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지맥·분맥·단맥/보만식계

보만식계 종주기3(태실재-머들령-닭재)

시인마뇽 2016. 11. 12. 08:34

                                                             보만식계 종주기3

 

 

                                                              *종주구간:태실재-머들령-닭재

                                                              *종주일자:2016. 9. 20()

                                                              *산높이 :정기봉 580m, 국사봉508m

                                                              *소재지 :대전시/충남금산

                                                              *산행코스:만인산휴양림-태실재-정기봉-머들고개-국사봉

                                                              -닭재-덕산리버스정류장

                                                              *산행시간:9:00 - 1730(8시간30)

                                                              *동행 :나홀로 





   이번에 종주한 보만식계 산줄기의 제3구간은 충남 금산군의 추부면에 소재한 태조대왕태실(太祖大王胎室)에서 시작됩니다. 태실(胎室)이란 왕실에서 왕, 왕비, 대군, 왕세자, 왕자, 왕세손, 왕손, 공주, 옹주 등이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던 곳을 이른다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왕실에서 태어났다고 모두 임금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왕자들이 왕세자 이외에도 이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던 것인데, 이는 바로 태실이라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님을 일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만인산의 태실은 그저 그런 태실이 아닙니다. 충남 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된 이 태실의 정확한 명칭이 태조대왕태실(太祖大王胎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를 봉안한 곳입니다. 이태조(李太祖)가 여기 만인산 인근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태를 이곳에 모신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본래 여말선초의 한 시인이 전국의 명승지를 두루 다녀보고 만인산이 산세가 깊고 두터우며 굽이굽이 겹쳐진 봉우리는 연꽃이 만발한 것 같고 계곡의 물이 한 곳에 모여든다고 찬양했다합니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왕실은 지관을 보내 확인한 뒤, 함경도 용연의 태실을 이 산으로 옮기고 만인산 봉우리를 태봉(胎峰)으로 불렀습니다.



   제가 본 이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것을 1993년 금산군과 주민들이 수습해 이 자리에 복원한 것입니다. 복원된 태실은 그다지 넓지 않아 웬만한 부잣집 묘지보다 좁아보였습니다. 한 나라를 세운 분의 태실이 이 정도 규모라면 왕실의 다른 태실은 이보다 작을 것이 분명하다 싶어 태실 때문에 우리 산들이 훼손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태실 자리를 왕릉처럼 넓게 썼다면 태실의 산지훼손이 왕릉보다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싶은 것은 어린 나이에 죽어 묘 자리를 쓰지 않은 왕족들이 많았을 것 같아서입니다.


 

   9시 정각에 만인산휴양림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대전역에서 지하도를 건너 왼쪽의 우체국 쪽으로 가다가 505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40분 쯤 달려 도착한 추부터널 앞 만인산휴양림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길 건너 태실재로 이어지는 넓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평일이어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아스팔트길을 걸어 오르며 만인산의 아침 공기가 참으로 풋풋하다 한 것은 여름 내내 지구를 달구었던 더위가 한 풀 꺾여서일 것입니다. 포장에서 비포장으로 바뀌었어도 노폭이 그대로여서 여전히 넉넉한 길을 따라 올라 지난 5월 두렵기도 해 그냥 지나친 태실재의 구름다리에 발을 들였습니다. 왼발 오른 발을 번갈아가며 한 발로 딛어야하는 로프로 된 구름다리를 조심해 건넜습니다.

 

 

   940분 태실재에서 보만식계 3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태를 모셨던 태실재 위에서 한참을 쉬었다가 잠시 내려가 태실을 사진 찍은 후 비로소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보만식계의 연봉 중에서 식장산 다음으로 높은 정기봉이 코앞이어서 오름 길이 된비알 길로 짐작했는데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았습니다. 태실재에서 북동쪽으로 15분 쯤 올라가 만난 꽤 높은 2층 누각은 고정된 수직의 사다리로 올라야 해 그냥 지나갔습니다.

누각 앞에서 왼쪽으로 꺾이는 능선 길이 잠시나마 평평하게 이어진 덕분에 저의 숨소리가 가쁘지 않았습니다. 가을이 다가오는 것은 여치(?)의 울음소리로 감지됐습니다.


 

   1035분 해발580m의 정기봉에 올라섰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산길은 다소 물기가 남아있었지만 가을 문턱에 들어서인지 전혀 후덥지근하지 않았습니다. 해발고도가 400m를 넘자 오름 길은 바로 위 정기봉을 왼쪽으로 에도는 우회 길로 바뀌었습니다. 왼쪽으로 에도는 우회길이 해발 500m의 능선에 이르자 오른 쪽으로 확 꺾여 가파르게 정기봉 정상까지 이어졌습니다. 돌탑이 세워진 정상에서 서쪽 멀리로 우람한 암봉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계룡산 같았습니다. 동쪽 가까이로 보이는 꽤 높은 봉우리가 나중에 다른 분에게서 충남 최고봉인 서대산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진행해 로프가드가 쳐진 꽤나 가파른 길을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해발고도를 120m가량 낮추자 된비알길이 평탄한 길로 바뀌어 나지막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다가 왼쪽 아래로 청소년수련관 길이 갈리는 닭재 전방8.2Km 지점의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1222분 안부사거리를 지났습니다. 청소년수련관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닭재 가는 능선 길은 편안했습니다. 20분 남짓 걸어 다다른 해발470m(?)의 무명봉에서 점심을 들면서 모처럼 느긋하게 쉬었습니다. 저보다 몇 년 연배로 보이는 두 분을 뵙고 인사를 나눈 후 무명봉을 출발해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해발 500m(?)의 무명봉에서 다시 내려가 해발360m(?)의 깊숙한 안부 사거리로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장산 저수지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에서 이번 종주산행의 끝점인 닭재까지 남은 거리가 6.7Km로 이 정도 산행속도라면 해떨어지기 훨씬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느긋해졌습니다. 가을을 알리는 것이 여치소리만이 아니었으니, 아무런 생각 없이 발을 옮겨놓다가 나무 위에서 상수리가 뚝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를 몇 번하면서 계속 진행해 묘지가 자리한 해발 500m(?)의 봉우리에 도착한 시각이 1256분이었습니다

  

 

   1357분 머들고개로 내려섰습니다. 계룡산과 서대산이 잘 보이는 묘지 봉에서 20-30m가량 내려갔다가 이어지는 완만한 길을 따라 올라 삼각점이 세워진 542m봉에 이르기까지 20분 남짓 걸렸습니다. 542m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평지 길에 닿기까지 한참 동안 걸었습니다. 평지길을 걷다가 다시 올라 봉우리 넘기를 세 번 반복한 후 내려선 곳이 깊숙한 안부인 해발 320m(?)의 머들고개였습니다. 오른 쪽으로 금산군의 추부면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머들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4.3Km 남은 닭재를 향해 가파른 길을 올라 50m가량 고도를 높이자 경사가 다시 완만해졌습니다. 머들고개에서 40분 가량 걸어 올라선 해발390m(?)의 명지봉에는 의자가 있어 쉬어가기에 좋았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어지는 길은 해발370-390m대를 오르내리는 좋은 길로, 이런 길을 한동안 걸어 450m(?)의 봉우리로 올라섰습니다.


 

   1547분 해발506m의 국사봉에 올랐습니다. 450m(?)의 봉우리에서 급하게 내려가 작은 습지를 지나 급경사 길을 따라 해발 490m(?)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500m(?)의 무명봉을 더 오르내려 올라선 해발506m의 국사봉에서 50대 중반의 남자 분을 만났습니다. 평일인데도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보만식계 종주길이 인근 시민이 즐겨 오르내리는 대전시의 둘레산길이어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국사봉에서 조금 쉬어 가겠다는 생각을 접고 이분을 따라서 닭재까지 같이 산행했습니다. 국사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급하다 싶은 것은 잠시였고 대체로 길이 편해 이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중장비 기사라는 이분 역시 등산 예찬론자여서 화제의 거의다가 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에서 만난 분과의 인연이 하산으로 끝나는 것은 속세는 더 이상 산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37분 닭재에 도착해 20분가량 쉬었습니다. 국사봉에서 닭재로 내려가는 걸음이 빨랐던 것은 동행한 분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였는데 조금 무리가 된 것 같아 이 분과 닭재에서 헤어졌습니다. 돌탑 두 기와 고목들이 여러 그루 자리한 닭재는 더 할 수 없는 쉼터여서 그냥 지나쳤다면 아쉬워할 뻔 했습니다. 정자에 등을 눕히자 또 한 구간을 무사히 종주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졸음이 와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1대간9정맥 종주 길에서는 이런 망중한을 즐긴 적이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내달렸는데 이번 종주 길이 대도시에 인접한 둘레산길이어서인지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빈 닭재에서 망중한을 즐기다가 고즈넉한 산속의 저녁 기운이 감지되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1730분 덕산리 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저녁 5시면 산속에는 어둠이 들기 시작해 마음이 급한 시간인데도 하산을 서두르지 않은 것은 버스 타는 곳이 반시간만 걸어 내려가면 닿을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어서였습니다. 산속을 빠져나가 밭을 지나다 후미진 곳에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덕산리버스정류장에서 대전역으로 가는 603번 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2016119일자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충남의 금산군에서 이 태실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기 위해 성역화작업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금산군이 잘한 일은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태실을 수습해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이 태실이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금산군이 이 태실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고자 애쓰는 것은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왕실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태를 버리지 않고 계속 봉안해 둔 태실이 과연 후손들이 기릴만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과문한 탓으로 이런 풍습이 왕실이 아닌 사대부나 양민들에게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태실을 두어 태를 후세에 전하는 것은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태실이 왕릉과 다른 것은 묘지는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왕실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이 다 썼지만, 태실은 왕실의 전유물이 아니었겠나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태조대왕태실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