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지맥·분맥·단맥/한남정맥 분기지맥

한남서봉지맥 종주기

시인마뇽 2012. 1. 16. 11:41

                                       한남서봉지맥 종주기5

 

 

                       *지맥구간:오뚜기식품공장-39번도로금곡삼거리-평택호

                       *산행일자:2010. 2. 28일(일)

                       *소재지 :경기평택

                       *산높이 :계두봉44m

                       *산행코스:오뚜기식품공장-약사사-39번도로금곡삼거리-파랑새유치원입구삼거리

                                      -39번도로변 SK가스충전소-계두봉-평택호

                       *산행시간:10시5분-16시22분(6시간17분)

                       *동행 :나홀로

 

 

   마지막 서봉지맥 종주 길에 하늘을 나는 철새 청둥오리(?)와 텃새 까마귀들을 보았습니다.

철새 청둥오리가 >자 형 편대를 이루고 가지런하게 하늘을 비행하는 것을 보고 앞자리의 영도자 새 한마리가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서란 다중을 위해 명령을 따르고 지킬 때 이루어 집니다. 인간사회에서는 그 명령이 법률에서 나오지만 저런 새들은 비행을 선도하는 새에게서 나올 것입니다. 이 새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날다가는 죽음에 이른 다는 것을 본능으로나 경험으로나 익히 알고 있기에 저토록 가지런하게 편대를 이루고 비행하는 것입니다. 까마귀들은 날아가는 방향도 같지 않았으며 떼를 지어 나는 것이 아니고 두 서너마리가 하늘을 조금 날다가 이내 내려 앉곤 했습니다. 이들의 날개짓이 자연스럽기는 해도 질서정연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이들은 멀리 날아갈 필요가 없고 또 멀리 날아가서는 안되는 어쩔 수 없는 텃새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비행하며 철마다 살 곳을 찾아다니는 철새들이 텃새를 내몰고 자리를 잡아 텃새노릇을 하는 일도 있다 합니다. 길잃은 철새가 아니고 이주한 외래새가 된 것입니다. 저는 그런 철새들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저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다 새로운 땅에 정주한 해외교민들이 바로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롭게 터잡은 외래 철새와 다름없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한반도의 반쪽도 채 안되는 남쪽 땅에서 온 백성이 영원히 텃새로 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인데도 조선조 5백년동안 대문을 잠가놓고 하늘을 비행하는 것을  막아왔기에 안에서만 머리 터지게 싸워온 것입니다. 대문만 열어놓으면 잘도 날아다니는  것을 그토록 오래 잠가놓았기에 아직도 안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버릇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만 이들이야 한 줌도 안되는 정치인들이고 대부분은 철새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비행하면서 새 터를 찾아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 가느라 쌈박질을 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질서정연한 철새들의 비행을 보고나자 대한민국 건국 후  이 나라를 이끌어온 지도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철새들을 이끄는 영도 새들처럼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반석 위로 올려놓았는 가 하면 텃새처럼 안에서 터를 더 차지하고자 제로 썸(zero sum)싸움에 몰두한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3.1절을 하루 앞두고 이 나라 지도자들이 우리 민족이 어떻게 이끌어왔는 가를 잠시 되돌아보게한 철새들이 이땅에서 편히 머물다가 가기를 빌어봅니다.

 

 

 

 

  오전10시5분 39번 국도가 지나는 오뚜기식품공장 앞을 출발했습니다.

수원역 애경백화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40분 가까이 기다리다 안중 가는 버스는 이곳에서 정차하지 않는 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육교 건너 로터리 앞 공종전화부츠 앞으로 옮겨가 탔습니다. 발안을 지나는 중 버스 안에서 요당리사거리에서 서봉지맥 마지막 구간 종주에 나선다는 성봉현님의 전화를 받고 제가 수원역에서 넋 놓고 버스를 기다린 것이 이 지맥의 끝점에서 이분을 만나려고 그리한 것 같다 싶었습니다. 39번도로가 지나는 오뚜기식품공장 앞에서 하차하여 후문으로 옮겨 절개지위로 올라섰습니다. 절개지를 지나 골조만 남은 산불감시초소가 서있는 87봉에 올라서기까지 잔솔가지 숲속의 희미한 길을 이어가느라 산행 초반부터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오른쪽 아래로 돔형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장이 보이는 능선을 지나는 중 철새들이 >형으로 대열을 짓고 제 머리 위를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헬기 한 대는 내려앉을 만한 117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지 않고 우정 올라가 방향을 확인한 후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따라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얼마 후 한 여름이라면 뚫고 지나가기가 엄청 고역이겠다 싶은 푹 꺼진 덤불숲의 110.8봉을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른 후 바로 아래 전주이공묘지를 지나 왼쪽 아래로 파란 지붕이 보이는 십자안부로 내려갔습니다.

 

 

 

 

  11시3분 좁다란 아스팔트길이 지나는 십자안부의 고개를 지났습니다.

덕우중앙교회와 오뚜기식품공장의 후문을 이어주는 아스팔트길이 나지막한 이 고개를 동서로 넘었고 서봉지맥을 종주하는 저는 이 안부를 북에서 남으로 지났습니다. 안부에서 바로 위 묘지를 지나 봉우리를 오른 다음 편안한 길을 걸어 바위 몇 개가 있는 봉우리에 다다르자 그 왼쪽 가까이에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왕릉의 반의반은 족히 되어 보이는 엄청 넓은 묘역을 조성해 놓고 단 4기의 봉분을 앉힌 묘지를 지나 약사사로 내려가 이 절을 휘 둘러본 후 석탑과 석불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절이 창건된 것이 신라의 문성왕14년인 852년이라는 데 고찰다운 면모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 절 아래 시멘트 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고개 마루로 올라가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길옆에다 생활폐기물만 버리지 않았다면 운치 있을 낙엽 깔린 임도를 따라가다 오른 쪽으로 꺾어 진행했습니다. 왼쪽 아래 축사를 지나 안중공설묘지에 이르러 흙길은 끝났고 시멘트 길이 이어졌습니다. 오른 쪽 아래에 묘지가 빽빽이 들어선 안중공설묘지를 지나 이내 39번 국도를 다시 만나 곳이 금곡삼거리였습니다.

 

 

 

  12시2분 사상의학/반룡한의원 건물 앞 금곡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남쪽으로 향하는 39번국도를 버리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가다 경기도외국어교육연수원으로 가는 오른 쪽 길로 들어서야 할 것을 그냥 지나쳐 안중5거리까지 직진했습니다. 5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38번도로를 얼마간 따라가 안중성당 앞을 지나면서 10년 전 과천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 제게 대부님을 정해주시고 그 이듬해 평택의 작은 성당으로 옮겨가신 젊은 신부님이 생각났습니다. 서평택국민체육센터 앞 육교와 아파트단지를 차레로 지나 골프연습장 옆 K1 MART의 스낵 집에 들른 시각이 12시51분이었습니다. 순대를 사들며 20분가량 쉰 후 스낵 집을 출발해 38번 차도를 따라 10분간 걸어가자 길 건너로 경기도외국어교육연수원길이 38번도로와 합류하는 옛고을한우정육식당이 보였습니다. 석정삼거리를 지나 파랑새유치원입구에 이르기까지 1시간15분 동안 국도를 따라 걷느라 발바닥이 아프고 차량소음으로 정신이 멍했습니다.

 

 

 

  13시37분 파랑새유치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도대리길로 들어섰습니다.

왕복4차선의 38번국도에 비해 왕복2차선의 도대리길은 지나다니는 차들이 뜸했고 대형트럭들도 거의 다니지 않아 차도를 따라 걷기가 한결 났습니다. 길가 오른 쪽의 길쭉한 건물 한 동은 상가로 지은 것 같은데 어느 한 곳도 입주되지 않아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습니다. 대신정기화물과 서해플란트를 지나 삼거리에 이르렀고 이 삼거리를 지나자 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묶여 있는 개 한 마리가 꽤나 심심했던지 지나가는 저를 보고 싱겁게 짖어댔습니다. 해발고도가 20-30m정도인 능선에 낸 차도를 따라 걸으며 고도가 얼마냐 관계없이 산줄기는 모두 물을 양쪽으로 가르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領)임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주변의 산들도 하나같이 키가 낮아 산 너머로 아파트가 보이는 진풍경을 연출했습니다. 운정1리입구사거리를 지나 다다른 도대3리 삼거리에서 오른 쪽 도로를 따라 진행해 도대2리 4거리에 이르기 얼마 전에 볏짚이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작은 논배미를 보았습니다. 이 논은 베어낸 볏짚을 퇴비로 쓰고자 논바닥에 그대로 두어 다섯달 가까이 벼를 길러내느라 쇠약해진 지력을 강화하는 데 쓰고 있는데 대개의 논들은 볏짚을 비닐로 진공 포장해 젖소먹이로 내다 팔기에 화학비료로 지력을 보충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두 마직이 정도 밖에 안 될 작은 논배미를 경작하는 농심이 참으로 넓게 느껴졌습니다.

 

 

 

  14시24분 도대2리 사거리를 지났습니다.

이 사거리에 “경인년 주민화합 윷놀이 한마당” 플래카드가 걸린 것을 보고 대보름이 가까운가보다 했는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농업이 주축인 옛날에는 퍽이나 다채로웠을 세시풍속들은 지식정보산업이 선도하는 사회로 바뀐 요즈음은 거의 다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 있는 윷놀이도 젊은이들이 함께 즐기는 것이 아니어서 모든 세대를 어우르는 새로운 세시풍속이 뒤를 잇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지막한 구릉들을 논으로 개간하고 산소를 들어앉혀 봉우리부근만 숲이 조금 남아 있는 주변의 산들을 보면서 경기도 최고의 곡창지대인 평택이 기차 타고 지날 때 보았던 광활한 평야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구릉을 개간해 만든 논도 적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전선에 앉아 있는 시꺼먼 까마귀들이 자리를 옮기고자 하늘을 나는 모습은 앞서 본 철새들의 그것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텃새인 까마귀들은 놀이터가 넓지 않아 한두 마리씩 하늘을 날며 이곳 저 곳으로 옮겨가는 정도라면 철새는 질서정연하게 편대를 이루어 먼 곳으로 비행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대 사거리에서 20분 남짓 걸어 대부금속야적장 앞에 이르렀고 이곳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포장이 안 된 넓은 논둑길로 들어선 지 6-7분이 지나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 마루 오거리에서 직진해 산 길로 들어서자 아스팔트길은 차들을 위해 만든 것이어서 사람들이 걸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15시23분 LPG가스충전소 앞에서 39번국도로 들어섰습니다.

고개마루 오거리에서 편안한 산길로 들어선 후 차 바퀴자국을 따라 10분을 걷자 39번 국도가 바로 앞에 보였습니다. 서봉지맥의 끝점인 평택호관광단지에서 만나기로 한 성봉현님이 어디를 지나고 있나 궁금해 전화를 했더니 저보다 한참 뒤에 있어 마음 놓고 옆자리 묘지로 옮겨 과일을 꺼내들면서 10분여 망중한을 즐겼습니다. 오리사냥 음식점을 지나 LPG가스충전소 앞에서 39번 국도로 들어서자 38번 국도보다 더 시끄러웠습니다. 사람 다닐 길이 못되는 이 길을 따라 걸어 육교를 막 지나 만난 현덕기사식당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조금 더 걸어가자 휀스 오른 쪽에 39번국도와 나란히 나있는 시멘트포장 길이 보여 그 길로 내려섰는데 국도에서 불과 1m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소음이 훨씬 덜해 걸을 만 했습니다. 얼마 후 오른 쪽으로 바다가 보이고 철새들이 하늘을 비행하는 것도 보였으며 이제 종착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싶어지자 안도감과 평화로움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16시22분 평택호관광단지 안 현충탑 앞에서 서봉지맥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39번 도로변의 권관3리 입구를 지나 동쪽 사면이 잘려나간 절개면의 꼭지점에 아슬아슬하게 자리한 소나무들을 보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덕교차로 앞에서 굴다리로 39번 국도를 건너고보니 맞은 편 봉우리가 서봉지맥의 끝 봉일 것 같아 STAR 호텔 앞에서 지하도를 지나 39번 도로 서편의 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제 시계에 고도가 50m로 나오는 해발44m의 계두봉(?)에 오르자 좁은 마루에 바위들이 박혀 있었고 아쉽게도 나무들이 시야를 완전히 가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은 후 무릎 꿇고 잠시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계두봉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 현충탑 앞에서 순국선열 분들께 묵념을 하면서 하루 앞둔 3.1절을 떠올렸습니다.  뛰어난 국가지도자 몇분이 순국선열들 및 산업전사들과 함께 땀흘려 일군 대한민국이 정말 자랑스러운 것은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몇 개를 더 따서만이 아니고 이제는 35년간 이 산하를 강점했던 일본을 앞선 분야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구호로만 외치는 반일로는 극일이 안되는 것이 본래 구호란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진정한 극일은 여러 분야에서 일본과 경쟁해 이기는 것이고 문화대국으로 자리매김해야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일본으로부터 자본과 지식 및 기술을 들여와 조국근대화를 이룩한 박대통령의 업적은 극일의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뒤 따라오는 성봉현님이 이 탑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 육교를 건너 평택호로 다가갔습니다. 오른쪽으로 서해대교가 보이는 방조제에서 둘러본 호수는 마치 바다 같이 넓었는데 갈매기들이 날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바닷물을 막아 만든 이 호수가 이제는 담수호로 완전 탈바꿈했다 싶었습니다. 현충탑으로 돌아가 성봉현님을 만났습니다. 저와 띠 동갑인 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6년12월이었지만 종주 길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꼼꼼하고 깔끔한 종주기로 정평이 나 있는 님의 명성이 명불허전이다 한 것은 목에 걸린 5만분의 1 지형도와 도톰한 노트에 빽빽이 써놓은 산행기록을 훔쳐 보고나서였습니다. 캔 맥주로 서봉지맥 종주를 자축한 후 평택역으로 나가 서울 가는 전철에 올랐습니다. 금정역에서 내려 산 이야기와 살아온 이야기를 안주삼아 2시간 가까이 함께 한 술자리가 오랜 지기를 만난 것처럼 편안했던 것은 우리 모두 산을 지독히 사랑하는 산객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종주산행이 철새들의 비행인지 아니면 텃새들의 나들이인지 잘 가름이 되지 않습니다.

진득하게 집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여기 저기 산줄기를 밟고자 종주 길에 오르는 저를 보면 철새를 닮은 것 같은 데 그렇다고 아주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며칠 후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제 터를 확인하는 것이나 떼를 지어 나서지 않고 저 혼자서 산나들이를 나서는 것은 영락없이 텃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철새와 텃새 중 누구를 닮아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이들 모두 날개짓이 가능한 새들이기에 날개쭉지만 꺽이지 않는 다면 얼마간은 멀리 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남서봉지맥을 마치면서 나이 80이 넘어서도 날개쭉지가 멀쩡해 정맥이고 지맥이고 가리지 않고 그 위를 나를 수 있기를 욕심내 봅니다. 철새라도 좋고 텃새라도 무방한 것이  먼 곳에의 동경은 제게는 실존의 증거이자 살아가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산행사진>

 

 

 

 

 

 

 

 

 

 

 

 

 

 

 

 

 

 

 

 

 

 

 

 

 

 

 

 

 

 

 

 

 

 

 

 

 

 

 

 

 

 

 

 

 

 

 

 

 

 

 

 

 

 

 

 

 

 

 

 

 

 

 

 

 

 

 

 

 

 

 

 

 

 

 

 

 

 

 

 

 

 

 

 

 

 

 

 

 

 

                                                      한남서봉지맥 종주기4

 

 

 

                               *지맥구간:누에박물관-덕지산-오뚜기식품공장

                               *산행일자:2010. 2. 24일(수)

                               *소재지 :경기화성/평택

                               *산높이 :덕지산138m

                               *산행코스:누에박물관-대덕산업-주산봉-요당리사거리-덕지산

                                              -평택/안성간 고속국도횡단 토진2교-오뚜기식품공장

                               *산행시간:10시18분-17시48분(7시간30분)

                               *동행 :나홀로

 

 

   한남서봉지맥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 높이가 낮다는 것입니다.

서봉지맥은 그 길이가 60Km가량 되어 결코 짧은 산줄기가 아닌데 가장 높은 서봉산의 해발고도가 겨우 250m밖에 안될 정도로 매우 낮습니다. 이런 낮은 산줄기가 금싸라기 땅인 경기도를 지나고 있으니 개발의 폭풍을 비껴갈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기왕 개발을 할 것이라면 마구 파헤치고 난도질하는 난개발이나 아니 했으면 좋으련만 그 또한 쉽지 않은 것이 처음부터 연차계획을 수립해서 차분하게 개발한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필요해서 개발해왔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공장과 아파트가 다 들어서고 나면 이 산줄기를 그대로 남겨 놓아 허파역할을 맡기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을 하고 반성할지 모르지만 이제까지는 당장 개발이 급해 그런 여유를 부릴 계제가 못되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산줄기를 종주하며 기록을 남겨온 제가 이번처럼 산행기를 쓰기가 짜증스러웠던 일은 없었습니다. 막말로 산 같지도 않은 나지막한 산줄기를 따라 걷는 것도 큰 맘 먹고 나선 일인데 그런 산줄기가 그나마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툭하면 끊어지고 한쪽 면이 잘려나갔으니 이런 산줄기도 지맥이라 이름 붙이고 종주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이런 산줄기도 안중읍내에서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이 지맥이 다하는 아산호까지 도로를 따라 걸어야한다니 더욱 기가 찰 노릇입니다. 누가 시켜 하는 것도 아니고 제 좋아서 하는 일인데 굳이 이런 산줄기를 걸어야하는 가 싶어 알바를 할 때면 당장 때려 칠까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길이 자주 끊겨 알바의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고 마루금을 벗어나 빙 돌아가는 일도 그 만큼 잦을 수밖에 없기에 중도포기의 유혹이 더 강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열 손가락이 어느 것 하나 똑 같지 않지만 어느 손가락이 특별히 못생겼다고 숨겨놓고 살 수 없듯이 어느 지맥이 특별히 낮고 그래서 마구 잘려나가 볼품이 없어졌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 하다가는 산신령께서도 산 꾼들 한 사람 한사람을 심사해 미운 사람은 입산시키지 않아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저희들이 산을 찾아 오르는 것이 잘생긴 미인을 찾아 오르는 것이 아니기에 때때로 낮은 산도 오르고 끊긴 산줄기도 이어가는 것입니다. 저 멀리 남쪽에서도 몇 백리 길 멀다 않고 올라와  이 지맥을 종주하는 분이 있는데 이 지맥이 시작되는 분기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가까운 곳에 사는 제가 이렇고 저렇고 하며 계속 투정을 부린다면 그동안 저를 참하게 보아와 바위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어도 다시 산을 다닐 수 있도록 보살펴주신 산신령께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오전10시18분 누에박물관을 출발했습니다.

수원역에서 33번 시내버스를 타고 발안으로 가서 택시로 누에박물관까지 이동했습니다. 박물관 뒤 “뽕나무골”표지석 옆으로 난 넓은 길로 들어서 비닐하우스가 자리한 봉우리에 올라선 다음 공장 오른쪽 절개지 위를 걸었는데 몇 길 낭떠러지인 절개면 위를 걷는 신경 쓰이는 산행은 이번 구간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공장 절개지를 돌아 산길로 들어서자 어머님 품에 안긴 것처럼 안온했습니다. 간벌을 하지 않아 죽어 있는 잔솔들이 어지러워 보이는 솔밭 길을 걸으며 만난 희미한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섰고 그 다음 삼거리에서는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갔습니다. 삼거리의 갈림길은 희미했지만 먼저 지난 분들이 표지기를 걸어놓아 길 찾기가 쉬워서인지 가던 길을 멈추고 봄을 탐색하러 나들이를 나선 주황색의 나비 두 마리에 카메라를 들이댈 만큼 여유로웠습니다. 오른 쪽으로 송전탑이 보이는 세 번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은 시각이 11시9분으로 이내 포도밭을 위를 지났습니다.

 

 

 

 

  12시8분 대덕산업 앞에 다다랐습니다.

포도밭 위를 지나 127봉에 아르기까지 묘지 몇 곳을 지났습니다. 구릉이 낮고 해가 잘 드는 동쪽 사면에 들어선 묘지는 하나같이 상석과 묘비를 세워 조상의 빛난 얼을 오래오래 되새기겠다는 후손들의 의지가 돋보였습니다. 바라건대 혹시라도 행정명령을 받아 이장해야 할 경우 다른 사람들처럼 저 상석과 묘비를 내팽개치고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127봉에서 대덕산업 앞까지 반시간이나 걸린 것은 양 옆의 절개면이 좁다란 마루금을 받치고 있어 이 길로 가지 못하고 길이 나있지 않은 오른 쪽 숲길로 내려가 빙 돌아가서였습니다. 왕복2차선의 포장도로를 따라 고개 마루에 올라서자 왼쪽 위로 방금 우회한 서경레미콘공장이 보였고 오른 쪽 길 건너로 대덕산업건물이 보였습니다. 절개지를 피하고자 대덕산업 건물 오른 쪽 위로 난 사이 길로 들어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에 합류했습니다. 제 한자 해석이 맞는다면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8세손의 자손들이 묻힌 대규모 묘지가 오른 쪽 아래에 위치한 시멘트 길을 한참 걷다가 오른 쪽 봉우리로 올라가 전주유씨 묘지에 이른 시각이 12시25분이었습니다.

 

 

 

 

  13시13분 동양레미콘 앞을 지나는 306번 지방도로를 건넜습니다.

전주유씨 묘지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면서 제가 어쩔 수 없는 산 꾼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산길에서 벗어나 포장도로를 걸을 때면 항상 초조하고 불안한데 산길로 복귀하면 마음이 포근해져서입니다. 임도수준의 좋은 길을 따라 10분 남짓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표지기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다가 마루금에서 벗어난 것 같아 다시 삼거리로 돌아가서 오른 쪽 길로 올라갔더니 바로 김해김씨 묘지가 나타났고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길을 찾다가 오른 쪽 아래로 통행이 불가능할 것 같은 절개지가 보여 10분 가량 쉬었습니다. 따사롭다 못해 따가운 햇볕을 가리고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떡을 꺼내 들면서 앞서 만난 주황색의 나비 두 마리가 나풀거리며 가르는 바람은 분명 봄바람이다 했습니다. 다시 왼쪽 길로 돌아가 얼마간 진행하다 논둑길로 들어서자 마루금을 끊고 들어선 파란 건물들이 잘 보였습니다. 논둑을 건너 다다른 306번 지방도로를 따라 고개마루로 가까이 가자 동양레미콘 공장이 보였습니다. 이 도로를 건너 “통나무집”음식점 뒤 산길로 들어선 후 길이 나 있지 않은 능선을 10분 가까이 걸어올라 해발109m의 주산봉에 올라섰습니다. 나무들을 잘라내고 남은 밑동에 앉아 쉬어가도 좋을 법한 이 봉우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인삼밭 위를 지나 관봉정 정자 앞에 이른 시각이 13시36분으로 이후 22분 동안은 산에서 내려가 평지 길을 걸었습니다.

 

 

 

 

  14시16분 해발138m의 덕지산을 올랐습니다.

관봉정을 지나 만난 포장도로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넘어 들어선 마을이 요당리로 우리 안에서 편히 쉬고 있는 사슴들이 지나가는 제게 눈을 껌벅이며 인사를 해왔습니다. 마을 안 좁은 길을 지나 만난 차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옮겨 요당리성지 안내판이 서있는 요당리 사거리에 이르렀습니다. 0.7Km 떨어진 요당리 성지가 가깝게 보여 진작 알았더라면 들렀을 것을 그리 하지 못해 아쉬워하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루금 위에 낸 차도를 따라 진행했습니다. BK메디텍 건물을 조금 지나 표지기가 걸려 있는 왼쪽 묘지 길로 들어섰습니다. 묘지를 지나 나무들을 베어낸 개활지에 이르자 요당리성지가 더 잘 보였습니다. 개활지를 거쳐 오른 봉우리가 이번 산행 최고봉인 해발138m의 덕지산으로 정자와 “명성산138m"의 표지석및 삼각점이 보였습니다. 정자에서 잠시 쉬며 귤을 까먹은 후 이정표가 가르키는 광승 쪽으로 내려섰습니다. 이정표가 세워진 두 번째 삼거리에서 어소리 쪽으로 진행해 고령신씨 가족묘지를 지났습니다. 맨 위 봉분 몇 개를 빼고는 이름만 적어 넣은 묘비를 세워놓은 것이 색달라 보이는 묘지에서 얼마 안 떨어진 벤치와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간이 쉼터를 지나 좌사면의 나무들을 모두 배어낸 능선 위를 걸으면서 동네에서 가까운 야산의 소나무들이 심하게 휜 것은 기둥으로 쓰고자 베어낼까 그리 한 것이고 심산의 소나무가 곧게 자라는 것은 산이 너무 깊어 사람들이 베어가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라는 어느 한분의 익살스러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공장부지로 조성된 것 같은 넓은 공터 절개지를 지나 15시9분에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16시13분 토진2교 앞에 도착했습니다.

공터 위 절개지에서 내려선 시멘트 길을 건너 양면이 절개지인 고개 마루까지 오르지 않고 길 건너 절개지 왼쪽 아래에서 산으로 들어선 것은 오른 쪽 위에 커다란 흰 개 한 마리가 짖어대서였는데 올라가보니 그 길이 제 길이었습니다. 몇 분 후 오른 쪽 아래가 직벽인 아슬아슬한 절개지 위를 지나 거암 몇 개가 자리 잡은 봉우리에서 올랐다가 오른쪽으로 내려가 창녕조씨 숭조당이 들어선 묘지로 내려섰습니다. 숭조당에서 재활용공장 안부를 지나 다다른 파릇파릇한 밭에 이르기 직전에 오른 쪽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아야 했을 것을 밭쪽으로 직진하는 바람에 알바를 했습니다. 밭 끝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토진2리 다목적회관을 지났습니다. 정면으로 평택-안성간 고속국도가 보여 논둑길로 질러 접근하다가 왼쪽 대진정공 쪽으로 고속국도 밑으로 뚫어놓은 굴다리가 보여 그리로 가서 이 다리로 고속국도를 건넜습니다. 굴다리를 지나자 길이 끊어져 난감해하다가 오른 쪽 위로 평택-안성 간 고속국도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여 진흙 길을 걸으며 그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다리가 지도에 나오는 토진2교임을 확인 한 후 잠시 멈춰 서서 숨을 돌렸습니다.

 

 

 

 

  17시48분 오뚜기식품 공장 건너에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토진2교에서 서쪽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가다가 청북중학교가 가까운 곳에서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청북중학교 왼편으로 난 넓은 길을 따라 끝까지 직진해 만난 논을 지나 포장도로로 올라선 후 오른 쪽으로 옮겨가 303번 도로에 이르렀습니다. 오른 쪽 위 고개 마루를 넘어서자 왼쪽으로 현신공업단지로 들어가는 넓은 도로가 보였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 직진한지 15분 남짓 지나 아스팔트 길이 끝났고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가 이어졌습니다. 오른 쪽으로 청북공설운동장이 보이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포장도로를 건넜습니다. 시멘트도로를 따라 묘지로 올라서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여기까지 별 탈 없이 마루금을 이어온 것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묘지 위 81봉에서 오른 쪽으로 확 꺾어 조금 내려가자 바로 아래로 오뚜기식품공장이 보여 사과를 꺼내들며 10분여 푹 쉬었습니다. 오른 쪽 시멘트 길로 내려가 39번 도로에 도착한 후 길 건너 오뚜기식품공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왼쪽아래 주유소를 조금 지나 다다른 정류장에서 20분 가깝게 기다려 안중을 출발해 수원역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올랐습니다.

 

 

 

 

  수없이 끊기고 잘린 마루금을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알바를 하면서 끝까지 이어가는 저를 산신령께서 지켜보신다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만 성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설화에 나오는 뭇 신들도 기뻐하고 슬퍼하며 분노할 줄 압니다. 이런 산신령이 신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은 까탈스러운 산을 잘 다스리고 이런 산을 찾아 오르는 산객들을 두루 어루만져 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봉지맥의 실체적 길은 끊겼지만 그 길을 마음으로 이어가는 것은 저희 산 꾼들의 몫이라면 저도 그 몫을 일부라도 맡아볼 생각입니다.

 

 

                                                      <산행사진>

 

 

 

 

 

 

 

 

 

 

 

 

 

 

 

 

 

 

 

 

 

 

 

 

 

 

 

 

 

 

 

 

 

 

 

 

 

 

 

 

 

 

 

 

 

 

 

 

 

 

 

 

 

 

 

 

 

 

 

 

 

 

 

 

 

 

 

 

 

 

 

 

 

 

 

 

 

 

 

     

 

                                             한남서봉지맥 종주기3

 

 

 

                                 *지맥구간:용구리고개-서봉산-누에박물관

                                 *산행일자:2010. 2. 19일(금)

                                 *소재지  :경기화성

                                 *산높이  :서봉산250m

                                 *산행코스:용구리고개-고속철도굴다리-서봉산-82번도로

                                               -309번도로-누에박물관

                                 *산행시간:10시12분-17시14분(7시간2분)

                                 *동행 :나홀로

 

 

  서봉지맥 종주 중 고속철도 위를 질주하는 KTX를 보았습니다.

날렵한 모습의 고속열차가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며 내는 소리도 엄청 컸습니다. 이 열차와 나란한 방향으로 걷고 있는 제 걸음의 빠르기는 시속 2Km를 넘지 않았지만 이 기차의 속도는 그 백배인 시속200Km는 족히 될 것입니다. 제가 산에서 걷는 소리는 멧돼지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데 KTX가 내는 소리는 굉음 수준인 것으로 보아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내는 소리는 단순한 속도가 아닌 그 제곱에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기를 가르며 고속으로 질주하는 것은 쇠 덩어리 기차이지 승객이 아닙니다.

승객은 기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에 시속 2Km로 산 위를 걷는 저보다 에너지 소모가 훨씬 적습니다. 기차가 대신 달려주기 망정이지 사람들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면 숨이 가빠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향후 누군가가 100m를 9초에 주파한다 해도 시속40Km 밖에 안 되는 데, 5배가 더 빠른 시속200Km를 쇠덩어리가 아닌 생명체가 몸속의 에너지를 사용해 내야한다면 죽음에 이를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쇠 덩어리로 기차를 만들어 대신 달리게 하고 그 안에 가만히 앉아서 속도를 즐기는 것입니다.

 

 

 

  KTX가 내는 소리는 아파서 내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소리가 기뻐서 내는 소리라면 당연 우리 귀에 화음으로 들려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고 그저 시끄러운 굉음으로만 들리는 것은 이 소리가 화음의 노래 소리가 아니고 불협화음의 비명소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승객들을 대신해 쇠 덩어리가 아파하고 이 쇠 덩어리에 맞서는 공기가 내지르는 소리가 바로 기차가 내는 굉음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다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파서 비명을 내지르는 쇠 덩어리 덕분이라면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이 쇠 덩어리에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쇠 덩어리에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기차 안에서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도 때가 되면 모두 다 빠짐없이 죽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땅속에 묻혀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들이 토양을 구성하는 몇 가지 원소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억겁의 세월이 이 성분들 중 철(Fe)성분을 모아 철광석으로 변화시킬 것이고 그 훗날의 사람들 역시 철광석에서 철을 제련해 쇠 덩어리 기차를 만들 것입니다. 쇠 덩어리는 죽어 있지만 생명체의 몸을 구성했던 철분이 그 속에 녹아 있기에 살아서 내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까마득히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이 몸으로 치른 것을 가지고  오늘 날 후손들이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오전10시12분 당하리 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산본에서 수원역까지 전철로 이동해 수원역에서 발안 가는 33번 버스로 갈아탔습니다. 반시간 남짓 걸려 당하리에 이르기까지 협성대와 장안대 및 카톨릭대의 3개 대학을 지나면서 대학이 이리도 많으니 대졸자들도 제때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싶었습니다. 당하리에서 용구리고개로 가는 길은 비좁은 시골 길로 화물차들이 빈번하게 지나다녀 이 차들을 피해 가느라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해돋는 언덕” 카페(?)를 지나 용구리고개에 도착한 후 아이젠을 꺼내 차느라 장갑을 벗었는데 날씨가 냉랭해 금세 손끝이 아려왔습니다.

 

 

 

  10시32분 용구리고개에서 3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고개마루 바로 아래에서 오른 쪽으로 난 넓은 길을 따라가다가 이내 왼쪽 산등성으로 올라가 능선에 자리한 묘지들을 만났습니다. 송전탑을 뒤로 하고 오른 쪽으로 꺾어 마루금을 이어가 158봉에 오른 후 조금 내려가자 삼거리가 나왔습니다. 왼쪽 길은 상방산 길이어서 오른 쪽의 지맥 길을 따라 내려가 묘지 앞에 이르렀습니다. 오른 쪽 넓은 길로 2-3분 내려갔다가  다시 묘지로 돌아와 왼쪽의 흐릿한 길을 따라 내려가 만난 절개면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려다 개들이 극렬하게 짖어대 중간에 왕복4차선의 포장도로로 바로 내려가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12시 정각 서봉산 초입의 팔각정에서 20분여 쉬었습니다.

응구리고개에서 1시간 걸려 도착한 왕복4차선의 포장도로를 건너 경사가 급한 절개면을 힘들게 올라 조금 진행하자 바로 아래 KTX 고속철도가 보여 난감했습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왼쪽 아래로 고속철도를 밑으로 건너는 굴다리가 보여 그리로 내려가느라 잠시 진흙길도 걸었습니다. 굴다리를 건너 오른 쪽 위 묘지를 지나 지맥 길로 복귀한 후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꽤 넓게 자리 잡은 강릉유씨 가족묘지를 거쳐 왼쪽으로 서봉산 길이 갈리는 고개3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오른 쪽 가까이의 쉼터 화장실을 들른 후 팔각정에서 잠시 쉬었더니 어느새 21분이 후딱 지났습니다. 다시 고개삼거리로 돌아가 서봉산을 향해 남진했습니다. 고개 삼거리에서 넓은 길을 따라 팔각정에 오르자 오른 쪽 아래로 발안저수지가 보였습니다.

 

 

 

  13시5분 해발250m의 서봉산에 올라섰습니다.

고개삼거리에서 서봉산까지는 길을 넓게 냈고 정자도 세워놓은 것으로 보아 화성시에서 꽤 정성들인 산책로 같았습니다. 남중한 태양이 길에 쌓인 눈을 녹여 더러는 질펀한 길을 걸어야했습니다. 한 낮에는 살갗이 고마워할 정도로 따뜻해 봄이 왔다 싶은데 아직도 햇살이 완전히 퍼지지 않은 아침 한나절은 공기가 냉랭해 마지막 겨울의 안간힘이 느껴집니다. 서봉산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을 지나자 현대감각의  쉼터용 목재건물이 보였습니다. 얼마 후 올라선 서봉산 정상에는 2층의 팔각정과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정작 중요한 삼각점은 남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박혀 있어 많은 산객들이 보지 못하고 비껴갔을 것입니다. 정상에 오르자 기대했던 서해바다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북쪽 멀리로 희미하게 수리산 능선이 보였고 서쪽 아래 위치한 발안저수지의 아담한 정경이 한눈에 잡혀 이만하면 서봉지맥의 최고봉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벤치에 앉아 점심을 든 후 13시20분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남서쪽에 세워진 삼각점을 지나 이내 “향남지구/정상/해병대아파트”의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에 이르렀고, 이곳에서 향남지구로 가는 왼쪽의 나무계단 길을 지나 사거리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이 산이 봉황과 관련해 서봉산(棲鳳山)으로 불리는 데는 산 모습이 봉황을 닮았다는 설과 봉황이 이산에서 살았다는 두 설이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봉황은 실재하는 새가 아니고 용과 학이 교미하여 낳은 전설상의 새이어서 봉황이 이 산에 살아 서봉산으로 불린다는 설은 배척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군이 나타나거나 세상이 태평성대일 때 모습을 내보인다는 길조인 봉황이 머무르는 이 산에 한 낭자를 연모한 스님이 환속의 강한 의지표현으로 정상 바로 아래 쉰들바위에서 턱걸이를 하다가 낭자가 주문한 100번을 마지막 한 번 남겨놓고 팔에 힘이 빠져 쉰 길이나 되는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비극적인 전설을 담고 있는 쉰길바위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제게는 의외였습니다. 전설도 신화도 모두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드라마여서 의외의 반전이 후손들에 극적인 재미를 더해주기에 우리의 선조들이 그렇게 엮었을 것입니다.

 

 

 

  15시5분 82번도로를 건넜습니다.

사거리안부에서 묘지를 지난 후 벤치2개가 놓여 있는 밋밋한 봉우리에 올라 오른 쪽 아래에 시원스레 펼쳐진 골프장을 조망한 다음 바다가 흐릿하게 보이는 밋밋한 217봉으로 옮겼습니다. 217봉에서 조금 내려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명봉산 길이 갈리는데 가까운 이 산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오른 쪽 길로 내려가 마루금을 이어간 것은 아무리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양반을 흉내 내어서가 아니고 저녁7시 광화문에서 만나기로한 모임에 늦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깊숙한 안부사거리를 지나 벤치 2개가 서있는 봉우리에 올랐다가 1-2분 더 걸어 “하가등리/도이리/서봉산정상”갈림길에 도착한 시각이 14시12분이었습니다. 왼쪽 도이리방향으로 내려갔다가 운동시설이 설치된 139봉에 올라 귤을 까먹으며 10분가량 쉬었습니다.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고 줄을 쳐놓은 길로 마루금이 나있어 줄을 피해 마루금을 이어가면서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위험하기에 길을 막았나하고 사방을 둘러보자 오른 쪽 아래로 산을 파내고 들어앉은 골프연습장이 보여 실소했습니다. 묘지를 지나고 브라메리타 커피숖을 지나 여기 저기 공사로 어지러운 82번 도로에 도착했습니다.

 

 

 

  15시43분 왕복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건축폐자자재 분쇄공장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82번도로를 건넌 후 서쪽으로 고개 마루를 넘자마자 집 뒤 왼쪽 산으로 치고 올라 절개면 위에 선 다음 오른 쪽으로 뻗어가는 마루금을 이어가 산불감시초소 앞에 이르렀습니다. 139봉을 지나 만난 천석산 유래 안내판에는 멀리 서해바다가 보인다고 적혀 있는데 벤치 2개가 세워진 바로 위 봉우리에서는 나무들이 눈앞을 가려 아무 것도 조망되지 않았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조금 더 가 “천석바위/행정리/노인회관”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에서 왼쪽 행정리방향으로 진행하다 이내 만난 삼거리에서 눈이 덮여 길이 나지 않은 오른쪽으로 내려가자 KTX가 지날 때 나는 소리보다 훨씬 큰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습니다. 폐건축자재를 잘게 부수어 가루로 만드는 공장 앞에 이르자 저녁 냉기가 느껴졌고 이런 속도로는 아무래도 저녁모임에 늦을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7시14분 43번 도로가 지나는 누에박물관 앞에서 3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왕복2차선의  차도를 따라 고개 마루로 올라선 다음 오른 쪽 넓은 공터로 들어가 표지기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 수 없이 오른 쪽의 눈이 쌓인 절개면을 따라 조심해서 꼭지점 위로 올라선 다음 왼쪽 아래가 낭떠러지인 절개면 위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 깊숙한 안부로 내려서면서 아찔한 마루금을 지났습니다. 안부에서 다시 올라가 송전탑을 지난 후 사거리안부로 내려섰다가 묘비가 여럿 세워진 묘지를 지나 편안한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139봉에 이르렀습니다. 지도를 잘 못 읽어 왼쪽으로 난 길을 찾다가 길이 나 있지 않아 고심하다가 그래도 큰 길을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큰 길을 따라 내려가는 중 “천만번 되뇌어도 아쉬운 부름이여......”로 시작되는 “부모님 영전앞에”의 시비(詩碑)를 세워놓은 묘지를 지나자 차도가 보여 비로소 안도했습니다. 309번 도로 앞에 도착해 아이젠을 벗고 짐을 정리한 후 이만 종주산행을 마칠 생각으로 도로를 건너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자 버스정거장이 나왔고 그 바로 아래 화리현2리 사무소 건물이 보였습니다. 마침 사무소 앞마당에서 이 동리의 한 분을 만나 누에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안내받아 다시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오른쪽으로 동리 한 가운데를 지나는 시멘트길을 따라가 43번 국도가 지나는 누에박물관 건너편에 도착해서야 이 건물이 박물관이 아니고 음식점임을 알았습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마을버스가 도착해 이 버스로 발안까지 나갔습니다.

기사분에 여기 누에박불관으로 오는 버스가 아침9시에 발안을 출발한다는 것과 2번 버스가 40분에 한 대꼴로 있다는 정보를 얻어 메모한 후 17시30분에 발안에서 하차했습니다. 발안농협정류장에서 곧 바로 도착한 33번 버스에 올라 수원역에 다다르기까지 러시아워로 길이 막혀 반시간 남짓이면 되는 것을 1시간이 다 걸렸습니다.

 

  아주 느리게 움직여 7시간 만에 용구리고개에서 누에박물관까지 걸었습니다.

제가 움직인 거리는 15Km가 안될 것이고 제 운동속도는 2Km/시 가 못될 것입니다. 이런 느림 덕분에 쇠덩어리에도 감사해야겠다는 자기성찰이 가능했습니다. 느림의 미학도 이렇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결실되기에 산줄기를 따라 걷는 느린 종주산행이 제게는 소중합니다.  

 

 

 

                                                   <산행사진>

 

 

 

 

 

 

 

 

 

 

 

 

 

 

 

 

 

 

 

 

 

 

 

 

 

 

 

 

 

 

 

 

 

 

 

 

 

 

 

 

 

 

 

 

 

 

 

 

 

 

 

 

 

 

 

 

 

 

 

 

 

 

 

 

 

 

 

 

 

 

 

 

 

 

 

 

                                                   한남서봉지맥 종주기2

 

                                 *지맥구간:오목천삼거리-샘골고개-용구리고개                               

                                 *산행일자:2010. 2. 5일(금)

                                 *소재지   :경기수원/화성

                                 *산높이   :태봉산224m

                                 *산행코스:오목천삼거리-와우사거리-CJ수원공장-생태육교-샘골고개

                                                -협성대-노리고개-태봉산-용구리고개

                                 *산행시간:11시20분-17시45분(6시간25분)

                                 *동행      :나홀로

 

 

  앞으로 내닫는 산줄기가 훤히 보이는 이 겨울에 해발200m대의 낮은 산에서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알바를 하는 것은 순전히 오만과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백두대간과 일곱 정맥을 혼자서 종주한 제가 이 정도 낮은 산에서 일일이 지도를 꺼내보지 않는다고 길을 잘못 들랴하는 오만과 마루금 잇기의 난이도는 산 높이에 비례한다고 굳게 믿는 고정관념이 요즘 들어 부쩍 저를 엉뚱한 산줄기에서 헤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번 산행의 알바도 그러했습니다.

오목천삼거리를 출발해 해발224m의 태봉산 정상까지 서봉지맥 종주를 잘 진행해온 제가 한 시간 넘게 다른 산줄기에서 헤매다가 종국에는 커다랗게 삼각형을 그리며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긴 시간의 알바도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저의 오만과 고정관념에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태봉산정상에서 온 길로 조금만 돌아가면 삼거리에 이르고 이 삼거리에 지맥종주 표지기가 걸려 있어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서봉지맥을 절대로 놓칠 리 없는데, 산줄기가 빤히 보이는 이 낮은 산에서 복사해간 산행기를 꼼꼼히 읽고 점검하는 것을 생략한다고 최근 수년간 산줄기종주를 밥 먹듯이 해온 제가 설마하니 길을 잃으랴 하는 오만 때문에 보기 좋게 알바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오만의 기저에는 첩첩산중의 고도가 높은 산줄기보다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야산의 산줄기를 이어가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도 깔려 있었습니다. 마루금이 분명치 않고 또 도로를 내느라 허리가 많이 잘려 있으며 덤불숲을 뚫고나가기 힘들어 야산을 지나는 종주산행이 고산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이제껏 겪었는데도 야산종주에서는 길 벗어날 우려가 전혀 없다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생각 때문에 또 생고생을 했습니다.

 

 

 

  오만과 고정관념은 다른 동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사람들에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는 동물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 밖에 없는데 이 모두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만과 고정관념은 인간의 굴레인 셈이어서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네 삶속에서 오만과 고정관념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들을 얼마나 줄이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과제라면 제 안에 깊숙이 자리한 오만과 고정관념을 다시 돌아보게 한 이번 알바가 마냥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11시20분 수원과 화성을 경계 짓는 오목천삼거리에서 두 번째 지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오목천삼거리에서 CJ수원공장까지 1시간 10분 동안은 차도만 따라 걸은 것이어서 별 달리 기록으로 남길만한 것이 없습니다. 방송통신대를 지나 다다른 수영오거리에서 직진하여 국립축산과학원을 지났습니다. 시원스레 펼쳐진 잔디밭과 몇 그루의 소나무들이 평화롭게 보이는 건너편 구릉을 사진 찍은 후 직진해 농업대학을 지났고 얼마 후 동양매직 공장을 지났습니다. 화성공구전자유통밸리를 지나 와우사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나지막한 언덕을 넘었습니다. 왼쪽 건너로 임광아파트 “그대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고속전철 길과 나란한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 CJ수원공장 앞에 이르렀습니다.

 

 

 

  12시45분 다온마을(?) 117동 옆에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앞서 오른 분들은 CJ수원공장을 막 지나 쌍용다온마을 101동 앞에서 오른 쪽 산위로 올라갔다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름 길을 찾지 못해 아파트단지 안으로 더 올라가 길이 막힌 117동 옆의 계단공사 하는 곳을 지나 절개면 위로 올라섰습니다. 절개면 뒤로 오른 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101동 바로 위 봉우리에 다다른 시각이 13시2분으로 101동에서 바로 올라온 것보다 20분가량은 늦어진 것 같습니다. 생태육교로 내려서다가 양지바른 길 가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10분 남짓 쉬었습니다. 왼쪽으로 봉담 톨게이트가 보이는 에코브리지를 건너 팔각정이 서있는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생태1교량 위는 여기 저기 아담한 돌탑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조금 올라가자 어린이 미끄럼틀 등 놀이시설물이 보여 어린이 놀이공원 같았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학현유치원 건물이 보이는 안부를 지나 농구코트가 있는 구릉에 올라섰다가 어린이놀이시설물과 육각정이 같이 들어선 낮은 봉우리로 옮겼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 곳이 샘물고개 왼쪽 아래로 차도를 건너 잠시 멈춰 서서 지도를 꺼내 보았습니다.

 

 

 

  13시58분 샘골고개를 출발했습니다.

현대카클리닉 건물 건너편 넓은 공터를 지나 조순기님의 표지기가 걸린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몇 분간 진행하다가 오른 쪽 위 절개면 언덕으로 올랐다가 초록색 철제울타리를 비껴서 협성대 안으로 들어선 후 디자인 팩토리 건물을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자 커다란 평상과 의자 몇 개가 보였습니다. 산길로 들어선 후 줄곧 서쪽으로 진행해온 마루금을 따라 수원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한 봉우리에 올라서자 산본의 감투봉에서 남쪽으로 서봉지맥을 분기하고 의왕의 백운산과 수원의 광교산을 거쳐 용인의 석성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 줄기가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이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얼마간 진행하다 상봉산과 구봉산을 거쳐 남양만에 이르는 긴 산줄기가 오른 쪽으로 갈라지는 능선삼거리를 지나 계속 남진했습니다. 전망 좋은 묘지와 운동기구와 의자를 해 놓은 쉼터 및 오른 쪽으로 잔디밭마당이 꽤 넓은 빨간 벽돌집을 차례로 지나 깊숙한 안부사거리에 내려선 시각이 14시56분이었습니다.

 

 

 

  15시40분 해발224m의 태봉산을 올랐습니다.

“협성대1.8Km/운동시설물0.5Km" 이정표가 서있는 깊숙한 안부사거리에서 10분 남짓 올라 이번 산행에서 유일하게  삼각점과 잔설을 보았습니다. 산줄기를 잘라내고 송산-진안간 도로를 내느라 마구 파헤쳐진 노리고개에서 절개면의 꼭지점을 향해 오르다 철탑 아래 길을 따라 올라선 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태봉산 정상을 0.3 Km 남겨놓은 전망바위에 오르자 오른 쪽 아래로 꽤 큰 저수지와 그 너머로 서해바다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전망바위에서 왼쪽으로 7분가량 걸어 올라선 태봉산 정상에 벤치와 운동기구가 설치된 것은 인근 주민들이 이산을 자주 찾기 때문일 텐데 첫 구간의 칠보산과는 달리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점심식사 후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달려 올라선 정상에서 맥주 한 캔을 까마시며 10분 동안 쉬었습니다.

 

 

 

  17시42분 용구리고개에서 서봉지맥 2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정상에서 올라온 길로 되돌아갔다는 산행기를 무시하고 15시50분에 정상을 출발해 똑바로 내려간 것이 알바의 시작이었습니다. 시간 반을 길을 잘 못 들어 알바를 하다가 뒤늦게 17시20분에 정상으로 복귀해 이번에는 산행기에 나와 있는 대로 정상에서 올라온 길로 되 내려갔습니다. 3-4분 후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삼거리가 나타났고 남쪽 방향으로 서봉지맥종주 표지기가 걸려 있어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제 길을 바로 밑에 두고 시간 반을 헤매었으니 주인을 잘 못 만나 된 고생을 한 두 다리에 미안했습니다. 남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왼쪽으로 꺾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자 아스팔트 도로가 나타났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 오른 쪽으로 몇 십 미터 올라가 전신주에 “관항길” 안내판 걸린 용구리고개마루에 도착했습니다.

 

 

  17시58분 당하리 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이 고개에서 서쪽으로 조금 내려가 다음 종주코스의 들머리를 확인한 후 같은 방향으로 15분을 걸어 당하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이번알바가 바로 저의 오만과 편견에서 비롯됐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먼저 종주한 분이 애써 기록한 산행기를 무시하고 감만 믿고 나선 건방짐과 산이 낮으면 마루금을 잇기가 쉬울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이번 알바의 주원인이었습니다. 이번 알바를 저의 오만과 고정관념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고자 아래와 같이 그 전말을 남기며 종주기를 맺습니다.  

 

 

  부끄러운 알바의 전말은 이러합니다.

태봉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똑바로 내려가 밋밋한 안부에 이르자 길이 좌우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났습니다. 나침반을 꺼내 방향을 확인한 즉 왼쪽의 좋은 길은 동쪽 방향이고, 오른 쪽의 희미한 길이 지도와 같은 방향인 남쪽으로 이어져 주저하지 않고 오른 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한참동안 내려갔는데도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여기 서봉지맥을 종주한 분들이 많지 않아 그런가보다 하고 계속 내려갔습니다. 동네가 나타나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고 난 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갈라진 좋은 길이 맞겠다 싶어 논을 가로 질러 만난 시멘트 길을 따라 왼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묘지와 송전탑을 거쳐 길이 잘 나있는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 오른 쪽으로 꺾어 “무우사/세곡리/태봉산정상”의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이곳에서 오른 쪽으로 다시 꺾어 5-6분가량 내닫다가 아무래도 길이 아닌 것 같아 일단 정상으로 복귀해 찾아보기로 하고 25분 간 정신없이 되올라가 정상에 다시 오른 시각이 17시20분이었습니다. 해지기까지 40분은 남아 있어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용구리고개로 내려가는 데는 문제될 것이 없겠다 싶어 잠시 멈춰 서서 숨을 돌렸습니다.  

 

 

 

                                                     <산행사진>

 

 

 

 

 

 

 

 

 

 

 

 

 

 

 

 

 

 

 

 

 

 

 

 

 

 

 

 

 

 

 

 

 

 

 

 

 

 

 

 

 

 

 

 

 

 

 

 

 

 

 

 

 

 

 

 

 

 

 

  

 

 

 

                                                 한남서봉지맥 종주기1

 

                             *지맥구간:감투봉-칠보산-오목천삼거리

                             *산행일자:2010. 1. 26일(화)

                             *소재지   :경기군포/의왕/안산/수원/화성

                             *산높이   :구봉산146m, 칠보산239m

                             *산행코스:산본시민체육공원-감투봉-군포보건소-영동고속도로-구봉산

                                            -대명고육교-칠보산-의왕/고색고속화도로-오목천삼거리

                             *산행시간:9시21분-17시40분(8시간19분)

                             *동행      :나홀로

 

 

  작년 가을에 시작한 낙남정맥 종주산행을 해가 짧아져 쉬는 동안 인근 지맥을 종주하겠다는 생각은 벌써부터 했으면서도 그냥 그냥 미뤄오다가 어제는 작심하고 집을 나서 가장 가까운 한남서봉지맥에 발을 들였습니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시도한 한북연인지맥은 눈이 많이 쌓여 포기하고 가까운 청계산 산행으로 가름한 일도 있어, 이번에는 해발고도가 250m밖에 안 되는 서봉산이 가장 높은 봉우리로 대접받는 나지막한 한남서봉지맥을 종주하기로 마음먹고 채비했습니다.

 

 

 

  한남서봉지맥은 한남정맥이 지나는 수리산의 감투봉에서 분기해 남쪽으로 뻗어나가다 칠보산과 서봉산 및 덕지산 등 야트막한 봉우리를 일궈 세운 후 아산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로 그 전장이 60Km가량 됩니다. 한수 이남의 경기도 서부지역을 남북으로 꿰뚫는 나지막한 이 산줄기를 이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숱한 도로들이 사정없이 잘라놓아 일일이 이어가며 종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 기회에 제가 이제껏 가보지 못한 경기도 땅을 밟을 수 있다 생각하자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고도가 높은 대간이나 정맥 길을 종주할 때는 접할 수 없는 사람 사는 진솔한 정경들은 이런 지맥을 종주하면서 만나볼 수 있기에 길을 이어가기가 좀 고되더라도 4-5회를 출산해 끝까지 해낼 뜻입니다.

 

 

 

  오전9시21분 산본시민체육공원을 출발했습니다.

시민체육공원 들머리에서 남쪽의 감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한남서봉지맥에 다가서는 접근로로 높낮이 차이가 별로 없고 길이 좋아 산본주민들에는 최고의 산책로입니다. 아직 햇살이 퍼지지 않아 공기가 냉랭했지만 날씨가 쾌청해 산행하기 딱 좋았습니다. 산행시작 40분 만에 한남정맥이 지나는 감투봉에 올라 잠시 머무르며 두 아들에 이번 산행지를 문자 메시지로 알렸습니다.

 

 

 

  10시6분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감투봉에서 한남서봉지맥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서봉지맥을 따라 내려가는 중 이 지맥을 종주한 분들이 걸어놓은 표지기가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양지바른 묘지 두 곳을 지나 내려선 군포사거리에서 군포보건소 건너편의 부곡동공영차고지 앞으로 길을 건너기까지 감투봉 출발 22분이 걸렸습니다. 마루금은 배수지 안으로 이어지는 데 시당국에서 출입을 금지해 마루금과 차고지 사이로 난 큰 길을 따라 남진하자 이내 영동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차들이 내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습니다. 고속도로를 건너는 굴다리에 빙판이 져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얼음 위를 조심해서 걸어 굴다리를 통과한 시각이 10시 53분이었습니다.

 

 

 

  11시53분 해발145m의 구봉산을 올랐습니다.

굴다리를 지나 산으로 들어서자마자 방향을 오른 쪽으로 꺾어 묘지 위 마루금으로 복귀하기까지 한 여름이라면 엄청 힘들었을 덤불길을 지났습니다. 묘지 위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작은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는 122봉에 도착해 아이젠을 풀었는데 생각과는 달리 땅바닥이 전혀 미끄럽지 않았습니다. 122봉에서 산장낚시터 앞 삼거리로 내려섰다가 직진해 지맥종주를 이어갔습니다. 남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지맥은 50번 철탑을 지나고 113봉을 거쳐 해발145m의 구봉산에 이르는데 생각보다 길이 좋아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만, 서봉지맥의 종주기를 카페에 올린 한 분보다 반시간 넘게 더 걸렸습니다. 산 이름과 고도를 적어 넣은 비닐판과 운동기구가 보이는 구봉산에서 잠시 쉬면서 포도와 커피를 꺼내 든 후 12시2분에 자리를 떴습니다.

 

 

 

  13시20분 쉘아미동산의 정자 옆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구봉산에서 반시간 거리도 안 되는 쉘아미동산까지 1시간20분이 다 걸릴 정도로 알바 한 번 크게 했습니다.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진행해 만난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다가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는 것까지는 별 탈 없이 잘 해냈습니다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저를 보고 일제히 짖어대는 견공들에 신경이 쓰여 저도 모르게 진행방향을 바꾸지 않고 오른쪽으로 계속해 걸었습니다. 더 이상 개소리가 들리지 않아 잠시 멈춰 선 곳이 비교적 조망이 좋은 묘지였습니다. 아무래도 안부로 내려가는 길을 벗어난 것 같아 지도를 보니 7번 송전탑이 저만치 북쪽방향으로 보여 마음이 놓였습니다. 묘지에서 3-4분 가량 되돌아가다가 오른 쪽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가 비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축사(?)건물 앞의 비포장도로에서 왼쪽 위로 보이는 안부로 올라섰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을 개 짓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묘지에서 본 7번 송전탑을 향해 논밭을 가로 지르며 북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사랑뜰요양원 안내판이 붙어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 쪽의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가 송전탑을 확인해본 즉 고유번호가 붙어있지 않고 방향도 틀린 것 같아 길을 잘 못 들었다고 최종 판단하고 사랑뜰요양원 안내판 앞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논둑을 따라 걸어 다다른 산 밑에서 안부 오른 쪽 봉우리를 향해 무조건 치고 올랐습니다. 묘지 몇 기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팔각정이 보였으며, 그 앞으로 바짝 다가가자 쉘아미동산을 알리는 묘비가 눈에 띄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제는 제 길로 들어섰다 싶어 이곳에서 짐을 푼 후 점심을 들면서 16분간 푹 쉬었습니다.

 

 

 

  14시18분 대명고 앞을 지나는 42번 국도를 그 위 육교로 건넜습니다.

아담한 규모의 공원묘지인 쉘아미동산을 출발해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안부를 지나 7번 송전탑에 이르자 지도에서 이 송전탑을 잘 못 읽어 생고생을 한 알바가 생각나 혼자 웃었습니다. 바로 위 105.1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해 8번 송전탑을 지났고 이내 왼쪽으로 작은 저수지가 자리한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여기 안부에서 마루금을 버리고 그 왼쪽 아래 폐 사옥(?) 옆길로 2-3분을 걸어가자 사거리가 나타나 그대로 직진했습니다. 양 옆으로 나무들이 가지런히 들어선 묘목지(?)를 가르고 마루금에 낸 시멘트 길을 따라가다가 오른 쪽 아래 42번 국도변으로 내려섰습니다. 대명고 앞 육교를 건너 유통교육원 앞에서 잠시 헤매다가 다시 육교로 돌아갔습니다. 인천방향으로 조금 올라가 칠보사 안내판이 서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 시멘트 길을 따라 십분 가량 걸어 다다른 쌍용아파트 202동앞 안내판에서 칠보산등산로를 사진 찍어왔습니다.

 

 

 

  16시5분 해발239m의 칠보산에 올라섰습니다.

쌍용아파트 앞 안내판에서 수원교구북수동성당의 묘지가 들어선 길을 따라 10분간 걸어 다다른 칠보산약수터에서 반쪽 난 플라스틱바가지로 물을 받아 마신 후 본격적으로 수원시와 화성시를 경계 짓는 칠보산 능선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계단 길을 따라 올라 주능선으로 올라서기까지 몇 분간은 땅바닥이 얼어 천천히 걸었으나 일단 주능선에 올라서자 길이 미끄럽지 않아 최대한 속력을 냈습니다. 목표한 샘골고개는 1시간 가까운 알바로 진작 포기했지만 그 전의 오목천삼거리도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중간에 멈춰 서서 사진 찍는 것을 자제하고 힘껏 내달렸습니다. 팔각정이 서 있는 제1전망대에서 시설물 안전상태를 점검하러 나온 수원시공무원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행정서비스가 많이 좋아졌다 싶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1전망대에서 칠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1930년에 황폐지복구사업으로 조성했다는 리끼다소나무 초기조림지 안내판을 보면서 그때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등록된 5엽송의 잣나무를 대신 심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약수터 출발 1시간15분 만에 4.1Km 거리의 정상에 올라 플라스틱 벤취안에 갇혀 있는 소나무 한 그루와 칠보산 내력이 적힌 안내판을 사진 찍은 후 남은 포도를 마저 들면서 잠시 쉬었습니다.

 

 

 

  17시11분 의왕-고색간 고속화도로를 그 밑의 굴다리로 건넜습니다.

칠보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헬기장을 지나자 왼쪽 아래로 어천저수지가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저수지 물이 석양을 받아 빛나보여서인지 그 위로 낸 고가도로가 눈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곧 이어 도착한 제2전망대는 이름그대로 전망이 일품이어서 이 산 정상보다 볼거리가 훨씬 많았습니다. 북쪽으로는 이제껏 걸어온 서봉지맥이 한 눈에 잡혔고 그 오른 쪽으로 꽤 큰 규모의 왕송저수지도 잘 보였습니다. 서쪽 아래 넓은 들판을 바닷바람으로부터 지켜줄 바람막이 산줄기가 제가 종주중인 서봉지맥보다 더 거해보였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 만난 안부사거리에서 마루금 위에 들어선 통신부대를 왼쪽으로 에돌아 제3전망대에 이르자 왕송저수지와 광교산 산줄기가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 올라선 148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의왕-고색간 고속화도로변으로 내려섰습니다. “남양성지15Km” 안내판을 지나 굴다리를 통과해 고속화도로를 건너자 조금씩 어둠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17시40분 오목천삼거리에서 서봉지맥의 첫 구간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굴다리를 지나 오목천삼거리에 이르기까지 약 반 시간을 찻길만 따라 걸었습니다. 굴다리를 통과한 후 똑바로 5분가량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마루금은 오른쪽은 이어졌습니다. 마루금 위로 낸 찻길을 따라 걷다가 풀어놓은 개 두 마리를 만났지만 그냥 지나갔습니다. 나뭇가지에 페트병을 매달아 놓은 과수원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만난 고금선원 위로 마루금이 지나가는 것 같은데 시간이 늦어 큰 길로 걸어갔습니다. 북부지방산림청 수원국유림관리소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가다 43번국도변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조금 올라가 수원시오목천동과 화성시 매송면을 가르는 고개 마루의 오목천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방송통신대학 쪽으로 길을 건너 첫 구간 종주산행을 매듭진 후 오목천사거리로 옮겨 수원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구릉 길 특유의 덤불숲을 뚫고 나가는 괴로움을 피하려면 이런 나지막한 산줄기는 한 겨울에 종주하는 편이 좋습니다. 겨울에 종주한다 해도 토막 난 마루금을 빼놓지 않고 이어가는 일과 아파트 숲속으로 사라진 마루금을 찾아내 이어가는 일들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또 하나 추가된 어려움은 개들을 맞닥뜨리는 일입니다. 야산에서 보신용으로 사육 중인 거구의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면 그 큰 소리와 불협화음에 정신을 뺏겨 알바하기가 십상입니다. 그간 백두대간과 일곱 개 정맥을 종주하며 수많은 산 식구들과 웬만큼 친해졌다 싶어 마음을 놓았는데 어쩌다 산속으로 끌려와 사육되는 개들은 막가파식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 적의를 드러내어 쉽게 다가갈 수도 없습니다. 개들을 저렇게 만든 것도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고 보면 이번 알바를 가지고 저 개들만 나무랄 수도 없어 더욱 답답했습니다. 자기들을 잡아먹으려고 가둬기르는 사람들에 좀더 공손하게 대하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줄 개라면 그 개는 사람보다 더 인자한 성인일 것이기에 그런 기대는 애당초 접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번 서봉지맥 종주에 조인기님의 카페에 올리신 산행기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제게 도움을 주신 조인기 님에 감사드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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