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58.영월명소 탐방기2(魚羅淵)

시인마뇽 2013. 8. 19. 20:32

 

                                                영월명소 탐방기2(魚羅淵)

 

 

 

                                        *탐방일자:2013. 8. 8일(목)

                                        *탐방지 :강원 영월 동강 어라연

                                        *동행 :서울사대 이상훈, 원영환 동문

 

 

 

  우리나라에서 명승이 가장 많은 곳은 강원도 영월과 충북의 단양입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전국의 명승은 2011년 6월 현재 74개소로, 제 1호는 강원도 강릉에 소재한 소금강입니다. 비록 속해 있는 도는 다르지만 남북으로 붙어 있고, 한강이 흐르고 석회암지대라는 점 등 지형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영월과 단양은 명승도 똑같이 네 곳씩 나눠 갖고 있습니다. 어라연, 청령포, 한반도 지형과 선돌이 영월에,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과 사인암이 단양에 나뉘어 있는데 사인암을 빼놓고 7개 명승 모두가 서강과 동강 및 남한강 등 한강의 상류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라 하겠습니다.

 

 

 

  영월의 명승은 네 곳 모두 한강의 상류인 동강과 서강에 자리했습니다. 청령포, 한반도 지형과 선돌 등 세 곳은 서강에 있고, 어라연만 유일하게 동강 한 가운데 있습니다. 동강은 한강의 본류입니다.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 물이 골지천을 이루어 흐르다 임계천과 합류하고, 송천과 합해 조양강을 이룬 다음 오대천과 동대천을 차례로 받아들여 세를 불린 후 정선읍 가수리에서 동남천과 몸을 섞어 동강을 낳습니다. 동강이 끝나는 곳은 영월읍 남쪽으로, 이곳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을 이룹니다. 서강은 한강의 제1지류입니다. 계방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이 주천강과 합류해 이룬 서강은 영월읍 남쪽에 이르러 동강에 합류되어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대학동창 이상훈교수가 주선해 지학과의 원영환선생과 함께 탐방한 어라연(魚羅淵)은 ‘고기가 비단결같이 떠오르는 연못’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명승입니다. 옛날 선인들이 동강 한가운데 자리한 바위에 내려와 놀던 곳이라 하여 삼선암 또는 정자암이라고도 불리는 어라연은 전장65Km의 동강이 빚어낸 유일한 명승으로, 영월읍의 거문리와 문산리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전10시반경 어라연탐방 길에 올랐습니다. 이상훈교수가 기거하는 평창 봉평의 무의리 아파트를 출발해 거문리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남짓 시골 길을 달렸습니다. 거문교를 건너자 삼옥안내소에서 여성안내원이 뛰어나와 반갑게 맞았습니다. 10분가량 같이 걸으며 동강보존에 힘써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한 안내원은 기념사진을 같이 찍은 후 돌아갔고 저희 셋은 넓은 임도를 따라 직진해 나지막한 구릉을 넘었습니다. 동리를 지나 산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다다른 나무다리를 건너지 않고 밑으로 내려가 계곡물로 머리를 적셨습니다. 다리를 건너 나무 계단이 놓여 있는 치받이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선 삼거리에서 왼쪽 능선을 타고 잣봉을 향해 진행하다가 오른 쪽 아래로 동강 한 가운데 자리한 어라연이 한눈에 잡혀 그 전경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12시 반이 조금 못되어 해발537m의 잣봉에 올라섰습니다. 높지 않은 이 봉우리를 오르는데도 장마 뒤 폭염이 맹위를 떨쳐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습니다. 이번에 산을 오른 것은 보다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 위해서인데 잣봉 정상이 앞서 사진 찍은 곳보다 동강이 더 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아래 그늘로 옮겨 점심을 들면서 땀을 식히고 나자 비로소 살 것 같았습니다. 어라연으로 내려가는 길이 매우 가팔라 관광으로 오신 연세든 노인 분들에는 결코 쉽지 않겠다 싶은 길을 따라 내려가  안부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삼거리에서  조금 직진해 어라연이 아주 가깝게 보이는 넓은 암반 위에 등을 눕히고 잠시 쉬었습니다.

 

 

 

  동행한 원선생은 역암(礰岩) 찾기에 바빴습니다. 진안의 마이산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큰 자갈로 이루어진 역암을 보고 원선생은 이 바위가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자갈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크다 싶은 돌이 빠져나간 모습은 마이산에서 익히 보았지만 모암의 크기가 비할 수 없이 작은 이곳의 역암에서 마이산에서에서와 비슷한 크기의 풍화혈인 타포니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습니다. 삼거리로 되돌아가 동강으로 내려가는 길은 짧았습니다. 꽤 많은 팀들의 래프팅놀이손님들이 손을 맞추는 구령소리가 물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 어라연의 고기들이 비단결같이 떠오르다 놀라자빠지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으로 동강 댐건설계획이 취소된 후 급격히 늘어난 관광객들로 동강이 몸살을 앓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주원인이 래프팅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라연은 물속의 연못이어서 접근하지 못하고 지근거리의 강변에서 스케치 했습니다. 강변에 직립한 좌우의 산들에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섰고, 강 한가운데 몇 그루의 소나무들이 뿌리박은 거암과 이 거암을 호위하는 작은 바위들이 소왕국을 이루고 있으며, 강물이 이 왕국에 이르러 물 흐름의 속도를 급속하게 떨어트리고 연초록빛의 수중 연못을 만들어 놓은 곳이 바로 어라연의 정경입니다. 제 아무리 스케치를 잘 한다 해도 그려낼 수 없는 것은 어라연이 꽁꽁 숨겨둔 속살입니다. 사진으로도 드러낼 수 없는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은 오래 전부터 면면히 전해오는 전설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첫 번째 전설은 이러합니다. 거문리에 사는 정씨가 어라연의 바위에 올라 낚시를 하는데 별안간 물기둥이 솟구치면서 커다란 뱀이 나타나 정씨 몸을 칭칭 감더랍니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에 이른 정씨를 본 황소가리 한 마리가 물속에서 뛰어올라 톱날 같은 등지느러미로 뱀을 쳐서 정씨 목숨을 구했다 합니다. 이에 감읍한 정씨 일가들은 황소가리를 절대로 잡아먹지 않는다 합니다. 두 번째 전설에 등장하는 황소가리는 태백산 산신령이 되기 위해 황소가리로 변한 단종의 혼령입니다. 황소가리로 변신한 단종의 혼령은 남한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던 중 경치 좋은 어라연에서 머물고 갔다 하여 상류 문산리 주민들은 지금도 단종의 혼령인 어라연 용왕을 모시는 용왕굿을 올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 합니다. 위 두 설화를 담은 ‘어라연 안내 표지판’은 아직도 황소가리가 이들 마을과 주민들의 수호신임을 일러주었습니다. 단종의 혼령이 어라연이 비경이라 하여 아주 주저앉은 것은 아닙니다. 얼마고 머문 후 애당초 계획대로 태백산을 찾아가 태백산 산신령이 되신 것은 태백산 정상 가까이에 단종을 모시는 단종비각이 세워진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잣봉을 휘돌아 내려가는 동강은 어라연을 지나자 급류가 끝나고 강폭이 넓어져 물 흐름이 많이 더뎌진 것 같았습니다. 강변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햇빛이 가려지는 그늘 길이 아니어서 전날 발왕산을 오를 때보다 훨씬 덥게 느껴졌고, 강변 따라 걷는 길도 꽤 길어 중간에 다리 아래 물가로 내려가 십 수분 쉬어가야 했습니다. 강변 돌길을 지난 후로는 편안한 비포장 차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강변길을 두 시간 가까이 걸은 후 오른 쪽 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걸어 출발지로 되돌아온 것은 오후 4시 반이 넘어서였습니다.

 

 

 

  동강의 비경을 이번에 처음 접한 것은 아닙니다. 9년 전 동강을 건너 백운산을 오를 때는 태풍이 막 지나간 뒤여서 연초록 강물이 탁류로 변해 깨끗하지 못했지만 굽이져 흐르는 물도리에 매료되어 언제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한 번 보고 뒤돌아설 정도라면 애당초 문화재청에서 어라연을 명승으로 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우평님은 그의 저서 “한국지형산책”에 동강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깊은 산골짜기를 굽이쳐 흐르는 하천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침식기준면인 해수면의 고도와 큰 차이가 없는 준평원에 가까운 이 일대를 동강은 뱀처럼 구불구불 자유롭게 곡류하고 있었다 합니다. 그러다가 약 2,300만 년 전 신생대 제3기 중기에 접어들면서 이 일대에 비대칭 습곡운동이 일어나 태백산맥과 소맥산맥이 형성되었고 동강도 이전보다 높이 융기했습니다. 그 결과 물 흐름이 빨라지고 강바닥을 깎아내는 하방침식이 활발해져 일부지역에서는 기존의 유로를 따라, 또 다른 지역에서는 측방침식이 강하게 일어나 만들어진 새로운 유로를 따라 골짜기가 형성되어 오늘과 같은 구절양장의 강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때는 동강의 지질변화도 눈여겨 볼 뜻입니다. 왜냐하면 어라연이 동강 최고의 명승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오랜 세월 동강이 겪어냈을 지질변화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리해서 전설과 지질변화의 접점을 찾아낸다면 정말 대박 이 될 텐데 기대하면서 머릿속으로나마 어라연의 바위에 앉아 세월을 낚아 볼 뜻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