 대한 제 생각을 적은 부끄러운 기록이어서 산행기와 별개로 나누어 올립니다.
지난 금요일 천진암갈림길에서 내려와 천진암입구에서 종주산행을 끝냈기에, 앵자지맥의 마지막 구간을 종주하려면 천진암갈림길로 되올라가야 했습니다. 이를 신고하고자 안내소로 가서 말씀드렸더니 젊은 직원 한 분이 이곳은 성지이니 성지 밖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몇 십m미터만 걸으면 바로 산길로 접어드니 통행하게 해달라고 10분여 통사정을 했습니다. 저의 간곡한 통사정이 먹혀들지 않자 저는 경기도와 협의해 관리소에서도 하산 길로 인정한 등산로를 성지를 오손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주님의 뜻일 것 같으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 직원 분은 규정을 지키어 길을 막는 것은 주님의 뜻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언쟁을 지켜본 연세든 직원 한 분이 제게 이제 그만 알았으니 원하는 길로 가라고 제게 통행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이미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써 군말하지 않고 후다닥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저는 씩씩거리며 천진암갈림길로 되올라갔습니다. 갈림길에 도착하자 제 목적을 달성하고자 주님을 들먹인 것은 참으로 시건방진 짓이었다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제 시건방진 행동이 잘못됐음을 고하고 죄의 용서를 빈 후 마지막 종주 길에 올랐습니다.
제가 건방지게도 길을 막는 것이 주님의 뜻일 것 같으냐고 따져 물은 데는 저 나름대로 믿음이 있어서였습니다. 산경표의 저자로 알려진 여암 신경준 선생은 “길에는 주인이 없다.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백번 생각해도 백번 지당한 말씀입니다. 길의 생명은 특정한 소수에만 열려있는 폐쇄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든 항상 열려있는 개방성에 있음을 선생께서 강조하신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걷는 길만 그러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진리의 길도 그러하고 구원의 길도 그러할 것입니다. 여기는 성지이니 나다니지 말라고 이미 하산이 허가된 길을 막고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는 저는 생각지 않습니다. 제가 주님께 죄의 용서를 빈 것은 시건방지게 주님을 들먹였고 오로지 자기 업무에 충실한 젊은 직원에 목소리 높여 화를 낸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지 천진암관리소에 길을 열어달라는 저의 주장이 그르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산의 70% 가까이가 사유림이고 사유림에 낸 산길 또한 개인 소유입니다. 어느 누구도 개인소유라는 이유로 산길을 막지 않기에 많은 산객들이 자유롭게 산에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지관리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산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식용수로 쓰는 계곡 길은 폐쇄가 불가피하더라도 하산 길로 인정한 등산로를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은 하지 말아 달라고 관리소에 다시 한 번 간청 드립니다.
<산행사진>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8.26 09:24
- 고맙습니다. 한강기맥 종주길도 거의 끝나가시는 것 같습니다. 안산, 즐산을 빕니다.
- 선돌 선돌 Y
- 2009.08.25 23:32
- 앵자종주를 축하합니다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8.26 09:25
-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어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한남앵자지맥 종주기5
*지맥구간:삼합리고개-앵자봉-천진암갈림길
*산행일자:2009. 8. 21일(금)
*소재지 :경기광주/여주
*산높이 :앵자봉667m, 우산봉672m
*산행코스:삼합리고개-289.6봉-남이고개-자작봉-앵자봉-우산봉
-천진암갈림길-천지암
*산행시간:8시38분-15시54분(7시간16분)
*동행 :나홀로
앵자봉 아래 천진암에서 성지순례를 모두 마쳤습니다.
창립성현5위 묘역 앞에서 주님께 무사히 순례를 끝냈음을 고하고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벽성조께도 큰절로 고했습니다. 미리내성지를 출발해 애덕고개, 망덕고개, 신덕고개의 삼덕고개와 은이성지, 그리고 곰배마실 성지를 차례로 순례한 후 여기 천진암성지에 이르기까지 산길로만 순례 길을 이어왔습니다. 제가 굳이 산길을 순례 길로 택한 것은 이 길이 한남앵자지맥 길이어서 지맥종주도 같이 해보고 싶어서였는데 저보다 앞서 이 지맥을 종주한 산 꾼들 덕분에 길 찾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여기 묘역에 이벽, 권철신, 권일신, 정약종과 이승훈 등 다섯 분을 모신 것은 이분들이 이 땅에 새롭게 길을 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한 암자였던 천진암이 가톨릭 성지로 바뀐 것도 1700년대 후반에 이벽,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권상학, 이총억 등 젊은 선비들이 원로학자 권철신과 더불어 이 땅에 새 길을 내고자 이 암자에 모여 천학(天學)을 공부하고 기도를 올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들이 내는 새 길이 고난의 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어느 길이건 새 길은 상당한 비용을 지불한 후에야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는 사람들과 차들이 다니는 길을 내는데 든 비용보다 빛과 진리를 얻는 구원의 길을 개척하는 데 치른 희생이 훨씬 컸습니다. 뒤이은 103인의 순교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이분들의 순교덕분에 여기 천진암을 발상지로 해서 이 땅 곳곳에 헤븐로드가 뻗치어 나갔고 저는 이번에 천진암-미리내의 헤븐로드를 걸은 것입니다.
오전 8시38분 광주시와 양평군을 경계 짓는 삼합리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새벽같이 서두른 덕에 아침8시에 곤지암을 출발해 삼합리고개까지 가는 광주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삼합리고개에서 하차해 길 건너 왼쪽 길로 들어서자 주렁주렁 달린 낟알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수수 한 그루가 구부정한 허리로 반갑게 저를 맞았습니다. 넓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저를 보고 발광하며 짖어대는 훈련 견들이 갇혀 있는 우리를 지나 묘지로 들어섰습니다. 맨 위 묘지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289.6봉에 이르기까지 잡목숲길을 지나느라 바짓가랑이가 다 젖었습니다. 삼각점이 박힌 289.6봉에서 몇 걸음 옮겨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서쪽으로 향하는 중 개활지(開豁地)의 묘지를 지나며 건너편 천덕봉의 산줄기들을 눈여겨보았지만 지난 번에 어느 줄기에서 길을 잃었는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9시30분 나무의자가 세워진 쉼터를 지났습니다.
묘지에서 쉼터에 이르는 길은 임도 길로 그늘지고 평탄한 길이어서 쉬는 듯 걷는 듯 했습니다. 나무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세상모르고 쉬고 있는 잠자리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서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는 끝났고 오솔길이 이어졌습니다. 봉우리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선 후 3백m대의 봉우리를 두 개 넘어 다다른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 송전탑을 지난 시각이 10시11분이었습니다. 송전탑을 지나 직진하여 오른 쪽 급경사 길로 들어섰습니다. 시멘트 길로 내려섰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선 후 곧바로 넓은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용문산이 멀리 보이는 오른 쪽 바로 옆의 송전탑을 지나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오른쪽으로 꺾인 된비알의 내리막길을 조심해서 걸어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이동통신 중계탑을 지나 전선공사중인 차도로 내려선 후에야 이번에는 길을 잃지 않았다 싶어 비로소 안심했습니다. 나무의자 쉼터에서 여기 차도에 이르기까지 알바가 걱정되어 조심해서 산행해서인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10시55분 곤지암과 양평을 이어주는 남이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전선공사를 하고 있는 차도가 남이고개인줄 알고 들머리를 찾다가 얼핏 이 길이 이제는 차가 다니지 않는 옛날 도로라는 생각이 들어 왼쪽 길로 돌아내려가자 차들이 쌩쌩 내달리는 남이고개가 나타났습니다. 양평 쪽으로 이 고개를 넘자마자 길 건너 왼쪽 들머리로 올라섰습니다. 키다리 마타리 꽃이 자리를 같이하는 묘지를 지나 북서쪽으로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왼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해 오른 쪽으로 꺾어 올랐습니다. 자작봉의 이정표가 서있는 한전도로(?)를 지나 곧바로 올라가 삼각점이 서있는 393.7봉에 올라선 시각이 11시31분으로 이곳에서 처음으로 17분간 푹 쉬었습니다. 남이고개를 지난후로는 이정표도 세워졌고 길도 분명해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한결 쉬웠습니다.
12시29분 해발575m의 자작봉에 올라 점심을 들었습니다.
393.7봉에서 송전탑공사장을 거쳐 올라선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서는 길은 오름 새가 꾸준하게 이어졌는데 길바닥에 도토리가 나뒹굴어 잠시라도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겠다 싶었습니다. 소망수양관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몇 걸음 더 걸어 “자작봉”표지판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오르자 이번 산행에서 거의 보지 못한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자작봉에서 16분 간 점심을 든 후 무단출입을 삼가하고 정숙유지를 당부하는 소망수양관의 안내판을 뒤로 하고 로프가 쳐진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왼쪽 아래로 소망수양관 길이 갈리는 몇 곳의 삼거리마다 이정표가 세워져 앵자봉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었습니다. 평탄한 능선 길을 걸으며 바위위에 자리 잡은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를 사진 찍고 나서 칼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가파른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선 암봉이 “귀염바위”이겠다 싶었던 것은 이 암봉에서 휘 둘러본 조망이 빼어나 바위의 모양새와 관계없이 많은 산객들로부터 귀염을 받았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왼쪽으로 펼쳐진 골프장이 참으로 광활해 보였고 먼발치의 태화산도 눈에 잡혔습니다.
13시52분 해발667m의 앵자봉에 올라섰습니다.
귀염바위(?)에서 앵자봉으로 오르는 길은 고도차가 40-50m에 불과해 마지막 몇 분간만 가팔랐습니다. 두 곳의 송전탑을 지나 앵자봉이 가까워지자 길섶의 야생화들과 버섯들을 마음 편히 바라다볼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어느 해 봄 집사람과 함께 이벽성조 등 성현5위 묘역을 둘러보고 지금은 막힌 앵자봉과 우산봉 사이의 가파른 계곡 길로 여기 앵자봉을 처음 올랐습니다. 작년에 두 번을 더 오른 이 봉우리를 이번에 또다시 찾은 것은 미리내성지에서 시작한 성지순례를 이 산 아래 천진암에서 마치고 성현5위 묘역을 참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앵자봉은 사방이 탁 트여 앞서 지나온 귀염바위보다 더 많은 산들이 보였으니 북서쪽으로 검단산과 예봉산 그리고 이 산들 사이로 흐르는 한강이 잘 보였고 그 너머로 북한산의 매끈한 인수봉도 흐릿하게나마 보였습니다. 북동쪽으로 양자산과 용문산이, 서쪽으로는 무갑산과 관악산이, 남서쪽으로 태화산이, 남동쪽으로 천덕봉과 그 왼쪽으로 한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0분간 쉰 후 천진암으로 향하기 직전 마지막 남은 성지순례 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끝까지 보살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5시12분 천진암갈림길에서 지맥종주를 마치고 하산했습니다.
앵자봉에서 천진암갈림길을 거쳐 천진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지난 가을 대학동기들과 한 번 걸었던 길인데다 전반적으로 고도가 낮아지는 길이어서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앵자봉에서 안부로 내려서자 왼쪽 아래 천진암성지로 내려가지 말라고 걸어놓은 대형 플래카드와 철조망이 눈에 띄었습니다. 앞서 소망수양관은 물론 여기 천진암성지까지도 무단출입을 금하는 경고성 안내판 및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것을 보자 천년을 훨씬 넘게 산 속에 자리해온 그 많은 사찰들이 산길을 막고 통행을 금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한 많은 산객들이 혹시라도 주님의 자비가 부처님의 자비를 따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할까봐 적지 아니 염려됐습니다. 이 산 최고봉인 해발 672m의 우산봉을 넘어 다다른 두 번째 헬기장에서 오른쪽으로 양자단맥이 갈리고 지맥 길은 왼쪽으로 꺾여 이어졌습니다. 이 길로 한참동안 진행하다 한 대학에서 자기네 땅이라며 만든 초록색문짝 두 개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길을 가로막을 심사로 해 놓은 것 같은데 그리 했다가는 종주꾼들의 극성으로 출입금지라는 소기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욕만 실컷 얻어먹을 것입니다. 천진암 갈림길에 다다르기까지 편안한 길을 걸으며 이 길이 바로 헤븐로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시54분 천진암 성지 안의 광암성당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천진암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천진암 가는 길은 초반에는 다소 경사가 급했습니다. 지난 번 정개산에서 안부로 내려갈 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더니 엉치등뼈가 지금도 아파 급경사길이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하느님을 보다 가까이에서 뵙고자 곧게 치솟은 낙엽송과 잣나무들이 함께 만든 숲 사이로 고즈넉한 길이 나있어 하산 길이 명상의 길이었습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전직 장관분의 묘지를 지나 얼마간 내려가자 물이 흐르는 지계곡이 나타났습니다. 지계곡을 건너 광암성당 앞으로 내려서기까지 또 한 번 낙엽송 숲길을 걸었습니다. 광암성당 앞에서 옷매무세를 손 본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안내 일을 맡아보시는 안내소로 가서 팜프렛을 얻어들었습니다. 성지를 둘러보겠다는 제게 두 노인들은 저녁5시까지는 이곳으로 내려와야 한다며 배낭을 맡아주어 고마웠습니다.
문을 닫는 저녁5시까지는 1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아 마지막 순례 길을 서둘렀습니다.
안내소를 출발해 오른 쪽의 선암로를 따라 올랐습니다. 방천담을 지나 올라선 “100년 계획 한민족 대성당 건립현장”은 10수년전에 집사람과 함께 왔을 때보다 별반 진척된 것이 없어 보여 100년이란 역시 긴 시간임을 느꼈습니다. 오른 쪽 강학로를 따라 걸어 천진암터 창립성현5위 묘역에 다다랐습니다. 이벽성조 묘 앞에서 주님께 성지순례 종료를 고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벽성조께 큰 절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리내성지에서 시작한 저의 성지순례는 끝났습니다. 때 마침 카메라가 바테리가 다 되었다며 작동을 멈추어 감격스런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앵자봉 산줄기가 포근하게 보듬고 있는 묘역을 출발해 안내소로 향했습니다. 식수로 쓰인다는 계곡물은 관리가 잘 되어 깨끗했습니다. 앵자봉-우산봉 사이의 안부에 출입금지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것은 이 계곡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했나 봅니다. 대성당 건립현장으로 되돌아와 광암로를 따라 내려오는 중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셔터를 눌렀더니 이번에는 웬일인지 말을 잘 들었습니다. 성역로 맨 위의 십자가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안내소에서 배낭을 찾아맨 후 천진암 정문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문이 스르르 닫혔습니다. 철문은 닫혔지만 저는 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산행사진>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8.25 06:03
- 감사합니다. 어제 앵자지맥종주를 마쳤습니다.
한남앵자지맥 종주기4
*지맥구간:넓고개-천덕봉-삼합리고개
*산행일자:2009. 8. 16일(일)
*소재지 :경기광주/이천/여주
*산높이 :천덕봉635m, 정개산407m
*산행코스:넓고개-정개산-천덕봉-유사리마을-삼합리고개
*산행시간:9시31분-17시2분(7시간31분)
*동행 :나홀로
폭염주의보가 발해진 찜통더위에 주눅 들어 산행 중 내내 계곡을 만나지 못하고 능선만 오르내려야 하는 종주산행을 이 때 꼭 해야 하나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결국 넓고개를 출발해 천진암까지 가보겠다는 산행코스를 줄여 천진암 훨씬 전의 남이고개에서 끝내는 것으로 제 자신과 타협을 본 후 한남앵자지맥의 네 번째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한 여름의 종주산행이 결코 편안한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앵자지맥 종주를 강행한 것은 이 종주 길이 단순한 산행이 아니고 성지순례를 겸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니는 군포성당에서 지난 달 실시한 성지순례에 나이어린 초등부 학생들도 많이 참여해 성공리에 마쳤다는데, 산 꾼인 제가 산길로 이어가는 미리내-천진암 성지순례 길을 햇볕이 따갑다고 미룰 수는 없었기에 산행코스를 일부 수정해 예정대로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심각한 등로이탈로 남이고개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의 삼합고개에서 멈췄습니다.
다른 산 꾼들이라면 4번을 출산하면 앵자지맥 종주를 모두 끝내는데 저는 한번을 더 해야 천진암에 이르게 되고 또 한 번 더 출산해야 남한강에 다다라 지맥종주를 마치게 됩니다. 그래도 가슴 뿌듯한 것은 지난 가을 추락사고로 망가진 제 몸을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잘 만들어 이 정도나마 해낼 수 있어서였습니다. 아직은 겁도 나고 기도 많이 꺾여 옛날처럼 속도를 낼 수는 없지만, 그리고 12시간 넘게 장시간 걸을 수 없지만 산행횟수를 추가해서라도 지맥종주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주님의 은총에 무한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올 한해는 이렇게나마 근근이 종주산행을 이어가면서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성지순례를 겸한 앵자지맥 종주도 마칠 뜻입니다.
오전9시31분 넓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넓고개에서 남이고개까지라면 7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집근처 성당에서 새벽미사를 올리고 아침7시경 산본 집을 출발했습니다. 8시를 막 넘어 강변역에서 올라 탄 좌석버스로 1시간20분가량 내달아 넓고개 바로 앞 동원대입구에서 하차했습니다. 광주와 이천을 가르는 넓고개에서 왼쪽 시멘트 벽을 올라선 후 이천의병전적비 앞에서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10분 남짓 넓은 길을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직진하다가 계단 길로 올라가야하는 것을 곧바로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 동원대 안으로 들어간 것이 이번 산행 중 첫 번째 등로이탈이었습니다. 여기저기 길을 찾아보았으나 결국 마루금을 이어가지 못하고 차도를 따라 걷다가 운동장에 들어서기 바로 전 건물 오른편의 절개면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제 길을 만나기까지 풀 숲길을 헤쳐 나가기도 힘들었고 절개면상단부를 덮어놓은 철 그물이 미끄러워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넓고개 출발 반시간이 조금 더 지나 제 길을 만나 왼쪽 위로 난 능선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넓고개에서 천덕봉까지는 2003년 봄에 한번 산행을 했었기에 길 찾기는 문제없겠다 했는데 짧으나마 알바를 하자 왠지 모르게 이번 하루 산행이 순조롭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11시5분 해발407m의 정개산에 올랐습니다.
제 길로 들어서 주능1봉과 봉현삼거리를 차례로 지나 삼각점이 박혀있는 주능2봉에 도착한 시각이 10시36분이었습니다. 정개산을 760m앞에 둔 주능2봉을 출발해 남정리고개로 내려섰다가 제법 가파른 솔밭길을 올라 송전탑을 만났습니다. 오른 쪽으로 시야가 탁 트여 설봉산이 잘 보이는 송전탑을 지나 암반위에 한자의 “鼎蓋山”과 솥뚜껑의 의미를 갖는 한글의 “소당산”이 병기된 표지석을 세운 정개산에 올랐습니다. 북쪽으로 천덕봉이 잘 보였고 그 뒤로 용문산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밥맛이 천하제일이라는 이천 쌀의 원산지인 이천 벌이 정개산 오른 쪽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졌습니다. 저처럼 혼자 올라온 이천 분과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천덕봉을 향해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하필 엉치등뼈가 돌에 부딪혀 가파른 길을 오를 때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자연 발걸음이 느려졌고 이러다가는 남이고개까지 가는 것도 만만치 않겠다 싶어 걱정도 됐습니다. 지석리갈림길 안부를 지나 천덕봉을 3.67Km 남겨놓은 골프장갈림길로 오르는 중 나무가 휘어 아취형태의 문을 만든 “소원성취문”을 지났습니다. 2006년 여름 각흘고개-차령고개 구간의 금북정맥을 종주할 때 꼭 이런 문을 지나면서 느낀 소회를 산행기로남긴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원성취문을 지나면서 갖는 느낌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 아래 산행기로 가름하고자 합니다.
“475봉으로 진행하는 중 가운데가 꺾인 고사목이 아취형태로 굽어진 채로 길을 가로질러 문을 내 마치 아취 문을 지나는 듯 했습니다. 이 문을 지나면서 미국의 시사평론가 토마스 프리드만의 골든아취(Golden Arch)이론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세계화에 관한 그의 명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 황금아취로 상징되는 맥도날드가 진출한 나라들은 이미 세계화가 진전되었기에 어렵게 이룩한 세계화를 유지 발전시키고자 서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실증적인 골든아취 이론을 실었는데 중동전쟁으로 이 이론이 100% 맞지는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잘 들어맞는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이론이 과히 틀리지 않다면 고사목이 만든 이 우든 아취(Wooden Arch)를 지나간 멧돼지들이 이 문을 통과하는 산객들에 싸움을 걸어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2시22분 주능3봉에 올랐습니다.
골프장 갈림길에서 오른 쪽 넓은 길로 내려가 도암리 갈림길에서 치고 오른 봉우리가 주능3봉으로 이곳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면서 15분가량 쉬었습니다. 6년 전에 이 봉우리에 올랐을 때는 패러글라이딩 활강 장(?)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왼쪽 아래 골프장이 들어앉아 그리 쓰일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세운 초라한 표지목에 “수리산545m”로 적혀있어 이 무명봉의 고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1시경 넓고개를 출발했다는 이천 사는 젊은 한 분과 인사를 나눈 후 너무 지체됐다 싶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천덕봉으로 향했습니다. 장동리갈림길을 지나 내려선 안부에 서있는 이정표에는 현위치를 “천덕봉1260m 지점”으로 표기됐습니다. 기왕 고개이름을 질 바에는 돌무덤도 있고 하니 달리 예쁜 이름을 붙일 법 한데 굳이 숫자를 써서 이름을 진 것은 아무래도 관계당국의 상상력 부족 때문일 것입니다.
14시1분 해발635m의 천덕봉에 올라섰습니다.
“천덕봉1260m지점”의 안부를 출발해 묘지를 지나 얼마간 오르자 주능3봉에서 인사를 나눈 젊은 분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조금 더 올라가자 정개산에서 만나 뵌 이천 분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천덕봉을 거쳐 원적산에 이르는 능선 길 주변의 나무들은 오른 쪽 아래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어 모두 베어냈습니다. 땡볕을 가릴 데가 전혀 없는 민둥산의 능선을 걸어 천덕봉에 이르는 일이 쉽지 않았던지 나무그늘아래서 땀을 식히는 이천 분을 뒤로 하고 제가 먼저 출발했습니다. 바로 앞 헬기장에서 10분 남짓 걸어 사격신호용 깃발이 꽂힌 봉우리에 올라 왼쪽 아래 골프장과 오른 쪽 아래 군부대를 보고 전쟁과 평화의 차이가 이런 것이다 싶었습니다. 20분을 더 걸어 오른 천덕봉에는 헬기장이 들어앉았고, 이 헬기장에 두 개의 정상석과 이런 저런 여름 꽃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광주시와 이천시, 그리고 여주군의 3개시/군이 한 점으로 만나는 천덕봉은 대간 길의 삼도봉(三道峰)에 견줄만한 봉우리입니다. 여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봉우리로 피난 왔다하여 공민왕봉으로도 불린다는 천덕봉에서 북쪽을 바라보자 남한강 물줄기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15시44분 경주김씨 묘지에서 10분 넘게 쉬었습니다.
내리쬐는 땡볕에 밀려 힘들게 오른 천덕봉에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삼합고개를 향해 북동쪽으로 내려섰습니다. 사격 날짜와 시간을 적어 넣고 이 시간 동안에는 이 선을 넘지 말라는 군부대의 안내판을 지나 헬기장에 이르자 삐죽삐죽 서있는 노란 마타리 꽃과 분홍색의 패랭이꽃이 저를 반겼습니다. 왼쪽 길로 내려가 10분을 더 걷자 또다시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이 헬기장에서 왼쪽 길로 내려간 것 까지는 잘했는데 몇 분 후 만난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선 것이 두 번째 등로이탈의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림 길의 경사가 엄청 가팔랐지만 중간 중간에 로프 줄이 쳐져 있었으며, 앵자지맥의 표지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길이 넓게 잘 나있고 방향도 맞는 것 같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부지런히 내려갔습니다. 왼쪽 아래로 임도가 보이는 해발고도가 300m대의 안부에서 직진해 오른 봉우리삼거리에 훌라후프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 길을 버리고 오른 쪽 길로 들어설 때 까지도 제가 길을 잘 못 들었다는 생각은 손톱만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른 쪽에 경주김씨묘지가 들어선 안부에서 조금 더 진행하자 길이 흐려졌다가 사라져 길을 잘 못 든 게 아닌 가하는 불길한 생각이 비로소 들었습니다. 그대로 십 수m를 직진하자 아래로 계곡이 보여 이 길이 아님을 최종 확인하고 나자 맥이 풀렸습니다. 여기 저기 몇 곳을 찔러보듯 몇 미터씩 뚫고 가봤지만 길이 찾을 수 없이 안부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늘진 경주김씨 묘지로 옮겨 지도와 산행기를 반복해 보았어도 마지막 헬기장으로 되올라가는 방법 외에는 길을 찾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닌데다 새삼 엉치등뼈까지 아파 헬기장으로 되올라가 마루금을 이어가기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 이만 포기하고 서쪽 아래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17시2분 광주시와 여주군을 경계 짓는 삼합리고개에 이르러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경주김씨묘지 안부에서 서쪽으로 내려가자 그 아래 마을을 지나 8번도로로 이어지는 시멘트길이 잘 나있었습니다. 왼쪽 위로 원적산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유사골을 건너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25분을 걸어 내려가 만난 유사2교에서 8번 도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하는 중 삼합리(三合里) 표지석이 눈에 띄어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국정포(國井浦/국정개), 야포(冶浦/풀무개)와 지음(智音/징골)등 세 곳의 자연부락이 삼합리(三合里)로 통합된 데는 여말 공민왕이 이곳에 피신 온 것과 관련된 전설들을 같이 가지고 있어 손쉬웠을 것입니다. 공민왕이 피난 와 이곳 샘물을 식수로 썼다는 국정포, 천덕봉에서 진을 친 고려군들이 이 마을에서 풀무질을 하여 무기를 만들었다는 야포, 그리고 피난 온 공민왕이 매일 음주가무를 즐기느라 징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지음 마을이 합쳐져 삼합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듯이 고려군이 진을 친 천덕봉도 광주시와 이천시, 그리고 여주군 등 3개 시군이 만나 한 점이 되었으니 삼합봉(三合峰)으로 불러도 좋은 것이 그리되면 옛 전설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아스팔트가 내뿜는 지열로 얼굴이 후끈거렸지만 차도를 걷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라면 올 안으로 섬진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 환주를 모두 마치고 내년 여름에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걷는 것도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삼합리고개에 이르러 천덕봉에서 삼합리고개로 이어지는 앵자지맥 능선을 올려다보면서 언제고 하루 날 잡아 이 고개를 출발해 천덕봉을 다시 올라 이번에 놓친 마루금을 확실히 이어볼 생각입니다.
삼합리고개에서 반시간 남짓 기다려 양평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1970년대 중반 광주중학교에서 3년간 과학교사로 근무했으면서도 이 고개를 넘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양평-서울 간 주말의 버스길은 여전히 차들로 붐벼 양평에서 국수까지만 순환버스를 이용했고 국수역에서 전철로 갈아탔습니다. 전철 안은 냉방이 잘되어 반 팔 차림이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예정했던 성지순례 길을 다 마치지도 못했으면서 이렇게 시원한 전철을 타기가 송구스러웠던 것은 순례의 참뜻이 고행의 길을 걸으며 주님의 가르침을 새기는데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산행사진>
- 아사비 아사비 Y
- 2009.08.17 13:27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8.19 19:10
푹 쉬다 올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 아사비 아사비 Y
- 2009.08.19 20:35
- 제 막내처제가 광주 중학교 졸업했는데 선배님 존함을 말하니 잘모르드라고요.아마도 선배님 다른곳으로 전근하신후에 입학한거 같드군요 ㅎㅎㅎ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8.20 22:26
- 제가 1974년 12월에 광주중학교에 부임해 1978년 3월에 수성고등학교로 전보되어 만3년 조금 넘게 근무했습니다. 교직생활5년 중 60%를 광주에서 보냈고 또 이 학교에서 집사람을 만나 결혼해
저로서는 잊지못할 학교입니다. 막바지 더위가 극성입니다. 건강하게 이 여름을 보내시기를...
- 아사비 아사비 Y
- 2009.08.20 23:21
- ㅎㅎㅎ 제 처가 74년도 광주 중학교 졸업했고요.바로 아래 처재가 두살 아래니까 알거 같은데요..무슨 과목 이였읍니까?.처가가 광주 대쌍 지나서 도곡리고 거주는 경안에 살았읍니다.지금은 산이리 너머 궁평리에 살고요~~~도자기전시장 산 뒷마을이지요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8.23 14:38
- 물상을 가르쳤습니다. 때로는 중1 영어도 가르쳤지요. 저의 교직생활 5년 중 광주중학교에서 근무한 것이 3년이니 가장 추억이 많이 남는 곳입니다. 저 집사람(당시는 미혼)은 미술을 가르쳤구요
한남앵자지맥 종주기3
*지맥구간:성황당고개-국수봉-넓고개
*산행일자:2009. 8. 6일
*소재지 :경기광주/이천
*산높이 :해룡산366m, 국수봉427m
*산행코스:성황당고개-해룡산-회고개-중부고속도로-국수봉-284봉-넚고개
*산행시간:10시58분-18시8분(7시간10분)
*동행 :나홀로
골배마실 성지에서 천진암성지까지는 그 거리가 50km는 실히 됩니다.
이정도 거리라면 걸음이 워낙 느린 저로서는 사흘로는 바쁘고 나흘은 걸어야 좀 느긋할 것 같습니다. 이번 성황당고개에서 넓고개까지 성지순례 길은 약 12Km의 산길로 중간에 들를만한 성지가 없어 오로지 천진암을 향해 내달리면 됩니다. 웬만하면 아달 안으로 성지순례 길은 물론 천진암에서 한 구간을 더 걷는 앵자지맥 종주산행도 모두 끝낼 생각이어서 기온이 섭씨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예고되었어도 머뭇거리지 않고 집을 나섰습니다.
오전10시58분 성황당고개에서 3구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강변역에서 아침9시25분에 승차한 동원대 가는 버스가 광주시내를 통과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10시33분에 곤지암에 도착했습니다. 성황당고개로 가는 진우리 행 버스는 3분 전에 출발해 별 수 없이 택시를 타고가 “방도1리 되재마을”의 이정표가 세워진 성황당고개에서 하차했습니다. 고개마루에서 이천 쪽으로 몇 걸음 내려가다 왼쪽으로 꺾어 다다른 곤지암 물류센터 정문 앞에서 왼쪽 산속으로 들어가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얼마 후 오른 쪽의 임도를 따라가다 만난 묘지 중간쯤에서 된비알 길을 올라 무명봉에 다다랐습니다. 이 봉우리를 막 넘어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 오른 쪽으로 지맥 길이 갈리는 갈림길에서 3-4분 거리의 해룡산을 다녀올 욕심으로 곧 바로 직진해 이 산 정상에 오른 시각이 11시50분이었습니다. “해룡산/해발367미터”의 스테인리스 표지봉이 세워진 정상의 북서쪽 한 편으로 삼각점이 보였는데 삼각봉은 없어지고 그 아래 기반석만 남아 있어 이 삼각점의 정보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정상을 에워싼 나무들로 시야가 꽉 막힌 해룡산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갈림길로 되내려왔습니다.
11시57분 되돌아온 갈림길에서 남동쪽의 지맥 길로 들어섰습니다.
한여름의 무더위보다 더 짜증나는 것은 이달 들어 부쩍 늘어난 거미줄입니다. 키가 낮은 잡목들이 무성한 길에는 거의 5-6m 간격으로 거미줄이 쳐져있어 스틱으로 일일이 다 쳐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하려면 항상 고개를 들고 앞을 보아야하는데 자칫 발끝에 뭔가가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어서 알고도 거미줄 세례를 받기가 일쑤입니다만, 이 정도쯤이야 늘 참아왔기에 무탈하게 종주산행을 해왔다 싶습니다. 갈림길에서 지맥 길로 접어들어 편안한 능선 길을 걷다가 삼거리에 이르러 왼쪽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7-8분 후 임도에 내려섰고 이내 임도삼거리를 만나 잠시 멈춰서 빨간 꽃나무를 사진 찍었습니다. 정면으로 3층(?)가옥과 그 뒤로 387봉이 보이는 임도삼거리에서 오른 쪽 잣나무 숲속 안으로 난 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간 숲속의 좁은 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제법 넓은 길에서 왼쪽 묘지 위 능선으로 올라선 후 이 능선을 따라 오른 쪽으로 진행해 무명봉에 올라섰습니다.
13시14분 387봉에 올라 점심을 들었습니다.
무명봉에서 조금 내려가다 왼쪽으로 확 꺾어 내려간 곳이 깊숙한 안부인 회고개였습니다. 왼쪽으로 마을로 내려가는 일이 나있는 회고개 오른 쪽 아래에서 차 소리가 크게 난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중부고속도로가 가까워서였습니다. 거목의 느티나무(?)가 돌무더기와 함께 자리한 정감 가는 회고개에서 잠시 머물며, 이 산의 주인인 새들과 여름 한 두주 이 산에 머무는 매미들이 모처럼 뜻을 모아 열연하는 산상음악회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올 여름에는 이상하리만치 매미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의례 이맘때면 매미들이 극성을 떨어 웬만한 새들은 개점휴업에 들어갔는데 올 들어서는 이번에야 비로소 매미들의 노래 소리를 제대로 들었습니다. 회고개에서 387봉까지 높인 고도는 대략 120m가량으로 마지막 30여m가 고바위 길이어서 힘들었습니다. “산불조심” 표지판이 걸린 387봉에서 점심을 들며 16분을 쉰 후 13시30분에 고속도로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15시15분 해발427m의 국수봉을 들렀습니다.
387봉에서 고속도로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습니다. 387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갔다가 오른 나지막한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 중부고속도로 위 절개면에 다다랐습니다. 절개면 꼭지점에서 앞서 길보다 훨씬 흐릿한 길을 따라 왼쪽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 만나 시멘트 도랑 폭이 넓어 주의해서 건넜습니다. 바로 아래 중부고속도로 밑으로 난 지하도를 건너 오른 쪽으로 몇 걸음 옮겼습니다. 왼쪽 사면의 절개지를 어찌 오를 까 지형을 관찰하다 공사장 돌무더기 옆을 지나 오를 만한 길을 찾아 그 길로 올라섰습니다. 예전 같으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는 길을 이토록 신경 쓰는 것은 혹시나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날 정도로 지난 가을 사고 후 부쩍 소심해졌기 때문입니다. 무사히 절개지를 올라 꼭지점 가까이에서 왼쪽으로 꺾어 희미한 지맥 길을 찾아 잡목 숲들을 헤쳐 가는 동안 가시에 여러 번 찔렸고, 어렸을 때 시골 선산에서 숱하게 쏘였던 쐬기에 손등과 무릎을 쏘였습니다. 방금 지나온 공사장을 왼쪽으로 끼고 돌며 이어지는 완만한 지맥 길은 국수봉에 가까워지자 경사가 급해졌습니다. 해룡산과 마찬가지로 지맥 길에서 왼쪽으로 5-6분 정도 벗어나 자리한 국수봉을 올라서자 해룡산4.6Km/정개산5.1Km"의 표지판이 걸려있었습니다. 시간도 충분해 15분간 푹 쉬면서 여러 개 남은 자두를 꺼내 들었습니다.
16시22분 삼각점이 서있는 319봉에 올랐습니다.
국수봉에서 넓고개에 이르기까지 네 곳의 송전탑공사장을 지났습니다만, 한 여름이어서인지 공사는 모두 멈춘 상태고, 공사장은 버릴 것들을 제대로 치우지 않아 지저분하고 지나다니기가 불편했습니다. 국수봉 바로 아래 공사장도 마찬가지여서 갈림길에서 국수봉을 오를 때도 공사장 쪽으로 바로 오르지 않고 이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돌아 올라갔습니다. 정상에서 갈림길로 되내려와 동쪽으로 5-6분간 진행해 오른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서는 길에 줄을 쳐놓아 하마터면 그대로 직진해 알바를 크게 할 뻔 했습니다. 그대로 직진했다가 뭔가 이상해 지형도를 꺼내보고 오른 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옳다고 판단해 가로막은 줄을 넘어 내려가자 표지기가 보였습니다. 다시 오른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두 번째 공사장에 이르자 안전모 등이 내팽겨 쳐져 이래서는 정말 아니다 싶었습니다. 세 번째 공사장에 이르자 공사를 하느라 나무들을 베어내어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정개산에서 시계방향 반대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지맥 길 같았고 그렇다면 저쯤에 희미하게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앵자봉이다 싶었습니다. 세 번째 봉우리에서 깊숙이 내려갔다가 올라선 어깨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가서 319봉의 삼각점을 지났습니다.
17시31분 이번 구간 마지막으로 삼각점이 세워진 284봉에 올라섰습니다.
319봉에서 직진해 만난 봉우리를 오른 쪽으로 에돌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낮은 봉우리에서 다시 오른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별반 크지 않은 돌무더기가 있는 봉우리에서 일반표지기가 걸린 오른 쪽 길로 들어서지 않고 왼쪽으로 진행하자 곧바로 지맥 표지기가 보였습니다. 바람소리와 먹구름이 금세라도 비를 몰고 올 기세여서 마음이 급해져 서둘렀습니다. 두 번을 더 왼쪽으로 꺾어 내려갔다가 네 번째 공사장으로 올라가 잠시 쉬면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계단식 절개지를 따라 내려가 해발 200m대(?)의 깊숙한 십자안부에 내려섰습니다. 왼쪽 아래로 묘지와 물류센터건물들이 보였고 오른 쪽 아래로는 넓은 임도가 보이는 이 고개도 나이 든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안부에서 곧바로 오르는 지맥 길은 풀숲 길로 이어졌습니다. 안부를 출발해 20분 가까이 걸어 오른 무명봉에서 동쪽으로 난 고도차가 별로 없는 평평한 길을 10분가량 걸어 삼각점이 박혀있는 284봉에 다다르자 남동쪽으로 이천 시내 아파트들이 가깝게 보였고 3번 국도를 지나는 차 소리들이 크게 났습니다.
18시8분 넓고개에 도착해 3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284봉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지맥 길은 풀숲 길로 사람 다닌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길을 제대로 이어가기에 신경이 쓰였는데 길가의 산초나무들이 때를 만난 듯 가시를 세워 마구 찔러대는 바람에 짜증이 났습니다. 20분가량 이런 길을 걸어 동원대학이 아주 가깝게 보이는 넓고개 바로 위에서 옷을 갈아입느라 10여분이 지났습니다. 천진암 성지를 20Km 남겨놓은 넓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마치고 왼쪽 아래로 내려가 길 건너 정류장에서 강변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입추를 하루 앞둔 산속에서 저만치 다가오는 가을을 보았습니다.
해룡산에서 내려오면서 빛과 더불어 1-2주 밖에 살지 못하고 짧은 삶을 마감하는 매미를 보았습니다. 등을 땅에 눕히고 하늘을 향해 버둥거리는 매미들의 죽어가는 모습은 여름 끝머리에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중부고속도로 위 절개면에서 국수봉을 오르면서 길바닥에 떨어진 새파란 도토리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딱정벌레(?)들이 도토리가 열린 참나무가지들을 잘라낸 것인데 이 또한 매년 이맘때면 자주 눈에 띄는 풍경입니다.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초록색의 햇밤송이를 주워 흑갈색의 해 지난 밤송이 옆에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고 나자 가을을 맞는 밤송이와 가을을 보낸 밤송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습니다. 이렇듯 가을은 여름의 꼬랑지를 붙잡고 어느 새 저희 곁에 바짝 다가왔습니다.
저는 아직 여름을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큰 맘 먹고 시작한 성지순례 길이 고행의 길이 되기 위해서는 기온도 30도를 훨씬 넘어야 하고 습도도 한참 높아야 합니다. 그런 길을 걸어야 주님께서 걸으신 고난의 길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름을 그리 빨리 끝내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저는 이제껏 여름 한 철 고된 산행으로 4-5Kg 감량해 겨울 동안 제 몸무게를 이겨내곤 했습니다. 이번 산행을 끝내고 몸무게를 재본 즉 1983년 이후 처음으로 76Kg 대로 떨어졌습니다. 지금보다 더 떨어져 몸이 날렵해지면 가을산행이 한결 쉬울 것이고 해가 짧은 겨울산행에 속도를 더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체중감량은 중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운동하는 산 오름에도 도움 되지만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하산할 때도 무릎에 무리가 안 가게 하기위해서는 꼭 필요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여름에 마지막 더위를 주셔서 제 몸의 지방을 태워달라고 주님께 빌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아, 잘 들어라. 너는 살도 빼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네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누면서 살거라. 그리하면 네 살도 함께 나뉘어져 몸무게가 저절로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돈 안들이고 살빼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산행사진>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8.08 17:15
- 입추도 지났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지막 여름 산행, 안산 그리고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한남앵자지맥 종주기2
*지맥구간:칠봉산-배미실고개-성황당고개
*산행일자:2009. 8. 2일(일)
*소재지 :경기용인/광주
*산 높이 :칠봉산447m, 갈미봉447m, 용실산442m,
*산행코스:칠봉산-갈미봉-용실산-배미실고개-총신대입구-420봉
-금박산분기점-방도리고개-성황당고개
*산행시간:9시45분-18시57분(9시간12분)
*동행 :나홀로
미리내성지와 천진암성지를 이어주는 헤븐로드로 한남앵자지맥이 지납니다.
앵자지맥 종주 길이 제게 성지순례 길이 되는 것은 이 두 곳의 성지 외에도 삼덕고개와 은이성지 및 골배마실 성지들을 두루 들러볼 수 있어서입니다. 이번 두 번 째 종주 길에는 양지에서 택시를 타고 양지화인레조트 안으로 한참 들어가 골배마실 성지를 먼저 들렀습니다.
이번에 들른 골배마실 성지는 김대건 신부께서 소년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부친을 따라 충남당진에서 이사 온 골배마실에서 모방신부를 만났고, 그에 의해 마카오로 유학 보내기까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닦으며 유학을 준비했다 합니다. 1845년 상해에서 사제로 서품된 후 조선으로 돌아와 사목활동을 시작한 여기 골배마실 성지는 산길로 30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리내성지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골프장 한 구석에 자리한 성지를 들어가는 문이 잠겨 있어 그 위 다리를 건너 돌아서 들어갔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석상과 제대등, 그리고 초가집과 어머니모습을 새긴 부조가 들어선 잔디밭 집터가 전부인 성지가 너무 휑해 보여 김대건 신부님에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이성지로 전화해 자물쇠비밀번호를 받은 다음 성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성지를 몰래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을 그리하지 못한 것도 죄송했습니다.
오전9시45분 골배마실 성지를 출발했습니다.
골프장 안으로 난 비포장차도를 따라 오른 지 몇 분 안 되어 미군기지이니 민간인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의 경고판이 세워진 철문 앞에 다다랐습니다. 철문 가로 돌아들어가서 20분 가까이 올라가 커브 길의 전신주를 보자 두 주전 칠봉산 산행 시에 길을 잘 못 들어 이곳까지 내려왔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제 칠봉산이 멀지 않겠다 싶어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뒤따라오던 젊은 부부가 저를 앞질렀습니다.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칠봉산에 이르고 똑바로 가면 백색의 커다란 골프공의 조각물이 세워진 미군기지로 올라가는 넓은 헬기장 앞에서 골프공 봉우리를 향해 직진했습니다.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이틀 전에 들른 은이성지가 보일 것 같아 우정 올라갔는데 나뭇잎에 시야가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대신에 좁다란 미군기지 울타리 안에 세워진 골프공 조각물만 엄청 크게 보였습니다.
11시 정각 칠봉산을 출발해 앵자지맥의 2구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골프공조각물 봉우리에서 헬기장으로 되 내려갔다가 해발447m의 칠봉산 정상에 올라가 삼각점을 확인한 시각은 10시42분이었습니다. 스틱 길이를 맞추고 산행기와 지도를 꺼내보면서 20분 가까이 땀을 식혔습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채 안 지났는데도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니 성황당고개까지 갈려면 얼마나 많은 땀을 더 흘려야하나 생각하자 걱정도 됐지만 이참에 살 좀 뺄 수 있겠다 기대도 됐습니다. 칠봉산에서 독조봉갈림길에 이르는 지맥 길은 북동쪽으로 뻗어나갔습니다.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능선에 올라서자 누군가가 길가에 플라스틱물병 등의 쓰레기들을 잔뜩 쌓아 놓아 보기에 안 좋았습니다. 나무의자가 세워진 쉼터봉우리를 넘어 11시41분에 "칠봉산1.2Km/용실산0.8Km"의 표지봉이 세워진 해발447m의 갈미봉에 올라섰습니다. 갈미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자 왼쪽 아래에 골프장의 클럽하우스가 자리해 있었고 그 뒤로 방금 전에 들른 골프공조각물이 보였습니다. 조금 더 진행하자 왼쪽으로 골프장 안에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스키장의 리프트가 보였습니다.
12시8분 독조봉 갈림길에 다다랐습니다.
스키장리프트 위에서 짧은 거리의 철조망 펜스를 지나 해발442m의 용실산에 올랐습니다. 나무의자가 하나 있는 용실산에서 서쪽으로 시야가 탁 트여 골프장과 스키장이 훤히 내려다보였습니다. 이번 구간에서 만나는 해발 400m 대의 봉우리들은 칠봉산, 갈미봉과 용실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동고속도로 너머로도 이름 없는 봉우리 몇 개가 더 이어졌습니다. 용실산에서 북동쪽으로 5-6분을 내려가 만난 삼거리에 “무수막/갈미봉/청소년수련원”의 표지판이 서있는데 이 갈림길에서 지맥 길은 왼쪽 무수막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오른 쪽의 청소년수련원 길이 독조봉 가는 길이었습니다. 칠봉산에서 배미실고개까지는 골프장을 왼쪽으로 끼고 도는 것이어서 맨 마지막 갈림길에서만 오른 쪽 길로 직진하고 그 전의 갈림길에서는 무조건 왼쪽 길로 들어서야 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13시41분 배미실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독조봉 갈림길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든 후 12시25분에 무수막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낙엽이 소북이 쌓인 길을 걸어 고도를 160m가량 낮추었더니 안부가 나타났습니다. 평평한 길의 안부에서 길가에 가는 밧줄이 쳐진 길을 따라 올라가 다다른 무명봉을 넘어 삼각점이 세워진 327봉에 도착한 것은 13시 정각이었습니다. 375봉에서 왼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다시 만난 두 번의 갈림길에서 모두 왼쪽 길로 진행하다가 차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리는 마지막 갈림길에서 오른 쪽 길로 직진했습니다. 2-3분을 걸어 가시나무와 칡넝쿨 등으로 얽혀 있는 풀숲 길을 만났습니다. 방향도 맞고 표지기도 걸려있어 틀림없는 이 길을 고작 3-4m 정도 나아가는 동안 팔다리 여기저기를 찔리고 긁혔습니다. 낫 없이는 도저히 뚫고나갈 수가 없어 결국은 포기하고 왼쪽 아래 잔디밭 운동장으로 탈출했습니다. 그 아래 양지화인레조트 가는 길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걸어가 양지화인레조트 입구에 다다랐는데 이곳에서 오른 쪽 위로 배미실고개 마루가 가깝게 보였습니다.
고개 마루의 한 음식점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간이정자에서 과일을 꺼내들며 총신대까지 어떻게 진행할 까 숙고를 했습니다. 배미실고개에서 총신대입구까지의 지맥 길은 도로를 내느라 세 곳이나 끊겨 있고 방금 내려온 길처럼 가시덤불의 넝쿨숲길일 텐데 이를 뚫고 나아가는 일이 참으로 지난할 것 같았습니다. 몸 상태가 옛날만 같아도 좀 무리를 해서라도 도전해보겠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싶어 아쉽지만 산길을 버리고 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습니다.
13시54분 배미실고개에서 차도를 따라 오른쪽 사거리로 옮겼습니다.
직진 길이 제일리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십 수분을 걷자 고가 아래 사거리 모퉁이에 "Orange Factory Outlet"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오른 쪽으로 보이는 고개 마루가 마수고개로 이 고개 마루에 조금 못가서 왼쪽으로 나 있는 아스팔트길이 총신대로 향하는 길입니다. 이 길로 접어들어 화신가구를 지나 산모퉁이를 돌자 고가의 영동고속도로가 동서로 지났습니다. 고가 아래로 고속도로를 건너자마자 만난 총신대 안내 간판에서 몇 걸음 더 가자 왼쪽으로 지맥 길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5-6분을 걸어가 지맥 길로 복귀한 시각이 14시48분이었으니 배미실고개에서 지맥 길을 버리고 50분 가까이 차도를 따라 걸은 셈입니다.
16시5분 삼각점이 박혀 있는 422봉에 다다랐습니다.
영동고속도로 위 지맥 길로 복귀해 422봉으로 오르는 길은 총신대를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여서 오름 길 곳곳에서 오른 쪽 아래에 자리한 총신대가 잘 보였습니다. 오른 쪽 아래 묘지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삼거리에서 직진해 송전탑을 지났습니다. 한 여름의 무더위가 발걸음을 막아 봉우리삼거리에서 10분을 쉰 후 10분을 더 걸어 삼각점이 묻혀있는 봉우리에 오른 시각은 13시26분이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5분가량 걸어 아직 전선을 연결하지 않은 송전탑 봉우리에 이르자 남쪽으로 이제껏 걸어온 앵자지맥 길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공사 중인 송전탑들은 345Kv의 전압이 걸리는 대용량의 송전선으로 연결될 것이고, 그리되면 송전선 가까이에 사는 분들은 전자파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공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곤 하는 것이 상례인 것 같습니다. 바로 아래 찻길과 나란한 방향으로 나 있는 지맥 길을 걸어 422봉으로 오르는 중 길가에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텐트 안에서 농성 중인 총신대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저 같은 종주 꾼 외에는 지켜볼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인지 이들 학생들에서 빨간 머리띠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어 조금은 싱거웠습니다. 송전탑에서 떨어진 거리는 아시아나C.C와 거의 비슷해 보이는데 공사반대 플래카드는 총신대의 것만 걸려있었습니다. 절개면을 올라 다다른 422봉에서 왼쪽 아래로 시원스레 자리한 아시아나 골프장을 내려다보면서 용인이 골프 천국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422봉에서 오른 쪽 길로 조금 가다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급하게 내려가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16시42분 425봉에서 초소를 지키는 병사들을 만났습니다.
헬기장 출발 몇 분 후 오른 쪽 아래로 희미한 길이 보이는 안부를 지났습니다. 다시 봉우리를 두 개 넘어 내려선 안부는 오른 쪽 아래로 순교자기념관이, 그 반대방향으로 정수리 길이 갈리는 십자 안부였습니다. 된비알 길을 올라 바로 위 425봉을 오른 쪽으로 에돌았습니다. 오른쪽으로 금박산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금박산을 들르는 것을 포기하고 곧바로 왼쪽 425봉에 올라서자 둘이서 초소를 지키는 초병이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이 봉우리를 올랐기에 돌아갈 힘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으니 한 번만 눈감아달라고 간청했더니 “할아버지 이번 한번만 봐드리니 다음에는 이 길로 오시지 마십시오.”하고 군부대울타리 옆길 통행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이 길이 편해서 통행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고 마루금이 이 울타리 길을 따라가기에 간청한 것인데 선뜻 편의를 봐주면서 풀 숲속의 뱀을 조심하라는 초병들이 고마웠습니다. 철조망울타리를 따라 엄청 크게 반원을 그리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소담스런 야생화들이 자주 눈에 띄었지만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어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울타리에서 몇 m가량 나무들을 잘라내 풀들이 잘 자랐지만 그대 그때 풀들을 베어 억새가 키를 넘는 몽가북계 길만큼 힘들지는 않았지만 목덜미를 내리쬐는 햇빛의 강도는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18시33분 방도리고개를 지났습니다.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가는 길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은 땡볕도 땡볕이려니와 평지 길이 거의 없이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쉼 없이 오르내렸기 때문입니다. 이 길로 지나도록 편의를 봐준 초병들을 생각해 가능한 한 빨리 통과하고자 서둘렀으나 한 시간이 지나자 많이 지쳐 단숨에 울타리 길을 벗어난다는 것이 무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시51분에 올라선 나지막한 둔덕에서 나무그늘을 찾아 8분간 쉬면서 남은 과일과 물을 마저 들었더니 원기가 어느 정도 되돌아왔습니다. 왼쪽 건너로 광주의 태화산이 의젓하게 자리 잡았고 진행방향 멀리로 도드람산의 회백색 암괴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 반가웠습니다다. 다시 일어나 지맥 길을 이어간 지 20분 후에 다다른 둔덕에서 철조망 울타리는 오른쪽으로 확 꺾였고 지맥 길은 왼쪽 능선 길로 이어졌습니다. 이 길로 접어들어 여러 기의 묘지를 지났고 이곳에서 오른 쪽 큰 길로 내려가 부대 앞으로 내려선 것이 이번 종주산행에서 길을 잘못 든 유일한 알바였습니다. 길 건너로 탄약기지가 , 그리고 오른 쪽으로 군부대 정문이 보이는 차도에서 잠시 쉰 후 왼쪽으로 이 차도를 따라가 나지막한 방도리고개에 이르렀습니다.
18시57분 325번 지방도가 지나는 성황당고개에서 2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방도리고개에서 성황당고개까지 지맥 길을 이어가는데 대략 1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다른 분들의 산행기에 나와 있어 어둡기 전에 산행을 마치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이 길도 야트막한 야산 길이어서 넝쿨 풀밭 길이 분명하겠다 싶어 산길로 들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배미실고개에서 총신대 앞까지 어차피 지맥 길을 잇지 못한 제가 지금 와서 새삼 지맥 길을 고집할 이유가 있겠나 하고 편리하게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원칙에 충실한 종주산행을 해온 제가 이리도 약해진 것은 지난 가을 허리를 다친 후 기가 많이 꺾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도리고개에서 성황당고개로 차도를 따라 걸으며 오른 쪽 지맥에 자주 눈이 간 것은 차도로 찔러가는 얌체 짓이 부끄러워서였습니다. 쉼터를 찾은 듯 태화산 뒤로 몸을 숨기는 태양이 마지막까지 빛을 발하고 있어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K. SWISS" 물류센터가 가까이 있는 “방도1리 되재마을”의 성황당고개에서 종주산행을 마치며 이정도 산행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되찾아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고개마루 버스정류장에서 10분 남짓 기다려 진우리에서 회차해 곤지암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꽤 긴 시간을 무탈하게 산행했습니다.
앵자지맥은 단순한 종주길이 아니고 성지순례길이어서 제게는 헤븐로드입니다. 이 헤븐로드를 걷는 동안은 주님이 함께 해주실 것이기에 여느 때보다 덜 힘들 것입니다. 귀가 길 버스 안에서 “바라옵건대 천진암까지 아니 팔당의 남한강까지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제 두 다리와 허리에 힘을 모아 주십시오.” 하고 속으로 빌었습니다.
,산행사진>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8.03 10:25
- 해상도를 500만에서 700만으로 높여 찍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일이어서 그럴 것입니다.
다음 다음에는 천진암성지에 다다를 계획입니다. 미리내성지에서 천진암성지까지 헤븐로드를 걷고나면 신심도 더 굳어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한남앵자지맥 종주기 1
*지맥구간:문수봉-곱든고개-칠봉산
*산행일자:2009. 7. 31일(금)
*소재지 :경기용인/안성
*산높이 :문수봉405m, 칠봉산447m, 바래기산368m
*산행코스:미리내성지-애덕고개-쌍령지맥분기점-망덕고개-쌍령지맥분기점
-문수봉-곱든고개-칠봉산-신덕고개-은이성지
*산행시간:9시15분-15시56분(6시간41분)
*동행 :나홀로
용인 땅의 문수봉을 다시 올라 한남앵자지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한남앵자지맥은 한남정맥의 문수봉에서 분기하여 앵자봉을 지난 다음 정암산을 마지막으로 팔당의 남한강으로 침잠하는 산줄기를 이르는 것으로 그 길이가 약62km에 달한다 합니다. 두 주 전에 중소기업인력개발원 쪽에서 문수봉을 오른 다음 곱든고개를 거쳐 칠봉산에 이르기까지 앵자지맥 길을 한 번 밟았으면서도 이번에 다시 시작한 것은 이 지맥이 헤븐 로드(heaven road)임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헤븐로드란 문명을 실어 나르는 실크로드(silk road)에 대응해 종교가 퍼져나가는 길을 저 나름대로 부르는 것으로 학술적인 용어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한반도에 있는 모든 두 산봉우리는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섬에 자리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물을 건너지 않고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집니다. 문수봉-곱든고개-칠봉산의 짧은 구간을 마치고 나자 산에 바짝 붙어 자리하고 있는 미리내와 천진암의 가톨릭 성지 두 곳을 앵자지맥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우선 인터넷에 들어가 해당 산행기를 검색한 다음 축척 5만분의 1지형도에다 두 지점을 산줄기를 따라 금을 긋다보니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얼개가 짜였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용인의 삼봉산과 시궁산을 오른 후 애덕고개를 거쳐 쌍령산으로 옮겨 예지촌으로 하산했습니다. 이렇게 미리내성지를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를 한 번 걸어보고 나자 자신감이 붙어 서둘러 성지순례 길에 나섰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은 지 어언 9년이 지났습니다.
신앙심이 그리 깊지 못한 저로서는 그동안 거의 한주도 빼먹지 않고 매주 산을 오르느라 매주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는 것만도 힘에 겨웠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특전미사를 보거나 만부득이 한 경우 하산 후 현지 성당을 찾아가 미사를 올리는 등 나름대로 애썼어도 일 년에 서 너 차례는 주일미사를 빼먹어 고해성사를 해야 했습니다. 대개의 성지들이 산이 아닌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산을 좋아하는 제게는 죄송스럽게도 불교의 명찰이 더 가깝게 느껴졌는데 이번에 미리내 성지와 천진암 성지가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빛을 찾은 듯 기뻤습니다.
앵자지맥 종주산행의 첫 번째 구간은 문수봉에서 칠봉산까지 아주 짧게 잡았습니다.
이번 산행의 주된 목적이 지맥종주보다는 헤븐 로드를 따라 밟는 성지순례였기 때문입니다. 미리내성지를 출발해 애덕고개를 밟은 다음 산줄기를 따라 쌍령지맥에 이릅니다. 쌍령지맥을 따라 올라 한남정맥을 만나서는 왼쪽의 망덕고개로 내려갑니다. 망덕고개에서 되돌아와 문수봉으로 향합니다. 앵자지맥 종주는 문수봉에서 시작하여 곱든고개를 거쳐 칠봉산까지 시간 반 정도로 마치고, 칠봉산에서 삼덕고개의 마지막 고개인 신덕고개로 내려섭니다. 이 고개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은이성지에서 산행을 마치도록 종주계획을 세운 것이기에 지맥구간종주는 전체 산행시간의 1/4 정도에 불과합니다. 혹여 누구라도 앵자지맥 종주에 참고하고자 이 글을 본다면 적지 아니 실망할 것 같아 산행의 대강을 미리 밝혀두는 것입니다.
오전9시15분 미리내성지 입구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7시5분에 강남터미널을 출발한 고속버스가 안성종합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8시10분이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아직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어수선한 종합터미널에서 하차해 길 건너 시내버스정류장으로 옮겼습니다. 8시30분 안성 발 미리내 버스에 몸을 실고 차창 밖을 내다보자 들판의 푸르른 벼들이 풍요로운 가을을 약속하는 듯해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9시 조금 넘어 성지 입구에 도착해 관리사무소에서 안내책자를 받아들고 곧바로 애덕고개로 향한 것은 미사가 11시30분에 시작되어 성지순례 후 미사를 보기에는 너무 늦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조만간 이 성지를 다시 찾아와 곳곳을 찬찬히 돌아보고 미사를 올린 후 김수환추기경께서 묻히신 용인천주교묘지로 옮겨 참배하기로 마음먹고 이번에는 아쉽지만 바로 애덕고개로 올랐습니다.
미리내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묘소와 경당이 있는 유서 깊은 성지입니다. 김대건 신부께서 1984년 교황 요한바오르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은 1845년 중국에서 신부로 서품된 후 충남강경에 잠입해 서울로 향하면서 비밀리에 전도하다가 그 이듬해 백령도에서 체포된 후 서울로 압송되어 순교하기까지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우리나라에 가톨릭을 전파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께서는 1821년 충남당진에서 태어났지만 용인으로 이사와 자랐기에 절두산에서 처형당한 시신을 용인의 신도 몇 분들이 여기 미산리로 운구해 모신 것입니다. 신부께서 살아계실 때는 포교의 길이었고 돌아가셔서는 시신의 운구 길이었던 세 곳의 고개를 신덕고개, 망덕고개와 애덕고개의 삼덕고개로 부르는데 이번 순례 길에는 그 길을 그대로 밟지는 못하고 미리내의 애덕고개를 출발해 산줄기를 타고 가다가 아래로 내려가 망덕고개와 신덕고개를 차례로 밟아보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9시56분 애덕고개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며 기도를 올린 후 동쪽능선으로 올라 쌍령지맥으로 향했습니다. 이고개로 오르는 길에 묵주기도의 길, 한국순교자103위시성기념성전, 경당과 김대건신부님묘소 등을 카메라에 옮겨 담느라 시간이 좀 지체됐습니다. 지난 일요일만 해도 그늘이 잘 진 길이 그새 길섶의 나무들이 간벌되어 휑하니 하늘이 보이는 바람에 목덜미를 내리쬐는 해살이 따가웠습니다. 꾸준히 오름 새가 계속된 능선 길은 얼마 후 북동쪽으로 바뀌는 가 했는데 애덕고개 출발 반시간이 채 못 되어 어느새 쌍령지맥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남쪽 길은 지난 일요일 오른 쌍령산으로 가는 길이고 망덕고개는 그 반대인 북쪽으로 이어졌습니다. 북진 길은 15분가량 지속되다가 나지막한 구릉에서 오른쪽의 동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얼마 후 송전탑이 나타났고 조금 더 가 넓은 풀밭 길의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11시7분 쌍령지맥 길이 갈리는 한남정맥의 쉼터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풀밭의 임도 길은 편안한 길로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0분을 다 못 걸어 다다른 삼거리의 넓은 공터 한쪽에 등산로를 안내하는 안내판이 세워져있었습니다. 임도 길은 왼쪽으로 꺾여 나아갔고 쌍령지맥은 안내판 위로 나무계단 길로 이어졌습니다. 7분을 걸어 오르자 4년 전 한남정맥 종주 시에 잠시 머물렀던 사각정자가 보였습니다. 이곳이 바로 한남정맥에서 쌍령지맥이 갈라져나가는 분기점으로 오른쪽은 문수봉으로 그리고 왼쪽은 망덕고개로 향하게 됩니다. 이곳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망덕고개로 출발했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첫 번째 봉우리에서 한참을 더 걸어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봉우리가 해발368m의 바래기산으로 삼각점은 물론 이렇다 할 표지물이 없어 지도가 없다면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바래기산에서 내려가 만난 임도 바로 아래가 망덕고개로 이 고개 역시 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이분의 시신을 운구한 몇 분들을 기리는 이 자리에서도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이제껏 저는 기도를 자주 드리지 않은데다 주님의 도움을 받아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기복신앙에 가치를 두지 않아 별달리 아는 기도문이 없어서였습니다. 삼덕고개 안내판이 오른 쪽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신덕고개 길을 그 위 임도 길로 안내해 참으로 이상하다 했는데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사유지인 와우정사 오른 편 길이 통행이 막혀 산줄기 길로 안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2시20분 쌍령지맥 분기점인 쉼터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여기 쉼터에서 1.1Km 떨어진 망덕고개를 다녀오는데 1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후덥지근하고 시장기가 느껴져 휴식을 취하면서 과일을 찾았습니다. 멍청하게도 김치찌개를 끓이고자 사두었던 두부가 든 통을 자두를 담은 통으로 잘 못 알고 갖고 와 자두대신 두부 반 모를 먹었습니다. 제가 워낙 두부를 좋아해서 문제되는 것은 아니고 이참에 더운 날 산행하는 데 비타민과 당이 많이 든 과일이 좋은 지 식물성단백질의 두부가 좋은지 확인해 볼 뜻입니다. 쉼터를 출발해 10여분을 걷고 나자 후다닥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낮 시간에 소나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접한 터라 바지와 상의를 벗어 넣고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단 5분도 못 걸어 해가 났지만 문수봉까지 꾹 참고 그대로 강행해보자며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온 몸에 땀이 비 오듯이 흘러 결국 안부에서 조금 올라가 만난 저유탱크 감시초소 앞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비옷을 벗었습니다. 이렇듯 제가 참아낼 수 있는 한계가 별 것 아님을 알고 나자 앞으로 주님 앞에서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41분 한남정맥의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앵자지맥에 발을 들였습니다.
비옷을 벗어 넣고 잠시 땀을 식힌 후 십 수분을 걸어올라 문수봉에 이르기까지 오름 새가 계속되어 얼마고 힘들었습니다. 해발405m의 문수봉에 오른 것은 13시18분으로 여기 팔각정에서 점심을 든 후 맥주를 마시며 쉬었습니다. 두 주전 동쪽 아래 시꺼멓게 보였던 사암지의 물이 제 색깔을 찾은 듯했습니다. 20분을 넘게 쉰 후 13시41분에야 다시 배낭을 꾸려 메고 앵자지맥 종주에 나섰습니다. 북쪽으로 급하게 내려가는 지맥 길은 넓었고 안부에서 송전탑이 서있는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돌아 오른쪽 아래로 삼성레포츠 길이 갈리는 봉우리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방금 전 우회한 봉우리의 송전탑을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 작업을 하고 있는 직원들을 올려다보며 이 나라가 이나마 돌아가는 데는 저들처럼 도처에서 맡은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일꾼들이 있어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자 회비만 타먹고 정쟁만 일삼는 의원들이 더욱 밉살스러웠습니다. 봉우리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갔다가 오른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얼마고 진행하자 지난번에 그냥 지나쳐 생고생을 한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4-5분을 걸어 내려가 곱든고개에 다다른 시각이 14시7분이었으니, 문수봉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지난번은 알바로 시간 반이 걸린 것을 이번에는 반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곱든고개의 해발고도는 제 고도계에 285m로 나타났습니다.
벽초 홍명희 선생이 지은 소설 임꺽정에 어떤 인물이 이 고개에서 임꺽정 행세를 하다가 진짜 임꺽정에 걸려드는 장면이 나온다 합니다. 읽은 지 10년이 훨씬 넘어 이런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어찌했든 예부터 이름이 알려진 고개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300m가 약간 못되는 이정도의 높이가 산적들이 활동하기에 딱 알맞았겠다 싶은 것은 더 높아서는 아예 사람들이 넘어 다닐 엄두를 못 냈을 것이고 더 낮아서는 관군의 토벌에 산적들이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봉우리와 봉우리사이에 움푹 들어간 곳을 그 모양이 말안장과 같다하여 안부라 합니다.
이 안부를 사람들이 길을 내어 이쪽 저 쪽으로 넘나들면 고개라 부릅니다. 깊숙한 안부는 자연이 만들지만 이 안부에 길을 내어 고개 마루로 삼는 것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고개는 문명이 소통되는 실크로드인 것입니다. 그 고개를 만든 사람이 산적이냐 관군이냐 아니면 그 지방 주민들이냐에 관계없이 일단 고개에 길을 내고나면 고개 아래 양쪽의 문명이 이 고개를 통해 소통되게 마련입니다. 여기 곱든고개는 주로 산적들이 기거했겠지만 이번에 순례하는 삼덕고개는 김대건신부께서 포교 차 넘었고 그분이 순교한 후 그분을 받드는 신자들이 시신을 안고 넘었습니다. 이렇듯 삼덕고개는 문명의 소통로인 실크로드이자 가톨릭 종교가 퍼져나간 헤븐로드이기에 제가 이번에 순례 길에 나선 것입니다.
15시11분 해발447m의 칠봉산에 올라 첫 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침목을 깔아놓은 곱든고개의 에코브리지를 지난 후로는 칠봉산 정상까지 계속 고도를 높여갔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를 지나 첫 번째 봉우리에 오르자 먼발치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하늘에는 시꺼먼 구름이 가득 차 당장이라도 큰 비가 내릴 기세였습니다. 또 한 봉우리를 넘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얼마 후 나무의자가 설치된 쉼터에서 잠시 쉬며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왼쪽으로 은이성지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직진 길로 올라 칠봉산에 올라서자 엄청 퍼부을 것 같던 비가 다시 그쳐 비옷을 다시 벗으며 비와의 숨바꼭질을 또 한 번 했습니다. 오른 쪽 길은 앵자지맥 길이고 왼쪽으로 골배마실 성지길이 나있는 칠봉산 정상에서 삼거리로 되돌아가 서쪽 아래 신덕고개로 내려선 시각은 15시27분이었습니다. 저는 애덕고개를 먼저 밟은 후 망덕고개를 거쳐 신덕고개에 이르렀지만,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라는 신덕송, 자비의 근원이시라는 망덕송, 그리고 사랑의 근원이시라는 애덕송 등 삼덕송의 순서대로 운구 되었습니다. 신덕고개에서 다시 한 번 기도를 올린 후 오른 쪽 아래 은이성지로 향했습니다.
15시56분 은이성지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신덕고개에서 은이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이내 임도 길로 변해 넓어졌고 낙엽송들이 하늘을 가려 조금은 어둑했습니다. 길 가까이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감 있게 들렸습니다. 시멘트 길이 시작되는 은이계곡 입구에서 은이마을로 들어선지 십 수분이 지나 은이성지에 다다랐습니다. 이곳 은이성지는 아직 성지로 꾸며지지 않아 미리내성지에 비할 수 없이 초라하지만 김대건 신부께서 세례를 받으신 뜻 깊은 곳입니다. 성지 여기저기를 돌아본 후 17시 조금 넘어 용인가는 마을버스에 올랐습니다.
종주 산 꾼인 제가 이번 앵자지맥의 첫 구간을 성지순례 길로 삼고 그 기록을 이렇게 남기는 것은 그간 수많은 산을 오르내리면서 유명 사찰은 많이 들렀지만, 가톨릭을 믿으면서 정작 성지순례는 거의 하지 못해서입니다. 다음은 골배마실 성지를 먼저 들른 후 성지 길을 걸어 칠봉산을 올라 천진암으로 이어지는 앵자지맥의 2구간 종주에 나설 계획입니다 이번 삼덕고개를 이은 저의 성지순례를 보시고 진리와 자비 그리고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그간의 게으름을 널리 용서해주실 것을 빌면서 이 글을 맺습니다.
<산행사진>
- 계백 계백 Y
- 2009.08.01 13:28
- 반갑습니다.
무더위와 어울리지 않지만 가을의 문턱
立秋가 들어있는 8월이 문을 열었습니다.
후회를 줄이는 한 달 기원 드립니다.
추억 많은 휴가빕니다.
- 시인마뇽 시인마뇽 Y
- 2009.08.03 10:22
- 저는 7-8월에 종주산행을 많이 해왓기에 웬만한 불볕더위에는 많이 익숙합니다. 아직 먼 곳의 지방 산 줄기를 종주하기는 몸이 받쳐주지 못해 올 여름에는 가까운 앵자지맥종주로 피서여행을 가름하고자 합니다. 건산, 안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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