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기맥 종주기5
*기맥구간:신당고개-갈기산-발귀현
*산행일자:2014. 9. 21일(일)
*산높이 :갈기산685m
*소재지 :경기양평/강원홍천
*산행코스:차차휴게소-신당고개-용화사갈림길
-갈기산-578m봉-발귀현-협신초교
*산행시간:9시20분-16시5분(6시간35분)
*동행 :나 홀로
남들이 한 번에 끝내는 신당고개-발귀현-상창고개 구간종주를 걸음이 느려 상창고개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거리상으로 반이 조금 못되는 발귀현에서 일단 마치고 남은 구간은 다음 기회로 미뤘는데, 나머지 발귀현-금물산-상창고개도 제 걸음으로 8시간이 다 걸릴 것 같아 해떨어지기 전에 마치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합니다. 9정맥 종주를 저 혼자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걸음이 느린 것이어서 구간을 나누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요즘은 그 때보다 더욱 느려져 이런 속도라면 종주산행을 그만하는 것이 맞겠다 싶으면서도 그리하지 못하는 것은 종주산행만큼 저의 삶을 뿌듯하게 해주는 것이 달리 없어서입니다.
167cm의 신장에 체중이 83Kg이나 나가는 주요인은 조상의 빛난 얼(?)인 DNA때문이라고 얼버무리지만, 6년 전 매일 2-3시간씩 동네 산을 반년 넘게 올랐을 때는 몸무게가 77Kg로 떨어진 적도 있어 조상의 빛 난 얼만 탓할 수만도 없습니다. 과체중만 생각한다면 만사 제쳐놓고 운동을 해 살을 빼고 싶지만 세상만사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큰 맘 먹고 시작해도 최근 몇 년간은 매일 산에 오르는 것을 한 달 이상 끌고 간 적이 없습니다. 다행히도 83Kg의 몸무게가 거의 일정하게 30년 이상 유지되어 저의 두 다리가 그 몸무게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그 덕분에 무릎이 아프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지할 일입니다.
무릎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충격량(I)으로 그 양은 바로 운동량(P)의 변화입니다. 운동량(P)= 질량(m) X 속도(v)이므로 충격량(I)= 질량(m)x속도의 변화(△v)가 됩니다. 착지할 때의 속도는 0이므로 결국 무릎에 충격을 주는 충격량은 질량에 상당하는 몸무게에 산행속도를 곱한 값이 됩니다. 무릎을 편하게 하려면 살을 빼거나 천천히 걸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제가 스틱을 즐겨 쓰는 이유도 두 다리에 걸리는 체중을 두 스틱으로 분산시키고자 함인데 효과를 단단히 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무릎을 보호하는 방법은 천천히 산행하는 것입니다. 몸무게를 줄이지 못하는 저로서는 산행속도를 늦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렇듯 저의 느린 산행속도는 구조적인 것이어서 누가 빨리 가잔다고 빨리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제 걸음에 맞게 구간을 끊을 수밖에 없는데 마루금을 넘어가는 차도가 제 사정에 맞게 나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왜 그리 힘들게 사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씩 웃듯이 뭐 미쳤다고 종주산행을 하냐고 누가 나무란다면 저도 그저 씩 웃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오전9시20분 차차휴게소 건너편 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아침 일찍 산본 집을 출발해 전철로 용문역에 이르기까지 2시간 20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버스터미널로 옮겨 8시45분에 출발하는 홍천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두 주전 차차휴게소에서 용문시내로 나올 때는 밤 시간이어서 주변 정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국도와 시골길을 바꿔가며 달리는 버스 덕분에 양평의 정감 가는 시골풍경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문을 닫아 페허로 변해버린 클린턴 휴게소를 꽤 여러 번 들러 쉬고 갔으면서도 이 휴게소가 홍천 땅이 아니고 양평 땅에 자리했음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클린턴 휴게소에서 조금 더 가서 차차휴게소 건너편 정류장에서 하차해 신당고개로 향했습니다.
9시37분 신당고개를 44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고개마루에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오른 쪽 시멘트 길로 들어서는 것으로 5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내 시멘트 길은 끝이 났고 그 지점에서 오른 쪽으로 옮겨 동쪽 절개면에 설치한 철제계단을 따라 올라가 100m가량 고도를 높였습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 만난 능선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268번 송전탑 앞에 이르렀습니다.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수분을 걸어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올라가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내려선 임도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진행해 임도가 끝나는 공터에 서있는 266번 송전탑에 다다랐습니다. 넓은 임도를 걸으면서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은 산허리에 낸 임도는 마루금 아래 길이어서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능선 길로 올라가는 지점을 그냥 지나쳐 알바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10시56분 용화사갈림길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266번 송전탑에서 오른 쪽 능선 길을 따라 올라가 무명봉에 이르렀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남쪽으로 급하게 내려가 안부에 도착하자 “용화사2.12Km/갈기산1.6Km”의 표지목이 서 있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용화사길이 갈리는 안부에서 임도 따라 십 수m를 이동해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갈기산까지 오름 길은 능선으로 이어져 모처럼 종주산행을 진수를 맛보는 듯했습니다.
능선 길을 오르며 손가락에 통증이 느껴져 왜일까 하다가 쐬기에 쏘여서라는 것을 알게 되자 묘하게도 어린 시절이 생각나 이 통증이 너무 빨리 삭으러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어려서는 이맘때면 고암을 따먹으러 동네 야산에 자주 올라 쐬기에 쏘인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쏘인 부분에 침을 바른 후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사라져 참을 만했기에 또 다시 산에 올라 고암을 따고 도토리를 줍고 밤도 땄습니다. 봄이면 버찌를 따고 칡뿌리를 캐러 산에 올라갔고 가을이면 주로 밤을 주우러 산에 올라갔습니다. 겨울에는 먹을 것을 찾아올라간 것이 아니고 땔감을 구하고자 나무하러 간 것이어서 나뭇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통스러운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이래저래 산을 자주 올라간 셈인데 그때 산 오름이 몸에 배어 백두대간과 9정맥 종주를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가파른 비알 길을 따라 오르다 오른 쪽으로 시야가 확 트인 큰 바위를 만나 잠시 멈춰 양평의 산론리 일대를 조망했습니다.
12시12분 해발685m의 갈기산에 올라섰습니다. 진혁진님의 산행기에 따르면 전망바위에서 갈기산을 올랐다가 발귀현으로 내려가는 얼마간은 암릉 길로 적혀 있어 은근히 신경 쓰였습니다. 6년 전 춘천의 용화산에서 암릉 길을 걷다가 10m가량 밑으로 떨어진 사고를 겪은 후 트라우마로 남아 암릉길만 만나면 긴장되고 겁도 납니다. 전망바위를 지나 무명봉에 오르자 갈기산 정상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갔다가 486m봉을 넘어 내려선 안부에서 계속 올라가 암봉을 만났습니다. 이 암봉을 왼쪽으로 돌아 로프를 잡고 올라선 암릉 길은 최고의 전망대로 용문산과 백운산 , 그리고 추읍산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른 쪽으로 능선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하자 이내 돌탑이 나타났고 정상석이 세워진 갈기산 산마루에 다다랐습니다. 돌탑과 정상석이 각각 2개씩 세워진 정상에서 18분을 머물며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산을 오르는 중에 오색(?) 딱따구리가 집을 만들려고 나무줄기를 쪼는 소리에도 박자가 들어 있어 듣기에 좋았습니다.
13시55분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발귀현으로 내려가는 길도 처음 얼마간은 바위 길이 계속돼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두 개의 바위가 마주보고 서있는 부부바위와 곧추 서있는 암벽의 표면이 칼로 자른 듯 매끈해 신의 한 수가 이런 것이다 싶은 절벽바위를 차례로 지난 다음, 로프를 잡고 내려가 암릉길 전부를 통과했습니다. 정상 출발 20분이 채 못 되어 오른 쪽으로 신대리 길이 갈리는 새터갈림길에서 북쪽으로 내려갔다가 597m봉으로 오르는 중 길을 잃은 두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양평에 산다는 이들은 임도에다 차를 주차시키고 산행을 했는데 주차시킨 지점을 찾지 못해 헤맨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도를 꺼내 보이며 자세히 길을 설명해주었는데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262번 송전탑이 서 있는 597m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선 무명봉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노송 길을 지나 578m봉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른 후 남동쪽으로 내려가다 만난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에돈 후 경사가 급한 비알 길을 따라 내려간 곳이 임도였습니다.
15시2분 아스팔트길이 지나는 발귀현에 도착해 5구간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임도 따라 조금 더 가서 만난 임도삼거리에서 왼쪽 임도를 따라 4-5분 진행하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서 가파른 길을 오르고 한 봉우리를 넘어 임도로 내려갔습니다. 조금 후 다시 산길로 올라가 260번 송전탑에 이르자 갈기산 정상이 잘 보였습니다. 바로 위 439m봉에 오르자 능선 길이 완만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오른 쪽 아래 새터마을을 마음 편히 조망했습니다. 임도로 내려가 얼마 후 258번 송전탑을 지났고 다시 산길로 들어가 무명봉을 올랐다가 내려선 안부의 오른 쪽 골짜기가 안부와 고도차가 거의 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오른 쪽 물이 안부를 넘어 왼쪽 골짜기로 넘쳐흐를 수 있겠다 싶은데, 그리되면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산자분수(山自分水)의 원칙이 무너지게 됩니다. 잠시 후 아스팔트길이 지나는 발귀현에 도착해 구간종주를 마치고 십분 가량 쉬었습니다.
16시5분 협신초교 가까이의 한 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15시40분에 홍천을 출발한 버스가 삼마치를 거쳐 협신초교까지 오는데 반시간 가량 걸린다면 남은 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아 버스시간에 맞추려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경기양평의 신론리와 강원홍천의 신대리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아스팔트길이 발귀현을 지납니다. 15시15분 발귀현을 출발해 북쪽의 홍천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북진하다가 길옆의 논 뜰을 사진 찍었습니다. 어느 논은 벼 사이로 피가 득시글했고 깜부기가 생긴 벼도 보였습니다. 논 임자가 농한지세를 물지 않으려 모만 내고 방치한 것이라면, 그것은 생명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50분가량 쉬지 않고 내달려 협신초교 근처 정류장에 이르자마자 버스가 와, 이 차를 타고 양덕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며칠 전 고장 난 체중계를 고쳤습니다.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잴 때마다 체중계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영 미안했습니다. 이래저래 몸무게를 빼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습니다. 한강기맥 종주재개를 몸무게 빼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기맥 종주를 마칠 때는 77kg으로 줄어들어 균형잡힌 제 몸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열심히 걷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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