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30
*정맥구간:답운치-한나무재-삿갓재 직전임도
*산행일자:2013. 5. 20일(월)
*소재지 :경북봉화/울진
*산높이 :무명봉935m
*산행코스:답운치-진조산갈림길-한나무재-백병산 갈림길
-임도삼거리-삿갓재 직전임도
*산행시간:6시56분-19시50분(12시간54분)
*동행 :나홀로
반 년 만에 다시 낙동정맥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한 겨울에 혼자서 눈이 많기로 이름 난 봉화지방의 산줄기를 이어가며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것이 위험할 것 같아 작년 12월 답운치에서 29구간 종주를 마친 후 내내 쉬었습니다. 봄이 다시 오고 온산이 신록으로 더할 수 없이 푸르러진 5월을 맞아 낙동정맥 종주를 재개한 것은 더 이상 늑장을 부리다가는 기말고사 준비와 겹쳐 올 여름을 그냥 보낼 것 같아서였습니다. 구간거리가 29Km에 달하는 답운치-석개재 구간을 하루에 뛴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아 어찌해야 하나 끌탕을 하는 제게 오랜 지기 성봉현님이 중간에 임도삼거리에서 한 번 끊고 임도 따라 샘터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13시간이나 걸린 이번 종주산행이 오래 기억되리라 믿는 것은 그 긴 시간을 걷고도 두 다리가 멀쩡해서만은 아닙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쉽지 않은 긴 코스였지만, 1대간9정맥을 종주하면서 단련된 제 두 다리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너무 힘들다며 주저앉은 일이 없었기에 아무런 탈 없이 멀쩡하다는 것이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산행이 오래 기억되고 또 기억되어야 하는 것은 이번에 치른 두 시간의 긴 알바를 한 겨울이 아니고 해가 긴 여름에 겪어서입니다. 장시간 종주산행을 하는 산객들이 알바를 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어서 겨울에 이 길을 종주했더라도 알바를 겪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에 한 겨울에 오늘처럼 긴 시간 알바를 했다면 자력으로 상황을 끝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력과 체력이 모두 받쳐주는 50대 초반의 빼어난 종주꾼 한 분도 두 해전 겨울에 눈이 엄청 쌓인 낙동정맥을 종주하다 지쳐 119에 구조요청을 한 바 있습니다.
4-5번 만 더 출산하면 1대간 9정맥 종주를 모두 마칠 수 있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올 여름으로 넘긴 데는 제 나이도 한 몫 했습니다. 50대였다면 좌고우면 않고 밀고 나갔을 텐데 60줄에 접어들자마자 용화산에서 추락 사고를 당하고 나서는 산행 자체가 무척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나이에 비례해 고집이 세지는 것이 상례라는데 그리하지 않고 저 스스로를 다스려 지난 겨울에 강행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답운치에서 석개재까지를 두 구간으로 나눈 것이나 반년을 기다렸다가 보다 안전한 여름에 이 구간을 종주한 것 모두 슬기로운 결정이다 싶어 이번 산행을 오래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침6시56분 답운치를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기차로 봉화로 내려가 현동에서 일박한 후 새벽같이 택시를 타고가 답운치에 이르자 이 고개를 넘나드는 바람이 제법 찼습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묘지를 지나고 헬기장에 올랐다가 한참동안 내려갔습니다. 봉우리 하나를 넘어 만난 송전탑을 조금 지나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임도 따라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왼쪽 산길로 들어섰는데 길이 잘 나있는데다 이런 저런 야생초들이 꽃을 활짝 피워 오름길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연초록의 낙엽송들에서 질서의 미학이 이런 것이다 싶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간벌지대를 지나 8시가 가까워지자 새들이 소리 높여 합창을 하고 바람도 뒤질세라 반주를 넣어 이른 아침 산속의 고요가 깨져나갔습니다.
8시33분 굴전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송전탑을 지나고 771m봉을 넘어 내려선 굴전고개는 봉화군의 소천면 광회리와 울진군의 서면 쌍전리를 어우르는 고개로 임도 길이 나있었습니다. 임도를 건너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 직진하다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얼마간 진행했습니다. 때마침 만개한 철쭉꽃이 능선 길을 화사하게 밝혀주어 혼자 이 아름다운 길을 걷기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때면 제가 같이 걷자고 불러내는 사람은 집사람입니다. 그녀의 육신이 이 세상을 뜬지는 어언 13년이 지났지만, 영원히 영혼은 건재해 어디라도 달려와 동행을 해주곤 합니다. 산상의 화원 길을 같이 걷느라 오른 쪽으로 진조산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를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지났습니다.
9시36분 한나무재를 지났습니다. 진조산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한지 26분이 지나 한무재에 도착했습니다. 땅바닥에 바퀴자국이 나있는 것으로 보아 차들이 넘나드는 고개임에 틀림없는 한나무재를 지나 봉우리에 오르자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뤄 온산이 새하얀 듯 했습니다. 햇빛이 다시 나고 냉기가 가시자 가파른 헬기장 오름길이 더웠습니다. 산행시작 3시간이 조금 지나 10시 정각에 올라선 헬기장에서 첫 쉼을 가지며 26분을 쉰 후 오른 쪽으로 내려가 50m가량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가파른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해발930m대의 봉우리를 하나 넘어 30m가량 내려갔다 다시 오르는 등 계속해 봉우리를 넘느라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11시23분 934.5m봉에 올랐습니다. 삼각점이 박힌 934.5m봉에 오르는 길에 여러 마리가 모여 있는 쇠똥벌레(?)를 보았습니다. 도시에서 사느라 존재 자체를 잊고 지낸 쇠똥벌레는 등짝에 형광색의 청(靑) 기(氣)가 감도는 곤충으로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잡아서 갖고 놀곤 했습니다. 934.5m봉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평탄한 길을 얼마간 걷다가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경사가 완만한 길을 따라 올라선 880m대의 무명봉에서 점심식사를 하느라 20분가량 푹 쉬었습니다. 12시32분 자리에서 일어나 북동쪽으로 진행하면서 910m대 봉을 넘고 돌가닥 길을 지나 930m대의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하는 중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재우 님을 만났습니다. 서로들 첫눈에 낙동정맥 종주 꾼임을 알아챘기에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잠시 멈춰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분 또한 낙동정맥이 1대간 9정맥의 마지막 종주 길인 점은 저와 같았지만 부산의 몰운대를 향해 남하 중이어서 매봉산 천의봉가지 50Km 남짓 남겨놓은 제가 빨리 끝내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분보다 4년이나 빨리 시작한 제가 겨우 몇 달 먼저 1대간 9정맥종주를 끝내는 것을 갖고 미리 축하인사를 받는다는 것이 민망한 일이지만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 분의 블로그로 들어가 산행기 몇 편을 보고나서 제가 놀란 것은 엄청 빠른 산행속도였습니다. 줄잡아 저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이 분의 빼어난 주력이 십 수 년 연하의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한 것은 호리호리한 몸매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170cm도 안 되는 단신에 80Kg를 넘는 체구를 이끌고 산행하는 제가 조심해야 할 것은 속도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산행 중 제가 받는 충격량은 단위시간당 운동량에 비례하는데, 이 운동량이 제 몸무게에 산행속도를 곱한 것이어서 몸무게를 확 줄이지 못한 채 속도만 높이다가는 충격량이 커 언제 무릎이 나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분의 남하 길이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길이 되기를 빌며, 저도 미리 1대간9정맥 종주를 축하한다고 인사 올리고자 합니다.
13시40분 임도를 만났습니다. 젊은 분과 헤어진 후 얼마가지 않아 임도를 만났습니다. 임도로 내려서지 않고 오른 쪽 능선 길을 따라 걸어 950m대에 이르기까지 경사가 완만했는데 그 다음부터 길이 가팔라졌습니다. 언제나 봉우리에 다 올라 휴식을 취해온 제가 이번에 오름 길 중간에 20분 여 쉰 것은 점심 식사 후 시간 반을 넘게 걸었더니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 무리하지 않을 뜻에서였습니다. 1136m 봉이 눈앞에 보여 부지런히 이 봉우리를 오른 후 더 진행해 백병산 갈림길에서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라야겠다고 마음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북서쪽으로 올라갔습니다. 1136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오르자마자 오른쪽으로 확 꺾인 길을 따라 1136m봉을 오른 쪽으로 끼고 진행했습니다. 1136m봉을 오르는 능선 길이 암릉 길이어서 그 아래에다 우회 길을 낸 것 같은데 이 길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우회 길을 완전히 통과해 백병산 갈림길에 이르는데 반시간 가량 걸렸습니다.
15시17분 백병산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1136m봉을 에도는 우회 길도 대체로 1,100m대의 고도가 유지되었습니다. 우회 길을 따라 진행하다 능선 길로 다시 복귀해 1130m대의 나지막한 봉우리에 이르렀습니다. 왼쪽으로 산줄기가 갈라지는 것 같은 데 아무런 표지물이 없어 이곳이 백병산갈림길일 수는 없겠다 싶으면서도 일단은 사진 한 장을 찍어두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곳이 그 갈림길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진행하면서도 언제 백병산 갈림길이 나타나나 조바심을 내다가 산죽 길을 지나 오른 쪽 아래 임도를 보고나서야 이미 그 갈림길을 지난 것을 알았습니다. 산죽 길을 지나 또 한 번 왼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진행해 1,030m대의 무명봉에 올라섰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15분가량 쉬는 동안 등을 눕혀 하늘 사진을 찍었습니다.
16시25분 임도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북동쪽으로 난 능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몇 분 후 만난 임도로 내려서 이 길을 따라 오르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산길을 따라 걸어 만난 임도로 내려서자 넓은 임도가 세 갈래로 갈렸습니다. 남쪽 임도는 금강소나무 보호를 이유로 차단대를 설치했고 북쪽으로 난 임도는 정맥 길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갈렸는데 오른 쪽 임도에 작은 차단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표지목이 가리키는 대로 봉화석포 방향의 정맥길 왼쪽 아래 임도로 진행한지 10분 가량 지나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야 할 것을 지도를 잘 못 읽어 그대로 직진한 것이 2시간에 걸친 알바의 시작이었습니다. 석포의 샘터마을로 하산하는 길이어서 고도가 낮아져야 할 길이 오히려 높아지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설마하니 넓은 임도에서 알바를 하랴 싶어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17시40분 삿갓봉 직전임도에 도착했습니다. 저녁5시가 넘었는데도 태양열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아 해를 가릴 곳이 전혀 없는 임도를 걸어 오르는 일이 만만치 않다 했는데, 20분 가까이 걸어 1,100m대의 고갯마루에 이르자 오른 쪽으로 꺾인 임도가 그늘진 곳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늘진 나무 밑에서 여벌의 인절미 한 팩을 마저 꺼내든 후 몇 분을 더 걷자 정맥 길을 알리는 표지기가 보여 이 길이 하산 길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지도와 산행기를 꺼내 꼼꼼하게 다시 보아 이곳이 삿갓봉 직전임도임을 알고 나자 주인을 잘 못 만나 쓸데없이 고생하는 제 두 다리에 미안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4-5분 간 쉬면서 숨을 고른 후 오던 길로 되돌아 삼거리로 내달렸습니다. 50분가량 걸린 오름 길을 26분 걸려 되내려가 삼거리에 이르자 이정도 빠르기면 19시23분에 석포역을 출발하는 마지막 영주행 열차에 오를 수 있겠다 싶어 쉬지 않고 서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부지런히 내려갔습니다. 흙길과 시멘트길이 번갈아 나타나는 임도 길을 걸어 내려가 오른 쪽으로 임도길이 갈리는 세 번 째 임도삼거리에 다다른 시각은 18시27분이었습니다.
19시50분 샘터마을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세 번 째 삼거리에서 지도를 꺼낸 보자 샘터마을로 가는 길이 오른 쪽으로 나 있어 주저하지 않고 직진해 내려가는 임도를 버리고 오른 쪽 임도로 올라섰습니다. 큰 비가 내리면 낙석사고가 날 수 도 있겠다 싶은 임도를 따라 걷다가 이상한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저도 모르는 사이 임도가 북쪽으로 이어졌고 다시 고도가 높아지었기 때문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삼거리로 복귀하기까지 또 다시 반시간을 까먹었습니다. 첫 번째 임도삼거리에서 샘터로 내려가는데 참고할 만한 것은 지도 밖에 없는데 이 지도를 보고도 또 다시 알바를 하고나자 산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어둠이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마지막 기차를 탈 수 없게되자 더 이상 서두를 이유가 없어졌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언제고 차가 다니는 큰 길에 도착할 것이고 그 곳에서 택시를 부르면 되는 것이기에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하산했습니다. 어둠이 깔린 임도를 고라니 한 마리가 막아선 것은 분명 제게 전해 줄 메시지가 있어서일 텐데 그게 뭐냐며 묻지 못하고 두 스틱을 계속 부딪쳐 길에서 물러서라고 고라니를 압박한 것은 제가 아직도 진정한 산의 한 식구가 되지 못해서입니다.
한참 동안 더 내려가 다다른 공터가 샘터마을임을 마침 화물차 한 대가 올라와 확인했습니다. 저와 통화한 석포 택시가 전화를 받고 달려오는 데 걸린 20분가량의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진 것은 캄캄한 밤에 산 속에서 승냥이(?) 울음소리가 들려서인데 이 소리는 1960년대 초반 중학교를 다닐 때의 하교 길에 캄캄한 밤에 고개를 넘으며 여러 번 들은 바 있어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73세의 할아버지가 몰고 오신 석포택시로 석포를 거쳐 태백시로 직행한 것은 다음 날 오전 10시부터 6시간에 걸쳐 방송대국문과 학우들과의 스타디가 있어서였습니다. 밤10시20분 동서울행 직행버스에 올라 태백버스터미널을 출발한지 4시간이 지난 다음날 새벽 2시20분경 산본 집에 도착했습니다. 2시간가량 눈을 붙였다가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 자료를 챙겨 복습하고나서 6시간동안 계속된 스터디를 무사히 마치고나자 길고도 긴 종주산행이 이제야 끝이 났다 했습니다.
젊은이가 토끼처럼 꾀를 부려 일을 망쳐서도 안 되지만, 나이든 분들이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면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듯이 항상 젊은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것은 단 한 번으로 그쳐야하지 계속 이기려 한다면 엄청난 무리가 뒤따를 것입니다. 토끼가 맹해서 경기 중에 빼놓지 않고 잠을 자야하는데 그것은 우화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경험을 통해 지혜를 이끌어내는 인간세계에서는 턱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순리는 빨리 달리는 토끼가 걸음이 느린 거북이를 이기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노인들보다 더 빨라야 우리 역사가 발전합니다. 나이 들어 제가 자식들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좀 늦더라도 절대로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착실하게 발걸음을 옮겨놓는다는 것입니다. 이번 산행에서 그리한 것 같아 알바를 했으면서도 가슴 뿌듯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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