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강기맥 종주기

한강기맥 종주기1(양수역-청계산-말머리봉)

시인마뇽 2013. 3. 25. 20:45

 

                                                     한강기맥 종주기1

 

 

 

                                    *기맥구간:양수역-청계산-말머리봉

                                    *산행일자:2013. 3. 17일(토)

                                    *소재지   :경기양평

                                    *산높이   :청계산658m

                                    *산행코스:양수역-갑산공원묘지-벗고개-청계산-된고개

                                                   -말머리봉-한화콘도

                                    *산행시간:8시13분-18시45분(10시간32분)

                                    *동행      :나홀로

 

 

  또 한 산줄기에 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재작년 여름에 시작한 낙동정맥완주를 50km 가량 남겨두고 한강기맥에 발을 들인 것은 낙동정맥의 남은 구간이 길어 해가 긴 5월에 재개할 생각에서입니다. 오대산의 두로봉이 한강기맥이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간 분기점입니다. 두로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는 한강기맥은 북한강과 한강의 본류가 합수되는 두물머리인 양수리에서 끝나는 산줄기로 도상거리가 160Km를 조금 넘습니다.  남한 땅의 한북정맥과 길이가 거의 같아 15회 정도면 마칠 수 있겠지만 교통이 불편해 20회 정도 출산할 생각입니다.

 

 

 

  한강기맥은 북한강과 한강본류를 가르는 산줄기입니다. 북한강에 물을 대는 북쪽 산줄기는 한북정맥이고 한강본류에 물을 공급하는 남쪽 산줄기는 한남정맥이며,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의 한 가운데를 이어가면서 북쪽으로 북한강에, 남쪽으로 한강본류에 물을 대는 산줄기가 한강기맥인 것입니다. 백두대간에서 한북정맥이 갈라져나가는 분기점이 북한 땅에 있어 한강의 전 유역을 둘러싸고 있는 둘레산줄기를 환주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제가 꿈꾸어 온 한강둘레산줄기 환주산행은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우선 한강본류만이라도 그 둘레산줄기를 돌아볼 욕심으로 환주 길에 올랐습니다. 양수리에서 시작해 오대산의 두로봉까지는 한강기맥을 따르고 두로봉에서 속리산의 천황봉까지는 백두대간 길을 따라 내려갈 것입니다. 속리산에서 안성의 칠장산까지는 한남금북정맥을, 그리고 칠장산에서 용인의 문수봉까지는 한남정맥이 들레길 환주 안내를 맡게 됩니다. 마지막 문수봉에서 한남앵자지맥을 따라 걸어 남양주의 정암산 앞 한강변까지진행하면 약750km의 한강본류 둘레산줄기 환주를 모두 마치게 됩니다. 두로봉에서 정암산 앞 한강변까지는 한 번 걸어본 길이지만 다시 걸어볼 생각입니다.

 

 

 

  아침 8시13분 양수역을 출발했습니다. 한강기맥의 첫 구간의 출발점인 양수역에서 조금 걸어가 양서고등학교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인조잔디를 깐 운동장이 너무 깨끗해 보이는 양서고교 뒤쪽 야산으로 올라가 오른 쪽으로 조금 진행하자 이내 시멘트길 고개가 나타났습니다. 한강기맥의 농다치-양수리 구간 거리가 18.5Km 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진 이 지점을 들머리 또는 날머리로 삼아 작성한 한강기맥 산행기들을 많이 읽어온 터라 나지막한 이 고개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하늘이 쾌청해 북한강 너머 운길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8시58분에 올라선 106.7m봉에서 삼각점을 사진 찍은 후 손목시계의 고도를 보정했습니다. 북한강과 나란한 북동방향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가까이에 여기저기 묘지들이 자리한 것은 고도가 200m내외로 낮은 데다 북한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등 배산임수의 기본 꼴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입다.

 

 

 

  10시20분 갑산공원묘지에 다다랐습니다. 106.7m봉에서 갑산공원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고 고즈넉해 산보코스로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북동쪽으로 뻗어나간 마루금을 따라 201m봉에 오르자 오른 쪽 먼발치로 청계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해 갑산공원에 올라서자 최진실/최진영 오누이의 묘지가 꽤 넓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최고의 여배우 최진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설사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해도 생명의 존엄성을 손상시켰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겠지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그녀의 애교어린 TV CF 대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파른 된비알길을 따라 고도를 150m가량 높여 올라선 343m봉에서 귤을 까먹으며 이번 산행 처음으로 십 수분을 쉬었다가 오른 쪽으로 진행해 11시37분에 450m봉에 다다랐습니다.

 

 

 

  12시37분 벗고개를 지났습니다. 450m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갔다가 466m봉으로 옮기는 길에 지질조사를 하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관정공사에 동원되는 기계(?)로 지하의 흙을 파 올려 지질을 조사하는 것 같은데 인사만 나누어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1903년 일본 동경제국대학의 고토분지로 교수는 14개월에 걸쳐 실시한 지질조사자료를 기초로 '조선산맥론'을 발표하였고, 그 산맥론이 아직도 큰 수정 없이 쓰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높은 곳에까지 엄청 큰 기계를 끌어올려 땅속을 조사하는 현장을 목격하자 반갑고 또 반가웠습니다. 466m봉에 올랐다가 389m봉을 거쳐 내려선 벗고개는 양서면과 서종면을 아우르는 고개로 동물이동통로가 나있어 차도로 내려서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왼쪽 아래 목왕리에 한음 이덕형 선생의 묘지가 있다는 데 가보지 못했습니다. 한음 이덕형 선생은 오성 이항복선생의 죽마고우로 널리 알려진 분이지만, 조선조 가사의 대가인 노계 박인로 선생과도 인연이 깊은 분이시기도 합니다. 선조 34년인 1601년 한음선생을 찾아뵌 노계선생이 조홍시를 대접받고 부모님이 생각나 읊은 시가 그 유명한 조홍시가(早紅枾歌)입니다. 이동통로를 건너 꽤나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선 319m봉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13시19분에 산행을 재개했습니다.

 

 

 

  15시5분 해발658m의 청계산에 올라섰습니다. 청계산을 2.63Km 앞둔 지점에서 동쪽으로 진행하며 442m봉과 461m봉을 차례로 오르내리느라 많이 힘들었지만 두물머리의 그윽한 정경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면서 잠시나마 피로를 잊었습니다. 벗고개를 지나자 청계산에 오르는 몇 분들이 보여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보다 연배로 보이는 한 분이 저를 앞질러 가 오름 길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도차가 150m에서 200m에 이르는 봉우리를 연속해서 오르내리기도 벅찼고, 승골고개를 지나서부터는 잔설이 더러 남아 있는 북사면을 오르는 길이 속은 얼고 겉만 녹은 해토 길이어서 미끄러웠습니다. 양수역에서 5시간이면 오를 수 있겠다 했던 청계산을 7시간 가까이 걸려 많이 지쳤지만, 갈 길이 멀어 남쪽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한강의 물줄기를 후딱 사진 찍고 된고개로 향했습니다.

 

 

 

  16시 정각 된고개에 내려섰습니다. 애당초 목표했던 농다치까지 진행하는 것은 시간 상 무리일 것 같아 1차 중간탈출지점으로 생각한 곳이 된고개입니다. 된고개에 도착해 시간이 되면 말머리봉까지 가볼 생각으로 청계산 정상을 출발해 얼마간 정동쪽으로 진행하다가 왼쪽으로 꺾어 북동쪽으로 이어갔습니다. 청계산에서 농다치까지는 2008년에 역방향으로 한 번 산행한 일이 있는데, 그 때가 초가을인데도  된고개에서 청계산 정상까지 된 비알길을 오르느라  땀을 흘렸습니다. 반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은 길을 50분 가까이 걸어내려가 다다른 된고개에서 잠시 쉬면서 오른 쪽 중동리로 내려갈까 고심하다 일단 말머리봉까지 가서 첫 구간종주를 마무리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비알 길을 올라 다다른 평평한 풀밭 길에서 뒤를 돌아보자 지나온 청계산의 자태가 참으로 의젓해 보였습니다. 저 또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60대 후반에 접어들었기에 뒤돌아볼만한 인생이 있을 터인데 제 인생의 정점은 저 청계산처럼 선명하지 않아 조금은 답답합니다.

 

 

 

  17시40분 말머리봉에서 한강기맥 1구간을 마쳤습니다. 487m봉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 움푹진 곳을 지나자 7년 전 이곳에서 맛이 시큼하고 텁텁해 그냥 줘도 안 받아 먹을 만큼 맛이 없는 산복숭아를 따먹은 생각이 났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568.6m봉에 이르자 해는 서산에 기울기 시작해 저녁기운이 완연했습니다. 정동 쪽으로 진행해 이내 만난 546m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서둘러 고도를 낮추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후에야 서두르는 버릇은 여전해, 546m봉에서 말고개까지 정신없이 내달렸습니다. 여차하면 말고개에서 하산하겠다는 생각을 버린 것은 말고개는 그저 깊숙한 안부일 뿐 이쪽저쪽을 넘나드는 고갯마루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14분간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 말머리봉에 도착하자 랜턴을 켜고 산행하더라도 농다치까지 가보자는 욕심이 동했습니다. 그리해봤자 다음에 비슬고개까지 진행하는 것이 무리여서 농다치고개에서 서너시간 거리인 배너미고개에서 2구간 종주산행을 마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욕심을 누르고 말머리봉에서 주저앉아 일단 한강기맥 첫 구간을 종주를 마무리했습니다.

 

 

 

  18시48분 옥산 아래 한화콘도로 내려가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말머리봉에서 직진하는 길은 옥산을 거쳐 농다치로 이어지고, 한화콘도로 하산하는 길은 오른쪽으로 나있습니다. 가파른 하산 길이 조심스러워 아주 천천히 걸어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는 중 늦은 시간에 이 산을 오르는 몇 분들을 만났는데 저 아래 한화콘도에 머무르는 가족들 같았습니다. 여인네들의 나신을 담은 조각품들이 세워진 조각공원(?)을 지나 한화콘도 주차장에 내려서자 그동안 참아왔던 어둠이 물밀듯이 밀려와 사방이 금새 캄캄해져 말머리봉에서 농다치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내려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양평읍내 택시를 불러 양평역으로 이동해 20분 가까이기다렸다가 8시40분이 다 되어 용산 행 전철에 올라 10시간이 더 걸린 한강기맥 첫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저는 50대에 백두대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시작이 반이라며 의기양양해 했습니다. 60대 후반에 들어서자 정말 끝낼 수 있나 싶어 시작이 반이라고 큰 소리 치기가 주뼛거려졌습니다. 재작년에 벌려놓은 낙동강둘레산줄기환주는 이제 겨우 1/3가량 마쳐 언제 끝낼 지 저도 잘 모릅니다. 금강과 영산강 모두 그 둘레산줄기가 저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발을 들여놓을 지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시작해 볼 뜻입니다. 아직까지 시작해놓고 중도에 포기한 종주산행이 없어, 제게는 아직도 시작이 반입니다. 수 년 전 갑(甲)을 한 바퀴 돌린 제가 주력이 달려 젊은이들을 따라 잡을 수는 없지만 지구력은 여전하니만큼 해나갈 생각입니다. 이미 시작한 낙동강과 한강에 더해 금강과 영산강의 둘레산줄기도 조만간 한 발을 걸쳐놓을 생각입니다.

 

  평생을 두고 걸을 산줄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리고 한강기맥에 첫발을 들여놓아 더욱 행복합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