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기맥 종주기2
*기맥구간:목포경찰서 사거리-대박산-선경폐차장
*종주일자:2016. 3. 20일(일)
*소재지 :잔님목포/무안
*산높이 :양을산156m, 대박산155m, 지적산187m
*산행코스:목포경찰서 앞사거리-양을산-대박산-지적산
-남해환경-선경폐차장(서해안고속도로)
*산행시간:9시44분-15시42분(5시간58분)
*동행 :나홀로
벼르고 별러온 영산기맥의 두 번째 구간 종주산행을 잘 끝내고 집에 돌아와 종주기를 쓰면서 결정적인 알바없이 산행을 마친 제 스스로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행할 때 참고하고자 복사해간 따라가기님과 천자봉님의 종주기 모두에 알바를 한 것으로 나와 있어 산행 내내 긴장을 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비싼 요금을 마다 않고 목포까지 KTX를 타고 내려간 것도 실은 알바에 대비해 산행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목적에서였습니다. 다행히도 알바를 크게 하지 않아 예상보다 두 시간 단축된 6시간 만에 이번 산행을 전부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조심을 했지만 작은 알바는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알바를 작은 알바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제대로 지도를 읽어 제 길을 찾아낸 덕분입니다. 알바 중간에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이 나 있어 그 길로 따라가려다 지도를 다시 본 것이 결정적 알바를 막아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에 나와 있는 기맥 길과 방향이 일치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 보이는 저수지의 수문보다 아래로 산줄기가 나 있는 것 같아 그 저수지에 물을 대는 기맥의 산줄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지도의 도움으로 제 길을 찾아내 예정했던 지점까지 무난하게 이어간 데는 그동안 줄곧 독도를 해온 덕분입니다.
내년이면 70살이 되는 나이 덕분에 저는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경험을 잘 헤아리면 지혜가 될 수 있기에 웬만하면 경험을 기록하고 응축해 지혜로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지혜로 승화되는 경험은 아주 적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 오랜 경험을 강요하다가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반발을 불러일으키기가 십상입니다. 설사 유익한 경험이라 해도 자기 자식에게조차 전수하기를 꺼리게 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나이든 분들에 경험의 전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받아들여 생활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요즘 이분들에 새롭게 주어진 과제는 배우는데 시간을 보다 많이 할당하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낳고 자라는 손주들과 전화통화를 하려고 나이 들어 끙끙거리며 젊은이들 틈바구니에서 해당 외국어를 배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나이 70이 넘어 돌아가시면 주위에서 호상이라 했는데 요즘은 한 20년 더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뭔가를 새롭게 배우고 익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 들어 제가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그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몇 십 년 더 살아가는 것이 꼭 즐거울 것 같지만은 아닐 것 같아서였습니다.
이번 산행에 제가 특별히 의미를 두는 것은 제가 쌓아온 경험이 지혜일 수 있음을 보여주어서입니다. 산봉우리가 반쯤 깎여 거의 허허벌판이 된 데서 지도를 보고 남은 산줄기 중에서 제 길을 찾아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도와 주변의 지세를 보고 제 길을 찾아내는 데는 상당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라면 젊은이들보다 나이든 분들이 경쟁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워낙 세상이 빨리 바뀌어 그들의 지혜가 별반 도움이 안 되는 요즈음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제 길을 찾아내야하는 당면과제를 축적된 경험으로 지혜롭게 풀어낸 제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는 것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9시44분 목포 경찰서 사거리에서 두 번째 구간종주를 시작했습니다. 목포역에서 작년 1월 첫 구간 종주를 마친 목포경찰서 앞 사거리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사거리에서 내려 차도를 따라 서쪽으로 오르다 이내 오른 쪽으로 꺾어 양을산으로 향했습니다. 해발 156m의 양을산 정상에 들어선 KT의 통신기지를 한 바퀴 에도는 길이 나있고 망루 역할을 하는 정자가 세워져 목포시내를 두루두루 조망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산행시작 30분 만에 올라선 정상에서 올라온 차도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 표지목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여기 저기 쉼터가 잘 조성된 기맥 길을 이어가면서 목포시가 고마운 것은 표지목과 표지기로 영산기맥 길을 잘 안내해주어서입니다. 정상에서 북진하다 왼쪽 아래에 레미콘공장이 자리한 절개면 윗길을 지나 목포체육관 위 차도로 내려선 시각이 11시8분입니다.
11시32분 해발155m의 대박산에 올랐습니다. 목포체육관 위 차도를 건너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만난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 쪽 위로 진행하다가 청소집하장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올들어 처음으로 샛노랗게 활짝 핀 개나리꽃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대박산 정상을 왼쪽으로 돌아 출입금지 망이 쳐진 정상의 송전탑을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은 후 왼쪽으로 내려서자 이내 잘 다듬어진 대나무 숲속 길이 이어졌습니다. 서늘한 대나무 숲속 길을 십 수분 걸어 묘지를 지났고 수 분후 삼향동주민센터에서 아래쪽 육교로 꽤 넓은 차도를 건넜는데 이 도로가 바로 신의주에서 서울을 거쳐 목포로 이어지는 1번 국도입니다.
우리나라 도로에 번호를 매긴 것은 영조 때부터입니다. 당대의 실학자인 신경준은 영조의 명을 받고 <<동국문헌비고>>에 실릴 <여지고>를 책임지고 편찬했습니다. 조선의 지리를 다룬 <여지고>는 <<동국문헌비고>> 100권의 13고 중 하나로 17권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여지고>가 관찬이라면 <<도로고>>는 신경준의 사찬입니다. <<도로고>>가 중요한 것은 조선의 도로를 체계화시키고 주요 6개 도로에 고유번호를 부여해서 입니다. 모두 경성에서 출발하는 6개 도로의 제 1로는 경성에서 서북쪽으로 의주에 이르는 경성서북저의주로(京城西北抵義州路第一)였습니다. 경성에서 서남쪽으로 제주에 이르는 제5로(京城西南抵濟州路第五)는 목포가 아닌 해남의 관두량에서 남해를 건너 제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의 1번 국도는 일제가 정비한 신작로를 따른 것이라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목포는 전국 여섯 번째로 큰 도시였다 합니다. 당시 6대 도시는 서울, 부산, 대구, 평양, 인천과 목포였습니다. 6대 도시 중 목포, 서울과 평양의 3개 도시를 이어주는 도로가 바로 1번 국도이고 1번 국도의 출발점이 여기 목포입니다.
13시24분 해발187m의 지적산에 올라섰습니다. 육교를 건너 왼쪽 절개면 위로 난 편백나무(?) 숲길로 올라가 능선에 이른 후 오른쪽으로 진행했습니다. 능선 길에서 봄나들이를 나선 덩치 큰 백구를 만나고도 겁을 먹지 않은 것은 첫 눈에 순득이임을 알아보아서인데 한참 뒤 주인이 혼자 나타나 녀석의 행방을 물을 정도로 풀어놓 은 것은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 가능했을 것입니다. 나지막한 무명봉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15분가량 푹 쉬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진행해 산불감시초소에 이른 후 북쪽 아래 안부로 내려갔습니다. 안부에서 올라선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다 조금 경사진 비알 길을 올랐습니다. 사방이 탁 트인 지적산의 정상은 오른 쪽 아래가 천애절벽인 암봉으로 목포시내를 조망하기에는 유달산 다음으로 좋은 명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적산 장상에서 남해환경으로 내려가는 약 4백m의 길은 왼쪽 아래가 거의 절벽에 가까워 경사면에 나무들이 없었다면 꽤나 신경이 쓰였을 것입니다. 정상에서 내려선 남해환경 앞까지는 목포시가 해 놓은 표지목과 표지기 덕분에 길 찾기가 한결 수월했고, 덕분에 알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15시2분 서해안 고속도로 앞 선경폐차장에서 두 번째 구간 종주를 마무리하고 동쪽 아래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까지는 목포시가 길 안내를 잘 해주어 무탈하게 잘 왔지만 여기서부터 행정구역이 무안군으로 바뀌는지 더 이상 안내를 받을 수 없어 신경이 쓰였습니다. 백두대간처럼 산들이 높으면 능선 길이 분명한데 여기처럼 1-2백m대의 낮은 산이라면 개발에 밀려 능선의 상당부분이 깎여나가기 십상이어서 알바를 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해 환경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어 내려선 후 반은 잘려나간 앞 봉우리로 이어지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남쪽 아래로 공단이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도 될 만한 엄청 넓은 공터쪽으로 내려가 반신불수가 된 봉우리를 오른 쪽으로 우회했습니다. 남쪽 면을 다 돌고나서도 길을 찾지 못한 것은 동쪽 면도 똑 같이 잘려나가서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여기에 넓은 공터가 두 곳이나 생긴 것은 전남도청이 들어선 남악의 도심을 조성하는데 소요되는 자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합니다. 얼마 전 사람다닌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는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보고 지도를 보았는데 기맥 길은 북동쪽으로 아니다 싶었습니다. 북쪽으로 조금 더 진행해 거의 수직으로 잘려나간 동쪽 사면아래 또 다른 넓은 공터를 지나자 북쪽으로 서해안 고속도로가 보였습니다. 곧이어 북동쪽으로 폐차장이 보여 이제 됐다고 속으로 환호하며 늪을 지나 서해안고속도로 옆 좁은 도로로 접근한 후 오른 쪽으로 조금 이동해 서해안고속도로변 고갯마루에 자리한 선경폐차장 앞에 이르렀습니다.
15시42분 죽림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선경폐차장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죽림저수지와 덕치마을을 지났습니다. 아직은 농촌이 한가로워 배낭을 메고 지나기가 덜 미안했습니다. 물이 맑아 보이는 죽림저수지는 그 규모가 작지 않아 수면 위를 낮게 떠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한 번에 날아 가는 두루미(?)가 조금은 힘이 부쳐보였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20분가량 기다렸다가 108번 버스에 올라 목포 역에서 하차했습니다. 예매한 19시35분발 영등포행 기차표를 반환하고 버스터미널로 옮겨 18시10분 안산행 버스를 타기를 참 잘했다 싶은 것은 그 덕분에 산본 집에 2시간가량 일찍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1년이 더 지나 재개한 영산기맥 종주를 이번 여름 안에 마쳐야 하는 것은 오는 가을 춘천으로 이사를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지난 달 입학한 대학원 수업을 들으려 춘천을 통학하고 있지만 공부할 것이 점점 늘어 이사를 가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기왕에 시작한 영산기맥 종주는 산본에서 마치고 춘천으로 이사가서는 강원도의 산줄기를 종주할 생각입니다. 해가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알바를 최소화하는 지혜가 점점 더 필요합니다만, 이번처럼 지도만 잘 읽는다면 결정적 알바는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습니다. 대학원 공부가 만만치 않아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제가 우리나라 산줄기를 계속해 이어 밟고자 하는 것은 종주산행만큼 저의 실존을 가장 확실히 증거 하는 것이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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