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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관악지맥 종주기

시인마뇽 2012. 1. 16. 11:02

                                             한북관악지맥 종주기4 

 

 

                            *지맥구간:남태령-우면산-서초주민회관

                            *산행일자:2009. 11. 21일(토)

                            *소재지 :경기과천/서울

                            *산높이 :우면산293m

                            *산행코스:관문사거리-남태령-공군부대앞-소망탑-서초인터체인지

                                          -말죽거리공원정상-서초구민회관

                            *산행시간:14시5분-17시23분(3시간18분)

                            *동행 :나홀로

 

 

 

 

  과천시와 서울시 서초구를 경계 짓는 우면산(牛眠山)은 산 높이가 채 300m가 안 되는 낮은 산입니다.

산본으로 이사 나오기 전에 이 산과 인접한 과천에서 십 수 년을 살았으면서도 겨우 두 번 밖에 오르지 않은 것은 높이도 높이려니와 이 산의 상당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가 길을 가로 막아 정상을 오를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홀대했던 우면산을 5년 만에 다시 오른 것은 제가 종주하는 한남관악지맥이 양재천에 이르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일군 산이 바로 이 산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오른 두 번의 산행에서 달랑 사진 몇 장만 찍고 하산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사진도 찍고 산행기도 남기고자 3시간 거리의 우면산을 지난 번 관악산 종주 시에 마저 해치우지 않고 특별히 마지막 구간으로 남겨놓았던 것입니다. 산은 똑 같은 산인데도 한남관악지맥의 종주 길에 오른다 하자 옛날에 걸었던 길이 새로워 보였습니다. 산행기를 쓰는 일이 제가 오른 산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온 저로서는 한 번 지났던 길이 전혀 다르게 보일 때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져 더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우면산과 어떤 대화를 나누며 오를까 하는 기대로 가슴 설레며 집을 나섰습니다.

 

 

  14시5분 관문사거리 버스정류장 조금 지나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관문사거리를 지나자 남태령 길이 꽉 막혀 차들이 거북걸음을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는 저보다 거북이 버스가 조금 빨라 그냥 타고 가는 편이 빨랐을 걸 했습니다. 남태령고개 마루에서 산행을 채비한 후 십 수m 되 내려가 14시21분에 “남태령 옛길”표지석 앞에서 한남관악지맥의 마지막 구간종주를 시작했습니다. 표지석 앞에서 동쪽의 우면산으로 이어지는 넓은 흙길은 이내 시멘트 길로 바뀌어 첫 번째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시멘트 길에서 왼쪽으로 난 산 길로 올라가 다다른 봉우리에서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 십자 안부에 이르렀습니다. 부대 울타리가 왼쪽 아래로 떨어지는 십자안부에서 곧바로 올라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오르는 중 잠시 멈춰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여러 대의 MTB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남태령 옛길” 표지석에 실린 고개이름 유래가 제 고향 산과 닮아 여기 옮겨 놓습니다.

남태령의 원래 이름은 여우고개였습니다. 조선조 정조 임금이 사도세자 능원으로 행차를 떠나실 때 이 고개이름을 물으셨다 합니다. 과천현의 이방이 그리 우아하지 못한 여우고개를 바로 답하지 못하고 남행 길 첫 번째 높은 고개라는 의미로 남태령이라 고쳐 아뢴 것이 이 고개가 남태령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유래입니다.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가 생모 최숙빈의 유해를 모시는 소령원 뒤 말구리 고개에 올라 전면에 보이는 산을 보고 신하들에 그 이름을 물었다 합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풍락산이라고 말씀 올리자 금으로 병풍을 친 것 같으니 금병산으로 고쳐 부르라 하시어 그 후 금병산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두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독일의 철학자 하이덱거가 언명한대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남태령과 금병산이 새 이름을 얻은 것은 새로운 존재의 집을 얻은 것입니다. 음흉한 이미지의 여우고개가 남태령으로 불리면서 영남, 호남, 충청의 3남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더 알려졌을 것이고 풍락산이 금병산으로 바뀌면서 소령원이 길지로 더 부각됐을 것입니다. 재판을 해 개명하는 소이연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의 하이덱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한 근원이 기원 전 중국의 노자가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이면 그 본질을 잃는다며 명가명 비가명(名可名 非可名)이라 말씀한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5시15분 공군부대 앞을 지났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 두 번째 헬기장에 다다르자 서쪽 건너로 지난 종주 때 군부대가 길을 가로 막아 잇지 못한 마루금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산악자전거 이용을 삼가 해달라는 안내 플래카드를 보는 MTB 바이커들의 심정은 사유지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을 보고도 무시하고 들어가 마루금을 이어갔을 때의 제 기분과 별반 다를 바 없겠다 싶었습니다. 왼쪽 아래로 성산약수터 길이 갈리는 안부에서 이번 산행 처음으로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똑바로 올라 다다른 세 번째 헬기장 봉우리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식유촌 쪽에서 올라오는 차도로 내려섰습니다. 넓은 차도를 따라 몇 분 간 걸어 올라 공군부대 정문 앞에 다다랐습니다. 우면산의 정상이 부대 안에 있어 오를 수 없음을 확인하고 이 봉우리를 왼쪽의 북사면으로 우회하느라 마루금에서 벗어났습니다. “과거지뢰지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군부대울타리 아래로 낸 산허리 길에 해가 들지 않아 전날 밤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어 미끄러웠습니다. 유점사(上)약수터와 정자가 세워진 쉼터를 지나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3백 개 가까운 나무계단 길을 올라 소망탑에 이르렀습니다.

 

 

  15시45분 소망탑 봉우리에서 관악지맥 마루금에 복귀했습니다.

이 봉우리가 군부대가 들어선 정상 다음으로 높아 서울시에서 우수전망지로 선정한 것 같은데 북한산과 남산 그리고 한강과 한강다리들이 깨끗하게 보이고 바로 아래가 예술의 전당이어서 우면산 최고의 전망지로 부족함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소망탑을 돌며 소원을 비는 여인네들이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네들의 얼굴에서 그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읽었습니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 지적삼각점이 있는 쉼터에 올라 과천경마장을 사진 찍은 후 곧바로 내려가다가 길이 아닌 것 같아 태극쉼터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16시30분 서울특별시 소방학교를 빠져나왔습니다.

쉼터 앞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360m 옮겨 나무의자가 놓여 있는 태극쉼터에 도착해 잠시 멈춰 서서 숨을 돌렸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앉아서 쉬지 못하고 선채로 잠시 숨만 골랐더니 오른 쪽 어깨가 조금 아파왔으나 해 떨어지기 전에 산행을 마치고자 서둘렀습니다. 서초약수터 길로 내려선지 얼마 후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코롱아파트 쪽으로 향한 것 까지는 잘 한 일이었으나, 코롱아파트 길로 십 수분 내려가다가 울타리 한 가운데 난 반쯤 열린 문안으로 들어간 것이 마루금을 벗어난 시작이었습니다. 문 안으로 들어서 왼쪽 아래로 이어지는 길은 서울특별시 인력개발원으로 내려가는 길로 사람 다닌 흔적이 뚜렷해 안심하고 따라 내려갔습니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은 인력개발원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어서 곧바로 직진해 내려가자 다시 삼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열려 있는 쪽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이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는 몰라도 혹시라도 개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됐습니다. 무슨 건물인가 하는 궁금증은 건물을 돌아서며 바로 풀렸습니다. 바로 옆이 서울특별시인력개발원 정문인 서울특별시소방학교 정문을 빠져나가 서초인터체인지 앞에 이르기까지 4분이 걸렸습니다.

 

 

  17시23분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한남관악지맥 종주를 마무리했습니다.

서초인터체인지 앞에서 다리 아래로 건넌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양재 쪽으로 향했습니다. 길 건너로 양재자동차 학원이 바로 앞에 보이는 고개마루에서 벗어난 마루금을 확인한 후 절개지펜스가 끝나는 곳에서 서초구청 뒷산으로 들어선 시각은 16시46분이었습니다. 절개지 위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따로 나 있지 않아 가지런히 쌓인 낙엽 위를 걸어 능선에 올랐습니다. 절개면 위 꼭지점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십 수m 옮겨 다다른 밋밋한 봉우리에 삼각점이 박혀있어 100.2봉임을 확인했습니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채비를 마칠 즈음 오른 쪽으로 양재우성아파트 길이 갈리는 말죽거리공원 정상쉼터에 올랐습니다. 왼쪽 아래 서초구청 길로 내려가다가 환승주차장 갈림길을 그냥 지나 하산해 양재대로를 만난 곳이 서울가정/행정법원청사 신축 현장으로, 양재 쪽으로 몇 걸음 옮겨 도착한 서초구민회관에서 약30km에 이르는 한남관악지맥의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우면산(牛眠山)이라 불리는 이 산을 지나며 아직은 우리 우공(牛公)께서 이 산에서 두발을 편히 뻗고 누워 있기가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이 산을 지나며 전쟁과 평화를 떠올린 것은 군부대가 들어선 정상의 북사면에 살짝 내려 앉은 하얀 눈을 보고나서였습니다. 누구에게나 평화란 소중한 것이기에 저 또한 매주 성당을 찾아 주님께 평화를 주십사 하고 빕니다. 평화를 깨는 것이 전쟁이기에 평화란 전쟁이 억지될 때 이룩됩니다. 전쟁의 억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이 군대이며 그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공군부대가 이 산 정상에 자리한 것입니다. 전쟁의 상징색이 시뻘건 적색이라면 평화는 새하얀 백색이라야 맞는 것이, 평화가 소중하나 깨지기 쉽듯이 하얀 색은 고결하나 더럽혀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산을 오르내리며 군부대 참호를 꽤 여러 곳에서 보았습니다. “과거지뢰지대”라는 표지물도 이 산이 마냥 평화로운 산이 아니었음을 일러주는 듯했습니다. 거대한 서울시를 내려다보며 소망탑에서 진정 소망해야 할 것은 저 아래 서울의 평화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이틀 후면 녹아 없어질 하얀 눈을 보고 한반도의 아슬아슬한 평화를 보는 듯해 안쓰러웠습니다. 때마침 하얀 눈이 내려 적과 백이 분명하게 대비되는 우면산의 산길을 걸으며 다시 한 번 주님께 자비를 베풀고 평화를 주십사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해야만 제가 앞으로도 우리나라 산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해야만 우리의 우공(牛公)께서 이 우면산에서 마음 편히 누워 평화롭게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산행사진>

 

 

 

 

 

 

 

 

 

 

 

 

 

 

 

 

 

 

 

 

 

 

 

 

 

 

 

 

 

 

 

 

 

 

 

 

 

 

 

 

 

 

 

 

 

                                             한남관악지맥 종주기3

 

 

                            *지맥구간:갈현고개-관악산-남태령

                            *산행일자:2009. 11. 11일(수)

                            *소재지 :경기과천 및 안양/서울

                            *산높이 :관악산629m

                            *산행코스:갈현고개-중앙공무원교육원-육봉 국기봉-관악산정상

                                           -559봉-남태령

                            *산행시간:10시17분-17시8분(6시간51분)

                            *동행 :경동고 함기영동문

 

 

   어제는 과천 사는 고교동문과 함께 한남관악지맥의 3구간을 종주했습니다.

이번 종주 길에 오른 관악산은 과천의 진산으로 한남관악지맥의 최고봉인 연주대가 이 산의 주봉입니다. 해발629m의 연주대(戀主臺)는 조선조 건국초기 패망한 고려조의 주군을 연모하는 신하들이 망국의 한을 달래고자 자주 올랐던 봉우리라 합니다. 그 때는 매연이 아예 없어 고려조의 수도인 개성의 진산 송악산이 아주 가깝게 보여 연주대가 개성을 바라보는 망경봉(望景峰)의 역할을 해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관악산이 육산(肉山)이 아니고 골산(骨山)인 것이 이들에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싶은 것은 육산이었다면 무성한 나무들이 앞을 가려 송악산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골산인 관악산은 화성산(火成山)으로도 불립니다. 한강만으로 관악산의 화공을 막아낼 수 없어 광화문 앞에 해태를 세운 것은 고려를 무너트린 조선조의 일이고, 마지막 고려조의 신하들에는 관악산이 바위를 세워 이룬 화성산이기에 시야가 탁 트여 이 산에서 주군을 연모하기 딱 좋은 연주대를 찾을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오전10시17분 안양과 과천을 경계 짓는 갈현고개를 출발했습니다.

과수원 옆 능선으로 발을 들였으나 길이 전혀 나있지 않고 우거진 풀숲이 발목을 잡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도로변으로 내려서 찬우물 쪽으로 갔습니다. SK주유소 길 건너편 지하도입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다가 유치원 건물을 막 지나 오른 편 능선으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흐릿하게나마 사람들이 다닌 길이 보여 이 길을 따라 몇 분간 직진해 지난 중앙고등학교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돌무더기 십자안부를 지나자 군부대 울타리가 나타나 이 울타리 오른 쪽 길을 따라가 통신부대 후문이 보이는 시멘트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10시52분 중앙공무원교육원 정문 앞을 출발해 육봉의 국기봉으로 향했습니다.

시멘트포장도로에서 오른쪽의 교육원 정문 앞으로 이동해 같이 오를 함기영 고교동문을 만났습니다. 정문 앞에서 과천 시내 쪽으로 몇 걸음 옮겨 왼쪽의 좁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안양천과 양재천을 가르는 관악지맥은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 별 수 없이 그 바로 옆의 동쪽능선으로 올라야 했기에 백운정사 입구에서 육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로 올랐습니다. 경사가 완만한 암릉길을 지나 산불감시초소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온 관악지맥 길을 조망하는 동안 동행한 친구는 저 아래 자기 집을 사진 찍느라 손놀림이 바빴습니다. 맨손으로 오르내리기가 위험하다는 육봉을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에돈 것은 작년 가을 추락사고 후로는 암봉이나 암릉 길을 오르내리기가 겁이 나서였는데 릿지등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친구에게는 이번 산행이 단조로웠을 것입니다.

 

 

 

  12시56분 육봉 위 국기봉에 올랐습니다.

육봉을 우회해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관악지맥을 이어갔습니다. 곧 이어 태극기가 펄럭이는 국기봉에 올라서자 하늘이 쾌청해 저 멀리 용문산과 그 옆의 백운봉이 확연하게 잡혔습니다. 인천 앞바다가 잘 보일 만큼 날씨가 좋아 북한 땅 송악산의 산줄기도 흐릿하게나마 보였습니다. 서울 시내를 뒤 덮었던 스모그를 멀리 내쫓은 것은 바람일진데 이 바람이 마냥 고맙지만은 않았던 것은 산행 내내 몸의 온기를 뺏어가 냉기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팔봉이 갈리는 549봉을 조금 못가 바람을 가릴 만한 곳을 찾아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몇 년 전에 이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뻗어나가는 팔봉능선을 타고 삼성산을 올랐는데 지금도 그 때처럼 문제없이 오를 수 있을 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안고 있는 산행과제는 하루라도 빨리 바위공포증을 극복해 예전처럼 암릉 길을 별 두려움 없이 오르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은 2정맥과 기맥 및 지맥 등 미답의 산줄기를 종주할 수 있기에 내년 봄쯤 등산학교에 들어가 볼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14시33분 해발629m의 관악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549봉에서 연주대까지는 그동안 꽤 여러 번 지났던 능선 길입니다만 이 산줄기를 한남관악지맥의 종주 길로 걷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바위를 오르내리고 아랫길로 우회도 하면서 방송국중계소를 지나 연주사로 내려선 것은 이전 산행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지만 관악지맥이 양재천에 물을 대는 울타리 산줄기임을 알고나자 저 아래 양재천의 물줄기에 자주 눈이 갔습니다. 수능고사를 하루 앞둔 어미니들이 연주사를 찾아와 자식이 시험을 잘 보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을 보고 기복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고 폄하할 뜻이 전혀 없는 것은 이 세상 어느 무엇도 모성애만큼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 없어서입니다. 연주암에서 연주대를 오르며 목격한 한 여인네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사연인 즉 남편이 하는 짓거리가 하도 미워 목숨을 끊으려 올라왔다가 아들이 불쌍해 그리 하지 못하고 과음해서였다는데 어찌했든 모성애가 한 목숨 구했다 싶어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일인데도 연주대는 이산의 주봉답게 북적거렸습니다.

 

 

 

  15시16분 559봉에 다다랐습니다.

연주대에서 559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길은 여러 번 탔던 길로 여전히 지나기가 아슬아슬 했지만 꼭 필요한 곳에 로프가 걸려 있어 그리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관악산의 통천문인 관악문을 지나서 십자안부인 말고개로 내려서자 이제 암릉 길은 끝났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몇 분을 걸어 올라선 559봉은 헬기장이 들어선 넓은 공터로 산본으로 이사 나오기 전 과천 집에서 1시간 반이면 오를 수 있어 자주 올랐던 봉우리입니다. 559봉에서 남태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북동쪽으로 나있는 데 자칫 잘못해 바로 왼쪽의 사당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싶었습니다. 559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를 따라 십 수분 걸어 나지막한 봉우리 앞 안부에 다다라 민간인 출입금지 안내판을 만났는데 이 안부에서 앞 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하는 좋은 길은 과천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안부에서 직진해 앞 봉을 반쯤 오른 후 왼쪽 능선으로 바꿔 타 남태령 가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왼쪽 저 아래 골짜기에 들어선 군부대가 참으로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중간에 봉우리 몇 개를 넘어 북동쪽으로 난 능선 길을 이어가다 군부대 울타리를 만난 시각이 16시35분이었습니다.

 

 

 

 

  17시8분 남태령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다시 관악지맥이 군부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더 이상 이어가지를 못하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과천 쪽으로 하산했습니다. 15분 남짓 걸어 내려가 만난 시멘트길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다가 공사장의 한 분이 그 길은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길로 가지 못한다며 오른 쪽 능선을 타라고 일러주어 다시 능선 길로 복귀했습니다. 길이 없다는 한 병사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조금 더 가서 오른 쪽으로 내려섰습니다. 2-3분 후 국도변으로 내려선 후 왼쪽 위 남태령 고개 마루로 올라가 한남관악지맥 3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남태령 너머로 보이는 우면산은 아직도 단풍들이 남아 있어 나뭇잎들이 거의 다 떨어진 관악산보다 덜 쓸쓸해 보였습니다.

 

 

 

  제게는 연모할 주군은 따로 없지만, 연모하고 있는 연인은 있습니다.

9년 전 먼저 간 그미입니다. 제게는 연주대가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떠난 그미를 눈으로 바라다볼 수 없어 마음으로 다가가 보는 것이기에 높은 봉우리가 따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오르는 모든 봉이 제게는 연주대입니다. 어느 산이든 일단 산에 오르면 닫혔던 마음이 활짝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연주대라고 특별히 이름 붙인 봉우리에 올라 그녀를 연모하는 것이 다른 봉우리에 올라 그리 하는 것보다 조금은 특별하리라 생각합니다. 주군이든 연인이든 누구를 연모하고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가슴을 덥히는 일이기에 냉랭한 겨울 산을 마다 않고 계속해 오를 뜻입니다.

 

 

                                                           ,산행사진>

 

 

 

 

 

 

 

 

 

 

 

 

 

 

 

 

 

 

 

 

 

 

 

 

 

 

 

 

 

 

 

 

 

 

                                   한남관악지맥 종주기2


             *지맥구간:하우고개-이수봉-갈현고개

             *산행일자:2009. 10. 4일(일)

             *소재지  :경기성남/의왕/과천/안양

             *산높이  :이수봉585m, 국사봉545m, 매봉368m, 석기봉605m

             *산행코스:하우현성당 입구-하우고개-국사봉-이수봉-절고개능선-석기봉

                       -절고개능선-매봉-제비울갈림길-제비울지하도-갈현고개

             *산행시간:10시2분-16시36분(6시간34분)

             *동행    :나홀로

 


    나흘 전에 백운산 구간을 마친 한남관악지맥 종주는 청계산 구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이제껏 가장 많이 오른 산이 청계산과 관악산입니다. 청계산 구석구석 나있는 길을 잘 안다고 해 친구들에게 청계산 다람쥐로 불렸던 제가 몇 년 전부터 이 산을 거의 오르지 않은 것은 백두대간 등 이름 난 산줄기를 이어가는 종주산행에 푹 빠져서이기도 했지만 최근 몇 년간 광풍처럼 번져간 등산 열풍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서울 근교 산들로 내몰아 북새통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백운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청계산과 관악산을 차례로 거친 다음 우면산을 지나 양재천에서 끝나는 한남관악지맥 길을 거의 다 밟았으면서도 새삼 이 길을 새삼 종주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동안 북새통이 싫어  멀리했던 이 두산을 다시 한 번 마음껏 밟아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오전10시2분 하우현 성당 앞을 출발해 하우고개로 향했습니다. 

하우고개로 오르는 구도로는 그 일부가 확장공사 중인 57번 도로에 묻혀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없어진 길을 이어가며 하우고개로 올라서기까지 25분이 걸렸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오른 쪽 아래로 내려다 본 57번 도로도 그 옆의 도시외곽순환도로 못지않게 차들이 많이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길 가운데 설치한 중앙분리대가 사람이 다닐 만 한 크기로  치워진 곳이 있어 도로횡단이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다 막아놓았습니다. 지맥을 제대로 밟기 위해서는 중앙분리대를 넘어야 하지만 위험한 짓이어서 지난 첫 구간 종주 때  청계요금소 쪽으로 내려갔는데 그리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시28분 하우고개에서 둘째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하우고개 마루에서 바로 위의 공원묘지에 이르는 길이 절개면을 치고 오르는 길이어서 힘들고 까다로웠습니다. 공원묘지와 송전탑 두 곳을 지나 왼쪽 아래 원터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392봉에 다다르기까지 반시간 남짓 걸어 표고를 200m가량 높였습니다. 392봉에서 국사봉으로 오르는 길에 아주 앳되어 보이는 연인 한 쌍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요즈음은 젊은이들이 즐길만한 레포츠가 엄청 다양한데 중력에 반하는 방향으로 힘들게 운동해야 하는 등산을 마다 않고 산을 찾는 젊은이들을 보면 우선 반갑고 고맙기조차 합니다. 392봉에서 국사봉으로 오르는 길도 가파른 비알 길로 국사봉 바로 아래에서 커다란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올랐습니다. 


  11시23분 해발540m의 국사봉에 올랐습니다.

추석연휴 마지막 날 국사봉은 이 봉우리를 찾은 수많은 산객들로 많이 붐볐습니다. 정상석에 적힌 내용을 보면 고려의 충신 조윤(후에 조견으로 개명)이 멸망한 고려를 생각했다하여 국사봉으로 불렸다 하는데 저는 이제껏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이 세운 정신문화원을 방문했을 때 바로 위의 이 봉우리에 국사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알고 있었기에 어느 것이 맞는지 확인해 볼 뜻입니다. 국사봉을 출발해 이수봉으로 향하는 길옆에 성남시에서 세운 “시계등산로”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표지판에 어느 시와 경계를 이룬다는 것인지도 함께 적어놓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르내림을 몇 번 반복해 12시3분에 해발584m의 이수봉에 올라서자 돛대기 시장이 따로 없다 할 만큼 북적됐습니다.


  12시38분 해발595m의 석기봉에 올랐습니다.

이수봉을 출발한지 10분 만에 다다른 절고개능선 삼거리에서 지맥에서 잠시 벗어나 석기봉을 다녀오는데 50분이 걸렸습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안부광장으로 내려섰다가 먼지가 풀풀 이는 비알 길을 올라 넓은 헬기장에 다다랐습니다. 헬기장에서 몇 분을 더 걸어 올라선 석기봉은 군부대가 들어서있어 올라갈 수 없는 바로 옆의 해발618m의 망경봉 다음으로 높은 이산의 제2봉입니다. 석기봉에 올라서자 서쪽 멀리 바다가 보였는데 어느 한 분이 인천 앞바다라고 귀띔해주었습니다. 석기봉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자 동쪽으로 용문산과 백운봉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이 봉우리를 꽤 여러 번 올랐어도 인천 앞바다와 용문산을 같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날씨가 쾌청했고 하늘도 높았습니다. 절고개능선으로 돌아온 시각은 15시4분으로 이곳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지맥종주를 이어갔습니다. 왼쪽 아래로 청계사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암봉을 에돌아 몇 분을 더 걷다가 평평한 곳을 찾아 점심을 들면서 20분 가까이 푹 쉬었습니다.


  14시36분 해발369m의 과천 쪽 매봉에 올랐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5-6분가량 편안한 능선 길을 걸어 13시54분에 내려선 십자안부는 절고개였습니다. 왼쪽 아래로 청계사 길이 열려 있는데 오른 쪽 아래 서울대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철조망을 쳐 막아 놓은 것은 입장료 징수 때문일 것입니다. 시꺼멓게 죽어 있는 소나무 밭을 지나 올라선 헬기장에서 한 동안 서쪽으로 내림 길이 이어지다가 한번을 치켜 올라 매봉에 다다랐습니다. 편히 쉬면서 과천시내 정경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은 정상에 올라서자 아들 둘을 키우고 집사람을 멀리 보내면서 14년간 살았던 과천시가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섯 해 동안 경영해온 회사를 4년 전에 어쩔 수 없이 접고 정리하느라 산본으로 이사 나온 후 집값이 폭등해 다시는 과천으로 돌아가 살기가 불가능해졌다 싶어 더욱 그러했습니다.


  15시34분 이미마을 전방980m 지점의 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삼각점이 박혀있는 곳은 매봉이 아니고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348.8봉이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조금 더 가자 오른 쪽 아래로 문현동 길이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나 직진했습니다. 매봉에서 잠시 숨만 고르고 그대로 진행해서인지 왼쪽 어깨에 약간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내내 편안한 길을 걷다가 올라선 무명봉에서 나무의자에 짐을 내려놓고 사과를 까먹으며 1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매봉을 지나자 그 많던 산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매봉애서 이미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잠시 쉬고 있는 동안 손을 잡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제 앞을 지난 두 모녀를 다시 만난 곳은 오른 쪽으로 지맥길이 꺾이는 “이미마을 980m” 고개로 제게 과천의 래미안 아파트 가는 길을 물어왔습니다. 벌써 지나온 문현동 갈림길까지 되돌아가서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일러준 다음 이번 산행 중 처음으로 지도를 꺼내 갈현고개로 이어지는 지맥 길을 확인한 후 오른쪽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이 고개에서 제가 잠시 머뭇거린 것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 같아서였습니다만,  이 길이 앞서 지나온 작은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끼고 도는 길임을 알고 이내 안심했습니다. 지난 7월 앵자지맥 첫 구간에서 이와 똑 같은 길을 계곡으로 빠지는 길로 잘 못 알고 그냥 지나쳐 1시간 넘게 알바를 한 경험이 이번에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16시36분 안양시와 과천시를 경계 짓는 갈현고개에서 2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하우고개에서 “이미마을 980m” 고개에 이르는 길은 널리 알려진 길이어서 지맥종주의 맛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제 맛이 느껴졌습니다. 이 고개에서 북서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지맥 길은 묘지를 지나고부터 갑자기 흐릿해졌으나 선답자의 족적을 쫓아 제비울 미술관 아래 포장도로로 별 어려움 없이 내려섰습니다. 과천-의왕 고속도로 밑으로 난 지하도를 건너 만난 제비울 음식점 앞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지맥 길로 올라가고자 하였으나 맹견이 있다는 종업원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더 가 주차장 앞에서 오른쪽 위 지맥 길로 복귀했습니다. 해발고도가 60-70m에 불과한 낮은 능선 길을 이어가기가 대간 길보다 더욱 어려운 것은 잡목과 가시덤불이 길을 막아서인데 이 길은 그다지 심하지는 않아 찔린 데 없이 통과했습니다. 얼마 안 걸어 만난 포장도로 우측으로 싸릿골둥지 음식점이 보였습니다. 이 길을 건너 올라선 능선 길을 조심해 걸어 다시 수 분후 넓은 포장도로로 내려선 곳이 새말버스정류장이었습니다. 앞서 이 지맥 길을 걸은 한 분의 산행기에 이 길 끝쯤에 과수원 옆을 지난다고 나와 있어 이 길을 걷다가는 공연히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싶어 포기하고 오른 쪽 차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몇 분 후 다다른 찬우물 맞은편의 SK주유소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갈현고개로 올라섰습니다. 다음 구간 들머리를 눈대중 한 후 길 건너 정류장에서 산본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번 산행 중 청계산에서 조선조의 두 인물을 만나보았습니다.

절고개 능선에 세워진 “송산 조견 선생과 망경대” 안내판에 따르면 여말선초의 문신인 조견(趙狷)은 고려가 망하자 이름을 조윤에서 조견으로 바꾸고 태조 이성계가 제의한 호조전서직을 거절하고 이 산에 은거하면서 망경대에 자주 올라 개경을 바라다보았다 합니다. 이수봉에 세워진 정상석에는 조선 연산군 때 유학자인 정여창(鄭汝昌)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이 산에 은거해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벗어났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들 내용대로라면 조견은 조선조 조정에 출사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고 정여창은 무오사화에서 살아남았어야 맞습니다만, 역사적 사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조견은 태종3년인 1403년 좌군도총제로 임명되고 1407년에는 충청도도절제사 겸 수군도절제사가 되었습니다. 정여창은 연산군 4년인 1498년에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경성으로 유배되어 죽었으며 1504년 죽은 뒤 갑자사화 때에는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습니다. 토막지식이란 이토록 불완전하고 그래서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짧은 지식으로 써온 제 산행기도 이처럼 본의 아니게 잘 못 읽힐 수 있다 싶어 글쓰기가 겁이 났습니다. 앞으로 신중하게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 이번 산행의 작은 소득이었습니다.

 

 

                                                            <산행사진>

 

 

 

 

 

 

 

 

 

 

 

 

 

 

 

 

 

 

 

 

 

 

 

 

 

 

 

 

 

 

 

 

 

 

 

 

 

 

 

 

 

 

 

 

 

 

 

 

                                       한남관악지맥 종주기1


            *지맥구간:백운산-바라산-하우고개

            *산행일자:2009. 9. 30일

            *소재지  :경기안양/의왕/성남/수원

            *산높이  ;백운산564m, 바라산428m, 우담산425m

            *산행코스:계원대입구-모락산전승비-백운산-바라산-우담산

                      -영심봉-청계요금소-하우현성당

            *산행시간:10시45분-17시40분(6시간55분)

            *동행    :나홀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역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만 기적의 한강을 영속적으로 존재토록 하는 것은 이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입니다. 북한산의 백운대에서 관악산의 연주대에 이르는 산줄기가 바로 한강에 물을 대고 있는 산줄기로 그 길이가 무려 1,100Km 가까이 됩니다. 백운대에서 우이령으로 내려가 한북정맥을 타고 내달으면 대성산 남쪽 아래 수피령까지 갈 수 있습니다. 수피령에서 백두대간의 분수령까지 이어지는 나머지 한북정맥은 자유롭게 남북을 나다닐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지날 수 있는데 분수령에서 진부령까지의 백두대간 길도 같은 이유로 현재로서는 종주산행이 불가능합니다. 진부령에서 남진해 속리산에 이르면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백두대간에서 한남금북정맥으로 산줄기를 바꿔 타야 합니다. 한남금북정맥이 끝나는 안성의 칠장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을 타고 수원의 백운산에 이르면 관악산이 한눈에 잡힙니다. 이 산에서 한남정맥과 헤어진 후 청계산을 거쳐 관악산의 연주대에 오름으로서 장장 1,100Km가 거의 다되는 한강 울타리산줄기의 환주산행이 끝나게 됩니다.


  어제는 백운산에 올라 청계산과 관악산을 거쳐 양재천으로 내려앉는 산줄기에 첫 발을 들였습니다. 이 나라 최고의 산경표 전도사인 신경수님이 한남관악지맥이라 명명한 이 산줄기는  양재천과 안양천을 가르는 산줄기로 그 길이가 대략 30km 가량 됩니다. 이 산줄기만 마저 밟으면 백운대에서 연주대에 이르는 한강 울타리 산줄기 중 출입이 금지된 대성산-분수령-진부령 구간만 남는데 북한이 중국처럼 개방정책을 펴지 않는 한 남은 구간 완주는 언제쯤 가능할지 요원하다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오전10시45분 계원대 입구와 붙어 있는 반도아파트의 팔각정을 출발했습니다.

모락산으로 오르는 이 길은 팔각정에서 절개지능선을 따라가다 산신각을 지나 통나무 계단 길이 나타나면서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40분간 치고 올라가 다다른 능선에 자리한 사인암은 안양, 군포는 물론 과천시들이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처입니다. 능선 따라 오른쪽의 모락산 전승기념비로 옮겨 남쪽으로 멀리보이는 백운산을 향해 왼쪽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모락산과 백운산이 만든 가장 깊숙한 안부인 백운고개까지는 길이 완만해 초반에 넓은 길을 따라 오른 쪽 마을로 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별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전승기념비에서 왼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 오른 쪽으로 넓은 길이 갈리는 갈림길에서 직진해 가파른 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자 길은 이내 좋아졌고 얼마 후 다시 오른 쪽 아래 오매기마을로 길이 나뉘는 십자안부에 다다랐습니다. 이 안부에서 곧바로 올라 능선을 따라가 산불감시초소를 지나서 백운고개로 내려섰습니다.


  12시38분 백운고개 차도를 건너 백운산으로 들어섰습니다.

송전탑 두 곳을 지나 올라선 공원묘지에서 성묘하러 온 한 부부를 보고 어느새 추석이 다가왔다 했습니다. 묘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선 첫 번째 봉우리의 소나무 그늘아래서 처음으로 짐을 내려놓고 10분여 쉬면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10월을 단 하루 앞둔 이날 낮 기온은 섭씨26도까지 올라간다고 예보되어 여름을 방불 한다 했는데 지열이 없어 여름처럼 후끈거리지는 않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얼마간 걷자 가파른 치받이 길이 나타났습니다. 이번 산행중 가장 가파른 비알길을 올라가 오른 쪽으로 백운사 길이 갈리는 능선 삼거리에 닿았습니다.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른 후 150m남은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봄 여기 정상에 올랐을 때는 비가 내리고 구름이 산자락을 덮어 전망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쾌청해 지지대고개로 내려가는 한남정맥길이 훤히 보였습니다. 방울토마토를 건네주는 한 아주머니에 감사인사를 드린 후 한남관악지맥 종주에 나섰습니다.


  13시30분 해발564m의 백운산정상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한남관악지맥으로 첫발을 옮겨 놓았습니다.  여기 백운산에서 국사봉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는 의왕시와 수원시 및 의왕시와 성남시를 가르는 시계능선으로 오르내림이 심한 편이고 중간에 위험한 57번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는 등  앞서 두 번을 힘들게 산행했습니다. 백운산 정상에서 고분재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완만했습니다. 길 옆에서 중년의 몇 분들이 밤과 도토리 줍기에 여념이 없었고 나무 위의 시꺼먼 청솔모는 벌써 사라진 매미 흉내 내느라 별로 아름답지 못한 소리를 찍찍하고 냈습니다. 이들이 차지하고 남은 밤톨은 제 몫으로 저도 길바닥에서 18알을 챙겼습니다. 내림 길은 얼마 후 낮은 봉우리를 넘어 십자안부인 고분재로 이어졌습니다. 왼쪽 아래 백운저수지는 과천에 살았을 때 집사람과 같이 호수 가를 여러 번 걸었었고 산본으로 이사 와서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식사를 했던 곳이어서 정이 가는 곳입니다.

 

  15시20분 해발428m의 바라산을 올랐습니다.

고분재에서 바라산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경사진 길이지만 그리 긴 길이 아니어서 20분 만에 올랐습니다. 한 뿌리에 꽤 큰 줄기가 다섯 개나 뻗어난 거송 한 그루를 사진 찍고 다시 올라 바라산 정상에 닿자 시야가 탁 트여 백운저수지가 바짝 다가와 보였습니다만 바테리가 다되어 저수지의 그윽한 정경을 카메라에 담아오지 못했습니다. 다 익은 벼들이 가득한 논 뜰은 황금빛으로 충만해 먼발치서도 풍요로움이 감지됐습니다. 북쪽의 청계산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선을 그리며 관악산, 수리산, 모락산과 백운산을 휘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 바라산에서 바라산재로 내려서는 길은 엄청 가팔라 눈이 쌓이는 한 겨울에는 새로 설치한 로프를 잡고 내려가는 것이 안전하겠다 싶었습니다. 이 고개부터는 성남시와 의왕시가 경쟁적으로 이정표를 세워 길 잃을 염려는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백운호수와 고기리 양쪽으로 길이 갈리는 십자안부 바라산재고에서 우담산으로 오르는 길은 바라산 오름길보다 한결 경사가 덜 했습니다. 


 

  16시25분 해발425m의 우담산에 올랐습니다.

바라고개를 출발해 송전탑을 지나서 완만한 길을 올라 왼쪽으로 백운산 길이 갈리는 420봉 옆 능선삼거리에 다다르기까지 50분이 걸렸습니다.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길가 왼쪽으로 철조망이 쳐진 능선을 따라 10분가량 걸어 우담산에 이르렀습니다. 소나무 가지에 산 이름을 써넣은 판때기를 걸어 놓은 것은 바라산과 똑같았습니다. 직진하면 고기리로 내려가는 삼거리인 해발425m의 이 봉우리가 “우담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제가 마지막으로 다녀간 2007년 겨울 이후의 일로 누군가가 3천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는 우담바라를 염두에 두고 바라재를 사이에 둔 저 건너 바라산과 연동해 지은 것 같습니다. 나무의자에 앉아 사과를 까먹는데 바닥에 떨어진 광고전단에 눈에 띄었습니다. 이 전단은 놀랍게도 북에서 보낸 대남광고용 삐라로 한 장은 공장을 순시중인, 그리고 또 한 장은 백두산천지연을 배경으로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파주의 선산으로 나무하러 올라가면 수두룩하게 널려있는 것이 삐라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북에서 고무풍선을 띄워 내려 보낸 것인지 아니면 누가 들고 와 몰래 뿌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도 저런 삐라를 살포하면 그 선동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북조선의 미망이 참으로 어리석고 허망해 보였습니다. 북쪽으로 나 있는 지맥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만난 광교산까지 가서 하산하겠다는 한 젊은이는 서둘러야 어둡기 전에 하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7시1분 삼각점이 박혀 있는 해발368.8m의 영심봉에 다다랐습니다.

우담산에서 영심봉으로 가는 길은 높낮이가 크지 않고 육산의 푸근한 길이어서 걷기에 참으로 편안했습니다. 이런 길을 걸을 때마다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어서 산신령께 고맙다며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데 좀처럼 현신을 하지 않아서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하우고개로 내려가는 지맥길은 오른 쪽으로 이어집니다만 대형 화물차들이 쌩쌩 질주하는 57번도로를 무단횡단 해야 해 포기하고 지맥에서 이탈해 왼쪽 아래 청계요금소로 내려갔습니다. 청계산과 백운산을 잇는 동물이동통로를 만들 만한데 그 많던 환경운동가들은 다 어디 갔는지 그런 내용의 플래카드는 단 한 장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라도 나서서 두 산에 살고 있는 짐승들을 모아 이동통로를 만들어달라고 시위라도 벌이고 싶은 것은, 생식지인 습지를 파괴한다고 도룡농을 대신해 소를 제기하고 100일 단식에 들어가 고속전철 공사를 막은 환경운동가들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기에 말입니다. 영심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천주교묘지에 지는 해가 가볍게 물들인 석양의 백운저수지가 참으로 운치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산행은 백운저수지를 끼고 도는 산줄기를 종주하는 산행이었습니다.


  17시40분 하우현 성당 앞에서 첫 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천주교묘지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만나는 큰 길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청계요금소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밑으로 난 긴 지하도로 도시외곽순환도로를 건넜고 한창 확장공사중인 57번도로도 그 밑으로 지난 다음  왼쪽 바로 아래 임시버스 정류장이 마련된 하우현성당입구로 옮겨 첫 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귀가 길에 잠시 인근의 하우현 성당을 들렀습니다.

구한말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신부 한 분이 이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박해를 피해 청계산 암굴에서 얼마간 숨어 살았다 합니다. 이 신부에 먹을 것을 나르던 한 명이 관가에 밀고를 해 그 외국인 신부는 붙잡혀 사형을 당했습니다. 역사는 한분을 순교자로 평가했고 또 한명은 밀고자로 기록해 이들의 이름을 함께 후세들에 전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호랑이처럼 가죽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후세에 남길 것은 바로 이름일진데 한 때 잘 못 판단해 밀고를 한 사람은 자신이 남긴 주홍글씨를 후손에까지 계속해 남기게 되었으니 역사의 평가는 이런저런 곡절은 겪어도 항상 옳게 내려지며 또  냉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엄한 역사의 평가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한남관악지맥의 첫 구간 종주를 마치고 나자 한강을 둘러싼 울타리산줄기 환주에 대한 동경심이 더해졌습니다. 작년 가을 한 번 크게 다치고 나자 제가 보아도 기가 많이 죽었습니다. 다치기 전에는 우리나라 어느 산줄기도 혼자서 능히 종주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습니다만, 작년 사고 이후로는 모든 산행이 겁이 나고 조심스럽습니다. 여기에 나이까지 더해진다면 저의 지병인 “먼 곳에의 동경”은 그 도가 심해질 것이지만, 그 먼 곳을 찾아 혼자라도 나서보겠다는 호기로움은 급격히 떨어질 것입니다. 아직 밟지 못한 진부령-분수령-대성산 구간의 산줄기를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그 날을 대비해 몸과 정신을 보다 철저히 관리해나갈 생각입니다.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설사 기운이 지금보다 많이 떨어진다 해도 아무려면 2백Km를 넘지 않을 남은 구간 정도야 못하랴 싶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하루빨리 그날이 와 한강을 에워싼 산줄기 환주를 마치고 백운대에서 덩실 덩실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산행사진>

 

 

 

 

 

 

 

 

 

 

 

 

 

 

 

 

 

 

 

 

 

 

 

 

 

 

 

 

 

 

 

 

 

 

 

 

 

                               

  

  • 松琳 통나무
  • 2009.10.02 21:28
  • 형님 말씀데로 우리나라 모든 산은 한줄로 연결되여 있나 봅니다..
    • 답글
    • 시인마뇽
    • 2009.10.04 01:37
    • 그래야 종주가 가능합니다.
    • 아사비
    • 2009.10.02 21:43
    • 즐거운 한가위 명절 잘 보내세요.항상 건강하시고요..즐겁게 산행하시고요~~~~  
    • 답글
    • 시인마뇽
    • 2009.10.04 01:37
    • 고맙습니다.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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