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25
*정맥구간:아랫삼승령-매봉산-백암산갈림길
*산행일자:2012. 8. 3일(금)
*소재지 :경북영양/울진
*산높이 :매봉산921m, 백암산1,004m
*산행코스:상기산삼거리-아랫삼승령-윗삼승령-매봉산
-임도-백암산갈림길-백암산-백암온천입구 탐방소
*산행시간:10시51분-19시25분(8시간34분)
밭가에 매어 놓은 견공들이 임도를 걸어가는 저를 보고 미친 듯이 짖어댔습니다. 동리에서 멀리 떨어진 밭을 개로 하여금 지키도록 한 것이 애써 재배한 농작물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새나 멧돼지를 쫓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산골 밭가에 개를 풀어놓지 매어둘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견공들이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으로 보아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도둑맞은 일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름 내내 땀 흘려 길러온 농작물을 몰래 훔쳐가는 절도범들을 잡아 벌주는 일이 경찰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건만 그것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아 농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라면 경찰의 존재의의는 어디서 찾아야할지 답답한 마음입니다.
‘봄봄’의 작가 김유정이 지은 소설 ‘만무방’에 소작인이 자기가 지은 다 익은 벼를 주인 몰래 베어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렸을 때 제가 살던 시골에서도 자기 전답이 없어 품팔이로 생활을 근근이 해가는 한 친구 아버지가 밤을 틈타 누렇게 익은 남의 벼를 몰래 베어내다가 논 주인에 들켜 개망신을 당하고 경찰에 잡혀간 일도 있었습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때의 일이고 저희 동네 사건은 1960년대에 벌어진 일로, 두 건 모두 지지리도 가난해 먹고 살기가 힘든 때의 일이어서 오죽하면 그랬으랴 하는 일말의 동정심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요즘 차떼기로 훔쳐가는 절도범들은 잡히는 족족 손모가지를 달강 잘라 내도 시원찮을 것 같습니다.
10시51분 상기산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9시 청량리역을 출발한 중앙선열차가 안동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이 반시간 가량 지나서였습니다. 역에서 멀지 않은 찜질방을 찾아 몇 시간 잠을 잔 후 아침8시가 조금 못되어 안동초교 맞은 편 정류장에서 영양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영양에서 반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10시 정각에 출발하는 기산리 버스에 오름으로써 택시비 3만5천원을 절감했습니다. 기산리를 얼마 앞둔 상기산삼거리에서 하차해 산행채비를 마친 후 오른 쪽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11시9분 아랫삼승령에서 제25차 낙동정맥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랫삼승령으로 향하는 임도에 그늘진 곳이 거의 없어 태양열에 데워진 흙길이 내뿜는 지열을 피할 수 없었는데 밭가에 매어놓은 견공들이 시끄럽게 짖어대 더욱 짜증났습니다. 상기산삼거리 출발해 18분이 지나 정자가 세워진 아랫삼승령에 도착해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수 분 후 다다른 안부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오르는 중 북쪽 먼발치에 우뚝 솟아 있는 백암산(?)을 보았습니다. 입추를 나흘 앞두고 산상의 매미들이 한껏 옥타브를 높여 울어대는 것은 그들에게는 한 철인 여름이 끝나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12시를 즈음해 해발747m의 굴아우봉에 올랐습니다. 한동안 계속된 오름 길이 끝난 곳은 해발747m의 굴아우봉으로 이 봉우리에서 울진군과 영덕군을 경계 짓는 산줄기가 동쪽으로 뻗어나갔습니다. 아주 좁은 공터의 굴아우봉에 오르자 남중한 태양이 목덜미를 내리쬐어 후닥닥 삼각점만 사진 찍고 조금 아래로 내려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열흘 넘게 맹위를 떨치고 있는 폭염도 해발700m대의 산속 그늘에서 그 기세가 약해져 20분여 쉬노라니 등 뒤의 땀이 식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얼마간 내려가자 평평한 길이 나타났습니다. 700m대의 봉우리를 두 개 넘어 13시 정각에 도착한 곳은 윗삼승령으로 넓은 임도가 이 고개를 지났습니다.
14시12분 해발921m의 매봉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윗삼승령 임도를 건너 산길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북쪽으로 이어졌고 오름 길이 계속되었습니다. 키가 훤칠한 적송들이 자주 눈에 띄는 길을 걸어올라 시멘트벽돌이 몇 장 보이는 8백미터 대의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몇 십m를 내려갔다가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며 확인한 것은 산새들의 노래를 먹어 삼킨 매미들의 합창소리도 해발9백m대를 넘어 헬기장이 자리한 매봉산에 오르자 더 이상 들리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고도가 높아진 만큼 산소가 줄어들어 매미들이 노래하기 힘들었거나, 기온이 떨어져 양 날개로 진동을 일으키기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5시17분 947m봉을 지났습니다. 매봉산 정상에서 오른 쪽으로 푹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선 8백m대의 봉우리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집을 나서며 산행 중 더위를 먹어 고생하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되었는데 아랫삼승령에서 시작되는 종주 길이 그늘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개활지를 단 한 곳도 지나지 않는데다 8백m대의 산줄기를 이어가는 것이어서 생각보다 훨씬 덜 더웠습니다. 급경사길의 940m 봉을 올랐다가 조금 내려섰고 다시 10분 정도 올라 이번 종주 길의 최고봉인 947m봉에 올라섰습니다. 좁은 공터의 945m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다 왼쪽으로 꺾이면서 내리막길로 이어졌습니다. 좌우로 내려가는 길의 흔적이 흐릿하게 보이는 안부사거리에 도착한 시각이 15시45분으로, 이 안부에서 13분을 걸어올라 다다른 널찍한(?) 바위에 짐을 내려놓고 10분가량 쉬었습니다.
17시8분 오른쪽으로 백암산 길이 갈리는 백암산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정맥 길에 내려 앉은 운무 덕분에 땀이 식어 짧은 시간의 휴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고도를 조금 낮추었다가 다시 높이면서 850m봉으로 향하는 중 홀로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50대의 여성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침에 한티재를 출발해 아랫삼실령까지 진출하겠다는 이 분의 산행속도가 저보다 배 이상 빠른 것도 부러웠는데, 마침 휴가 중인 부군께서 따라 내려와 중간 중간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자 샘이 다 났습니다. 850m봉을 올랐다가 내려가 만난 임도를 지나 다시 치받이 길을 따라 오른 888m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북동쪽으로 더 진행해 백암산 갈림길에 도착한 시각이 17시를 조금 넘어 곧바로 오른쪽으로 높이 솟은 백암산으로 향했습니다.
19시25분 백암온천 입구 탐방소 앞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백암산 갈림길에서 백암산을 거쳐 백암온천으로 내려가는 길은 2007년 정월 초하룻날 일출을 보고자 한 번 걸었던 길이어서 반가움직한 길임에 틀림없는데 이미 많이 지친 상태여서 100m남짓 고도를 높여 백암산 정상에 이르는 길이 정말 고되고 힘들뿐이었습니다. 꽤 넓은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1,004m의 백암산 정상에서 10분 넘게 쉬면서 얼마간 원기를 회복한 후 해지기 전에 백암온천에 다다르고자 서둘러 하산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왼쪽으로 한화콘도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해 왼쪽 온천장 길로 내려갔습니다. 지그재그 길을 따라 1시간가량 내려가 다다른 천냥묘 앞에 잠시 쉰 후 다시 반시간을 조금 못 내려가 탐방소 앞에 이르렀습니다. 아직은 땅거미가 내려않지 않아 바로 앞 수돗가에서 랜턴을 켜지 않고도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을 만했습니다. 온천장마을을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가 저녁 6시50분에 이미 떠나 별 수 없이 택시를 타고 평해로 나가 일박했습니다.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50대의 여성분이 깊은 산속에서 저를 보고 반가워 한 것은 나침반을 목에 건 제 차림을 보고 제가 낙동정맥을 종주하고 있음을 알아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에 다니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어진 사람이라 말할 수 없지만 산을 오르내리는 시간만은 모두가 어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이는 주말이면 천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산을 올라도 산위에서 치고받으며 싸우는 사건들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 만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차떼기로 농작물을 도둑질해가는 절도범들이 잡히면 낙동정맥을 종주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400Km 가까이 낙동정맥의 산줄기를 오르내리다 보면 땀의 의미를 깨달을 것이고 자연으로부터 어질 인(仁)의 참 뜻도 제대로 배우지 않겠나 싶어서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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