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영산기맥종주기

영산기맥 종주기7(815번도로-영태산-함평고버스정류장)

시인마뇽 2017. 2. 21. 01:25

                                                       영산기맥 종주기7

 

 

                                      *기맥구간:815번도로-영태산-함평고버스정류장

                                      *산행일자:2017. 1. 19()

                                      *산높이 :영태산 135m

                                      *소재지 :전남함평

                                      *산행코스:815번도로-중봉-영태산-서해안고속도로

                                                     -함평나들목요금소-함평고 버스정류장

                                      *산행시간:917-1635(7시간18)

                                      *동행 :나홀로




 

     새벽에 산본 집을 나서 전남의 함평 땅을 지나는 영산기맥의 한 구간을 종주하고 집으로 돌아와 편히 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고속전철이 개통된 덕분입니다. 집 근처 광명역을 새벽 525분에 출발해 KTX로 광주송정역까지 간 다음, 이 역에서 무궁화호로 환승해 아침 728분에 함평역에 도착했으니 광명에서 함평까지 이동하는데 고작 2시간 4분밖에 안 걸렸습니다. 옛날 같으면 전날 미리 내려가 하룻밤을 묵었겠지만 이제는 당일 산행이 가능해져 시간과 비용을 모두 절감할 수 있게되어 고속전철 개통에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마운 고속전철도 그 개통이 마냥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고속전철 건설이 자연을 파괴한다며 환경단체들이 극렬히 반대해 대구 - 부산 구간의 개통은 예정보다 여러 해 늦어졌습니다. 모 단체에서는 천성산의 도롱뇽을 대신해 소송을 걸어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사람이 아닌 동물로부터도 변호업무를 수임 받고 있음이 온 세상에 알려져 뭇 사람들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하기는 국가의 대형 건설프로젝트가 전 국민의 성원 속에 추진된 일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경부고속도로도, 인천국제공항도 온갖 구실을 다 붙여 건설을 막는 단체나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역대정부가 그들의 무조건적 반대에 휘둘리지 않고 건설을 마무리해 이 땅에서 교통혁명을 일구었다는 것입니다.



 

   아침917815번 도로상의 산음리고개에서 영산기맥의 7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함평버스터미널에서 현경 가는 버스를 타고가다 산음리에서 하차해 산행채비를 했습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산음리고개로 이동해 오른 편에 축사가 자리한 넓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왼쪽에 공장건물이 붙어 있는 마늘밭을 지나 묘지 위 공장 위 배수로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배수로가 끝나는 곳에서 산불감시초소에 이르기까지 반시간 가량은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아 잡목을 헤쳐 가며 올라갔습니다. 폐쇄된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한 100m봉에 오르자 서쪽 아래로 작은 저수지, 나지막한 구릉과 마을이 잘 조망되었습니다. 참으로 한가로워 보이는 한 겨울 아침나절의 시골풍경에 매료되어 사진 몇 커트를 찍은 후 북쪽으로 이어지는 좋은 길의 능선을 따라 직진했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시야가 탁 트인 암봉에 올라서자 동쪽 아래로 작은 저수지와 정자가 가깝게 보였습니다.


 

 

   1052분 아스팔트 도로변의 함평옥산BBC 앞을 지났습니다. 천자봉님의 산행기에는 기맥 길이 왼쪽으로 갈라지는 것으로 적혀 있는데 갈림길을 언제 지나쳤는지 모르고 그대로 직진해 북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또 다시 잡목 숲길을 지나는 동안 청미래가시에 자켓이 찢어져나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수조가 세워진 넓은 묘역을 지나 왕복2차선의 지방도로로 내려서자 왼쪽으로 아주 가깝게 기맥이 지나는 나지막한 고개가 보여 그 고개를 향해 지방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BBC 돈사(?)입구를 지난 지 몇 분 안 되어 고갯마루에 조금 못 미친 삼거리에서 한우창고를 왼쪽에 끼고 오른 쪽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북진했습니다. 전신 주 여러 개를 지나 다다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넓은 길을 따라 밭이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가 왼쪽 밭 끝의 능선사거리로 이동했습니다. 능선사거리의 묘역에서 산행기에 나와 있는 하동정공김해김씨묘를 보고 제대로 기맥 길에 복귀했다 싶어 안도했습니다. 능선사거리에서 묘지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 잡목 숲과 조릿대 숲을 차례로 지나 또 다른 묘지에 다다랐습니다. 여기서부터 86m봉에 이르기까지 낙엽송림을 지나 오름 길이 한결 편했습니다. 86m봉에서 정서 쪽의 중봉을 확인한 후 오른 쪽으로 확 꺾어 내려선 곳은 앞서 지난 사거리였습니다. 사거리에서 서진해 중봉 바로 아래에 조성된 목축지 앞에 다다랐습니다


 

 

   1222분 해발136m의 중봉에 올랐습니다. 중봉 아래 조성된 목축지는 꽤 넓었고 한 겨울인데도 풀들이 파릇파릇해 이국적인 정취마저 느껴졌습니다. 이 목축지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묘지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부터 길이 보이지 않아 머리 위 중봉을 향해 똑바로 치고 올라갔습니다. 앞서 두 번의 종주 산행에서 없는 길을 새로 내며 걷는 일을 자주해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편이지만, 짜증이 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하게 옮기며 올라가 능선을 만난 후부터는 길이 선명하게 보여 이 길을 따라 마음 편히 올라갔습니다. 이내 중봉에 도착해 삼각점을 사진 찍은 후 몇 걸음 더 나아가 앞이 탁 트인 암릉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중봉으로 돌아가 올라온 길로 내려가다 몇 분 후  오른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섰습니다. 길은 희미했지만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인다 했는데 끝 무렵 4-5분간은 또다시 길을 내며 내려가야 했습니다. 산속에서 빠져나가 만난 과수원의 민가를 지나 지방도로로 다가가자 23번 도로가 오른쪽으로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지방도로 건너편에 지붕은 말짱했지만 버려진지 오래되어 완전히 폐옥이 된 일자의 반듯한 기와집이 보여 이를 사진 찍으면서 사람 또한 버려지면 저 집과 같이 페인이 되고 말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길 건너 기와집 왼쪽의 인동장씨세장산이라는 묘비가 세워진 밭가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 묘지로 들어섰습니다.



 

   1358분 해발135m의 영태산에 올랐습니다. 밭가 묘지를 지나 또다시 잡목 숲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는 잡목과 가시나무들을 헤치고 북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십 수 분이 지나 힘든 길은 끝이 났고 예비군 훈련장 위에 난 평탄한 능선 길이 이어져 모처럼 마음 편히 산길을 걸었습니다. 폐타이어를 쌓아 만든 진지(?) 두 곳을 지나 영태산 정상에 오르자 오른 쪽 멀리 산 중턱에 자리한 학교가 보였는데 이 학교가 함평고교인 것 같았습니다. 영태산에 서쪽으로 짧게 이어지는 능선 길은 암릉 길이어서 앞이 탁 트여 먼발치로 서해바다가 보였으나 감방산을 오를 때처럼 깔끔하지는 못했습니다. 암릉 길을 지나 서해안 고속도로의 동쪽 절개면 상단부에 이르러 스틱을 접고 가파른 철 계단 길을 난간을 잡고 걸어 내려갔습니다. 절개면의 중턱쯤에서 철 계단 길이 끝났고 오른쪽으로 넓은 시멘트 길이 이어져 이 길을 따라 고속도로가로 내려갔습니다.



 

   1525분 함평나들목 요금소 앞에서 갈 길을 찾느라 한참 동안 머물렀습니다. 오른 쪽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고속도로와 나란한 방향으로 내려가자 수로가 보였습니다. 고속도로와 나란한 방향으로 수로를 따라가 포장도로로 올라가자 정면으로 작은 봉우리가 보였고 왼쪽으로 고속도로를 밑으로 건너는 굴다리가 보였습니다. 기맥 길은 바로 앞 봉우리를 넘어 함평요금소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절개면의 사면을 치고 올라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 좀 돌더라도 편한 길로 가자는 생각으로 고속도로를 그 아래 굴다리로 건넜습니다. 수면의 반쯤이 얼어붙은 작은 저수지를 지나 다다른 삼거리에서 그대로 직진해 얼마 쯤 걸어가자 왼쪽으로 드넓은 황토밭이 보였고 정면 멀리로 꽤 커 보이는 목교저수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금 더 고속도로와 같은 북쪽으로 진행하다 오른 쪽의 굴다리를 통과해 장제저수지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산보 중인 동리 분을 만나 함평요금소의 위치를 확인한 후 장제저수지 서쪽의 방축 길을 따라 남진하다 왼쪽으로 꺾었습니다. 몇 분을 더 걸어 묘역 앞에 이르자 바로 앞에 함평요금소가 보였습니다. 일단 함평요금소 앞에까지 가서 선답자의 산행기를 꺼내 읽은 후 묘역으로 돌아가 산행기에 적힌 함평이공/함평노씨의 묘를 찾았으나 다른 성씨의 묘들만 보였을 뿐 이들 묘지는 끝내 찾지를 못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지도상으로는 기맥 길이 이 묘역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지는 것이 분명한데 함평이공/함평노씨의 묘가 보이지 않아 적지 아니 당황했습니다. 다시 함평요금소로 돌아가 지도와 산행기를 다시 보며 숙고한 끝에 비록 함평이공/함평노씨의 묘는 찾지 못했지만 제가 생각한 길이 틀림없다고 판단해 묘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1635분 함평고교버스정류장에서 종주산행을 마치고 함평읍내행 버스를 탔습니다. 묘역에서 북쪽으로 기맥 길을 이어가면서 묘지 몇 기를 더 지나 북쪽 끝머리의 마지막 봉분 앞에서 함평이공/함평노씨의 묘비를 확인했습니다.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잡목 숲길을 헤치고 십 수 분간 걸어 시멘트 도로에 다다라서 그대로 직진해 오른 쪽으로 꺾어 동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의 기맥길로 진행할 까 하다가 함평요금소 앞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까먹어 오른 쪽으로 난 지름길로 들어섰습니다. 시멘트로 포장된 지름길은 밭을 지나는 길로 북서쪽으로 이어져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 봉우리  앞 민가에서 기맥 길과 다시 만났습니다. 밭가의 파란 수조통 옆을 지나면서 1976년 고구마사건 때 여기 농민들이 이 넓은 밭에 몽땅 고구마를 심었다면 약속을 어기고 수매를 거부한 농협을 편드는 정부에 극렬히 저항할 만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가를 지나 이동통신탑(?)이 자리한 앞산으로 들어가 기맥 길을 이어갈까 하다가 워낙 산이 낮아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산길을 포기하고 이 산 왼쪽의 큰 길을 따라 4-5분을 더 걸어가 23번 신도로를 동서로 넘나드는 구 도로변에 다다랐습니다. 곧바로 버스가 도착해 정류장 이름도 확인하지 못한 채 승차해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종주의 들머리가 되는 이 정류장이 함평고교정류장임을 안 것은 버스 기사분에 정류장 이름을 확인하고 난 후로, 후다닥 버스를 잡아 탄 덕분에 173분 함평역을 지나는 용산행 itx열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고속전철 개통에 고마워하는 제 마음은 경제성장 없이 지속적으로 환경이 보전되리라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최근의 반세기 동안 우리 산이 얼마나 푸르러졌는가를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 동산은 많이 헐벗었습니다. 달리 땔감을 마련할 수 없는 빈곤한 농촌에서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불을 때지 않고는 한 겨울을 견뎌낼 수 없어 그러했습니다. 저도 1972년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매년 겨울방학이면 산에 올라가 땔 나무를 해 와야 했습니다. 산은 날로 황폐화 되가는데도 계속해 나무를 베어내야 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빈곤이었습니다. 요즘 돈을 주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라고 간청해도 그에 응할 사람이 없는 것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할 만큼 우리 경제가 성장한 덕분입니다. 북한의 산에서 울창한 숲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북한주민의 환경보전 의식이 특별히 빈약해서가 아니고 아직도 땔감을 나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빈곤 때문입니다.


 

   고속도로와 공항, 항구, 고속전철 등이 우리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이것들 없이는 물류가 원활하지 못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들이 제 때에 건설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경제발전은 없었을 것이고 그 결과로 환경을 파괴하며 살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아직도 환경지상론에 빠져 모든 개발을 악으로 보고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극렬히 반대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환경지상론자와 개발지상론자들은 모두다 독단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하지 않고 무조건 배제하려 해 답답합니다. 정작 이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할 인물들은 그들인데 말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