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산행에세이

4.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

시인마뇽 2012. 2. 13. 22:08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

 

                                                          

  낙동정맥 종주 길에 숨 가쁘게 가지산을 오르면서 몇 번이고 자문한 것은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하는 명제였습니다. 라이브공연을 하는 대학로의 한 째즈 빠를 들르지 않았다면 사흘 전인 지난 금요일에 이 산을 오르도록 계획되었는데 이틀 전에 방송대의 동아리학형들로부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째즈공연을 함께 보러가는 바람에 가지산의 산신령을 사흘씩이나 늦게 뵌 것입니다.

 

 

 

  째즈냐 등산이냐는 두 취미 중에서 어느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이어서 크게 고민되는 일은 아닙니다. 어느 것을 선택한다 해도 즐거움의 양에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생활 차원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젊어 한 때 산에 미쳐 생활을 소홀히 한 때도 있었습니다. 서슬 푸른 10월 유신이 있었던 1972년 가을 저는 시골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저는 공무원의 이석을 절대 금지하는 포고령이 내려져 진 상태에서 2박3일 여정으로 오대산을 몰래 다녀왔습니다. 마침 군내 최대의 운동회가 개최되어 어수선하던 때였기 망정이지 만약 저의 이석이 들통 났다면 곧 바로 파면되었을 것입니다. 그리됐다면 공부하나 좀 한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대학을 졸업시킨 어머니께서 아들 잘못 두었다는 주위의 조롱 때문에 동네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불효가 따로 없는 즉, 어디서 그런 만용이 생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지금 제게 굳이 직업을 대라하면 방송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답할 뜻입니다. 다 늦은 나이에 무슨 공부냐는 소리도 더러 듣지만 제가 좋아 택한 것이기에 어느 과목도 소홀히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제 학생이 된 이상 제가 최우선으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공부입니다. 젊은 학생들처럼 졸업해서 어디에 써먹겠다는 것이 아니어서 공부하는 것이 직업이라 말하기가 조금 뭣하지만 그렇다고 취미삼아 하는 것은 분명 아니고 일삼아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째즈 카페에야 정말 어쩌다 간 것을 산신령께서 이미 알고 계셔서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며 물어보셨을 뿐 혼을 내시지는 않았습니다. 저 또한 째즈가 산보다 더 좋아한 것이 아니고 공부를 같이하는 학형들이 좋아서 간 것이라고 이실직고해 일단 매를 피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언젠가 산신령께서 째즈가 아니고 “너는 공부가 더 좋더냐?”고 물어 오신다면 저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대학원에 진학해 고전문학을 더 공부하고 싶고 내친 김에 박사과정도 밟고 싶은 제게 산과 공부 중 어느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정말 고민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방송대에 입학한 후 매주 두 번 하는 산행을 한 번으로 줄이고 시험이 임박해서는 산행기를 쓰지 않을 속셈으로 집근처 산으로 오르는 것은 공부할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난 6월에 시작한 낙동정맥 종주를 언제 딱 끝내겠다고 아직까지 계획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리 공부가 중요하다해도 매주 한 번 하는 산행을 거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해야 한다면 아마도 공부를 포기할 것입니다. 산행은 제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아주 중요한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산신령께서 “너는 정말 공부가 더 좋더냐?”라고 물어 오시지 않도록 산행을 거르지 않으면서 공부 또한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산과 공부 외에 다른 일에 눈을 돌리지 않을 각오입니다.

 

 

  산신령께서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며 골탕을 먹이려 작정하셨다면 이번 산행에서도 큰 알바를 피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석남고개에 이르기 몇 분전 삼거리에서 밀양 쪽으로 계속 내려가도록 내버려두셨다면 목적지인 운문령까지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귀경 열차 안에서 줄곧 생각한 것은 째즈카페로 한 번 산신령을 모시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이 내는 소리가 산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보다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때는 특별히 부탁해 째즈 음악에 능하기로 이름난 이정식님의 색소폰 연주를 들려드려 이 세상에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생명체는 사람 밖에 없음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만족해하신다면 다음에는 제가 하모니카를 갖고 산에 올라가 한 곡조 불러올릴 뜻입니다.

 

 

  알바라는 벌을 내리시지 않은 신령님,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2011.9. 26일 낙동정맥의 9번째 구간종주를 마치고 

 

*알바:산꾼들이 즐겨 쓰는 길을 잃어 헤맨다는 뜻의 은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