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31
*정맥구간:삿갓재직전임도-용인등봉-석개재
*산행일자:2013. 5. 29일(수)
*소재지 :경북봉화/강원삼척
*산 높이 :삿갓재1,119m, 용인등봉1,120m
*산행코스:샘터마을-삿갓재 직전임도-삿갓재-용인등봉
-묘봉삼거리-석개재
*산행시간:10시48분-18시16분(7시간28분)
*동행 :나홀로
방송대 1학기말시험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아 우물쭈물하다가는 올 여름에도 낙동정맥 종주를 마칠 수 없을 것 같아 만사 제쳐놓고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자정 넘어 영주역에 도착해 역 인근의 여인숙에다 짐을 풀고 나자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길을 나설 수 있는 제가 진정 자유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다른 친구들 같으면 이렇게 재고 저렇게 재야 할 일을 아주 쉽게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저를 구속할 만한 직장이 없고 가족들이 같이 살지 않아서입니다.
제가 홀로 살기 시작한 것도 2년 반이 넘었습니다. 십 수 년 전 집사람을 먼저 보낸 후 줄곧 막내아들과 같이 살아오다가 세 해 전에 결혼을 해 출가를 함으로써 저는 그 때부터 완벽에 가까운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헤프게만 쓰지 않는다면 자식들에 손 벌릴 처지는 아니어서 넘치는 시간이 마냥 짐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집사람을 보낸 후 하루 두 갑 반을 피우던 담배를 끊고 술도 도수가 가장 약한 맥주만 마시는 등 나름대로 관리를 해 12시간 넘게 산행을 이어갈 만큼 건강을 지켜온 것도 제가 마음껏 자유를 즐길 수 있는데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하는 사람이 곁에 없는데도 제가 설정한 규율을 지키고자 애쓰는 것은 그리하는 것이 제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를 잃지 않는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정한 규율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매주 한 번 산에 가고 매주 한 권 이상 책을 읽는 일입니다. 주일 미사 빼먹지 않고 매일 4km 이상 걷는 일입니다. 신통치 않은 글이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술자리를 일주일에 한 번을 넘기지 않으려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2010년 방송대 국문과에 입학해 공부를 하는 것도 제 스스로 내린 결정이어서, 학습량이 좀 과하고 내용이 좀 어렵다 해서 투덜대지 않고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일이 제 스스로 결정한 것이어서 저의 자유 만끽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오전 10시48분 샘터마을을 출발했습니다. 영주에서 기차 타고 석포로 가서 택시를 잡아 타고 샘터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완전히 어두워진 후 이곳에 도착해 인근 산에서 우는 산짐승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는데, 대낮에 와서 보니 주민들이 모두 이주해 텅 빈 동네 터를 일궈놓은 밭이 제법 넓게 보였습니다. 바로 앞 내를 건너 오르는 길이 서둘러 하산했던 임도 길이어서 눈에 익었고 구름 속에 숨은 해가 가끔 얼굴을 내보이는 정도여서 시간 반 동안은 걸어오를 만 했습니다. 두 번 째 삼거리에 이르자 이내 구름이 완전히 가셔 왼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남중한 태양을 머리에 이고 걸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삿갓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왼쪽으로 꺾이는 임도를 버리고 오른 쪽 위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13시30분 삿갓재 직전임도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임도에서 들어선 흐릿한 산길을 10수분 간 걸어 다다른 임도가 지난번에 뒤돌아선 곳으로 이곳에서 점심을 드느라 20분여 푹 쉬었습니다. 점심을 다 들고 임도 따라 걸어 오르는 것으로 본격적인 종주 길에 오른 지 5분이 안지나 임도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4-5분간 올라 다다른 봉우리가 지도상의 삿갓재로 경북봉화/울진 및 강원도의 삼척시가 만나는 접점으로 해발고도가 1,119m에 이릅니다. 산불무인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삿갓재에서 석개재로 향하는 정맥 길은 북쪽으로 이어지다 차량통제용차단기가 놓인 임도를 지나 얼마 후 부터는 북서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꿔갔습니다. 경북봉화군과 강원삼척시를 좌우로 가르는 정맥 길은 고도차가 별로 크지 않아 걸을 만 했지만, 산죽사이로 난 길이 너무 길어 조금은 지루했습니다.
14시48분 997.7m봉을 지났습니다. 꽤 긴 거리의 산죽 길을 지나 900m대까지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올라가 940m대의 구릉에 이르렀습니다. ‘문지골 6폭포’의 아크릴판이 걸려 있는 이 구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왼쪽으로 내려가 얼마간 진행하다 오른 쪽 바로 위 능선으로 난 길이 보여 들렀습니다. 이 능선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997.7m봉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생각지 못해, 길이 나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이내 다시 내려가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오르는 동안 아직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한 철쭉꽃을 사진 찍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흘깃흘깃 보이는 거대한(?) 협곡이 보이자 남한 땅 최고의 협곡을 자랑하는 통리가 멀지 않았다 했습니다. 끝났다 싶은 산죽길이 다시 이어지기를 몇 번 반복해 짜증이 난 것은 어깨 높이의 산죽 사이로 난 길이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서였습니다.
15시43분 해발1,120m의 용인등봉에 올랐습니다. 997.7m봉에서 900m대까지 고도가 떨어진 정맥 길은 조금씩 고도가 높아졌습니다. 샘터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삿갓재직전임도까지 오르는 데 힘을 많이 써서인지 용인등봉으로 오르는 길이 그다지 가파른 길이 아닌데도 많이 지쳐 잠시 멈춰 쉬어가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해발고도가 1천m를 넘는 능선을 이어가는데도 바람이 불지 않아 후덥지근하다 했는데 용인등봉에 올라서자 비로소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좁은 공터의 이 봉우리에서 10분여 쉬었습니다. 지도에는 마루금이 왼쪽으로 이어지는데 그 쪽으로 길이 없어 10분가량 직진하다 왼쪽으로 꺾어 진행했습니다.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산죽길이 나타났지만 산죽의 키가 허리에도 채 못 미칠 정도로 낮아 다행이다 했습니다. 산죽 길이 끝난 데서 책을 쌓아놓은 것처럼 생긴 책바위(?)에 이르기까지 형형색색의 야생화들이 꾸며놓은 산상의 화원을 지나면서 이름을 까먹어 그들 꽃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것이 영 죄스러웠습니다.
16시45분 묘봉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정맥길 중턱에 자리한 책바위를 지나며 잠시 멈춰선 것은 요즈음 들어 교재 외의 책들을 점점 멀리하는 제 모습이 부끄러워서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주 한 권 이상 책을 읽어온 제가 방송대에 들어온 후 기왕에 받아온 장학금혜택을 놓치지 않으려 학과공부에 치중해서라지만, 이번에 교재만 챙겨온 것은 여행 중에도 다른 책을 읽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어서 좀 심했다 싶기도 합니다. 책바위를 지나고 용인등봉을 출발한 지 50분가량 되어 묘봉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실종조난사고 다발구간/덕풍계곡8.5Km'의 표지판이 세워진 이곳에서 직진하면 묘봉에 이르는데 그 거리가 0.5Km라 합니다.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 쪽으로 내려가자 이내 ‘묘봉0.5Km/석개재5.1Km'의 표지목이 보였는데 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석개재까지를 5.1Km로 적어놓은 것은 틀린 것 같았습니다. 혹시라도 어떨지 몰라 일단 산행은 서둘렀지만, 반시간 가까이 걸어 임도를 만나기까지 앞서 지나온 산상의 화원에 못지않은 화원이 다시 펼쳐져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단축하지 못했습니다.
18시16분 석개재에 도착해 31구간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묘봉갈림길에서 50분 조금 못 걸어 임도를 만났습니다. 왼쪽 바로 옆의 임도를 따라 걸어도 목적지인 석개재에 닿게 되지만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종주산행이어서 능선 길로 진행했습니다. 부지런히 걸어 도착한 능선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봉우리로 올랐는데 지도에 나와 있는 방향과 달라 잠시 불안해하다가 왼쪽 멀리로 임도가 보였고 이내 길도 지도와 같은 북서쪽으로 나 있어 안심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얼마간 더 걸어 석개재에 도착하자 고개마루 왼쪽으로 정자가 보였습니다. 이 정자에서 새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십수년전에 낙동정맥을 종주했다는 한 분을 만나 그분의 추억담을 들었습니다. 이 근처를 지나다가 낙동정맥 종주길에 지난 이 고개가 생각나 우정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정맥종주가 이리도 기억에 남을만한 일인가 새삼 느꼈습니다. 택시를 불러 석포로 이동해 영주 행 기차에 오르는 것으로 31구간 종주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저를 자유롭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부지런히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감을 뜻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려들기 십상이어서 몸과 마음이 항상 바빠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하는 것도 제가 뭐 대단한 도덕군자가 되어서가 아닙니다. 더할 수 없이 청정한 산을 오르면서 부끄러운 일을 밥 먹듯이 한다면 산신령이 저를 감싸주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매번 종주길에 오를 때마다 산삼을 캐러 떠나는 심마니처럼 몸과 마음을 정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제 스스로에 부끄럽지 않아야 산 식구들이 한 가족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처럼 제게 주어진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고 지켜나가고자 애쓴다면 자유가 짐스러울 수 없기에 에리히 프롬이 얘기하는 '자유에서의 도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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