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강기맥 종주기

한강기맥 종주기3(배너미고개-용문산-비슬재)

시인마뇽 2013. 5. 30. 09:26

 

                                                          한강기맥 종주기3

 

 

                                     *기맥구간:배너미고개-용문산-비슬고개

                                     *산행일자:2013. 5. 12일(일)

                                     *소재지   :경기양평

                                     *산높이   :용문산1,157m, 폭산992m, 단월산778m

                                     *산행코스:배너미고개-용문산-폭산-단월산-싸리봉-비슬재

                                     *산행시간:10시38분-19시18분(8시간42분)

                                     *동행      :경동고동문 이규성, 이기후, 정병기

 

 

 

 

 

 

  시인 서정주 님은 그의 시 “자화상”에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八 割이 바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첫 머리에 ‘애비는 종이었다’라고 밝혀 “자화상”에 그려진 그의 모습이 거짓이 아님을 못 박은 만큼, 바람이 젊은 시절의 시인을 키운 것 또한 사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람이 시인을 키웠다면 최근 10수년간 저를 지켜준 것은 六 割이 산이라 하겠습니다. 시인의 8할을 제가 6할로 줄여 말한 것은 일주일에 두 번씩 오르던 산을, 2010년 방송대에 들어가고 나서 반으로 줄인 저를 보고 8할은 과하다며 산신령께서 혼을 내실까 두려워서입니다. 저 또한 한 평생 내내 ‘애비는 농사꾼이었다’라고 밝혀 제 종주기의 진실 됨을 담보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한강기맥 종주 차 고교동문들과 함께 오른 용문산은 제게는 오래 기억될 산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산행에 빠져든 것은 1998년부터입니다. 1970년대 대학 다닐 때 잠시 암벽을 등반하고 며칠에 걸쳐 지리산과 설악산을 오르곤 했지만, 그나마도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서 그만두었습니다. 1998년에 들어서 때 마침 고교동문 이규성교수가 안식휴가를 맞은 덕에 둘이서 경기도의 1천 미터를 넘는 고산들을 하나씩 오를 수 있었습니다. 높은 산의 정상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본격적인 ‘점 산행’은 그렇게 시작했고, 그 후 수년간 ‘점 산행’을 이어가면서 화악산, 명지산과 국망봉 등 경기도 고봉을 하나하나 올랐습니다.

 

 

 

  제가 ‘점 산행’에서 두 세 산을 연이어 오르는 ‘선 산행’으로 산행스타일을 확 바꾼 것은 2003년부터로, 그때 ‘선 산행’의 출발점으로 삼은 산이 바로 용문산입니다. 그 해 한 해 동안 용문산 일원의 산들로 8번을 출산 해 해발 1,157미터의 용문산을 위시해 유명산(862미터), 소구니산(800미터), 중미산(834미터), 어비산(822미터), 백운봉(940미터), 함왕봉(947미터), 도일봉(830미터), 중원산(800미터), 문례봉(992미터), 봉미산(856미터), 청계산(658미터)과 대부산(742미터) 등 모두 13개산을 몇 산 씩 연계해 차례로 오르내렸습니다. 이 산들을 오르내리면서 지구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덕에 그 다음해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10시38분 배너미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이번 용문산 구간을 같이 종주하기로 한 고교동문 세 명을 양평역에서 만나 택시를 잡아타고 들머리인 배너미고개로 이동했습니다. 해발600m가 넘는 배너미고개를 넘나드는 바람이 제법 냉랭하다 싶었던 것은 온 누리를 두루 비춰 뭇 생물들에 열기를 제공해온 태양이 구름에 가려 제대로 쪽을 쓰지 못해서였습니다. 산행채비를 마친 후 오른 쪽 계단 길로 올라가 얼마간 고도를 높이자 넓은 임도가 보였습니다. 이 높은 산에 임도를 개설했을 때는 분명 그 용도가 있었을 터인데 이런 저런 풀들이 길을 덮고 꽃을 피워 산상의 화원을 연 것으로 보아 꽤 오래 전부터 용도대로 쓰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11시53분 군부대 앞 공터에 이르렀습니다. 해발 900m대에 오르자 아직 가지에 나뭇잎들이 나지 않아 계절의 여왕 5월이 실종된 것 아닌가 했습니다. 임도 변에 야생화들이 활짝 꽃을 피우지 않았다면 이 산의 나무들이 겨울의 잔재를 털어내는 일을 더욱 늦추었을지도 모릅니다. 포장도로변 넓은 공터에 이르러 용문산 정상의 군부대가 바로 앞에 보이자, 유명산 정상에서 중미산으로 간 다는 것이 짙은 안개로 길을 잘 못 들어 여기 헬기장까지 왔다가 돌아간 10년 전의 산행이 생각났습니다. 그 일이 계기 되어 그 후 용문산 일원의 새끼 산들을 두루 올랐고 이번 산행으로 그 완결을 본다 싶어 가슴 뿌듯했습니다. 장군봉 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군부대가 들어선 용문산 정상을 헬기장에서 군부대를 오른 쪽으로 우회해 장군봉 바로 위 능선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13시4분 해발1,157m의 용문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장군봉 위 삼거리에서 정상에 이르기까지 정상부의 군부대를 에돌아 낸 길을 따라 걸었는데 너덜 길도 지나고 거리도 짧지 않아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년전 접근이 허용된 정상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여 주위의 산들이 모두 내려다보이자 용문산은 과연 고산이다 했습니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얼마간 떨어진 문례봉에서 같은 방향으로 홍천강까지 뻗어나가는 산줄기는 한강장락단맥이고, 이 산 바로 아래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강기맥 줄기인데 그새 구름이 걷혀 이 두 줄기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점심을 든 후 이번 산행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로 들어섰습니다.

 

 

 

  15시11분 해발992m의 문례봉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북동쪽의 문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만만치 않았던 것은 1/3정도의 거리를 군부대 바로 밑에 설치된 철조망 울타리에 바짝 붙어 전진해야했기 때문입니다. 저희와는 반대방향으로 군부대 앞 공터에서 군부대를 왼쪽으로 에돌아 진행한 한 젊은이를 만난 능선 삼거리에서 험한 길은 끝이 났고, 그 다음 길은 여느 산길과 다름없어 편하게 오르내렸습니다. 문례봉에 올라 ‘천사봉 표지석’을 사진 찍은 후 바로 아래 삼거리로 돌아가 10수분을 쉰 후 동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생각보다 산행속도가 붙지 않아 해 떨어지기 전에 비슬재에 도착할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 않아 조금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17시17분 중원산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문례봉에서 비슬재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싸리봉까지 걸어본 길이어서 낯설지 않았지만 오르내림이 심해 같이 오른 친구들이 조금씩 지쳐가는 했습니다. 배너미고개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한 저희가 아침에 청계산을 출발해 비슬재까지 간다는 40대의 한 젊은이에게 문례봉을 지나 738.2m봉을 오르기 얼마 전에 따라잡히고 나자, 젊음이 부럽기도 했고 마냥 느린 걸음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비슬재까지 진출해야 다음 종주산행이 편하기에 이번에 무슨 수를 내서라도 비슬재에서 산행을 마쳐야 하는 제가 738.2m봉을 넘어서부터 속도를 냈더니 두 명의 동문들이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원산 갈림길에서 후미의 두 친구를 기다리며 먼저 오른 이규성 동문에 두 친구들을 데리고 용문사입구쪽으로 먼저 하산할 것을 청한 것은 그래야 마음 놓고 속도를 내 해떨어지기 전에 비슬재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두 친구의 의향을 물어 세 명은 중원산쪽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저 혼자 들입다 내달렸습니다.

 

 

 

  19시18분 비슬재에 도착해 3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중원산 갈림길에서 한강기맥을 따라 내달려 안부를 지나고 가파른 단월봉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싸리재로 내려갔습니다. 싸리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면 중원게곡에 닿게 되는데 이 길은 2007년 이규성 동문과 같이 하산한 길입니다. 싸리재를 지나 가파른 길을 딸라 올라선 봉우리가 해발812m의 싸리봉으로, 어둠이 감지됐습니다. 싸리봉에서 몇 분 걷지 않아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내려감으로써 직진의 도일봉 가는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는 힘든 고바위 길이 더 이상 없겠다 싶어 마음이 놓이자 이 산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철쭉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화사하기로 말하면 철쭉 꽃이 진달래를 훨씬 앞서는데 진달래가 더욱 사랑받는 데는 소월 김정식님의 시 “진달래”가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입니다. 오른 쪽 아래로 임도가 보이는 안부를 지난 지 몇 분 안 되어 비슬재에 도착했습니다.

 

 

 

  19시13분에 산음리를 출발한 양평행 마지막 버스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 이 고개를 넘는 젊은 한 분이 고맙게도 차를 세우고 저를 태워주어 용문역까지 편하게 이동했습니다. 먼저 내려와 용문시내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동문들을 만나 저녁을 함께 드는 것으로 종주산행을 마무리 짓고 전철로 상경했습니다.

 

 

 

  저의 백두대간 종주는 용문산 일원에서 시작한 ‘선 산행’ 덕분임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습니다. 안내산악회를 따라 대간을 종주하면서 한편으로 저 혼자서 한북정맥과 한남정맥 종주를 병행했습니다. 그렇게 벌여놓은 대간과 정맥 종주도 이제 마무리단계에 와 있습니다. 1대간 9정맥의 마지막 종주코스는 낙동정맥입니다. 부산의 몰운대에서 시작한 낙동정맥 종주도 경북 봉화의 답운치까지 진행해 50km 가량만 더 걸으면 1대간9정맥종주를 모두 마치게 됩니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10년 가까이 지속한 결과 끝이 제게는 아주 창대해 보입니다. 고교동문 몇몇이 저의 대장정 마무리를 축하하고자 낙동정맥의 마지막 구간을 같이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이러니 제게는 용문산이 고마울 수밖에 없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