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34(최종회)
*정맥구간:통리역-구봉산-낙동정맥분기점
*산행일자:2013. 7. 20일(토)
*소재지 :강원태백/삼척
*산높이 :매봉산1,303m, 유령산932m, 대박등931m, 구봉산910m
*산행코스:통리역920m능선삼거리-느릅령-유령산-서미촌재-대박등
-구봉산-작은피재-낙동정맥분기점
*산행시간:11시5분-18시45분(7시간40분)
*동행 :경동고 이규성, 이기후, 조현, 정병기동문, 산우 성봉현, 북한산, 홍성남님
낙동정맥의 마지막 구간을 종주하는 이번 산행이 남한 땅의 백두대간과 정맥을 총칭하는 1대간9정맥의 종주를 마무리하는 산행이어서 여느 산행보다 훨씬 더 가슴 벅찼습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은 전장이 1,684km로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하는 장대한 산줄기입니다. 2004년에 시작해 이번에 종주를 마친 1대간9정맥은 남한의 백두대간과 이 대간에서 분기된 9개 정맥을 이르는 것으로 도상거리가 약2,800Km에 이르며, 실제거리는 3,600Km를 넘습니다. 들머리와 날머리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이동한 거리와 알바를 한 거리를 보태면 제가 걸은 총거리는 4,000Km가 족히 될 것입니다.
1대간9정맥을 종주하면서 산행횟수를 더 할수록 우리 국토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깊어진 것은 제게는 생각지 못한 수확입니다. 백두대간과 한북, 한남, 금북, 한남금북 및 금남정맥을 종주할 때만 해도 목표한 산줄기의 종주를 무탈하게 마치는 데 온 신경을 써 우리 땅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2007년 들어 호남정맥에 발을 들이면서 언뜻 이참에 정맥 길과 가까운 명소들도 같이 들러보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중에 따로 찾아보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을 모두 절약하는 길이다 싶어 곧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뒤이어 낙남정맥과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도 짬을 내 꽤 여러 곳을 들러 탐방기를 남겼습니다. 제 블로그에 올린 57편의 명소탐방기 중 “소록도 탐방기”등 21편은 이렇게 쓰인 글들입니다. 탐방기를 쓰면서 자주 참고한 책은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입니다. 30대 때 한 번 읽은 이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은 것은 낙남정맥과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들른 여러 곳의 기원설화가 이 책에 실려 있어서였고, 신증 동국여지승람과 이중환의 택리지를 가끔 들여다본 것은 선조들의 지리관을 알아보고싶어서였습니다.
11시5분 통리역을 출발했습니다. 아침7시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태백에 도착한 것은 10시반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택시로 통리역으로 옮겨 북한산님 일행 두 분과 만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통리역 뒤 삼거리에서 오른 쪽 밭으로 올라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후 다다른 돌무덤 앞 나무계단 길을 따라 걸어 올라 능선삼거리에서 첫 쉼을 쉬었습니다. 처음 인사를 나눈 북한산님의 일행 터프님이 얼음물과 먹을 거리를 많이 준비해와 쉬는 시간에도 바빴습니다. 오른 쪽으로 조금 진행해 전망대에 이르자 삼척의 도계 시내가 한눈에 잡혔습니다. 바람이 솔솔 부는 그늘 길이 이어져 태양이 남중해 바로 머리 위에 있어도 그다지 덥지 않았습니다.
12시11분 느릅령의 유령산 영당 앞으로 내려섰습니다. 전망대를 지나 깊숙한 안부 느릅령으로 내려서기까지 15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선 느릅령에 유령산영당(楡嶺山靈堂)이 자리했고 그 안에서 굿판이 벌어졌습니다. 말이 굿판이지 실제는 무녀 혼자 앉아서 굿을 해 생각보다 조용한데다 무녀도 무복이 아닌 개량한복 같은 것을 입고 있어 제금소리만 나지 않았다면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느릅령에서 통나무 길을 올라 삼각점이 박혀 있는 해발932m의 유령산에 오르기까지 20분이 걸렸습니다. 이번 산행의 출발점인 통리역을 기준 한다면 시간 반이 걸렸으며, 그간 높인 표고는 250m 가량으로 오름 길이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창세신화는 대부분이 무가(巫歌)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가가 문학적 의미를 갖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잘못된 학교교육 때문에 무속이 전통신앙이 아닌 미신으로 업신여겨져 무지한 사람들이나 가까이 하는 것으로 믿어왔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믿음이 잘 못됐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굿을 자주 보며 자라 지금도 무의의 절차나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방송대국문과에 들어가 구비문학을 공부하면서 무의의 중요한 콘텐츠를 이루고 있는 무가를 몇 편 읽고 나자 수많은 국문학자나 민속학자들이 왜 무속을 연구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번 산행 길에 실로 오랜만에 무녀가 굿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굿의 또 다른 이름은 무의(巫儀)입니다. 무의는 그 목적에 따라 재수나 복을 비는 기복무의(祈福巫儀), 죽은 자의 혼령을 위무하고 천도하는 사령무의(死靈巫儀), 우환을 다스리는 치병무의(治病巫儀)와 자신이 모시는 몸주신에 대한 의례인 무신무의(巫神巫儀)로 나뉩니다. 경사굿이나 치원굿, 또 당산굿 등은 기복무의에 속하고, 오구굿, 씻김굿등은 사령무의의 한 종류입니다. 우환굿이나 푸닥거리는 치병무의이고, 진적굿이나 칠석맞이 등이 무신무의로 분류됩니다.
이번에 유령산영당에서 잠시 지켜본 굿은 무녀 혼자서 하는 것으로 보아 무신무의의 하나인 진적굿 같았습니다. 무녀라고 일 년 내내 손님만을 위해 굿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년 한 번은 다른 무녀들을 불러하거나 또는 혼자서라도 자기가 모시는 몸주신을 위해 굿을 여는데 이런 굿을 진적 굿이라 합니다. 느릅령에서 본 굿이 진적굿이 맞다면 그 무녀가 모신 몸주신은 산신령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발8백m는 족히 되는 유령산영당까지 올라와 치르지 않을 것입니다.
13시23분 예낭골의 서미촌재 고개를 지났습니다. 유령산에서 북서쪽으로 진행해 송전탑을 지나고 전망대쉼터에 이르러 숨을 돌렸습니다. 922m봉을 넘어 내려선 넓은 안부가 지형도에 예낭골로 적혀 있는 서미촌재로 공사를 하느라 넓은 길이 나 있었습니다. 공사용가건물(?) 옆으로 들어선 풀숲 길에 산딸기나무들이 있어 두 다리가 그 가시에 여러 번 찔렸습니다. 벌써 점심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고 내달리는 선두가 20분을 더 걸어올라 함께 식사할 자리를 잡는 바람에 13시40분이 넘어 점심을 들었습니다. 여럿이 하는 산행이 ‘나 홀로’ 산행보다 좋은 점은 무엇보다 점심 식탁이 풍성하다는 것으로, 이번에도 점심시간이 길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14시24분에 산행을 재개한지 4-5분이 지나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여러분들을 만났습니다. 빙 둘러 식사를 하는 이분들도 이번산행이 낙동정맥 종주를 마무리하는 산행이어서인지 목소리가 엄청 들떠 보였습니다.
15시11분 해발931m의 대박등에 도착했습니다.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다 왼쪽 옆으로 시멘트 길이 나있는 곳을 지나 대조봉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발원지탐방길22’라는 표지목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비를 만나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이내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예보되지 않은 소나기답게 오래가지 않았고 내린 비로 땅이 식어 시원했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해발931m의 대박등에 오르자 통나무의자가 있어 잠시 궁둥이를 붙였습니다. 대박등에서 조망한 대간 길에 풍력발전기가 여럿 보였고 낙동정맥 길이 갈리는 대간 상의 분기점의 위치를 감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가파른 길로 내려가 '전망대3.9Km'의 표지목에 이르자 넓은 개활지 오른 쪽 위로 난 평평한 길이 이어졌습니다.
16시5분 작은피재 도로를 건넜습니다. 철근으로 만든 조형물이 해바라기조형물이라는 것은 동행한 성본현님에게서 들어 알았습니다. 녹이 슬어 무엇을 상징하는 지 알 수 없는 ‘해바라기조형물’을 지나고 ‘해바라기언덕’을 알리는 표지목도 지나서 작은 피재 앞길인 35번 도로가 가까이 보이는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올라 해발910m의 구봉산에 올라 마지막 휴식을 취했습니다. 시야가 가려 답답한 구봉산에서 북쪽으로 진행해 작은 피재 앞 35번 도로로 내려섰습니다. 도로 건너 산길로 들어서자 9년 넘게 정성들인 1대간9정맥 종주산행에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싶어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동행한 한 친구가 매우 힘들어하면서도 기필코 낙동정맥 분기점까지 올라가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은 그 분기점에서 1대간9정맥종주를 마무리 짓는 저를 축하하기 위해서라 생각하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16시55분 백두대간의 낙동정맥 분기점에 도착해 1대간9정맥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도로 건너 산길은 가파른 비알길이어서 장시간 산행에 익숙지 않은 또 한 친구가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비알 길을 올라 다다른 임도에서 중도포기를 심각하게 생각한 이 친구도 몇 분을 쉰 후 나머지 비알 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른 쪽 삼수령목장에서 쳐놓은 철망을 따라 오르자 오른 쪽으로 대간 길이 보인다 했는데 얼마 오래지 않아 낙동정맥 분기점에 도착했습니다. 표지석 앞에서 무릎을 꿇고 1대간9정맥을 무탈하게 마칠 수 있도록 보살펴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린 후 먼저와 기다린 일행들과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후미를 기다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18시45분 삼수령에 도착해 이번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환희를 잠시 접어두고 풍력발전단지 위 매봉산에 올랐습니다. 해발1,303m의 매봉산은 백두대간 종주 때 오른 산이어서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전망대에서 조망한 풍경이 처음 본 듯 새로웠습니다. 매봉산에서 내려와 찻길을 따라 삼수령을 향해 내려갔습니다. 고랭지채소단지에서 싱그럽게 잘 자라는 배추들을 보고 저런 좋은 상태로 때 맞춰 출하되어 농부들에 큰돈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 것은 저 또한 부모님이 채소를 길러 인근 용주골에 내다 판 돈으로 대학을 다녔기 때문입니다. 삼수령에 도착해 마신 맥주가 지금까지 마신 어느 술보다 맛있었습니다. 북한산님의 정성과 큰 과제를 마친 기쁨이 더해져 더 당겼습니다. 택시를 불러 태백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1대간9정맥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1대간9정맥 종주를 축하하고자 고교동창 4명과 산우 3명 등 7명이 이번 산행에 합류했습니다. 한북정맥의 전 구간을 같이 종주했고 백두대간도 10여 구간 함께 했으며 낙남정맥과 호남정맥도 한 두 구간 우정산행을 해준 이규성교수가 이번에도 짬을 내 같이 했습니다. 그동안 산행기와 지형도 등 참고자료를 꾸준히 제공해준 성봉현님과 백두대간 종주 시 산행기로 도움을 많이 준 북한산님이 길안내를 맡아주었습니다. 한북정맥을 같이 종주한 이기후동기와 정병기후배, 다음 날 예배준비로 바쁜 고교동기 조현목사, 그리고 북한산님의 산행동료 홍성남님등이 이번에 10여Km를 같이 걸은 고마운 이들입니다.
먼저 간 집사람이 생각난 것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없어서입니다. 반중 조홍감을 읊은 노계 박인로의 애한이 저와 같았을 것입니다. 노계에 반중 조홍감이 좋아도 보였다면 제게는 1대간9정맥 종주가 그렇습니다. 9년을 공들여 길러 딴 감이 1대간9정맥 종주여서 어서 빨리 달려가 이 소식을 전해주고 싶지만 그리할 수 없는 회한을 노계의 시로 풀어봅니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영세를 받아 카톨릭 신자가 된지 13년이 다 되갑니다만, 저는 아직도 산에서는 주로 산신령을 찾습니다. 정맥 종주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무릎 꿇고 주님께 기도를 올립니다만, 그 때를 제외하고는 주로 산신령님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올리는 편입니다. 부엌에서는 부뚜막 신이 최고이듯이 아무래도 산에서는 산산령이 최고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산에 대한 친근감과 외경심을 그대로 산신령에도 갖게 되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입니다. 1대간9정맥을 무탈하게 종주할 수 있도록 보살펴달라고 주님께만 간구한다면 그분께 너무 많은 짐을 지워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활동하셨던 땅에는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것이 아니어서 높은 산봉우리가 즐비한 대간을 종주하는 산 꾼들을 챙겨주시는 데 익숙지 않으실 것이기에 제가 산신령께 부탁말씀 드리는 것을 갖고 혼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과 산신령님 모두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산행사진>
'III.백두대간·정맥·기맥 > 낙동정맥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동정맥 종주기33(토산령-백병산-통리역) (0) | 2013.07.12 |
---|---|
낙동정맥 종주기32(석개재-면산-토산령) (0) | 2013.07.05 |
낙동정맥 종주기31(삿갓재직전임도-용인등봉-석개재) (0) | 2013.06.13 |
낙동정맥 종주기30(답운치-한나무재-삿갓재 직전임도) (0) | 2013.06.02 |
낙동정맥 종주기29(애미랑재-통고산-답운치) (0) | 2013.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