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28
*정맥구간:한티재-칠보산-애미랑재
*산행일자:2012. 11. 19일(월)
*소재지 :경북영양/봉화/울진
*산높이 :칠보산974m
*산행코스:한티재-계은봉-귀봉-덕산지맥분기점-칠보산-애미랑재
*산행시간:6시20분-18시10분(11시간50분)
*동행 :나홀로
이번 산행으로 애미랑재까지 진출해 백두대간상의 분기점인 천의봉까지 약 62Km만 더 걸으면 낙동정맥종주가 끝납니다만, 올해 안으로 전 구간 종주를 마치겠다는 계획은 아무래도 방송대 기말시험준비로 내년 봄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낙동정맥을 종주하면 ‘1대간 9정맥 종주’가 모두 끝나, 이를 기념하고자 마지막 구간을 같이 산행하겠다고 기다리는 몇 몇 산 친구들에도 연기를 통보해야겠습니다. 앞으로 한 번은 더 출산해 답운치에서 금년 종주산행을 마무리할 뜻입니다만, 이 또한 시험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아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1대간 9정맥’을 종주하며 야간에 산행을 한 것은 다섯 손가락으로 셀 정도입니다. 산악회를 따라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세 번 했고, 나머지 9정맥은 저 혼자 했기에 그 횟수는 더 적어 두 번에 불과했습니다. 그동안 밤 산행을 극력 삼가 해온 제가 이번에 별을 보고 산행해 야간 산행횟수를 추가한 것은 한티재-애미랑재의 구간거리가 18km 조금 더 되는 장거리인데다 중간에 탈출하기가 적당치 않아서였습니다.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면 해떨어지기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했는데 마지막 2-3km를 남겨 놓고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캄캄한 밤에 산행을 마쳐야 했습니다.
이번 나들이는 밤으로의 긴 여행이었습니다. 청량리역에서 밤7시10분 열차를 타고 영주로 내려가 버스로 갈아타 영양읍내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이 막 넘어서였습니다. 터미널부근 여관에서 몇 시간 눈을 붙인 후 새벽같이 일어나 첫차로 들머리인 한티재로 이동했습니다. 새벽산행은 들머리를 출발해 20분가량 밤길을 걷는 정도의 가벼운 야간산행이었는데, 하산 길에 생각지 않은 40-50분가량의 알바로 깜깜한 밤길을 반시간 이상 걸어 산행을 끝냈습니다. 택시로 현동으로 옮기자 마침 오후 7시40분에 떠나는 버스가 있어 이 버스를 타고 3시간 넘게 밤길을 달려 밤 11시경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해 밤으로의 긴 여행을 마쳤습니다.
아침6시20분 한티재를 출발했습니다. 새벽5시50분에 영양터미널을 출발하는 수비 행 첫 버스에 올라 기사분에 한티재 하차를 부탁했습니다. 그새 낮 시간이 엄청 짧아져 6시가 넘었는데도 한티재는 여전히 깜깜했습니다. 손이 시릴 정도로 새벽공기가 냉랭해 장갑을 끼고 전번에 확인한 오른 쪽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전깃불이 미치지 못하는 산중이라서 하늘을 밝히는 별빛이 산길을 걷는 제게 가감 없이 전해졌습니다. 오름길은 외길로 이어졌고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밤을 뚫고 산행하는 것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내 먼동이 트기 시작했고 묘지를 지나 랜턴을 끈 시각이 6시43분이었으니 모처럼의 야간산행은 20분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산행시작 45분 만에 오른 520m대의 무명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자 오른 쪽 아래로 지난번에 들렀던 아담한 규모의 수비면소재지가 한 눈에 들어와 반가웠습니다.
7시40분 길등재를 지났습니다. 무명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나지막한 봉우리를 오르내렸습니다. 560m대의 봉우리에서 묘지 오른 쪽으로 돌아내려가 아스팔트 차도가 지나는 길등재로 내려섰습니다. 이번 산행구간인 한티재-애미랑재의 구간거리가 18Km가 조금 더 되고, 여기 길등재에서 애미랑재까지도 16km가 다됩니다. 일단 이 고개를 통과했다하면 중간에 적당한 탈출로가 없어 무슨 수를 내서라도 애미랑재까지 진출해야 합니다. 길등재에서 해발 612.1m의 계은봉으로 이어지는 북쪽 길은 경사가 완만해 오를 만했습니다. 612.1m봉에 오르자 박건석님이 비닐카바를 밀착해 나무에 매달아 놓은 ‘계은봉’ 표지물이 보였습니다. 표지물을 매달거나 부착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걸음이 느린 저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해 더욱 더 이분들의 수고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8시31분 계은봉을 출발했습니다. 산행시작 처음으로 이 봉우리에서 10분 남짓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일어나 북쪽으로 난 마루금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차다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예보에 눈 소식이 없어 이내 그치려니 했는데 점점 눈발이 세져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에 카바를 씌웠습니다. 섬진강 둘레 산줄기를 환주할 때는 장장 51회를 출산했어도 눈이 내리는 것을 보지 못해 아쉬웠기에 이게 웬 떡이냐 했는데 눈발이 더욱 거세져 길바닥을 덮자 아이젠을 준비해오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오른 쪽 아래 작은 저수지 용수지가 보이는 능선 길에서 왼쪽으로 눈을 돌리자 먼발치로 해발1,207m의 일월산이 보였습니다. 바닷길을 안내해주는 등대처럼 이 일대 산을 오르는 산객들에 길잡이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영양군 최고봉 일월산을 낙동정맥 종주 길에 올랐어야 했는데 이번산행으로 영양군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어 따로 날을 잡아 다시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계은봉에서 770m봉에 이르기 얼마 전까지는 바람이 드세고 산발적으로 눈이 내렸지만 오름내림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습니다.
10시10분 850.5m봉에 올랐습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선 770m봉에서 100여m 고도가 낮은 안부로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급했고 810m봉으로 오르는 길도 된비알 길이었습니다. 계은봉을 출발해서 1시간 20분이 걸려 810m봉에 올라서기까지 길 위에 쌓인 낙엽에 발이 푹푹 빠지는 몇 곳을 지나느라 이동속도가 조금 떨어졌습니다. 810m봉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밋밋한 길에 잠시 햇볕이 들었고, 때 맞춰 공중에서 까마귀가 울고 땅위에서 꿩이 날아올라 오지 산속의 적막을 깼습니다. 표지기만 몇 개 걸린 850.5m봉에 오르자 흩뿌린 눈이 살짝 가린 맨살의 흙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850.5m봉에서 왼쪽의 정북방향으로 반시간 가까이 걸어 다다른 750m대의 무명봉에서 귤 몇 개를 까먹으며 12분간 쉬었습니다.
11시48분 884.7m봉에 도착했습니다. 무명봉에서 10분 넘게 쉬었는데도 1시간을 더 걸어 700m대의 안부로 내려갔다가 된비알 길을 올라 해발884.7m의 귀봉에 다다르기까지 많이 지쳐 힘들었습니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귀봉에서 짐을 풀고 다른 때보다 조금 빨리 점심식사를 해 원기를 되찾은 후 12시10분에 오후 산행을 재개했습니다. 별안간 드세진 북서풍을 안고 서쪽으로 뻗어나간 마루금을 따르는 중 길바닥에 꽤 많이 깔린 솔방울을 잘못 디디어 뒤로 발랑 자빠지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십자안부를 지나 땅바닥에서 1m정도 떨어진 줄기 중간에서 굵직한 가지가 7-8개 뻗어 올라간 소나무를 보자 어렸을 때 여덟 식구가 좁은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던 때가 생각나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십자안부를 출발해 표고차가 170m대에 이르는 길을 오르내려 표지기가 많이 걸린 870m대 무명봉에 다다른 시각이 13시57분이었습니다.
14시28분 덕산지맥 갈림길에 이르렀습니다. 870m대 무명봉에서 서쪽으로 급하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선 헬기장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했습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여러 봉 오르내려 지도에서 현 위치를 가름하기 쉽지 않던 중, 870m대의 봉우리에 오르자 덕산지맥분기점을 알리는 표지판이 걸려 있어 반가웠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북쪽으로 진행해 봉우리를 넘어 참나무 군락지를 지났습니다. 분기점에서 반시간을 걸어 내려선 740m대의 새신고개에서도 다음의 한 카페에서 나무에 묶어놓은 표지물이 저를 맞아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1시간 동안 해발고도를 240m가량 높여야 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해발978m의 칠보산에 이를 수 있어, 새신고개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져먹었습니다.
16시8분 해발978m의 칠보산 정상에 섰습니다. 안부가 바람 길인 것은 진작 알았지만 새신고개를 넘나드는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는 문자 그대로 굉음이었습니다. 이 바람을 그냥 보내기 민망했던지 나무들도 같이 울어 귀가 멍해질 정도였습니다.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올라 칠보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만난 복병은 낙엽이었습니다. 된비알 길에 쌓인 낙엽을 밟고 오르려니 자꾸 미끄러져 단 5분이면 올라가겠다한 길을 20분 남짓 걸려 목표한 16시를 8분 넘겨 칠보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지도에 이번 산행의 끝점인 애미랑재까지 1시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어 10수분 쉬어도 해지기 전에 충분히 도착하겠다 싶어 마음 놓고 푹 쉬었습니다. 가을하늘보다 더 높은 하늘이 방정맞도록 쾌청한 겨울하늘일 것입니다. 너무 파래 정쩡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초겨울 하늘을 올려다보자 60대 중반의 이 나이에 이 높은 봉우리에 올라 저녁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건각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18시5분 애미랑재에 내려섰습니다. 저녁 기운이 완연한 칠보산에서 조금 직진해 만난 봉우리 밑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한참동안 내려가다가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향이 맞다 판단해 더 내려갔습니다. 마지막 표지기를 본지 20분 가까이 되었고 그나마 길도 희미해져 가던 길을 멈추고 마지막 표지기를 본 곳까지 되올라갔습니다. 칠보산에서 내려오면 이 지점에서 왼 쪽으로 봉우리를 에도는 길이 나있었는데 이 길을 못보고 그냥 내려가는 바람에 40분가량 늦어진 것입니다. 이 봉우리를 에돌아 다시 만난 능선 길을 따라 북 쪽으로 내려가다 잠시 멈춰 택시를 불렀습니다. 이내 해는 지고 랜턴으로 길을 밝혔지만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내려가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애미랑재 고갯마루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의 차도로 내려가 반시간 가까이 기다린 택시를 타고 현동으로 향했습니다.
낮보다 밤이 더 적극적 함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둠의 제일성 때문입니다. 햇빛이 아무리 강해도 모두를 뚫을 수는 없기에 그늘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넓게는 비를 내리는 구름을 뚫지 못해 비오는 날이면 비오는 전역에 햇빛이 닿지 못해 큰 그늘이 집니다. 좁게는 사물이라는 실체를 투과하지 못해 음영을 만듭니다. 다시 말해 햇빛은 어떤 경우에도 그늘을 만들 수밖에 없어 밝음이 고를 수 없습니다. 밝음이 고르지 못하기에 그늘도 균일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빛으로 대표되는 낮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해가 넘어가 밤이 되면 사방은 100% 캄캄해집니다. 낮의 논리라면 밝음이 드려 덜 어두운 곳이 있어야 하는데 밤에는 그런 곳이 없이 완전히 깜깜합니다. 길을 가다 한 낮이면 그늘진 곳을 찾아 쉬어가기도 하지만 한 밤에 조금 더 밝은 곳을 골라 쉬어갈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면 한 밤중에 홀로 발가벗고 한 두 시간 산행을 했다는 어떤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이 낮에 맨몸으로 산행하지 않는 것은 누구를 만날까 염려해서가 아니라 합니다. 한 낮의 양기보다 한 밤에 산이 품고 있는 음기를 받고 싶어서였습니다. 본능적으로 야간산행을 거부하는 체질인 제가 산의 음기를 취하고자 벌거벗고 산행을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한 여름 한낮에 호젓한 산 위에 올라 바지춤을 내리고 거풍을 자주 하는 저는 산의 음기가 아닌 양기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는해도 어쩔 수 없이 야간 산행을 해야 할 때는 보다 적극적으로 산의 음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밤이 갖는 적극적 함의를 이해하는 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산행사진>
'III.백두대간·정맥·기맥 > 낙동정맥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동정맥 종주기30(답운치-한나무재-삿갓재 직전임도) (0) | 2013.06.02 |
---|---|
낙동정맥 종주기29(애미랑재-통고산-답운치) (0) | 2013.01.10 |
낙동정맥 종주기27(검마산자연휴양림갈림길-추령-한티재) (0) | 2012.11.06 |
낙동정맥 종주기26(백암산갈림길-검마산-검마산자연휴양림갈림길) (0) | 2012.08.18 |
낙동정맥 종주기25(아랫삼승령-매봉산-백암산 갈림길) (0) | 2012.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