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 종주기27(검마산자연휴양림갈림길-추령-한티재)

시인마뇽 2012. 11. 6. 18:23

                                                      낙동정맥 종주기27

 

                                  

                                  *정맥구간:검마산자연휴양림갈림길-추령-한티재

                                  *산행일자:2012. 10. 6일(토)

                                  *소재지   :경북영양

                                  *산높이   :왕릉봉634m

                                  *산행코스:검마산자연휴양림갈림길-덕재-왕릉봉-추령

                                                -우천재-한티재

                                  *산행시간:6시50분-15시17분(8시간27분)

                                  *동행      :나홀로

 

 

 

  생물이란 스스로 영양을 섭취하여 생장, 번식, 운동을 기본으로 하는 생활 현상을 가진 유기체를 이른다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생물이 생장, 번식, 운동을 할 수 없으면 죽게 되고 그렇게 죽고 나면 생명이 끝나 무생물이 됩니다. 나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나무 역시 광합성을 할 수 없어 더 이상 생장, 번식, 운동을 할 수 없으면 죽게 되고 그렇게 죽은 고사목은 생물이 아니고 무생물인 것입니다.

 

 

  왕릉봉에서 송정봉으로 가는 길에 수피가 다 벗겨지고 아랫부분은 속이 썩어가 황적색으로 변한 고사목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바람 한 번 세게 불면 당장이라도 허리가 분질러질 것 같은 고사목이 저러고도 눕지 못하고 서 있는 까닭은 아직도 생명이 다 한 것으로 생각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려서 캄캄한 시골 길을 걸으면서 썩어서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나무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그 빛을 인광(燐光)이라 부른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 인광이 나무의 존재를 알리는 마지막 시그널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 이 썩어가는 나무 역시 썩고 또 썩어 인광을 발한 후에야 눕기로 작정했다면 이 나무는 앞으로도 십 수 년은 악착같이 고개를 바짝 들고 서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침6시50분 검마산의 자연휴양림갈림길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수비에서 택시를 잡아탈 때만 해도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져 신경이 쓰였는데, 이번 종주산행의 들머리인 자연휴양림갈림길에 도착하자 비가 그쳐 마음이 놓였습니다. 휴양림입구 정문을 이른 시간에 통과해서인지 단속하는 사람이 없어 택시로 임도를 따라 들머리까지 올라가, 반시간 가량 출발시간을 당겼습니다. 백암산 쪽으로 종주하는 몇 분들과 인사를 나눈 후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15분가량 걸어 올라선 683m봉에서 조금 직진해 내려가다 왼쪽으로 꺾어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었습니다. 산행 시작 한 시간 만에 넓은 임도가 지나는 덕재고개에 도착해, 이정도 빠르기라면 16시까지 한티재에 닿아 영양행 버스를 타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9시3분 해발634m의 왕릉봉을 올랐습니다. 덕재를 지나 오름길에 들어서자 새들이 본격적으로 지저귀기 시작했습니다. 새들이 민감해하는 것이 기온인지, 해 뜨는 시각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확실히 모르겠으나 한 여름보다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각이 한참 늦어진 것만은 틀림없어 재잘대는 새 소리가 더욱 반갑게 들렸습니다. 얼마간 철망을 옆에 끼고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선 봉우리가 이번 구간의 산봉우리 중 유일하게 지도에 이름을 올린 왕릉봉으로, 이 봉우리에서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느라 25분가량 머물렀습니다. 왕릉봉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내려가 고도를 150m가량 낮추자 풀들과 잡목이 서로 엉켜 있는 안부가 나타났습니다. 시멘트기둥이 서있는 안부를 지나 송정봉으로 오르는 길에 껍질이 다 벗겨지고 속살이 훤히 드러나 애처로워 보이는 고사목을 만나 사진 찍었습니다. 부산산사랑산악회에서 먼저 간 산우를 기리고자 세운 작달막한 추모비를 지나 삼각점이 세워진 송정봉에 올라선 시각이 10시48분이었습니다.

 

 

  11시25분 추령에 내려섰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송정봉에서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른 후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경사가 완만한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두 달 만에 다시 나선 종주 길을 두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걸어도 생각만큼 힘들지 않은 것은 어느새 가을이 무더운 여름을 완전히 몰아내고 제자리를 잡아가서일 것입니다. 임도를 건너 조금 올라가자 잡목으로 가려진 나무의자가 보였습니다. 진청색의 투구 꽃과 진적색의 단풍잎이 공존하는 산길을 걸어 도착한 추령에서 점심을 먹느라 반시간 가까이 쉬었습니다. 길 건너 통나무계단 길에 발을 들여 북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세 개의 빨간 깃발이 꽂아 있는 해발600m대의 봉우리가 지도상의 헬기장인 것 같은데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600m대의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 동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꽤 오랜만에 나섰는데도 알바 한 번 하지 않고 제 길을 잘 찾아 간 것은 12시45분에 도착한 안부삼거리까지였습니다.

 

 

  13시38분 우천재를 지났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길이 안 보이고 왼쪽 아래로 길이 잘 나있어 한참 동안 생각다가 마루금으로 여겨지는 능선 길을 버리고 왼쪽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내려선 임도 옆에 낙동정맥을 알리는 표지기가 걸려 있어 비로소 안심했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마루금이라고 생각한 저는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임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웬만큼 올라서자 왼쪽 아래로 우천마을이 보였고 그 왼쪽 위로 고개가 보여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직감했습니다. 다시 오던 길로 내려가 원위치 한 후 임도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임도가 끝나는 곳에서 그대로 직진해 풀숲 길로 내려가자 밭이 나왔습니다. 밭을 지나 나지막한 왼쪽 고갯마루로 올라서 다시 마루금에 합류했습니다. 동 쪽 아래로 우천마을이 아주 가깝게 보이는 고갯마루에서 마루금을 따라 북쪽으로 진행했습니다. 또 한 번 길을 잘 못 든다면 16시15분경에 한티재를 지나는 영양행 버스를 놓칠 수도 있겠다싶어 긴장을 풀지 못하다가 묘지 두 곳을 지나 해발500m대의 봉우리에 올라서고 나서야 두 시간 넘게 진행한 산행을 멈추고 잠시 쉬었습니다.

 

 

  15시27분 한티재로 내려가 종주산행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해발 500m대의 무명봉에서 오른 쪽으로 확 꺾어 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왼쪽 먼발치에 자리한 일월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능선 길을 걸으며 영양 땅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저 산을 한 번 올라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일월성신을 온전하게 모시는 분들이 모여든 곳이 바로 저 일월산이어서 그러했습니다. 얼마간 오르락내리락해 다다른 580m봉(?)에서 왼쪽으로 난 급경사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왼쪽 아래가 간벌지인 능선을 지나 나지막한 봉우리 몇 개를 더 넘자 한티재가 보였습니다. 일단 한티재로 내려섰다가 시간이 충분해 후미진 곳을 찾아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20분 넘게 기다려 올라 탄 버스로 안동까지 그대로 직행해 청량리행 열차로 갈아탔습니다.

 

 

  사람이 죽어 무생물로 바뀌면 육신에 똬리를 틀었던 혼(魂)은 멀리 달아나 버리지만, 백(魄)은 그대로 머문다 합니다. 만약 백(魄)조차 흩어져버려 사라진다면 그야말로 혼비백산(魂飛魄散)할 일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혼(魂)을 불러들이는 제삿날은 일 년에 한 번 혼(魂)과 백(魄)이 만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나무에는 애당초 혼백이 없어 어떤 나무가 죽었다고 다른 나무들이 그 죽은 나무의 혼을 부를 수 없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숲을 지날 때마다 헤일 수 없이 많은 죽은 나무들의 혼백을 만나야 한다면 정신이 혼미해져 종주산행을 이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향내가 진동해 숨이 막힐 지경이 될 것입니다. 나무가 사람을 흉내 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람은 죽어서도 매년 한 번 제의를 통해 후손들을 만납니다만, 나무는 그러지 못해 죽어서 자리를 뜨는 순간 후손들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나무인들 어찌 후손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사람에 못 미치겠습니까? 그래서 죽어서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못해 유기체로서 생명이 끝난 나무들이 사람을 흉내 내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 묻히기를 고집한다면, 교통 혼란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산들은 견뎌내지 못할 것입니다.

 

 

  생물이 죽어 무생물이 된다고 그 종(種)의 상상력까지 함께 죽어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상상력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조상을 위해 제사를 올릴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나무도 자리를 지킬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나무가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하느님이 거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상상력의 조화가 자연의 질서를 가지고 오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가 “시는 나 같은 얼간이가 만들지만,/ 나무를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But only God can make a tree.)”이라고 읊은 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