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기맥 종주기5
*기맥구간:초당대-병산-도산고개
*산행일자:2016. 12. 1일(목)
*산높이 :병산 131m
*소재지 :전남 무안
*산행코스:초당대-70m봉-병산-매곡버스정류장
-도산고개-발산버스정류장
*산행시간:10시3분-15시26분(7시간23분)
*동행 :나홀로
잡목 숲을 헤쳐 나아가기가 힘들어 한동안 쉬었던 영산기맥 종주산행을 여덟 달만에 재개했습니다. 먼저 다녀온 분들이 입을 모아 전하는 말이 영산기맥 종주는 잎이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겨울철에 종주해야 고생을 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이 아닌 다른 철에 마루금을 이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은 대부분의 봉우리들이 해발 2백미터를 넘지 않는 구릉이어서 훤칠한 교목 대신에 키가 작은 잡목의 가지들이 서로 엉켜 길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겨울철이라고 해서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만만한 것도 아닙니다. 잡목 숲 사이사이로 청미래나 가시나무들이 포진해 있어 가시에 찔려가며 잡목 숲을 뚫고 가야합니다. 그나마 낫다 싶은 것은 잎이 다 떨어진 덕분에 시야가 웬만큼 트여 갈 길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이번 종주 산행에서 저는 애써 마루금을 따라가는 것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기에 너무 고생스러울 것 같은 능선 길을 버리고 바로 아래 마을 길로 에돈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꾀가 나서였습니다. 마구 가시에 찔려가며 산길답지도 않은 산길을 반드시 이어갈 필요가 있느냐고 자문하며 적당히 그런 길을 피해간 것은 1대간9정맥 종주 때는 감히 생각지 못했습니다. 둘째, 해떨어지기 전에 예정된 구간을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경기도 집에서 새벽같이 이 먼 곳으로 달려와 목표한 바를 다하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들인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라남도 무안의 넓은 들판 길을 여유롭게 걷고 싶었습니다. 이 때가 아니면 한 겨울에도 파릇파릇하게 생명을 지켜내는 양파와 마늘들의 강인한 모습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랴 싶어서였습니다.
오전 10시3분 초당대를 출발했습니다. 목포역에서 무안가는 버스를 타고가 초당대 정문 앞에서 내린 10시쯤에도 자욱이 내려앉았던 안개가 완전히 가시 않아 습기 찬 아침 공기가 냉랭했습니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안내받은 대로 1번 국도를 건넌 후 목포 쪽으로 5-6분가량 걸어 S-오일주유소 건너편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고개 같지 않은 고개에 이르러 사방을 둘러보아도 먼저 분의 산행기에 나오는 혜원유치원이 보이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마침 이 동네 아주머니에게서 유치원이 요양원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이 고개를 5구간 종주산행의 기점으로 삼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포장도로로 들어섰습니다. 몇 분 걷지 않아 다다른 호남전기 담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논 뜰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농로를 걸으면서 이번 종주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초장부터 들머리확인에 십 수분을 까먹어서였습니다.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서 이번 구간을 알바 없이 종주하리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높은 산들은 설사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이지 않아도 능선이 분명하고 넝쿨 숲길이 아니어서 정신만 바짝 차리고 간다면 제 길을 이어가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해발고도가 100m도 안 되는 낮은 구릉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은 것이, 잡목들과 가시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어 뚫고나아가기가 힘든데다 산 마루가 밋밋해 어느 길이 능선 길인지 식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초장부터 알바를 해 1번 국도에서 SK이동통신기지국이 들어선 70m봉에 이르는데 무려 1시간40분이 걸려 정상적으로 산행한 분들보다 1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이번 알바는 해발 고도가 50-60m 정도밖에 안 되는 산으로 올라가 잡목 숲을 뚫고갈 것이 아니라 좀 돌아가더라도 평지 길을 걷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자고 잔꾀를 부리다 저지른 것이어서 자괴감이 컸습니다.
이번 알바의 경위는 이렇습니다. 직선의 농로가 끝나는 곳에서 밭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 왼쪽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탔으면 될 것을 조금 편하자고 오른 쪽으로 이 농로를 따라 간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10분을 채 못 걸어 산줄기가 끝난 지점에 다다랐고 여기서부터 방향을 왼쪽으로 바꾸어 아스팔트포장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이제 이동통신기지탑만 보이면 가까이 다가간 후 왼쪽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자는 생각에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서도 통신탑이 눈에 띄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왼쪽으로 청계, 오른쪽으로 현경,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면 신학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해 직선농로가 끝나는 지점까지 되돌아갈 생각으로 이제껏 걸어온 왕복2차선의 포장도로를 따라 되걸었습니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다가 시멘트 농로로 들어서기 직전에 오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섰습니다. 묘지를 지나서 올라선 능선은 이 산줄기 동쪽 끝점으로 여기서부터 잡목 숲을 헤쳐 나가며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20분 가까이 가시를 찔려가며 잡목 숲을 걷고 나자 정면으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통신탑이 보여 뛸 듯이 기뻤습니다. 구릉이 낮아 능선의 상당부분이 농지로 전환되었고 그 전환공사가 채 마무리하지 못한 곳도 보였습니다. 35m봉으로 보이는 묘지 봉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 능선을 따라 낸 농로를 따라 서진했습니다.
12시1분 SK이동기지국이 자리한 70m봉에 도착했습니다. 묘지 봉에서 내려선 농로를 따라 능선 길을 걸으며 서진했습니다. 밭이 조성된 조금은 이색적인 구릉 길이 어디서 본 것 같은 데자뷰가 느껴진 것은 20여 년 전 모회사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할 때 시장조사 목적으로 대리점 차를 타고 무안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닌 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밭을 가로 지르며 도랑을 만나 지맥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 도랑을 건너 다시 밭을 가로 질러 차도에 닿았고 조금 더 가 통신탑 앞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더 걸어 SK기지국을 확인한 후 조금 떨어져 있는 삼각점과 묘지들을 사진 찍은 후 다시 기지국으로 돌아와 북쪽으로 난 넓은 임도를 따라 진행했습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보만식계님이 달아놓은 표지기가 보여 반가운 마음이 일었고, 비로소 그동안의 긴장이 사르르 풀렸습니다. 1번 국도와 무안으로 가는 지방도로(?)가 만나는 곳에서 굴다리로 1번 국도를 건넌 후 잠시 멈춰 바로 앞의 산줄기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잡목 숲의 산속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오른 쪽으로 꺾어지는 소로를 따라 산줄기와 나란한 방향으로 북진했습니다.
13시2분 해발131m의 병산에 올라섰습니다. 소로를 따라 북진하다가 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노인 한 분을 만나 병산 가는 길을 안내받은 덕분에 쉽사리 왼 쪽 지맥 길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밭두둑에 손상이 갈까 조심해서 걸어 다다른 뼈바우재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해발 100m대의 능선에 나 있는 임도를 걸으면서 이 길이 알바로 겪은 몸과 마음고생을 한 방에 날려준다 싶어 고진감래가 먼 곳에 있는 것만도 아니다 했습니다. 편한 길을 얼마간 걸어 만난 안내판에 적혀 있는 대로 임도를 버리고 왼쪽 산길로 올라가 별반 크지 않은 바위가 들어앉은 병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점심을 들면서 모처럼 10여분을 편히 쉬었습니다. 동쪽 넓은 논 뜰 뒤로 나지막한 산줄기가 잘 보였는데, 서쪽으로 멀지 않은 톱머리해수욕장과 무안국제공항은 안개 때문인지 흐릿하게 보여 카메라에 옮겨 실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산행 중에 걸어 오른 가장 높은 봉우리가 여기 병산으로, 그 높이가 131m 밖에 안 되는 구릉이어서 하산 길도 짧아 이내 임도로 내려설 수 있었습니다.
14시6분 매곡버스정류장을 지났습니다. 병산에서 내려선 임도는 “축분공장960m/뼈바우재690m/정상120m”의 안내판이 세워진 곳으로 지맥 길은 임도 따라 계속 북쪽으로 이어졌습니다. 대설을 엿새 앞둔 초겨울에 나무줄기를 휘감아 올라가는 넝쿨 잎이 아직도 새파래 생명력이 온 몸에 감지되는 듯 했습니다. 왼쪽으로 병산제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임도를 따라 북진하면서 내내 마음에 걸린 것은 어느 한 분이 그의 산행기에 중앙분리대가 높아 차량의 통행이 적은 때를 기다려 중앙분리대 아랫부분으로 기어 건넜다고 적어놓은 부분이었습니다. 60번 국도가 가까워졌다 싶은 곳에서 오른 쪽으로 환히 트인 구릉이 보여 올라가보았더니 바로 아래로 60번 국도를 밑으로 지나는 굴다리가 보여 반가웠습니다. 오른 쪽 아래 축분공장(?)을 지나고 굴다리를 건너 다다른 상봉마을 입구에서 무안-평산을 잇는 지방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여러 기의 고인돌을 잘 모셔 놓은 성동리고인돌공원을 지나 계속 걸어 다다른 곳이 도로변의 매곡버스정류장이었습니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바로 앞 야산의 산줄기가 기맥 길인데 고생길이다 싶어 들어서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대신 정류장 몇 걸음 앞에서 오른 쪽으로 갈라지는 넓은 포장도로를 따라 기맥의 산줄기와 나란한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15시15분 도산고개에서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는 것으로 이번 5구간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매곡정류장에서 오른 쪽으로 갈라진 포장도로를 따라 십 수분을 넘게 걷다가 왼쪽 능선으로 올라갔습니다. 동쪽으로 보평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능선에서 밭을 지나 쌍봉의 무안박씨 묘지에 다다라 갈 길을 살펴본 즉, 잡목 때문에 진행이 어렵겠다 싶어 다시 포장도로로 되돌아갔습니다. 양림마을을 지나 무안-현경을 잇는 20번도로 삼거리에서 큰 개 한 마리가 내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멀리서 달려오는 꼴이 마치 저를 향해 돌진해온다 싶어 두려웠는데 저를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로 내달려갔습니다. 무안공항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밑으로 지나 만난 오토바이를 탄 남자 분으로부터 앞에 보이는 도산삼거리의 위치를 확인한 후 그리로 갔습니다. 24번 도로가 지나는 도산삼거리에서 왼쪽으로 100여m 올라가 이번 종주산행의 끝점인 도산고개에 다다랐습니다.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한 후 다시 도산삼거리로 내려가 바로 붙어 있는 도산저수지를 둘러본 후 앞서 지나쳤던 발산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15시26분 발산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도산삼거리에서 10분 거리도 안 되는 발산버스정류장에 도착해 15시20분경 도산삼거리를 지난 무안-현경간의 농촌버스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무안읍으로 나갔습니다. 무안에서 광주 가는 버스를 타고가다 함평읍에서 하차해 군내버스로 함평역으로 이동했습니다. 17시14분에 함평역을 지나는 용산행 itx 새마을호 열차에 오르는 것으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꽤 넓은 마늘 밭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면서 20여년이 지난 일을 떠올렸습니다. 모회사에서 마케팅 부장으로 일할 때인데, 보름 가까이 대리점 차를 동승하고 전라남도 일대를 시장조사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대리점이 거래하는 소매점을 방문하느라 무안군과 함평군 등 시골의 곳곳을 차를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해제반도의 마늘 밭과 양파 밭입니다. 드넓은 밭 사이로 난 구릉 길을 차로 지나면서 언제고 다시와 이 길을 걸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방이 탁 트여 안개만 짙게 깔렸다면 영화 “테스”의 한 장면 같겠다 싶을 정도로 이국적인 풍취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해제반도의 허름한 한 음식점에서 양파국과 양파김치를 반찬으로 점심을 들면서 무안이 양파와 마늘이 주산지임을 실감했었습니다.
이번에 사진 찍은 무안의 마늘 밭은 해제반도만큼 넓지 않았고, 낮은 구릉에 앞을 가려 시원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해제반도의 마늘 밭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 것은 시골의 한가로움입니다. 흙길이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의 변화만큼 괄목할 변화는 깔끔하게 들어선 시골집들입니다. 마을 한 가운데 그럴 듯한 정자가 세워진 것도 한 변화로, 이런 변화는 그 후 20여 년 동안 부가 꾸준히 늘어난 덕분일 것입니다. 겨울철의 시골 마을이 겉보기에는 마냥 조용해보이지만 안으로는 손놀림들이 분주할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겨울철에는 월동준비를 마치면 여유시간이 넉넉해 더러는 노름에 빠져 분란을 일으킨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요즘은 머리를 짜내 농사를 지어야 제 값을 받고 출하할 수 있어 그런 사람이 더 이상 발붙일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래도 농촌의 한가로움은 그대로이다 싶었습니다. 일 년 내내 직장을 다녀야 하는 도시 사람들만큼은 바쁜 것은 아니기에 겨울철이 여유롭다 함은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덕분에 저도 이번에는 농사철에 시골 길을 걸을 때의 죄송함을 의식하지 않고 모처럼 여유롭게 걸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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