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영산기맥종주기

영산기맥 종주기3(선경폐차장-국사봉-승달산갈림길)

시인마뇽 2016. 3. 30. 00:37

                                                         영산기맥 종주기3


 

                                             *기맥구간:선경폐차장-국사봉-승달산갈림길

                                             *산행일자:2016. 3. 27

                                             *소재지 :전남무안

                                             *산높이 :대봉산257m, 국사봉283m, 승달산333m

                                             *산행코스:죽림버스정류장-선경폐차장-대봉산-국사봉-장곡마을

                                                                 -남청계초교-감돈재-승달산-승달산갈림길-목포대학교

                                             *산행시간:642-1643(10시간1)

                                             *동행        :나홀로



   알바 덕분에 오랜 만에 시골 길을 걸었습니다. 차로 달릴 때는 대로가 좋겠지만 한 번 걸어볼 뜻이라면 차들이 별반 다니지 않는 소로가 제 격으로, 그런 길을 걸으려면 한적한 시골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드물게나마 제가 시골 길을 걸은 것은 전적으로 산줄기를 따라 걷는 종주산행 덕분입니다. 종주산행이 끝나는 고갯마루로 버스가 다니지 않을 경우 그 아래 버스정류장이 있는 마을로 내려가야 해, 어쩔 수 없이 시골 길을 걸었습니다. 이런 경우 집 떠날 때부터 예정된 것이어서 걷는 일에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생각지 못한 알바로 시골 길을 걸은 것이어서 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 버스 정류장에 닿을 때까지는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알바로 걸은 시골 길이 현지 분들에 묻고 지도를 보아가며 찾아간 것이기에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번 장곡길은 영산기맥 종주 중에 처음 걸어본 시골 길로 전남무안군삼향면지산리를 지나는 시골길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변의 선경폐차장을 출발해 국사봉까지 잘 갔는데 감돈재로 가는 길을 잘 못 들었고,  기맥 길을 벗어나 알바임이 분명하다고  확인한 것은 장곡마을로 내려선 후입니다. 알바를 확인하고 국사봉까지 돌아가 제 길을 찾아볼 까 하다가, 이 때가 아니면 언제 전라남도의 시골 길을 걸어보랴 싶어 마을 분들에 길을 물어물어 기맥길과 만나는 감돈재까지 걸어갔습니다. 장곡마을에서 남청계초교까지 1시간가량 걸은 길은 반은 시멘트길이고 반은 아스팔트길로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고 마을도 뜸하게 떨어져 있어 시골 길다웠습니다. 남은 길은 남청계초교에서 감돈재까지로 815번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 40여분 동안 수많은 차량들이 지나가 소음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이번에 걸은 시골 길은 읍내 중학교를 다니느라 걸었던 1960년대의 고향 길과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도로포장이 잘 되어 차들이 지나가도 먼지가 일지 않아 좋았습니다. 길가에 방치된 폐옥 한 채를 빼고는 거의 모든 집들이 깔끔해 보이는 양옥이라는 것도 옛날과 달랐습니다. 시골 길을 걸으며 좀처럼 사람들을 만나보기 어려운 것은 시골에 사는 젊은이들이 꽤 오랜 동안 지속적으로 도시로 빠져나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나가는 외지인에 보이는 시골 분들의 관심이 크게 줄어들어 배낭을 메고 마을 앞을 지나가는데 훨씬 덜 신경이 쓰였습니다. 시골에 사는 주민들은 줄었는데 오히려 길이 좋아진 것은 지난 60년 간 나라살림이 엄청 부유해진 덕분일 것입니다.



 

   642분 죽림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새벽 4시 조금 넘어 목포역에서 하차해 지난 가을 들렀던 목욕탕을 찾아가려했으나 길이 생각나지 않아 포기하고 인근 김밥집에서 아침을 든 후 6시가 조금 못되어 108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반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죽림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산행채비를 마친 후 지난 번에 종주를 마친 서해안 고속도로변 선경폐차장 쪽으로 향했습니다. 서리가 내려 철을 모르고 얼굴을 내민 벚꽃이 혹시나 동상이 걸리지 않았는지 안쓰러웠습니다. 물안개가 뽀얗게 일고 청둥오리(?)가 천천히 물을 가르며 유영하는 죽림호를 지나노라니 진작 시조 짓는 법을 배웠더라면 이 고즈넉한 아침 호반에서 강호연가 한 수를 읊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짙었습니다.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계속 진행하다가 백록식품 앞에서 오른 쪽 지하터널로 서해안 고속도로를 건넌 후 왼쪽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 선경폐차장 맞은편의 공원묘지에 이르렀습니다.



 

   712분 서해안고속도로변 선경폐차장 건너편 공원묘지에서 3구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공원묘지로 들어가 오른 쪽 큰 길을 따라 묘지를 통과해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길이 흐릿하고 가팔라 능선에 닿기까지 십 수분간의 산 오름이 힘들었습니다, 능선 삼거리에 이르러 왼쪽 146m봉의 정상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기맥 길을 따라 밟아 북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50m가량 고도를 낮추어 내려선 안부에서 나지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 오른 쪽 아래 허름한 창고건물(?)이 보이는 안부를 조금 지나 왼쪽 길로 무명봉을 에돌았습니다. 평탄한 능선 길을 걸어 다다른 희미한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진행하면서 그새 물이 올라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가시나무 청미래를 몇 곳에서 만났습니다. 찔레나무와 청미래 등으로 무장한 가시덤불 길이 많아 한 여름이면 뚫고 나아가기가 엄청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민적거리다가 한 겨울을 그냥 보내 앞으로의 진행이 걱정입니다. 희미한 길이 끝나고 넓은 길이 시작된 능선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은 846분으로,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습니다.



 

   944분 해발283m의 국사봉에 올랐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 안부를 지났습니다. 안부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기맥 길은 비교적 완만해 좌우 멀리로 조망하며 걸을 수 있었습니다. 왼쪽 가까이로 사수원지가 보였고 오른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번 산행의 출발지인 죽림저수지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길이 좌우로 갈린 대봉산 턱 밑에서 왼쪽 길로 진행하다가 만난 삼거리에서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치받이 산길로 올라갔습니다. 10분 가까이 된비알 길을 올라 다다른 해발 251m의 대봉산 정상에서 덩치가 꽤 큰 백구와 주인아주머니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순득이 백구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대봉산에서 북서쪽으로 0.9Km 떨어진 국사봉으로 진행하면서 백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힘에 부쳐 백구에 선두를 양보했습니다. 대봉산 출발 20분 후 올라선 봉우리에 삼각점이 박혀 있어 이 봉우리가 해발283m의 국사봉임을 알았습니다. 조금 더 앞으로 가 만난 산불감시기 앞 삼거리에서 유달학생야영장 쪽으로 방향을 잡고 왼쪽 길로 진행해 서진했습니다.



 

   1220분 감돈재에 도착해 약 2시간에 걸친 긴 알바를 끝냈습니다. 산불감시기 앞에서 왼쪽으로 진행한지 18분이 지나 다다른 봉우리삼거리에서 왼쪽 유달학생야영장으로 가는 좋은 길을 버리고 오른 쪽 감돈리 길로 들어섰습니다. 아주 희미한 길을 따라 걸어 이른 삼거리에서 오른 쪽 비알 길로 내려섰습니다. 곳곳에 100ml(?) 짜리 페트 병이 나무 가지에 꽂혀 있어 사람이 다니는 길은 분명한데 기맥 길을 알리는 표지기가 통 보이지 않아 불안했습니다. 진행방향은 북쪽으로 지도의 기맥 길과 방향이 같아 계속 내려가다가 오른 쪽 바로 아래로 민가가 보여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알았습니다. 유달학생야영장으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까지 되올라가 기맥 길을 다시 찾아볼까 하다가 된비알 길을 다시 오르는 것이 정말 내키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시골 길 좀 걸어볼 겸해서 815번 도로가 지나는 감돈재로 직행하기로 마음먹고 민가로 내려갔는데 이 집이 장곡리 마을의 산 아래 첫 번째 집이었습니다. 할머니에 버스 정류장 가는 길을 물어 시멘트 길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스레이트 지붕의 폐옥 앞에서 왼쪽 차도를 따라 가다가 그 길이 공원묘지에서 끝나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폐옥삼거리로 되돌아가 원래 길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마을 주민들에 몇 번을 더 물어 마을회관 오른 쪽 위 고개를 넘고 청계교를 건너 815번 도로에 다다른 시각이 1115분이었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 오른 쪽으로 진행하면서 남청계초등학교와 목포요양원을 지나 국사봉 출발 2시간 반 만에 감돈재에 도착해 기맥 길로 복귀했습니다. 동쪽 바로 아래 감돈저수지를 사진 찍고 왼쪽 남양 홍씨 묘로 올라가 점심을 들면서 146m봉 출발 4시간 반 만에 처음으로 배낭을 내려놓고 푹 쉬었습니다

 

 

 

   135분 감돈재를 출발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묘지 위 능선으로 올라가고자 했으나 그새 기가 오른 청미래와 다른 나무들이 촘촘하게 길을 막아 도저히 뚫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30-40m 올라갔다가 포기하고 내려와 오른 쪽 바로 옆 남양홍씨 묘로 옮겨 능선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내 알바를 피했습니다. 126.8m봉을 넘어 임도로 내려섰다가 북쪽 헬기장 쪽으로 오르다 저와는 반대방향으로 영산기맥을 종주하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분은 제게 하루재에서 목포대로 내려가야 교통이 편하다며 동쪽의 법천사 쪽으로 내려가겠다는 저를 말렸습니다. 능선 길이 잘 나있고 길이 갈리는 곳마다 표지목을 세워 헬기장 가는 길을 잘 안내해주어 무안군 당국이 고마웠습니다. 능선에 자리한 묘지가 유난히 자주 보인 것은 산이 높지 않아서인데 이 능선 마지막 묘지가 소나무 한 그루와 함께 자리한 모습이 정겨워 보이는 것이 뜬금없다 싶으면서도 그냥 보아 넘기기가 아까워 그 정경을 카메라에 실어왔습니다


 

 

   1513분 해발333m의 승달산에 올라섰습니다. 소나무와 같이 있는 묘지에서 안부로 내려가는 나무계단 길이 경사가 조금 급했지만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표고차가 30-40m 정도 나는 나지막한 봉우리를 여러 개 넘었어도 능선의 고도가 한동안 200m대에 머무른 것은 오른 만큼 거의 다시 내려가서인데 그래도 힘이 덜 든 것은 표고차가 30-40m에 불과해서였습니다. 헬기장 1.6km 지점을 지나 조금 씩 고도가 높아진다 했는데 0.7km 지점을 지나고 나서는 오름 길이 반복되어 해발고도가 300m대를 넘었습니다. 긴 시간 알바로 몸과 마음이 피곤해 1시간만 걷고 쉬려다가 고도차가 큰 봉우리가 없어 계속 진행했습니다. 헬기장0.2Km 지점을 지나고 마지막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선 헬기장이 이번 산행 최고봉인 해발333m의 승달산이라는 것은 안 것은 지도를 보고나서였습니다

 

 

 

   1548분 승달산 갈림길에서 3구간 종주를 마치고 목포대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삼각점이 박힌 승달산 헬기장에서 간이의자를 꺼내 앉아 쉬면서 지도를 보니 하루재는 왼쪽으로 이어졌는데 왠지 모르게 길이 잘 나있는 직진 길 같았습니다. 마침 승달산을 올라온 한 분에 길을 물어 왼쪽 길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자 이번 알바가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어 지도에 잘 나와 있는 길인데도 물어 확인했다 싶었습니다. 승달산 서쪽의 노승봉을 왼쪽으로 에돈 지 얼마 안 되어 다다른 승달산갈림길에서 왼쪽 아래로 2.2Km 거리의 목포대 가는 길이 갈렸습니다. 예정대로 0.4Km를 더 내려가 하루재에서 법천사로 내려가면 택시비가 만이천원 추가로 든다는 것을 전화로 확인했습니다. 목포대로 내려가도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고 목포버스터미널을 1810분에 출발하는 안산행 버스를 충분히 탈 수 있을 것 같아 목포대 가는 길로 하산했습니다

 

 

 

   1643분 목포대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승달산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하산하는 중 엄청 빨리 걷는 젊은 한 분을 만났는데 30분이면 목포대에 닿을 수 있다고 해 그 배인 한 시간을 잡고 하산을 계속했습니다. 하루재1.1Km/목포대1.5Km/목포대기숙사0.6Km지점의 삼거리에서 오른 쪽 아래 목포대기숙사 쪽으로 하산했습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선 목포대기숙사에서 정문에 이르는 10여분 거리의 길이 길게 느껴진 것은 작년 9월 한강기맥을 종주를 마치고 나서 10시간을 걸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각 과와 동아리에서 졸업생들의 취업실적을 홍보하는 플래카드가 꽤 많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 가가 짐작됐습니다. 정문 건너 버스 정류장에서 700번을 타고 목포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는데 반시간 가량 걸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안산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조선조 영조 때의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 선생은 그의 저서 도로고에서 길은 걷는 사람들이 임자라 했습니다. 땅 주인이 따로 있어도 길은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이 임자라 한 것은 길의 공공성을 잘 말해 준 것입니다. 길에 대한 인식이 그러했기에 여암선생은 한성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주요 간선도로에 처음으로 1번에서 6번까지 고유번호를 매겼습니다. 땅 주인이 누구든 통행을 못하도록 길을 막는 것을 나라에서 금한 것도 길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지났고 여러 길이 이런 저런 문화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것입니다.


 

   길은 땅에만 낸 것이 아닙니다. 가슴 속에 낸 마음의 행로도 있습니다. 차들이 쌩쌩 지나는 차도는 생각 없이 오로지 걷기만 하지만, 한적한 시골길은 더러 딴 생각을 하면서 걷기도 합니다. 발은 땅위의 길을 걸으면서 머리는 마음의 행로를 따라 갈 수 있는 길이 바로 시골 길입니다. 이번 길이 그러해, 길을 걷는 동안 몇 번이고 정호승님의 시을 읊조릴 수 있었습니다

 

 

                                                              길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